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한국교회 선교신학과 선교전략 (전호진)

수호천사1 2009. 2. 2. 00:50

한국교회 선교신학과 선교전략

 

전호진 박사

 

 

여는글

 

한국교회는 바야흐로 세계선교에 막대한 책임을 느끼고 선교를 분발하고 있으며 세계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강한 자의식과 반성에서 금번 선교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피선교지 교회가 아니라 선교교회로 부상하였다. 한국교회는 1970년대 후반 세계선교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우리선교사들이 세계 90여 국가에 무려 15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짧은 선교역사에 비해 많은 활동을 하며 선교지에서 크게 기여하는 선교사도 많이 있음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또한 한국선교 이대로 좋은가 하는 강력한 반성과 의문도 제기되고 있음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를 위한 인적자원,영적자원,물적자원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아직도 선교신학이 정립되지 않았고 세계교회에 내놓을 만한 전략도 없는 상태에서 선교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일찍 미국의 신학자 로버트 잭슨은 신학과 선교를 반비례의 관계로 말하였는데 이것은 한국교회에도 해당된다. 초대교회는 첫 3세기 동안 활발하게 선교하였지만 신학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고, 반면 종교개혁 때 루터와 칼빈의 덕분으로 신학이 발전하였으나 선교의 부재라고 하면서 신학과 선교는 상호배타적이라고 하였다.1)

 

한국교회는 아직도 신학이 우리의 것을 정립하지 못하고 번역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선교신학도 동일한 상황이다. 넬스 페러박사(Nels Ferre)는 선교신학은 기독교 신앙에 아무것도 더해주지 아니한다고 신학에 대해 냉소적인 견해를 피력하지만 선교는 성경에 기초한 원리와 경험을 토대로 해야하며 또한 전략에 기초해야 한다. 서구선교도 초기에는 신학과 구체적인 전략없이 이방의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였으나 19세기에 이르러 세계 선교의 중요한 원리인 3자 원리를 수립하여 한국에서도 이를 실천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이러한 유산을 계승하지 아니하고 천진난만한 선교활동만이 있을 뿐이다.

I.한국교회 선교신학

19세기 미국 장로교회가 한국선교를 시작할 때 그들은 중국선교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려고 노력한 결과, 유명한 네비우스의 3자원리를 선교신학으로 채택하고 이 원리에 기초하여 교회를 설립하였다. 네비우스원리는 단순한 선교전략이 아니라 영국 교회선교회 총무 헨리 벤과 미국해외선교회 총무 루푸스앤더슨이 동시에 발전시킨 성경에 근거한 선교신학이며 전략이다. 미국 선교학자 피어스 베버는 미국선교는 약 200년 동안 원리가 없이 선교를 하였으나 3자원리가 등장하자 이를 공식으로 채택하였거니와 이것은 영어권 선교를 100년간 지배한 신학이 되었다고 독일과 화란도 3자 원리를 인정하였고 3자원리를 높이 평가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여기에 감화를 받고 사회적 선교를 배격하고 교회선교를 더 애호하였다.2) 최근 독일의 선교학자 토마스 쉘마헬은 안더슨의 자립원리는 칼빈주의적 신앙고백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고 한다. 부흥운동의 산물인 신앙선교는 주로 선교의 개인적 차원을 너무 중시하여 교회와의 직접적인 관계없이 선교사가 그리스도의 종됨을 강조하며 선교회가 초교파적이어서어 신앙고백을 부정하지만 3자원리는 교회의 공동체 성격을 강조하고 선교를 교회에 귀속시킬려고 노력하였다.3) 초기 미국 선교사들은 19세기 선교의 특징인 개인구원의 선교였지만 개인을 회심시켜 자립, 자치,자력전파의 교회에 가입시키는 것을 선교의 최대목표로 설정하였다. 이리하여 네비우스의 "선교교회의 설립과 발전"(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은 한국선교사들의 선교과서가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립원리에 의하여 세워진 한국교회는 교회로써 조직을 형성하자 즉시 해외선교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선교원리나 신학에 근거하여 선교한 것이 아니라 선교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전도의 부채감이 많이 작용하였다. 1906년에 길선주목사는 중국선교의 염원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우리는 불원에 우리나라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흑암 속에 묻혀 있는 수억의 중국인들을 향하여, 미국교인들이 우리에게 한 것처럼 선교사를 보내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전할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4)

