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고국방문 소회(所懷)
예전에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불러 흠모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유학(儒學)의 본고장이면서 종주국인 중국보다, 전통적인
미풍양속(美風良俗)의
예의범절(禮儀凡節)이
예(禮)로서 잘 보존된 나라다. 이것은 은근(慇懃)한
우리나라의 국가적, 민족적인 긍지와 자부심이었다. 게다가 교회의 2천년 역사 속에 가장
짧은 기간동안에 일궈낸 놀라운 부흥과 성장으로 인한 신앙적인 긍지와 자부심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여
대한민국 백성됨을 더욱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다.
지난
달(2008년10월) 14일 오후에 귀국하여 10여일 동안 머물다가 25일 오전에 대륙으로
돌아 왔다. 지난 해 9월 중순 이래로 오랜만의
짧은 고국방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고국방문은 짧음으로 인한 아쉬움 보다는 웬지 실망스러운
방문이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백성됨에 대한 모든 긍지와 자부심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은 방문이었다. 더 이상은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자괴감(自愧感)에
깊이 빠져들 게 한 실망스러운 방문이었다.
현대를 '지구촌 글로벌 시대'라고 한다. '지구촌(地球村)'이라 함은 "지구 전체를 한 마을'로
여기는데서 생겨난 말이요,
'글로벌(global)'이라
함은 '세계적인 활동 또는 개념에 관계되는 용어'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지구촌의 여러 나라들이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까운 이웃 나라로 여길만큼
나라와 나라사이가 가까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다소 성급한 인류학자는 "21세기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할 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세계의 보편성과 평등성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국적(國籍)'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또한 자기가 원하면 지구촌의 어느 나라에서든지 살 수 있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적인 현상은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서 접했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마다 약 5천명
가량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태평양 가운데 있는 제5의 대륙 오스트레일리아(호주)
국적을 취득한다'는 언론의 보도였다. 그 이상의 더 많은 사람들은 아메리카합중국,
즉 미국의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국적을 포기한다는 보도다.
어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국적을 포기하는 일만
일어나고 있는가? 아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백성이 되는 경향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일을 '귀화'라고 한다.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국제결혼으로 비롯된다. 그렇지만 반드시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좋아서 스스로 대한민국 백성이 되고 싶어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백성이 되면서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불렸던 이름을 우리
말 발음 그대로 불러 다소 어색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더 적극성을
띠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함과 동시에 아예 우리나라 식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나라 성씨(姓氏)의 새로운 창성본(創姓本)이
이루어지게 되는 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출신의 로버트 할리라는 사람이다.
로버트 할리는 미국출신의 국제변호사다. 그가 대한민국이
좋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사람이 된 뒤, 하일(河一)이라는 우리나라 식의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다. 그리고 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살기 시작했던 부산의
영도를 본(本)으로 삼아 '영도 하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그는 한국 출신 아내를
맞이하여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결국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숫자의 성씨 일가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이 자신가 태어난 나라의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여 그 나라 백성으로 귀화한다고 하여 민족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 하일씨의 경우를 우리는 '미국계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는 국적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민족까지 바꿔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민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혼혈을 출산할 수는 있지만, 그 가운데도 변하지
않는 것은 '민족 고유의
DNA'라는 사실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나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기에
앞서 배달겨레 한민족의 후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우리나라
반 만년의 유구한 역사가 지나는동안 수없이 바뀌었다. 우리나라가 어떤 때는 몇 개의 나라로 분열되었던
적이 있었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통일된
하나의 나라가 되었던 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이름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꼭 60년째일 뿐이다.
이런 말을 구구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그동안 가졌던 긍지와 자부심은 실상 대한민국 백성이라는 국가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 배달민족 한겨레라는 민족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 백성이라는 국가적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자랑스럽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민족적인 이해라는
점을 밝히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모국방문에서
민족적인 긍지와 자부심이 크게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큰 손상이기도
했다. 그것은 어떤 큰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미풍양속의 예의범절을
예로서 지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왔던 긍지와 자부심이 크게 흔들리면서 여지없이
손상을 입고 만 것이다.
오랜만의 이번 귀국에서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의 예의범절이
무너지고
있는 현장을 직접 듣고, 보고, 경험하게 되면서였다. 예로부터 배달민족 한겨레의
자랑으로 여겼던 윗사람을
예로서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예로서 사랑하는 상경하애(上敬下愛)의 정신이 사라진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였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품앗이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목격하면서였다.
참으로 못 들을 말을 듣고, 못 볼 것을 본 느낌이었다. 도저히 경험해서는
안될 사실을 경험하게 된 느낌이기도 했다. 그것이 못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것이 그동안의 배달겨레
한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은 크게 흔들리게 되었고, 크게 손상을
입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고국방문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마음은 안타까움과 속상함으로 가득했다.
