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영 기자]
교회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과 같다. 나이, 성별, 출신, 직업의 제한 없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이뤄간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랑의교회’는 흡사 중세시대 카타콤을 연상시키며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 예배당으로 유명하다. 주일 출석 인원 3만5000여 명에, 사역부서도 100여 개나 돼 교회는 늘 활기가 넘친다.
사랑의교회는 한국 교회 내에서 이른바 장자교단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대한예수장로회(합동)에 소속된 교회다. 처음 이 교회를 개척한 고(故) 옥한흠 담임목사의 뒤를 이어 2003년부터 오정현 담임목사가 사역을 맡고 있다. 그전까지 오 목사는 미국 LA 남가주 사랑의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를 맡아 21년간 미국에서 생활했다. 2019년은 오 목사가 사역을 시작한 지 40년째 되는 해다.
오 목사에게 한국 사역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지난 16년간 날로 성장하는 교회를 바라보며 보람도 컸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신도들 간의 갈등을 지켜보며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2012년 교회 건축에서 비롯된 사랑의교회 내부 갈등은 최근 위임목사 자격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판결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 목사에게 한국 사역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지난 16년간 날로 성장하는 교회를 바라보며 보람도 컸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신도들 간의 갈등을 지켜보며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2012년 교회 건축에서 비롯된 사랑의교회 내부 갈등은 최근 위임목사 자격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판결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0대의 순수함과 30대의 기백 가져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사랑의교회 전경.
이번 사안을 두고 기독교 내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판결”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편목과정상 흠결이 있다면 이는 보완하면 되는 문제이고, 또한 그것이 15년간 목회를 해온 목회자의 위임결의를 무효로 돌릴 만한 중대한 하자인지 의문이라는 것. 전광식 전 고신대 총장은 ‘한국 교회를 향한 긴급 제언’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법원 판결의 부당함과 정교분리의 헌법 준수를 피력했다(272쪽 상자기사). 동서울노회 역시 성명을 통해 재판결과에 대한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2003년 오정현 목사에 대한 위임결의는 적법했음’을 재차 강조했다.
이번 일로 사랑의교회 신도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에 반해 당사자인 오 목사는 오히려 담담한 모습이다. 12월 13일 서초동 본당에서 만난 오정현 목사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목회자로서 감내하고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겠다”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대신 그는 현재 힘겨운 시기를 보내는 많은 청년을 위해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 사랑의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 청년부 층이 두꺼운 걸로 알고 있다. 그 비결이 뭔가.
“주일날 성인 예배가 끝난 뒤 청년부 예배를 드리는데, 20·30대 젊은이 수천 명이 북적대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가슴이 뛴다. 요즘 어디를 가도 청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는 참 감사할 일이다. 교회 안에 있는 웨딩 채플에서는 매주 토요일 4번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우리 교회는 2018년 창립 40주년을 맞이했다. 성도들에게 ‘40이란 숫자를 10과 30으로 나눠, 10대의 순수함과 30대의 기백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의력을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겠나. 특히 요즘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크리에이티브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성도들이 갖고 있는 은사들을 잘 연결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도 교회의 소명이다.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 커넥션(Connection),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의 첫 글자를 따, 일명 ‘3C’라는 키워드를 만들었다. 이는 한국 교회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 글로벌 인재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걸로 알고 있다.
“처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충격을 받았다. 특히 모두가 화가 나 있는 듯한 사회 분위기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마치 ‘분노의 일상화’를 보는 듯했다. 그때 섬광처럼 든 생각이 ‘글로벌 플랫폼’이었다. 한국과 한국 교회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넓은 곳으로 나가 기량을 마음껏 펼치라는 것이다. 학연, 혈연, 지연 등 이미 결정된 것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의 강점을 살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잘못된 사고 프레임부터 깨야 한다. 신앙이라는 중심축이 있으면 어떤 고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 사고의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건, 비단 종교인에게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각자의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 선두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지역이나 이념,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종교인들부터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보여준 사랑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반목과 시기, 질투는 우리를 더욱 병들게 할 뿐이다. 남이 잘되면 같이 기뻐해주고, 아픔은 또 서로 나누는 그런 화합의 모습이 가장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 사랑의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제자훈련’도 이러한 영적 수양의 한 방법인가.
