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스크랩] 조상이 같은 세 종교가 원수 된 이유

수호천사1 2017. 12. 23. 10:55

조상이 같은 세 종교가 원수 된 이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 세 종교에서는 모두 구약을 경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조상이 같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이고, 기독교의 경전은 구약과 신약이고, 이슬람교의 경전은 구약과 코란이어서 이 세 종교의 조상은 공통적으로 아브라함이다. 그들은 친족관계이다. 그런데 조상이 같은, 친족 관계에 있는 이 세 종교가 현재 원수가 되어 있다. 요즘 롯데의 형제가 다투는 것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롯데가의 큰 아들이 우리말을 못하는 것을 보고는 롯데가 일본기업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롯데에 대한 불신을 토로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택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세 파로 나뉘어서 치고받는다는 것은 외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라비아에서 분가한 이슬람교와 달리, 유대교의 본거지에서 분가하기로 마음먹은 신약의 기록자들은 종교에서 분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배반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입을 박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들의 조상이 유대교의 조상과 같다는 것을 힘써 강조했다. 특히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마태복음의 맨 처음에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도 예수가 다윗의 자손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윗의 족보를 자세하게 언급했을 뿐 아니라, 예수가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을 강조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예수가 그의 복음을 전파할 때 구약을 수시로 인용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사도들 역시 구약으로부터 많은 부분을 인용하면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계성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그렇지만, 유대교로부터 분가하기로 마음먹은 신약의 기록자들은 왜 그들이 유대교로부터 분가하려고 하는가 하는 이유를, 다시 말해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만 했다. 그래서 마태복음 초두의 산상수훈에서 모세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어떻게 다른가 언급하기 시작해서 예수가 유대교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1장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7)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서 이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다. 공관복음에서도 유대교인들과 예수의 대립이 그려져 있지만,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유대교인들과 예수가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대립은 서신서들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특히 바울은 애당초 모범적인 유대교인이었지만, 예수의 음성을 들은 후부터는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의 사도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그래서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유대교에서 분가하는 데에 협조하기 위해서 그가 걸은 험난한 길이 자세히 언급했고, 바울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주의적인 유대교와 예수의 은혜에 기반을 둔 기독교의 차이를 웅변적으로 갈파하고 있다.

한편 유대교 측에서는 분가할 기미를 보이는 예수를 가만두지 않았다. 유대교인들은 예수의 복음에 분가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를 잡아 죽이려고 여러 번 모의했다. 예수는 여러 차례 교묘히 그들의 포위망을 벗어났지만, 그 좁은 땅에서 그들의 포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힘으로 예수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로마의 법에 호소했는데,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예수의 갈등이 분가를 반대하는 유대인들과 분가하려는 예수 사이에 생긴 집안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란을 두려워해서 예수의 처형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이 사실을 간파한 빌라도는 예수의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달도록 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구약을 경전으로 공유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두 종교가 심각하게 대립해 왔는가 의문을 갖게 된다. 유대교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수가 많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면 왜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가? 예수와 예수의 추종자들은 종교에서 분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큰 위험을 무릅쓰고 분가하려고 한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선언서가 신약인데, 왜 우리는 유대인의 구약을 신약과 거의 비슷하게 중시하는가? 그것은 기독교의 분가 선언서의 의미를 약화하는 것 아닌가? 달리 말해서 기독교의 정체성에 흠집을 내는 것 아닌가?

아라비아 땅에서 분가한 이슬람교는 기독교가 분가할 때 겪은 유대교와의 첨예한 대립을 겪지 않았다. 그들 역시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구약을 그들의 경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대로 유대교나 기독교와 조상을 같이 한다. 그런데 조상을 같이 하는 그들이 유대교나 기독교와 원수가 되어서 극렬하게 싸웠다. 특별히 예루살렘 성지를 놓고 세 종교는 자기편에서 그 성지를 차지하려고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을 일으켰다. 예루살렘을 차지하려는 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오랫동안의 십자군 전쟁에서 잘 볼 수 있다. 십자군 전쟁 전후에도 이슬람에서는 터키를 비롯한 유럽과 아프리카의 기독교 국가들을 정복해서 가톨릭 성당들을 모스크로 바꾸었고 가톨릭과 이슬람 사이에 전쟁이 반복되었다. 지금도 그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면 조상이 같은, 다시 말해서 구약을 경전으로 공유하는 기독교와 이슬람을 이렇게 대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기독교의 신약과 이슬람의 코란의 차이 때문이다. 구약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예수의 복음을 기록한 신약과 마호멧의 계시를 기록한 코란의 차이로 인해서 두 종교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이 두 경전의 차이는 그들이 공유하는 구약을 뒷전으로 밀어내 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구약을 공유한다는 사실, 그들이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신약과 코란에 의해서 무의미해졌다. 그 두 종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신약과 코란이기 때문이다.

지금 두 종교를 화해시키려는 중재자가 나왔다고 가정할 때, 그가 당신들은 조상이 같지 않느냐고, 조상이 같으니 서로 손잡고 화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 두 종교의 지도자들이 선뜻 나서서 당신 말이 옳다고 수긍하면서 화해하려고 할까? 지금 갈등을 겪는 두 종교가 화해하는 데에 구약은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유대교와 기독교를 중재하려는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서 화해시키려고 한다면, 구약에 근거한 그런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이것 역시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이슬람에서 구약의 의미는 무엇인가? 특히 기독교에게 있어서 구약의 의미는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최재석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