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종교적 상황의 실상
<이하의 내용은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중국계 단체에서 발표한 글을 토대로 해석과 설명을 첨부하였습니다. 중국의 종교신앙 정책은 물론 가정교회의 실태에 대하여 이해함에 귀한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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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종교자유정책과 대외선전
우선 상기 위원회가 발표한 본문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정부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말하면서, “어떠한 사람도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공민의 신체건강에 손해를 입히거나, 국가교육제도를 방해하는 활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사회질서와 공민의 신체건강 및 교육제도라는 세가지 전제조건을 내 걸었다. 이것은 실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섬기고 따르는데 대한 교회질서와 교회가 가진 치유사역,교육을 사전에 막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종교단체와 종교사무국은 외국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의 뜻은 결국 중국의 모든 교회는 교파가 없으며, 오직 삼자회에 속할 수만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의 행정은 물론 신학적인 부분까지도 공산당이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중국 정부는 일찌기 1997년 10월 종교사무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종교활동 및 종교습관에 의거한 신도들 가정에서의 일체 정상적인 종교활동, 예를 들어 예배,기도,성경읽기,설교,미사,세례…등은 모두 종교조직과 신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으며, 법률적 보호를 받고, 어떠한 사람도 간섭할 수 없다. 기독교 신도들의 종교습관에 따라서 자기 가정에서 친한 이웃들이 참가하는 기도와 성경읽기 등의 종교활동(중국 기독교인들은 습관적으로 이것을 ‘가정집회’라고 부른다.)에게는 등록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중의 이익과 법률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욱 공민들의 종교신앙 자유의 권리를 보호하고, 정상적인 종교활동을 위해서, 중국사법기관은 법에 의거하여 범죄를 처벌하는데, 이것은 종교신앙과는 무관한 것이다. 중국에는 종교신앙으로 인해 처벌 받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본 조사위원회에서는 사실 근거의 원칙 아래 이 보고서를 완성하였다. 이번이 처음이지만 앞으로 매년 발행할 계획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 있는 만여 가정교회의 신도 50여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증거를 취하였다. 그렇지만 중국의 수천만 가정교회 신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조사의 위험성과 작업이 너무나 방대하였기 때문에 더욱 전면적인 정확한 수치를 얻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이 기초를 가직 객관 공정한 태도로 합리적인 판단들을 내렸다.
현재 조사상에 드러나는 50만 신도 중 23,586명이 체포된 경험이 있고, 4,014명이 노동개조를 받았고, 129명이 사망하였으며, 208명이 장애를 입었고, 997명이 감시를 받고 있으며, 1,545명이 지금까지 도주하고 있다. 2만여명이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고, 1만여명이 벌금형을 받았다.(최소는 5角, 최고는 80여만원), 그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고, 집회는 마치 도둑들의 모임같이 드리고 있었다. 왜 이런가? 특별히 ‘항구적 정상무역관계법안’(PNTR) 통과 후 중국의 신도들은 숨쉴 틈도 없이 박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금전과 권력과 부딪히면서 인간의 양심과 정의가 비록 좌절 당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앞날에 반드시 최후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자, 이제 여기에서 PNTR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우린 촛점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중국 정부가 왜 그토록 PNTR 통과를 열망하였고, 이를 위해 미국과 항상 마찰을 일으키는 인권문제 특히 종교문제를 어떻게 선전용으로 사용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PNTR, 즉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법안은 미국과 특정 국가와의 무역 관계를 의회가 매년 심사할 게 아니라 한번 결정되면 이후에는 자동적으로 적용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PNTR이 국제적인 통상 용어는 아니며 여느 국가들처럼 최혜국(MFN) 대우를 받을수 있는 자격을 항구적으로 허용하기 위한 미국 의회의 법률 명칭일 따름입니다.