“오늘날 우리는 다들 자기주장만 펼치려고 한다. 하지만 신앙의 핵심은 ‘자기 부인’이다. 나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위탁한 삶을 사는 것이다. 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독립’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제자훈련’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옥한흠 목사님이 주창해 1978년부터 지금까지 제자훈련 1만3000명, 사역훈련 1만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렇게 되기 위해 평생을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가치관·감정·의지·관계·행실의 온전함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다.”
- 고 옥한흠 목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1975년 봄, 서울 내수동교회 중고등부 헌신예배에 옥 목사님이 강사로 오셨었다. 그날 목사님은 큰 소리로 ‘예뻐지고 싶어요’? 하고 물으시더니 ‘그러려면 전도하세요’라고 하더라. 굉장히 인상적이면서 한순간에 마음을 사로잡는 말씀이었다.”
이번 일로 사랑의교회 신도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에 반해 당사자인 오 목사는 오히려 담담한 모습이다. 12월 13일 서초동 본당에서 만난 오정현 목사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목회자로서 감내하고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겠다”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대신 그는 현재 힘겨운 시기를 보내는 많은 청년을 위해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 사랑의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 청년부 층이 두꺼운 걸로 알고 있다. 그 비결이 뭔가.
“주일날 성인 예배가 끝난 뒤 청년부 예배를 드리는데, 20·30대 젊은이 수천 명이 북적대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가슴이 뛴다. 요즘 어디를 가도 청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는 참 감사할 일이다. 교회 안에 있는 웨딩 채플에서는 매주 토요일 4번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우리 교회는 2018년 창립 40주년을 맞이했다. 성도들에게 ‘40이란 숫자를 10과 30으로 나눠, 10대의 순수함과 30대의 기백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의력을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겠나. 특히 요즘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크리에이티브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성도들이 갖고 있는 은사들을 잘 연결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도 교회의 소명이다.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 커넥션(Connection),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의 첫 글자를 따, 일명 ‘3C’라는 키워드를 만들었다. 이는 한국 교회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 글로벌 인재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걸로 알고 있다.
“처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충격을 받았다. 특히 모두가 화가 나 있는 듯한 사회 분위기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마치 ‘분노의 일상화’를 보는 듯했다. 그때 섬광처럼 든 생각이 ‘글로벌 플랫폼’이었다. 한국과 한국 교회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넓은 곳으로 나가 기량을 마음껏 펼치라는 것이다. 학연, 혈연, 지연 등 이미 결정된 것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의 강점을 살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잘못된 사고 프레임부터 깨야 한다. 신앙이라는 중심축이 있으면 어떤 고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 사고의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건, 비단 종교인에게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각자의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 선두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지역이나 이념,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종교인들부터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보여준 사랑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반목과 시기, 질투는 우리를 더욱 병들게 할 뿐이다. 남이 잘되면 같이 기뻐해주고, 아픔은 또 서로 나누는 그런 화합의 모습이 가장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 사랑의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제자훈련’도 이러한 영적 수양의 한 방법인가.
“오늘날 우리는 다들 자기주장만 펼치려고 한다. 하지만 신앙의 핵심은 ‘자기 부인’이다. 나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위탁한 삶을 사는 것이다. 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독립’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제자훈련’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옥한흠 목사님이 주창해 1978년부터 지금까지 제자훈련 1만3000명, 사역훈련 1만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렇게 되기 위해 평생을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가치관·감정·의지·관계·행실의 온전함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다.”
- 고 옥한흠 목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1975년 봄, 서울 내수동교회 중고등부 헌신예배에 옥 목사님이 강사로 오셨었다. 그날 목사님은 큰 소리로 ‘예뻐지고 싶어요’? 하고 물으시더니 ‘그러려면 전도하세요’라고 하더라. 굉장히 인상적이면서 한순간에 마음을 사로잡는 말씀이었다.”
