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18:18-24절 말의 축복도 심고 거둔다
말이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화목 할 수도 있고 혹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가하면 험하게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분쟁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제비뽑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공동체가 문제가 있을 때 제비를 뽑으면 다툼이 끝나고, 강한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판가름 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이 큰 복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18절을 보면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 이것은 강한 자들 사이에 힘으로서 충돌하는 일을 방지 하려는 해결책으로 제비뽑기를 제안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비뽑기에 운명을 맡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잠16:33절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하고 말씀을 하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중대한 사건이나 인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제비를 뽑았다는 것입니다.
민26:52-56절을 보면 특히 55-56절을 보면“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찌니라 그 다소를 물론하고 그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찌니라” 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있어 제비뽑기는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고 그대로 순종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결과에 순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비뽑기를 한 예가 많이 나옵니다.
민26장에서는 땅 분배한 사건이 있고, 수7장에서는 아이 성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색출할 때도 제비뽑기로 했고, 삼상10장에서 사울 왕을 세울 때에도 그랬고, 욘1장에서 다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에도 그랬고, 초대교회에서 행1장에 가룟유다를 대신 할 사람을 뽑을 때에도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어도 오늘날에도 제비뽑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제비뽑기를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하더라도 분쟁의 요지가 있고 간단히 해결이 안되는 중요한 일에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주권에 내어 맡긴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문제를 놓고 시25:9절“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우리가 겸손히 그분에게 내어 맡기면 하나님은 기쁘게 그 문제를 맡아서 지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렘10:23절에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했고 시32:8절에도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화목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조화가 깨어 질 때는 반목하고 분쟁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때에는 바로 하나님께 엎드리어 그의 뜻을 묻고 구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에 문제를 맡기고 자기의 생각이나 고집을 내려놓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것이 지혜입니다. 인간은 본래 죄성이 있어 해결되기가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19절입니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새번역입니다. “노엽게 한 친척과 가까워지기는 견고한 성을 함락시키는 것보다 어려우니, 그 다툼은 마치 꺾이지 않는 성문의 빗장과 같다” ‘문빗장’은 폐쇠 된 문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노엽게 한 후에 화해하고 화목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절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험한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20-21절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공동번역 “입을 잘 놀리면 단 것을 실컷 먹고 입술을 잘못 놀리면 쓴 것을 들이켜게 된다” 이어서 21절“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혀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말하기를 좋아하여 불필요한 말들을 하였을 때 그 말들로 곤경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 배우 맥라이언이 96년도에 우리나라 샴푸 광고 섹시 마일드를 찍고 그가 어느 방송 토크에 나가서 말하기를 어느 이름도 모르는 아시아 어느 나라에 광고를 찍었는데 무슨 수녀복을 입고 이름도 섹시 마일드라는 것이었다고 조롱했다. 이것이 한국에 알려지고 인터넷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서 그가 사과를 하고 돈도 돌려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인기도 뒤안길로 사라져갔다는 것입니다. 혀의 열매의 좋은 예라고 봅니다.
솔로몬은 입으로 나오는 말을 농사하는 것으로 빗대어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이 우리의 언어는 축복의 언어로 다듬어져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또 덕 있는 언어, 아름다운 언어를 하기 위해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의 감정에서 나오는 대로 하면 분위가 험해지고 축복보다는 저주가 나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농사지을 때 토지를 갈아엎고 거름을 주고 좋은 씨앗을 골라 파종하고 잡초가 자라면 뽑아 주고 벌레가 있으면 잡아주고, 때로는 가뭄이 길면 물도 뿌려 주면서 농부는 온 정성을 다하여 가꿀 때 가을에 좋은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사람에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해 배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도 심는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 했다고 해도 일단 밖으로 나온 말에는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마12:36-37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말에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을 할 때는 진실되게 경건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왕이면 격려하고 축복하고 세워주는 단어들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격려의 씨앗을 뿌리고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입에서 뿌려진 잘 다듬어진 언어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골4:6절“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자신이 복된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을 복된 자로 세워야 합니다.
22절“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여기서 ‘아내’는 ‘마차 잇솨 마차 토브’ ‘토브’는 ‘선하다, 좋다, 번영, 행복, 이익’등등의 의미가 있고 ‘마차’‘발견하다, 만나다’의 동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 혹은 하나님이 주신 행복과 유익. 그 자체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내를 얻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은 잠14:1절을 보면“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운다”고 했고 잠19:14절“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하심으로 좋은 아내 얻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좋은 아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맞지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성경에서 한 몸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만 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부부가 서로 좋은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아무리 복된 아내를 얻었어도 그 가치를 모르고 홀대하고 학대하면 그 가정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고 사랑하는 관계일 때 축복된 가정입니다. 고전7:3절“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23절“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이 말씀은 가난한자의 비참함과 부자의 교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유의 많고 적음에 행동과 태도가 달라지면 안됩니다.
24절“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본문은 무분별하게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익하고 진실한 사귐을 갖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진정으로 도와줄 친구가 있는가. 묻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잘못된 언행을 부추기고 평안하고 번영할 때는 곁에 있다가 어려움에 처하게되면 떠나버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모델이 있는데 다윗의 큰 아들 암논이 그의 친구 요나답의 권유로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결국에는 배 다른 동생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삼하13:1-32), 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교도를 따르지 않고 함께 자란 친구들의 의견을 따르다가 왕국이 갈라지는 슬픔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반대의 인물도 있는데요.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을 성경은 여인과의 사랑보다 승하더라고 했습니다. 또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만남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어떤 사람과 사굄을 가지고 있는지요?
살후3:6절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우리 모두는 복되고 은혜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은 원함만 가지고 되지 않고 우리의 심령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나 이웃과 더불어 누릴수 있습니다,
마치려 합니다.
행복하고 온전한 삶을 원한다면 지혜의 보고인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고 묵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으로 스스로 자신의 속사람과 이웃과의 관계를 온전하게가꾸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등대지기 하늘산소,
'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긍정의 말의 씨 (0) | 2018.09.05 |
---|---|
[스크랩] 수천년 동안 효과가 입증된 말의 능력 (0) | 2018.09.05 |
[스크랩] 찬양인가? 연주인가? (0) | 2018.09.01 |
[스크랩] 우리가 생략해버린 것들! (0) | 2018.08.28 |
[스크랩] 히브리어로 `부흥`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0) | 2018.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