미국은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지난 1974년 주로 옛 소련권 국가들을 겨냥, 해당국가의 인권, 노동, 환경 상황 등을 검토한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에만 MFN 대우를 허용하는 잭슨-배닉법을 도입하였습니다. 중국은 MFN 대우를 계속 적용받아 왔으므로 경제적 불이익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자기 나라의 인권이나 환경 문제 등을 미국 의회가 매년 따지도록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중국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는 노조와 인권 및 환경 단체 등이 의회의 연례 심사를 존속시키자며 격렬히 반대했고 공화당은 주요 지지 기반인 대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쉽게 할 PNTR 법안을 당연히 지지하고 나선 반면 민주당은 그에 반대하는 묘한 상황이 전개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화당이 집권하는 시점을 기다리며 포석을 깔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가장 미국과 접근이 가능한 종교 곧 기독교에 대한 정책 변화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그들의 이 법안 통과 후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법안은 공화당이 집권한 후 부시 대통령에 의해 통과가 되는데, 2001년 12월 28일자 한국일보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7일 중국에 2002년 1월1일부터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를 부여하는 내용의 포고령에 서명했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스콧 맥클레런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것은 미 중 무역관계를 정상화하고 중국이 규정에 바탕을 둔 세계적인 무역체제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최종 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1월9일 중국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으며 중국은 가입의사를 밝힌 지 15년만인 지난 11일 공식적으로 WTO 회원국이 됐다.
왜 중국 정부가 2002년 이후, 한편의 인권적 문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 특히 기독교와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가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가 선전용으로 만든 종교의 자유는 결국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선전용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때를 기회로 만들어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야만 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들은 인권문제의 대두에는 어찌할 수 없이 그 사슬을 풀어놓습니다. 중국선교, 그래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믿음 안에서 진정 지혜를 가진 자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동행하며 이 사역을 분명 감당하여 중국 땅에 아름다운 복음의 꽃을 피울 줄 믿습니다.
(2) 중국 정부의 종교에 대한 변함없는 시각
중국 정부의 대내 선전은 “종교는 인민을 마취시키는 아편이다.”라 하여 중국을 침략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아편은 바로 영국 제국주의가 중국 인민을 마취시키고 잔해한 제일의 마약이요, 독물이다. 그래서 아편전쟁도 일어난 것이다. ‘아편’이라는 두 글자는 중국인의 마음 속에 특수한 뜻을 품고 있어 민감한 반응을 유발시킨다.
하물며 모택동이 일찌기 서방열강의 종교음모를 파헤쳐 말하길, 중국 인민의 정신을 마취시키기 위해서 제국주의는 전도와 의원,학교 건립과 신문을 발간하고 유학생들을 유혹하였고, 그 목적은 그들이 양성한 지식분자들에게 복종케 하고 광대한 중국인민을 우롱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① “너희들은 절대 제국주의에 당하지 말고, 적의 편에 서지 말라.”
②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쟁취한 이후 중국인은 아편의 어둠에서 도피할 수 있었던 것처럼 종교로부터도 멀리 도망가게 되었다.
얼마있지 않아 주은래는 당의 종교정책을 선포하였다. “우리의 정책은 종교신앙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각지의 기독교와 천주교 가운데 제국주의 간첩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곧 이어 주은래는 연속 4차에 걸쳐 전국기독교회 지도자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강조하기를 “기독교 최대의 문제는 제국주의와의 관계성이다.”
③ 강택민 주석 역시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특별히 “종교에 관한 한 작은 일이 없다”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큰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종교문제에 대해서 반드시 레닌이 말한 특별히 신중하고, 매우 엄격하며, 치밀하게 고려하는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그리고 중공중앙조직부는 공개적으로 통보하여 경고하기를 전체 수천만의 중공당원(공민)은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을 믿고, 종교를 믿지 말며, 종교활동에 참여치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의 성질을 위반하는 것이며, 당의 조직적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 하였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헌법에 규정된 “어떠한 국가기관이나, 사회단체 및 개인도 강제적으로 공민이 종교를 믿게 하거나 믿지 못하게 할 수 없다.”의 기본 공민의 권리를 부정하고 박탈해 버린 것이다.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는 공산혁명이 이루어지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종교는 바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가장 큰 도전세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화정책을 통하여 종교를 적대시하여 대하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신앙의 자유라는 법 테두리 속으로 이끌고 들어 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감당해야 할 중국선교는 두 방면에서 실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쪽(가정교회)에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강하면서 위험성이 반드시 뒤따르며, 또 한쪽(삼자교회 혹은 처소교회)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조금 넘을 수 있으나 '뱀 같은 지혜'가 필수입니다.
