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이단의 특징

수호천사1 2008. 5. 5. 16:59
제83회 총회 보고서 pp. 466 ~ 476

1. 서론

정통과 이단의 시비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그리스도의 사역 당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되게 해석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자칭 예수(바예수)라고 부르짖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거짓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도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다양화된 이단들이 등장하였다. 예를 들면 시몬 마구스, 나사렛파, 니골라당 등을 들 수 있다. 초대 교회는 6세기 동안 이단들의 공격과 영향 속에서 그들의 잘못을 대항하면서 정통기독교의 형성을 이루어 왔다. 대표적인 이단들로서 말시온, 영지주의, 몬타누스 그리고 마니교 등의 위협을 들 수 있다. 중세기의 엄한 교회법에도 불구하고 이단들은 지속적으로 존재했으며 이들은 카타리, 폴리 시안 그리고 알비겐파 등이다. 16세기와 근대교회에서도 이단들은 지속적으로 교회에 도전해 왔다. 재세례파의 극단론과 영성적인 성령파들의 급진론은 곧 통 교리를 떠난 이단성이 있던 무리들이었다. 근대에 와서는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몰몬교 등이 교단을 형성하면서 기존교회의 교리와 종교의식을 파괴하는데 이르렀다.
이는 서양교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에 일찍부터 이단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운동은 종교적인 집단을 형성하면서 정통기독교의 교훈을 위협하였다.

문제는 근래에 와서 새로운 변화성이 가장 많은 미래를 두고 새로운 이단사상과 활동이 활개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전혀 제재할 수 없는 정황에서 교회는 속수무책으로 이단들의 노출된 횡포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건전한 교회, 건전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한국교회의 정통성을 세울 수 없는 시점에 우리는 이단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우리가 이단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룰 것이며 동시에 이단들의 유형 즉 동서 이단들의 차이점 등을 다룰 것이다. 그래서 이단을 바르게 구별하고 건전하고 바른 신앙,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신앙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II. 이단의 정의

1. 이단(Heresy)은 희랍어 하이레시스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그 원초적인 의미는 선택(choice)이나 견해(opinion)이란 뜻이다. “특이하면서도 동일한 견해를 가진 동아리” 이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2. 영어에서 사용되는 이단에 대한 말들은 heresy, sect, schism, cult 들이 있다. 그런 데 이중에서 이단을 지칭하는 단어로는 heresy가 가장 적합하다. 현대에 와서는 이단의 성격이 복합적으로 변하면서 숭배자적인 이단(cultic-heresy)나 다색적인 사이비이단(hetero-heresy)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3. 이단(하이레시스)이란 단어가 사용된 역사적인 사례를 보면 히랍의 철학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희랍 철학에서는 특정한 가르침에 집착하여 형성된 그룹들을 학파로 규정지었고, 이때 이들을 하이레시스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등이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의 종파들을 지칭할 때 하이레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유대 역사가인 요셉푸스는 유대인들의 종파들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엣센파들을 지칭할 때 용어를 사용하였다. 즉 학계에서나 종교계에서 어떤 특정한 원리나 종교적인 견해를 지닌 무리를 규명할 때 이 용어를 사용했음에는 틀림없다.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경우를 보면 처음에는 중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단순히 무리나 종파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였던 것이다(행 537; 15:5 동). 고린도전서 11:19 절에서는 교회내부의 분파나 분열을 조장하는 편당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였다. 그는 갈라디아서 5:20절에 부정한 죄를 지은 자들을 언급할 때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디도서 3:10절에서는 스스로 선택하여 신앙과 실생활의 다양한 형태를 취한 자들을 이단적인 사람들로 규명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하이레시스는 중성적인 원래의 의미를 가진 용어였지만 대부분 분파주의에 대한 비난의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은 교부시대에도 전승되어 안디옥의 감독인 익나티우스는 하이레시스를 사용하여 이단들의 특징을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거짓 이야기꾼들이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속이는 자들이다. 매우 설득력 있는 말로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이야기한다.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그를 거절하는 식으로 그리고 율법에 대해 말하면서도 율법을 거슬리는 말을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중상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passion)을 부인하고 그의 부활을 믿지 아니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지지 않은 존재로 소개하고, 그리스도가 잉태되지 아니했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존재함을 인정치 아니한다.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아들을 단순한 인간이며, 성부, 성자, 성령을 동일한 품격으로 본다. 그들은 창조는 하나님의 작품인데 그리스도에 의한 이러한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이상한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초대교부들이 바로 하이레시스라는 용어로 말시온이나 영지주의자들의 이단성을 지적하므로 이 단어는 교회사에서 이단을 지칭하는 역사적인 용어로 쓰여 지게 되었다.

