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스크랩] 세계 기독교의 도래, 그 원동력을 찾아서

수호천사1 2018. 12. 10. 17:15

세계 기독교의 도래, 그 원동력을 찾아서


제가 가끔 시청하는 TV 프로그램 중에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국내 각지에 흩어진 소위 '달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찾아 그들이 지닌 숙련된 능력과 기술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해 주는 프로죠.

이 프로그램에는 세탁의 달인에서부터 도자기 제작 달인까지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종사하는 달인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달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 프로그램이 견지하는 테마는 사실 아주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인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비결이 있다"는 것이죠.

왜 갑자기 뜬금없이 '달인 타령이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번 글에서 이와 유사한 테마를 사용해 보고자 합니다. 즉, '세계 기독교의 도래에는 무언가 특별한 비결(원동력)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 편의 글을 통해, 세계 기독교 시대의 도래를 다각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글에선 통계 수치를 통해, 그리고 두세 번째 글을 통해서는 세 인물 이야기를 통해 세계 기독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에 주목해본 것이죠.

그런데 세계 기독교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할수록, 독자 여러분 안에서는 아마 아래와 같은 질문이 하나 생기지 않으실까 합니다

"세계 기독교의 도래..., 음 그렇군.  그런데 세계 기독교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는 뭐지? 도대체 기독교가 지닌 어떠한 원동력 혹은 복음이 지닌 어떠한 능력이 오늘날 기독교가 전 세계에 걸쳐 성장할 수 있도록 한 걸까?"

과연 '세계 기독교의 도래'는 어떠한 원동력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아마 다양한 시각에서 세계 기독교의 도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가운데서 '한 시각'을 택해 세계기독교의 원동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을 맞이했던 '세 가지 시점'을 아래와 같이 선정해, 이를 살펴보면서 세계 기독교의 도래를 이끌어낸 '원동력'을 규명해보고자 합니다.

1. 유대적 발흥에서 이방(Gentile) 세계로의 전파
2. 로마 제국의 멸망과 이민족(Barbarian)의 복음화
3. 유럽 기독교의 쇠퇴와 동터오는 세계 기독교 시대

비록 세 시점들은 각각 다른 시대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중요한 전환을 맞이했지만, 우리는 이 시점들 속에서 세계 기독교의 도래를 이끌어 낸, 기독교가 지닌 '하나의 원동력'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유대적 발흥에서 이방(Gentile) 세계로의 전파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첫 번째 시점은 기독교가 유대 문화를 넘어 이방 세계로까지 전파된 시점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 기독교의 시작은 유대 문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유대인이셨고, 유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 제자도 유대인이었고,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품어오던 약속과 소망의 성취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눅 24:21; 행 1:6). 그리고 실제로 초기 기독교 공동체 역시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죠. 말 그대로 이 시점에서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중심이었고, 유대 문화는 기독교가 가장 먼저 뿌리를 내렸던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행전은 기독교가 맞이하고 있던 하나의 중요한 전환기적 사건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20-21)".

사도행전은 스데반의 죽음 이후 진행된 박해 속에 구브로와 구레네 그리스도인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게 된 사건을 묘사하면서, 그들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에 주목합니다. 더욱이 사도행전은 이들의 복음 전파로 그곳에 있던 수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음을 증언하죠.

그리고 이방인이 회심을 했다는 놀라운 소식은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은 안디옥 교회를 이루며 바나바와 바울의 양육 속에 든든히 서가게 됩니다(행 11:22-26). 하지만 어느 시점에 유대에서 어떤 사람들이 와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그리스도께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하며 논쟁을 촉발하게 됩니다(행 15:1-2).

그리고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예루살렘에 소집된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같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내용을 지키게 할지 여부'에 대해 논의하게 되고, 그들은 기독교 역사의 큰 전환을 이루는 결정을 이 회의를 통해 내리게 됩니다.

세계 기독교
▲안디옥 교회가 있던 곳으로 알려지는 베드로기념교회. ⓒ위키피디아
예루살렘에 모인 당대 기독교 지도자들의 결정은 한 마디로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방인들에게 전반적인 지침 몇 가지를 주는 것을 제외하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전통과 문화를 따르지 않아도 됨을 천명한 것입니다. 티모시 테넌트 외 2인은 『선교신학의 도전』에서 이 선언의 중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복음을 유대 문화로부터 분리시킨 신약성경의 가장 분명한 예일 것이다.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문화적으로,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진정한 추종자가 되면서도 자신들의 고유문화의 일원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함께 모였다."

