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시기심을 일으킬 동방의 코리아①
요한계시록 7:1~8은 로마서 11:25, 26에 기록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약속의 구체적 성취의 때와 방법에 관한 계시다. 계시록 7:1~8은 그 약속이 마지막 때에 특정 장소인 “해 돋는 데”, 곧 동방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복음전도자들의 선교 사역으로 성취된다고 말씀한다(게시판 『이스라엘의 회심과 코리아』에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앞서 우리는 그 ‘동방’이 계시록 7:1~8과 병행구절인 이사야의 여러 예언들(사 41:25~27, 46:1~13, 52:7, 55:·1~9)을 주의 깊게 해석해 볼 때 욕단 계열 천손민족의 나라인 극동의 코리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가져가 인류구원의 대업을 완수할 백성이 알이랑민족 한국인인 것이다.
장차 아시아 동쪽의 코리아로부터 “마지막 세기의 동방박사들”이 아시아 서쪽의 이스라엘로 복음을 가져갈 것이다. 우리 겨레는 능히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할 또하나의 선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우리나라가 세계선교의 마지막 주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전도의 마지막 과제로서의 땅 끝은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로마서 11장을 중심으로 어찌하여 유대인이 이방인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지, 특히 마지막 때에 우리나라의 선교 사역으로 인해 유대민족의 대규모적 회심이 일어나고 그들의 메시아 예수 앞으로 돌아와 구원을 받게 되는지 그 신학적 근거와 이유를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로마서 11장은 바울서신 가운데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7:1~8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의 구체적 실현 방식에 관한 계시다. 따라서 로마서 11장에 대한 이해 없이는 계시록 7:1~8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삼각관계의 신학(Triangle theology)
로마서 11:25, 26에 약속된 “온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방의 나라인 동방의 코리아에 의해 성취된다는 계시록 7:1~8의 교훈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11:11~14까지 언급된 바울의 유명한 이른바 삼각관계의 신학(Triangle theology)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 11:11~14).
11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실족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해진 것조차 이방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고 이를 통해 결국은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타락은 영원한 마지막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 속에 구원사의 한 과정에 불과한 잠정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즉 때가 되면 이방인에게 격발된 이스라엘이 돌아와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방인~이스라엘의 계통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 구원적 역사의 대계는 흐르는 것이니, 이것이 바울의 삼각관계의 신학이다. 이는 사실상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거부가 일시적인 것이며,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근본적인 해답을 밝힌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12절에서 이스라엘의 타락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면, 하물며 이방인에 대한 시기심에 자극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이 충만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앞으로 돌아올 때, 그것은 더 좋은 세계적 축복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아간다.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롬 11:12).
그러면 그 더 좋은 세계적 축복이란 무엇인가? 그 해답은 15절에 기록되어 있다.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롬 11:15).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란 ‘부활’을 의미한다. 따라서 15절의 의미는 이스라엘의 회심이 부활의 직접적인 전조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일치할 것이다. 성도들의 부활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15절의 의미는 이스라엘의 회심이 예수님의 재림의 직접적인 전조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F. F. 브루스 저, 권성수 역, 「로마서」, 기독교문서선교회, 1985, p.239). 즉, 후일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느님의 받아들여짐이 될 때에는, 죽은 자들의 부활의 시기,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가 임할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오늘날 유대인들이 여전히 그들의 불신앙으로부터 회심하지도 않았고, 불신앙과 결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며 현실 도피적 시한부 종말론을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한 거짓이다. 이스라엘이 회심하여 하느님의 받아들여짐이 되기 전에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가 임하지 않는 것이다.
왜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까지도 그들의 메시아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한다면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한다. 유대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복음전도자를 파송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의 최대의 소망이다. 이것처럼 큰 우주적 축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때에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썩어질 육신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순식간에 변화하여 공중으로 들림 받는다(고전 15:51~54, 살전 4:15~17). 그리고 악한 마귀는 무저갱에 던져지고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나라가 충만하고 완전하게 이 땅에 임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1:12과 15절에서 이스라엘이 이방인에 대한 시기심에 자극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히 하느님 앞으로 돌아올 때, 이와 같은 더 좋은 세계적 축복의 때가 임한다고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신부인 성도들의 복된 소망이다.
그리하여 구원이 유대인으로부터 왔으므로(요 4:22) 구원사에서 유대인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이스라엘을 시기케 하여 하느님과 화목시키는 일을 담당할 주요 도구인 이방인 역시 그 역할이 심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이방인의 성공적인 수행이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충만하고 완전히 임하도록 하는 결정적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계 속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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