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

[스크랩] 알파 토크(알파코스 교재)

수호천사1 2006. 11. 12. 19:23

[알파 토크]

1과. 예수님은 누구신가?

1. 서론

기독교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다. 확실한 역사적인 증거에 바탕을 둔 단계가 있는 믿음이다. '예수,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신화 속의 인물'(러시아 사전). 그러나 예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은 대단히 많다.

1) 그분은 존재하셨다.

* 성경 밖의 기록
- 로마의 타시투스는 직접적으로, 수에니토니우스는 간접적으로 진술.
- 요세푸스 (37년 출생, 유대의 역사학자) - 예수에 대해 직접적으로 기록. (책 P22에)

* 신약에 있는 증거들
- 의문 : '신약은 오래 전에 쓰여졌는데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내용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대답 : 원전연구 ~ 원전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전에 대한 의심은 적을 수 밖에 없다.
F.F.부루스 교수의 연구(교재 P8, 표 참고)
'그렇다면 원래 글이 쓰여진 시기와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증거 사이의 간격은 아주 작은 것이 되므로 사실상 무시할 만하다. 그러므로 성경이 원래 쓰여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졌는가에 대한 의심의 마지막 근거도 이제는 없어졌다. 신약의 신뢰성과 완전무결 함은 마침내 증명되었다고 해도 좋다.'(프레데리 케니언 경)

신약과 그 밖의 증거로부터 예수님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2)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오늘날 거의 없다. 그는 인간의 몸을 가졌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가졌다. 그는 인간의 경험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예수님이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긴 하지만 단지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그저 멋진 사람이거나 위대한 도덕 선생 이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어떤 증거가 있을까?

실제로 그는 성자 하나님이시며 성삼위의 두 번째 위치를 가지신 분이신 데, 이에 대한 증거가 많이 있다.

2. 본론

1) 그는 자신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가?

어떤 사람들은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사실,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가르치고 주장한 것을 볼 때, 자신이 하나님의 신분을 가진 인간임을 인식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자신에 대한 가르침

예수님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그이 가르침의 많은 부분이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 나에게 와라(요한 14:6),
인간 내면 깊은 허기짐(사랑의 굶주림-프로이드. 안전-융. 중요성-아들러) -
내가 생명의 빵(요한 6:35), 즉 '너희의 허기짐을 채우고 싶으면 나에게 오라'.
어둠과 우울함과 환멸, 그리고 절망 - 나는 세상의 빛(요한 8:12).
죽음에 대한 두려움 - 나는 부활이요 생명(요한 11:25).
걱정 근심 염려, 공포와 죄의식 -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삶의 방향과 모범 - 나를 따르라(마가 1:17)
예수를 영접한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마태 10:40)
예수를 환영하는 것이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마가 9:37).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요한 14:9) - 하나님의 모습을 알고 싶거든 나를 보거라.

㉡ 간접적인 주장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직접적인 주장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죄의 용서'(마가 2:5), '그가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것'(마태 25:31)과 재림하여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31절),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우리 각자에게 일어날 일을 결정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심판자 일뿐만 아니라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분을 가지셨다는 간접적인 주장인 것이다.

㉢ 직접적인 주장들

마가 14:61-64 ;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그렇다.-" 이 이야기로 인해 사형에 처해지게 되는데, 자신이 신이라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은 유다인에게는 죽어 마땅한 신성모독이었다.
요한 10:33 ; "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요한 20:28-29 ;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너는 나를 보고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행복하다."

이렇듯 예수님은 자신이 유일한 아들, 육신이 되신 하니님이라고 주장하셨다. 여기에는 세 가지 논리적인 가능성이 있다- 야바위꾼이며 사악한 인간? 환상에 사로잡혔거나 미친 사람? 아니면 그의 주장들이 사실이라는 것.

2) 그가 한 말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증거가 있는가?

위 세 가지 가능성 중 어느 것이 맞는지를 평가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의 생애에 대한 증거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그의 가르침

예수의 가르침은 모든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많은 나라들의 법 조항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 학문의 발달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2,000년이 지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적인 가르침 보다 더 좋은 것을 가르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가르침이 정말 사기꾼이나 미친 사람의 것일 수 있을까?

㉡ 그의 행동

예수님이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는 기적들은 그것만으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요한 10:38)'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행동이 그토록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행한 기적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사랑, 특히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들(예:나병환자, 창녀 등)을 향한 사랑 때문이며 그러한 사랑은 그가 한 모든 일의 원동력이었다. 그 사랑은 십자가 위에서 정점을 이룬다. 죽임을 당할 때 '아버지여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누가 23:34)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악하거나 미친 사람의 행동은 아니지 않는가?

㉢ 그의 인품

예수님의 인품은 비 기독교인들 에게까지 감동을 준다. 자기 연민이 아닌 지고지순의 이타심을, 연약함이 아닌 겸손을, 타인의 희생이 없는 기쁨을, 방종이 아닌 친절을 실제로 보여 준 사람. 적들마저도 그에게서 흠을 찾을 수 없었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누가 이런 사람을 사악하다고 미쳤다고 할 수 있는가?

㉣ 그의 특성 - 구약성경의 예언을 완성하심

300개가 넘는 예언(500년이 넘게 각기 다른 목소리에 의해 선포된)을 이루셨으며 그 중 29개의 중요한 예언들은 하루에-그가 돌아 가시던 날에- 이루셨다. 태어날 장소 - 미가 5:2, 그의 죽음 - 이사야 53장. 예수님이 이 모든 예언들을 완성하기를 원했던 사기꾼이었다면 그가 태어났어야 하는 장소를 어떻게 미리 정할 수 있겠는가?

