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은 중국… 민족성은 조선… 조선족 그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조선족,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중국내 조선족은 한반도인의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인적 자산이다. 중국 조선족의 형성은 구한말과 일제시기의 비극적 민족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조선족 사회의 변화 역시 한·중 수교라는 역사적 격변을 바탕에 깔고 있다. 특히 21세기에 접어들어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조선족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그들은 중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한국과 일본,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 같은 조선족의 형성 과정과 현재 위상, 조선족 사회의 변화 양상과 지향점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동북아 시대와 조선족’(이승률 옌볜과학기술대 부총장 지음, 박영사·사진)이 최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책의 요지를 소개한다.
◆ 조선족의 형성 과정
한민족이 중국 동북지역에 이주한 과정은 대략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자유이주 시기’로 1875년부터 1910년까지다. 1875년 청나라 정부는 재정수입을 늘리기 위해 봉금령(封禁令·중국에서 특정의 토지를 대상으로 개간, 경작 또는 출입을 금지하던 일)을 해제하고, 한민족이 두만강을 넘어와 밭을 개간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 결과 1904년 5만여명에 불과하던 옌볜 지역의 한민족 이주자는 1909년 18만4800여명에 이르게 됐다.
이어 일제가 한반도를 병합한 1910년부터 1930년까지를 ‘대량 유입 시기’로 볼 수 있다. 일본 통계에 따르면 1918년까지 동북지역에 이주한 한민족은 4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또다른 통계 역시 1919년 한민족 이주자가 43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1925년 동북지역에 한민족은 53만여명이 있었고, 1930년에는 60만명을 넘어섰다.
1931년 9월 일제는 이른바 ‘만주사변’을 일으켜 동북지구를 강점했다. 일제는 동북지역을 중국대륙을 침략하는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한민족을 동북에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때부터 1945년까지를 ‘일제의 강제이주 시기’로 구분한다. 이에 따라 동북지역의 한민족 이주자는 1937년 93만여명, 1942년 151만여명, 1945년 216만여명으로 늘어났다. 한민족의 동북 이주 역사는 피눈물 나는 이민사였던 것이다.
◆ 조선족 문화의 형성과 특징
조선족은 중국 땅에 적응해 생활하는 동안 필연적으로 주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국혁명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조선족은 중국문화에 상당부분 동화됐다. 그런 와중에도 한반도의 문화전통을 잃지 않고 중국문화와 융합된 조선족 특유의 복합문화를 형성했다.
조선족은 한반도 조상의 전통을 이어받아 무엇보다 교육을 중시했다. 그들은 동북지역에 이주한 후에도 집거지 내에 사립학교를 세워 자녀에게 한민족 문화를 가르쳤다. 특히 한민족의 말과 글을 이어가는 데 중점을 뒀으며, 일제시기엔 반일사상 및 민족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중국 공산화 이후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자리잡게 됐고, 그들의 교육은 중국 소수민족교육의 하나로 규정됐다.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힘입어 조선족 교육은 빠르게 발전했으며, 개혁개방 이전까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위를 차지할 만큼 체계를 갖추게 됐다.
◆ 조선족 사회의 변화
중국이 시장경제체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조선족은 새로운 가치 관념과 여건이 형성되면서 대규모의 인구이동을 겪었다. 또한 조선족은 경제적으론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반면 인구문제, 교육문제, 민족문화보존문제 등 여타 방면에선 큰 어려움을 맞고 있다. 1996년부터 전국적으로 조선족 인구는 급속한 감소를 보이고 있는데 옌볜의 경우 매년 4000여명씩 줄어들고 있다. 출국과 대도시로의 진출에 의한 대량의 인구이동 때문에 조선족 교육이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새로운 사회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조선족 인구의 이동상황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젊은이들이 중국내 대도시와 국외로 대거 진출하고 있다는 것. 또한 출국한 조선족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과 이동의 범위가 크고 이민의 주체가 국가 공무원, 교원, 정리실업자, 농민 등 다양한 성격이 겹쳐 있다는 것이다.
조선족의 대량 출국은 이혼율 증가의 요인이다. 옌볜 조선족의 이혼율은 중국 전국의 평균보다 훨씬 높다. 2000년 당시 옌볜 자치주 총 인구의 38%를 차지했던 조선족 인구 중 이혼 인구는 2만2600여명에 달했는데 이는 자치주 이혼의 46.9%를 차지했다.
◆ 조선족의 정체성과 지향점
한·중 수교 이후 한국과의 교류 초기에 조선족들은 한국인이 된 듯 착각하면서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족들은 한국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이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확인했다. 조선족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한반도의 어느 일방에 귀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중국 국민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문화적으로는 한반도의 어느 일방과 구별되는 자기 특성을 가진 문화집단으로 여기게 됐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정체성은 중국인이라는 국적과 더불어 조선족이라는 민족성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된 것이다.
조선족의 대 한국관도 크게 변했다. 한·중 수교 초기의 직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에서 제도, 사고방식, 가치관 등 다방면에 걸쳐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인식으로 전환했다. 조선족 3세들은 당당한 중국 국민으로 한·중 양국의 상호이해와 공동번영을 바라고 있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 중국내 모범적인 소수민족 사회로 부상
▲ 한·중 관계발전의 중개 역할
▲ 중국 동북아지역협력의 전략적 구역으로 성장 등이다.
출처: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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