III. 이단 식별론

한국에 존재하는 이단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이단들과 국내의 자생적인 이단들로 구분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조사해보면 이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들어온 대표적인 이단집단들이라고 불리워지는 집단은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최근에 안식교는 많은 탈바꿈을 통해 이미지 개선을 하고 있음), 몰몬교 그리고 지방교회 등이 있다.(정동섭, 그것이 궁금하다. l994, p.276) 그리고 국내의 자생 이단들은 통일교, 구원파, 베뢰아, 다미선교회, 엘리야복음선교원, 애천교회, 밤빌리아, 세일교단, 이산제단 등 수없는 유명, 무명의 이단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이단들이 정통기독교에 심각한 위협과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라는 「목회와 월간」의 1991년에 여론조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통계가 나왔다. 통일교 78.2%, 여호와의 증인 73.7%, 몰몬교 25.7%, 안식교 10.5%, 전도관 5.3%, 애천교회 4.6%, 대순진리회 4.6%, 구원파 3.6%, 베뢰아 3.6% 그리고 다미선교회, 밤빌리아, 엘리야복음선교원, 이삭제단, 세일교단, 이초석의 한국예루살렘교회 등이었다. 21세기에는 새로운 종파의 발생과 더불어 이단들의 발생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날 전망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황을 염두에 두고 정통기독교의 바른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건전하게 육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바울 서신의 전편에 흐르는 사상이기 도하다.

1. 표리부동의 정체가 이단들의 특징이다.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자인 칼빈의 견해다. 이단들은 자신의 정체를 위장하고 교회에 침투하는 위장술에 능하다. 그래서 칼빈은 이들은 마스크(mask)를 쓰고 있다고 했다. 사도시대의 이단들도 동일한 현상을 나타냈다. 유다서 1:4절에는 “이는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있느니라”고 했다.

2 교주의 신격화 완전한 지배가 이단들의 특징이다.
이단들의 지도자들은 영적인 카리스마적인 신앙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았거나 개인적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절대적인 복종과 순종을 하도록 교화시켜 나간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단들의 교주는 대부분 과대망상증 환자이며 임상심리학적으로 볼 때 성격장애자 혹은 피해망상증세가 심한 자들이다. 이단연구가인 마틴은 “이단 지도자들이 자아도취적 고립주의에 의해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것은 과장된 자아상, 즉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신을 인쳐 영적으로 으뜸 되는 위치에 승격시켰다는 믿음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고 꿈과 같은 계시를 통해 신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대개 정식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몽상적인 현실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을 보면,
1) 외모는 상당히 매력적이며 보통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다.
2) 외형적으로는 망상이나 비논리적 사고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정상인처럼 행동한다.
3) 불안이나 신경증적 증상을 보이지도 아니한다.
4)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자기의 일에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5) 진실성이 없고 후회할 줄 모르고 수치심이 없다.
6) 충동적으로 보이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정당화 한다.
7) 병적인 이기주의를 보이고 진실한 사랑을 못한다.
8)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결여되어 있다 (정동섭, p.291-292)

이러한 특징들이 있으면서도 신도들 앞에서도 굉장한 신적인 권위와 사랑으로 나타난다. 신도들은 그에게 매료되어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아니 그가 그러 한 힘을 가지고 있다.

3. 계시 지향적인 체험신앙 강조가 이단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단들은 개인의 신비적 혹은 특별한 신앙체험을 근거하여 주관적인 계시사건을 일반화하여 신흥이단운동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들은 무분별한 신비적인 체험을 신적인 계시와 동일시하고 절대화 시키는 경향이 짙다.

4 거짓 예언은 이단을 규정하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이단들은 자신들의 계시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개인의 미래, 역사의 미래적인 사건들을 예언한다. 요한은 “영들이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했는지를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요일 4:l)

5. 특수한 집단체제를 형성한다.
이단들이 집단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여기에는 그들의 선민의식과 배타주의가 깔려있다. 그들의 판단은 대단히 독선적이기 때문에 어떤 충고나 조언도 듣지 아니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와 격리시켜 운거하면서 특정한 지역을 성역화 한다. 신앙촌, 예루살렘, 천년왕국 등으로 표현한다.

6. 이단들은 지나친 종말론적 사관을 갖고 있다.
이단들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는 특징이 있다. 세상의 종말이 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아의 시대처럼 신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신들의 집단만이 구원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7. 이단들은 기독교의 기존 권위와 정통성을 거부 내지 무시한다.
이단들은 정통기독교의 가르침은 참 진리를 이탈하였다고 강조하면서 새로운 교회의 갱신과 진리운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기독교에 환멸을 느끼도록 신도들을 유도하며 공격과 비난을 일삼고 나아가서 기존 기독교를 위선과 거짓 종교 집단으로 몰아붙인다.

