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

[스크랩] "기독교는 철학을 극복해야 한다!"

수호천사1 2016. 9. 15. 23:13

"기독교는 철학을 극복해야 한다!"

 

오늘부터 [철학과 신학]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저의 지적 능력으로 이 모든 사상가들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공부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하나씩 제가 이해한 것들 내에서 정리하면서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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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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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입니다. 그리스의 수많은 지성인들을 그려놓은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이 그림의 제일 가운데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손가락을 위로 향하고 있고, 또 한사람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학창시절 윤리시간에 한번 쯤은 들어봤을 이 두사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B.C.400년 경). 이 두 사람의 발상이 어떻게 전 세계의 모든 지식 세계에 영향을 미쳐오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성서를 통해서 진리를 알기 원하는,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의 사상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사상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던 시기가 바로, 우리가 읽는 신약성서를 기록한 저자들이 살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생각을 나누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 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철학과 신학, 각각의 정의과 그 차이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신학의 두가지 흐름에 대해 구분하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이 두가지 개념에 대해서 크게 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것만 나누고 플라톤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신학이란 무엇일까요?
성서에 신학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바울이 대표적입니다.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그의 글 속에 '변증'의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본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던 메시지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왜곡하거나, 곡해하는 자들에게 답을 주고, 그들의 공격들에 대해서 변증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도를 글로써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적 의미에서 '신학함'이란 바로, 바울이 했던 그러한 작업을 하는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작업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성경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들춰내기 위해 찾는 것을 신학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이란 문자적으로는 '신에 관한 교리'요, 내용적으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관한 진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없으며, 인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 존재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연구이며, 동시에 인간에 대한 연구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하셔야 이 학문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그것을 정의내리고자 시도하려는 학문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Phila+shopia). 사람들의 생각으로 '근본적인 무언가', '신', '진리'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 것입니다. 예컨데, 스크라테스는 모든 만물의 근원은 아르케라고 했습니다. 이는 '힘'입니다.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은 그것이 ‘물’이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르케를 '신'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엉뚱해 보이지만, 당시에만 해도 대단한 생각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생각의 틀을 한마디로 정리에 보면, "철학자들은 자연에서 부터 신의 개념을 추론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신학의 철학의 구분이 가능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철학 : 자연의 현상을 보고, 원리, 원인 등을 추론
신학 : 경험(하나님과의 만남) -> 사건 -> 이해


신학 : ‘신’이 주체, ‘나’는 없다.
종교 : ‘나’가 주체가 되어서, 신을 이용하는 것.
철학 : ‘나’가 주체가 되어서, 신을 만든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신'이 주체가 아닌, '나'가 주체가 되어서 '신학'이라는 가면를 쓰고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학을 'Philosophische Theologic 철학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신학은 오직 'Biblische Christologische Theologic 성서적, 기독교적/그리스도적 신학'입니다.

Philosophische Theologic 철학적 신학
<->
Biblische Christologische Theologic 성서적, 기독교적/그리스도적 신학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신학이 본래 크게 이 두가지 흐름으로 나눠져 오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생각보다 많이 우리가 이것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혹,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의 틀을 빌려서 그리스도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후대의 신학자들도 모두 그러한 철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문화의 일부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대해서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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