㉤ 부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사건은 기독교의 주춧돌이다. 그러나 이 일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무엇일까?

ⅰ) 그는 무덤에 계시지 않았다(요한 20:1-9)
실제 죽지 않았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쳤다, 권력자들이 시체를 훔쳤다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다.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았다는 증거 중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세마포에 대한 것이다. 나비가 날아간 후 '나비 고치의 빈 번데기 집 같은' 세마포, 예수님은 세마포 수의를 단지 한 과정으로 통과하신 것만 같았다. 요한은 이것을 보았을 때 별로 놀라지도 않고 믿었다(요한 20:8).

ⅱ)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누가 24:36-43)
이것들은 환각일까? 환각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외부의 물체를 분명하게 지각하는 것이다. 6주에 걸쳐서 11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승천 이후 나타나시지 않았다. 더구나 5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다. 더구나 예수님은 만져질 수 있었고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도 하셨다. 이 모두가 제자들의 환각일까?

ⅲ) 사회에 미친 즉각적인 영향 - 교회가 탄생하고 급속도로 성장해 갔다.

ⅳ) 시대를 통한 수많은 크리스챤들의 경험
가: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나: "어떻게 그걸 압니까?"
가: "왜냐하면 저는 오늘 아침에 그 분과 10동안 얘기했기 때문이죠."

3. 결론

이 장의 앞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실제로 가능한 경우는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아니면 미친 사람이었든지, 아니면 그보다 더 끔찍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증거를 살펴 볼 때, 그가 미쳤다거나 악마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의 가르침, 그의 업적, 그의 인품, 구약 예언의 완성, 죽음의 정복 등의 중요성을 살펴볼 때 그런 주장들은 터무니없고 비논리적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께서 스스로가 하나님의 신분을 가지신 인간임을 자각했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2.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는가?

왜 십자가 죽음에 주목하는가?
다른 성인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신약성서에서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는 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1) 인간에게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난 행복해요. 선한 삶을 살고 있죠.'라고 말할 수는 있다.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는지를 이해하려면 우리의 중요한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잘못임을 알면서도 우리가 범한 일들이 있음을 인정할 것이다. 바울은 기록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로마서 3:23). 하나님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생각과 말과 행실로 지은 죄를 다 적는다면 사람들은 나를 사악한 괴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죄의 근원은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이며(창세기 3장) 그 결과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다.

ⅰ) 죄로 인한 오염
마가 7:20-23,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야고보 2:10, "누구든지 계명을 다 지키다가도 한 조목을 어기면 계명 전체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ⅱ) 죄의 힘 나쁜 짓은 중독적인 힘이 있다.
요한 8:34,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죄를 짓는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노예이다."

ⅲ) 죄의 대가
인간의 본성에는 정의를 갈망하는 본성이 있다. 타인이 자신에게 죄를 범했다면 그를 복수하려고 한다. 그것은 정의심의 일종, 정의로운 분노이다. 그렇다면 당신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로마서 6:23,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ⅳ) 죄로 인한 분리
성경에서 발하는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결과를 낳는 영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시작된다.

이사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해 내지 못하시겠느냐? 귀가 어두워서 듣지못하시겠느냐?너희가 악해서 너희와 하나님 사이가 갈라진 것이다. 너희가 잘못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워 너희 청을 들으실 수 없게 된 것이다."

2) 하나님께서 하신 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이다. 우리 자신의 필요를 깊이 깨달을수록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커질 것이며 따라서 그를 섬기고자 하는 바람도 더욱 커질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를 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는 위를 대신해서 죽으시기 위해서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해 이 땅에 오셨다.

고후 5:21,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무죄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3:13,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 받을 자다' 라고 성서에 기록되어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자기 대리" - '친히 대속하심'이라고 한다(벧전 2:24, "그분은 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살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매맞고 상처를 입으신 덕택으로 여러분의 상처는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리자로 오셨다. 그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셨다.

십자가 처형의 고통, 그의 고통 중에 가장 처참한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이나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정서적인 고통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겪게 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분리되는 영적인 고통이다.

3) 그 결과는 무엇인가?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많은 단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십자가 역시 많은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네 가지 이미지로 설명할 수 있다.

ⅰ) 법정의 이미지- 의롭게 됨
로마서 3:24-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 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롭게 함(justify)은 법적인 용어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 : 그는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지만, 그는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내려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으셨다.

ⅱ) 시장의 이미지- 빚을 지불함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됨.
마가 10:45, "- 몸값을 치르러 온 것-". 이렇게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요한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에게 자유를 준다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 이 말은 우리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죄의 지배력이 깨어졌다는 것이다.

ⅲ) 성전의 이미지 구약의 속죄제
히브리서10:4, "황소와 염소의 피로써는 죄를 없앨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리자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 죄를 없앨 수 있다. 왜냐하면 오직 그만이 완벽한 삶을 살았기에 그분만이 완벽한 희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피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 주며(요한1서 1: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의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줍니다.") 죄로 인한 오염을 없앨 수 있다.

ⅳ) 가정의 이미지
죄의 뿌리와 결과는 둘 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십자가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가능성이다.

