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스크랩] 거짓 교회와 참 교회와의 비교

수호천사1 2017. 1. 20. 15:03

거짓 교회와 참 교회와의 비교

 

참된 교리와 참된 예배에서 떠난 로마교회는 참 교회라고 할 자격이 없다

 

1. 기본적인 구별

 

말씀 선포와 성례전 집행을 우리는 극히 존중해야 하며 교회를 구별하는 영원한 표지로 삼을 정도로 이 일을 존중해야 된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 이 일이 온전하고 부패하지 않게 유지되는 곳에서는 어떠한 도덕적 과실이나 병폐도 "교회"라는 이름을 지니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둘째, 사소한 과오가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교회의 합법성을 무시할 정도로 교회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용서되어야 할 과오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 중요한 교리를 손상시키지 않고 모든 신자들이 동의해야 하는 신조들을 파괴하지 않는 과오, 또한 성례에 대해서 주의 합법적 제도를 폐지하거나 전복시키지 않는 과오는 용서해야 된다. 그러나 종교 생활의 요새에 거짓이 침입해서 필수적인 교리의 요점과 성례의 효험이 파괴될 때에. 틀림없이 교회는 죽게 된다. 목을 찔리거나 심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이 죽는 것과 같다. 교회의 기초는 사도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이며, 모퉁이의 머릿돌은 그리스도이시라고 가르치는 바울의 말에도 이 점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2:20). 교회의 기초는 예언자와 사도들의 교훈이며, 그들은 구원을 그리스도에게만 맡기라고 신자들에게 명령하는데, 이 교훈을 제거한 후에 교회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겠는가? 교회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경건의 이 핵심뿐이므로 이 핵심이 죽으면 교회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참된 교회가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라고 한다면(딤전 3:15), 거짓말과 허위(虛僞)가 지배하게 된 곳에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2. 로마 교회와 그 주장

 

교황 제도 하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므로 거기에 과연 얼마나 많은 교회가 남아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말씀의 선포 대신에 거짓으로 뒤섞인 패악한 조직이 교회를 지배하며, 이 조직이 부분적으로는 순수한 빛을 꺼버리기도 하고 또 희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의 성만찬의 자리를 가장 더러운 모독 행위가 차지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여러 모양의 참을 수 없는 미신으로 더렵혀졌다. 교리를 떠나서는 기독교가 존립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리는 완전히 매장되고 제거되었다. 공중 집회는 우상 숭배와 불경건을 가르치는 장소가 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수많은 치명적인 비행에 참여하지 않아야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교회와의 교통은 그것이 우상 숭배와 불경건과 하나님께 대한 무지와 기타 악폐에 우리를 빠뜨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조건 위에서 세워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리에 복종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조건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교회를 극찬하여 세상에는 그들 외에 다른 교회는 없다는 듯이 보이려고 선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문제가 확정이 된 것처럼, 감히 자기들의 교회의 자랑거리인 복종을 버리는 사람은 분리주의자이며, 그 교리에 감히 반대하는 사람은 이단자라고 결정한다. 그러면 그들이 자기들에게 참된 교회가 있다는 것을 어떤 근거로 증명하는가? 그들은 고대의 기록을 근거로 과거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일어났었던 일들을 말한다. 그들은 건전한 교리로 교회 들을 세우고 피를 흘려 그 교리와 교회를 확립한 저 거룩한 분들을 자기들의 기원으로 삼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회는 영적 은사와 그들 중의 순교자들의 피로 성별되며 주교들의 그치지 않는 계승에 의해서 보존되며, 사멸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오리겐, 어거스틴 등이 이것을 계승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나와 함께 이런 주장들을 잠시 고려해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이 주장이 얼마나 무익하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곧 이해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사실, 그들이 나에게서 그렇게 배움으로써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나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관심을 갖도록 그들에게 권면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들의 주장을 고수하려고 할 뿐이므로, 나는 몇 가지만을 말함으로써 선한 사람들과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속임수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첫째로, 나는 그들이 왜 아프리카와 이집트와 전 아시아는 언급하지 않느냐고 묻겠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를 유지해 왔다고 자랑하던 주교들의 계승이 이 여러 지역에서는 단절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교들의 계승이 끊어진 일이 없고 처음부터 주교가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는 자기들의 교회가 진정한 교회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그들 앞에서 그리이스를 들이댄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다시, 왜 그들은 그리이스 사람들 사이에서 교회가 소멸됐다고 말하느냐고 묻겠다. 그들이 교회를 보존하는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주교들이 그리이스에서 끊임없이 계승되지 않았는가? 그들은 그리이스 사람들을 분리파라고 하는데, 무슨 권리로 그러는가? "사도 교구"(로마 교황청)에서 분리되어 나갔으므로 특권을 잃었다고 대답한다.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나간 자들은 더욱 특권을 잃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따라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건전하고 순수하게 보존하고 그 진리 안에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익하게 계승을 가장하는 것이 된다.