8. 이단들은 성경 외에 자신들의 정경을 갖고 있다.
이단들은 공통적으로 성경외의 계시에 의존하는 경향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통일교의 원리강론, 몰몬교의 몰몬경, 여호와의 증인의 새세계성경 그리고 엘리야복음 선교원의 천국사람들 등이다. 만약에 특정한 정경이 없으면 교주의 설교집이나 저서가 곧 성경의 권위와 동일하게 여겨지거나 위에 군림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성경을 그들의 주장에 필요한 참고문헌으로 사용한다.

9. 이단들은 자신들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단들은 진리가 교회역사의 부패 가운데 상실되었거나 숨어 있다가 자신들에 의해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지방교회(1982)는 “교회는 여러 세기에 걸친 역사를 통해 타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래의 뜻대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했다. 구원파의 경우도 권신찬은 “교회의 참뜻은 성경에 비밀히 감추어져 있는 진리”로서 구원파가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했다. 박옥수는 “죄 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자기들만 독점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독선적인 확신이 이단들의 특정이다.

10. 이단들은 정욕적이고 호색적인 특징이 있다.
이단들은 외형적으로는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윤리적인 결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율법페기론적인(anh-nom떠msn) 사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구원의 완벽주의를 주장하는 만큼 도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베드로는 거짓 사도들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가운데 행한다”(벤후 2:10)라고 했다. 그리고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 하기를 쉬지 아니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14절)

11. 이단들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단들은 기존사회 질서의 보존에 관계없이 불법적인 행위를 자행한다. 남녀간의 성문제의 문란은 물론이고 가정 파괴 등의 반사회적인 행동을 동반한다. 예를 들면 이단종파의 교주나 창시자는 대부분 가정으로부터 부실한 남편으로 인정되었으며 여러 번에 걸친 이혼과 재혼의 사슬에 매여 있다. 문선명의 빈번한 이혼과 4번의 재혼, 박태선의 재혼, 몰몬교의 요셉 스미스는 50명의 부인이 있었고 크리스찬 사이언스의 에디 부인은 1번의 이혼과 3번의 재혼을 했다. 여호와의 증인의 렷셀도 이혼당했다. 이혼의 이유는 여자들에 대한 부적당한 행위 때문이었다. 그리고 반윤리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집총 거부 동을 내세운다. 독신강조, 금욕주의 등도 나타난다.

12 이 단들은 금전을 강조한다.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정의 하나가 금전의 강조와 비리에 있다. 교주를 중심으로 교권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제적인 조달을 위해 교인들의 맹목적인 기부와 헌금을 유도하여 이를 충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헌금과 기부금을 교주와 중심세력의 사치생활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다.

13. 이단들의 대부분의 사상은 이원론(dualism)이다.
이단들의 이원론은 단순한 현실 도피나 염세사상을 넘어 성경관, 신관 그리고 기독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영의 세계와 물질세계를 존재론적으로 이원 화시켜 세상의 선악의 이중구도로만 생각하는 지나친 이원론 인식론에 젖어 있다. 김기동의 귀신론이 이러한 이원론 사랑이 극단적으로 적용된 대표적인 예이다.

14 이단들은 정통기독교의 기본교리들을 부인한다.

15. 이단들은 열심이 특징이다.

IV. 동서 이단들의 유형 비교
공교롭게도 이단들은 그 계보가 존재한다. 초대교회도 영지주의라는 하나의 왜곡 3 사상이 말시온이나 세렌투스나 발렌티우스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의 이원론 3인 사상은 마니교를 거쳐 동서방교회에 영향을 미쳤고 중세기에 나타난 카타리나 모고밀 그리고 알비겐시스도 이원론적인 강한 색깔을 띠고 있다. 또한 이들은 종말론 적이고 기존교회를 부인하는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 예언과 반사회적인 윤리사상을 갖고 있다. 사실 이들은 과대 망상적인 성격 장애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문선명, 유병언, 이장림, 펄시 콜레, 요셉 스미스, 박태선, 정명석, 박명호 등 모두 과대망상 증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단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정들은 대부분 동일하다. 그러나 서구의 이단들과 한국의 이단들의 이질적인 신앙의 요소들과 유형들을 찾는다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근래에 와서 서구 이단들과 한국 이단들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귀신론의 강조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이단들은 서구의 이단들의 유형과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귀신론은 서구 이단들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는 한국의 이단들이 갖고 있는 특징적인 요소이다. 대표적인 예가 김기동의 마귀론이다. 김기동은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귀신론에 대한 경험적인 확신을 가지게 된다.

