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스크랩] 신앙의 기준은 성경이다.

수호천사1 2019. 2. 20. 11:49

 신앙의 기준은 성경이다.


신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신앙의 기준을 삼아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이 기준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이나 타협이 없습니다. 성경이 죄라고 하면 죄요 아니라하면 아닙니다. 성경이 기준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기도와 찬송과 물질을 드린다고 해도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면 이방인들이 드리는 종교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로쿠르스테스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철로 만들어진 침대위에 사람을 눕혀보고 침대 길이보다 긴 사람은 긴 부분을 잘라서 죽이고 침대 길이보다 작은 사람은 키를 늘려 죽이는 악당으로서 후에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어떻게 죽임을 당하냐면 그가 행한 그대로 프로크루스테스를 철침대에 눕히고 그의 키가 철침대보다 길자 그의 다리를 잘라 죽였습니다.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라는 이 이야기의 의미는 자신의 어떤 절대적 생각을 정해놓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추려는 것에 대한 잘못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에도 기준이 있듯이 신앙생활에도 기준이 있습니다. 이 기준이 없으면 신앙은 올바른 신앙으로 자라지를 못합니다. 자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올바른 신앙을 가졌다고 착각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위 말씀을 보면 정통 기독교에서는 대단한 신앙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대단한 신앙을 가진 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저 평범한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즉 능력 있는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정도면 사실 대단한 신앙을 가진 자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인기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내게서 떠나라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불법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기를 중심으로 세운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저들은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불법이 아닌 법대로 신앙의 길을 가는 자들은 바로 좁은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넓은 길로 갑니다. 법대로 가는 좁은 길은 그 길이 좁고 협착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지를 않습니다. 그 길을 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이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길이요 영생입니다.

 

신앙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성경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 이야기처럼 자신이 만든 철침대를 기준으로 신앙을 이리재고 저리재고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사기 시대에 만연했던 것처럼 사람마다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라는 말입니다. 자기 생각에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성경이 기준이 아니라 자기가 기준이 되어 자기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니다입니다. 이것은 결국 자기의 만족을 이루는 종교행위일 따름입니다.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 이야기처럼 자기가 세워 놓은 생각이 기준이 되어 거기에 맞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무시하고 신사도운동, 은사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환상이나 예언등 이런 비성경적인 프로그램을 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것을 행하는 자들은 넓은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요 멸망 받을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참 성도는 이 넓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좁은 길을 가는 자입니다. 신앙고백과 성경 교리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체험이나 은사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곁길로 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선물로 주시는 모든 은사들은 다 우리의 감정과 말과 모든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에 무엇인가 다른 것이 끼어들었다면, 우리는 이미 곁길로 간 것입니다. 우리는 교리에 대해 별로 많이 들어 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심지어 어리석게도 자기들은 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딱하고도 유감스러운 태도입니다. 


교리는 성경 해석의 열쇠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성경의 교리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성경의 중요성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자신의 신앙과 삶의 유일무이한 법칙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모든 신앙의 근거와 대상은 바로 성경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앙의 기준을 체험이나 은사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체험과 은사를 가졌다고해서 다 구원을 받았다거나 참 신자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히브리서에는 이런 말씀을 있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브리서 6:4-8)

 

정통기독교에서는 기적(이적과 표적)은 사도시대의 종료와 더불어 종식되었고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한 방편이었으므로 사도시대 이후로는 사라졌숩니다. 그렇다고해서 정통기독교가 기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통기독교는 성경의 역사에 나타난 기적과 이적을 믿으며, 그것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이것을 행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적과 표적들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단의 거짓 역사가 많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데살로니가후서 2:9-10)

 

B.B 워필드는 초자연적인 은사는 사도시대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사도들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 목적이 달성된 후에는 은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고 말했으며, 칼빈도 안수로 베풀어졌던 이적적인 권능과 놀라운 이적은 끝났으며, 이것들은 단지 얼마 동안만 올바르게 지속되었다.  하나님이 이런 이적들을 중단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아주 져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왕국의 장엄함과 그 말씀의 위엄이 충분히 밝혀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도시대에 주셨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오늘날에도 있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의 사상은 비성경적이며,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도시대에 주신 현상이며 사도시대가 끝났을 때 성경의 완성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 기독교는 기적(이적과 표적)이나 지혜의 말을 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 전파하며,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역사를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8-21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참된 신앙은 눈에 보이는 어떤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식을 성령의 조명에 비침을 받아 알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http://churchofdavid.com/xe/sub3_4/9229



 


출처 : 예수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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