 

비록 해외선교가 교포선교에 중점을 두었지만 타문화권 선교도 병행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미약하였지만 외국교회에 전도의 본을 보여 주었다. 1918년 중국에 파송된 박상순선교사의 산동선교 보고는 초기 한국 선교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우리 선교사업의 수량 또는 질량으로 보아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 선교사업보다 미약하였다. 내가 그처럼 느낄뿐 아니다. 남도 그처럼 관찰하기에 당연하다. 중국은 백수십여종파의 선교사들이 각사업선상에서 활동하는 현상이니 우리는 아무것으로라도 남이 들을 만하여 불만하게 내여 놓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의 약한 것을 자랑한 것 같이 우리는 우리의 약한 것을 고백하기 숨김없이 하노라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약한 것을 하여 우리 선교사업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게 되었다. 조선인으로된 선교사,황색인으로된 선교사, 참말 20세기에 신안된 특별제품으로 보아 이상한 감도 일으키고 홍취도 준다. 어떠한 회합에 출석하게 되면 당연히 조선 선교사로 인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화제에 오르나린다.5)

1. 개인전도의 신학

한국교회는 시작부터 신학적으로 소위 보수주의로 말하지만 신앙형태는 "웨슬리적 정열과 푸리탄적 윤리"로 규정되는데 ,이것은 특히 전도와 선교에 잘 반영되어 개인전도의 신학이 해방될 때까지 한국교회를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해외선교에 개인전도와 교회개척에 중점을 두었지만 의료와 교육도 병행하였다. 한국교회의 선교와 전도는 서구에서와 같이 부흥운동의 결과로써,중요한 전도운동은 1907년 100만 구령운동과 교회진흥운동이며 이 여파로 1910년대에는 해외선교로 확대된다. 이때에 선교원리나 신학을 구체적으로 다룬것은 희소하지만 개인전도가 전도와 선교의 주류를 이루었다. 평양신학교 교수 곽안련 선교사는 1918년 신학지남에서 전도자로서의 목사의 기능을 역설하면서 목사는 "사람을 만나 하는대로 마고 전도하거아니오""개인전도 방침 중에 최요점은 남과 침묵하는 거시오 동내각인을 위하여 은밀히 그 성명을 들으셔도 할 것이며 목사가 그 사람과 정숙하게 친근히"한 후에 전도할 것을 권장하였다.6)

 

현대 교회성장의 신학은 개인전도 보다 맥가브란의 집단개종의 원리가 더 호소력이 있지만 19세기 서구 복음주의 선교의 특징인 개인전도가 한국 교회에 너무 강하게 작용하여 집단개종은 바람직하지 못한 탁상공론으로 여길 정도였다. 장로교의 대신학자인 박형룡박사는 한국신학의 고전이 되는 유명한 기독교 근대 신학난제선평에서 1930년대 당시 인도에서 사역한 영국 선교사 트레베리안(Sir Charles Trevelysan)의 교회,문서전도, 홍보,서구인과의 대화를 통하여 집단개종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을"이론으로써의 가치는 있을런지는 몰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가치도 없는 '탁상이론'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박박사의 지론을 철저하게 영혼구원과 개인전도 만이 바람직한 전도이다.

