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역] 안수 기도 받은 후 당신은 치유되었나요? ▓▓▓▓▓▓▓▓▓▓▓▓▓▓▓▓▓▓▓▓▓
아프고 병든 자들의 경우, 치유 사역이 펼쳐지는 현장에서 쉽사리 볼 수 있다. 물론 필자의 경우도 그랬다. 지금도 기회만 생기면 주변에서는 내게 권한다. “어서 저분의 기도를 받고서 아픈 부분을 빨리 치유 받아라”라고.
물론 그분들의 권면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치유 기도를 받는 당시에 “기도하는 자와 기도를 받는 자”가 공통으로 인식하는 부분들이 있었음을 직시해야 할 줄로 믿는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을 “기억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오늘의 나눔을 나누고자 한다.
필자는 2010년 8월 15일 오전부터 중증근무력증이 시작되었다. 심한 두통으로 시작되었는데 급기야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다. 그러자 잠시 한 두 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 그리고 일어났더니 다소 두통이 사라진 듯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두 눈을 뜬 상황에서 “하나의 물체”로 보여야 할 물체들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내 아내도 둘로 보이고, 내 사랑하는 딸도 둘로 보인다.
하지만 초반에 나타난 현상을 익히 경험했던 바도 없었던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서는 강원도 오대산 근처에서 서울의 강동구까지 자가용을 운전하면서 왔다. 물론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 역시 두 개씩으로 분리되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했었다. 무척 위험했던 상황이었음을 지금에서는 회상한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투병기.
주변의 들려주는 말들로 “허다한 치유 은사자와 그분이 행하시는 집회”를 참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안수 기도를 늘 받았다. 축사 기도도 받았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살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은 물론이고 송곳이나 못으로 살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까지도 경험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았다. 12개월 된 딸 아이가 엄마 손에서 홀로 자라게 될 것이 너무나 안쓰러웠기에 기필코 살아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참았다.
그런데 기도를 받고 나서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나를 매우 곤란하게 만들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치유 기도(안수와 축사기도)를 받고 난 직후의 몸 상태가 기도를 받기 전의 몸 상태보다 훨씬 더 악화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선 화를 냈다. (그 당시 필자는 물론이고 아내 조차도 영적인 현상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했었기에 이와 같은 감정변화를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신은 기도를 받았는데 무엇이 모자라서 몸이 더 아픈 거야?”
“당신이 빨리 빨리 회개를 해야만 되는데,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거야?”
“기도를 해 주면, 무조건 아멘으로 받고 믿음으로 순종해야지 왜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는 거야. 그렇기에 몸이 더 아픈 거잖아”
나는 아무것도 행동을 취한 것이 없었다.
단지 기도를 받는 순간, 바닥에 누워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참아가면서 인내만을 했을 뿐인데. 기도가 끝나고 났더니 오히려 더 몸이 아파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기도가 시작되기 전에 은사자 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제가 선포하면, 아멘으로 받으십시오”
“OOO집사는 예슈아의 피로 씻음을 받았나니, 중증근무력증을 일으키는 귀신은 사라질 지어다”
“예슈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OOO집사는 중증근무력증에서 나음을 입었도다”
나는 “아멘”이라 크게 외치며 나의 심령도 “고침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왠걸. 내 몸은 나음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실례로 어떤 치유기관에서 나름 가장 치유와 축사의 은사가 강하신 목사님이 내게 기도를 해 주시고는 “OOO집사는 다 나음을 입었으니, 지금 당장 저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다시 뛰어 내려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진정 믿음으로 행하여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여겼다. 내 주변에 계신 모든 분들도 그러했다. 그래서 중증근무력증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단을 달려서 올라갔다. “오~ 이게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올라가지는 구나”하고 스스로 놀랬다. 이제는 내려올 순간이다.
한 발을 힘껏 아래 계단에 내딛고 다음 계단을 딛기 위해 나머지 발을 들려는 찰라다. 이미 딛고 있던 발의 무릎이 구부러지면서 나는 계단에서 그냥 힘없이 넘어져 버렸다.
쿠~~우~~우~~웅
계단 주변에 앉아 계신 던 분들도 깜짝 놀랬고, 나에게 기도를 해 주셨던 은사자 목사님도 깜짝 놀래서 달려오셨다.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전개되어 버렸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그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그날의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말을 듣게 되었다.
“주께서 OOO집사의 몸을 천천히 치유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분명, “치유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달려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넘어지고 나니 들려주는 말은 “주께서 천천히 치유하신다고 말씀하신다”는 변명뿐인가?
그때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도 없었다. 바닥에 덩그라니 누워있으면서 소리없이 기도했다.
“야훼 하나님. 당신이 내게 이곳에 가라 하셨기에 왔건만,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랬더니 “나는 내게 그곳에 가라고만 했지, 계단을 뛰어서 올라가라고 명하지는 않았다. 너는 나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을 들었다”고 야훼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어떤 이가 네게 나의 말을 전했다면, 너는 그 말을 내게 다시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전하는 자의 말은 모두가 부분적인 내용 밖에 아니기에, 내게 물어볼 때 내가 네게 더욱 온전한 나의 뜻을 밝히 보여줄 것이다”
그 순간 내게는 큰 깨달음이 임하였다.
