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강해
천지 창조(창1:1-31)
머리말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모든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신념이다. 누구든지 무엇을 주장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누구든지 무슨 이의를 제기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제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목회 전반, 목사의 설교나 지교회 혹은 전체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제쳐놓고 무슨 활동을 계획하거나 수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창세기의 히브리어 성경 명칭은 맨 처음 단어인 베레쉬스 (‘태초에’)이다. 창세기(創世記, Genesis, 기원)라는 말은 헬라어 70인역에 따른 명칭이다. 창세기는 과연 기원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는 세상의 기원, 인류의 기원, 결혼의 기원, 죄의 기원, 출산의 기원, 제사의 기원, 살인의 기원, 죽음의 기원, 심판의 기원, 언약의 기원, 나라들의 기원, 이스라엘 백성의 기원, 전쟁의 기원 등이 담겨 있다.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이다. 예수께서는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할례의 규례를 모세가 준 율법이라고 말씀하셨다(요 7:23). 또 원어 성경에서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은 두 책이 연결된 내용임을 나타낸다. 창세기는 출애굽기 이후의 책들의 배경으로서 필요했다. 이 일을 위해 모세는 적합한 때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또 창세기 50:10-11의 “요단강 건너편”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저자가 요단 동편에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모세의 저작성에 맞다.
창세기가 한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은 다음 두 사실에서 보강된다. 첫째, 히브리어 톨레도스가 반복해 사용되었다. 이 말은 한글개역성경에서 ‘대략’(2:4; 36:1, 9), ‘계보’(5:1), ‘사적’(6:9), ‘후예’ (10:1; 11:10, 27; 25:12), ‘약전(略傳)’(37:2) 등으로 번역되었다. 둘째, 선택되지 않은 조상의 족보나 역사가 선택된 조상의 족보나 역사보다 먼저 기술된다. 가인이 셋보다, 야벳과 함이 셈보다, 롯과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에서가 야곱보다 먼저 기록되었다. 이 사실들은 창세기가 한 사람의 저작임을 나타낸다.
창세기는 인류의 초기 역사(1-11장)와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들에 관한 역사(12-50장)이다. 천지 창조,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첫 명령, 첫 사람의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 홍수 심판, 유황불비 심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선택과 언약, 메시아 예언, 열국의 복에 대한 예언 등에서 특히 하나님의 주권 진리가 잘 증거된다.
천지 창조(창1:1-31)
1-5절, 첫째 날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본절은 단지 1장 전체에 대한 제목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실제적 시작을 증거한다. 그것은 원문 2절에 히브리어 웨라는 말에서 확증된다. 그 말은 ‘그런데’라고 번역될 수 있다. 1절의 말씀이 단지 제목이라면, 2절은 ‘그런데’(웨)라는 말로 시작될 수 없을 것이다.
‘태초에’(베레쉬스)라는 말은 ‘맨 처음에’라는 뜻이다. 그것은 시간의 시작을 가리킨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것은 우주의 근원 즉 존재 세계의 근원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 계셨고 그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라는 히브리어(엘로힘)는 복수명사 형태이다. 이 말은 때때로 이방의 신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출 23:13; 왕하 18:33 등). 그러나 이 복수명사의 형태가 유일하신 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히브리어에서 복수명사는 복수 동사를 취하지만, 이 말은 하나님을 가리킬 때 항상 단수 동사를 취한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 복수명사 형태의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이 크심을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암시할 것이다.
본절의 ‘천지’는 우주 공간과 땅의 원소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다음 몇 절들에서 분명해진다. 창조된 천지는 아직 원시 상태에 있었다.
‘창조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단어로서 하나님께서 무(無)로부터 무엇을 만드셨음을 잘 나타낸다. 사람은 이미 있는 재료로 집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든다. 재료가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또 사람은 이미 있는 자연법칙을 터득하여 전기도 발명하고 컴퓨터도 발명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 외에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 그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다(롬 4:17).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태초에 계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하나님 대신에 물질이 있지 않았다. 물질은 근원적 요소가 아니다. 물질은 영원하지 않다. 물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된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근원이시다. 그가 모든 것을 만드셨다. 이것은 가장 근원적인 진리이며 가장 중요하고 큰 진리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계신 자’라고 계시(啓示)하셨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 . .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여호와’라는 그의 이름은 ‘있다, 존재한다’는 단어(하야)에서 나온 말로서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시편 90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기도하기를,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였다(시 90:1-2). 이사야 40:28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라고 불렀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셨는데(계 22:13) 그것은 그의 영원하심을 나타낸다.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水面)에 운행하시니라.
본절은 원문에 웨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것은 ‘그런데’라고 번역될 수 있다. 본절은 창조된 천지의 원시적 상태를 묘사한다. ‘혼돈’이라는 원어(토후)는 ‘형태가 없음, 혼돈, 공허’ 등의 뜻이며, ‘공허’하는 원어(보후)는 ‘텅 비어 있음’이라는 뜻이다(BDB). 창조된 땅은 아직 형태가 없고 텅 비어 있었다.
