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음식법은 페지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 1:29)고 하셨다.
또한 인간이 죄의 저주로 에덴동산을 떠나 토지를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을 때 사람은 "밭의 채소"(창 3:18)를 먹도록 역시 허락 받았다.
그러나 노아 홍수 이후 사람에게 고기가 허용되었다 (창9:3참조) 그것은 홍수로 인해 지면에 식물이 없음으로 차선책으로 주신 음식이다.
구약의 법은 새로운 약속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막7: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막7:15-16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사도바울의 글을 보면은
롬14:2-3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롬14:14-15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행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행21:1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행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음식법이 어렵다. 율법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 옷입는 것, 성 규례들, 죽은 시체문제들 등이 나오는데, 그 중에 가장 우리가 좀 헷갈려 하는 부분이 사실 음식법이다.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음식법을 도데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오늘의 논점이다. 레위기 11장에 이 음식법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리고 신명기 14장에서도 나타난다. 음식법을 할 때에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나눈다. 왜 하나님께서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나누셨을까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5가지만 살펴보고자 한다.
[1] 위생학적 접근 - 하나님께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이것을 금지하셨다고 주장한다. 부정한 음식은 우리의 건강에는 나쁘니까 먹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에 우리의 건강에 좋은 정한 음식은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의견을 많이 주장한다. 안식교인들이 이 주장을 잘 펼치고 있다. 가급적이면 체소를 먹어라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고 한다.
- 반론
(1) 왜 그러면 노아의 홍수때에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 모든 육식을 허락하셨다. 이 음식법 이전에는 이 부정한 음식이 허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금지는 모세시대 때이다. 건강이 문제였다면 왜 갑자기 모세시대 때에 먹지 말라고 하시는가? 언제부터 먹지 말라고 하셔야 하는가? 정말 하나님께서 정말 건강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육식을 허락하실 때 말씀해주셔야 했다. 그리고 만약의 그렇다면 모세 시대 사람들은 건강하고 모세 이전의 시대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노아시대 때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 피체 먹지 말라는 것이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먹기는 먹는데 살아있는 생명체를 먹으면 엄청난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생물의 고통을 경감시켜주어야 한다.
(2) 건강에 좋지 않은 원인을 밝혀내고 그 문제되는 요소를 제거할 시에는 먹어도 되는가?
돼지고기에 살레몰라 균이 많다고 못 먹게 했다면 여기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면 이 균의 문제를 처리하면 먹어도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율법은 무조건 먹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문어나 게가 더러운 뻘에 산다한다면 그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서 끓이면 그러면 먹어도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위생학적 주장은 위생학적으로 문제되는 부분들이 처리가 되면 먹어도 된다는 논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율법은 처리가 되어도 무조건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이 돼지고기를 먹어주지 않으면 6개월 내에 죽게 된다고 한다.
(3) 그렇게 위생을 따지면 사실 이 세상에 정말 위생적으로 깨끗하고 완전한 식품이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도 그렇게 위생을 따지면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위생적으로 완전히 처리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닭이나 소도 다 더러운 것을 먹고 더러운 곳을 다닌다. 구약적 관점의 반론만으로도 충분히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 신 14:21 - 정한 음식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음식법이 건강을 위해 주셨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을 우거하는 객은 먹어도 되고 팔아도 되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5) 신약으로 넘어오면 이것이 더 분명해진다. 이 부분은 조금 있다가 다뤄보도록 하자.
[2] 제의적 접근 - 그 때 당시 이방인들이 제사를 드릴 때 부정한 음식들을 제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먹으면 안된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실례로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하면 이방인들이 제사를 드렸던 장소에 돼지뼈가 많이 발견되었다. 돼지를 제물로 사용했던 많은 흔적들이 나타난다.
- 반론
그러나 소나 양도 제물로 많이 바쳤기 때문에 이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3] 명령적 접근 - 유대인들의 해석방법이다. 이것은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듯이 하나님의 마음이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유를 묻지 말고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 음식법에 어떤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단지 순종을 위한 척도로서 주신 것이다라고 보는 것이다.
- 반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음식법이 어디에서 주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모세오경이라는 율법서 안에 이 명령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의 언약공동체로서 언약을 체결하실 때 주어진, 그 율법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그냥 지켜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율법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하나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주어졌다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백성으로 이방인들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분명한 지침을 제시해주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바로 이 음식법은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4] 알레고리 해석 - 알레고리 해석은 성경을 읽을 때 두 가지 의미를 주목하는 해석법이다. 즉, 문자적인 의미와 그 배후에 있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알레고리적인 해석은 문자적인 의미보다 영적인 의미가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왜 ‘되새김질’하는 것을 먹으라고 하셨는가? 이 되새김질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세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씹고 또 씹고 하는 것은 율법을 계속해서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물고기 지느러미가 솟아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야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하면 만일 옆으로 지느러미가 있는 경우에는 어려워진다. 옆으로 지느러미가 있는 경우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볼 것인가? 또 왜 돼지가 부정한 것이냐라고 했을 때... 돼지라는 것은 더럽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결, 순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돼지는 더러운 곳에 살기 때문에 부정한 음식으로 구별된 것이다. 그러면 굽이 갈라지는 것은? 날면서 기어다니는 새종류는? 매 종류, 날개 있는 곤충은 왜 안되는가? 반면에 날개 없는 팟종이 곤충은 먹어도 된다고 하셨는가? 그러니까 알레고리로 해석하게 되면 어려운 점은 모든 곳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점이 많다. 그리고 그 해석들이 사람마다 어떤가? 다 틀리다.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의미가 통일이 안된다. 눈에 걸면 눈, 귀에 걸면 귀가 되는 격이다. 알레고리 해석이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5] 사회 인류학적 접근 - 더글라스라는 사람이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신학자들이 가장 많이 따르는 입장이다.