 

3. 거짓 교회는 그 높은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지금 로마 카톨릭 교도는 옛날 유대인들이 맹목적임, 불경건, 우상 숭배 등으로 하나님의 예언자들에게 책망을 받았을 때 하던 것과 다름없는 가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로마 카톨릭 교도와 같이, 유대인들은 성전과 의식과 제사장들의 역할을 굉장히 자랑했으며, 그것을 가지고 교회를 확실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교회 대신에 외양(外樣)을 자랑하지만, 그런 것은 교회와는 거리가 먼 것이며 또 그것 없이도 교회는 훌륭히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논박하기 위해서 예레미야가 유대인들의 미련한 자신감을 꺾기 위해 썼던 논증을 사용하려고 한다. ,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7:4). 주께서는 주의 말씀이 들려지고 양심적으로 준수되는 곳이 아니면 어떤 성전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聖所) 그룹들 사이에 머무르며(10:4) 이 곳이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약속하셨지만, 제사장들이 사악한 미신으로 예배를 부패시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다른 곳으로 옮기시고 성소에서 거룩을 제거하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거소로서 성별된 듯이 보이던 성전까지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불경한 것이 되었으니, 이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사람과 장소에 얽매이며 외적인 행사에 집착하고, 교회라는 이름과 외형만 있는 곳에(9:6) 항상 계셔야 한다는 듯이 가장하는 것은 아무 근거도 없다.

또 바울이 로마서 9장부터 126 사이에서 주장하는 것도 이 점이다(9~11).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복음의 교훈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핍박한다는 사실이 약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교리를 자세히 설명한 다음에 이 어려운 문제를 처리한다. 그는 유대인들이 교회의 외형에 필요한 것을 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을 진리를 대적했기 때문에 교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부정하는 것이다. 갈리디아서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말한다. 이스마엘과 이삭을 비교하면서, 자유인인 어머니에게서 나지 않았음으로 해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기업을 받지 못할 사람이 많다고 한다(4:22 이하). 여기에서 바울은 두 예루살렘의 비교로 발전시킨다. 율법이 시내산에서 주어진 것같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나왔다. 그래서 종으로 태어나서 자랐으면서도 하나님과 교회의 자녀라고 서슴없이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서자(庶子)이면서 하나님의 친자녀들을 교만한 태도로 멸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으며(21:10), 이 신성 불가침한 명령을 믿고 그들의 무가치한 자랑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들의 외형적인 고백을 자랑한다면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었고, 그들이 오래되었음을 자랑한다면 그는 맏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부되었다. 그 이유를 찾는다면 바울은 교리적으로 순수하고 합법적인 근원에서 난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된다고 지적한다(9:6~9).

이 논리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레위를 자신의 사자(使者) 혹은 통역자로 삼는다고 조상에게 언약하셨다고 해서 자신이 그의 자손인 사악한 제사장들에게 얽매이는 것은 부정하신다. 진실로, 제사장직의 위엄은 특별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항상 습관적으로 예언자들에게 대항하는 제사장들의 거짓된 자랑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돌리신다. ,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주장을 기꺼이 받아들이시면서, 당신은 언약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으나, 그들 편에서 응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마땅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계승자들이 진심으로 또 순수하게 선인들을 본받지 않는다면, 이 계승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들의 근원으로부터 이탈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모든 명예를 빼앗긴다(2:1~9).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가야바의 선조에 경건한 제사장이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아론으로부터 그에게 이르기까지 중단되지 않고 제사장직이 계승되어 왔다) 저 사악한 무리가 "교회"라는 이름을 지닐 자격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세속 정치에서도, 브루투스나 스키피오나 키밀로스 같은 사람들을 계승했다고 해서 칼리굴라나 네로, 헬리오가발루스의 무리가 저지른 폭정을 용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특히 교회라는 조직에서 가르침을 무시하고 인간의 계승 관계만을 내세우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주교(主敎)들이 계속 계승되는 곳에는 일종의 상속권에 의한 것처럼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신성한 교부들이 절대적으로 입증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교부들을 잘못 끌어들인 것이다. 처음부터 교부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교리에 변동이 전혀 없었던 것이 확실했으므로, 그들은 모든 새로운 오류에 대한 충분한 방어책으로서 한 원칙을 채택했다. , 그들은 사도 시대로부터 확고하게 만장일치로 유지되어 온 가르침으로 모든 새로운 오류에 맞섰다. 따라서 더 이상 사람들이 우리가 정중하게 공경해야 하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더 속이려고 애쓸 이유는 없다. 그들이 교회에 대한 정의에 도달할 때, 옛말에 잇듯이 그들에게 분비물이 굳게 붙어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의 자리에 더러운 창녀를 앉히기 때문에 그들은 수렁에 빠져 버린다. 우리는 이렇게 대치되는 것에 속지 않기 위해서 (다른 이들도 있으나) 어거스틴의 훈계를 생각하기로 하자. 그는 교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는 수많은 추문에 가려지는 것처럼 희미해지고, 때때로 평온한 때에는 조용하며 자유롭고, 때로는 고난과 유혹의 파도에 흔들린다." 그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 가장 튼튼한 기둥들이 믿음을 위해서 용감하게 추방을 감수했으며, 혹은 세계 각지에서 숨어 지낸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4.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다