전장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적을 섬멸시키기 위해서 아군과 적군이 함께 전투중인 곳에 폭격을 가하는 일, 이 명령은 바로 작전 중 '최후의 명령'이며,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을 때에 시도되는 극한 상황의 명령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삼자교회에 편중하여 선교하는 모습, 이 사역을 통해 분명 삼자교회 내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온전한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나는 것, 의심할 여지 없습니다. 분명 주께서 성령충만한 자들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핍박과 고통, 심지어는 순교까지 감당해야할 가정교회의 그리스도인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과연 중국선교를 우리가 한국인 중 어떤 사람들이 가진 잘못된 습관처럼, '빨리 빨리', '대충 대충', '자존심을 위해서'로 일관해야만 할까요? 현재로써는 작전이 없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린 이 폭격에 앞서 주께 인내와 지혜를 간구하여 중국선교를 위한 온전한 전략을 반드시 수립해야만 합니다.
(3) 과거를 돌아보면서 사실을 알아보자
진상을 알기 위해서 본 위원회는 전국에 분포된 22개성, 207개 대소도시와 수많은 시골마을의 가정교회 신도들에게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명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우선 중국 정부가 언제부터 종교와 신도들들을 핍박하기 시작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행한 짓이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을 볼 때 단지 그 사람의 말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그가 하는 행함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정부나 어떤 조직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찌기 종교신앙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구체적인 표현이며, 인간 심령의 창구이고, 종교의 자유는 바로 인간 영혼 제일의 자유이다. 그렇지만 공산당이 혁명의 음모와 폭력수단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정치적 공포운동은 하나씩 하나씩 전개되기 시작하자 중국의 각종 종교를 가진 신도들은 강제적으로 신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당을 믿을 것인 양자택일의 귀로 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만일 신을 믿기로 했다면 그것은 비판, 정신적 육체적 고통, 철창, 총살형, 노동개조소, 중노동, 가정파탄 및 사망, 부부 생이별 등을 각오해야 하였기에 그때부터 매일 마음을 졸이며 불안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당을 믿기로 결정했다면 그는 매일 매일 위로 올라가는 생활, 더우기 각 종교 지도자가 되는 길이 열리고, 이어서 위원회와 8대 대표까지 승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최소한 도피와 감옥행은 면하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세상에 둘도 없이 오직 하나 뿐인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중국천주교애국회” 등 각종 “애국(당)”의 교회와 협회들이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차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당이 원하는 효과란, 모든 종교의 신도들이 당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 뿐 아니라 기쁨으로 자원해서 당의 도구가 되길 원하였다. 이것을 통해 모든 인민들에게 “적이 항복하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교훈을 인식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진리와 정의를 견지하며 권력에 맞서며 굴복치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이러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니투오성, 왕밍따오 등이다. 기나긴 20년의 감옥 생활 중, 니투오성은 일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을 도저히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안 공산당은 그의 생명을 앗아버렸다. 그러므로 인해 그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밝은 빛을 발하는 증인이 되었다.
왕밍따오는 1942년 일본인들과의 협상에 의해 세워진 “화북기독교연합촉진회”, 즉 “영국과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각종교와 각파가 연합하여 전도사역을 촉진시키는 자립 자양 자전한다”는 宗旨를 가진 소위 “삼자교회” 가입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당은 일본인들이 만든 삼자에 “애국(당)”를 첨부한 것 이외에 기타 사항은 놀랄만큼 똑같이 사용하였다. 왕밍따오는 당연히 가입을 거절하였다. 결과, 공산당은 전국의 기독교 교회에 왕밍따오의 반혁명집단을 고발케 만들었다. 결국 1955년 8월 설교를 마치고 강대상을 내려오던 왕밍따오는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듯 체포되었다.