고국에서의 며칠동안 참으로 많은 곳을 방문했다. 그 때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그들은 주로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문제와 정치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현 대통령의
이름이 집중 거론되었다. 그들에게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라를
어지럽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나라를 무기력하게 만든 원흉들일 뿐이었다. 누구
하나 그들에 대하여
호의적이거나 예를 갖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대통령은
누구인가? 민의(民意)에 의해 선출된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아닌가? 민의는 5년간 우리나라의 모든 권한을
그에게 위임했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고의 지도자가 분명하다. 그런 대통령을 백성은 마땅한
도리로 존경하며 따라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나라의 안녕과 평화, 질서가 바로 설 수 있다.
민의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그 민의에 의해 무시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계도 우리나라 대통령을 무시할 것이 뻔하다. 대통령을 무시하는 나라를
세계가 존중할 리도 없다. 자기들이 선출한 대통령을 무시하는 나라를 누가 존중히
여기랴! 결국 우리나라의 국권은 국제사회에서 경시되어 우리나라의 위상은 형편없이
추락할 것이며, 그런 상황에 나라의 안녕과 평화, 질서가 바로 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렇다. 대통령에 대한
마땅한 예로서 존경하며 따르는 것은 국민된 마땅한 도리요 의무다. 옛날 봉건전제주의 시대에
백성들이 왕을 대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자는 것은 아니다. 봉건전제주의 시대의 왕은 전권을 휘두르는
불가침의 존재였다면, 오늘날의 대통령은 얼마든지 국민에 의해 탄핵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그가 보거나 들을 수 없다고 하여 마구잡이로 폄하하여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일은
결코 옳다고 할 수 없다.
이번 고국방문을 통해 내 귀에 들려지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투는
마치 원수를 욕하듯 했다. 현재의 난국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전가할 뿐, 아무도 그 책임을 나누어 지려는 이들이 없었다. 대통령의 무능력과 리더십 부재를 비난하며, 그의 존재 자체를 극란하게
폄하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떻게든 모두가 하나되어 국난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의지란 찾아 볼 수 없었다. 국론은 분열되었고 서로 책임을 떠 넘기려는 공방만 있었다.
이런 모습에 비애를 느꼈다. 어찌 국난의 모든 책임을 대통령만
져야 한단 말인가? 백성된 우리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단 말인가? 물론 대통령의 실정이
있을 수 있다. 일부 가진자들의 비겁한 작태가 나라를 더욱 힘겹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누구 하나 자기의 책임을 인정하고 국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실망스러워 배달겨레 한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또 다른 사실이 내 마음을
실망시켰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청년들의 예(禮)에 대한 무관심과
무례한 태도를 목격하면서였다. 어쩌면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청년들의
예에 대한 무관심과 무례함이 파렴치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고국을 떠난지 불과 4년 반에
경험한 고국의 청년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예에 대한 무관심과 무례한 태도로 인해
또 다른 비애를 느낀 것이다.
지난
1년동안 나는 보행장애로 무척 고생했다.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귀국하지 않으면 안될
일로 급히 귀국했다. 여기저기 가야 할 곳이 많았다. 그 때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특히 전철을 이용해야 할 때는 너무 힘들었다. 대륙에서는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불편함이 비교적
적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왜 그리도 오르고 내려야 하는 계단들이 많은지... 다리가 불편한
내게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상황에서 시내버스나
전철을 타면 아무 곳이나 털퍽 앉고 싶다. 그러나 맨 바닥에 앉는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마음대로 앉기는 어렵다. 자연히 본능적으로 빈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빈자리가 없다. 누군가 '자리를 양보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내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없다. 힘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지탱하고 서 있을 뿐이다.
대륙에서라면 누군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었을 것이다.
시내버스에서는 승무원이 자리에 앉은 청년에게 자리를 양보받아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미안한 마음에 "没事儿!(괜찬다!)"이라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자리에 앉게 한다.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대륙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 들여지는 듯 하다. 아무리 복잡해도 그들의 눈에 노약자로 비쳐지면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매우 자연스럽다.
기분이 공연히 화가
나고 속상했다. 여러 해동안 대륙에서 살며 자리를 양보 받는 일에 익숙해진 까닭일까?
그래서 고국에서도 동일한 대접(?)을 기대했는데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꼭히 그런 것이 아니다. 고국에서 만난 청년들에게서 노약자를 예로서
대하는 따뜻함을 만나지 못한 것에 화가 나고 속상한 것이다. 모두가 무관심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듯한 청년들의 태도가 불쾌하게 여겨졌다.
이번
귀국 길에 이런 일이 있었다. 경기도 평택 송정리에 있는 어떤 분을 만나고 서울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몸이 몹시 지치고 피곤하여 어딘가에 앉고 싶었지만 빈 자리가 없었다. 전철 안에는 천안에서부터 자리를 잡고
온듯이 청년들로 가득했다. 그들을 저마다 시끄럽게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성친구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무어라 열심히 속삭이는 청년들도
있었다. 어떤 청년은 잠들었고, 또 어떤 청년은 손 바닥 안의 작은 액정화면에 정신이
팔려 주변의 일에는 무관심했다.
