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상관관계
(제1원인자와 제2원인자와의 불가분의 상관관계)
Ⅰ.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책임)의 관계는 교회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논쟁돼 왔던 예민한 신학적 주제 중 하나다. 특히 원죄에 따른 인간의 전적 타락(depravity)과 전적 무능(inability)을 거부했던 펠라기우스주의(4세기)와 알미니안주의(17세기)를 이단으로 정죄하게 되자, 16세기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역사적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인간의 책임(자유의지)을 약화시키거나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극단적 칼빈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이후 5세기가 지난 현대 교회 속에서 위의 이런 양자 간의 반목과 갈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여전히 재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자유의지)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상호 반목과 충돌과 갈등으로 점철되는 이분법적 관계인가. 아니면 제1원인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이며 유기적인 상호 관계로 지음을 받음으로 쌍방 간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책임적 존재, 곧 제2원인자로서의 관계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역사를 따라 만사와 만물의 결국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진다(롬 8:28, 11:36, 마 10:29, 계 21:6). 이 과정에서 제2원인자인 인간의 자유의지(책임)가 제1원인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강제당하거나 강요당함이 없이 방편적으로 선용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의지는 선악 간에 자기 좋을 대로 발휘되지만 결과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뿐이다(요 11:49-52, 행 2:23, 4:27-28). 즉 하나님의 주권은 목적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목적을 이루는 방편적 기능을 담당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둘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며 의존적인 성격을 띤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이단적 신인 협력설(협동설)과는 본질에서 차별화된다.
Ⅱ. 펼치면서 :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함수관계
1.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한 성경적 근거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을 문자적으로 표기하지 않는다. 반면에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을 비유적으로 증거하는 고전적 증거본문은 확인된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 중 ‘야곱의 선택사건’(롬 9:10-18)과 ‘토기장이와 토기’(롬 9:19-21)의 비유를 통해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야곱의 선택과 관련해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겠다”(롬 9:15)는 말씀과,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롬 9:21)는 말씀은 공히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을 비유적으로 제시하는 증거본문으로 기능한다. 그런가 하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롬 11:36)는 말씀과, 미물에 지나지 않는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는 마태의 기록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이 구속사적 경륜에서 뿐만 아니라 세속사 속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증시해 준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으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
2. 인간의 자유의지의 성경적 근거
인간의 자유의지란 주제도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돼 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의 면류관으로써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는 자유의지 사상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1)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창 1:28)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책임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의 통치를 위임해 주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첫째로 사람이 모든 창조물의 면류관이며,
둘째로 하나님과 영적 교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인격적 존재로 지음 받았으며,
셋째로 만물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자로 임명되었으며,
넷째로 그러므로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통치함으로써 에덴을 문화명령의 결국인 명실상부한 하나님 나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막중한 역사적 책임과 사명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창 1:28/문화명령적 창조언약).
이는 창세전에 수립된 하나님의 구속경륜의 궁극적 목표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제1원인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는 일과 관련해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제2원인자로서 저들의 자유의지를 발동시켜 이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과 관련해 거듭난 성도들의 삶이 제2원인자로서의 역할과 기능으로 자유롭게 선용된다는 사실이다(자유의지의 발동).
(2) 선악과 금령(창 2:16-17) : 은혜가 요구하는 자율적 순종(책임과 본분)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창 1:28)은 자체 속에 은혜성을 띠고 있기에 자율적 순종의 요구가 담긴 ‘선악과 금령’을 명하셨다(창 2:16-17). 선악과 금령에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금령이 첨가되었다. 여기서 임의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사를 반영한다. 이는 본질상 자유의지와 상통한다(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그러나 자유의지를 발동시켜 금령인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음이 불순종의 형벌로 주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선악과 금령은 조건부적 조항을 담은 율법의 효시로서의 성격을 띠면서 시험적 요소를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악과 금령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여부는 적어도 표면상 제2원인자에 해당하는 아담의 자유의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자유의지의 발동 여부).
3.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유기적 상관관계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세상역사 속에서 진행되며 성취될 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떤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게 되는 것일까. 일방적이며 독립적일까. 배타적일까. 아니면 상호 보완적이며 의존적일까.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사색의 산물이나 사변적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변적으로 계시하지 않으셨다.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구약의 역사 속에서 언약을 방편삼아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들로 친 백성을 삼으셔서 친히 말씀하시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가운데 마침내 하나님의 신정왕국을 세우심으로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사실을 만방에 증시하셨다. 이 과정에서 신적 언약의 특성은 일방적이면서도 쌍방적이다.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은혜로 이스라엘 족장들과 언약을 맺어주신 것은 사랑에 기초한 일방적인 처사다(신 7:7-8). 그러나 언약의 당사자가 된 족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자율적인 책임과 의무가 본분과 도리 차원에서 요구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책임)는 일방적이거나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쌍방적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언약의 원리 안에서 상호 의존적인 교감과 영적 교통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원리는 신구약 역사를 막론하고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신앙적 원리이다. 이제 하나님의 주권과 책임(자유의지)의 상호 유기적이며 쌍방적인 관계와 작용에 관해 몇몇 내용들을 통해 살펴보자.
