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2

[스크랩] 개혁주의 성경관

수호천사1 2017. 1. 12. 20:26

개혁주의 성경관

 

 

성경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13~16, 디모데후서 3:16, 베드로후서 1:2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종교개혁은 17세기 초에 루터·칼빈·쯔빙글리 등 3대 거두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우리는 이 종교개혁의 기본 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간혹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새로운 종교가 시작된 것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종교개혁은 하나의 새로운 종교를 창시한 것이 아니고 기독교를 바르게 돌이켜 놓은 것입니다.  회복하여 놓은 것이고 복원하여 놓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한 기독교가 얼마 동안 내려오는 동안에 성경적이고 초대교회적인 신학과 신앙과 생활을 벗어나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기독교를 바른 방향으로 바로 잡아 놓은 것이 곧 종교개혁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신학을 다시 찾은 것이고 신앙을 바로 잡은 것이고 생활을 경건하게 돌이켜 놓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종교개혁은 성경을 다시 찾았고 기도를 다시 찾았고 구원관을 다시 회복하였고 교회관·성례관 기타 모든 것을 옳게 인식하게 하여 주었습니다.



이와같이 종교개혁을 이룩한 후에 루터는 루터파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고 칼빈과 쯔빙글리는 개혁파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루터파는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개혁파 교회는 스위스 중심으로 발전하여서 프랑스·네덜란드·스코틀랜드를 지배하게 되었고 그 후에 대륙에서 이 개혁주의 신자들이 미국에도 건너가서 개혁교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교리는 칼빈의《기독교강요》를 중심으로 하는 칼빈주의적이고 정치는 지금의 장로교 정치를 창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개혁주의라 하면 칼빈주의라고 하는 말과 같은 말로 들어도 좋겠고 또 개혁교회라고 하면 칼빈주의적 장로교회라고 생각하여도 좋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

 

개혁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사람들이 기록한 책입니다.  모세로부터 사도 요한에 이르기까지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30여 명의 사람들이 수천년에 걸쳐서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사람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홀연히 천사가 나타나서 음성으로 들려 준 것이 아닙니다.  이상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어떤 벽에다가 써 준 것도 아닙니다.  이와같이 사람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성경의 본질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고 합니다.  성경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고 성경에는 사람의 말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가지고 있는 요람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고 성경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볼트만 같은 사람은 성경에는 신화가 많이 있으니까 이 신화를 제거하거나 신화를 신화 아닌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성경의 참뜻을 찾아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비신화화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데는 성경적 근거가 있고 이론적 근거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과 베드로후서 1:21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성경, 모든 예언은 다 하나님의 감동(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은 비록 사람이 기록하였지만 그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영감의 방법
1) 기계적 영감설 : 저자를 기계와 같이 사용하셔서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 직관적 영감설 : 보통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성(통찰력)이 신앙 방면에 발달하여서 성경을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3) 감력적 영감설 : 보통사람이 받은 영감과 성질은 같으나 정도만 다른 영감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4) 유기적 영감설 : 기관(器官) 영감설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저자들에게 저술 의욕을 환기하셔서 그 성격, 성벽, 재능, 교육, 교양, 용어, 문체 등을 그대로 사용하시면서도 그 마음을 계몽하시고 고무하시며 그 저작활동에서 죄의 영향을 제거하시고 용어의 선택과 사상의 표현을 성령을 통하여 교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교양이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시면서도 그 사상과 용어를 사용하는데 죄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도록 성령으로 가르치시고 인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유기적 영감설을 취합니다.


(2) 영감의 범위
1) 사상 영감설 : 성경의 사상만 영감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2) 부분 영감설 : 성경의 어떤 부분만 영감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완전축자 영감설 : 성경의 모든 부분이 문자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다 완전히 영감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완전축자 영감설을 인정합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유기적이고 완전축자적으로 영감되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사람이 기록하였으나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사상은 또한 사람의 사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2.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

 

개혁교회는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라고 믿습니다.
교회는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과 신앙과 생활입니다.  교회는 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생활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신학이 없는 교회는 머리가 없는 교회요, 사상이 없는 교회입니다.  신앙이 없는 교회는 가슴이 없는 교회요, 정열이 없는 교회입니다.
생활이 없는 교회는 수족이 없는 교회요, 실천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중 어느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되고 세가지가 잘 조화되어야 건전한 교회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다 성경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1) 성경과 신학
칼빈주의자 뵈트너(L.Boettner)는 “성경은 신학사상 논쟁에서 최고의 법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신학사상은 성경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성경으로 가부가 결정되면 그 이상 더는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신학의 대상이 아니라 신학의 원천이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하고 성경에서부터 나오는 신학이라야 참 신학, 개혁주의 신학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성경과 신앙
신앙도 성경대로 믿는 것이라야 참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왜 믿어야 하는지 믿음의 내용과 방법과 목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3) 성경과 생활
생활도 성경대로 해야 성도의 생활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은 우리 모든 행동과 생활의 규범이요, 법칙이라는 말씀입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신조 제 1조에 보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경이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성경이 머무는 곳에는 나도 머문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나도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은 나도 침묵한다.”고 하였습니다.

 

 

3. 성경과 성령과의 관계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의 자유라고 합니다.
루터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항상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래도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여 주지 아니하면 성경은 그 효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실 때에만 성경은 은혜의 방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적 조명이 있어야 성경은 은혜의 역사를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내재 없이 성경은 연구하면 고등비평가들이 되고 맙니다.  또 성경의 확증없이 성령의 내재만을 주장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돼 버리고 맙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하는 데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고 또 성령은 성경대로만 역사합니다.

 

4. 성경계시의 완성

 

개혁교회에서는 성경계시는 성경 66권으로 완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지금도 성경과 같이 권위 있는 계시가 있을 수 있는가?  하면 그럴 수없다고 개혁교회에서는 대답합니다.  성경은 66권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지 이 66권 외에 또 다른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지는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가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감하여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계 22:19).
또 성경계시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성경에다가 다른 무엇을 더하는 것이니 모든 재앙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경을 믿을 때에 성경은 우리에게 권위와 진리와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하).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4:6에서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사도행전 18:5에 보면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한병기 목사

출처 : 크리스찬 영의 세계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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