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선교회의 관계및 교회연합
정동식 목사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위임한 선교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다. 교파 간 선교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차이로 문제점이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하나님의 선교의 원칙은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체성과 활동을 강조하는 올바른 출발점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복음화 운동과 선교구조의 해체를 요청하며, 선교사들을 소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교회가 아니라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선교의 주된 활동무대이다.따라서 교회는 이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라고 세계선교협의회 선교신학은 말한다.
그러나 이 신학은 하나님의 활동을 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이라는 세속적 활동을 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세계도처에 있는 불신자들을 권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며 그가 세우신 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은 잘못된 선교로써 정죄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선교협의회의 주장은 인간화에 역점을 두며 복음화를 선교의 과제로 삼는 복음주의적 입장과 많은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선교에 대한 이러한 입장의 차이로 말미암아 야기된 교회의 분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반면에,교파나 교회적 구조가 아니라 친교적 종파적 구조를 가진 선교회는 교파적 교회가 제도화를 통하여 교회 분래의 특성을 상실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선교회에 의하면 교회는 양적인 팽창과 교권 수립에만 집착하고 있으며 제자훈련과 선교에 등한시하고 있다. 교회구조로는 더 이상 효과적인 복음전도와 제자훈련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선교회는 독자적으로 전도훈련과 양육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선교회의 종파적인 요소가 일부 교회에 대하여 불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비판적인 단체라고 보고 선교회에 대한 의심의 시각을 표출하고 있다.
교회의 선교활동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인 난관, 즉 선교의 신학적 이해의 차이로 인한 분열과 제도화된 교회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독자적인 선교활동에 종사하는 선교회의와의 마찰은 한국교회가 극복해야할 과제로써 등장하고 있다. 교회의 분열은 결국 힘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으며, 그로 인하여 효과적인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난관에 대처하는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를 이 논문에서 다루어 봄으로서 앞으로의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참조가 되는 몇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I.교회 연합의 과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신자들과 교제를 나누는 교회연합의 필요성은 단순히 효과적인 선교의 전략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며, 성경의 증언이며, 교회의 요청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분열된 한국교회의 연합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회개와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 교회연합의 성서적 근거
교회연합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합에 본질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아주 중요한 예언을 하셨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교회의 연합은 가능하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성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전 12:13).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는 연합이 성서가 말하는 교회의 참된 연합이다. 조직체의 통합이나 교리의 일치는 근본적인 교회연합의 전제가 아니라 나타난 외적 결과일 뿐이다.따라서 교회의 일치를 말할 때 무엇보다도 신학의 일치를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느냐 하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2. 세계교회협의회(WCC) 의 교회일치 운동에 대한 평가
세계교회협의회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일치 운동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분열이 악이라는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깨우쳐 주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분열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교회가 분열되었다는 것은 비록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성서적 이상에는 미치지 못하는 악이며 잘못 된것이다. 분열을 합리화시킬 수는 있다. 분열의 원인을 자기교파에 유리하게 따져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 나뉘었다는 것 자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분열에 대한 책임을 모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보는 한에 있어서 정당하다. 선교와 인간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의존해 있다는 고백은 성서적이며, 복음적이다. 따라서 교회의 참된 연합은 하나님 아버지의 은헤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야만 가능하게 된다는 점은 서로 일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분열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자각하고, 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보는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의 교회연합 운동에는 이질적인 상이점이 나타나고 있다. 즉 에큐메니칼운동은 이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모든 활동 특히 불의한 사회구조의 개혁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활동에 선교의 강조점을 두고 있는데 반하여, 복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아무런 충성을 바치고 있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문화권을 초월해 전하는 것이며 그들을 고무하여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와 주로서 받아 들이게 하며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인 교회의 책임적인 구성원들이 되게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전도와 정의의 실천에 함께 사역하며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처럼 이 땅에서도 그의 뜻을 이루도록 하는 것"(글라서, 맥가브란,P.50)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즉 복음주의는 복음화를 선교의 본질적인 목표로 삼고 있고, 반면에 에큐메니칼 우동은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로 정하고 있다.