 

個人個人을 同心 시켜서 전사회에 감화를 맞이하는 것이 기독교의 자초로 旅行하여온 실제적선교방법인 것이다. 기독교는 이교제국의 이반적문화향상을 위하여서도 多大한 노력을 費하여야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제일綜적본領은 먼저 남녀개인을 勸誘하며 敎導하야,그들로 구주에게로 향하는 절대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하며 그들로 또한 그의 교회의 成員이 하나되게 하는 역사를 勤實이 행함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신으로서 일반민중의 각개심령에 개종의 위업을 건설하려는 진력과 추구는 기독교의 권리적 내지 의무적행위의 하나인 것이다.7)

 

"사회구원"을 중시하는 일부 사람들은 초기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구령사업에 바빠서 사회봉사는 외면된다고 말하나, 한국교회는 부수적으로 사회 봉사의 선교를 철저하게 외면한 것은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장로교와 감리교는 해외선교에 의료,교육을 병행하였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전도였다. 이점에서 선구선교도 선문명화, 후복음화냐 혹은 선복음화,후문명화냐에 고심하였지만 한국교회는 철저하게 선복음화하였다. 선교지의 선교사들은 피선교지의 참혹한 비인간적인 정황을 슬퍼하면서 이를 복음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실례로 신학세례에 "중화민국에 선교함이 필요함"이란 한 선교요청은 중국사회의 참혹한 의료사항을 소개하면서 복음만이 퇴치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죠션 량감리교회에서 중화민죽에 션교사업을 착수코져한지 임의수개 셩샹이라 현금에지하도록 시작지 못한거시 유감인되 이 사업에 찬셩하는 모든쟈의게 한가지 취미잇는 사건이잇스니 곳 중화민국내에 이하사항과 갓흔 참혹한 병챠치료하는 구풍이 속히 업셔지게 구습을 버셔난 우리는 협력할거시니라8)

2. 사회참여의 신학:해방과 구원

1960년대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준 신학의 이슈는 제3공화국의 등장으로 민주화에 강한 열의가 사회와 교회에 나타나서 교회는 사회참여를 활발하게 논의하였고,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찾기위하여 진보적 교회는 조직신학자들이 먼저 신학의 토착화를 논의하였는데,그것은 물론 선교신학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지금도 한국교회가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사회참여의 신학과 토착화는 물론 개인구원의 선교를 타계적이고 고유한 문화적 유산을 외면한다고 비평하기 시작하였다.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전도와 선교에 가장 도전적인 공식적인 이의 계기는 1961년 NCC가 WCC에 보고하는 문서가운데서 나타난다. 문서는 보고하기를 한국교회의 전도에 관한 서적들을 "교회의 본질과 전도에 관한 성서적인 이해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고 혹평한다. 이 보고서의 일부를 인용하면:

기독교인의 전도란 오직 그리스도를 믿게하고 하늘나라에 가라는 말로서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저들에게 전하는 그 이상의 것이다. 기독교인의 전도란 잘 설립된 교회의 일방적인 구룹이나 조직에 의해서 성취되어지기 위한 하나의 계획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교회는 전도인 것이다.9)

 

KNCC 의 전도보고는 1950년대 후반 독일에서 등장한 교회는 선교라는 하나님의 선교의 반영으로,1960년대에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선교신학이 일부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었고 또 어떤 교단은 선교정책으로 채택하였다. 하나님의 선교는 사회참여의 신학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큼 사회정의와 송사를 선교로 간주하면서 전도는 배제하는 경향을 띈다.하나님의 선교는 1970년부터는 해방신학으로 발전하여 1970년대 해방이 곧 선교라는 부분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해방신학은 1974년부터는 민중신학으로 발전하여 민중이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전제로 가난한 자의 구원을 역설하였는데,이 민중신학이 불행하게도 한국의 대표적 신학으로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가 주 관심이기 때문에 해외선교를 배제한다. 여기서 한국교회에도 남미의 기초공동체와 같은 민중교회가 등장하였다.