“(나는) 어떤 여인의 죽은 초상집에서 병풍과 홑이불을 걷어치우고는, 온 몸이 묶인 시체를 향해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곧 죽은 여인이 벌떡 일어나 눈을 흘겼다. 그때 김기동은 무서워서 있는 힘을 다해 주먹으로 때렸다. 그랬더니 그녀의 집에서 ‘간다---’라는 말이 나왔다. ‘넌 누구냐 · ’ 라고 물으니 ‘귀신이지’라고 대답 하였고 ‘무슨 귀신이냐?’라고 묻자 ‘농약 뿌리다가 죽은 최 아무개’라고 말하면서 ‘원통하다’고 푸념을 했다. 귀신은 ‘간다, 간다’ 하면서도 도통 나가지 않았고 김기동은 사홀 밤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대로 그녀를 때렸다. 그러다가 김기동은 성경에 예수께서 말씀으로 꾸짖어 귀신을 쫓았다는 기록을 생각해 내고 ‘귀신아 나가 예수께서 너를 저주하셨어’라고 꾸짖었더니, 그 순간에 귀신은 ‘간다’ 하더니 떠나버렸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성경을 귀신과 마귀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설교하기 사작하였다. 창조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획일적인 마귀론으로 접근하고 있다. 김기동의 귀신론은 한국교회와 대학생 신앙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 신학생들까지 매료시키는 혼란을 가져왔다. 대표적인 예가 이초석과 이명범의 경우였다. 김기동의 마귀론은 한국의 샤머니즘적인 종교문화와 조화를 이루면서 쉽게 기독교인들을 유혹하게 되었다.

2. 교주의 신격화가 서양이단들과 다른 한국이단들의 특징적인 유형이다.

서양의 대표적인 이단들인 몰몬교나 여호와증인의 경우에 보면 교주를 신격화시켜 그리스도의 위치를 대신하는 사례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유일한 참된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을 역설하며 교주들의 위치는 기껏해야 사도 혹은 예언자로 인정하는 경우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 속에 교주의 위상이 신격화될 수 있는 함의가 있다고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교주를 그리스도의 위치를 대신하는 신격화 현상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이단들은 종국적으로 교주가 신격화되어 버린다. 문선명은 참 아버지, 재림주 혹은 문예수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전도관(천부교)의 교주 박태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박태선은 자신을 동방의 의인, 감람나무로 칭하면서 재림주로 변신했다. 수많은 목사들이 그에게 안수를 받기도 하였다. 영생교의 교주인 조희성은 승리제단의 역사를 단 지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단 지파의 시조인 단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기 위해 구세주로 세상에 오시는데 그가 곧 그들이 말하는 이긴 자 즉 주님 조희성이라는 것이다. 조희성은 박태선의 계열로서
전도관의 교리를 전승했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주장은 조금도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세일교단의 이유성도 자신을 가리켜 말세의 종, 사명자로 표현함으로 전도관이나 통일교의 교주의 신격화와 동일한 시도를 하였다.

엘리야 복음선교원의 박명호는 자신을 새심판장으로 부가시키면서 그리스도의 위치를 대신하는 과감한 표현을 하였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인자’를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자신이 바로 구세주요 하나님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인자가 되신 하나님」이란 책에서 그는 아래와 같이 자신의 신격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2천년 전 예수께서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 희가 알게 하려 하노라…’ (마태 9:6-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서 죄 사하는 권세를 가졌다’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신성을 가지신 2천년 전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지막 때 유약한 인자가 와서 6천년 동안 병들어 침상에 누워만 있던 모든 인류들을 하늘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온 우주가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가졌으리라고는 도무지 기대도 못했던 그 유약한 인자, 아무런 능력도 없던 무능한 인자에게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보았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곧 우주를 창조하신 태초의 말씀 하나님이시다란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비록 육체는 마른 땅에서 나온 연한 줄기같이 가장 연약하지만, 태초에 아빠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는 말씀 하나님께서 그 안에 찾아오셨던 것입니다.”(pp.111-112)

3. 한국의 이단들은 강한 사이비성을 갖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특징이다.

