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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생인류의 조상, 한겨레의 쇠와 돌 문화

수호천사1 2008. 12. 16. 17:50

현생인류의 조상, 한겨레의 쇠와 돌 문화



참역사동아리 삼태극 cafe.daum.net/mookto 에서는 한반도권 한겨레가 지구의 현생인류의 조상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한겨레의 쇠, 돌문화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아울러 세계 모든 사상과 종교의 뿌리인 무당문화도 첨가한다.


가. 한겨레의 쇠 문화

한겨레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극동아시아권에서 출현하였다. 충남 공주 석장리(70만년전 유물), 경기연천의 전곡리(30만년전 네슐리안 주먹도끼-유럽의 네안데르탈인보다 앞선 존재로 증명됨), 충북 단양 동굴(70만년전 유물). 북한 평양의 검은모루동굴(50만년전 유물), 충북 청원 오송단지 대규모 구석기 유적 등 한반도 권에서 발견되는 유물유적은 현재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 발견되는 것 보다 오래된 것들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들 유적을 건설한 사람들이, 과연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이어져 왔냐는 것이다. 다른 지역은 빙하기를 거치면서 동생물이 모두 멸종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반도권에는 홍적세 빙하기에도 유독 따듯하고 다습한 기후가 계속되어 이들이 이른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모두 이어왔다는 것이 증명된 바 있다.(한국사통론 1995. 변태섭-구석기시대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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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충남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 발굴직후 모습 blog.daum.net/chung79014/986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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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경기 연천 전곡리 아슐리안 석기 blog.daum.net/chung79014/9865354

 

 

그래서, 현생인류의 새로운 도약(이른바 신석기 혁명)이라고 하는 물 벼농사 재배도 한반도에서 약1만5천년 전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충북의 청원 옥산의 소로리 볍씨가 이것을 증명한다. 이것은 그동안 세계최초의 것으로 알려진 중국 호남성과 강서성에서 발견된 볍씨보다 무려 3천년이상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영국BBC인터넷판 보도-2003.19.22. 문화일보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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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충북청원 소로리 볍씨( http://www.sorori.com/ )

 

 


이러한 선진문명을 토대로 한반도권에서는 문명의 또 다른 비약적인 도약의 상징인 쇠(金)관련 금속(청동기, 주철 선철, 아연합금 등 모두 포함)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산해 내기 시작하였고 가장 고도로 발달시켰다. 서양에서는 수메르문명권에서 서기전2천5백년 경에 최초로 쇠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명은 한문명시대의 한국에서 가지 쳐 나간 문명이라는 것은 참역사동아리 삼태극 (cafe.daum.net/mookto ) 대문글과 ‘한겨레참역사’방 등에서 이미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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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사마귀형 청동검에 이어서 잔무늬거울과 함께 출토되는 세형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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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서양 학자들에 의해서 세계최초의 인류문명으로 알려진 이 수메르 문명권에서 만들어졌다는 쇠생산 년대보다 더 앞선 쇠유물이 북한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평안남도 덕천 남양리 유적 16호 집터와 평양시 상원군 용곡리 고분에서 발견된 청동제 유물 즉 사마귀형 동검과 청동단추의 연대측정을 해본 결과 서기전2천6백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전자상자성공명법, 핵분열비적법 등으로 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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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선철로 만들어진 쇠반달칼


한반도권에서는 단군조선 이전부터 지금으로 말하자면 일관제철소(포항제철-포스코)와 같은 청동제 쇠를 만드는 일관제조시설이 만주 통화에서 발견된 바 있는데 여기에서는 청동제 쇠를 생산하였다. 북한의 함경북도 무산읍 <범의구석>유적에서 발견된 선철유물들은 중국보다 3백년 이상 앞서고 있으며, 유럽(유럽은 선철을 서기14세기경에 생산)보다는 약 2천1백년 이상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임경순-포항공대 교수)


또한 쇠를 제련, 합금하는 기술도 세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놋 그릇이나 무당문화에서 무당이 무구(巫具)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유력시되는 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국보로 지정됨)을 예로 들 수 있다.  놋그릇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기술의 결정판인데, 지나족(중국)왕조나 일본에서는 감히 꿈도 못 꾸는 합금기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현재 일본의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는 신라 놋그릇을 보면 그 정교함과 우아함에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우리는 이런 놋그릇을 흔하게 일반에서도 사용하였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왕조차도 이런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자료-놋그릇(좋은하루 다음까페)