이후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었다. 물론 아내는 약 2~3년 뒤가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치유 기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받았음”이라는 사실이 나의 모든 상황을 종결 지어 줄 거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치유 기도를 받은 직후 곧바로 야훼 하나님께 치유 받은 것에 대해서 되묻게 되었다.
이러한 삶이 조금씩 조금씩 나의 투병생활 속에서 일어나게 되더니, 4년이 지난 지금은 웬만한 일조차도 나는 늘 기도하며 행하기에 이르렀다.
※ 물론 늘 “100% 완벽한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산다는 것은 아니다. 야훼 하나님은 내가 아무런 노력이나 애씀 없이 “당신의 음성을 쉽게 듣는 자”로 이끌지 않으신다. 그래서 “당신의 음성을 더욱 세미하게 하시고, 마치 당신의 음성과 유사하리만큼 사단의 음성이 나를 속일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허락하여 놓으셨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셨다. 따라서 어떤 영적인 상황에 도달하게 될지라도, 나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 순간 분별에 분별을 더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삶이 바뀌었다.
다른 아픈 이들과 현저하게 차이가 날 만큼 바뀌었다.
“치유 기도”를 받은 이후, 나의 몸 상태에 관심을 가지면서 “왜 몸이 회복되지 않았지?”라고 고민하며 아내와 다투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게 되었다.
“나는 치유 받았다.”
“나의 육안에 보이는 육체가 어떠하더라도, 나는 이미 치유 받았다.”
“치유된 나의 몸에 나는 더 이상 관심 두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의 몸을 치유하신 야훼 하나님의 음성에만 관심을 둘 것이다”
그의 전지전능하심이 내게 임한다면 어찌 한 순간에 나음을 얻게 하지 않으시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지금의 상황을 허락하심은 “내게 합당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시는 이의 은혜”이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나의 치유됨은 육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의 치유”가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자 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관심은 “육의 치유가 아니라 영의 치유”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 육의 치유가 목적이 된다면, 다음의 경우는 매우 합리적이지 못한 성경적 사실이 되어 버릴 것이다. 예로써, 순교자의 삶이 그것이다.
※ 육신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안락한 삶이 목적인데 왜 죽음의 자리로 갈 수 있단 말인가?
※ 하지만 영의 치유에 목적을 둔다고 해 보자. 그 안에는 “육신의 치유도 있겠고, 또는 육신의 치유는 없지만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영적 변화가 그의 내면 안에서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을 것이다”고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울러 그 내적 변화는 곧 “이 땅에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자”로 바뀌게 됨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육신이 얻어야 할 안락한 삶에는 관심이 없고, “순교의 자리”라 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향하고 그분의 영광이 있는 자리라면 능히 달려갈 수 있는 충직한 자로 바뀌는 것이지 않겠는가?
내게 일어난 이러한 내적 변화는 아내에게도 서서히 스며들어, 아내도 변화되어가게 되었다. 필자와 아내는 오늘도 그렇게 변화되고 있다.
이후의 모든 은사사역의 현장에서 늘 기도로 그 순간을 먼저 임하게 되었다.
“주여. 나를 이곳에 보내신 뜻이 무엇입니까?”
“제가 안수기도 받기를 원하시나요?”
“너무나 아플 것 같은데요. 이제는 안 받고 싶은데” 등등.
결국, 몸의 아픈 것 때문에 안수 기도를 받아야 하는 순간이 내게 찾아올 지라도 나는 더 이상의 나의 몸 상태 때문에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이는 모든 행위에 대한 결정을 “내가 스스로 결정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기도를 받았음을 믿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육신(의 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기도 받았음에 대해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은
“나의 관심이 야훼 하나님께로 100% 향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여러분.
치유 기도를 받으시고, “당신은 나음을 얻었습니다”고 선포하셨나요?
그럼 더 이상 당신의 몸 상태(의 변화)에 눈길을 주지 마세요.
불편한 육신이 그대로 여전히 계속될지라도, 더 이상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자신의 육신에게 집중시키지 마세요.
오직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의지하십시오.
그가 여러분께 가장 좋은 것으로 (지금 현재, 믿음의 고백을 행하신)여러분의 삶에 부어주셨음을 믿으십시요.
그리도 “매일같이 그분의 음성에 청종하는 삶”을 살 때, 여러분은 비로서 영적으로 가장 온전한 치유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 육신의 치유를 받았다 할지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육신은 죽게 됩니다. 하물며 몇 일이 지나면 또다시 다른 질병이나 사고로 인하여 육신의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 결국 육신의 치유는 이 땅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실이란 결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영적인 치유”요 “우리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되는 것”에 기뻐하는 자로 바뀌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영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도 같은 이 세상에서 “담대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능히 이기는 자로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과 마음이 당신의 육신을 떠나…….
야훼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는 그것만으로……
그와 같은 축복이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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