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화

[스크랩] 중국의 고대 무덤문화

수호천사1 2008. 11. 26. 23:53

중국의 고대 무덤문화

 

 고대 중국 무덤문화는 풍부한 생산, 생활용품 및 기이한 보물들을 지하에 수장해 방대한 규모의 지하박물관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무덤제도는 사회풍속, 전통예의, 종교관념을 반영하고 등급, 가족애, 민족애 등 각종 복잡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구석기시대 말기 인류사회에는 이미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풍속이 형성되었다. 베이징 주구점 산정동인의 매장 풍속은 중국 무덤제도의 맹아로 인정받고 있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무덤의 위치, 형식, 방향, 수장품 등 방면에서 점차 일정한 규칙을 형성했다.

 

노예사회 계급분화가 심해지면서 수장품 수량이 증가하고 사람을 산채로 순장하는 것은 예의제도 규범에 속하게 되었다. 서주시기 "鼎 진열" 무덤제도는 "鼎"으로 무덤주인의 신분을 표징하는 것으로서 이때로부터 점차 엄격한 제도가 형성하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시기에 이르러 무덤옆에 식수하는 풍속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중국 고대 무덤형식이 능묘의 형식으로 발전되었음을 표시한다.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한 후 권력의 집중은 무덤을 더욱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내게 했다.

 

한조때 무덤은 여러개 묘실로 이뤄졌으며 면적이 크고 한개 무덤은 수많은 면적을 차지했다. 한조시기 토용의 종류와 표현수법을 볼때 진나라에 비해 훨씬 풍부하고 다양했으며 당시 다채로운 생활방식과 특징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한조때 또한 죽은 사람 육체의 영원함을 추구했으며 오늘날에도 해석할 수 없는 방부술(防腐術, 부식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술)을 창조했는데 그중 마왕퇴와 연운항의 한조 여자시체가 바로 생생한 예다. 중구 고대 유명한 금루옥의도 바로 이러한 이념하에 출현한 것이다.

 

위진시기에 이르러 수장품을 묻는 등 화려한 무덤제도가 점차 사라지고 묘지, 비석, 제사 등 기념성 표식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당조때 왕릉 건축제도는 두가지가 존재했는데 하나는 위진시기의 무덤제도를 계승, 발전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원위의 봉토식 무덤이다.

 

명청시기에 이르러 중국 무덤제도는 또 한차례의 고봉을 이루었으며 명13릉과 청조시기 청동릉, 서릉의 규모가 그 생생한 예가 된다.

 

일부 사람들은 중국 고대 무덤은 중국 고대 사회생활 및 문화가 인류역사의 강에 비춘 그림자라고 하며 지하 문물창고, 지하박물관이라고도 부른다. 왜냐하면 고대 무덤으로부터 고고학자들은 당시 사회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예술 등 방면의 중대한 문제들을 연구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수장된 문물에서 고대역사를 정확히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MyLoveChina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