복음주의와 교회협의회 간의 선교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실제로 두 진영의 연합은 어려운 것 같이 보인다. 교회협의회는 복음주의자들 보다 불교인이나 무신론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복음주의자들도 협의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복음주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우선권을 협의회가 받아들이기를 요구하고 있고, 협의회는 복음주의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정치,경제,타종교,문화,환경 등 이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서 비인간화된 요소를 제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복음주의는 죄의 사회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교회협의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고, 협의회는 복음,성서,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까지 상대화 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복음주의자로부터 받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의 교회는 분열된 채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인가?
3. 교회연합의 가능성
서로 상반된 선교신학적 갈등을 해소하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연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은 절실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연합이 조직체만의 연합이나, 프로그램만이 연합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또한 신학적인 연합으로만 이루어져도 충분치 않다. 교회의 연합은 성서가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고 고백하며, 성령으로 일치됨을 경영하는 기초 위에서 교회연합은 출발해야 한다.이러한 일치운동은 본래 하나님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어야 함을 요청하는 것이다.
교회협의회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본래적인 의미를 회복한다면 복음주의와의 일치점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활동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을 성화시키시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도 앞장서게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을 말한다고 재해석 한다면 복음주의가 에큐메니칼 운동과의 연합을 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되는 세이다. 1952년 윌링겐대회에 이르기까지 교회협의회의 주도적 사상은 복음주의도 연합할 수 있는 복음적 기초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복음주의는 교회협의회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겸허히 스스로를 반성하며, 또한 협의회가 복음에서 이탈한 것을 깨우쳐줌으로서 진정한 교회의 일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할 것이다. 죄의 개인적인 측면을 복음주의자가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 할지라도 죄의 사회성에 대한 관심을 교회협의회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서구교회의 주도권에 대한 비판의식이 팽배해가고,제도적 교회의 지나친 교권주의와 개교회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운동,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교회가 연결되어 봉사하여야할 과제는 교회협의회의 교회들과 더불어 복음주의 교회들이 공통된 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복음주의 교회 1966년 휫튼(Wheaton) 선언,1974년 로잔느 언약을 통하여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인정한 것은 교회연합을 위한 복음주주의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연합을 위한 복음주의 자체내의 과제를 몇가지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에큐메니칼운동이 복음적이고 성서적인 기초를 갖도록 조언해야할 것이다.
둘째로, 복음전도의 사역을 늦추지 말아야할 것이다. 교회협의회 비판과 피선교지의 의식적인 전환으로 서구중심적이고 교파중심적인 기존의 복음전도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증거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로, 복음주의 내부의 분열된 선교정책과 교파의 분열에 대한 회개와 반성이 있어야 하며, 해외선교에 있어서 협의와 협동의 정신을 가지고 선교에 임해야 할 것이다.특히 한국교회는 교파의 분열로 인하여 경쟁적인 복음전도의 역동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협동성이 부족하다는 많은 자기 반성을 하고 있다.
II. 세계선교에 있어서 교회와 선교회의 과제
1. 서론.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고 첫 선교사로 나갈 때, 그들은 교회의 전적인 기도와 격려를 받았으며, 이들은 소아시아 전역을 다니면서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전했다. 선교 여행 도중에 디모데와 누가등을 만나 함께 여행하였는데, 이 선교단을 흔히 "바울의 선교단"(Paul's Missionary Band)라고 부른다. 이후로 기독교 선교운동에는 교회라는 목회적 구조(pastoral Structure)와 선교회라는 선교적 구조(Missionary Struc- utre)의 두 종류의 기본적인 사역 구조(Ministrial Strucuture)가 형성된 것이다. 이 두 구조가 각각의 특성을 살려서 서로 협력하며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참여하면 보다 효과적인 선교 사역이 가능할 것이다.