과거의 이단들은 그래도 나름대로의 자신의 교리와 주장을 당당하게 내세웠지만 요즈음의 한국의 이단들은 대부분 사이비적인 위장술과 부정직한 태도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사이비성을 갖고 있다. 이들 집단들이 사용하는 명칭으로도 알 수 있다. 기독교복음침례교회, 예수교복음침례교회, 대한예수교침례회, 예수교대한감리회, 애천교회 등의 이름은 분명히 정통교회의 교리와는 달리하면서도 기성교단의 간판을 걸고 위장하고 있다. 이들의 사이비성은 ‘멸공’ 이나 ‘가정윤리정화 운동’ 동의 사회 운동체로 둔갑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경제 문제 등에서 이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표출된다. 신도들의 재산을 바치도록 유도하고 그것으로 교주와 중심인물들이 착취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집단생활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가정을 파괴는 사이비적인 행동을 자행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이단들의 특징 이다. 실로 다양한 사이비성이단인 hetro-heres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한국의 이단들은 기적과 은사중심의 초능력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발흥한 대부분의 이단들은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신비적인 기적과 은사를 체험한 신앙을 강조한다. 근래에 나타난 대부분의 신흥이단들은 신유의 기적과 은사를 주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박태선, 김기동, 이초석 등으로 이어지면서 신유의 은사와 초자연적인 영적 은사를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신유의 기적에 대한 소식은 많은 기성교인들에게 호기심을 야기 시켰고, 환자를 중심으로 기적적인 치유의 소문으로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끌게 하였다.

5. 한국의 이단들의 독특한 현상은 열광적인 신비주의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통일교의 문선명은 원래 1930년 초반에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광적 신비주의의 이용도파의 영향을 받아 삼각산에서 세워진 이스라엘의 수도원의 김백문의 영향을 받았다. 통일교의 원리강론은 문교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경전이라고 주장한다. 이단들의 예배보는 방법은 대부분이 광적이다. 온몸을 흔드는가 하면, 팔은 항상 들고 있으며 눈은 감은체 몰아지경의 경험을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광적인 예배를 드리는 특징이 있다. 김기동의 귀신 쫓아내는 광경은 시끄럽기 짝이 없다. 김기동은 나가라고 외치고 환자는 유의식, 무의식중에 뒤로 넘어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김기동은 부흥회에서 일찍이 방언을 받았고, 방언을 받은 후 8시간 동안 계속해서 기도하는 동안 환상도 보았다고 하였다. 이유성의 집단인 새일교단은 매우 열광적이고 큰소리로 하늘을 향하여 두손을 모으고 울부짖는 기도를 드리고 때로는 두손을 마구 휘두르면서 기도하기도 한다.

6. 한국의 이단들은 무속적인 기도원 운동과 결부되어 있다.

40일이나 70일간의 기도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백일간의 산이나 기도원에서의 기도 후에 나타난 기도증후군이 바로 한국 이단들의 발흥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대부분 학력은 없으면서 산 기도와 독학으로 무속적인 신앙과 접목하고 있다. 이용도, 문선명, 박태선, 김기동, 박윤식, 박명호, 이유성 등 이단들의 교주들은 모두들 금식기도를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신하며 객관적인 진리보다는 무속적인 영적세계에 몰입해 있음을 알 수 있다.

7. 한국의 이단들은 광신적인 신앙을 갖고 있다.

한국의 이단들은 대부분 신비적인 체험에 기초하고 있으며 신도들도 이 신앙에 매료되거나 염원하면서 광신적인 열기로 들떠 있는 상태이다. 이성적인 사고는 설득력을 상실하였고 맹목적인 신앙으로 치닫고 있다. 그들의 교주들이 과대망상증에 걸린 것처럼 자신들도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객관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내적 구원의 확신에 따라 행동하고 교만해지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주관적인 인식에 의해 행동하면서 보편타당한 기존신앙의 원리를 무시하고 주관적인 몰입상태에 빠진다.

V. 이단형성의 요소들

“이단은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전도한다. 신학적으로, 그들은 교리적 혼란을 조장함으로써 전도를 시도하고, 심리적으로 개인이 감지하고 있는 어려움이나 필요를 악용함으로 포교한다” (Jime Roche, The Preventive Counseling Concerning Young Christains and the Cu1ts, Dallas Theological Seminary, 1979. p. 46)

1. 사회환경적인 요소들(개인적인 환경 포함) -

2. 이단형성의 심리적 역할요소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Underleider & Wellisch) 이단들이란 강렬한 안전감의 인간적인 욕망을 갖고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의 욕구를 갈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단들은 이러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공동제의 개념에 친밀감을 갖게 되고 육적인 가정을 영적인 가정으로 대치시켜 버린다. 그리고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르면서 교주을 영적아버지로 칭한다. 인민사원의 짐 존스, 문선명, 구원파의 형제자매개념 그리고 박명호의 아빠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충동적인 결정에 의해 점차적으로 세뇌되어 갚은 사이비 신앙의 질곡으로 빠지고 있다. 정동섭 교수는 이단세뇌의 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욕구충족(needfulfillment)의 세뇌원리
2) 회생의 세뇌원리
3) 주변환경 통한(milieu control) 원리
4) 신비적인 조종(mystical manipulation ) 원리
5) 투자(investment)의 원리
3) 포기(renunciation)와 순결 원리
7) 고립(isolation)의 원리
8) 친교 또는 영교(communion)의 원리
9) 초월감(feeling of transcendence)의 원리
l0) 교리와 이념의 원리