 

이와 같이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장 큰 대적이면서도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며 배움이 없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이 성전과 사제직과 그밖의 외적인 것들을 내놓을지라도, 단순한 사람들의 눈이나 멀게 할 헛된 번쩍임에 우리의 마음이 움직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삼지 않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인정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주께서 그의 백성에게 인치신 영원한 표적이기 때문이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18:37).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느니라"(10:14).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10:27). 그러나 조금 앞에서 주께서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10:4~5)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한 표로써 교회를 표시하셨는데, 왜 우리는 교회를 찾느라고 미친 사람처럼 멋대로 행동하는가? 표지(標識)가 보이는 곳에는 틀림없이 교회가 있으며, 표지가 없는 곳에는 교회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교회의 기초는 사람의 판단이나 사제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교훈에 있는 것이라고 바울은 우리를 환기시킨다(2:20).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과 바벨론, 그리스도의 교회와 사단의 음모단과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8:47).


요약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만으로 지배하시므로, 그리스도의 홀, ,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말씀과는 별개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존재하는 듯이 상상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을(참조, 7:4) 어느 누가 분명히 깨닫지 못할 것인가?

 

 

5. 분파와 이단이라는 비난에 대한 답변

 

그런데 그들은 우리에게 분파(分派)와 이단의 죄를 지고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들의 법에 복종하지 않고 그들의 교리와 다른 교리를 선포하며, 별도의 기도 집회를 갖고, 세례를 베풀며 성만찬과 기타 거룩한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각한 비난이지만, 길고 힘든 변호가 필요치 않다. 논쟁을 일으켜 교회와의 교통을 깨뜨리는 사람들을 이단자 또는 분리론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교통은 두 가지 유대에 의해 유지되는데, 곧 건전한 교리의 일치와 형제애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이단과 분파를 구별해서, 이단자들은 거짓된 교리로 진실한 믿음을 부패시키지만, 분리론자들은 간혹 같은 믿음을 가졌으면서도 친교를 깨뜨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사랑의 결합은 믿음의 일치에 달려 있으므로, 이 믿음의 일치는 사랑의 결합의 시작과 끝과 진실로 유일한 법칙이 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연합을 우리에게 권고할 때 다음과 같은 것이 요구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할 때 우리의 뜻도 그리스도 안에서 상호간의 호의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교회와의 연합을 권하면서,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4:5)라는 말씀을 그의 기초로 삼는다. 진실로 바울은 우리에게 한 마음을 품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고 가르칠 때마다, "그리스도 안에"(2:1,5) 또는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15:5)라는 말을 첨가한다. 주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신자간의 일치가 없고 오직 악한 사람들의 파당만이 있을 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6.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것이 연합의 조건이다

 

키프리안도 바울을 따라, 교회 전체가 일치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감독으로 모실 때에만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부언한다. "교회는 하나이지만 결실이 늘어나므로 널리 퍼져 많은 교회가 된다. 빛은 하나이지만 그 광선이 많은 것과 같다. 나무의 가지는 많으나 단 하나의 굳센 줄기가 땅 속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다. 한 근원에서 많은 시내가 흐르고 많은 시내가 각각 자체의 풍부함에서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은 하나이다. 태양에서 오는 광선을 보라. 그 광선 자체는 갈라지지 않는다.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보라. 꺾인 가지에서는 싹이 돋지 않는다. 시냇물의 근원을 막아 보라. 시냇물은 말라 버린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주의 빛을 흠뻑 받아 그것을 전 세계에 퍼뜨린다. 그러나 각 곳으로 확산되는 단 하나의 빛이 있다."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가 나뉠 수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키프리안이 어떻게 항상 우리를 머리 자체이신 그리스도께 돌아가도록 환기시키는가를 본다. 따라서 그는 이단설과 분파 행동이 생기는 것은 사람들이 진리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머리이신 분을 찾지 않고 하늘 교사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선언한다.


이제 그들에게 그들의 교회를 떠난 우리는 이단이라고 소리치도록 내버려 두자. 우리가 분리된 유일한 원인은 진리를 순수하게 고백하는 것을 그들이 절대로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파문(破門)과 저주로 우리를 추방한 것을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도들을 분파주의자라고 정죄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행동은 우리에게 죄가 없다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 그 이름 때문에 회당에서 쫓겨나리라고 미리 경고하셨다(16:2). 주께서 말씀하신 그 회당들은 당시에 합법적 교회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쫓겨났고 이것은 그리스도로 인해 생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 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이 점을 그들에게 양보하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가기 위해서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만족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 존 칼빈/기독교강요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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