또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깊음’이라는 원어(테홈)는 바다의 깊음을 가리키는 말이며(시 104:6), 이어서 ‘수면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깊음은 물로 뒤덮인 땅이나 수증기로 가득한 공간을 가리키는 것 같다. 피조 세계에서 기본적 요소인 물은 창조된 천지의 초기 상태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어두움이 천지에 가득하였다. 빛이 창조되기 전까지 온 우주는 캄캄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 물 위에 운행하셨다. ‘수면에’라는 원문은 ‘그 물(함마임) 위에’인데, ‘그 물’은 앞에 나오는 ‘깊음’(테홈)을 가리키는 것 같다. 땅과 우주 공간은 물과 수증기로 가득한 상태이었던 것 같다. 그 창조 사역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물 위에 운행하고 계셨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우리의 구원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어떤 이들은 본절이 천사의 타락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땅이 천사의 타락으로 혼란하고 공허해졌다고 추측한다. 그러면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천지 창조의 사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천지 회복의 사건에 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본장의 구조상 1절은 첫째 날 안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창세기 1-2장과 출애굽기 20:11은 천지 창조가 엿새 동안에 된 것을 증거하며, 이것은 천사 세계를 포함하여 모든 피조 세계의 기원을 말한다고 본다. 또 창세기 1:31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은 천사의 타락이 천지 창조의 제6일 이전에 있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 같다.
[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원문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된다. 창조된 천지가 아직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고 어두움이 가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빛을 만드셨다. 본장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혹은 ‘이르시되’라는 말이 11번이나 나온다. 요한복음 초두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계신[계셨던] 말씀(로고스)이라고 불리었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증거되었다(요 1:3).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일하셨다. 그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시다. 인간의 말도 힘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그러하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풍성하게 기록되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며 이제는 한 책의 종교이다. 성경은 기독교의 근거이며 권위이며 내용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과 위로와 힘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빛을 만드셨다. 그는 어두움의 세계에 밝은 빛을 주셨다. 빛의 정체는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는 대표적 빛인 태양빛 아래서 불빛이나 전기 빛을 보며 살고 있다.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은 빛 가운데서만 드러난다. 빛이 있어야 만물의 색깔도 있다. 어두움 속에서는 모든 것이 검정색일 뿐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며(요일 1:5) 하나님의 세계는 빛의 세계이다. 성경에서 어두움은 무지와 죄, 슬픔과 불행을 상징하고, 빛은 지식과 의,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기쁨과 행복이 기대되는 세계이었다. 장래의 천국도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세계일 것이다(롬 14:17).
[4절]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빛이 좋았음을 보셨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창세기 1장에 일곱 번 나온다. 이 말씀은 창조된 천지 만물의 본래의 상태가 선하고 아름다웠음을 증거한다. 창조된 세상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면, 그것은 사람 보기에도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음에 틀림없다. 오늘날 세상에 있는 죄와 불행은 본래 상태의 모습이 아니고 사람이 범죄한 후 상태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도 만드셨고 빛도 만드셨다. 빛과 어두움은 이 세상에서만 있다. 천국에는 밤이 없을 것이다(계 22:5). 이것은 교훈적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이것은 세상에 죄와 슬픔과 불행도 있고, 의와 기쁨과 행복도 있을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드셨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빛과 어두움은 섞일 수 없다. 그것들은 본질상 서로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혼돈과 무질서를 싫어하시고 죄와 불의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나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을 뿐 아니라,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나누신다. 그는 최종적으로 의인과 악인을 나누실 것이다. 마태복음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5절]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셨다. 낮과 밤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첫째 날 하나님께서는 공간과 땅의 원질, 물, 그리고 빛을 만드셨다. 천사들의 창조도 첫째 날에 두어야 할 것 같다(욥 38:4, 7; 시 148:5; 골 1:16).
본장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육일의 하루가 일상적인 24시간의 하루에 적합함을 보인다. 여기에 하루가 긴 시대를 가리킨다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은 무의미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안식하셨고 그것을 기념하는 안식일이 일상적 하루이므로, 다른 육일도 일상적 하루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긴 시대로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천지 창조의 처음 삼일은 태양 없는 날들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만드셨고 지구의 자전도 아마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지구의 빛에 주된 공급원인 태양은 아직 창조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태양이 없이 저녁과 아침을 맞이하였다.
본문은 몇 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인생의 해답이시다. 인간에게는 ‘우주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등의 근본적 질문이 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여기 있다. 하나님께서 그 대답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 속에 그 대답이 있다. 우리도 모세처럼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1-2)라고 고백하자.
둘째로, 온 우주와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물질 세계와 인간 세계는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사도 요한의 증거대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여기에 인간의 바른 위치가 있다. 사람은 피조물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셨다. 어두움은 무질서와 무지와 죄와 슬픔과 불행과 통한다. 그러나 빛은 질서와 지식과 의와 기쁨과 행복과 통한다. 하나님의 세계는 빛의 세계이다. 현재 세상은 사람의 죄로 슬픔과 불행이 많지만, 구원은 의와 평안과 기쁨을 주며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의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나라일 것이다(롬 14:17).
