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와 예배에 대한 교회사적 이해
주일성수는 창세 때부터 내려와 교회가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이었다. 인류 최초의 안식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7일째 되는 날에 모든 일을 그치고 쉼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이 날에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고(창 2;1-2),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 날을 안식일로 삼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켜왔다.
이와 같이 시작된 안식일 제도는 ‘광야교회’라고 불리던 이스라엘 공동체에 의하여 이어져 왔고(출 16:23), 모세 때에는 십계명의 한 계명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다(출 20:8).
1. 초대교회와 주일성수
안식일 제도는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 이레 중에 일곱째 날로 지켜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이레 중에 첫날로 변경되어 지켜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함께 천지 창조의 기념일이 구속의 기념일인 주일로 변경 되어 지켜지게 된 것이다.
이는 성경을 기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사도들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어서 성경적 권위를 가진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안식일이 아닌 안식 후 첫날에 모여 예배하곤 하였고, 이 날을 “주의 날”이라고 불렀다(고전 16:2, 계 1:10).
사도들에 의해 시작한 주일성수의 전통은 2세기로 이어졌다. 소아시아의 비두니아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 2세(Pliny the younger)가 112년경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Trajanus 98-117)에게 보낸 편지에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주일예배를 드린 정황이 기록되어 있다.
이 편지에 의하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보통 날에는 일출 전에 모임을 가졌고, 정한 날에는 모두 모여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찬송하였으며, 서로 서약하면서 도둑질이나 간음, 훼방하는 일이나 남에게 꾸어주기를 거절하는 죄를 범하지 말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잠시 흩어졌다가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곧 인육이 아니라 해롭지 않고 평범한 음식을 들기 위해 다시 만났다.
이 편지를 통하여 우리는 2세기의 성도들이 새벽 예배를 드렸고, 주일에 공 예배를 드렸으며, 주일 저녁에는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일성수의 전통은 플리니우스의 편지만이 아니라 초대 교회 변증가요 순교자였던 저스틴(Justin Martyr, 100-165)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저스틴은 <변증서>에서 “...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에 도시에 사는 사람이나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한 곳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일요일은 첫째날인데 바로 그 날에 어둠을 밝히셨고, 또한 우리를 만드셨으며, 그 날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저스틴은 당시의 주일예배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리고 사도들의 글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오래 읽는다. 독경자가 읽기를 마칠 때 사회자는 강론을 통하여 그 고상한 교훈들을 모방하도록 권면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나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말한 대로 기도가 끝나면 빵과 물 탄 술을 가져오고, 사회자가 높이 들고 그 거룩해진 음식을 나누어 주어 모두 받게 하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집사들이 가져다준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과 자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정한 것에 따라 헌금을 한다. 그 헌금을 사회자에게 맡기고 사회자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병이나 기타의 다른 이유로 물질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다. 즉 간단히 말해서 사회자는 필요한 모든 사람을 보호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가 주일성수의 핵심이었고, 예배는 사도적 전통에 따라 성경봉독, 설교, 기도, 헌금 등의 요소가 있었으며, 성찬 예식이 주일 밤 또는 주일 낮에 베풀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종교개혁과 주일성수
중세 시대에 이르러 성자숭배 사상이 만연하면서 성자들의 탄생일이나 순교일을 기념하는 축일 제도가 나타났고, 그와 함께 주일성수운동은 약화되어갔다. 하지만 16세기에 이르러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주일성수운동은 다시 회복되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대요리문답서>를 통하여, 성도들이 매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인간의 약함 때문에 하나님은 최소한 하루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성자의 생일 또는 순교를 기념하는 축일을 지키는 것을 비판하면서 오직 주일만을 온전히 지킬 것을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주일은 다른 날과 달리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직접 정해주신 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루터보다 발전된 주일성수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안식일을 세운 것은 율법을 배우고, 제사 의식을 행하며, 하나님의 행적에 대해 묵상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위해서 안식일에는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칼빈은 성자께서 율법을 성취하여 “4계명의 의식적인 부분이 폐지” 되어 더 이상 제7일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안식일 제도의 도덕적인 부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므로 하루를 정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성도들의 당연한 의무로 이 날에는 모든 노동을 그치고,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 주일을 세운 목적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해 묵상하고, 예배하는 일이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떡을 떼며, 공중 기도를 드리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 일을 위해서 “하인들과 노동자들을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칼빈은 현재의 안식, 곧 주일성수는 미래의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히브리서 기자의 가르침처럼 성도들에게는 장차 안식할 때가 있으므로, 성도들은 그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히 4:9-11). 아울러 모든 성도들이 영원한 안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평생을 준비하는 것과 같이, 한 주간을 살 때에 주일의 안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청교도와 주일성수