“교회 신도들의 갈등, 기도로 풀 수밖에”
- 옥 목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인다.
“사랑의교회 30주년 예배 때 찍은 사진이다. 목회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곁에 두고 힘을 얻는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르기 위해서 사진에서처럼 옥 목사님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자 한다. 사랑의교회가 걸어가야 할 사역의 땅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옥 목사님을 비롯해 선대의 신앙 유산을 잊지 않고 계승해나가려고 노력한다.”
- 안타깝게도 현재 사랑의교회는 이탈파가 현존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계획인가.
“사랑의교회에 속해 있지만 뜻을 함께하지 못하는 다른 성도들 역시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라고 생각한다. 상처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기도하면서 눈물이 난다. 우리 모두가 생명의 공동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앙을 가져도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이 있다.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예수님께 엎드리는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사랑의교회가 받드는 사명은 무엇인가.
“치유를 넘어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모든 사역은 그 중심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느냐로 결정된다. 겉모습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교회의 문턱은 없다. 누구든 찾아와 기도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길 바란다. 믿음을 쌓아가는 데는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통한 평화통일’을 기원한다. 사랑의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하자마자 ‘복음적 평화통일’이라는 용어를 썼다. 통일 역시 하나님이 하셔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류 구원을 위해 애쓰시는 하나님이 민족의 분열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거다.”
- 이러한 생각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닐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휴전선 155마일을 지켜주시고, 850마일 해안선을 지켜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듣고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민족과 국가 그리고 교회를 연결 짓는 생각의 고리를 배웠다. 목사이던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 되자 매달 첫날은 도시락으로 ‘꽁보리ㅈ밥’을 싸가게끔 했다. 조상들이 겪었던 고통, 북한 동포의 어려운 처지를 잊지 말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제일 가난한 내가 도시락마저 꽁보리밥을 싸가니, 그때는 어린 마음에 상처가 많이 됐다. 하지만 부모의 그런 가르침이 있었던 덕분에 나라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교회 30주년 예배 때 찍은 사진이다. 목회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곁에 두고 힘을 얻는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르기 위해서 사진에서처럼 옥 목사님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자 한다. 사랑의교회가 걸어가야 할 사역의 땅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옥 목사님을 비롯해 선대의 신앙 유산을 잊지 않고 계승해나가려고 노력한다.”
- 안타깝게도 현재 사랑의교회는 이탈파가 현존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계획인가.
“사랑의교회에 속해 있지만 뜻을 함께하지 못하는 다른 성도들 역시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라고 생각한다. 상처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기도하면서 눈물이 난다. 우리 모두가 생명의 공동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앙을 가져도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이 있다.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예수님께 엎드리는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사랑의교회가 받드는 사명은 무엇인가.
“치유를 넘어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모든 사역은 그 중심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느냐로 결정된다. 겉모습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교회의 문턱은 없다. 누구든 찾아와 기도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길 바란다. 믿음을 쌓아가는 데는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통한 평화통일’을 기원한다. 사랑의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하자마자 ‘복음적 평화통일’이라는 용어를 썼다. 통일 역시 하나님이 하셔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류 구원을 위해 애쓰시는 하나님이 민족의 분열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거다.”