6-13절, 하늘, 땅, 바다, 식물을 만드심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신 천지 창조의 육일 중 둘째 날과 셋째 날에 하신 일을 증거한다. 둘째 날 하나님께서는 궁창을 만드시고 그것을 하늘이라 부르셨고, 셋째 날 그는 궁창 아래의 물이 한 곳에 모이게 하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시며 그것을 땅이라 부르셨고 그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땅에서 각종 식물이 나게 하셨다.
[6-8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6절에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는 말씀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고 번역해야 정확할 것이다. 첫째 날 하나님께서는 이미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 날 그가 만드신 하늘은 우주공간이라고 생각되며 그가 만드신 땅은 아직 형태가 없는 상태였다. 또 그가 만드신 원시상태의 천지는 물이 가득하였고 성령께서는 그 물 위에 운행하셨다. 이제 둘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궁창이 창조되었고 궁창 아래의 물과 위의 물이 나뉘어졌다.
‘궁창’이라는 원어(라키아)는 ‘큰 공간’이라는 뜻이다. 궁창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궁창 위의 물은 무엇이며 궁창 아래의 물은 무엇인가? 궁창은 이중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좁은 의미의 궁창은 땅과 구름 사이의 공간을 가리키는 것 같다. 본장 20절은 거기에서 새들이 난다고 말한다. 구름은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있는 것인데, 낮은 구름의 높이는 해면에서 1.8km 미만이고 높은 구름의 높이는 10km 혹은 18km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1) 그러므로 땅과 구름 사이 공간인 궁창 위에는 많은 물들이 있다.
땅으로부터 100km 정도까지를 대기권 즉 공기가 있는 공간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공기의 99% 이상이 있다고 한다.2) 과학자들에 의하면, 대기권도 네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3) 그 중 맨 아래 층인 대류권에 구름들이 있지만, 대기권 전체에 땅에서 80km 높이까지의 공기 중에 평균 3.12%의 수증기가 있으며, 대기 중 수증기의 부피는 약 13,000km2, 무게는 약 14조 4,560억 톤이라고 한다.4) 참 많은 양이다. 또 바다와 육지에서 증발하는 수증기 양은 연간 약 519경 톤이며 이것은 1초 당 약 1조 6457억 톤이 된다.5) 이 수증기들은 비와 눈이 되어 땅 위에 내린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과연 궁창 위에 막대한 양의 물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성경에서 궁창은 땅과 구름 사이의 공간뿐 아니라 하늘 공간 전반을 가리키기도 한다. 궁창은 하늘(솨마임)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이 하늘은 1절에서 언급된 하늘과 구별이 없는 것 같다. 또 본장 14절과 17절은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때의 궁창은 구름 아래의 낮은 공간으로서의 하늘이 아니고 높은 하늘이다. 달은 지구로부터 38만km 떨어져 있고, 해는 지구로부터 1억 5천만km 떨어져 있고, 별들은 그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있는 궁창은 우주공간과 동일한 의미로 보인다. 이렇게, 궁창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인다. 좁은 의미로는 땅과 구름 사이의 공간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우주공간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9-10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절과 2절은 땅과 물이 첫째 날 창조되었음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 단지 물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땅이 제 모습을 드러나게 하신 것뿐이다. 형태가 없고 텅 비어 있던 땅은 이제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또 바다도 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는 거대한 공과 같다. 지구의 볼록 나온 배를 적도라고 부르는데 그 둘레는 약 4만 75km이며 거기에서 지구의 중심까지의 거리는 약 6,378km라고 한다. 지구의 무게는 약 6섹스틸리온 톤이라고 하는데, 섹스틸리온은 10의 21제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큰 공과 같은 지구는 팽이처럼 돌고 있는데(이것을 자전이라 함), 한 바퀴 도는 시간이 하루 즉 24시간, 정확히 말하면 23시간 56분 4.09초이다. 또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서도 돌아가고 있는데(이것을 공전이라 함), 그것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1년 즉 365일, 정확히 말하면 365일 6시간 9분 9.54초라고 한다.
물이 한 곳으로 모이며 이 거대한 지구는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지구에는 높은 산들도 있고 낮은 언덕들도 있으며 넓은 평원들도 있고 깊은 골짜기들도 있다. 흔히 지구에는 여섯 개의 큰 대륙들이 있다고 말하는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이 그 여섯 대륙이다. 이것을 육대주라고 말한다.
이 지구에는 더운 곳들도 있고 추운 곳들도 있다. 지구에서 제일 더운 곳은 섭씨 58도나 되고 제일 추운 곳은 섭씨 영하 88도나 된다고 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는 세 개의 층으로 되어 있으며6) 세 번째 층 즉 가장 중심층인 중심핵의 중앙에는 섭씨 약 5,000도의 뜨거운 불이 있다고 추측한다.