그리고 삼자교회의 새로운 지도자들 중에는 교회를 삼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연약하므로 넘어진 자들, 원래 양무리 속에 숨은 이리들도 있었는데 이것은 일찌기 중국 공산당의 특별한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당원 신분을 감추고 각 교회 내에서 파가 다른 모습으로 혹은 기회주의적으로 자신들의 면모를 드러내고, 주동적으로 당을 위해서 어떻게 교회를 운영해야되는지를 가르치면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공산정권의 종교계 대언자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교회 내에서도 자신과 뜻이 같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과 신도들을 모함하거나 고소하여 그들이 핍박받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종교계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자살하거나 옥사, 장기 투옥되게 만들어 버렸다. 유명한 상해의 국제예배당은 그 특별한 예이다. 그 교회에는 미국목사(‘삼민주의’의 번역자, 일찌기 ‘가정예배를 이용한 교회의 생존방법’을 제의한 사람) 畢範宇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는데, 제일 부목사,제이 부목사, 제삼 부목사. 그 중에 李목사는 가장 젊었으며, 중학교시절부터 畢목사의 눈에 들어 국내와 해외에서 훈련되어졌다. 그렇지만 1951년 4월 정무원이 “미국 지원의 기독교단체회의 처리”를 소집한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자신의 은사인 畢목사의 음모와 죄를 고발하고 검거되게 만들었다.
이 소식을 라디오를 들은 孫목사는 자기에게 미칠 뒷 일을 염려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이어서 顧목사 역시 체포되어 감옥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나 畢목사는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채 미국으로 강제 출국 당하였다. 4명의 정,부목사 중 유일하게 李목사는 죽지 않고 오히려 국제예배당의 주임목사 및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의 비서장이 되었다. 그 후 문화혁명 때 잠시 충격은 받았으나 다시 일어났으며, 매번 교회를 핍박할 때마다 숨은 특무를 잘 담당하여 중국 4인방의 주요인물이 되어 상해시 외사사무실의 부주임까지 승진하였다가, 4인방 이후 신화사 주홍콩지사 부사장까지 승진한후 명예(?) 퇴임하였다. [중략]
이상을 통해 중국 역사의 한 부분에서 드러난 중국교회의 두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삼자교회의 뒷모습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만들어 나가는 삼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여전히 교회가 부흥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비율은 삼자보다 가정교회 방면에서 더 큰 부흥의 불길이 솟았습니다.
왜 그들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부흥할 수 있었을까요? 삼자와 가정교회, 그들의 관계성은 과연 무엇이길래, 그리고 정부는 어떤 자세를 교회를 바라보았길래 결과는 이토록 상반되게만 계속 발전되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4) 중국의 가정교회 핍박전략이란?
가정교회가 중국에서 부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은 공산당이 한가지씩 더해가는 정치공포운동의 철저한 파산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리고 개방이 깊이 묻혀 있던 씨앗으로 하여금 새로운 싹을 피어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많은 열매들이 맺게 되었으며, 특별히 허난, 안웨이, 허베이, 산동 등지에 하나님께서는 무수한 정예의 용사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은 어떤 반정부 용사들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중국 대지의 용사들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였고, 공산당으로 인하여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지고, 선량한 마음에 파괴된 마음으로 정신이 이미 말라버린 중국 인민들에게 새로운 빛을 다시 보게 만들었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게 만들었습니다.
택한 자들이 환호하며 춤추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공산당에 대한 복종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공산당은 인민들에 대한 앞날의 통제권을 잃게 되었고, 각종 핑계를 만들어 타격을 주기로 결정케 되었습니다.
비록 과거에는 공산당이 어떠한 핑계를 잡든지 인민을 괴롭혀왔지만 오늘에 이르러 개혁 개방이 된 후에는 외국인들 출입이 잦아지면서 어떠한 소식이든 봉쇄하기란 어려워졌습니다. 특별히 연합국의 인권문서와 이러한 일로 관여하길 좋아하는 미국에는 어쩔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 가정교회를 핍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사이비라든가 부녀자 희롱이나 사기 등등의 죄명입니다.(현재 테러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죄명인데 얼마있지 않아 중국에도 이 용어가 도용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삼자애국(당)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교회에 대해서는 사이비 종교로 몰아 붙였습니다. (한국에서 중국 가정교회의 이단문제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실제 가정교회 자체에서나 혹은 해외의 중국인교회들이 가진 판단 기준보다 중국삼자교회가 내리는 판단 기준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모든 남성 교회지도자들은 여신도들을 희롱하는 자들로 여성지도자들은 거짓 지도자로 몰아 붙인 것입니다. 이렇게해야만이 미국인들의 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 미국인들이 종교인에 대한 동정은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여자들을 희롱하고 사기행각을 범하는 죄인들을 옹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테러리스트를 옹호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미국은 아직 10억 이상의 중국 소비시장을 겨두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 부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중국의 눈치를 보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출처ㅣ 중국선교연구원