제사장
제물
이스라엘
정한음식
이방인
부정한 음식
제물이 식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고, 정한 음식은 부정한 음식에 비해서 거룩한 것이고 부정한 음식 순으로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구별된다. 이 세 가지 구분이 바로 사회학적인 구분을 가져다준다고 보는 입장이다. 제물은 제사장으로서 가장 거룩한 계층을, 정한 음식은 거룩한 이스라엘 사회집단을, 부정한 음식은 하나님 앞에 부정한 이방인들을 나타내준다고 해석한다. 이것이 가장 나름대로 괜찮은 입장이지만 여기에 조금 더 추가하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6] 신학적 접근 - 사회 인류학적 구분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관점도 제시해준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세 가지 음식법이 사회층을 나누어주기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구별시켜주는 중요한 신학적 표지가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냐 이방인이냐를 구별시켜주는 것은 율법인데, 그 율법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음식법이고, 그래서 이 음식법이 이스라엘이냐 이방인이냐를 구별시켜준다는 것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할례이다. 이방인이냐 이스라엘이냐를 구별시켜주는 것이다. 신약에 가면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제자들과 가장 논쟁거리였던 것은 바로 할례와 음식법, 그리고 제사법이었다. 할례와 음식법, 이것은 그것으로 하여금 그 사람이 이스라엘이냐 이방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구별시켜주는 표지이다. 할례는 옷을 벗어봐야 알기 때문에 잘 구분이 안되지만, 밥먹을 때 보면 분명히 구별된다. 음식 먹을 때 음식을 가려먹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인 인 것임이 분명해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구별을 위해서 되새김질 같은 조건들로 나누신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한 음식이든 부정한 음식이든 다 근본적으로는 선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보실 때 좋았고 다 선한 것이다. 그 기준을 가지고 그 동물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 하필이면 되새김질을 이야기하고 발굽을 이야기하고 왜 그런 기준을 두시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고넬료 환상에 가면 예수님께서 부정한 음식이 보자기에 내려올 때 그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위생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을 먹으라는 말은 먹고 빨리 죽으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바로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나누는 기준이 음식법이고, 그러한 기준점에 의하면 구약시대에서 부정하게 여겨지는 바로 그 이방인들은 다 부정한 자들인데, 이제 예수님께서 오셔가지고서는 이것이 아니고 무엇에 의해서 나누어지느냐하면 바로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이스라엘이냐 아니면 비이스라엘이냐가 나눠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약시대때에 부정하게 여겨졌던 이방인조차도 예수님을 믿으면 정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학적 접근이다. 왜 부정한 것이 정한 것이 될 수 있는가?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의 음식법에 의해서 부정과 정함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음식가지고 정하다 부정하다 이야기하면 안 된다. 음식법 가지고 위생학적 접근해서 건강을 거론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으면 해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다 먹어도 좋다고 이야기 했다.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했다. 심지어 바울은 고린도 시장에서 이방신 제사에 바쳐졌던 그 고기들도 먹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누가 제물에 바친 음식이라고 이야기하면 옆의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먹지 말라고 하고 있다. 만약 그 형제가 실족하게 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형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더 우월한 원리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분명히 바울은 제사에 바쳐진 음식에 바쳐진 고기고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먹는 문제를 위생학적, 알레고리, 제의적 관점으로 가져가는 것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질문) 토끼가 성경에서는 되새김질한다고 나와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되새김질하는 동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토끼를 되새김질 한다고 나와 있다고 해서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볼 필요는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되새김질하는 것과 생물학적에서 말하는 되새김질하는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주)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 이전과 이후에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이 구분되고 있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창 7:2)
7:8, 8: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기에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가장 적절한 견해는 부정이라는 것을 종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순종이냐 잡종이냐? 짝이 정말 같은 류의 짝이냐, 아니면 약간 섞여 있는 짝이냐 의 구분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율법의 음식법에 나타나는 구별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을때 성민으로 택하시면서 이방인과 구별된 생활을 원하셨기에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셨다. 음식법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주) 그러면 왜 사도행전에서는 공회에서 목 메단 것을 먹지 말라고 했을까?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회 다니지 않는 이방인들의 음식 문화 속에서 그들이 본받지 말아야 될 것들을 하지말자고
협의한 것이다. 사람 목 메달아 죽이고 하니까... 율법적으로 협의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공회에서 그렇게 협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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