 

WCC의 하나님의 선교, 해방신학이 한국교회에 깊이 침투한 반면 세계 복음주의 선교운동이 한국교회에 역시 크게 작용하여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은 사회참여는 너무 외면할 정도로 전도와 선교에 열중하여 청년들과 지성인 신자들에게 저항을 받게 되었다.전도와 사회참여에 대하여 말하면 한국의 복음주의는 로잔대회 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로잔은 WCC의 인간화와 해방을 부정하면서도 전도와 사회행동의 통합적 모델을 권장한다. 로잔언약은 전도와 사회적 관심을 상호 배타적 관계로 본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이 아니지만 선교운동은 대체적으로 전도와 사회행동을 대립적 관계로 보다는 통합적 모델을 권장한다. 즉 전교회가 전체의 복음(The whole gospel)을 전세계에 전하여야 한다는 것이 공동된 견해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와 전도에 있어서 전도로만은 사실상 불가능할 만큼 선교지의 사회와 경제여건이 여의치 못하다. 그럼으로 전도와 사회참여의 신학보다는 전도와 봉사가 함께 하는 선교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전도가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전도로 개인과 사회가 변혁된다는 원리를 고수해야 한다. 진정한 전도는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어 신분과 사회의 상승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비록 서구가 식민주의와 세속화로 인하여 기독교의 권위를 실추시키지만 그러나 기독교적 국가,그 가운데도 말씀에 더 충실한 개신교 국가가 사회,경제,정치면에서 선진화되었다는 사실은 복음의 개인적 사회적 변혁을 입증한다. 한국은 교회가 인구의 20%을 상회하는 준기독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병리 현상이 많은데 대하여 지나치게 "개인적 복음"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비평도 있으나 이것은 "개인적 복음"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복음이 실제적 생활에 적응될 만큼 영적생명을 가지지 못한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선교지에서 구제와 개발 및 사회사업 등 사회적,경제적 요구를 너무 외면할 경우 선교사가 입국조차 못하는 현실이다. 네팔같은 나라에 직접전도는 불가능하다고 다만 개발명목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전도와 봉사는 상호보완의 관계이다. 그러나 로잔대회의 사회-정치참여는 현재 선교지에서 그대로 적용하기는 결코 단순치 아니한 상황이다. 아시아와 남미 및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 해방신학을 선교신학으로 실천하여 선교사가 추방당한 예가 적지 아니하다. 로잔언약은 사회정치참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양자(전도와 사회관심)은 하나님과 인간론의 필요한 표현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역시 온갖 형태의 소외와 억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불의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탄핵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10)

 

현 시대는 어느나라나 사회를 막론하고 소위 "점고하는 기대의 혁명"(revolution of rising expectation)으로 인하여 인권과 정의에 대한 자의식이 강한 실정이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운명으로 생각하던 회교국가와 힌두교 국가에도 데모가 일어나는 실정이다. 그러나 로잔언약대로 외국선교사가 악과 불의를 탄핵하는 언동과 행동을 할 때 선교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복음은 인권,평등,자유,해방 등 인간이 기본권이 궁극적으로 내포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창2:26에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는 말씀을 하나님도 민주적이심을 입증하는 대표적 교훈이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의 교리는 인간의 평등사상을 가르친다. 또한 성경은 사람이 믿음을 경제분야에서 실천할 때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을 초래한다는 것이 신8:1-14에서 말하며 막스 베버는 이미 기독교와 경제성장 간의 관계를 프로테스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힌두교와 불교 및 소논문인 유교와 청교도 윤리에서 학문적으로 잘 설명하였다.

3. 토착화의 문제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교회는 1960년대 신학의 토착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였으나 아직 해결점을 찾지못한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다. 현대선교는 선교를 위한 토착화를 논의하지만 토착화는 문화와 교회의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처해야 할 문제이다. 그동안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는 토착화는 혼합주의의 위험성이 있다고 타부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토착화는 1928년 예루살렘교회는 이미 진지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던 선교의 난제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예루살렘 선교대회 보고서는 교회의 토착화는 보편적 교회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예배와 봉사 등에서 문화의 특성을 참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1938년 마드라스대회는 토착화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는데,요즘은 "복음이 바로 표현되는 한 다양한 형태는 정당하지만 복음을 잘못 표현할 때는 다양한 타당성이 없다"11)고 하였다.

