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학

[스크랩] 야베스의 기도의 교훈(대상4:9,10)

수호천사1 2016. 8. 8. 17:49

근자에 소위 ‘야베스의 기도’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이 야베스의 기도는 이렇게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야베스라는 사람은 성경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야베스라는 사람에 대한 기록은 오늘 본문 이 두 절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야베스가 드린 기도도 매우 짧고 내용도 간단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오늘의 한국교회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요?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이라는 분 쓴 <야베스의 기도>(Prayer of Jabez)라는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난 뒤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워낙 이 책이 잘 팔리니까 후속으로 <묵상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CCM 사역자들이 야베스의 기도라는 곡을 앞을 다투어 발표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기도 좀 한다는 사람들, 영적인 것을 사모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야베스의 기도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일종에 야베스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될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브루스 윌킨슨이라는 분이 이 야베스의 기도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기에 이런 야베스 신드롬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이분의 책 제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제를 이렇게 달고 있습니다.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 그러니까 브루스 윌킨슨이라는 분은 야베스의 기도가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를 가르쳐 준다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야베스의 기도가 가르쳐주는 기도의 원리대로 기도하면 누구라도 삶을 기적으로 채울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하여 삶을 기적으로 채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기도로 복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기도로 삶의 기적을 체험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사실일 뿐입니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보다 깊은 영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자리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려면 우선 야베스가 누구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야베스에 대한 기록은 성경 전체에서 오늘 본문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추정해 볼 뿐입니다.

먼저 야베스는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야베스는 유다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유다 자손이긴 해도 다윗 왕이 태어난 주류 가문의 자손이 아닙니다. 역대상을 보면 3장 까지 유다 지파 중 주류 가문의 자손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고, 4장에 와서야 그 나머지 가문들의 자손을 간략하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베스는 바로 이 비주류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야베스는 불우한 상황 속에서 자랐습니다. 주목해 볼 것은 그 이름을 어머니가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아들의 이름은 당연히 아버지가 짓습니다. 그런데 왜 어머니가 지었을까요? 아버지가 이름을 지을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야베스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거나 아니면 중병에 걸렸거나 도피생활 중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야베스는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할 힘겨운 가정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고통’입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도대체 이 여인은 왜 아들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지었을까요? 이스라엘의 작명 전통은 축복을 담아서 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왜 그 이름을 저주라고도 볼 수 있는 고통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요?

그 답은 9절에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야베스를 낳을 때 난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야베스를 낳을 때 죽을 고생을 했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가정에서 남편도 없는 상황인데 아이도 너무 힘들게 낳았습니다. 아마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갓난아이를 돌봐야 하고 또 가정의 생계도 책임을 져야 하니 어머니는 야베스를 볼 때마다 고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의 탄식을 들어야 했던 야베스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자기를 부르는 사람들마다 ‘고통아!’, ‘고통아!’하고 부르는 그 소리를 들어야 했던 야베스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한국 최초의 맹인 가수 이용복 씨가 부른 노래 가운데 ‘어머니 왜 날 나셨나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 앞부분이 이렇습니다.

“바람이 휘몰던 어느 날 밤 그 어느 날 밤에 떨어진 꽃잎처럼 나는 태어났다네.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됐던 그 어린 시절 그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자식이 갑작스럽게 앞을 보지 못하게 돼서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 것입니다.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아마도 어린 시절 야베스의 마음이 이랬을 것입니다. 자기를 ‘고통아’, ‘고통아’라고 불러야만 했던 어머니를 바라보며 야베스는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야베스가 기도했던 기도의 자리는 바로 절망의 자리였습니다.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에게 남다른 재능과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누구 하나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야베스는 이런 자리에서 원망하기 보다는 기도했습니다. 좌절하기 보다는 기도했습니다. 절망하기 보다는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에서 배워야할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뜻대로 내 바람대로 되는 것이 없어서 좌절하는 그 자리에서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러봐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 자리에서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쓴 책입니다.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불러일으켜주기 위해 쓴 책인 것입니다.

역대기가 주목한 인물은 다윗입니다. 다윗을 주인공으로 하여 선조들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상 10장부터 대상 마지막 29장까지 다윗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하에는 다윗의 후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역대상 1-9장까지는 아담에서부터 다윗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족보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500여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눈에 띠는 사람 하나가 나옵니다. 바로 야베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그 이름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조차도 한 절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야베스만큼은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두절이나 할애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야베스라는 사람은 이렇게 길게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른 곳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을 왜 이곳에서는 이렇게 길게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그 이유를 모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멜기세덱처럼 신비로운 인물인 것입니다.