VI. 결론

이단은 기독교의 복음의 시작부터 교회 속에 존재해 왔다. 2천년의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서 이단이 존재하지 아니한 때는 없었다. 다가올 새로운 21세기에는 이전보다 종교다원주의의 영향아래 이단들의 활발한 발생과 활동이 기대된다.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말세에 거짓예언자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단들의 발생을 막기 위해 적어도 교회는 경각심을 가지고 올바른 신앙과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지도자들의 바르고 건전한 말씀의 선포와 신앙생활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단들은 교회의 교인들에게 실망하기 전에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실망하여 이단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의 5가지는 논자가 보는 이단 발생을 막기 위한 방안의 원리들이다.

1) 건전한 교리 교육과 성경말씀의 바른 해석과 전달
2)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갱신
3) 영적생활의 유지를 위한 영성훈련(기도생활의 올바른 지도)
4) 교인들의 욕구충족을 위한 신앙심리 연구와 적용
5)신앙생활의 가치관과 이념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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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교리의 유형(1): 다른 계시와 다른 경전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필요한 중심되는 계시는 성경이라는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분별하는 객관적인 표준이 된다. 만일 성경적 근거가 없는 계시를 누가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신구약성경은 기독교의 정경으로서 진리의 문제에 대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그런데 상당수의 이단들은 성경이외에 별도의 경전을 두고 거기에 사실상 최고의 권위를 두거나, 아니면 성경을 경전으로 삼되 정도(正道)에 어긋난 성경해석을 일삼고 있다. 그들은 성경과 무관하게 계시를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특히 신비적인 계시경험을 주장한다. 이단의 교주들은 대부분 성경의 저자들과 같은 직접적인 방법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거나 꿈이나 환상 등을 통한 계시를 주장한다.


몰몬교는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Joseph Smith)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몰몬경(the Book of Mormon)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은 이것을 성경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몰몬경 외에도 계시의 책으로써 <값진 진주>(Pearl Great Price) 및 <교리와 언약집>이라는 경전을 가지고 있다. 통일교는 교주 문선명이 16세 때 예수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그때 예수님으로부터 당신이 다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뜻을 완수하도록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경전으로서 구약과 신약 외에 성약서(成約書)라고 하는 <원리강론>을 갖고 있는데, 이것을 신구약성경보다 더 중요시한다. 구약은 유치한 단계의 인류에게 주어진 교과서요, 신약은 그 다음 단계의 인류를 위한 교과서인바, 현대과학의 시대에 알맞는 ‘새 진리’는 <원리강론>에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성교회 박윤식은 자신의 설교와 가르침을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기도하며 받은 비밀의 계시라고 주장하여 성경 외의 직접계시를 주장한다.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은 1992년 10월 휴거설을 주장함에 있어서 40여 명의 아이들이 받은 직접계시를 신봉하고, 그것을 성경의 계시 위에 있는 계시로 보았다. 노광공이 교주인 동방교(東方敎)에는 <경화록>이라는 비밀경전이 있다. 거기에 의하면 노광공은 심판주요 창조주로 탄생했다고 하며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신도들은 그를 ‘심판주’, ‘창조주’, ‘재림주’로 신격화하였다. 엘리야 복음선교원의 박명호는 세 가지 성경을 말하면서, 첫째는 ‘천연계(天然界)’, 둘째는 ‘신구약성경’, 셋째는 ‘대언의 영’이라고 하는데 그 셋째의 내용은 자기자신의 가르침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들이 영어로 번역한 성경 곧 만 권위있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이것은 매우 문제가 많은 번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르시온(Marcion)은 성서론적인 최초의 이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상당수의 책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전통은 오랜 후 스웨덴의 신비주의자 스웨덴버그(Emanuel Swedenberg)에 이어졌는데, 그는 신구약 66권 중에서 사복음서와 요한계시록만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신천지교회의 이만희는 마태복음 24장과 요한계시록만이 새언약이며, 신약과 구약은 무효라고 주장한다.