고후 5:19,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각자를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보통 아버지가 그 자녀와 친밀해 지고 싶듯이 우리와 친해지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단순히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신을 위해, 그리고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다.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갈라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이렇게 개인적인 관계에서 바라보게 되면, 삶은 변화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왔는가가 의심스럽다면 여기 크리스챤의 삶을 시작하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면서 이루어 주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 인생에서 잘못한 일을 뉘우칩니다. (잠시 자신의 죄를 돌이켜 봅시다. 특별히 떠오르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잘못된 일들로부터 돌이키려 합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도록 하시어 제가 용서를 얻고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하여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지금부터 예수님을 저의 주님으로 따르고 순종하겠습니다. 당신의 용서와 성령을 선물로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는 그 선물을 지금 받겠습니다. 부디 제 삶 속에 오셔서 저와 함께 계셔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3. 어떻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 나의 인생이 지루하지 않을까?
하지만 기독교의 진리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인생을 조금 더 즐기다가 죽기 직전에 신앙을 가지면 되겠지만, 그러나 나의 죽음의 때를 알 수 있을까? 그 죽음을 너머 선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영원히 계속된다.
이 진리를 외면한 채 산다는 것은 너무 비양심적이지 않는가?

기독교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바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될 때 경험은 서로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요한 1:12, "그러나 그분을 맞아 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크리스챤임과 영원한 삶을 가졌음을 확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요한1서 5:13 -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성삼위 세 분 모두의 역할에 확고한 기초를 두고 있다. 성부께서 그의 약속으로 주시는 말씀들, 성자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주시는 확신이 그것이다. 이들은 세 개의 제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공로, 그리고 성령의 증거이다.

1. 하나님의 말씀

신앙은 체험으로 확신할 수 없다. 기분은 바뀌기 쉽고 믿을 수가 없다. 성경에 있는 약속들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며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3:20,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 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 라파엘 전파의 화가인 홀만 헌트의 그림, '세상의 빛'.
우리가 일단 예수님께 들어오시라고 청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우리가 직접 그 분과 대화하지 않더라도 그 분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약속은 다른 성서의 약속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요한 10: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면서 얻게 되는 삶의 질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져다 주신 삶의 질을 경험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요한 10:10,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영원까지 계속된다.죽음을 너머 선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영원히 계속된다.

현재의 삶이 끝이 아니다. 무덤을 넘어선 삶이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는 순환적이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정점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실 것이다(계시록 21:1,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이다.

2. 예수님의 업적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나? 참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피의 공로로 우리는 죄의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즉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이루신 일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음을 확신하는 두 번째 이유인 것이다.
요한 3:16,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3. 성령의 증거

누구나 크리스챤이 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기 위해 오신다(로마서 8:9,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로 그는 우리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킨다.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의 성품을 빚어낸다. 성령의 열매(갈라 5:22-23,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성품이 변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맺는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도 변해야 한다.

* 당신은 당신의 삶 속에서 아래의 변화 중 어떤 것을 이미 체험하였는가?

1)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사랑
2) 다른 크리스챤을 만나고 싶은 마음
3) 용서의 확신
4) 타인을 향한 새로운 관심
5)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함
6) 성경을 읽고 싶은 욕망
7)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은 마음
8) 교회에 가는 것이 즐거워 짐

두 번째로 우리 삶 속에서 보여지는 변화 외에, 성령은 하나님에 대해 은밀한 경험을 갖게 하신다. 그는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도록 하신다(로마 8:15-16,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 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마음 속에도 그러한 확신이 있습니다").

이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확신할 수 있고 우리가 용서 받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세 번째 이유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객관적으로는 우리의 성품에 나타나는 지속적인 변화와 주관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확신을 통해 우리에게 증거하시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업적, 성령의 증거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확신하는 것은 교만이 아니다. 우리의 확신은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님의 죽음이 이루신 일과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이 하시는 일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특권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음과 용서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 우리가 크리스챤임을 확신하는 것,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가졌음을 아는 것이다.



4. 왜 그리고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성경이 우리 각자에게 '즐거움' 될 수 있는지를 성경이 가진 독특함을 통해 살펴 보자.

첫째, 성경은 인기가 높다. 성경은 매년 가장 잘 팔리는 책이다.
둘째, 성경은 힘이 있다. 성경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가면서 어떻게 수천의 다른 장소에서 개개인의 영혼을 울려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 새로운 믿음, 새로운 사고 방식, 새로운 신앙으로 인도했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셋째, 성경은 소중하다.

성경은 왜 그토록 인기가 많고 그토록 힘이 있으며 귀한 것일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 4:4). 말씀은 현재 시제로 되어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계속해서 대화 나누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백성들과 대화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주로 성경을 통해서이다.

1. 삶의 지침서 -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계시)

1)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창조를 계시한다.

기독교는 계시를 통한 신앙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셨다(히 1:2). 예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였다.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이다.

2)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다.

"성경은 전부 하나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딤후 3:16)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뜻은 "하나님의 숨결로 만들어진"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을 대리인으로 사용하셨다. 성경은 100% 사람의 작품이다. 그러나 100% 하나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신 것처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마가 7:5-13).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고 고백한다면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와 같아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입장은 역사적으로도 보편적인 교회의 입장이었다. 이레리우스(130-200) : "성경은 완벽하다". 마틴 루터 : "흠이 없는 성경". 로마 카톨릭 : "성령의 영감 아래 쓰여졌으며 -----하나님이 그 저자이시다".