 

토착화 논의는 물론 서구 기독교가 비서구에 대한 죄책감과 선교가 곧 문화침략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골육지책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기도 토착화를 주장하는 신학의 배경에는 부분적으로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포기하고 문화에 더 비중을 두는 신학적 결점으로 인하여 복음주의 교회는 이것을 외면하였지만 지금 한국교회의 선교는 이를 결코 등한시 할 수 없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운동권 학생들과 사람들은 보수주의 교회는 우리의 문화적 유산을 등한히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모교회가 야외에서 토착적 모델의 추수감사절을 지킨 것은 교회적 차원에서 토착화의 한 시도이다. 아시아에서 대부분의 나라는 반서구 감정이 예민하기 때문에 한국선교는 토착화에 대한 기본인식과 노력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우리만큼 우리 것에 대한 문화적 자긍심이 없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토착화에 대한 복음주의의 입장은 무엇이야 하는가? 첫째로 전제할 것은 모든 문화는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문화는 어떤점에서 종교의 표현이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는 "이교적 문화"와는 전혀 충돌이 없이 복음전파는 가능하고 다만 충돌을 어느 정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위하여 토착화를 논하는 것이지 충돌을 전무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마테오리치나 노빌리는 문화와의 충돌을 전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순응모델을 택하여 혼합주의라는 비난을 면치못하였다. 복음은 문화와의 충돌이다(행6:14,16:21).그러나 또한편 복음은 문화와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극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같이,이방인에게는 이방인 같이 하는 적응적 태도를 취하였고(고전9:10-22)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들에게 유대의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부과하기를 피하고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데 노력하였다. 따라서 복음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번위에서 기독교는 그 나라의 문화적 유산을 존경하는 범위에서 적절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4. 복음주의 종교신학

현대선교의 난제는 토착화에서 종교문제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교회는 종교다원화의 사회에서 성장하였지만 타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며 타종교인에게 어떻게 전도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금년 WCC 총회에서 한 여교수의 성령에 과난 발표는 한국교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적인 행위이자 복음주의 선교에 대한 도발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신학자들은 이것을 오히려 신학의 주체적 노력으로 높이 평가한다. 신학,철학,사회학,문화인류학등 여러분야에서 이 시대는 상대주의가 너무 득세하여 "이것이 진리이다"라고 외치는 단언적인 주의주장이나 외침은 공격적이라고 야유와 조소를 받는 실정이다. 종교다원화의 문제가 현대선교와 신학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종교다원화에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서구문화와 기독교가 쇠퇴하고 또 서구인들이 물질문명에 환멸을 느끼고 신비적 동양종교에서 인생과 세계의 해결점을 찾을려고 찾는데 기인한다. 마지막으로 신학적으로 많은 "종교신학자들"이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신에게 도달하는 다양한 길로 해석하는데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즉 현대선교는 기독교의 절대성이 도전을 받고 있다. 과거 중세기독교는 비기독교 종교를 우상과 미신으로,19세기 서구 복음주의 선교사들도 이런 입장을 견지하여 비기독교 종교를 정복하는 선교였다. 이제는 이러한 전투적 자세가 교만과 문호적,종교적 우월주의로 배격을 당하는 실정이되고 말았다. 한국의 종교다원화도 이미 성취설을 넘어서 모든 종교에 구교와 문화에 이미 그리스도가 존재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를 우상화하지 말라는 신학적 충고(?)도 나왔다.