2. 두 구조의 역사적 배경
초대교회에는 기독교 회당(Christian Synagogue) 이 복음 전파와 신앙교육의 중심이여, 바울은 이 회당을 중심으로 하여 사역하면서 메시아의 도래를 전파하였다. 이방인들은 여기서 복음을 들었고,할례받지 않은 사람들도 회당에 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회당에 속한 사람들은 다양한 부류였다. 이방인 가운데서 고넬료처럼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God-fearers)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믿되 율법이 정한 할례만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또한 할례까지 받고 모든 율법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 이른바 "개종자"(proseylites)들이 있었다. 이들은 원래 혈통으로는 이방인이었기때문에 "나그네"(Strangers)이지만,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의 취급을 받으며 유대인이 누리는 모든 특권과 축복을 함께 받을 수 있는 부류이다.그리고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들이 또한 회당 구성원에 속한다.
바울은 경우에 따라서는 회당 이외의 다른 교제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즉 경제적인 면에서 독립하여 활동하기도 하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안디옥 교회의 지원을 받아 다른 성도들을 돕기도 하였다.
3. 두 구조의 특징
1) 선교회 구조
(1) 선별적:정한 수속을 밟아야 입회하는 경우가 많다.
(2) 기동성:과업 수행을 위한 행동성이 있다.
(3) 구체적 과제 지향성:기관에 따라 고유한 목표가 있다.
(4) 개혁적:기존 질서에 대한 변화를 시도한다.
(5) 강력한 지도력: 대개 카리스카적인 인물이 중심이 된다.
(6) 강한 헌신성:충성을 다하여 지도자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7) 특수 계층 중심적:학생,직업 계층 등.
(8) 비교적 비지속적:목표 달성후 해체되는 것들도 많다.
(9) 여러선교단체
(10)Sodality,또는 Mission Structure라고 부른다.
2) 교회구조
(1) 포괄적: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2) 지역성:일정한 지역에 위치하여 사역한다.
(3) 다양한 사역지향성:전도,양육,제자화,선교,구제 등 다양화.
(4) 조직발전적:기구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한다.
(5) 융통한 지도력:대표자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6) 약한 헌신성:등록한 회원이라도 비교적 용이하게 이동한다.
(7) 다양한 계층 포함:유아부터 노년까지 모든 계층을 포함한다.
(8) 지속적:지도자가 바뀌어도 교회는 지속된다.
(9) 여러지역교회
(10)Modality 또는 Chruch Strucutre라고도 부른다.
4. 교회와 선교회의 해묵은 갈등
교회와 선교회는 협의적으로 국내 교회에서, 그리고 광이적으로는 세계선교라는 거대한 과업을 놓고 많은 갈등을 겪어 왔으며, 이러한 갈등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지적해 본다.
1) 주도권의 문제:
특수한 종류의 사역에 대하여 누가 주도권을 잡는가 하는 문제로 많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한때 선교회들은 성경 공부와 제자훈련의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주도권을 잡고, 교회의 성경 공부를 이끌어 왔다. 또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있어서도 기성 교회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전에 먼저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2) 지도력의 문제:
기성 교회의 많은 분열과 파벌 현상은 지도력의 분산현상을 초래하였으며,한국교회를 대표할 인물의 빈곤까지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국내외에 역사적 근거를 가진 선교회들은 일사분란한 지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지속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3) 사역의 특성적인 측면:
한때 교회들은 지역교회 조직의 유지와 존속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여, 사실상 교회적인 발전을 등한시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선교회들은 제자 훈련이나 선교라는 과제를 놓고 집중적인 노력을 하여,괄목할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한국 교회의 경우, 다분히 감정적인 부흥회가 많아지면서,교인의 숫자는 점차 늘어갔지만, 무속적인 요소, 신비주의적 오류,주관적 체험 중심의 신앙 강조 등은 신앙의 근거를 상당히 약화시키는 면이 있었고,이에 따라 각종 사이비와 이단 종교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4) 신학적인 문제:
교회는 소속 교단과 교파의 특정한 신학 노선을 따르며,또한 학문으로써의 신학의 위치가 상당히 높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개 선교회의 경우를 보면, 정규 신학적인 훈련이 부족하며, 다만 일부 지도자가 제시하는 신학적 해석과 흐름을 좇게 된다. 이런 갈등 때문에 교회는 선교히에 교인을 잃지 않으려고 하고, 한편 선교회는 교회로부터 배척을 당하거나 불신을 받기도 하였던 것이다.