물들은 모여 바다를 이루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가 가진 물의 총량은 약 1억 3,600만km2이며 그것은 지구 전체를 약 2.7km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7) 지구가 가진 물의 97.2%는 바닷물이다. 바다 중 대륙에 인접한 곳은 얕지만, 멀리 나가면 깊어지는데 깊은 바다는 보통 깊이가 5-6km나 된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깊은 바다는 깊이가 약 11km라고 한다. 흔히 지구에는 다섯 개의 큰 바다가 있다고 하는데,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남빙양, 북빙양 등이 그것이다. 여섯 개의 대륙과 합하여 5대양 6대주라고 부른다. 땅과 바다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세상은 하나님의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이다.
[11-1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또 그 날 하나님께서는 식물들을 창조하셨다. 식물들은 세 부류로 구분되었다. 첫째는 풀(데쉐, grass)이요, 둘째는 씨 맺는 채소(에셉, herb)이며, 셋째는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에츠, tree)이다. 물론 이 세 부류 안에 수많은 종류의 풀들과 채소들과 나무들이 있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에 식물은 35만종 이상이라고 한다. 그 중 반 이상은 꽃을 피우는 것들이다.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다. 가장 작은 것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규조류(diatom)라는 것이 있고, 가장 큰 나무는 키가 88m이며 너비가 9m라고 한다. 나무의 수명은 길어서 가장 오래된 것은 4-5,000년된 것도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식물들을 ‘각기 종류대로’(3번이나 언급됨), 즉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만드셨다. 또 그 식물들은 그가 보시기에 좋았다. 식물의 세계는 아름다운 다양성을 지닌 세계이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둘째 날과 셋째 날의 창조 사역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신 세상은 광대하고 오묘막측한 세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땅은 광대한 우주의 작은 한 지점이다. 광대한 하늘, 광활한 땅, 신비한 바다를 갖춘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이 크고 오묘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지혜를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의 눈을 높이 뜨자. 우리의 마음을 넓게 열자. 그리고 이 광대한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 하나님 만세.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과 땅과 바다, 또 각종 식물들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한다. 오늘날 세상의 문제는 자연만물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 문제이다. 인간의 마음이 부패한 것이 문제이다. 도덕성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다. 죄가 문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과 땅과 산과 들판들과 꽃들과 나무들과 풀들은 아름답건만, 성경의 증거대로 사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가장 필요한 일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고 새 사람이 되어 선하신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다양성을 가진 세상을 만드셨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획일주의는 하나님의 창조의 방식이 아니다. 식물 세계에 다양성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도 다양한 재능과 취미와 기술과 직업을 주셨다.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 있고 그가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와 직분에 충실하자.
14-19절,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심
[14-19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장엄한 천지 창조의 육일 중 넷째 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다. ‘하늘의 궁창’은 땅에서 볼 때 높은 우주 공간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들로 “징조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해(年)들”을 이루게 하셨다. 또 그는 그것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게 하셨다. 그는 두 큰 광명(마오르 빛을 발하는 물체=발광체)을 만드셔서 큰 것 즉 해는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것 즉 달은 밤을 주관하게 하셨고 그것들로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셨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
해와 달과 별들은 참으로 신기한 창조물들이다. 해 혹은 태양은 빛을 발하는 거대한 공 같은 가스 덩어리로서 수소 75%와 헬륨 25%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태양은 직경이 약 139만km로서 지구보다 약 109배 크고 달보다 약 400배 크지만, 달보다 400배나 멀리, 즉 지구에서 약 1억 5천만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달보다 작게 보인다고 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태양은, TNT 1메가톤 즉 100만톤급의 원자탄을 1초에 1,000만개씩 계속 터뜨리는 것과 같은 가스 폭발을 함으로써 그 열과 빛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표면 온도는 섭씨 약 5,500도, 그 중심 온도는 섭씨 약 1,500만도라고 한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 빛을 받아 반사하는 큰 물체이다. 달의 크기는 직경이 약 3,476km로서 지구의 4분의 1 정도이며 지구로부터 평균 약 38만km 떨어져 있고 타원을 그리며 지구를 돌고 있다. 달에는 공기도, 바람도, 물도 없다고 한다.
태양을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며 돌고 있는 8~9개의 거대한 물체들이 있는데 이것을 행성(planets)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지구도 그 행성 중의 하나라고 본다. 행성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들(stars)과 다르다. 별들은 그 자체에 열과 빛이 있지만, 행성은 그런 것이 없고 태양 빛을 반사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밤하늘에 보면, 행성은 지속적으로 빛나는 물체이지만 별들은 반짝거리는 물체라고 한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약 5천만km) 행성은 지구의 반보다 작은 크기의 수성인데, 표면 온도가 섭씨 영하 193도부터 영상 342도까지라고 한다. 그 다음은 지구보다 약간 작은 금성인데, 태양에서 약 1억km 떨어져 있고 표면 온도가 약 455도의 고온이라고 한다. 금성은 해가 진 후에 서쪽 하늘에서 보이므로 ‘저녁별’이라고도 하고 또 해 뜨기 전에 동쪽 하늘에 밝게 나타나므로 ‘새벽별’ 혹은 ‘계명성’이라고도 하는 행성이다.