청교도들은 칼빈의 가르침에 따라 온전한 주일성수를 하고자 하였다. 주일성수의 진정한 의미가 주일을 온전하게 안식하는 데 있으므로, 모든 성도들은 주일을 미리 준비할 것을 종용하였다. 6일간 일용할 양식을 위해 열심히 일한 후, 토요일이 되면 “그날을 기억하며, 주간에 행하던 모든 일과 번거로운 모든 잡무를 벗어 던지고, 토요일 저녁부터 온전히 주일에 할 거룩한 업무를 차분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거룩하게 보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일을 위해 성도들은 세속적인 일을 멈추어야 했다. 예를 들면 “①월요일에 시장에 출하하기 위해 짐승을 주일에 도살하는 일, ②주일에 곡식을 경작하고,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일이나, 햇빛이 나거나 날씨가 좋다고 하여 짐승을 먹이기 위한 건초를 만드는 일, ③안식일에 매매행위를 하는 일, ④날씨가 너무 더워서 월요일까지 그냥 내버려두면 부패할 수 있다고 하여 물고기를 사고파는 행위 등”과 같이 세상의 일은 금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방식으로 주일을 성수하여 어떤 것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는 것에 비교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은 주일성수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요일에는 행해도 되는 언행을 규제하였다. 한 예로, 주일에 세상적인 것에 대해 토론하거나 화제를 삼고, 공중 예배가 끝났다고 해서 운동 경기를 하거나 오락을 하는 것은 주일 정신에 어긋난다고 보았다(사 58:13, 14). 그것들은 엿새 동안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먹고 마시는 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 집의 화재를 진압하는 일, 환자를 심방하는 일과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 가축을 먹이는 일(마 12;1-4; 12:7; 10, 12; 눅 13;14-16)과 같이 부득이 해야 할 일들은 제외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주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였다. 주일을 세운 목적은 안식, 곧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철저한 주일성수를 강조하였지만, 그들은 극단적 유대인들과는 달랐다. 유대인들이 전통에 기초하여 안식일에는 전등의 스위치도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과는 달리, 청교도들은 성경이 명한 바를 따라 금하거나 행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주일에 식사준비할 때에 잘 나타난다.
그들은 성경 어디에서도 주일에 음식을 장만하지 말라거나 그러한 목적으로 불을 지피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므로 주일에 음식을 마련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여겼다. 주님께서도 친히 안식일 잔치에 참여하였는데(눅 14:1), 이는 안식일에도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가축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했다면, 주일에 우리 자신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4. 청교도와 주일성수의 실제
청교도들은 언행이 일치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엄격한 주일성수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주일성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고, 그 안에서 생을 영위하고자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청교도 신학자 토머스 빈센트(Thomas Vincent)이다. 그는 주일을 주일답게 지킬 것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주일 아침에 하나님과 함께 이 날을 시작하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하여, 특히 그리스도께서 이 날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그의 구속 사역에 대하여 거룩하게 묵상하고, 공중 예배에 더욱 잘 부합되도록 하기 위해 성경과 시간이 허용되면 다른 양서들을 읽고, 특히 예배를 위해 골방이나 가정에서 기도해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입이 된 사역자들을 하나님이 돕고 우리로 더 많은 지식과 체험과 절제와 더 많은 은혜의 분량과 더 밀도 있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얻고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빈센트는 공중예배가 끝난 후에 가족과 함께 하루를 경건히 보낼 것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는 가정으로 돌아와서 (바깥에서 헛되이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며 쾌락을 구하지 않고) 그 날 들었던 말씀을 암송하며, 자녀들과 종들에게 요리 문답으로 가르치며, 시편 찬송을 부르고, 가정 식구와 함께 기도를 드리며, 음료나 다과를 적당히 들면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에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그 날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의 자세가 옳았는가를 스스로 살펴본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보다 철저히 이루어졌는가를 묵상한다. 하나님 앞에 은밀히 기도하는 중에 우리 마음을 부어 하나님에게 바치며, 겸손히 죄를 고백하고 사유하심과 더 많은 은혜를 누리기 위해 뜨겁게 믿음으로 간구하며, 하나님의 모든 은총을 인하여 특히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아 그 안에 주어진 복음적 은총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기도를 드린다. 이와 같이 다양한 모든 거룩한 활동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바 온전한 안식일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 날이 다하여 갈 때 우리는 결단코 끝남이 없을 하늘나라의 안식일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철두철미한 주일성수는 빈센트만의 독특한 것이 아니라 모든 청교도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였던 존 코튼(John Cotton)은 주일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토요일 밤부터 스스로 절제하면서 예배를 위한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토요일 밤부터 기도와 묵상을 하고, 주일에는 공중예배를 위한 개인 기도를 드린 후 공중 예배에 참석하였고, 예배가 끝난 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자녀들에게 설교를 복습시켰다. 오후 시간에는 모든 기족을 불러 모아 요리문답을 공부하였고, 저녁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다. 그 후 집에 돌아와서 가정예배를 드린 후 주일을 마무리 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엄격한 주일성수를 통하여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냈다.
마치는 말
청교도의 성경 중심적 주일성수사상은 한국교회 초기의 신앙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저녁예배가 사라지면서 주일성수가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주일과 다른 날의 구분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주일이 예배의 날이 아니라 휴식의 날이 되면서 저녁예배가 사라졌고 예배가 형식화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교인의 감소를 초래하였다.
더 늦기 전에 한국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주일성수 운동을 전개하고, 주일에는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저녁 예배와 가정예배를 회복하고 예배의 부흥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 때에 한국 교회는 한국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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