물론 난해한 부분도 알기 어려운 모순된 부분도 있다. 일부 어려운 문제들은 저자들이 글을 썼을 당시의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성경이 1500여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왕, 학자, 철학자, 어부, 시인, 정치인, 역사가, 의사 등 적어도 40여 명의 저자들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역사서, 시, 예언, 계시, 편지 등과 같은 서로 다른 문학의 형태로 글을 썼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성경은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을 바꿀 것이다.

3)성경은 삶을 위한 삶의 지침서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임을 받아들인다면, 성경의 권위는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최고의 근거가 되어야 마땅하다.
성경은 모든 신조와 행위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딤후 3:16, "성경은 전부가 하나님이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 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효력을 가진 권위가 사람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혼란에 빠지고 만다.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책이고 인생의 지침서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 책이다. 그분의 뜻을 더 많이 발견하고 실천할수록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 질 것이다. 이미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는 그 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를 들을 필요가 있다.

2. 하나님이 보내는 사랑의 편지 -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관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분은 그의 말씀을 통해 매일 우리에게 이야기하길 원하신다. 성경은 삶의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편지이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요한 5:39-40,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 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분을 만나지 못한다면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아기예수가 누워 있는 구유이다. 구유를 살펴보느라 아기에게 경배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도록 하자."

하나님과의 관계는 마치 왕복 차선과도 같다. 우리는 그분께 기도로 이야기하고 그분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특히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As the Holy Spirit says"(히브리서 3:7) 성령은 과거에만 말씀하셨던 것이 아니라 이미 말씀하셨던 것을 통해 새롭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첫째, 믿지 않던 사람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신다. 로마서 10:17.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은 자주 있다.
둘째, 신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험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배울 때, 그분과의 관계는 자라나며 그분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도 깊어진다.

3.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실제로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

1) 시간 - 하나님과 만나는 정해진 시간을 드려야 한다.
2) 장소 - 한적한 곳으로 나가야 한다. 마가 1:35에 나온 예수님의 모습
3) 방법 - 성경을 읽기 전 성령께 믿음으로 기도한다. "성령님 이 말씀을 통해 내게 말씀하소서."
그 다음 적당한 본문을 정하여 2~3번 정독한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고 어떤 의미인지를 관찰하며 하나님께 물어본다. 그리고 그 내용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 것인지를 기도하고 실천하라. 가능하면 받은 은혜와 감동을 타인과 함께 나누라.

4. 시편 1편 -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라고 격려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삶에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첫째, 열매를 맺게 된다. 3절. 우리의 유익만이 아닌 타인이게도 축복이 되는 삶.
둘째, 주님과 함께 걸으면서 어떠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힘을 얻을 것이다. 3절.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는 사람은 '하는 일마다 다' 잘될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삶에 있어서 진정 중요한 일 -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일에 있어서 풍요로워 질것이다. 이것들은 물질적인 부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당신이 성경을 당신의 즐거움으로 삼기를 바란다.



5. 왜 그리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 가지 경우에 기도한다. 미신적인 두려움을 느낄 때, 위기에 부딪쳤을 때. 믿는 사람도 위기에 처했을 때만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어떠한가?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를 키워간다. 기도는 의식(ritual)이 아니라 관계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이다. 수직적인 대화이다. 기도는 다른 사람에게, 혹은 우리 자신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에 있어서는 관계가 중요하며, 우리가 기도할 때는 성삼위 모두가 귀를 기울이신다.

크리스챤의 기도는 '아버지께 하는' 기도이다.

(마태복음 6:9) "하늘에 계신 아버지"-인성을 넘어서신 분이면서 인격이신 하나님,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 분 앞에 나아갈 수 있고 그를 아바(Abba)라고 부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권리를 가졌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다'. 그는 전능하신 힘을 가지신 분이시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주의 창조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힘은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이해하는 데에 온전히 달려 있다'(앤드류 머레이).
기도할 때 우리는 우주와 시간을 초월하여, 그 모든 것에 내재해 계신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우주보다 더 크고 강하시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그곳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

크리스챤의 기도는 '아들을 통한다'.

(에베소서 2:18) "그래서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들어 주실 것이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로 나갈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끝맺음은 형식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크리스챤의 기도는 '한 성령 안'의 기도이다.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사시면서 기도하는 것을 돕도록 하셨다.

(로마서 8:26-27)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 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

왜 기도하는가?

기도는 생명이 걸린 행동이다. 기도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관계를 키워가는 길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아셔도 대화가 없으면 관계는 발전돼지 않는다. 간구 외에 감사, 찬양, 경배, 고백, 경청 등의 기도가 있지만 우리가 간구함으로 응답 받는 것을 볼 때 그분과의 관계가 자라난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고 우리에게도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막 1:35, "다음 날 새벽 예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
또 예수님은 기도에는 그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우리 자신을 바꿀 뿐만 아니라 상황을 바꾸기도 한다- (마태복음 7:7-8)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안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기독교를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만-왜냐하면 냉소자들은 언제나 우연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에-우리는 그 우연이 쌓여갈수록 우리의 신앙이 깊어진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마태복음 7:7-8)과 전체적인 성경의 관점- 기도의 응답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
그것은 먼저 고백하지 않은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장벽을 만든다. (이사야 59:1-2) "야훼의 손이 짧아서 구해 내지 못하시겠느냐?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겠느냐? 너희가 악해서 너희와 하나님 사이가 갈라진 것이다. 너희가 잘못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워 너희 청을 들으실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와의 관계 속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적은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대하기 전에 먼저 그 벽이 없어져야 한다. 크리스챤이라도 하나님과의 우정은 죄나 불순종으로 인해 손상될 수 있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고백하고 그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우리의 우정이 회복되며 그분께 확신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게 된다(요한1서 3:21-2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동기도 구하는 것을 받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야고보서 4:2-3, "여러분은 욕심을 내다가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남을 시기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싸우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간구가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응답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마태복음 7:11,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즉각적으로나 혹은 궁극적으로 유익하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안 된다'고 대답하실 것이다"(존 스토트).