<이하의 내용은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중국계 단체에서 발표한 글을 토대로 해석과 설명을 첨부하였습니다. 중국의 종교신앙 정책은 물론 가정교회의 실태에 대하여 이해함에 귀한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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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종교자유정책과 대외선전
우선 상기 위원회가 발표한 본문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정부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말하면서, “어떠한 사람도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공민의 신체건강에 손해를 입히거나, 국가교육제도를 방해하는 활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사회질서와 공민의 신체건강 및 교육제도라는 세가지 전제조건을 내 걸었다. 이것은 실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섬기고 따르는데 대한 교회질서와 교회가 가진 치유사역,교육을 사전에 막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종교단체와 종교사무국은 외국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의 뜻은 결국 중국의 모든 교회는 교파가 없으며, 오직 삼자회에 속할 수만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의 행정은 물론 신학적인 부분까지도 공산당이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중국 정부는 일찌기 1997년 10월 종교사무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종교활동 및 종교습관에 의거한 신도들 가정에서의 일체 정상적인 종교활동, 예를 들어 예배,기도,성경읽기,설교,미사,세례…등은 모두 종교조직과 신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으며, 법률적 보호를 받고, 어떠한 사람도 간섭할 수 없다. 기독교 신도들의 종교습관에 따라서 자기 가정에서 친한 이웃들이 참가하는 기도와 성경읽기 등의 종교활동(중국 기독교인들은 습관적으로 이것을 ‘가정집회’라고 부른다.)에게는 등록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중의 이익과 법률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욱 공민들의 종교신앙 자유의 권리를 보호하고, 정상적인 종교활동을 위해서, 중국사법기관은 법에 의거하여 범죄를 처벌하는데, 이것은 종교신앙과는 무관한 것이다. 중국에는 종교신앙으로 인해 처벌 받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본 조사위원회에서는 사실 근거의 원칙 아래 이 보고서를 완성하였다. 이번이 처음이지만 앞으로 매년 발행할 계획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 있는 만여 가정교회의 신도 50여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증거를 취하였다. 그렇지만 중국의 수천만 가정교회 신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조사의 위험성과 작업이 너무나 방대하였기 때문에 더욱 전면적인 정확한 수치를 얻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이 기초를 가직 객관 공정한 태도로 합리적인 판단들을 내렸다.
현재 조사상에 드러나는 50만 신도 중 23,586명이 체포된 경험이 있고, 4,014명이 노동개조를 받았고, 129명이 사망하였으며, 208명이 장애를 입었고, 997명이 감시를 받고 있으며, 1,545명이 지금까지 도주하고 있다. 2만여명이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고, 1만여명이 벌금형을 받았다.(최소는 5角, 최고는 80여만원), 그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고, 집회는 마치 도둑들의 모임같이 드리고 있었다. 왜 이런가? 특별히 ‘항구적 정상무역관계법안’(PNTR) 통과 후 중국의 신도들은 숨쉴 틈도 없이 박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금전과 권력과 부딪히면서 인간의 양심과 정의가 비록 좌절 당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앞날에 반드시 최후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자, 이제 여기에서 PNTR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우린 촛점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중국 정부가 왜 그토록 PNTR 통과를 열망하였고, 이를 위해 미국과 항상 마찰을 일으키는 인권문제 특히 종교문제를 어떻게 선전용으로 사용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PNTR, 즉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법안은 미국과 특정 국가와의 무역 관계를 의회가 매년 심사할 게 아니라 한번 결정되면 이후에는 자동적으로 적용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PNTR이 국제적인 통상 용어는 아니며 여느 국가들처럼 최혜국(MFN) 대우를 받을수 있는 자격을 항구적으로 허용하기 위한 미국 의회의 법률 명칭일 따름입니다.
