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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의 역사를 일으킨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

수호천사1 2016. 9. 8. 22:06

믿음의 역사를 일으킨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
 

 
 (글|강승규 목사)

오늘날 어디를 가든 사람을 찾습니다. 그 공동체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가 그 공동체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말합니다. 특별히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도자의 문제는흥망성쇠를 결정할 정도로 많은 사람의 관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느헤미야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모두가공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모형을 살펴보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느헤미야와 스룹바벨과 함께 포로 중에 남은 자들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1백75년 전이사야를 통하여 고레스가 바벨론의 문들을 열 것이며, 예루살렘에서 그 성전이 재건되어야 할 것을 선언하셨고 약 속하셨기 때문입니다(사44:28). 고레스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여호와로 말미암아 이미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에스더가 바벨론 안에 머물러 있는 그들의 고국으로 되돌아가지 않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다면,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바벨론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적은 무리들만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사 궁에서 술을 취급하는 고급관리로서 봉사했습니다(느1:11). 그 지위는 명예롭고 영향력 있는 자리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명칭이 잡일, 즉 종의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 관원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술을 마시게 주다’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왕궁에서 행하는 가장 명예로운 역할 중 하나였습니다. 왕보다 먼저 포도주와 음식을 맛보고 검사하는 것이 술 관원이었습니다. 왕과 술 관원 사이에는 친밀감이 형성되었는데, 왜냐하면 그 관계는 상호 신뢰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는 왕후 다음으로 그군주와 가장 친밀하게 접촉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자신의 백성의 일과 예루살렘의 폐허 문제로 근심하고 있을 때 이것을 눈치 채고 근심을 덜어 준 이가 바로 아닥사스다 왕이었던 것입니다.

▶ 느헤미야는 계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그의 형제로부터 들었습니다.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들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버려진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 소식이 느헤미야를 슬프게 했고 기도하며 금식하게 했습니다. 12월에서 4월까지 4개월동안 그는 기도하고 금식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고 그가 슬픈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느2:2). 그때 그는 왕이 자신을 유다로 보내어 성벽을 지을 수 있도록 요구했습니다. 왕은 그 요구를 들어주었고 하나님께서도 그의 마음에 작정하셨던 것을 행하도록 위임시켰습니다.
느헤미야가 왕께 응답한 것을 보면 그가 계획을 분명하게 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활동하여 왕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넉 달 동안, 느헤미야는 계획하고 꿈꾸며 계산하고 평가하여 모든 계획을 통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여행과 일의 시일이 얼마나 걸릴까를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분명한 기한을 왕에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백성들에게 그런 계획과 준비는 믿음이 없는 행위로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믿음 혹은신앙이라는 것은 계획을 미리 짜지 않고 막무가내로 믿고 행하는 식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명확한 생각을 포기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계획은 무시될 수 없으며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합니다(눅14:28-30). 그는 모든 일을 생각하여 준비하되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도력은 영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도력에서 본질적인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모든 사람, 즉 남자나 여자는 재기 있는 설득이나 심리적 조작 혹은 아부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란 가장 커다란
목소리를 지닌 자도 아니요, 큰 몽둥이를 가진 자나 혹은 예리한 지성을 소유한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기도에 몰입하는 자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상대에 대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믿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즉 우리가 바라는 것을 그가 할 수 있다는 것과, 또한 그가 그것을 해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가 하나님에게서 발견한 두 가지 속성입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이라도 해주실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의 자비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하나님은 해주려 하셨습니다. 결국 느헤미야의 기도는 기다리게 했고 시야를 분명하게 했고 가슴을 고요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신앙을 행동화시켰습니다.

▶ 느헤미야는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그는 폐허된 성벽을 면밀히 조사하여 백성들이 일하도록 격려했습니다(느2:13, 18). 그는 그 성벽을 여러 그룹들에게 구획을 나눠주어서 일시에 모두 일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성공적으로 백성들을 조직해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52일만에 완성시켰습니다(느6:15). 느헤미야는 훌륭한 조직자이며 지도자
입니다. 또한 성령에 이끌림을 받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며 동시에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게 했습니다. 즉 영적인 역사와 더불어 현실적인 역사를 같이 일어나게 한 사람입니다.
우선 느헤미야는 일을 위임했습니다. 3장을 통해 볼 때 책임의 위임과 노동의 분배가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올바른 동기를 가져야 합니다. 가장 흔한 실패로는 지도자가 권세에 집착하려는 것이나 또는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어 일을 위임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 결과 수행해야 할 일들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는 남들에게 부과하는 어떠한 일도 자기가 몸소 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또는 일을 위임받은 사람을 도와주고자 하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성벽 재건의 일이 열정과 화합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화합의 분위기가 넘쳤고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했습니다(느4:6). 영성은 땀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산을 옮길는지 모르겠으나 기도와 육체 노동은 서로 훌륭한 동역자입니다. 이것은 계획을 성취시킵니다. 일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가족이 바벨론 포로로 유랑할 때에 태어났으나 하나님을 신앙하는 믿음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과 의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중하고 불굴의 성격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다른 부하들을 지휘했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미리 계획하고 측정하기 전에는 착수하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마치기까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마음에 무거운 짐을 놓으셨을 때 우리는 기도하고 그분의 뜻과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실천에 옮겼습니다. 우리는 계획하고 기도하며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하고 기도하되 일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로봇에게 맡겨 버립니다. 느헤미야는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했고 성벽을 쌓는데 모든 장애물과 적들을 극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모든 일을 위해 우리 자신이 계획하고 기도하고 행동함으로 가능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거리.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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