또한 한반도권에서 무수히 발견되는 잔무늬거울은 중국 대륙 어느 곳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정교하고 금속의 합금상태가 가장 밀도가 높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시기상으로도 더 오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잔무늬거울의 정교한 제조기술은 오늘날에 학자들이 컴퓨터까지 동원하여 재현하려고 해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잔무늬가 무려 1만3천여개가 넘고 이 가느다란 선을 다시 이용하여 동심원모양을 만들어 놓았는데, 첨단과학기술로도 재현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순수 손기술로 이러한 불가사의한 잔무늬거울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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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국보)


이러한 고도의 지혜와 손기술이 있었기에 역시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 금속활자는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본 서적(직지심경)이 발견됨으로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전에는 소위 서양의 구텐베르그라는 사람이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다고 서양사관학자들이 자기들 중심으로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보면, 한반도권 한겨레는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약70만년전에 한반도권에 출현하여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이어왔고, 한겨레는 세계로 퍼져나가 오늘날 전 세계조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정신문화로는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무당문화다. 무당문화는 세계의 모든 종교, 철학, 기타 문화의 뿌리라는 것도 이미 참역사동아리 삼태극(cafe.daum.net/mookto)의 대문글과 각 방에서 증명한 바 있다.



나. 한겨레의 돌 문화

하늘자손 한겨레는 이와 같은 첨단을 달리는 최고의 쇠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돌문화도 세계최초로 만들고 고도로 발달시켜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가지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1. 돌 문화의 사료적 근거

태백일사/신시본기(神市本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밀기密記>에서 말한다. 옛날에 사람이 죽으면 향리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합쳐서 한군데에 매장하고 표시하여 지석(支石-고인돌-돌맹이-돌멘Dolmen)이라 하더니, 뒤에는 변하여 단을 만들고 지석단(支石壇)이라 불렀다. 또는 제석단(祭夕壇)이라고도 했다.(密記云古者徒死無出鄕合葬一處表爲支石後變爲壇稱支石壇亦祭夕壇)


2. 고인돌 문화

위 기록에서 명백하게 나오는 바와 같이, 고인돌은 학계에서도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위 기록을 보면 고인돌은 무덤이외에 제를 지내는 제단의 기능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인돌은 현재 한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최소한 전 세계고인돌의 5할 이상이 모여있다고 한다. 또한 고인돌의 양식과 축조시기면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가장 오래된 것으로 증명되었다.(참역사동아리 삼태극 ‘고인돌’ 방 공지 참조) 한반도 고인돌은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위와같은 태백일사/신시본기외에 고인돌을 의미하는 지석묘라는 기록이 또 발견되는 데, 그것은 고려시대의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규보는 고려 신종(神宗) 3년(1200) 11월 말에 전라도를 여행하던 준 금마군에 이르러 지석묘를 관찰할 수 있었다.


'다음날 금마군으로 향하려 할 때, 이른바 ‘지석(支石)’을 구경했다. 지석이란 것은 세속에서 전해지기를 옛날 성인(聖人)이 고여 놓은 것이라 하는데 과연 기이했다.'


이규보가 본 고인돌은 전북 지방에서 몇 안되는 탁상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중국은 석붕이란 말을 사용했지만 이규보는 지석(支石)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 이규보 관련글-이종호,과학저술가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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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한반도 고인돌 분포도(고인돌 사랑회 까페)


그런데도 현생인류기원의 단초가 되는 이러한 고인돌을 그 주인인 한국사람들은 홀대를 하며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사문화적 유산은 역사의 실증성을 강조하는 현행 강단사학세력이 앞을 다투어 보존과 보호를 정부에 강력히 촉구해야 함에도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들 세력이 육체는 한국인이나, 정신은 외국인이라는 사실과,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기득권 수호유지에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 하겠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강단사학의 고질적인 사대주의 사관을 보면 고인돌도 우리가 원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고인돌의 형식을 북방형이니 남방형이니 하며 고인돌 외부도래설을 통설로 굳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것은 일제가 만들어낸 조작이라고 한다. 이 북한학자들에 의하면 원래 고인돌은 우리가 원조라고 하면서 발견된 현지 마을 이름을 따서 고인돌 이름을 붙이고 있다. 즉 고인돌 무덤을 침촌형, 오덕형, 묵방형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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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만주 요령성의 개주 석붕산 고인돌,서기전3천5백년전-2천5백년전