기도의 응답은 '좋다', '안된다', 혹은 '기다려라' 중에 하나이다.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성경의 약속은 때로 제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신다"고 기록했다(요한1서 5:14).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 분의 뜻을 더욱 잘 알게 되며 더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기도하는데 정해진 방식은 없다. 다만 의미 없는 말을 되풀이하지 말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방법의 실례 - ACTS.

Adoration(경배) : 하느님의 성품과 그가 행하신 일들을 찬양
Confession(고백) :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 하느님의 용서를 구함
Thanksgiving(감사) : 건강, 가족, 친구들에 대해서 감사
Supplication(간구) : 자신을 위해, 친구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간구
중보기도, 주기도문, 합심 기도(마 18:19), 통성 기도(행 12:5)

언제 기도해야 하나?

'항상'(살전 5:17, 엡 6:18). 어디에서나, 가능하면 이른 아침에 성경 읽기와 기도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기도는 기독교의 중심부에 있다. 기독교의 중심부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인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말을 비웃는다.
사탄은 우리의 수고를 조롱한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기도에는 벌벌 떤다.“



6.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걷는 사람들을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시편32:8) "나는 너를 가르쳐 네 갈 길을 배우게 하고 너를 눈여겨보며 이끌어주리라".
(요 10:3-4) 목자와 양,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에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엡2:10)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삶에 가장 좋은 것을 바라신다.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시다'(롬 12:2).

(예레미야 29:11)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 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 주지 않고 잘 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싶다면,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그의 조언을 구하지 않고 계획을 착수하시는 것을 보고 경고하셨다.

(이사야 30:1-2)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식들아, 너희가 나에게 물어 보지도 아니하고 일을 꾸미며 내 뜻을 알아 보지도 아니하고 동맹을 맺어 죄 위에 죄를 더하는구나. 나에게 묻지도 아니하고 에집트로 내려 가 파라오에게 기대어 몸을 숨기고 에집트의 그늘에 숨으려는 자들아,"

물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한 가장 훌륭한 본보기이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성령에게 이끌려'(눅 4:1) 다니셨으며, 오직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었다(요 5:19).
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주님께 물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옳다고 고집을 부릴 때보다는, 그의 뜻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를 인도하신다.

"겸손한 자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십니다"(시편 25:9).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계획을 털어 놓으시고 당신의 계약을 가르쳐 주시리라"(시편 25:14절).
"그에게 앞날을 맡기고 그를 믿어라. 몸소 당신께서 행해 주시리라"(시편 37:5).

우리가 할 일을 주님께 묻고 그를 의탁하고 그분께서 몸소 도아주실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우리가 기꺼이 하기로 했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대해야 하는가? 종종 다섯 개의 "C.S."라고 불리우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복합적이기도 하다.

성경을 통한 명령(Commanding Scripture)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나타나 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일들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일단 성경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더 이상 찾아 볼 필요가 없다. 따라서 규칙적으로 정성을 들여 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습관을 길러 나가면 매일 매일 성경 구절이 우리가 처해있는 특별한 상황에 얼마나 꼭 들어맞는지 놀라게 된다.

성령의 통제(Controlling Spirit)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매우 개인적이다. 신자가 되면 성령이 우리 안에 살게 된다. 그리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그의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0:4-5). 예수님을 더 잘 알게 될수록,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예를 들자면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비타니아 지방으로 가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행 16:7).

1. 그분은 종종 우리가 기도할 때 말씀하신다.

기도는 오고 가는 대화이다. 기도 중에 음성이 들려오는데 어떤 방법으로 말씀하셨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다. 어떤 강한 느낌이 있다. 분명히 그런 생각과 느낌은 시험해 보아야 한다(요일 4:1).
그것이 성경과 일치하는가? 사랑을 키우는 것일까?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인가(요일 4:16)? 그렇게 결정하였을 때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가(골 3:15)?

2.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강한 소망을 주심으로 말씀하신다.

(빌립보서 2:13)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의지를 내어 드리면 그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종종 우리의 소망을 바꾸어 놓으신다.

3. 하나님께서 때로 특이한 방법으로 인도하신다.

육체적인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사무엘상 3:9-11)
천사를 통해(창세기 18장, 마 2:19, 행 12:7), 예언자들을 통해(행 16:10)
환상을 통해(행 16:10), 꿈을 통해(마 1:20, 2:12-13).

상식(Common Sense)

(시편 32:9) "부디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말아라".
신약의 저자들은 자주 우리에게 생각하라고 격려한다.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제재한 적은 한번도 없다(딤후 2:7,"주께서는 모든 것을 다 깨닫는 힘을 그대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생각할 문제까지 해결해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존 스토트

성도들의 조언(Counsel of the saints)

(잠언 12:15)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잠 15:22, 20:18)

조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선택은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정은 우리의 책임이다.