티모시 테넌트 외 2인의 평가처럼, 예루살렘 공의회는 '복음과 유대 문화를 분리'시켰습니다. 즉 기독교는 유대 문화 안에 국한될 수 없으며, 복음은 이방인(Gentile)이라 불리는 이들에게까지 전파돼야 함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 문화에 익숙해 있던 예루살렘 공의회 지도자들이 오직 복음에 대한 확신으로 내린 이러한 결정은 아주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당대 유대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방인들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들이 (유대 문화를 따르지 않고서도) 그들의 문화 속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확증한 결정이기 때문이죠.

앤드류 월스(Andrew Walls)는 기독교의 이러한 결정 때문에, 기독교가 유대 문화의 쇠퇴(A.D. 70년과 135년에 일어난 유대인 학살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와 함께 쇠퇴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즉 복음이 타문화에까지 전달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기독교인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때맞추어 유대 문화의 경계를 넘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기독교는 정치,사회,문화적 변환기 속에서 생존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로만 구성되었던 기독교는 이제 유대적 토양을 넘어 이방 세계에까지 전파되어 갔습니다. 기독교가 시작되었던 지역의 문화조차 하나의 절대화된 틀로서 다른 문화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구속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력히 상기시켜주면서 말입니다.

2. 로마 제국의 멸망과 이민족(Barbarian)의 복음화

이방 세계에까지 전파된 기독교는, 기독교인들을 그토록 박해했던 바로 그 제국(로마 제국)이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년) 이후 기독교의 수호자를 자청하며 나서면서, 어느덧 한 제국을 대변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즉, 유대 문화가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 그리스-로마 문화가 당대 기독교를 대변하는 문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은 제국의 영광도 점차 쇠퇴와 쇠락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우리는 바로 이 시점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로마 제국은 멸망하기 전 수 세기 동안 여러 위협과 두려움을 떠안고 유지되어 왔습니다. 내부에는 결속력과 응집력의 약화라는 불안 요소가 존재했고, 외부적으로는 지나치게 확장된 영토를 위협하는 이민족들로 인해 두려워 떨 수 밖에 없던 것이죠.

특히 로마 제국 주변에 수많은 이민족들은 로마인들에게 큰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교부 터툴리안이 로마 제국에 의해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이민족에 의해 로마가 침공을 받는 때를 성경이 말하는 대환란(the Great Tribulation)이 시작되는 때로 이해하고 제국의 안위를 위해 기도할 정도였으니까요.

세계 기독교
▲로마 제국에 대한 이민족들의 침입 경로. ⓒ브리태니커
하지만 결국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 내외부의 불안 요소와 사건들이 결합하면서 로마 제국이 점차 멸망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앤드류 월스는 로마 제국에 종말을 가져다 준 수많은 요인들 중에서도 외부적 요인에 집중하며, 로마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두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두 가지 큰 사건이 그리스-로마 기독교의 종말을 가져왔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으로, 서로마 제국이 이민족에게 망한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인데, 아랍인들이 세계적인 세력으로 부상하여 가장 오래되고 융성한 교회가 있던 동유럽을 점령한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로마 기독교 시대는 종말을 맞게 되었다."

월스의 설명처럼,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이민족(게르만족)에 위해 폐위당하면서(476년), 그리고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또 다른 이민족(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당하면서(1453년), 그리스-로마 기독교 시대는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로마 문화권에 속해 자라나던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기독교도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다 알고 있듯,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멸망과 그 길을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제국의 멸망 속에서도 존속할 뿐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문화권 속에서 왕성히 성장해 나가게 되죠.

더욱이 이러한 기독교의 생존과 성장은 역설적으로 로마인들이 제국과 기독교 문명의 위협이라고 여겼던 '이민족(Barbarian)'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이민족들이 다양한 경로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들의 문화권이 점차 기독교화 되어갔고 바로 이러한 방식을 통해 기독교는 제국의 멸망 속에서도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이민족이(Babarian) 복음을 받아들인 경로

-무역활동과 상업활동을 통한 전파
-기독교를 이미 받아들였던 주변 지역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한 전파
-이민족의 (기독교를 받아들인 국가나 지역으로의) 이민을 통한 전파
-이민족의 (기독교를 이미 받아들인 지역으로의) 망명을 통한 전파
-이민족 지역을 여행했던 그리스도인들을 통한 전파
-이민족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한 전파 등.

결국 '기독교 문명의 파괴자로 여겨졌던' 이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면서, 기독교는 세계 각지(서쪽으로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동쪽으로는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등)에서 다시금 성장해 나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기독교가 지닌 하나의 특징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문화를 횡단(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이민족의 문화로)하여 새로운 사람들(이민족들)에게 전파됨으로써 새로운 활기와 내적인 생명력을 얻었고, 새로운 문화-지리적 중심에 적응했다는 사실입니다.


