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의 4대 원리
(행 16:11-15)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이 시간에는 “동역의 4대 원리”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O.M.F(해외선교사협회) 고문이었던 오스왈드 센더스(J. Oswald Sander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아니라 '한 사람'을, 집단이 아닌 한 명의 개인을 찾고 계신다.” 그러면서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교회는 권위 있고 영적이며, 희생적인 지도력을 최우선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각인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준비된 신실한 사람이어야 할 것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는 개인플레이가 아닙니다. 마치 축구나 농구 배구 야구 같은 종목에서 개인기가 아무리 뛰어나도 팀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듯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가는데 있어서도 우리 모두 함께 동역하는 것은 사역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 일의 동역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1. 비전의 원리입니다.
행 16장을 보면 바울이 꿈에 환상을 봅니다. 행16:6-9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 목표는 원래 아시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시아에서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길을 열어주시지 않고, 마음 중심에서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시지 않고 그를 유럽 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시아가 바울 자신의 꿈이라면 유럽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입니다. 내 꿈과 비전은 다릅니다. 내 꿈은 내가 품은 것이지만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중심으로나 환경으로나 수차 사인을 주시지만 아시아에 대한 지나친 열망 때문에 바울이 쉽게 깨닫지 못하자 밤에 자는데 꿈에 환상이 보이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부릅니다. 그 때야 모든 것을 종합해 본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마게도냐로 부르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보듯이 우리 꿈이 너무 강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쉽게 포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 원하는 대로 쓰시라고 자신을 맡겨드리면서 그 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쓰임 받는 자세입니다. 너무 자기 주관이 강하면 그것 깨는 데만 몇 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리는 수가 있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나의 인생 참으로 귀한 일 크게 하자는 마음은 나쁘지 않지만, 그런 마음 때문에 쓰임 받는 자세를 갖지 못하고 자기 꿈이나 주관을 포기하지 않는면 그만큼 늦습니다. 그러므로 렘33:3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주실 것입니다.
2. 만남의 원리입니다.
행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바울이 강가에 나간 것은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 봐서 예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핍박을 받아 흩어진 성도들은 강가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계에 흩어져 살지만 언제나 머무는 곳에 회당을 짓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회당이 없을 때는 강가에 나와서 예배하는 습관이 바벨론 포로기에서 부터 있었습니다(스 8:15, 시 137:1). 예수님께서도 회당이나 갈릴리 바닷가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양쪽 다 사모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전도할 사람이나 기도의 장소를 찾고 있었고, 거기 모인 사람들은 전도해 줄 교역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여 예배하는데 말씀을 전할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그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마9:37-38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셨습니다. 요4:35에도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빌2:13-14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했습니다.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가 사모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고 만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3. 능력의 원리입니다.
14절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두아디라는 섬유와 염료산업이 발달된 산업도시로 루디아가 그곳에서 옷감장사를 하고 있던 능력자였습니다.
“루디아”라는 이름부터가 ‘생산’이라는 뜻으로 기업체 사장의 이미지가 풍기듯 보통 여사장이 아닙니다. 두아디아 성의 자주 장사라는 표현은 두아디라의 대표적인 옷감장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주색 옷감은 옷감도 비단이려니와 자주색을 내는 원료가 아주 귀하기 때문에 왕을 비롯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면 입을 수 없는 대단히 고급 옷감입니다. 재력 없으면 손 댈 수 없는 장사입니다.
그러니까 루디아는 고급 손님들을 많이 만나는 여자였고, 무역을 했으므로 활동력도 있고, 견문도 넓고 재력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도 있으면서 경제력도 있고 사람도 거느린 능력 있는 기업의 여사장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개척의 동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일에는 경제력도 사람도 능력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영적인 것과 물질까지 준비하려면 어떻게 일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자비량했던 것처럼 선교사역 시 그럴 수도 있지만 루디아를 만난 상황에서는 안정적인 사역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루디아와 같은 능력 있는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야 하고 교회가 경제적으로 충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든든한 평신도들이 많이 일어나 국내외의 선교사역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신도 운동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목회자가 먼저 가면 선교가 도리어 방해됩니다. 빌립집사가 먼저 가서 여러 가지 유익을 주는 은사로 전도하고 사도들은 나중에 가서 세례를 베풀었듯 세계선교는 평신도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목회자는 목회나 지도자 양성을 위할 뿐 나머지의 일들은 평신도들이 해야 효과적입니다. 지역선교도 성경책 들이댄다고 전도되는 것 아닙니다. 누구나 다 와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이나 의료 복지 중심의 평신도 사역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설도 필요하고 경제력이 뒷밭침 되어야 합니다.
4. 충성의 원리입니다.
15절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바울 일행을 초청하여 루디아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습니다. 얼마나 결단력 있고 대단한 여자입니까?
한 마디로 루디아의 집안은 바울의 말을 듣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순종하는 가족이었습니다. 꾸물거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집을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이것을 보여주시는 것은 교회가 이래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일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세월보내기 딱 좋은 그런 미지근한 기질을 버리고 전 교인이 하나 되어 일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런 여장부를 등장시킨 것은 우리에게 도전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자도 이렇게 했는데 모두 대장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마지막 운명하면서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했습니다(왕상2:1-3).
하나님은 남녀노소 혹은 나이와 관련 없이 역사하십니다. 오스트리아의 캐넌 내시(Cannon C. H. Nash)는 빅토리아 신학대학을 설립해 수천 명의 젊은이를 하나님의 종으로 훈련시켰습니다. 70세에 학장직에서 은퇴한 후 80세가 되었을 때도 새로운 10년간의 풍성한 사역이 그의 앞날에 놓여 있다는 확신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대로 이루어져 그는 노년의 몸이지만 교역자들과 평신도들로 구성된 주요 그룹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으로 특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기간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풍요로웠다고 말합니다. 그는 갈렙처럼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은 없다는 확신 가지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군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준비된 일군이 되십시다. 모세도 40년간 준비했고, 예수님도 30년 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쓰실 날이 옵니다.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할 추수할 일군과 함께 도울 동역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바울과 루디아와 같이 비전의 원리, 만남의 원리, 협력의 원리, 그리고 충성의 원리로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 다하는 귀한 일군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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