조언이 필요할 때 누구와 의논해야 하는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므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조언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상황적인 증거들(Circumstantial signs)

모든 사건의 궁극적인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서두르지 마시오

신뢰 속에 기다림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오래 참은 끝에 그 약속을 받았다'(히브리서 6:15). 기다리는 중에 자신의 방법을 의지하다가는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창세기 16장, 21장). 때로 정확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만, 그 시기를 잘못 아는 수가 있다-요셉의 예. 인도라는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 그것을 가지고 좋은 것을 만들어 내실 수 있다. 그것이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우리가 가진 것을 그분께 드리고 그분의 영과 협력하면 말이다.

바울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느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롬 8:28).
우리가 더듬거리며 우리의 부분을 연주하면 -읽고, 듣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기다리면서 그분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 곁에 앉으시며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7. 성령님은 누구신가?

사람의 변화, 그 원인은 무엇인가? - 성령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 무시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에게 집중되어왔던 교회의 시선
2. 오해되어 왔다.
1) 성령은 유령이 아니라 한 인격이시다.("그 분"이지 "그 것"이 아니다.)
2) 그분은 다스리기를 원하신다.

성령은 인격이시다. 그 분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특성을 가지고 계신다. 생각하시고(행 15:28), 말씀하시며(행 1:16), 인도하시고(롬 8:14) 또한 슬퍼하신다(엡 4:30). 그분은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시는 방법이다. 어린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이다.

성령은 그리스 원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고 묘사되기도 하는데(요 14:16) 그 의미는 "함께 나란히 불려오는 자"-보혜사, 위로하는 사람, 용기를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다른"이라는 말은 "같은 종류의"라는 뜻이다.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다는 것이다.

성령은 창조에 참여하셨다.

(창세기 1:1-2) 새로운 피조물들을 있게 하시고 혼란으로부터 질서를 이끌어 내셨다.
(창세기 2:7) 사람의 창조 - 생명의 기운(루아흐, ruach : 영), 메마른 삶에 생명을 주는 근원.

성령은 특별한 일을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람에게 찾아 오셨다.- 구약성서에서
1. 예술가 브살렐(출 31:3-5) - 예술적인 작업을 위해, 물론 선천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이 다르다.
2. 지도자 기드온(삿 6:14-16, 34) - 지도력을 위하여
3. 강한자 삼손(삿 15:14-15) - 힘(물리적인 밧줄과 심령의 밧줄 - 성령의 능력으로 끊어냄)
4. 예언자 이사야(사 61:1-3) - 예언을 위하여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때론 무력감을 느끼는 나 - 삶이 무너진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 안에 흘러 넘칠 때 나도 진정으로 그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영원토록 지속되는 도움을 줄 수 없다.

성령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이시다.

(예레미야 31:33) 새 언약(신약), 먼 길을 갈 때는 식량을 짊어지고 떠난다. 그러나 그것을 먹고 나면 무게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속에서부터 나오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내적인 힘의 원천
1.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에스겔 36:26-27)- 새 마음, 살갗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만드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부드러운 마음과 굳은 발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굳은 마음과 부드러운 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키 플린저(홍콩 사역자)

2. 성전에서 흐르는 강물(에스겔 47장)

3. “내가 내 신(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요엘 2:28-29)- 새 백성,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강림의 약속. 이 약속은 오순절에 성취되었다.

신약성서에서

세례 요한은 성령님을 예수님과 연결한다(누가복음 3:16)

1. 세례 : '흘러내려 온전히 감싸다', '물 밑으로 완전히 잠기다', '힘차게 뛰어들어 빠지다'.
성령으로 세례 받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완전히 감싸지고 담그어지며 그 속에 빠지게 된다.

마른 스폰지가 물에 들어가는 것(세례)과 물이 스폰지 안에 스미는 것(충만함)은 별개의 일일 수 있다. 스폰지가 물로 가득차면, 물은 스폰지에서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온다.

2. 예수님은 완전히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누가복음 3:22, 4:1, 14-19)

예수님은 성령의 임재를 예언하였다.

1.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누가복음 24:49)
(사도행전 1:8) - 10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2. 오순절날에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했고, 성령을 받았다.
(사도행전 2:2-4) 오순절 성령강림과 충만. 성령이 부어지고 아버지의 약속이 이루어 졌다.
- 새로운 언어(행 2:4), 새로운 능력(행 2:37-41).

(사도행전 2:38-39) 우리는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버지의 약속은 이루어 졌다. 모든 크리스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버지의 약속을 받았다.




8.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1.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요 3:5-7)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로 예수님께서 처음 사용하신 표현이다.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만날 때, 새로운 영적인 존재가 창조된다. 영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탄생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너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의미하신 바이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자가 될 때 일어나는 일이다. 모든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2. 우리는 영적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면 크리스챤 가족에 속하게 된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중 많은 부분은 가족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성령은 우리에게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확신을 주시며 그 관계를 키워나가도록 도우신다. 그는 우리를 가족처럼 서로 닮게 하신다. 우리를 형제 자매로 묶으시며 가족의 각 성원에게 서로 다른 재능과 능력을 주신다. 또한 가족의 크기가 자라나게 하신다.