 

1960년에 서구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종교다원화의 신학은 1980년대 후반 한국교회가 상륙하여 90년에의 사회정의,통일,환경문제와 더불어 한국신학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물론 종교다원화에 동조하는 신학자들은 그동안 해방신학,평화의 신학 등을 소개하던 신학자들이 앞장 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종교다원화론자들은,"종교신학은 선교가 아니라 대화를 지향하여 나아가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기독교의 비속에만 폐쇄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하나님은 오직 기독교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기독교인만의 하나님은 아니다.12) 1932년 윌리암 혹킹의 선교재고(Mission Rethinkin)에 대하여 당시 한국주재 선교사들은 이 연구서의 채택여부를 논의 한 끝에 두 선교사외는 만장일치로 부결하였는데,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하였다. 우선 상당수 신학자들이 종교다원화에 동조하는데, 이들은 기독교는 서양의 산물로써, 탈서구화를 추구하는 현시점에서 배타적 복음의 기독교는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하나님의 역사는 다른 종교와 문화에도 역사하며 타종교에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개종을 시도하는 선교는 종교적 제국주의로 간주한다(한국의 종교다원화에 대하여는 한국기독교학회 편,종교다원주의와 신학적 관계를 참고할 것)"Unknown Christ"혹은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가 힌구됴와 다른 종교에도 존재한 것같이 한국의 샤마니즘에도 이미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서슴치 않는다. 한국교회는 선교적 이슈가 되는 토착화,해방신학,평화의 신학,종교다원화 등은 진보적 조직신학자들인 성경신학자들이 오히려 주도하였지만 불행하게도 선교를 배제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면 타종교에 대한 복음주의의 입장은 무엇이야 하는가?타종교 신학은 종교적 휴머니즘으로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에도 이미 논의된 것으로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순교자 저스틴은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은 자연적 신자라고 하였고 터투리안도 예수님은 지옥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였다고 주장하였고 알렉산더의 클레멘트와 오리겐, 아다나시우스 등은 사후 구원이 가능성을 믿었다고 한다. 심지어 개신교의 신학자들은 요한랑게와 페레데릭 고데같은 사람도 사후전도의 기회를 말하였다. 19세기에 서구 신학자들이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겸손의 표시로 종교적 상대주의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19세기 종교다원주의가 서구에서 대두될 때, 역시 배타적 복음은 서구 기독교를 지배하였고, 우리는 이것을 계승하고 있다. 복음주의 선교학자들은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것이 아니라 전도하여 구원하여야 할 선교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독일의 복음주의 선교학자 구스타프 바르덱은 타종교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인간과 함께 시작된 종교적 오류로써, 이들은 기독교 계시로써 타종교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점에서 타종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성취설이나 연속성이 아니라 타종교와 접촉점(Ankunpfung),변증(Apologetik),논쟁(Polemik)을 해아하며, 이를 위하여 선교사는 모든 종교를 개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하였다.13) 이것은 선교변증학으로 개혁주의 선교학자 바빙크가 말하는 엘렝틱스(elenctics) 와같은 입장이다.14)

 

현대선교의 관건은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조우이기 때문에 한국의 복음주의 선교도 선교변증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타종교도 현대화하고 부흥하는 종교다원화의 상황에서 우리는 성경적 종교신학을 수립하여야 하지만 선교현장에서는 사상은 강하게 방법은 부드럽게(fortiter in res,suavitre in mode) 해야 하지 결코 종교전쟁을 유발해서는 안될 것이다.

II. 선교전략

현재 한국교회는 선교지의 상황이 너무나 복잡한 상황에 처한 시점에[서 선교국으로 부상하여 전략의 지혜의 신축성있는 대응이 요망된다.세계선교의 주체는 서구선교가 퇴각하고 소위 제3세계 선교가 강화되어 선교의 중력이 서구에서 비서구로 이전되는 상황이며, 대부분은 선교지가 정치의 비민주화와 경제적 빈곤 및 미개발로 말미암아 복음보다는 빵을 더 요구하며 복음이 전혀 전하여지지 않은 소위 미전도인종 그룹(the unreached people)이 선교의 주관심이 되고 있으며, 공산권의 개방과 회교권의 도전이 약화되어 선교는 기회의 때로 생각된다.그러나 아직도 선교의 닫혀진 문이 더 많으며 열려진 일부 나라도 제한과 제약이 있어서 지혜와 신중이 요망된다. 특히 국내적으로는 교회가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여 영적으로 침체하여 이미 한국교회의 전성기는 지나간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도 일어나고 있다. 1년에 100억원 이상의 선교비가 해외로 나가는데 대해 미자립교회와 농촌교회는 심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한국선교가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교회의 성장과 선교를 위하여 다음의 몇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1. 국내교회의 영적 부흥과 갱신