그 다음에 태양에서 약 1억 5천만km 떨어져 있는 지구가 있다. 그 다음은 역시 지구의 반만한 크기의 행성인 화성인데, 태양에서 약 2억 3천만km 떨어져 있고 표면 온도는 영하 124도부터 31도까지라고 한다. 그 다음에 있는 목성과 토성은 지구보다 10배나 크며 천왕성과 해왕성은 4배나 크다. 마지막의 명왕성은 태양에서 가장 멀리 있는, 평균 약 60억km나 떨어져 있는 아주 작은 행성이다. 이 행성들은 다 영하 150도가 넘는다. 햇빛은 그곳까지 약 6시간 걸린다.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별들을 태양계(solar system)라고 부르는데, 그 직경은 빛의 속도로 반나절쯤 걸리는 셈이다.
별들은 하늘에 멀리 떨어져 있는 빛을 발하는 거대한 공 같은 가스 덩어리들이다. 태양도 하나의 별이다. 그러나 태양 외의 별들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도 지구에서 40조km 이상 떨어져 있다고 한다. 이것은 그곳에 가는데 가장 빠른 제트기로도 약 100만년이 걸리는 거리이다. 또 이 별은 가장 먼 별의 거리의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별은 수소 75%와 헬륨 22% 등으로 구성된 가스 덩어리가 불타고 있는 것인데, 온도와 크기에 따라서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을 띈다고 한다. 붉은색 별은 온도가 섭씨 2,800도, 노란색 별은 5,500도, 파란색 별은 28,000도이며, 별의 중심 온도는 약 110만도라고 한다. 별들의 크기는 다양해서 태양보다 약 1,000배나 큰 별도 있고, 지구보다 더 작은 별도 있다고 한다.
맑은 날 밤에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은 약 3,000개이지만, 과학자들은 하늘에 약 2,000경[2,000억 X 10억] 개 이상의 별들이 있다고 한다. 별들은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태양과 같은 별 1,000억개 이상으로 구성된 은하수(the Milky Way)가 그것이다. 이 은하수는 직경이 약 10만 광년이며 중앙의 두께는 약 16,000광년이라고 한다. 빛은 1초에 거의 30만km를 가며 빛이 1년간 간 거리를 1광년(光年)이라고 한다. 1시간이면 10억 8천만km, 1일이면 259억km, 1년이면 약 9조 4500억km의 거리이며 그것이 1광년의 거리이다. 그런데 은하수의 직경은 약 10만 광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 우주에는 은하수 같은 은하(galaxy)들이 약 1,000억개가 있다고 추정한다. 우리가 사는 우주의 크기와 그 별들의 수효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크고 광대하다.8)
우리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넷째 날 사역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거대한 우주의 주인이시다. 그는 해와 달과 별들을 홀로 창조하셨고 지금도 홀로 주관하고 계신다. 그는 인류 역사상 몇 번 해와 달을 비상하게 운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 아홉 번째 재앙으로 애굽 땅에 3일 동안 캄캄한 흑암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을 주셨고(출 10:21-22), 여호수아가 아모리 다섯 왕과 전쟁할 때, 그는 여호수아의 부르짖는 목소리에 응답하셔서 태양과 달을 얼마 동안 멈추어 머물게 하셨고(수 10:13), 유다 왕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려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을 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3일 만에 병을 낫게 하셔서 성전에 올라가게 하셨고 그 징조로 해 그림자 시계가 10도를 물러가게, 즉 해를 뒤로 물러가게 하셨다(왕하 20:11). 또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정오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기이하게 태양을 운행하신 일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신 자요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옛날 사람들은 무지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였다. 예를 들어, 고대 아프리카의 이집트인들, 아시아의 수메르인들, 북아메리카의 멕시코 원주민 아즈텍 인디안들,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 마야 인디안들, 남아메리카 페루의 잉카 인디안들 등이 그러하였다고 한다.
열왕기하 17:16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도 앗수르 나라에 멸망하기 전 이방인들의 풍습을 본받아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였었고, 또 열왕기하 21:3에 보면, 유다의 므낫세 왕과 백성들도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였었다(왕하 21:3). 이것은 바로 10계명의 제1, 2계명을 범하는 우상숭배이었고 하나님을 대단히 노엽게 하는 죄악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해서는 안 되고, 그것들을 만드신 하나님, 그것들의 소유주이신 하나님, 그것들을 홀로 운행하시는 하나님,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마땅히 섬기며 그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
둘째로, 우주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다. 우주는 수수께끼 같은 세계가 아니다. 사람은 어둡고 광막한 우주 속에 던져져 방황하는 고아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셨다. 그는 이 모든 일을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보장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90:1). 또 하나님의 종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고백하였고(시 18:1-2), 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고백하였다(시 23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보장하신다.
셋째로 그리고 부수적으로, 우리는 우주의 규칙성을 배워야 할 것이다. 자연 만물은 창조 때로부터 지금까지 오착이 없이 운행되고 있다. 해와 달과 별들의 움직임은 매우 규칙적이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변태무쌍한 존재인지! 하나님의 법은 불변적이며 자연 만물은 그 법을 지키고 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의 계명을 배반하고 저버렸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우주의 규칙성에서 배워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의 법을 배워야 한다. 또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신실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변함 없이 사랑하고 주 예수께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엡 6:24; 계 2:10).