- 이러한 생각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닐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휴전선 155마일을 지켜주시고, 850마일 해안선을 지켜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듣고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민족과 국가 그리고 교회를 연결 짓는 생각의 고리를 배웠다. 목사이던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 되자 매달 첫날은 도시락으로 ‘꽁보리ㅈ밥’을 싸가게끔 했다. 조상들이 겪었던 고통, 북한 동포의 어려운 처지를 잊지 말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제일 가난한 내가 도시락마저 꽁보리밥을 싸가니, 그때는 어린 마음에 상처가 많이 됐다. 하지만 부모의 그런 가르침이 있었던 덕분에 나라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나서 통일 준비해야
[지호영 기자]
오정현 목사의 통일에 대한 신념은 확고하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자마자 대학 청년부를 중심으로 민족과 국가를 위한 ‘구국기도회’를 만들어 15년째 이어오고 있다. 720차가 넘도록 작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 모여 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부임 당시 주창한 ‘3·5·7 비전’은 ‘3년 내에 한국 교회가 글로벌화돼, 5년 내 미국 교회와 협력해 중국 교회를 섬기고, 7년 내에 평양에서 특별새벽부흥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사랑의교회는 북한 고아들을 지원하는 ‘사랑광주리’ NGO 활동도 펼치고 있다. 오 목사는 “남북으로 갈라져 상처받은 우리 민족이 하루빨리 치유되기 위해선 우리 모두 진정성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 미국 교회와 협력은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
“우리민족교류협회에서 지난 11월, 주한미국대사에게 ‘2018 한반도 통일공헌 대상’을 수여했다. 피로 맺은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를 지켰고, 지금은 한미동맹의 힘으로 새로운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교회는 한미 양국이 동주공제(同舟共濟)의 정신으로 귀중한 동맹자산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선교적 차원에서 볼 때도 한국 교회의 강점인 열정이 미국교회의 강점인 합리성과 결합해 조화를 이룰 것이라 기대한다.”
-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혼란스럽다. 목회자로서 해법을 제시한다면?
“한국인은 그 어느 민족보다 성령의 역사를 크게 경험한 뛰어난 민족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강점이 아닌 약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보기 전에 강점을 보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가 힘차게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그들의 다리가 돼줘야 한다. 언젠가 내가 강론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곧 당신들의 시대가 올 테니 웅크리고 앉아 있지 말고, 내 어깨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라’고. 청년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 미국 교회와 협력은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
“우리민족교류협회에서 지난 11월, 주한미국대사에게 ‘2018 한반도 통일공헌 대상’을 수여했다. 피로 맺은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를 지켰고, 지금은 한미동맹의 힘으로 새로운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교회는 한미 양국이 동주공제(同舟共濟)의 정신으로 귀중한 동맹자산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선교적 차원에서 볼 때도 한국 교회의 강점인 열정이 미국교회의 강점인 합리성과 결합해 조화를 이룰 것이라 기대한다.”
-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혼란스럽다. 목회자로서 해법을 제시한다면?
“한국인은 그 어느 민족보다 성령의 역사를 크게 경험한 뛰어난 민족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강점이 아닌 약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보기 전에 강점을 보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가 힘차게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그들의 다리가 돼줘야 한다. 언젠가 내가 강론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곧 당신들의 시대가 올 테니 웅크리고 앉아 있지 말고, 내 어깨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라’고. 청년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2008년 사랑의교회 30주년 예배에서 故 옥한흠 목사와 오정현 목사가 함께 한 모습.
- 청년들 스스로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
“보통 사람과 특별한 사람의 차이는 소위 재물이나 지위에 달려있지 않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다. 과거 청년들에게 사역을 할 때 세 가지를 질문했다. ‘평생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있는가?’ ‘평생 붙잡을 수 있는 사명이 있는가?’ ‘평생 부를 노래가 있는가?’ 현실을 보면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젊은이라면 꿈과 사명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개인은 물론이고, 이 나라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젊을 때 이러한 시각에 눈을 뜨지 못하면 나이가 들수록 시각이 고착돼 주위를 힘들게 한다. 제 생각의 중추 가운데 하나는 수선대후 (守先待後)이다. 선대의 강점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과거의 좋은 것들은 더욱 갈고 닦아 후세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 새해를 맞아 덕담 한 마디 부탁드린다.