(1) 창세전 하나님의 구속경륜과 아담의 범죄와의 상관관계
성경의 총체적 계시역사에 기초한 성경신학(Bible Theology)적 관점에서 선악과 금령을 어긴 아담의 범죄(창 3:1-6)의 기원은 창세전에 수립된 삼위하나님의 구속경륜과 무관치 않다(엡 1:4-14).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4절)란 표현 속에는 문맥을 통해 7절에 소개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내포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란 묘사 속에는 창세기 1-3장에서 나타나는 ‘세상창조와 인간의 타락 및 구속사상’이란 언약적 주제들이 묵계적으로 잠재돼 있는 셈이다. 따라서 아담의 범죄는 ‘선 언약- 후 성취’라는 원리 속에서 결과적으로 필연적 사건이지 우연의 사건이 아닌 셈이다. 이렇게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담의 범죄가 우연이 아닌 필연적 사건이라면 하나님께서 죄의 조성자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정통 개혁신학에서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허용적 작정’이란 표현을 도입했다. 인간의 범죄의지를 예지하시고 허용하는 방식으로 작정했다는 것이다. 범죄의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기 위함이다. 다분히 변신론적 관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적으로 무시된 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임의대로 그릇을 만들 수 있듯이 그런 식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아담에게 작용해 하나님의 뜻대로 선악과 금령을 어기게 했다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당시 아담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을 신학적으로 극단적 칼빈주의(Hyper Calvinism)라 부른다. 하나님의 작정과 허락 없이는 피조세계 속에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원리에 근거한 해석이다(롬 11:36, 마 10:29).
사실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로 규정하게 되면 인간의 책임과 의무는 설 자리를 잃는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서 인간의 책임은 무의미하며 유명무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독불장군 식의 절대 주권자로만 계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셔서 유일한 인격적 교제의 대상으로 삼아주셨으며, 만물과 만사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관리하고 경영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책임적 존재로 적극 살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하셨다(창 1:28/문화명령).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결코 인간의 책임(자유의지)을 과소평가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더구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로만 규정하는 신학은 그것이 비록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을 부분적으로 편협 되게 반영한 매우 사변적이고 주관적인 신관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선(先) 언약하시고 후(後) 성취하시는 언약적 구속사의 점진적인 진행이란 관점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하나님과 그의 친 백성, 아버지와 자녀, 주인과 충성된 종의 관계를 통해 쌍방적이고 인격적이며 언약적인 관계로 정립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상호 호혜적이며 협력적인 결과를 도출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선악과 금령에 대한 아담의 범죄는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상호 반목과 갈등 및 충돌 없이 오히려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귀착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혀 강제당하거나 강요당함이 없이 인간의 전인을 통해 발휘되는 언행심사를 그것의 호불호와 무관하게 순리대로 선용하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담이 범죄 할 때 보이지 않는 외부의 절대 타자의 힘에 의해 억지춘향 식으로 강요돼 강제적으로 범죄 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뱀의 미혹과 이로 인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려는 악한 욕망의 발로가 한데 어우러져 적극적으로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이다. 이런 아담의 자의적인 범죄행위가 결과적으로 창세전에 수립된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경륜을 이루게 된 셈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호 충돌과 갈등 없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참고사항 : 율법의 효시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선악과 금령 수여의 궁극적 목적은 범죄를 더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베푸시는 중생과 사죄와 칭의 및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 하기 위함이다/롬 5:20-21, 3:19-20, 갈 3:24, 롬 11:32, 그런 의미에서 선악과 금령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는 복음이다).
(2) 횃불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요셉의 인생여정과의 상관관계
창세기 45:5-8, 시 105:17-19은 요셉의 고난과 승귀 및 하나님의 주권적인 경륜이 절묘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기술한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질투의 희생물로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오고, 무고죄로 고발돼 투옥된다. 감옥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준 요셉은 이 사건을 계기로 후에 바로의 꿈을 해석해줌으로써 일약 애굽의 총리로 전격 발탁된다(창 41장). 이 과정에서 곡식을 찾아 애굽을 찾아 온 형들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고 급기야 야곱의 70인 식구가 애굽의 고센 땅으로 이주한다. 성경은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과거 아브라함과 맺으신 횃불언약(창 15:11-21)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역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구속사적 사건임을 요셉의 입술을 빌려 기술한다(창 45:5-8).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 형들의 시기질투, 애굽에 노예로 팔림, 무고죄로 감옥에 갇힘,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몽, 애굽의 전역에 임한 7년 흉년, 바로 왕의 꿈 해몽, 일약 애굽의 총리 등극, 형들과의 재회, 야곱의 70인 식구의 애굽 고센 땅 이주 등은 해당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얽힌 역사적 사건에 해당된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의 손길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단지 당시의 상황에서 현실적인 필요와 이해관계를 따라 자의지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호 충돌과 반목과 갈등 없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하나님의 구속사(제1원인)는 세속사(제2원인)를 방편삼아 진행된다.