20-25절, 물고기와 새와 짐승을 만드심
[20-2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다섯째 날 하나님께서는 물들에 큰 물고기들(큰 바다 동물들, 핫탄니님 학게돌림)과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하늘의 궁창에 나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고기의 종류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과학자들은 물고기(fish) 종류가 약 21,700가지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물고기는 오늘날 과학자들이 물고기에서 제외하는 고래나 바다표범 같은 큰 바다 동물들도 포함한다. 고래는 보통 물고기와는 다르다. 보통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을 쉬고 꼬리에 수직 지느러미가 있고 대부분 알을 낳지만, 고래는 허파로 숨을 쉬고 꼬리에 수평 지느러미가 있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운다. 또 물에는 악어 같은 큰 동물이나 거북, 게, 조개, 소라 같은 것, 또 낙지, 문어 같은 것도 있다.
물고기 종류는 다양해서 작은 망둑어는 길이가 1.3cm밖에 안 되지만, 고래상어는 길이가 12m, 무게가 14톤(코끼리의 두 배)이나 되고, 청색 고래 같은 동물은 길이가 30m, 무게가 200톤이 된다. 물고기의 수명도 다양해서 숭어는 4년, 철갑상어는 50년, 악어는 56년, 메기는 60년 이상, 그리고 거북은 최고 123년된 것도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의 종류들도 다양하다. 과학자들은 새의 종류들은 약 8,600가지라고 한다. 크기가 5cm, 무게가 3g밖에 안 되는 벌새 같은 작은 새도 있고, 키가 2.4m, 무게가 140kg이나 되는 타조 같은 큰 새도 있다. 타조는 알도 1.4kg 정도나 된다. 또한 7,6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기러기 같은 새도 있고, 먹이를 잡으려고 내려올 때 시속 320km 이상으로 빠르게 내려오는 송골매 같은 새도 있고, 북극 제비갈매기 같이 북극에서 남극까지 17,700km를 나는 새도 있다. 또 수명이 긴 새도 있는데, 타조는 수명이 50년이고 까마귀는 수명이 69년이라고 한다.
[24-25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섯째 날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생물들을 창조하셨다. 본문은 땅 위의 생물들을 세 부류로 나눈다. 첫째는 가축(베헤마)이고, 둘째는 기는 것(레메스)이고, 셋째는 땅의 짐승(카예소-에레츠 혹은 카이야스 하에레츠)이다.
첫째 부류인 가축은 소, 양, 말, 나귀, 낙타, 돼지, 개, 고양이, 토끼 등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가리킨다.
둘째 부류인 기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과학자들은 기는 동물, 소위 파충류 동물을 약 6,000종으로 본다. 물론 그것에는 악어나 거북처럼 물에서 사는 것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그것들을 제외해도 도마뱀이나 뱀 종류만 거의 3,000종에 이르며 그 중에는 비단뱀같이 길이가 9m나 되는 것도 있고 어떤 도마뱀같이 길이가 5cm밖에 안 되는 것도 있다. 또한 거기에 더하여, 개구리나 두꺼비 종류가 약 2,700가지나 된다. 뿐만 아니라, 벌이나 나비나 나방이나 파리를 포함하여 메뚜기, 개미, 바퀴벌레, 거미 등 곤충(insects) 혹은 발이 여섯 개 달린 벌레들은 무려 80만종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셋째 부류인 땅의 짐승은 소위 포유동물 중 집에서 기르지 않는 것들이다. 포유동물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고 새끼를 보호하며 훈련시키고 또 머리털이 있고 체온이 있고 뇌가 발달한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동물들이 약 4,000종이라고 한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땅의 짐승이라는 부류에 속한다. 사자, 호랑이, 곰, 코끼리, 원숭이, 여우, 노루, 사슴, 너구리 등 야생동물들이 다 여기에 속한다.
땅의 짐승 중에는 박쥐같이 무게가 2g밖에 안 되는 작은 것도 있고 코끼리같이 키가 7.5m, 무게가 7.5톤이나 되는 짐승도 있고 또 치타같이 시속 110km로 달릴 수 있는 짐승도 있다. 또 짐승의 수명도 다양해서 쥐같이 1년도 못 사는 것도 있고 코끼리같이 60년이나 사는 것도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물고기들와 새들과 짐승들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사역에서 몇 가지 진리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참으로 놀랍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신 것도 놀랍고, 온갖 식물들을 만드신 것도 놀랍고, 또 각종 바다 짐승들과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과 물에 사는 온갖 생명들을 만드시고 공중에 나는 각종 새들을 만드시고 가축들과 땅에 기는 각종 생명체들과 땅의 짐승들을 만드신 것이 놀랍다. 이 모든 창조물들은 하나님의 크신 지혜와 능력을 나타낸다. 창조자 우리 하나님의 크신 지혜와 능력은 피조 세계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마땅히 창조자 하나님께 찬양하며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촬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을 진리인 양 믿는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부정한다. 진화론은 세상에는 처음부터 물질이 있었고 어쩌다가 물질에서 생명체가 발생했고 가장 단순한 생명체로부터 점차 복잡한 생물체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은 식물세계를 포함하여 물고기들과 새들과 짐승들은 다 한 생명체에서 진화된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쉬운 말로, 사람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람과 다른 피조물들의 근본적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진화론은 하나님과 그의 창조 사역을 모르는 사람들의 추측에 불과하다. 진화론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증거는 없다. 단지 가설들이 있을 뿐이다. 더욱이, 진화론은 무신론적 사상이요 허무하고 비도덕적인 사상이다. 거기에는 사람과 짐승 간의 구별이 없다. 하나님 없는 세계에 사람의 가치나 도덕적 선과 의의 근거가 있을 수 없다. 진화론은 그것들을 다 부정하는 허무하고 비도덕적인 사상이다.