“찬송가 중에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대지같이 광활하자 우리들의 젊은이”라는 가사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지평선을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속의 갈등을 해결하는 길이 있다면, 끝없이 열린 지평선을 보아야 한다. 저는 2019년은 인생 앞에 무한히 열려 있는 삶의 지평선, 이 민족이 한계 없이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지평선을 보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새해 아침에는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다. 대양을 본 자는 촐랑이는 작은 강을 본 자와는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보통 사람과 특별한 사람의 차이는 소위 재물이나 지위에 달려있지 않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다. 과거 청년들에게 사역을 할 때 세 가지를 질문했다. ‘평생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있는가?’ ‘평생 붙잡을 수 있는 사명이 있는가?’ ‘평생 부를 노래가 있는가?’ 현실을 보면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젊은이라면 꿈과 사명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개인은 물론이고, 이 나라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젊을 때 이러한 시각에 눈을 뜨지 못하면 나이가 들수록 시각이 고착돼 주위를 힘들게 한다. 제 생각의 중추 가운데 하나는 수선대후 (守先待後)이다. 선대의 강점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과거의 좋은 것들은 더욱 갈고 닦아 후세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 새해를 맞아 덕담 한 마디 부탁드린다.
“찬송가 중에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대지같이 광활하자 우리들의 젊은이”라는 가사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지평선을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속의 갈등을 해결하는 길이 있다면, 끝없이 열린 지평선을 보아야 한다. 저는 2019년은 인생 앞에 무한히 열려 있는 삶의 지평선, 이 민족이 한계 없이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지평선을 보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새해 아침에는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다. 대양을 본 자는 촐랑이는 작은 강을 본 자와는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기고 | 한국 교회를 향한 긴급 제언
“종교 고유 영역을 지켜주는 품격을 갖추라” - 전광식 전 고신대학교 총장
일전에 나온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번 판결을 내린 이들은 결정안의 타당성을 강변할지 몰라도, 같은 사안에 대한 앞선 두 번의 판결이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어서, 결국 법적으로도 이렇게도 저렇게도 판결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사안을 두고 왜 당사자와 수많은 성도들의 공동체를 그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지 의문이다. 따지자면 입학생들은 학교가 지도하는 대로 하는 것이어서 책임을 물으려면 해당학교에 대해 물어야 하고, 행여나 학교의 지도대로 따라한 학생이 피해를 받게 되면 ‘정의의 사자들’인 법관들은 도리어 그를 보호해주는 게 상식일 것이다.
게다가 이게 언제적 일이던가? 어지간한 범죄도 대개 10년이면 시효가 끝나는데, 이 건은 그런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난 것이었고, 사안의 성격도 무슨 범법적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절차적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판결하는 것은 실로 편향성이 도를 넘은 것이고, 그 가혹함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법조인이 읊조리는 대로 공평무사와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나아가 이 건은 헌법 20조가 선언하고 있는 종교의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관들은 교단 스스로 자기들이 법을 제정해 놓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개입한 것이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하나 그렇다면 소송을 건 자들에게 법을 만든 교단으로 가라고 해야 마땅하고, 또 실제로 그 과정이 과연 용인 가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편법이었는지의 해석여부도 법을 만들고 집행해온 이들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던가? 결국 이번 판결은 협의적으로는 교회의 고유권한에 대한 세상법정의 월권적 관여요, 광의적으로는 하나님나라운동에 대한 세속의 노골적인 침범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두고 당사자를 그 자리에 세운 교회와 노회는 물론, 산하교회를 지켜주어야 할 총회는 이의를 제기하고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이런 거부는 교회의 고유권이 침범 당했다는 것과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의 직분과 위치를 세상이 제 마음대로 무효화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성경적 원리에 놓인다.