3. 피라미드 문화

역시 위 기록을 보면 고인돌이 나중에 지석단 또는 제석단으로 바뀌어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단壇이라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돌이 아니라 여러개 돌을 쌓아서 만든 커다란 구조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것도 역시 무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말로는 적석총 즉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이라는 소리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피라미드인 것이다. 역시 이 피라미드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제단(祭壇)의 기능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 분포지역을 보면 현재 전 세계에 모두 분포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보이는 피라미드는 비록 소규모지만, 경북 지역과 서울 석촌동 지역 그리고 북한의 평양지역이다. 또한 만주의 집안과 내몽골의 적봉 홍산지역, 만주 길림성의 교하지역등이다. 그리고 중국대륙 중심부 서안과 함양 지역에는 수십기의 대규모 피라미드가 벌판에 널려 있다. 여기에는 세계최대의 피라미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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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서울시 석촌동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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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북한 평양의 대박산 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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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만주 집안의 장수태왕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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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만주 집안의 대규모 피라미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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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중국 서안 함양지역의 대규모 피라미드군


또한 피라미드형 신전(제단)은 인도네시아에도 발견되고, 이라크지역에는 수메르신전이라고 하여 초가잠빌등 피라미형 신전이 있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이집트의 대규모피라미드, 및 아프리카의 피라미드, 최근에는 동유럽 발칸지역의 보스니아피라미드도 대대적으로 발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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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인도네시아 피라미드형 신전

 

 

 

 수메르 문명의 상징 지구랏(천제단-무당인 여사제가 주관-이라크 소재)


 

 
             자료-이집트 피라미드 사각뿔모양의 방단형이다.(아인스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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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보스니아 피라미드


 

 

또한 카나리아 군도(스페인 리베리아반도)에서도 대규모의 피라미드가 발견된다.

 

 


          자료- 스페인령 카나리아 군도의 귀말 피라미드 piramidesdeguimar.net

 

 

여기서 잠깐 이 귀말 피라미드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귀마르의 피라미드스페인 카나리아 군도 테네리페 섬 동쪽 해안 귀마르 촌락에 위치해 있다. 이는 아직도 고고학자들에게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해당 표현은 네모형 여섯개의 계단형 피라미드를 지칭하며 멕시코 마야아즈텍인이 건설한 피라미드와 놀랍게도 비슷하다.

 

1991년, 토르 하이에르달은 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중 이들이 그저 생겨난 돌무더기일 수는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피라미드의 모퉁이 돌은 가공의 흔적을 보이며, 지면은 피라미드가 건설되기 전에 평평하게 매만져졌다.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 사용한 돌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용암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이에르달은 피라미드가 특수한 천문학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도 발견했다. 하짓날 가장 큰 피라미드 위에서는 해지는 것을 두 번 볼 수 있는데, 높은 산의 꼭대기 너머로 한 번 진 다음 다시 나타나 그 다음 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피라미드의 서쪽 계단은 동짓날 아침에 돋는 해를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이상 위키백과사전 발췌)

 

위 귀말 피라밋 설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위 하짓날과 동짓날과 관련하여 이에 맞추어 피라밋이 만들어 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태양의 소멸과 성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한국의 전통풍속인 동짓팥죽과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다. 동짓날은 다 들 아시는 바와 같이 사실상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태양의 탄생 기준일이고 새해가 시작되는 지점에 해당한다. 이 때를 맞이하여 한겨레는 동짓팥죽을 쑤어 먹음으로써 묵은것을 정화하고 새롭게 새해를 시작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실제로 팥죽은 사람의 내장을 청소 정화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당사제도 부정을 내 쫓는 방법으로 점을 보러가거나 하면, 팥을 뿌리는 경우를 본다. 또한 우리는 동짓팥죽을 문설주에 뿌려 악귀를 막는 풍습도 있었다. 이것을 흉내낸것이 바로 유대인의 소위 유월절 행사다. 아마 기독교도 이것을 본떠서 무슨 절기를 새는 것으로 안다.