창세기 1장은 ‘각기 종류대로’ 혹은 ‘[그] 종류대로’라는 말을 열 번이나 반복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식물들과 모든 동물들 곧 새들과 물고기들과 땅의 짐승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음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각 생물들은 각각 다르게, 즉 각각 그 존재의 목적과 방식이 다르게 창조되었다. 이 사실은 진화론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자이시다. 그의 창조 사역은 존재 세계의 시작이요 하나님은 존재 세계의 모든 문제의 대답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음미하며 확신하고, 창조자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과 영광을 돌리자.
둘째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본문에는 창조된 세상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이 두 번 나온다(21, 25절). 창세기 1장 전체에는 일곱 번이나 나온다(4, 10, 12, 18, 21, 25, 31절). 식물계에 가시와 엉겅퀴가 난 것은 사람의 죄에 대한 형벌이었다.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은 그에게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창 3:18). 사람의 범죄로 동물 세계도 악화되었다. 물질세계 자체가 악하거나 저급한 것이 아니고 단지 사람의 죄가 나쁜 것이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본래 선하고 아름다운 세계이었다.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람들은 사나운 짐승과도 사이좋게 지낼 것이다. 이사야 11:6-8,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우리는 천국에서 이처럼 변화된 삶을 살 것을 믿고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사역의 놀라움도 깨달아야 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이 거대한 우주와 만물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 그는 우주만물을 운영하시는 뛰어난 경영자이시다. 그는 천지만물을 지키시고 기르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104:10-15, 25-29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셨다(마 6:26, 28-30).
우리는 창조자 하나님께서 또한 온 우주와 만물을 섭리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창조하신 세상을 친히 보존하시고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위대하신 경영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만 순복하자.
26-31절, 사람을 창조하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육일 중 여섯째 날, 하나님께서는 가축들과 땅의 짐승들과 땅의 기는 것들을 창조하셨고 또 사람을 창조하셨다.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은 땅의 동물 중 하나이거나 원숭이 같은 저급한 동물로부터 진화(進化)된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창조하신 존재이다. 26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고 증거하고 27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증거한다. ‘만들다’(아사)는 단어와 ‘창조하다’(바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창세기 2:7에는 ‘지으신다’(야차르)는 단어도 사용되었다. 그 셋은 다 서로 교대로 쓸 수 있는 동의어(同義語)이다.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경에 밝히 증거된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암시한다. 창세기 3:22에 하나님께서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러한 암시는 더욱 분명해진다. 다른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단지 명령함으로써 창조되었으나,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의논하심으로 창조되었다. 사람은 특별한 창조물이었다. 여기에 사람의 가치성과 존귀성이 있다. ‘형상’과 ‘모양’은 성경에서 특별한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어떤 영적 특성을 가리킨다. 성경은 그것을 지식과 의(義)라고 가르쳐준다.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에베소서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요소는 사람이 범죄함으로 상실된 것이지만, 이제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통해, 중생(重生)과 성화(聖化)를 통해 회복된다.
성경이 범죄한 사람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기 때문에(창 9:6; 고전 11:7),9)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과 의 외에 어떤 독특한 점들도 포함한다. 그것들은 영육의 결합체로서의 사람의 인격성과 도덕성 그리고 생물통치권 등을 포함할 것이다. 사람의 눈과 귀와 입과 손발 등 몸의 지체들까지도 그것들이 선한 일을 하는 한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여섯째 날에 창조된 짐승은 몸의 구조나 자녀 출산과 양육의 방식이나 지능 등에 있어서 사람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사람을 포유동물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사람은 본질적으로 짐승과 다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이 바로 그 차이이다. 즉 사람은 지식과 도덕성과 인격성에 있어서 짐승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여기에 사람과 짐승들의 가치성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는 남자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창조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방식이었다. 남자와 여자 간에는 기능의 차이와 질서가 있을 것이지만, 그 둘은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귀한 존재이었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받아 누리는 복과 영광은 동등하였다.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녀로 창조하신 일차적 목적은 출산에 있었다. 출산은 하나님의 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땅의 생물들 곧 가축들과 땅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었다. 다른 생물들과 같이(창 1:22), 사람은 출산을 통해 땅에 충만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도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창 9:1).
오늘날 사람들이 자녀 출산을 짐스러운 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함이요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그 중의 한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인구 폭발을 염려하는 것도 순전히 사람의 생각에 불과하다. 성경에 밝히 계시된 대로,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자녀들을 많이 출산하는 것이다.
