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의 불투명한 재정과 변칙적이고 불법적인 세습관행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크리스천인 나 또한 방송 내용에 대해
십분 이해와 공감을 표하고 싶다.
교회 세습과 재정의 불투명성 문제는 재벌의 변칙증여나 회계장부 조작과 같은
맥락을 차지한다. 교회는 항상 당대의 사회 시스템을
복제하면서 살아간다는 베버의 말이 떠오른다. 현재 대형 교회들의 범죄행각을
보면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 죽어나거나 알고도 쉬쉬해야 하는 구조가 보인다
이미 자정력을 상실했다는 옥한흠 목사님의 말에 동감한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크리스천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자가 다닌다는 그 교회를 15년이 넘게 다녔다.
내가 청년부를 다니던 시절, 변칙적인 세습 문제로 우리 교회는 큰 홍역을 앓았다.
중요한 것은 곽선희 목사의 횡보에 모든 성도들이 만장일치로 박수를 쳐주지 않았다는 것이고
많은 내분이 있었고, 장로님들의 입장표명이 있었다.
이 말은 티비에서 그가 기자들에게 '공부나 더 하고 오라'는 식의 망발을
떠들어대서는 안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유학을 마치고 내가 돌아간 교회는 그곳이 아니었다.
교회건축 대신 투명한 재정과, 복지, 타자를 향해 열려있는 작은 교회였다.
각종 횡령과 배임수뢰,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보여준 행각은 아주 다양하다. 물론 일부의 모습이라고 치부해두자.
이런 목사일수록 '긍정의 힘'을 주장한다. 그러나 긍정이란 부정항의 대립과 극복을 통해서만
더욱 단련되고 정금이 되어 간다는 것을 설교시간에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이의 눈에는 그저 그날 방송을 강행한 MBC가 사탄이고
좌파고 빨갱인가 보다. 사회법에 의거해 업무상 배임과 횡령을 일삼고
교회의 재산을 목사 일인의 것인양 휘두른 댓가로, 형집행을 받아야 했던 이들은
무슨 순교자나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서 코웃음이 났다. 더 웃기는 것은 교회법상으로도
이들은 종교재판을 통해 치리되어야 마땅하나, 교계가 아무런 제지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일부대형교회의 목사들을 지적한 것 뿐이다.
좋은 분들은 많다. 높은 뜻 숭의교회의 김동호 목사님. 난 그분의 청부론을 좋아했고
언덕교회, 새길교회, 밥퍼주는 교회, 내가 다니는 감자탕교회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크다고 다 세습하고, 교회 재산 횡령을 하는 것이 아니다.
윤갑석_황토방교회_경기, 양평_2007
최근에 발행된 윤갑석의 고향의 사진 도록을 사고 돌아오는 길
그가 찍어낸 시골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고창과 남한산성, 원주, 울릉도 죽암, 전주...수많은 이 땅의
작은 도시에 있는 교회의 풍경이 참 곱다.
교회를 건축하는 일은 하나님의 몸을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 했기에 우리는 인간 세상의 기준을 통해 교회를 세워
신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풍경을 그려내고 표현해왔다. 미술사에서 건축분야를 관심을
갖고 보다보면 당대의 건축물에는, 성당과 교회를 포함한, 당대의
신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윤갑석_진광전원교회_경기, 포천_2007
오늘날의 교회는 규모를 자랑한다
큰 교회, 큰 십자가, 큰 강당과 지역 커뮤니티 센터
이것이 오늘날 그분에게 축복을 받은 우리의 현재라고 선전한다.
마치 높은 첨탑과 웅장한 실내를 보여주며 여전히 신의 뜻이 우리와 강건히 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던 고딕시대, 신앙의 공허를 막기위해 더욱 첨탑을 높이던 그때와
지금은 이상하리 만치 닮아있다.
규모의 경제학이란 개념이 받아들여지고
교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큰 은혜가 임한 곳이며, 이곳이야 말로
하나님의 몸과 닮았다는 논리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수평과 수직의 세계, 하늘과 인간을 지향하는 십자가의 세계는
없고, 그저 인간을 위한 기준과, 형상과 디자인이 침투된 교회의 모습
그런 기류 속에 교회는 규모의 비대증에 걸려, 이미 동맥경화 증세를 보이고 있다.
윤갑석_곡천제일교회_충남, 서산_2007
대형 교회가 교계를 장악하고 일부 기독교 단체가
무슨 기독인들 전부를 대표하는 양 떠들어대는 작금의 모습은
역사적 예수를 생각하게 한다. 당시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자들의 모습'과
지금 대형교회의 '은혜'를 빌미로 한 목사들의 범법행위는 어쩜 그리도 닮아있는가.
믿음에 대한 허상, 신앙의 파괴
속으로는 썩어가면서, 그 겉모습을 감추기위해 더욱 높은 십자가를 세우는
이 죄성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 자정력을 잃었다고 포기하기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윤갑석_충남교회_충남, 공주_2007
"교회는 십자가의 끊임없는 복제로 완성되는 작은 것들의 합일체일때
권력화되는 종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라고 건축비평가 전진삼은 말한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를 가본적이 있다.
2003년 가을로 기억한다. 성도석 보다 강단의 자리가 더 낮게 설계된 교회.
그저 높은 자리, 성도보다 선택된 자로서 섬김만 받고자 하는
저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이 건축물의 설계를 보고 무엇이라 할지 궁금하다
오사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 <빛의 교회> 내부
한국교회에 변혁의 바람이 불기를 희망한다.
변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까지도 반공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는 대형교회가 있을 정도이니 오죽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감히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MBC를 들어
지금 우리 교회의 생생하고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거라고......
경영학자였던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선 잔혹한 현실을 대면하는 것이 4단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교회가 위대해지기 위해서 다시 한번 겪어야 할 변화의 싹 앞에 서 있음을 느낀다.
나는 기도한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본회퍼와 루터 같은 이들이 나타나리는 걸.
그들과 함께 난 예수의 머리에서 금관을 내릴 것이다.
Action springs not from thought, but from a readiness for responsibility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무에 대한 준비에서 비롯된다.
-디트리히 본 회퍼-
에이브릴 라비뉴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Knocking on heaven's do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