결국 ‘교단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결이므로, 교단의 주체인 노회와 총회가 ‘그를 교회위임목사로 세운 것은 교단이 한 것이므로, 그의 위임목사요건이 충족됨을 우리는 재확인한다’라고 선포하므로 반드시 종교적 결정의 자율권을 고수해야 한다. 그러면 해당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적 결정에 흔들릴 필요가 없고, 그런 교회적 결정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침례교나 회중교회뿐만 아니라 장로교도 그 교회소속의 성도들이 누구를 세우기로 결정하면 그것이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거기에 외부의 누가 무슨 권한으로 이 사람은 안 되고 저 사람은 되고 하는 식으로 관여하고 판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만일 이번 판결이 묵인되면 앞으로 한국의 목사들과 교회들의 운명을 저들에게 맡기게 되는 것이므로 이번 문제에 봉착한 합동교단이 단호히 대처하므로, 언필칭 ‘장자교단’으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다른 교단들도 남의 산에 불난 것으로 구경만 하고 침묵하게 된다면 그 불은 머지않아 그들 산으로도 번져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이런 문제가 봉은사 주지의 경우나 명동성당의 주임신부에 관련되었다면 과연 이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사법부의 일부 인사에 국한되겠지만, 바라기는 그들도 이 점을 인식하고 정교분리의 헌법을 준수하고, 종교의 고유영역을 앞장서서 지켜주는 품격을 지니기를 촉구해 본다.
이런 사안을 두고 왜 당사자와 수많은 성도들의 공동체를 그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지 의문이다. 따지자면 입학생들은 학교가 지도하는 대로 하는 것이어서 책임을 물으려면 해당학교에 대해 물어야 하고, 행여나 학교의 지도대로 따라한 학생이 피해를 받게 되면 ‘정의의 사자들’인 법관들은 도리어 그를 보호해주는 게 상식일 것이다.
게다가 이게 언제적 일이던가? 어지간한 범죄도 대개 10년이면 시효가 끝나는데, 이 건은 그런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난 것이었고, 사안의 성격도 무슨 범법적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절차적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판결하는 것은 실로 편향성이 도를 넘은 것이고, 그 가혹함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법조인이 읊조리는 대로 공평무사와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나아가 이 건은 헌법 20조가 선언하고 있는 종교의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관들은 교단 스스로 자기들이 법을 제정해 놓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개입한 것이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하나 그렇다면 소송을 건 자들에게 법을 만든 교단으로 가라고 해야 마땅하고, 또 실제로 그 과정이 과연 용인 가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편법이었는지의 해석여부도 법을 만들고 집행해온 이들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던가? 결국 이번 판결은 협의적으로는 교회의 고유권한에 대한 세상법정의 월권적 관여요, 광의적으로는 하나님나라운동에 대한 세속의 노골적인 침범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두고 당사자를 그 자리에 세운 교회와 노회는 물론, 산하교회를 지켜주어야 할 총회는 이의를 제기하고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이런 거부는 교회의 고유권이 침범 당했다는 것과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의 직분과 위치를 세상이 제 마음대로 무효화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성경적 원리에 놓인다.
결국 ‘교단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결이므로, 교단의 주체인 노회와 총회가 ‘그를 교회위임목사로 세운 것은 교단이 한 것이므로, 그의 위임목사요건이 충족됨을 우리는 재확인한다’라고 선포하므로 반드시 종교적 결정의 자율권을 고수해야 한다. 그러면 해당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적 결정에 흔들릴 필요가 없고, 그런 교회적 결정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침례교나 회중교회뿐만 아니라 장로교도 그 교회소속의 성도들이 누구를 세우기로 결정하면 그것이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거기에 외부의 누가 무슨 권한으로 이 사람은 안 되고 저 사람은 되고 하는 식으로 관여하고 판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만일 이번 판결이 묵인되면 앞으로 한국의 목사들과 교회들의 운명을 저들에게 맡기게 되는 것이므로 이번 문제에 봉착한 합동교단이 단호히 대처하므로, 언필칭 ‘장자교단’으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다른 교단들도 남의 산에 불난 것으로 구경만 하고 침묵하게 된다면 그 불은 머지않아 그들 산으로도 번져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이런 문제가 봉은사 주지의 경우나 명동성당의 주임신부에 관련되었다면 과연 이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사법부의 일부 인사에 국한되겠지만, 바라기는 그들도 이 점을 인식하고 정교분리의 헌법을 준수하고, 종교의 고유영역을 앞장서서 지켜주는 품격을 지니기를 촉구해 본다.
신동아 2019년 1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