선교역사에서 선교는 부흥운동의 산물임을 성경과 교회사가 증명한다. 로잔대회는 선교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믿는다. 아버지께서는 그의 아들을 전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신다. 성령의 증거없이 우리의 노력도 헛되다.죄의 확신,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새로운 탄생과 신자의 성장은 다 성령의 역사이다. 더 나아가 성령은 선교의 영이시다. 그럼으로 전도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로부터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선교적 교회가 아닌 교회는 모순되고 성령을 소멸한다. 세계복음화는 성령이 교회를 진리와 지혜와 신앙과 거룩과 사랑과 능력으로 새롭게 할 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다.15)

 

초대 한국교회는 선교에 대한 부채감으로 선교를 시작하였지만 동시에 부흥운동의 열매로 해외선교를 착수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부흥하는 교회로 자타가 공인하나 영적 교만과 분열로 인하여 부흥이 얼마나 지속될지 부안하거니와 성령의 열매도 신유,중생,은사,이적,축복 등 현상적 요인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인격과 생활로 나타나는 열매는 등한히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는 공동체의 의식의 결여로 기독교 기관과 교회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양보와 신앙과 합리성의 결여로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회가 때로는 내분과 갈등으로 선교의 효율성을 감소시키거니와 교회성장에도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 이번 선교대회를 통하여 한국교회는 지체의식을 가지고 하나가 되며, 나아가 갱신의 의지를 모아 교회성장에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모교회로부터 영적 활력은 배웠지만 연합은 배우지 못하였다는 외국신학자의 충고를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2. 현존의 선교:선교의 인격적 요소

현대 급진적 선교는 복음의 공격적 전도보다는 신자의 말과 행위와 인격에 비중을 두는 현존의 신학(presence)을 강조한다. 복음주의 선교는 proclamation persuasion presence)에서 persuasion에 비중을 더 둔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선교 이대로 좋은가 하는 문제의 제기는 전략이나 방법보다는 인격적 요인이 더 작용한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WCC선교의 기초를 제공한 헨드리 크래머는 타종교 선교전략에 대하여 공격적이거나 무조건 동정적인 접근을 거부하고 소위 인격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선교사 자신이 가장 위대한 전략이요 접촉점이라고 하였다. 물론 그의 선교신학의 기초는 칼 바르트의 성육신학(incarnational thrology)에 기초한 현존의 신학이지만 이것을 무조건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아주 특수하게 구체적인 접촉점의 중요한 국면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접촉점은 오직 하나뿐이다. 만약 한 접촉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거기는 또한 많은 접촉점이 있다. 이 하나의 접촉점은 선교사의 성향과 태도이다. 선교사를 접촉점으로 삼은 것은 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말해주는 것 같이 이것은 진리이다. 이 문제를 일반적으로 다룰 때 전략적이고 매우 중요한 것은 선교사 자신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황금률이요 철칙(iron law)이다.16)