 


한편 미주대륙으로 가보면 우선 북미의 커호키아 유적으로 알려진 인디언 한겨레의 피라미드 유적이 있고, 멕시코에는 태양피라미드, 달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역시 대규모 신전형 피라미드가 있다.




            자료-미국 일리노이주 커호키아 인디언 한겨레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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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멕시코 태양피라미드



이외에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피라미드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 필자가 아는 바는 여기까지다.


그런데, 이러한 피라미드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즉 계단형이고 방단형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집트의 후대 피라미드는 계단형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각뿔모양의 이집트 피라미드의 원조라고 알려진 샤카라 피라미드는 역시 계단형이다. 방단형이라는 것은 사각형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문명권의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밖에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자료-이집트 초기 샤카라 피라미드 http://cafe.daum.net/62jm

 


 위 기록대로 보면 한반도 권에서 피라미드 문명이 발생하였다. 실제로 현재까지 중국 현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알려진 내몽골 적봉 홍산지역의 홍산문화(약8천년전 문명)에서는 직경이 1백미터가 넘는 피라미드형 제단이 발견되었다. 역시 돌을 쌓아 만든 계단형 방단형이다.

 

               자료-홍산문화 피라미드( 홍산문명-약 8천년 전부터 시작한 문명)

 

 


결국, 위 태백일사/신시본기와 실증적 유적을 종합하여 볼 때, 한반도권 한겨레가 이 피라미드 문명의 원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맷돌문화

맷돌은 곡식을 갈아서 보다 문명화된 식 생활을 위한 필수 도구였다.  현재도 우리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맷돌이다. 불과 몇십년전만 하더라도 절구통과 함께 맷돌은 우리 한반도 한겨레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도의 필수품이었다. 물론 현재는 전기맷돌(소위 믹서기)로 대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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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한국의 맷돌(구한말 서양 선교사 촬영추정) 


그런데 이 맷돌도 현재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견되는 곳을 보면 주로 아랍 권에서 발견되는 데 유대인의 히브리족속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유럽의 독일과 영국의 섬나라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미주대륙의 인디언한겨레도 이 맷돌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이 조사해 본 결과 인디언 한겨레가 사용하던 맷돌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인디언 한겨레는 한반도 권에서 약 1만년전 또는 1만5천년 전에 얼어붙은 베링해 알래스카를 건너간 한겨레 후예임이 밝혀졌으니, 결국 한반도에서 최초로 맷돌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자료-유대 이스라엘 히브리인의 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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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아랍여인들이 맷돌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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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독일남부에서 발견된 맷돌(손잡이=어처구니가 없다-서기전 약3천5백년전) 


이상 맷돌관련 자료는 ‘우리역사의비밀’의 솔본님 자료 발췌

(맷돌에 관한 서양인들의 시각-> http://www.ufaqs.com/wiki/en/qu/Quernstone.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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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영국 스콧틀랜드 암 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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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영국 스콧틀랜드 숫 맷돌

           (http://medlibrary.org/medwiki/Dalgarven_Mill )



4. 큰돌(거석)문화

거석문화는 고인돌과 피라미드 기타 모든 큰 돌을 이용한 문화를 모두 포함한다. 여기서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고인돌과 피라미드는 제외하고 나머지 거석문화에 대하여 알아본다. 거석문화의 특징은 태양숭배 등 주로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현재 조사된 바로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전역에 나타나고 있고, 기타 북부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의 칠레의 이스터 섬에서 발견되는 모아이 석상군 등이다. 여기서는 영국의 스톤헨지와 남미칠레의 모아이석상에 대하여 알아본다.


첫째, 영국의 스톤헨지다. 이는 서기전 3천년경에 유럽대륙에서 신석기문화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소위‘솔즈베리야’평야에 정착하면서 서기전2천년경에 유명한 ‘스톤헨지’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영국으로 건너와 정착하여 이 거석문화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에 대하여는 이미 한국방송공사의 ‘몽골리안루트’ 과 ‘네셔널 그래픽체널’ 에서 밝혀진바, 이 주변에서 발견된 사람의 뼈와 치아구조를 분석해 본 결과, 소위 ‘쇼벨’구조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몽골리안(한겨레)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라고 한다.