3. 서구 기독교의 쇠퇴와 세계 기독교 시대의 도래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의 쇠망 속에서도 복음은 로마 제국의 위협을 가하던 이민족들에게 심겨져 그 속에서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기독교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가장 번성하게 되었죠. 즉 소위 서구 문화권 내의 기독교가 당대 기독교의 대변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서구 기독교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길래 당시 기독교를 대변했다는 말까지 할 수 있는 걸까요? 서구 기독교의 위세를 대변하는 하나의 증거로서 관련된 통계 수치들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유럽/북아메리카 인구 대비

1910년 유럽 기독교인 비율: 94.5%
1910년 북아메리카 기독교인 비율: 96.6%-전 세계 기독교 인구 대비

1910년 유럽 기독교인 비율: 66.3% 
1910년 북아메리카 기독교인 비율: 14.9%
1910년 유럽/북아메리카 기독교인 비율: 81.2%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치들이 눈에 띄시죠? 위 통계 수치들에 따르면, 1910년 당시 유럽 그리고 북아메리카인들 중 약 90% 이상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즉 대략 열 명 중 단 한 명만이 비기독교인이었던 것이죠.

더욱이 전세계 기독교인들 가운데 유럽과 북미 지역 기독교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더욱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 기독교 인구 대비 유럽/북미 지역 기독교인의 비율은 자그마치 81.2%였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1910년 당시 기독교인들의 '대다수'는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지역에 몰려 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서구 기독교는 (적어도) 수치 상으로 당대의 기독교를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위세 속에 서구 기독교는 스스로를 '기독교의 시대'를 일구어 나갈, 그리고 '세계 선교의 과업을 완성할 주역'으로 여겼습니다. "이 세대 안에 세계의 복음화(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를 이루어 내겠다는 당대의 당찬 포부가 알려주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당대 기독교를 대변하던 서구 기독교가 세계 선교에 매진하고 있을 그때, 역설적으로 서구 기독교 안에서는 다양한 쇠퇴의 징후들이 포착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더니즘이라는 사조가 만연해지고,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경험하는 등 수많은 환경적 변화에 서구 기독교가 대응해 나가는 과정 가운데, 서구 기독교는 점차 내적인 동력을 상실해가며 쇠퇴 국면에 들어서게 된 것이죠. 한 도표를 토대로 이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기독교 내다보기
▲전세계 기독교인 인구 대비 지역별 기독교인 비율 그래프(Global Share of Christians by Region, 1910-2050). ⓒPew Research Center

위 도표는 전세계 기독교 인구 대비 지역별 기독교인의 비율에 대한 그래프입니다. 1910년, 2010년, 그리고 2050년에 각 지역 기독교인의 수가 전 세계 기독교 인구 중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이죠.

우리는 이 그래프에서 유럽 기독교인 비율이 눈에 띄게 급락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10년에 전 세계 기독교인 중 66.3%를 차지하고 있던 바로 그 유럽이 2010년에는 25.5%로 급감했고, 2050년에는 15.6%로 더욱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죠.

북미 지역의 기독교인의 비율 역시 유럽에 비해선 완만한 감소이지만 확실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 기독교 인구 중 14.9%를 차지했던 1910년부터 100년이 지난 2010년에는 12.3%로, 그리고 2050년에는 9.8%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말이죠.

하지만 서구권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을 그 때, 이른바 '서구권 밖의 지역'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서구 기독교의 선교를 통해 비서구 지역에 심겨진 복음의 씨앗이 그 문화권에 뿌리를 내리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910년 기준 전세계 기독교 인구 대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기독교인의 비율은 1.4%에 그쳤지만,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0년 그 비율이 23.9%까지 크게 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비율은 계속 증가하여 2050년에는 세계 기독교 인구의 약 38% 가량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밀집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필립 젠킨스(Phillp Jenkins)는 이러한 맥락에서 비서구 문화권 기독교의 성장, 특별히 아프리카에서의 기독교의 놀라운 성장을 염두하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을 대변할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은 '나이지리아 한 도시에 있는 여성'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역전 현상, 곧 서구권 기독교가 쇠퇴하는 동안 비서구권 기독교는 급속히 성장하는 이러한 추세는 (특히)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걸쳐 발생하고 있습니다. 즉 서구권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발전해왔던 기독교가 이젠 서구 문화권을 너머 전세계에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말 그대로 '세계 기독교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문화로 침투해가는 기독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서구 문화권을 너머 전 세계로 향해 갔습니다. 기독교의 맹주임을 주장했던 서구 지역 기독교가 쇠퇴를 맞이하는 중,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면서 말입니다.