우리가 신자가 될 때까지 성령께서 주로 하시는 일은 우리에게 자신의 죄와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시고 진리를 확신하게 하셔서 그분을 믿도록 하는 일이다(요한 16:7-15).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1. 완전한 용서(롬 8:1-2)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그 순간 우리는 완전한 용서를 받는다(롬 8:1). 성령은 지나간 일을 없던 것으로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들 딸로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이것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만 주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한 1:12)로서 영적인 신분을 말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롬 8:14-17)
1) 최고의 특권: 무엇보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 보다 더 좋은 특권은 없다. '양자의 영(14절)'
2) 최고의 친밀함: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가장 가까운 친밀함을 소유한다. 성령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다(15절).
3) 최고의 경험: 성령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험을 우리에게 주신다(16절).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알기 원하신다. 내가 나의 자녀들이 그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과 그들과 나의 관계를 알고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그 사랑과 그 관계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를 바라신다.
4) 최고의 안전: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이 가장 마음 든든한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이기 때문이다(17절).

관계를 발전시켜 주신다(에베소서 2:18)

태어남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더욱 성숙해지고 깊어진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도록 도와주신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이끄신다. 예수님을 통해, 성령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엡 2:18).

1.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로마 8:26).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형식으로 얼마나 길게 기도하느냐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느냐 아니냐 이다. 모든 기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2.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신다(엡 1:17-18).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시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도록 하신다.

궁극적으로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밝혀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다. 지식은 쌓아갈 수 있겠지만, 진정한 이해는 많은 경우 '믿음'으로만 생겨난다.

성 어거스틴- "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성령을 믿고 받을 때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하신다.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이끄시는 것은 성령이며 그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도 성령이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 완전히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처럼 닮게 하신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다 보면, 성령이 우리의 모습을 바꾸신다.
1. 성령의 열매가 자라게 하신다(갈 5:22-23)
(갈라디아 5:22-23) 성령의 열매 :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2. 점점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신다.
우리가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고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가 풍기게 되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이다.

가족 안에서 하나되게 하신다

1. 예수님은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하셨다(요한복음 17장).
2. 바울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됨을 간절히 호소했다(에베소서 4:3-6)
모든 크리스챤은 한 성령을 모시고 있다. 어느 교단 종파이든 중요한 것은 성령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이다. 성령이 그 안에 계시면 그 사람은 신자이고 우리의 형제이고 자매이다. 이 커다란 가족의 일부가 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신자의 기쁨 중에 큰 것은 일치의 기쁨이다. 친밀하고 깊은 관계, 이것은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으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힘써야 한다.

모든 자녀에게 은사를 주신다(고전 12:7-11)

식구의 다양함, 자식은 서로 다르다. 모든 신자도 서로 다르다. 각자가 헌신해야 할 바가 다르고 그 재능도 다르다. 성령께서 주시는 아홉 가지 선물이 있다(고전 12:7-11).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하나님과의 관계
병 고치는 은사, 기적 행하는 은사, 예언의 은사- 이웃과의 관계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내 자신과의 관계
그 밖의 다양한 은사 - 고전 28-30, 엡 4장, 로마서 12:7, 벧전 4장

"각 사람에게"주시며, "공동의 유익-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많은 은사를 갖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지만, 가진 것을 더 사용하고 더 많은 것을 소망하기를 요구하신다.

가족의 성장

하나님의 가족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 역시 성령의 일이다.
(행 1:8)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싶은 욕구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함께 주신다. 성령을 경험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와 함께, 가족은 성장한다. 크리스챤 가족은 그 성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로마서 8:9)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
(에베소서 5:18)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현재진행형 시제.
(계시록 22:17) 그의 영으로 채우라. 만약 당신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바라는 목마름이
없다면 그 목마름을 달라고 기도하라. 우리가 목말라 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생명의 물'을 거저 주실 것이다.



9.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
가스 보일러의 비유 - 평소에는 불씨만 있다. 점화가 되면 불길이 일어난다.

성령으로 충만해 질때 무슨일이 일어나는가?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이야기(사도행전 2:2-4) - 오순절 성령강림과 충만 : 새로운 언어(4-12절), 새로운 담력(14절), 새로운 능력(37-41절).

이상적으로 모든 신자가 성령으로 충만해야겠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기도하자 성령이 그들 위에 임했다. 그 때 감동받은 마술사 시몬이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돈으로 사려했다(14-18절).

사도행전 9장에서는 성경에서 가장 멋진 회심의 사건이 나온다. 그것은 사울의 회심이었다. 그가 다메석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두 번째로 그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17절).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에베소에서의 성령 강림(행 19:1-7) : 성령에 대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 성령이 임하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다니고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 이방인 그리스도인인 고르넬리요의 회심과 성령 충만 (행 10:44-46)

이들에게 일어난 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떠한 체험을 했는가?

1. 성령의 힘을 체험 하였다(사도행전 10:44-45)

사도행전 2장의 그림은 넘쳐흐르는 성령의 힘을 묘사하는 그림이었다. 물리적인 현상도 있었다. 그들은 강풍과 같은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2절). 그것은 하나님의 ‘루아흐’의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었다. 또한 불 같은 것을 보았다(3절). 불로 상징되는 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영이 우리 삶에 주시는 힘과 열정, 순결의 상징일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체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것일 수 있다( 엡 3:18-19).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해지면"-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기까지,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으로 경험하는 일이 종종 있다.