(3) 가야바의 예수님 살해 모의와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의 상관관계
대제사장 가야바는 나사로의 소생사건(요 11:39-44)으로 야기된 종교적/정치적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일환으로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해 예수님을 살해할 것을 공식적으로 모의한다. 이 과정에서 가야바는 정치적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제안을 발의한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 하는도다 하였으니”(요 11:50).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민중봉기의 위험성과 이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될 로마의 군사개입을 염두에 둔 자구책으로 예수님을 차제에 처형하자는 내용이다. 반면에 사도 요한은 이런 가야바의 악의적인 제안을 자기 백성을 저희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곧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연계시켜 해석한다. 다시 말해 가야바는 현실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부지중에 예수님의 처형에 대한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제안했지만(자유의지의 발로),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구속경륜 속에 예정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 셈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분봉왕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의 부당한 재판 과정과 판결도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예정을 이루기 위한 주권적인 섭리역사의 일환으로 기술한다(행 2:23, 4:27-28). 상기 내용을 통해서도 창세전에 수립된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호 충돌과 반목 없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세속사의 본질은 구속사다.
(4) 목회사역의 주체이신 성령과 객체로서 바울의 열정(골 1:28-29)
골 1:28-29은 바울이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 사역의 실상을 기술한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 목회사역의 주체가 성령하나님이신 사실을 피력하면서 목회사역의 객체로서 자신의 열심과 수고의 당위성을 언급한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성령님의 주도적인 사역과 은혜에 반응하는 인간의 자율적이며 열정적인 헌신의 모습을 동시적으로 보게 된다. “...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본문에는 목회 현장에서 나타나는 제1원인자인 성령의 주도적인 사역에 맞춰 제2원인자인 바울의 자의적 열심이 상호 반목 없이 조화롭게 의존되고 종속돼 있음을 본다. 하나님(제1원인자)은 모든 것(제2원인자)을 합력해 선을 이루어 가신다(롬 8:28). 이 둘의 관계는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상호 유기적이며 보완적이고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빌 2:13-14).
(5) 아하수에로 왕의 불면증과 하만의 몰락(에 6장)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섭리역사가 전장에 걸쳐 주류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란 단어가 문자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섭리역사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독립적이고 독자적으로 시행되지 않는다. 제2원인자에 해당하는 필요한 인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적재적소에 배치해 기뻐하시는 뜻대로 선용하심으로 절체절명에 처했던 유대민족을 구원하신다.
반면에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하만과 그의 수하들, 그리고 유대민족에 대항했던 이방 민족들은 철저히 진멸된다. 이 과정에서 해당 인물들은(아하수에로 왕, 와스디 왕비, 에스더, 모르드개, 하만, 병사들, 이방 민족 등)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존돼 제2원인자들로 선용된다. 그러나 저들의 선악 간의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강제당하지 않는다. 저들은 선악 간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발동시킴으로 자신들의 필요에 따른 이해관계에 얽매여 자의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구속사(제1원인)는 세속사(제2원인)를 방편삼아 진행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바사국의 총리 하만에 의해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던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특명에 의해 생명이 보전되고 신분이 수직 상승한다. 대신 하만의 지위가 졸지에 강등돼 모르드개를 섬기게 되는 역전과 반전상황의 전개는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역사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해당 인물들의 역할은 누구의 간섭 없이 자의지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세속사(제2원인)는 구속사(제1원인)를 이루는 수단과 방편으로 기능한다.
(6)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택자 영접의 상호관계
한 영혼의 구원은 창세전 선택에 종속된다(행 13:48). 이 과정에서 선(先) 성령(제1원인자)의 주도적인 역사(고전 12:3, 행 16:14)와, 후(後) 택자(제2원인자)의 자원하는 영접이 상호 간섭과 강제와 충돌 없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본문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제1원인자)과 영생을 받기로 작정된 당사자(제2원인자)의 관계가 상호 의존적 관계 곧 일방통행식이 아닌 쌍방통행식의 관계로 묘사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Ⅲ. 마치면서
하나님은 아담부부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 존재로 지으심으로 창조의 면류관이 되게 하셨고, 유일한 교제의 대상으로 삼아주셨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일방통행식의 율법적 주종관계나 사전 입력된 기계적 방식이 아닌 상호 유기적이며 쌍방적인 관계인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에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은 독불장군식의 절대 주권자로만 행동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수립된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경륜이 세상역사 속에서 성취되는 과정에서 책임적 존재로서 제2원인자의 대표 격인 인간의 지정의(자유의지)를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선용하신다. 이 과정에서 제2원인자인 당사자는 외부적인 간섭과 방해를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라 임의대로 취사선택하며 자유의지를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결국은 항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이다(롬 8:28, 11:36, 창 45:4-8, 시 105:17-19).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일방적이거나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상호 보완적이고 의존적이며 쌍방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성경적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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