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구원
“8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더라“(마 15:8-9) [한글킹]
신학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없다. 학자들이 만든 교리가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감하는 영적인 영역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신학, 즉 학문을 가지고 구원에 이를 수 없다면 성경공부를 가지고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소위 성경 세미나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거짓신앙에서 자랑하고 홍보하는 유명 목사들이 주도하는 성경 세미나가 허구라는 것을 알게 한다. 예수님은 만나야 할 대상이지 세미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신학의 맹점은 학문적 체계나 업적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그리스도가 주인 되는 삶이 무엇인지를 계시로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신학자들의 괴리감은 여기서 비롯된다. 학문적인 체계나 업적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도 없다는 결론 앞에서 자신들의 연구 업적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항할 수 있는 논리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신학은 하나님과 무관한 인간의 지식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1. 신학이 구원의 필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증명
신학적 지식이나 학문적 체계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많은 부분에서 성경과 대립된다. 한마디로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에녹이 살았던 때, 노아, 아브라함, 모세가 살았던 때는, 신학은 고사하고 성경도 없었다. 성경이 없는데 학문적인 체계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시 말해서 신학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구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학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구원이 있었다면 신학은 구원에 필수가 아니라는 것이 확증되는 것이다. 학위가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제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만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에게만 성경공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져야 할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들 역시 학문적인 체계를 세울 수 있는 지식인들이 아니었다. 주님 또한 세상의 배움이 없으셨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신앙을 삶으로 이해하였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이 주님 안에 계시는 성부 하나님과 교제를 통하여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론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 교회에서 말하는 것들과는 전혀 관점이 달랐다.
1-1. 성경공부와 구원
호세아 4장 6절과 성경공부에 대하여 보기로 한다. 신학이 구원의 필수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호세아 4장 6절을 근거로 성경공부에 대하여 반문한다. 호세아 4장 6절의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이 구절을 성경공부를 해야 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앞에서 신학이 구원에 필수가 아니었듯이 성경공부도 구원에 필수가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없었을 때 구원이 있었다는 것, 즉 에녹이나 노아, 아브라함에게 구원이 있었다는 것을 예로 설명하였다. 에녹이나 노아, 아브라함은 성경공부를 해서 구원에 이른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호세아 4장 6절에서 말하는 것은 성경공부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경험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교회에서 가르치는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 인격적 관계를 경험하는 지식을 말한다는 것이다.
농사짓는 방법을 모르면 수확을 할 수 없듯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험적 지식이 없으면 구원을 말할 수 없다.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신앙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서 아는 경험적인 지식이 아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나 성경 66권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은 신앙생활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높이실 수 없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우겨댈 때는 답이 없다. 다시 말해서 거짓신앙의 편견을 진리라고 우길 때, 하나님께서는 의지의 원리(자세한 것은 ⌜영의 원리⌟ 영의 원리12. 의지의 원리를 참조하라.)에 의해서 일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가르침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8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더라“(마 15:8-9) [한글킹]
사람들의 계명을 교리로 가르치면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한다고 말해도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 있고, 예배는 형식에 그치고 헛된 경배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가르쳐 온 성경공부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자신들이 가르치는 성경공부가 어쭙잖은 신학교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이것도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신앙의 본질에는 접근을 못하고 영적인 우월감과 교만으로 많은 사람을 피로하게 한다. 미국에 살기를 원한다면 영어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우선 하나님의 언어를 배워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령의 언어에 대해 가르치지 못하는 교회의 성경공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교회에서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바보들의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1-2. 신학에서 증명하지 못하는 것
신학에서는 신약성경의 기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방법에 대해서 바울은 침례, 즉 세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갈 3:27, 각주참조) 그러나 지금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를 받았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의 신비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성경의 능력이 넘치는 생활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그리스도와 연합될 수 있는가? 신학에서 답할 수 없는 치명적인 부분이 이 부분이다. 학자들은 이제 붓을 꺾어야 한다. 더 이상 구원의 길로 안내할 수 없는 이론을 들고 하나님을 위한 학문이라고 말해서도,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아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의 신비 속으로 진입하는 진입로를 찾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는 지금의 신학 이론은 영생과 전혀 무관한 인본주의의 산물, 즉 사탄의 작품인 것이다.(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것은 필자의 책 ⌜영의 원리⌟ 11-2.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가를 참고하라.) (중략)
[회복시리즈 08. 성경적 구원 中 일부 발췌 / 박찬빈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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