미국은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지난 1974년 주로 옛 소련권 국가들을 겨냥, 해당국가의 인권, 노동, 환경 상황 등을 검토한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에만 MFN 대우를 허용하는 잭슨-배닉법을 도입하였습니다. 중국은 MFN 대우를 계속 적용받아 왔으므로 경제적 불이익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자기 나라의 인권이나 환경 문제 등을 미국 의회가 매년 따지도록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중국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는 노조와 인권 및 환경 단체 등이 의회의 연례 심사를 존속시키자며 격렬히 반대했고 공화당은 주요 지지 기반인 대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쉽게 할 PNTR 법안을 당연히 지지하고 나선 반면 민주당은 그에 반대하는 묘한 상황이 전개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화당이 집권하는 시점을 기다리며 포석을 깔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가장 미국과 접근이 가능한 종교 곧 기독교에 대한 정책 변화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그들의 이 법안 통과 후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법안은 공화당이 집권한 후 부시 대통령에 의해 통과가 되는데, 2001년 12월 28일자 한국일보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7일 중국에 2002년 1월1일부터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를 부여하는 내용의 포고령에 서명했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스콧 맥클레런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것은 미 중 무역관계를 정상화하고 중국이 규정에 바탕을 둔 세계적인 무역체제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최종 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1월9일 중국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으며 중국은 가입의사를 밝힌 지 15년만인 지난 11일 공식적으로 WTO 회원국이 됐다.
왜 중국 정부가 2002년 이후, 한편의 인권적 문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 특히 기독교와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가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가 선전용으로 만든 종교의 자유는 결국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선전용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때를 기회로 만들어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야만 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들은 인권문제의 대두에는 어찌할 수 없이 그 사슬을 풀어놓습니다. 중국선교, 그래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믿음 안에서 진정 지혜를 가진 자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동행하며 이 사역을 분명 감당하여 중국 땅에 아름다운 복음의 꽃을 피울 줄 믿습니다.
(2) 중국 정부의 종교에 대한 변함없는 시각
중국 정부의 대내 선전은 “종교는 인민을 마취시키는 아편이다.”라 하여 중국을 침략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아편은 바로 영국 제국주의가 중국 인민을 마취시키고 잔해한 제일의 마약이요, 독물이다. 그래서 아편전쟁도 일어난 것이다. ‘아편’이라는 두 글자는 중국인의 마음 속에 특수한 뜻을 품고 있어 민감한 반응을 유발시킨다.
하물며 모택동이 일찌기 서방열강의 종교음모를 파헤쳐 말하길, 중국 인민의 정신을 마취시키기 위해서 제국주의는 전도와 의원,학교 건립과 신문을 발간하고 유학생들을 유혹하였고, 그 목적은 그들이 양성한 지식분자들에게 복종케 하고 광대한 중국인민을 우롱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① “너희들은 절대 제국주의에 당하지 말고, 적의 편에 서지 말라.”
②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쟁취한 이후 중국인은 아편의 어둠에서 도피할 수 있었던 것처럼 종교로부터도 멀리 도망가게 되었다.
얼마있지 않아 주은래는 당의 종교정책을 선포하였다. “우리의 정책은 종교신앙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각지의 기독교와 천주교 가운데 제국주의 간첩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곧 이어 주은래는 연속 4차에 걸쳐 전국기독교회 지도자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강조하기를 “기독교 최대의 문제는 제국주의와의 관계성이다.”
③ 강택민 주석 역시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특별히 “종교에 관한 한 작은 일이 없다”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큰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종교문제에 대해서 반드시 레닌이 말한 특별히 신중하고, 매우 엄격하며, 치밀하게 고려하는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그리고 중공중앙조직부는 공개적으로 통보하여 경고하기를 전체 수천만의 중공당원(공민)은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을 믿고, 종교를 믿지 말며, 종교활동에 참여치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의 성질을 위반하는 것이며, 당의 조직적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 하였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헌법에 규정된 “어떠한 국가기관이나, 사회단체 및 개인도 강제적으로 공민이 종교를 믿게 하거나 믿지 못하게 할 수 없다.”의 기본 공민의 권리를 부정하고 박탈해 버린 것이다.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는 공산혁명이 이루어지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종교는 바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가장 큰 도전세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화정책을 통하여 종교를 적대시하여 대하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신앙의 자유라는 법 테두리 속으로 이끌고 들어 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감당해야 할 중국선교는 두 방면에서 실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쪽(가정교회)에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강하면서 위험성이 반드시 뒤따르며, 또 한쪽(삼자교회 혹은 처소교회)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조금 넘을 수 있으나 '뱀 같은 지혜'가 필수입니다.