성경의 특정 기사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유형은 이단종파에서 가장 흔한 경우다. 특히 성경에 있는 명칭과 유사한 명칭을 고안하여 그것을 자기자신이나 자신의 집단에 적용하는 유형도 있다. 전도관 박태선은 자신을 ‘영모님’(靈母任), ‘감람나무’, ‘동방의 의인’, ‘이긴 자’, ‘이슬 성신’, ‘참 구세주’, ‘새 하나님’ 등으로 불렀다. 신앙촌이 있는 소사에 소래산(蘇來山)이 있으니 예수가 재림하는 산이라는 기발한 주장도 하였다. 또 요한복음 4:10에 근거하여 병치료와 죄사함의 효력이 있는 생수를 만들어 판매하여 재정을 확충하였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할렐루야 기도원장 김계화의 생수 병치료 및 성령수술이 있다. 특히 성령수술은 이사야 1:25과 사도행전 19:11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한 것이다. 부산제일교회의 박무수의 4단계 회개론의 근거는 요한복음 19:23인 바,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취해 네 깃으로 나눴으므로 4단계의 회개를 해서 그 옷을 붙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사야 46:11, 계시록 16:12 등을 인용하여 자신을 동방의 독수리요 추종자들은 동방의 왕들이라고 주장한다. 정경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들은 새삼 평가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이단 교리의 유형(2): 다른 구원론

모든 종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구원이다. 종교마다 용어와 개념은 달리할지라도 결국 구원을 추구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천하를 다 얻을지라도 구원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구원론의 핵심은 ‘이신칭의’로 잘 알려져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단들은 이것과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든지 아니면 여기에 무언가를 더 첨가하곤 한다.

통일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그의 구원역사는 완성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예수는 문선명의 부하라는 망언까지 늘어놓는다. 엘리야 복음선교원 박명호는 구원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신선론’(神仙論)을 주장하였다. 즉 이방 신선들은 예수도 성경도 몰랐지만 구원받는다고 함으로써, 예수 이외의 구원의 길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또 구원을 받으려면 특정한 집단에 가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유형도 있다. 전도관 박태선은 말세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얻으려면 ‘신앙촌’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원 개념은 이단 정의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다. 만일 전통적인 교회와 다르게 가르칠지라도 그것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이단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단이란 결국 구원얻지 못하는 교리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고,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으면 반드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 교리라는 것은 아무리 반복해도 과함이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구원 교리를 세우기 위하여 유대 율법주의자와 치열하게 싸웠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다른 종교를 통해서나 스스로의 행위나 공로에 의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면 이것은 이단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신학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고 생각한다. 종교다원주의사상은 종교간 대화와 협력,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이름 하에 신학계에 깊이 뿌리내리고, 우리나라 교회 안에도 유포되기 시작하였다. 지금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종교다원주의는 구원론에 있어서 전통적 기독교와 달리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구원의 길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을 통해 칭의를 얻게 된다는 전통적 기독교 구원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단논쟁에 있어서 대단히 심각한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교회가 만일 이단에 관한 논의를 하겠다면 다른 작은 종교집단 보다도 우선적으로 이 거대한 신학사상인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분명한 입장을 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계속)

이단교리의 유형(3): 잘못된 삼위일체론

삼위일체론은 고대교회 신학의 핵심적인 주제로서, 이단 논쟁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뿐아니라, 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교리이다.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기독교의 하나님의 독특성이 바로 여기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이성으로서 파악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교리다. 하나님의 은혜와 참된 신앙이 없이는 이 교리를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단들이 삼위일체론과 연관하여 나왔는데, 그 유형은 삼위일체론 자체를 부정하거나 삼위일체론을 잘못 이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삼위일체를 말하지만 사실은 삼위일체론이 아닌 유형은 대략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본질의 차이가 조금은 있다고 주장하는 형태로서 성자와 성령은 성부께 종속적인 존재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역사적으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동일한 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성부가 곧 성자요 성자가 곧 성령이라고 말하는 소위 양태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일체성을 부정하는 형태이다. 만약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를 떠나 독자적인 신성을 인정한다면 이것은 삼위일체론이 아니라 다신론에 속하게 될 것이다.