2. 찬양 속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자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찬양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어 감격하고 감동하는 사람들의 언어이다. 그것에는 감정을 포함한 우리의 인격 전체가 관여된다.
우리 대부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험은 감상주의가 아니라 감정이 모자란 것이다. 느낌이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에는 반드시 감정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우정, 의사소통, 이해 그리고 봉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무 감정도 경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격 전체가 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고 예배 드리도록 부름 받았다.
다만,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확고한 기초보다 감정이 우선순위에 있었을 때는 감상주의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 의지와 감정 등 우리의 모든 인격이 포함되어야 한다.

3. 새로운 언어를 받았다.

성령의 충만해진 이방인들은 방언의 선물을 받았다. 배우지 않은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일 수도 있고(고전 13:1)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일 수도 있다(오순절). 방언 은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축복을 가져다준다.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로서, 최초의 성령의 초자연적인 활동을 보다 분명하게 경험하게 해 준다. 물론 성령 충만함이 방언을 다 동반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방언으로 말한다는 것은 하나의 기도 형식이다.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것이다"(고전 14:2). 신자가 자신의 덕을 세우는 기도 형식이다(4절). 방언의 이점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도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영으로 느끼는 것을 말로 옮기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께 바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14절에서 "이성으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은 방언 기도가 비이성적인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지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이성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방언의 은사는 찬양과 예배,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도움을 준다.
방언 기도가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할지라도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남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을 끼칠 수 있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신앙 생활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다른 은사를 받는 통로가 되었다.

바울은 공적 예배에서 무절제한 방언의 사용을 금지 시켰지만(고전 14:19),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적극 격려하고 있다(5절, 18절).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방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다.

방언의 은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성령님과 협력해야 한다. 이 말은 인격적인 성령님께 마음을 열고 사모하며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 충만에 방해되는 것은 무엇인가?(누가복음 11:9-13)

의심(9, 10절)
두려움(11-13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함

기도 :
1. 하느님께 성령을 받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
2. 당신의 삶에서 잘못임을 알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버린다.
3. 하나님께 성령으로 채워주시고 방언의 선물을 달라고 기도한다.
4. 입을 열고 당신이 알고 있는 다른 언어 외의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5. 받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는다. 누구도 당신이 한 일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당신이 한 일일 수 없다).
6. 인내해야 한다. 말이 늘려면 시간이 걸린다. 은사를 개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성령 충만은 한번의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에서 4장 사이에 3번의 충만함을 받았다. 에베소서 5:18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라고 말할 때, 그는 현재 진행형 시제를 쓰고 있다. 그들과 우리에게,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


10과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최대한 선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 한번의 삶을 얻는다. 과거에 실수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남아 있는 삶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로마서 12:1-2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본받지 마십시오.

신자로서 우리는 주위의 세상과 달라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구별되어져야 하며 신자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신자는 카멜레온이 되기보다는 번데기가 되어야 한다. 번데기는 나비로 변화되는 것이다. 카멜레온은 기독교가 아닌 환경 속에서는 서슴없이 그들의 기준을 바꾼다. 카멜레온을 겨자 무늬 위에 두면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린다. 카멜레온 신자는 살면서 견딜 수 없는 긴장을 경험한다. 번데기 신자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잠재력에 미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자들은 자신의 뒷 배경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 달라야 한다. 이상해지라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인격을 완성 시킨다. 예수님을 닮아 갈수록 우리는 더욱 '정상'이-더욱 온전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의미- 되어간다.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을 타락시키는 형식과 관습을 자유롭게 떨쳐 버릴 수 있다.

인신 공격, 투덜거림, 비윤리적인 성에 탐닉함 --- 등.

세상이 우리를 그 틀에 끼워 맞추지 못하게 하자. 세상에 무언가 훨씬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도록 하자. 빛이 빛날 때, 사람들은 그 빛에 끌리기 마련이다.

변화를 받으십시오.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번데기와 같이 되어야 한다. 익숙해진 것을 버리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쓰레기같은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신다. 쓰레기를 버려야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즐길 수 있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십시오'(9절)
로마서 12:9-21 ; 거짓이 없음(9), 주님을 위한 열심(11), 한마음이 됨(13-21).

여러분의 몸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1절). 의지가 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 전부와 우리의 삶 전부를 드리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시간 -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 순위를 : 예배 생활, 개인의 경건 생활
우리의 소망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우리의 소유와 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재산 축적과 물질에 건강하지 못한 집착, 돈을 의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마 7:9-20).
우리의 귀를 주님께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우리의 입술을 - 야고보서의 권면(3:1-12),
우리의 손, 우리의 성(性)

산 제물로

귄리 포기, 자기 부인, 순종과 헌신
- 대가를 치르는 삶, 그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

사단의 가장 큰 전략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집어넣어 주는 것.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 못되며 즐거움을 방해하고 우리 인생을 망치고 싶어한다.
때로 우리는 이 거짓말을 믿는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그분의 가장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벽한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작은 희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감수하신 희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히브리서 12:1-2,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 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얽어 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 갑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지금은 하나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십자가를 견디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면 우리에게서 좋은 것을 빼앗아 가지 않으시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로마서 8 : 32,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께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신자로서 삶을 살고자 하는 원동력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가, 또한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걸어가고 그분께 사랑을 받고 평생 동안 그분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그것은 가장 보람되고 완전하며 최선의 삶을 사는 방법이다. 바로 여기에서 삶의 커다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된다.

출처 : 말씀&기도로 성장하는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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