3. 선교의 목표:자립교회의 설립

미국교회도 초기 선교 때는 선교신학이나 원리가 없이 선교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19세기에 와서 자립선교 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이전에 청교도들이 인디언들에게 전도할 때 이미 자립원인을 실천하였고 선교의 목적은 자신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우위해 두었다. 인디언 선교사 엘리웃은 인디언들을 개종시켰으나 교회설립은 인디언 목사가 등장할 때까지 보류하였다. 인디언어를 모르는 영어사용의 선교사는 오히려 인디언 교회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다.17) 전술한 바와 같이 영국교회도 자립원리를 선교지에 대체로 실시하였고 독일교회는 민족기독교화(Volkschristiani- sierung)를 책략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공유할 수 있는 선교원리나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 미국선교로부터 배운 3자원리의 토대위에서 협력선교를 하거니와 동시에 교회설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즉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의 교회를 세우고 흥하고 선교는 쇠하여야 한다는 겸손이 선교지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벌써 선교의 시대에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의 교회설립을 하나님나라의 이적 모델로 제시하였다(사66:18-22).선교사들은 선교지의 가난한 실정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지만 행정과 경제면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길을 주시리라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물론 신축성과 융통성을 전혀 배제해서는 안된다. 한가지 한국교회가 선교하는 대부분의 선교지는 돈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되며 선교는 계속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4. 개인전도와 집단전도의 병행

현대복음주의 선교에 가장 영향력있는 선교신학은 풀러신학교의 교회 성장신학이다. 이 선교원리에 대하여 WCC와 개혁주의 및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물론 맥가브란의 신학은 알미니안적 복음주의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교회가 이 선교신학을 통해 신학적으로 서로 접근되고 있다. 또한 한국선교사가 일하는 대부분의 선교지는 개인이 선택하고 행동하기에는 많은 핍박과 제한이 따르는 집단주의의 사회이다. 즉 개인보다 가문,동네,사회,국가가 더 우선하는 사회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식 개인주의에 입각한 개별전도로는 선교의 한계를 느낀다. 이점에서 경직된 부수주의로는 선교에 부적합한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교회도 이미 해방 후 군대전도와 학원전도 등 집단전력을 채택한 것이다. 개혁주의 선교신학도 개인위주의 선교보다는 가정단위의 선교가 성장의 원리라고 생각한다.18) 독일의 선교전략에 의하여 한 부족이 함께 개종하여 세워진 교회는 문화적 공동체와 초자연적 공동체인 교회와의 구분이 없는 값싼 은혜라는 비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보완하는 노력과 함께 집단을 대상으로 개종시키는 노력은 시도되어야 한다.그러나 물론개인전도가 전도의 우선 원리라는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5. 연합과 협력

한국교회 선교의 사활은 선교에서 파송교회와 선교회가 상호협력하여 연합하며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얼마나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상호 존중하면서 협력하느냐에 달려있다. 초기 한국선교는 교파를 초월한 선교동의회,지역할당제 등의 연합과 협력의 미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한국 교회는 자체 선교사를 파송할 때 선교지에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지역할당제로써 선교협력을 하였다. 예를들면 1925년에 장로교와 감리교는 연합전도국을 서리하여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만주에서는 지역할당제를 실시하였다. 형제간의 연합과 협력운동이 전개될 때 한국교회와 선교가 살 것이다.

결론

21세기 선교의 세계선교의 주역이 될려는 한국교회는 선교에 필요한 영적 자원, 인적자원,물적자원을 가졌지만 원리가 없이 성급한 행동만 있다는 지적과 우려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다른 신학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선교신학은 아직 유아기의 상태로 우리 손에 의한 선교서적이나 글들이 적은 실정이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미국선교로부터 배운 3자원리를 계승하여 선교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역사하신다는 신앙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도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성경강조와 자립원리로 부흥하고 성장하였다고 자랑하면서도 실천에 있어서는 이 원칙을 부정하여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현대선교는 전략면에서 기회와 도전이 공존하고 있다. 헤셀그레이브가 잘지적한 바와 같이 선교의 나쁜 뉴스는 전세계적으로 신자는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으며 아직도 12,000의 미전도 인종그룹이 기다리고 있으며 성경번역도 모든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도시에서는 일초에 한 명꼴로 오히려 신자를 잃는 상황인데도 비기독교 종교의 도전을 더욱 증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 기초하면서도 시대상황에 적절한 전도와 선교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서구 선교가 황혼을 고하는 상황에서 선교의 아침을 맞은 한국교회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선교신학과 진력을 가지고 손에 손을 잡고 일할 때 한국교회와 선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와 선교가 성장하게 될 것이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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