역대기 기자가 소개한 야베스에 대한 내용은 한 마디로 기도입니다. 야베스는 기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야베스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기도라는 말입니다. 물론 야베스가 살면서 참 많은 활동을 했을 것이고, 많은 업적도 남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잊혀지고 다 묻혀졌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제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후손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과연 후손들이 나를 기도의 사람으로 기억할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후에 자손들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요? 기도의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9절을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이름조차 소개되고 있지 않지만 야베스의 이름은 소개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원래 고통이라고 이름을 지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귀중한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2장 55절을 보면 ‘야베스에 살던 서기관’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이 지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곳의 지명은 위인들의 이름으로 짓습니다. 서울만 해도 세종로, 충무로, 율곡로 등 길 이름으로 위인들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 워싱턴 DC와 워싱턴 주와 같이 조시와 주 이름으로, 존 F 케네디 공항과 같은 공항이나 항만 등의 이름으로 위인들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지금 이 야베스라는 이름이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베스는 비주류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고통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정도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귀중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고, 또 지명에 그 이름이 쓰일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야베스는 기도가 만든 사람입니다. 기도에 전념하다 보니 그 기도가 기도의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 기도의 사람을 존귀한 사람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베스의 기도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되면 기도는 우리를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비전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했던 내용을 살펴보면 한 마디로 복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기도했던 복은 단지 자기가 받을 복, 자기가 받고 자기에게만 머무르게 될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복을 받고 그 복을 나누어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다 복되게 하는 복, 더 나아가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이 함께 복을 누리는 그런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베스를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불렀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통 중에 태어났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며 태어났던 야베스가 가족들을 복되게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베스 때문에 가문이 일어나고 가족들이 다 복을 누리게 됐기 때문에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야베스라는 지명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지역 사람들이 야베스 때문에 복을 누리게 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베스 때문에 그 지역 공동체가 분에 넘치는 복을 누리게 되어 야베스를 기리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 12:2-3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나누는 복입니다. 모든 족속을 복되게 하도록 주신 복입니다.

지금 야베스가 구한 복이 이것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복을 받는 그런 복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교회가 복을 받는 그런 복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일터가 복을 받는 그런 복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는 그런 복입니다. 그래서 야베스가 드린 기도는 비전이 있는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복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복은 비전이 담긴 복이어야 합니다. 남이야 어찌 됐든지 나만 복을 받는 그런 복이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남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남들이 고통을 당하더라도 나만은 복을 받아야 한다는 그런 복이어서는 안 됩니다. 나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가 다 함께 복을 받는 그런 복을 구해야 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복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역이라는 것은 현재 나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을 말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 내가 다니는 교회,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이것이 나의 지역입니다. 사실 이 지역에 복을 나누는 것도 어찌 보면 벅찬 일입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나의 지역을 넓혀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비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을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지역을 넓히라는 명령입니다. 지역을 넓히는 비전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행 1:8에서는 예언을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역을 넓히는 비전을 가지게 될 것이고, 또한 그 비전을 향해 나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지역을 넓히는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교회도 항상 지역을 넓히는 비전을 가지고 사역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민사를 살펴보면 19세기 말 만주로 그리고 연해주로 이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158개국에 700만 명이 넘는 한인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구 비율로 계산해 볼 때 세계 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난 5천년동안 좁은 한반도에 갇혀 살던 우리 민족이 불과 130년 만에 획기적으로 그 지역을 넓혀간 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민 역사는 기독교 선교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복을 주셨고 그 복을 나누기 위해 우리 민족이 꾸준히 지역을 넓혀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지역을 넓히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적으로는 우리가 이 상도동 골짜기에 갇혀있어서는 안 됩니다. 동작구, 서울, 한반도를 넘어서 저 중국으로 북한으로 5대양 6대주로 복을 나누기 위해 지역을 넓혀야 합니다.

우리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은 비전을 품고 마음에 그 지역을 넓히십시오. 사업하는 분들은 비전을 품고 그 지역을 넓히십시오. 주의 사역을 꿈꾸는 분들은 비전을 품고 그 지역을 넓히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여러분들의 삶의 지역이 넓혀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베스는 우리에게 소중한 기도의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원망과 절망의 자리에서도 기도에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복된 자리로 만들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우리 자신을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로 새롭게 빚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전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복을 나누게 하시고 또한 지역을 넓혀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거리.천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