 

 


                                   자료- 쇼벨구조를 설명하는 사진


둘째, 남미 칠레 옆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들이다. 이 섬 이름을 이스트라고 한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기독교의 절기중의 하나인 부활절에 발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원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은 ‘라파누이 Rapa Nui’ 라고 하는 데,  큰 섬 또는 대륙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모아이 석상은 대략 수백 개라고들 하는데 1천여개나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료-모아이석상이 있는 이스트섬 위치도

http://cafe.daum.net/guardiangod



 모아이상의 특징은 어딘가 응시하고 있는데 대부분 어떤 제단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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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모아이 석상들 어딘가 응시하고 있다.   http://kr.blog.yahoo.com/jinguja2003/361675

 

 

그리고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너무나 많이 닮아 있다고 한다. 그 특징을 밝혀놓은 글을 재  편집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먼저 석상들의 손모양이다. 한손은 가슴 약간 아래쪽, 다른 한손은 아랫배에 놓여 있다.

두 번째는 두상으로 귀의 모양을 보자. 소위 부처귀의 모양이 일치하고 있다.


세 번째는 눈과 코의 연결선이다. 눈썹과 콧날이 연결되고 있는 모양에 주목하자


네 번째는 모자의 형태이다. 凸자 모양이 일치하고 있으며 아울러 한국의 다른 석상들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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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모아이 석상 http://kr.blog.yahoo.com/jinguja2003/361675

 


다섯 번째는 석상 밑의 단의 모습이다. 돌하르방에는 석상과 일체형으로 단의 경계선을 그리고 있고 모아이 석상을 분리된 모습으로 단을 두고 있다. 이 부분이 형태적으로 돌하르방이 모아이 석상 후에 만들어 졌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모아이 석상의 단의 형태를 단순화 시키며 표현 하였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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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제주도 돌하르방(네이버 블로그‘ 옹달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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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제주도 돌하르방(다음 블로그 제주사랑방)


그러면 돌하르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모아이 석상의 의미를 살펴보자. 서양인들은 모아이 석상이 외계인을 상징한다, 신을 상징한다 등 별의별 의미를 갖다 부치고 있지만 돌하르방의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의미는 명확하다. 바로 '조상신', 즉 할아버지의 의미를 갖는다. 환태평양, 특히 호주 원주민의 세계관을 안다면 환태평양 지역에서 조상이 갖는 절대적 의미를 금방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조상과 자아와의 관계를 '꿈의 세계, 시간' 이라는 개념하의 윤회적, 동시적 관계로 이해하며 현실을 이해하는 가치관으로 이해하고 있다.

 

 


    자료-모아이 석상들- 아후 통가리키http://kr.blog.yahoo.com/babijoa71/764

 


 

따라서 모아이 석상 역시 이러한 무당문화적 세계관, 제주도의 돌하르방의 용도에서 생각보다 소박한 상징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참고로 돌하르방은 그 지역의 조상신이자 자손들을 보호하고 복을 내려주는 德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상 출처: 네이버 지식in‘모아이 석상과 돌하르방 )



이 모아이석상을 만든 주인공이 누구냐는 앞서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설 등이 난무하지만, 남미대륙 칠레에서 이 라파누이섬으로 가는, 해류의 흐름을 볼 때, 칠레지역에 정착해 살던 인디오 한겨레가 이 섬으로 건너가 건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본래 이 섬 이름이 ‘대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과거 아득한 옛날에는 칠레와 이곳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다. 결론

이상과 같이 살펴본 결과 한반도 권 한겨레는 정신적으로는 무당문화를 가지고 물질적으로는 쇠와 돌 문화를 가지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현대의 기독교문명이 중심이 된 서양식 물질기계문명처럼 무자비한 자연파괴와 정복문명을 만들지 않았다. 자연과 순응하고 자연과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세상, 그런 문명을 추구하였다. 이것은 우주만물에 혼이 있고 그 혼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너와 나를 구분지어 다투고 분쟁을 일으키기 보다는 크게 하나 되는 대동의 세상, 홍익인간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왜냐하면 이들 유물과 유적에서는 모두 소박한 제천의식과 무당이라는 사제의 무당문화적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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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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