시편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箭筒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편 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물론 자녀 출산은 결혼을 전제한 것이다. 오늘날 세속 사회는 결혼 없는 동거(同居)를 허용하는 풍조가 많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명백한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율법은 결혼 관계를 벗어난 모든 종류의 행음자를 사형시키라고 명시하였다(레 20:10-21). 신약성경도 음란한 자나 행음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였다(고전 6:9; 계 22:15).
오늘날 결혼 관계를 벗어난 음행의 풍조는 낙태의 죄악을 사회에 가득하게 만들었다. 산부인과 의원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곳이 되어버렸다. 1980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행해진 낙태만 약 150만건이었고 우리나라도 비공식적 낙태가 한 해에 100만건이 넘으며 세계적으로 연간 약 5,500만건으로 추산된다고 한다.10) 제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군인들이 약 1,7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낙태는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무서운 유아 대학살의 죄악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성경 다른 곳들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지만(롬 11:36; 사 43:21), 그 일차적 목적은 본문에 증거된 대로 사람으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생물들을 다스려야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그 목적에서 떠나며 그 임무를 포기하고 오히려 피조물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적 악을 행하였다.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 속에는 노아 시대의 홍수 후에 허락된 대로 생물을 먹을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창 9:3). 생물은 어떤 이들의 생각처럼 윤회(輪廻)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생명체를 죽이는 살생(殺生)을 금지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축이나 물고기를 감사함으로 잡아먹을 수 있다.
특히,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은 어떤 개혁신학자들의 말처럼 ‘문화 명령’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문화라는 영역 속에는 인류의 삶의 물질적, 정신적 모든 부분들이 다 포함된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해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영역인 농업, 어업, 목축업, 광업을 비롯하여, 옛날부터 공업, 상업, 건축, 교통, 음악, 미술, 정치, 교육, 철학, 법, 군대, 경찰 등의 영역이 발달하였고, 오늘날 사회는 훨씬 복잡해져서 고층 건물, 자동차, 고속도로, 큰 다리, 비행기, 선박, 고속전철, 컴퓨터, 휴대폰, 인터넷 등의 고도의 기술 문명과 대학, 과학, 의학, 약학, 대기업, 은행, 신문, 방송, 언론, 영화와 연극 등의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이 모든 영역이 땅을 정복하는 일들이며 이것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의에 일치하고 인류의 유익을 위해 발전하도록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환경 보전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 같은 자들이 있다. 그러나 환경 보전만 말한다면 사회는 원시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발은 땅을 정복하는 일이다. 단지 그 개발이 다른 이들에게 해를 주는 개발이 되지 않도록 연구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하고 자연 환경을 고려하면서 땅을 정복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29-31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食物)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사람에게 먹을 양식으로 주셨다. 그는 또 새들과 동물들에게는 푸른 풀을 먹이로 주셨다. ‘푸른 풀’이라는 원어(예레크 에세브)는 ‘푸른 채소’라는 뜻이며 이것은 풀과 씨 맺는 채소(창 1:11-12)를 다 포함한 듯하다. 식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원래의 양식이다.
창조된 만물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오는데, 그 중에 31절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증거한다. 창조된 세상은 단조롭지 않고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색깔과 조화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늘과 바다, 산과 들은 다 아름다웠다. 하늘에 새들과 들에 식물들, 땅에 동물들과 물 속에 고기들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별들과 그 규칙적 운행, 자연 법칙들과 인간의 신체 구조 등은 신비하고 놀랍다. 사람의 마음의 지혜와 사랑은 신비하고 아름답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놀랍고 아름답게 만드셨다.
창조된 세상은 아름다웠다. 아직 죄가 없었다. 오늘날 세상의 문제는 창조된 세상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천사의 타락과 그 꾀임을 받은 첫사람의 탈선이 문제이었다. 하나님께서 본래 만드신 세계는 진선미의 세계이었다. 천국의 영광은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창조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그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본받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인간 창조에 대한 진리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의 존귀성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범죄함으로 그 형상을 잃어버렸다.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에 있다. 그것은 바로 지식과 의이다.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고 그것을 행하는 데 사람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믿고 그 교훈대로 힘써 살자. 여러분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먼저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으라. 죄는 사람을 무가치하게 만들었으나, 구원은 사람의 존귀성과 가치성의 회복이다.
둘째로, 우리는 남녀의 동등성과 역할을 깨달아야 한다. 남녀는 다 하나님의 귀한 형상이므로 서로 귀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또한 남녀의 역할이 있다. 특히 출산이 하나님의 뜻이며 복인 줄 바로 깨닫고 우리는 출산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세속 사회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결혼을 중히 여기고 음란을 버리고 자녀 출산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명령인 줄 알고 사모하며 감사히 받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힘써 행해야 한다. 우리는 피조물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모든 종류의 우상숭배를 버리고, 오히려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해야 한다.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문화적 활동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따라 인간의 삶의 모든 분야에서, 각자의 직업의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을 연구하고 행해야 할 것이다.
김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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