삼위일체론적 이단 가운데 대표적인 집단은 여호와의 증인으로써 그들은 니케아 회의(A.D.325)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은 아리우스의 기독론을 따른다. 그들은 성부 하나님의 신성만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한다. 몰몬교는 삼위일체론을 믿지 않고 다신론을 주장한다. 아담이 신이 되었다고 하면서 인간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베뢰아 아카데미의 김기동은 삼위일체를 다음과 같이 양태론으로 설명했다. “하나님이 곧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예수 안에 있을 때 아버지가 되십니다. 아버지가 성도 안에 있으면 성령이 되십니다. 삼위가 각각 개체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장소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릅니다.” 이러한 오류는 한국예루살렘교회의 이초석과 레마선교회의 이영범에게도 나타난다. 또 김기동은 예수님의 육체가 말씀에서 왔고 그 말씀은 곧 영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수준이며 그래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그 살은 영이라고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한다. 통일교는 예수님을 문선명의 제자라고 말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참부모(문선명과 그의 처)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유일한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신천지교회의 이만희는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 아니라 성령이 인간 예수의 육체에 임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자이심, 곧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삼위일체론에서 핵심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부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 중에서 어느 하나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모든 교리가 다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삼위일체론의 중요성은 그것이 구원론과 직결되는 점에 있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에 만일 삼위일체론이 잘못되면 구원론에 있어서 온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고대교회는 삼위일체론으로써 이단을 분별할 수가 있었다.

이단교리의 유형(4): 잘못된 종말론과 윤리관

종말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나라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인 및 교회의 소망이다.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살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가르치는 종말론은 구원의 신앙을 견고하게 지키게 만드는 중요한 교리이다. 그런데 종말이 미래적인 현실이라는 그 성격 때문에 이단들은 갖가지 잘못된 종말론을 만들어 내었다. 종말론의 오류로서 많이 나타나는 유형은 재림주와 교주를 동일시하는 것과 소위 시한부종말론이라 할 수 있다. 즉 종말을 특정한 사람, 특정한 장소, 특정한 날짜와 연관시키는 것이다.

통일교는 위의 모든 오류를 다 가지고 있는 집단으로서 그들에 의하면 메시아는 1920년 경에 한국에서 재림하게 되어 있으며, 이 재림 예수가 곧 문선명이라고 말한다. 안식교는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밀러(William Miller)의 소위 시한부종말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를 추종했던 자 중 하나인 화이트(Ellen G. White)가 계시를 받아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을 나름대로 재해석함으로서 생겨난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옥의 존재를 부인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은 소멸할 뿐이라고 한다. 또 예수의 재림이 1914년에 영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하며 이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엘리야 복음 선교원의 박명호는 절박한 말세심판설을 가르침으로써 신도들에게 속세에 대한 절망감을 야기시켜 산속으로 도피하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부부의 별거, 이혼 등으로 인한 가정파괴가 빚어지고, 학업을 포기하는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은 우리가 재림의 시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그 시기를 알 수 있다고 하고, 어린 예언자들이 말하는 그 시기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하면서 시한부 종말론을 절대화하였다. 신천지교회 이만희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성취의 장소를 장막성전이 시작되었던 한국의 과천 소재 청계산이라고 한다.

기독교 교회사적으로 종말론은 삼위일체론 다음으로 이단들이 오용했던 교리이다. 우리나라는 <정감록>을 필두로 하여 옛날부터 도참사상이 유행해 온 전통이 있으므로 종말론적인 이단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우리나라에 등장한 이단들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종말론과 관련된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교회가 특별히 종말론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한편 이단 논의에 있어서 윤리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리의 진위를 가리는 마지막 판단 표준이 윤리라는 점에서도 중요하고, 이단에 대하여 교회가 사회와 공동대처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이단은 무엇보다도 그 왜곡된 윤리 때문에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단은 교회 뿐아니라 사회에도 심각한 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이단 문제는 교회의 문제이자 또한 사회 문제인 것이다. 종교의 수준은 일차적으로 그 윤리성에서 판단된다. 모든 이단들은 필경 비윤리적 행태를 나타내게 되어 있다.

이단들의 비윤리성은 대체로 성과 재물 그리고 폭력과 연관이 있다. 이단의 교주 또는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비윤리성은 성적인 데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단의 기원은 사탄이고 사탄은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자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정욕의 죄를 짓게 만든다. 이단의 교주나 지도자 가운데 성과 결혼, 가정의 윤리를 파괴하기에 이른 경우가 많음은 우연이 아니다. 재물에 있어서의 비윤리성은 이단 집단에서 거의 예외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요소가 바로 맘모니즘, 곧 재물을 신으로 숭배하는 사상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세력이다. 그 마음에 참된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누구나 재물을 신으로 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단 집단은 자기들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의 부도덕한 비밀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폭력에 의존하는 경향을 띤다. 참된 교회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존하고 겸손하게 섬기는 모습을 취하지만 이단들은 참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들을 지키게 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히 폭력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단집단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성적, 물질적, 폭력적 비윤리성은 이단이 그저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단집단의 윤리 문제를 논할 때 교회도 자기자신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해준다.
출처 : 행 복 충 전 소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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