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

[스크랩] 주님은 오십니다… 어느 곳부터 찾으실까요

수호천사1 2018. 12. 9. 22:35

[두글자 발견 : 대림] 주님은 오십니다… 어느 곳부터 찾으실까요


- 이지현 선임기자 (국민일보)





▲사진=Unsplash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구두장이 마틴’은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구두장이 마틴은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성경을 읽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마틴은 잠결에 “내가 내일 너를 찾아갈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다음 날 온종일 예수님을 기다렸지만 만난 사람은 늙은 청소부, 아이를 안은 젊은 여자, 사과를 훔친 남자아이뿐이었다. 그들에게 선행을 베푼 마틴은 나중에서야 기다렸던 예수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교회는 지금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2018년의 대림절(12.2~24)을 보내고 있다. 만일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제일 먼저 어디를 찾으실까. 값비싼 물건이 진열된 백화점 쇼윈도나 요란한 크리스마스 장식 위가 아니라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일용직노동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나온 노숙인들, 취업 준비에 매달린 청춘들,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쪽방에서 파지를 주워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가실 것이다. 또 계속 올라가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잘되는 가게 문을 닫아야하는 사장님들, 심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 입시 스트레스로 숨조차 편히 쉬기 힘든 수험생들, 은퇴 준비가 안돼 걱정하는 시니어들을 찾으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오실 것이다.

“주님은 오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내년이 아니라 올해, 우리의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로,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주님은 오십니다.”(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 중에서)


인간의 실존, 기다림

2000여년 전 로마제국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억압에서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렸다. 첫 번째 성탄절,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적었고 그가 올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더 적었다. 그러나 성경 누가복음 2장엔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을 금식하며 기도와 섬김으로 기다리던 메시아를 맞이한 안나 선지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오랫동안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기도로 주님을 기다리던 그가 마침 정결 예식을 행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온 예수님의 부모와 성탄한 아기 예수를 만났다는 내용이다.

‘기다림’이란 무력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선택이며, 소망을 굳게 붙잡는 일이다. 그러나 기다림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면 기다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다림이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지시를 따르며, 당당히 서리라 믿으신다.

폴 틸리히는 저서 ‘흔들리는 터전’에서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는 인간의 실존을 ‘기다림’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편은 ‘갈망하는 기다림’을, 사도의 서신은 ‘참을성 있는 기다림’으로 그렸다고 했다.

“기다림이란 가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소원할진대 우리들은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무한히 감추어져 있고 자유롭고 측량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가장 절대적이요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폴 틸리히의 ‘흔들리는 터전’ 중에서)

폴 틸리히에 의하면 기다림이란 ‘아직은 현실이 되지 못한 것을 예측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린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의 능력이 이미 우리 안에 실현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주님은 지체됨에도 불구하고,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

대림절을 뜻하는 라틴어 ‘애드벤트’(Advent)는 ‘오다’ ‘도착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로마 제국에서 신적인 명예가 주어진 황제가 즉위한 후에 여러 도시와 지역을 방문할 때, ‘그분의 방문’(His Advent)이라고 한데서 유래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구세주의 오심’(The Coming of Our Savior)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애드벤트’란 단어에 담긴 대림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 오심을 의미한다. 즉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과 다시 오심을 맞기 위한 준비의 절기이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프레이포유 대표 손은식 목사는 ‘거리의 예수’를 만나러 매일 종각, 서울역, 영등포 쪽방촌 등을 찾는다. 그는 거리 노숙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차가운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을 만날 때 ‘내가 이들과 함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져요.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따뜻한 손을 펴는 것이 대림절에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눈물이 가득하고 사랑이 넘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화려한 교회가 아니라 차가운 거리 바닥으로 많은 크리스천이 향하기를 기도합니다.”

세계로요양병원 진료과장 이건훈씨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지금 오신다면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오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거동하기 힘들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찬양을 들려주는 ‘노래하는 의사’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였어요. 주님을 가장 사모한 사람이라서 제일 먼저 만나 주신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을 간절히 찾은 사람이 되길 바라요. 그래서 우리의 상하고 찢긴 마음을 싸매시고 회복시키시는 구원의 주님, 내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신 대속의 예수님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대림절은 ‘겨울철의 사순절’ 같다.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절기이다. 구원의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려면 우리가 먼저 어려운 이웃, 가까이 있는 가족, 친지, 직장동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겠다.


▒ 대림에 하나 더

초대교회 성도들의 고백 ‘마라나타’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라나타’(Maranatha)를 고백해 왔다. 이는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신앙고백이다. 이미 이루어진 사건으로 표현되는 ‘주님께서 이미 오셨다.’(Our Lord has come!)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사건에 대한 소망이 담긴 ‘주여, 오시옵소서’(Come! O Lord)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다시 오심을 통해서 완성된 구원역사를 매해 재현하는 것이다.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된다. 대림절은 주후 4세기경에 초대교회에서 지키기 시작했다. 성탄절 4주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성탄절을 준비하기 위해 시작됐다. 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로서의 의미가 추가됐다. 대림절은 단순히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에서 더 나아가 이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으로 지켜지게 됐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5~26)


[출처] 국민일보

출처 : 예수 코리아
글쓴이 : 예수코리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