전장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적을 섬멸시키기 위해서 아군과 적군이 함께 전투중인 곳에 폭격을 가하는 일, 이 명령은 바로 작전 중 '최후의 명령'이며,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을 때에 시도되는 극한 상황의 명령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삼자교회에 편중하여 선교하는 모습, 이 사역을 통해 분명 삼자교회 내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온전한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나는 것, 의심할 여지 없습니다. 분명 주께서 성령충만한 자들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핍박과 고통, 심지어는 순교까지 감당해야할 가정교회의 그리스도인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과연 중국선교를 우리가 한국인 중 어떤 사람들이 가진 잘못된 습관처럼, '빨리 빨리', '대충 대충', '자존심을 위해서'로 일관해야만 할까요? 현재로써는 작전이 없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린 이 폭격에 앞서 주께 인내와 지혜를 간구하여 중국선교를 위한 온전한 전략을 반드시 수립해야만 합니다.
(3) 과거를 돌아보면서 사실을 알아보자
진상을 알기 위해서 본 위원회는 전국에 분포된 22개성, 207개 대소도시와 수많은 시골마을의 가정교회 신도들에게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명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우선 중국 정부가 언제부터 종교와 신도들들을 핍박하기 시작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행한 짓이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을 볼 때 단지 그 사람의 말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그가 하는 행함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정부나 어떤 조직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찌기 종교신앙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구체적인 표현이며, 인간 심령의 창구이고, 종교의 자유는 바로 인간 영혼 제일의 자유이다. 그렇지만 공산당이 혁명의 음모와 폭력수단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정치적 공포운동은 하나씩 하나씩 전개되기 시작하자 중국의 각종 종교를 가진 신도들은 강제적으로 신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당을 믿을 것인 양자택일의 귀로 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만일 신을 믿기로 했다면 그것은 비판, 정신적 육체적 고통, 철창, 총살형, 노동개조소, 중노동, 가정파탄 및 사망, 부부 생이별 등을 각오해야 하였기에 그때부터 매일 마음을 졸이며 불안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당을 믿기로 결정했다면 그는 매일 매일 위로 올라가는 생활, 더우기 각 종교 지도자가 되는 길이 열리고, 이어서 위원회와 8대 대표까지 승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최소한 도피와 감옥행은 면하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세상에 둘도 없이 오직 하나 뿐인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중국천주교애국회” 등 각종 “애국(당)”의 교회와 협회들이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차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당이 원하는 효과란, 모든 종교의 신도들이 당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 뿐 아니라 기쁨으로 자원해서 당의 도구가 되길 원하였다. 이것을 통해 모든 인민들에게 “적이 항복하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교훈을 인식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진리와 정의를 견지하며 권력에 맞서며 굴복치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이러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니투오성, 왕밍따오 등이다. 기나긴 20년의 감옥 생활 중, 니투오성은 일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을 도저히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안 공산당은 그의 생명을 앗아버렸다. 그러므로 인해 그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밝은 빛을 발하는 증인이 되었다.
왕밍따오는 1942년 일본인들과의 협상에 의해 세워진 “화북기독교연합촉진회”, 즉 “영국과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각종교와 각파가 연합하여 전도사역을 촉진시키는 자립 자양 자전한다”는 宗旨를 가진 소위 “삼자교회” 가입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당은 일본인들이 만든 삼자에 “애국(당)”를 첨부한 것 이외에 기타 사항은 놀랄만큼 똑같이 사용하였다. 왕밍따오는 당연히 가입을 거절하였다. 결과, 공산당은 전국의 기독교 교회에 왕밍따오의 반혁명집단을 고발케 만들었다. 결국 1955년 8월 설교를 마치고 강대상을 내려오던 왕밍따오는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듯 체포되었다.
