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있기는 했나?
-유럽인들의 문화재 보존방법-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 600년 이상 서울을 지켜온 숭례문이 시커먼 재로 변하자 문화재보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숭례문, 우리 국민들에게 있기는 했나?"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보 1호가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이번 사건은 평소 우리나라 국민들과 정부의 문화재보존에 대한 관심수준이 밑바닥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문화재 보호노력이 부실했던 것은 물론,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무지함도 그대로 나타났다. 물론 한 개인이 토지보상과 법원의 판결 불만 때문에 저지른 범죄라 하지만 건축문화재가 국가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역사적 건물이라는 문화의식이 결여된 이번 사건은 일반 국민의 사회의식수준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오로지 부동산 가격상승에 대한 관심과 경제적 가치로만 기준을 잡아 건축물의 우열을 가리는 대한민국 풍토에서 현대식 건물로만 빽빽이 채워져 홀로 서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재는 숭례문화재사건과 같은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있다.
이는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의 존재가 국민들 속에 살아있는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문화재는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국민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의 객체로 남아있기 보다 죽어있는 전시문화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문화재는 단지 도시의 외관을 꾸며주는 장식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수준이다.
이에 반면 몇 백 년 동안 건축물의 모퉁이 돌 하나 버림받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되어 오며 도시의 문화수준을 한 층 끌어 올리고 있는 유럽의 건축문화재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음에도 유럽인들 사이에서 귀중하게 보존되며 도심 속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럼 유럽사람들은 문화재를 어떻게 복원했으며 건축문화재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먼저 유럽의 문화재복원운동은 시민 자발적이다. 또한 국가의 문화재 보호정책도 국민들에게 문화재 보존의 동기부여를 통한 국민과 국가의 쌍방향정책이다. 유럽연합은 70년대부터 마을재정비사업을 추진하며 농촌 곳곳에 버림받은 문화재를 살아있는 역사건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는 한도 내에 경제성을 보장하여 시민들을 문화재 복원에 자발적으로 참여케 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에게 문화적 가치를 스스로 각성시킴과 동시 정부가 대규모사업을 펼치지 않고도 수많은 문화재복원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가령 독일의 경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을 그 건물의 문화적 전통성을 보존하는 조건하에 사업신청을 하면 독일정부는 유럽연합의 문화재 복원 가이드라인에 따라 복구비 50%를 보조해 주었다. 그래서 보조금 수혜자는 그 보조금을 기반으로 사업확장을 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시골 곳곳에 숨어 있는 문화재가 복원되었음은 물론 농촌의 경제발전에 일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게 되었다. 또한 농촌을 문화관광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 농촌의 다원적 기능효과를 충족시키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독일 헤센주에 있는 말케스라는 조그마한 도시를 꼽을 수 있다. 말케스는 2001년 마을재정비사업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하며 독일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도시의 문화재 복원이 100%로 시민자발적 형태로 이루어 졌음은 물론, 문화재 주변의 조경관리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 문화와 주거단지가 조화된 살아있는 문화단지로 거듭났다. 특히 문화재는 주민들의 정체성확보 동기를 부여한다. 말케스시의 시장 잉그리트는 "도시 가운데 있는 400년의 역사를 지닌 야콥스 교회는 마을의 역사적 뿌리를 주민들에게 알게 하며 한 공동체를 묶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001년 마을재정비 사업에 대해 설명을 하는
말케스 시 시장 잉그리트
문화재에 대한 시민참여도 또한 한국과 비교가 된다. 독일 구글에 들어가 문화시민단체를 검색하면 총 7만2천개의 시민단체가 나온다. 물론 독일어권 국가인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합한 결과이나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민의 수가 6백 5십만과 9백만을 넘지 않는다는 점과 독일 총 지자제와 시의 숫자가 12296개 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감안 한다면 지역대비 시민단체의 수는 과히 상상을 초월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시민들의 높은 자발적 참여도는 죽어 문헌 속에 잠자고 있는 문화재를 살아있는 문화재로 바꾸어 놓는다. 문화재는 국가의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문화재와 장식용 문화재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유럽의 건축물들은 역사적 문화재로 국민 실생활에 살아있다. 또한 유럽의 여러 국보급 문화재들은 시민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도시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는 문화재가 파손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독일 로텐베르크시는 구 시가지를 걷기만 해도 몇 백년 된 국보급 건물들이 스쳐지나간다. 4백년 이상 된 시청사는 여전히 시민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시청건물로 쓰이며 450년 된 약국이 들어섰던 건물에는 아직도 약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쾰른 대성당은 매 일요일마다 미사를 드리는 신도들로 자리를 가득 매운다.
남독에 위치한 하이델베르크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매일같이 시내 중앙로를 지날 때마다 잘 보존된 오래된 문화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국보급 문화재 앞에 앉아 차를 마시며 도시의 외관을 감상하기도 하며 자연스레 건물에 묻어있는 옛 역사를 떠 올리곤 한다.
예를 들면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옆에 있는 기사식당은 1592년 종교핍박을 피해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한 샤를벨리에 의해 지어진 집이다. 30년 전쟁이 끝난 후 임시시청으로 쓰였으며, 건물의 모습이 하이델베르크 고성에 있는 여러 건물들과 비견이 될 만큼 아름다워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이런 국보급 건물이 개인 호텔과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문화재 보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은 척박한 문화의식을 가진 한국과 분명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하이델베르크 기사식당 1592년 지어진 건물
오히려 문화재 파괴의 주범은 한국인이다. 관광명소 어디를 가나 어글리 한국인의 행태는 여실히 들어 난다. 하이델베르크 시는 몇 년전 부터 하이델베르크 고성내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하이델베르크의 자랑이며 명물인 세계최대의 참나무 와인통에 한국인들의 이름들이 여기 저기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세계 최대의 와인통에 칼집을 내 새겨진 한국인의 이름들이 하이델베르크 시민들에게 반한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이델베르크 시민 토마스씨(45)는 "카메라를 설치한 후 성내 와인통이 잘 보존되는 것 같다"며 "가장 많이 발견되는 이름들이 한국 사람들의 이름 같은데 이렇게 소중한 독일의 문화재를 파괴하는 것은 아주 몰상식한 짓"이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 술통 중 한 곳에는 "김xx"라는 이름이 약 0.5cm 정도의 두께로 다른 어떤 이름보다 두껍게 파져 있어 독일 관광객들로부터는 물론 여러 다른 나라 관광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다.
기사제공: www.cultour1.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