어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내가 지팡이에 의지하여 서 있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몸을 틀어 약간의 틈을
만들어 그곳에 앉으라고 권했다. 몸이 지치고 피곤하여 그곳이라도 앉고 싶었지만
사양했다. 노인은 자꾸만 앉으란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청년들이 보고 있었으나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노인과의 이상한 실강이를 무관심하게 지켜 볼 뿐이었다.
결국은 내가 미안하여 그 자리를 슬그머니 피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어떤 벗에게
들려주며,
'요즘 청년들의 태도가 무례하더라'고 했다. 벗은 '요즘 청년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느냐?'는 투였다. '어떤 노인이 전철에서
젊은 청년에게 강제로(?) 자리를 양보 받았다가, 노인에게 앙심을 품은 청년이 차에서
내리는 노인의 뒤를 따라 내려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는 노인을 뒤에서 고의적으로
밀어 계단 아래로 노인이 추락사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벗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라 했다. 충격을
받았다. 왜 이 지경이 되었나? 언제부터 우리나라 청년들이 이렇게 변한 것일까?
동방예의지국이라던 옛 명성은 어디로 갔더란 말인가? 정녕 오늘의 우리나라 청년들의
도덕성은 이와 같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더란 말인가? 벗은 '청년이라고 하여 함부로
자리양보를 요구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번 13개월
만의 고국방문은 웬지 낯설고 자꾸만 어색하게 여겨졌다. 환경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가 그렇게 느껴졌다. 웬지 나를 낳고, 키워주었고, 50여년을 넘게 살았던 '나의 조국'이
아니라,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불과 1년 전의 정취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따뜻하게 느껴졌던 조국이 싸늘하게 냉각된 느낌이었다. 아무도 반기는
이 없어 자꾸만 홀로 외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당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탓일까?
현재의 우리나라는 IMF 시절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경제적인 파산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까? 저마다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들기에,
이웃 사람이나, 자기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가능하면 아는 이들도 애써 무관심으로 외면하는 것일까?
참으로 옛날부터 내려오던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이란 구시대의 유물로
낡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되기라도 했더란 말인가? 인륜의 도덕은 더 이상 아무 쓸데 없는
쓰레기라도 되고 만 것일까?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배려하기 보다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자기 편리주의에 집중된
외곬의 자기편집과 오만 방자함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기라도 한 것일까?
비록
부르심의 소명을 거부할 수 없어 대륙에서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 백성임을 자랑으로
여기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특별히 배달민족 한겨레의 후예인 것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고국방문은 그런 긍지와
자부심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나라의 지도자를 폄하하여 마땅히 지켜야 할 백성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모습과 젊은이들의 지나친 무관심과 무례함을 목격하며 마음이
한 없이 암울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1세기에 감당해야
할 큰 사명이 있는 나라다. 그것은 우리나라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큰 뜻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두렵게 한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나라의 백성들이 서로 하나되어 똘똘 뭉쳐야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사분오열되어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난 그것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나님은 우리나라가
감당해야 할 사명의
촛대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사명을 잃은 나라.
사명을 잃은 백성이 되어 깊은 혼란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담하고, 지구촌에 부끄러운 나라가 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이 작금의 모습 속에서
오버랩되어 마음이 자꾸만 속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하나되는 두레의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을 가진 나라였다. 하늘에 순종할 줄 알며, 위로 어른을 존경하고 따르는 나라,
노약자를 예로서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나라, 서로를 평등하게 받아들이며 존중하는
그런 나라였다. 이런 일들을 미덕으로 여기는 자랑스러운 나라였다. 그런데 작금의
모습은 옛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자칫하면 우리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귀한 사명을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마음에 큰 비애를 느끼게 했다. 이제라도 이기적인 자기본위의 생각을 내려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타적이 되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하나되기 위한 옛 두레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일의 시급함이 마음을 답답하게 했고
자꾸만 조급해졌다.
하루라도 빨리 정신차려야 한다. 스스로를 격리시켜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과 무례함을 일삼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민족을 향한 사명의 촛대가 옮겨지지 않도록 각성해야 한다. 사명의
촛대가 옮겨진 민족의 미래는 암담하게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아직은 우리
배달겨레 한민족을 향한 사명의 촛대가 옮겨지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만큼 아직도
우리 민족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 있어 저력 있는 민족임을 깨달아야 한다.
바라기는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개인적인 욕심을 내려 놓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옛부터 우리나라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의
예의범절을 예로서 존중하여 지켜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며 존경과 존중으로
한데 어우러지는 그런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이제는 무례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무례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사 지구촌 최고의 나라, 최고의 민족으로 발전하게 하실
것이라 믿는다.
아! 난 그 날이 하루 속히 임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 소망 가운데 13개월 만의
고국방문에서 얻은 상처쯤은 가볍게 회복되고 싶다. 대한민국 백성됨의 긍지와
자부심이 더 이상은 손상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진심으로 나라의 미래를 바라보는 기쁨으로 충만하고
싶다. 배달겨레 한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영원토록 이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진다.
2008. 11. 3 (월)
글/
불꽃 石一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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