그리고 삼자교회의 새로운 지도자들 중에는 교회를 삼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연약하므로 넘어진 자들, 원래 양무리 속에 숨은 이리들도 있었는데 이것은 일찌기 중국 공산당의 특별한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당원 신분을 감추고 각 교회 내에서 파가 다른 모습으로 혹은 기회주의적으로 자신들의 면모를 드러내고, 주동적으로 당을 위해서 어떻게 교회를 운영해야되는지를 가르치면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공산정권의 종교계 대언자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교회 내에서도 자신과 뜻이 같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과 신도들을 모함하거나 고소하여 그들이 핍박받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종교계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자살하거나 옥사, 장기 투옥되게 만들어 버렸다. 유명한 상해의 국제예배당은 그 특별한 예이다. 그 교회에는 미국목사(‘삼민주의’의 번역자, 일찌기 ‘가정예배를 이용한 교회의 생존방법’을 제의한 사람) 畢範宇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는데, 제일 부목사,제이 부목사, 제삼 부목사. 그 중에 李목사는 가장 젊었으며, 중학교시절부터 畢목사의 눈에 들어 국내와 해외에서 훈련되어졌다. 그렇지만 1951년 4월 정무원이 “미국 지원의 기독교단체회의 처리”를 소집한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자신의 은사인 畢목사의 음모와 죄를 고발하고 검거되게 만들었다.
이 소식을 라디오를 들은 孫목사는 자기에게 미칠 뒷 일을 염려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이어서 顧목사 역시 체포되어 감옥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나 畢목사는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채 미국으로 강제 출국 당하였다. 4명의 정,부목사 중 유일하게 李목사는 죽지 않고 오히려 국제예배당의 주임목사 및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의 비서장이 되었다. 그 후 문화혁명 때 잠시 충격은 받았으나 다시 일어났으며, 매번 교회를 핍박할 때마다 숨은 특무를 잘 담당하여 중국 4인방의 주요인물이 되어 상해시 외사사무실의 부주임까지 승진하였다가, 4인방 이후 신화사 주홍콩지사 부사장까지 승진한후 명예(?) 퇴임하였다. [중략]
이상을 통해 중국 역사의 한 부분에서 드러난 중국교회의 두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삼자교회의 뒷모습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만들어 나가는 삼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여전히 교회가 부흥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비율은 삼자보다 가정교회 방면에서 더 큰 부흥의 불길이 솟았습니다.
왜 그들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부흥할 수 있었을까요? 삼자와 가정교회, 그들의 관계성은 과연 무엇이길래, 그리고 정부는 어떤 자세를 교회를 바라보았길래 결과는 이토록 상반되게만 계속 발전되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4) 중국의 가정교회 핍박전략이란?
가정교회가 중국에서 부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은 공산당이 한가지씩 더해가는 정치공포운동의 철저한 파산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리고 개방이 깊이 묻혀 있던 씨앗으로 하여금 새로운 싹을 피어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많은 열매들이 맺게 되었으며, 특별히 허난, 안웨이, 허베이, 산동 등지에 하나님께서는 무수한 정예의 용사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은 어떤 반정부 용사들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중국 대지의 용사들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였고, 공산당으로 인하여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지고, 선량한 마음에 파괴된 마음으로 정신이 이미 말라버린 중국 인민들에게 새로운 빛을 다시 보게 만들었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게 만들었습니다.
택한 자들이 환호하며 춤추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공산당에 대한 복종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공산당은 인민들에 대한 앞날의 통제권을 잃게 되었고, 각종 핑계를 만들어 타격을 주기로 결정케 되었습니다.
비록 과거에는 공산당이 어떠한 핑계를 잡든지 인민을 괴롭혀왔지만 오늘에 이르러 개혁 개방이 된 후에는 외국인들 출입이 잦아지면서 어떠한 소식이든 봉쇄하기란 어려워졌습니다. 특별히 연합국의 인권문서와 이러한 일로 관여하길 좋아하는 미국에는 어쩔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 가정교회를 핍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사이비라든가 부녀자 희롱이나 사기 등등의 죄명입니다.(현재 테러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죄명인데 얼마있지 않아 중국에도 이 용어가 도용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삼자애국(당)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교회에 대해서는 사이비 종교로 몰아 붙였습니다. (한국에서 중국 가정교회의 이단문제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실제 가정교회 자체에서나 혹은 해외의 중국인교회들이 가진 판단 기준보다 중국삼자교회가 내리는 판단 기준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모든 남성 교회지도자들은 여신도들을 희롱하는 자들로 여성지도자들은 거짓 지도자로 몰아 붙인 것입니다. 이렇게해야만이 미국인들의 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 미국인들이 종교인에 대한 동정은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여자들을 희롱하고 사기행각을 범하는 죄인들을 옹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테러리스트를 옹호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미국은 아직 10억 이상의 중국 소비시장을 겨두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 부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중국의 눈치를 보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출처ㅣ 중국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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