5. 새로운 협력의 필요성과 방법
교회와 선교 기관은 세계 선교라는 긴급하고도 중요한 과업을 놓고 협력사역을 새롭게 시도해야 한다.지금은 갈등으로 우리의 인력과 재력 및 시간을 허비할 시간이 없다. 제21세기라는 시대적 변화와 예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많은 논쟁이 되고 있는 이때에 지역 교회와 선교기구는 이른바 "동반사역"(Patrnership)을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할 시기이다. 즉 두 구조는 상호 협조적이며 특수성을 인정하되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발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실제에 있어서 두 구조는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며,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두 구조 간에 상존하는 긴장(Tension) 때문에 서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역할의 분배
각 구조의 특수성을 살려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즉 조직적인 훈련과정과 체계적인 선교 관계 행정을 가진 선교 기구라면, 지역교회의 충분한 인력과 재정 및 기도 등의 영적인 지원과 동반 사역을 실행하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교회와 교단은 아직도 선교사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며 파송하는 일에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여,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내고 있다.예를 들어 본다면,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정책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서 겪어야 하는 정신적 긴장은 대단히 심각하다. 한 두 사람의 경제적 지원의 약속을 받고 선교지에 나간 선교사가 경제적 지원자의 갑작스런 변동에 따라 사역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2) 훈련의 협력
최근 일부 교단에서 선교 훈련원을 개설하고 파송을 준비하는 선교사 후보생들을 위하여 다양한 훈련과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선교 훈련원"(M.T.I-합동측 소속), "세계선교훈련원"(장신대 소속),K.O.M.F.와 협력 사역으로 하는 G.M.T.C.고신 소속으로 되어 있는 K.M.T.I.및 K.I.M.선교 훈련 프로그램등 일부 신학교와 교단이 운영하는 선교사 훈련을 위한 기관이 있으나,대개 시설과 재정 면에서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
3) 후원의 협력
선교사를 돕는 측면에서도 협력과 동반 사역이 가능하다. 구체적이며 실행해 보아 효과가 좋은 정책을 가진 선교 기구가 있다면, 지역 교회와 협력하여 선교사의 보다 나은 사역을 위하여 지원하고, 한편 교회는 재정 지원과 기도 지원에 있어서 큰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교회가 가진 많은 인력자원을 발굴하고 선교사로 세우는 것은 위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4) 관리의 협력
선교사와 그에 관련된 행정적 일 및 영적 관리도 협력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다양한 정책과 선교사 관리의 경험이 있는 선교 기구라면, 그 재료와 원리를 교회와 나눠 활용하고 선교사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선교사가 두 기관에 공히 책임을 지는 것과 다르며, 다만 프로그램을 서로 활용하여 책임을 나눠 갖는 것이다.
5) 협력의 내용
어느 것을 얼마나 협력할 것인지에 따라 협력 형태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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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선교의 시간은 제한적이며 이제는 우리 세대에 세계 복음화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 지금은 교단의 교회나 형식 때문에 다투고 갈등할 시기가 아니며, 세계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도록 속히 선교 사역에 하나님의 모든 지체가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다. 교회는 자기 성역의 단계를 벗어나 아시아와 세계 도처에서 부르며 손짓하는 오늘 날의 마게도냐의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또한 선교기구는 자기 기구의 독존적인 발전만 도모하지 말고 이 선교 과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축적된 경험과 훈련 기술및 전략을 지역교회와 나누어야 한다. 선교 기구도 선교 과업 수행에 중요한 몫을 달성할 수 있으나, 연합된 교회가 선교의 주동력을 잡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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