"이제 모든 제국은 사라졌으며 유럽의 세계 주도권도 무너졌다. 유럽 기독교의 쇠퇴도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문턱에 서 있다. 이제는 기독교의 중심이 남반구에서 올라오게 될 것이다. ... (기독교는) 다시 한 번 문화의 경계를 넘음으로써 살아남은 것이다(책 <기독교의 미래>)."

4. 복음이 지닌 문화적 포용력

지금까지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을 맞이했던 '세 시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유대 문화권에서 발흥한 기독교가 유대 지역을 넘어 이방 세계로 전파된 시점, 그리스-로마 문화로 대변되던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넘어 이민족에게까지 전파된 시점, 그리고 서구 문화권 안에서 번성하던 기독교가 서구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되어 성장하기 시작한 시점까지.

이 세 시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기독교의 한 특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곧, 문화적 경계를 넘어 전파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앤드류 월스의 설명처럼) 기독교는 문화적 경계를 넘는 이 시의적절하게 전파로 인해 유구한 역사 속에서도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그 전체 역사를 통해 문화적 경계를 넘어 전파되었다. 종종 바깥 세계의 새로운 지역이 기독교의 잠재적인 중심지로 등장하곤 했다. 독자적인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생명력은 타 문화권으로 전파됨으로 유지되었다.

이렇게 시의적절한 전파가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은 시들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기독교의 발전은 연쇄적이었으며,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지역이 기독교의 종주국으로 등장했다(책 <기독교의 미래>)."

만일 우리가 잠시 기독교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기독교가 어떠한 '특정한 기독교 문화' 혹은 '특정한 기독교 문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대 기독교의 '중심'으로 여겨지던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혹은 또 다른 당대의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문화권 혹은 문명조차 영구히 지속되는 '기독교의 특정 문화 혹은 문명'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되려 기독교는 특정 문화 혹은 문명을 고집스레 취하기보다, 어떠한 문화와 문명을 만나게 되든 그 속에 스며들어 복음의 열매를 다채롭게 맺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기독교의 중심은 (아래 그림이 보여주듯) 역사의 흐름 속에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세계 기독교 내다보기
▲A.D. 33부터 A.D. 2100까지 기독교의 통계적 중심(center)의 변화를 추적한 지도.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33

결국, 타문화권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문화 속에서 성장해 나간 기독교의 모습은 복음의 능력, 그리고 세계 기독교가 도래하게 된 중요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시사해 줍니다. 곧 문화적 포용력이 그것이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문화도 포용할 수 있는 복음은 기독교의 능력이자, 원동력이 되어왔습니다. 비록 그 문화가 당대 기독교의 종주국임을 내세웠던 이들(예, 로마 제국)에게는 추잡하고 더러운 야만인들(Barbarian)의 문화였다 할지라도, 복음은 그 문화 속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문화를 복음의 영향력으로 정화시켜 나가며 기독교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게 하였죠. 그리고 바로 이러한 복음의 역사는 오늘날 '세계 기독교 시대의 도래'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5. 겸손, 그리고 서로를 알아감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복음의 역사를 바라보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기독교 역사 속 '기독교 중심지'임을 내세웠던 곳들의 현재 모습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한 교세와 화려한 기독교 문명을 구축했던 수많은 지역과 문화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음을 기억해보면서, 오늘날 한국교회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만 하는 것이죠.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교세와 규모, 그리고 가시적인 결과들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그리고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고 약하고 낮은 자들을 들어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것을 기억하며, 겸손의 자리로 향해가면서 말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새로운 문화권에서 자라나는 그리스도인들을 알아가야만 합니다. 기독교는 종종 당시의 주류 기독교인들의 시각에서 예상치 못한 문화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권 기독교의 놀라운 성장은 우리에게 '그들을 알아가야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점차 내부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 한국 기독교에 건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리고 차후 기독교의 또 다른 중심으로 등장할 지도 모르는 그들과 동역의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타문화권' 그리스도인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녹록치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한 나라 안에서 한 언어를 사용하며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신학적 강조점을 지닌 이들과의 관계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초대 기독교의 이야기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도저히 허물 수 없는 벽을 그리스도 안에서 허물어 '둘이 하나가 된 일', '화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화해를 이룬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초창기에 둘이 하나가 되는 일이 실제 삶 속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을 나누던 벽이 허물어졌고 화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화해를 이루었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상 과거에 일어났던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탈바꿈을 하는 과정에서 계속 반복된 일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 역사 및 문화를 가진 민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인정하게 될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책 <기독교의 미래>)."


서동준 강도사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세계기독교학'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post.naver.com/seodj59)

출처 : 예수 코리아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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