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예배에 대한 이해와 비판
(Understanding and Criticism on the Emerging Worship)
목차
Ⅰ. 서론
Ⅱ. 이머징 예배에 대한 객관적 이해
A. 이머징 예배란 무엇인가?
B. 이머징 예배의 발생동기
1. 포스트모더니즘과 이머징 교회
2. 구도자 중심 예배와 이머징 예배
C. 이머징 예배의 신학적 특징
1. 전통교리의 수호
2. 사명적 교회로서의 교회론
3. 신비주의적 영성의 강조
4. 선포가 아닌 초청으로서의 설교
D. 이머징 예배의 실제
1. 예배의 분위기 조성
2. 찬송
3. 기도
4. 설교
5. 성찬
Ⅲ. 이머징 예배에 대한 비판
A. 다원주의와의 융합
B. 심화되는 소비자 지향성
C. 상실된 성경의 권위
Ⅳ. 결론적 제언
참고문헌
Ⅰ. 서론
현대는 분명 예배의 다양화 시대이다. 20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는 여러 가지 예배가 개발되었다. 기존의 전통적 예배에 ‘구도자 예배’(seeker-service)와 ‘구도자에 민감한 예배’(seekers-sensitive-service), 그리고 ‘열린 예배’(opening service)와 ‘사이버 예배’(cyber worship)가 출현하였다. 전자의 두 가지는 미국에서 출발하였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발생하였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현대예배’(contemporary worship)라고 부른다. 이 현대예배의 분명한 목표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제시하여 그들을 쉽게 교회 안으로 초청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불신자들의 문화, 그리고 기호와 성향에 맞추어 기획된 예배이다.
특히 구도자 민감형 예배를 추구한 윌로우크릭교회와 새들백교회는 아주 다양하며 현대적인 방법들을 예배에 동원했다. 이런 교회들의 예배 특징들 사명선언문을 만든다. 목회 사역을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가치관에 대하여 정의한다. 젊은층들을 집중적으로 전도한다. 드라마나 스킷을 사용한다. 록 밴드와 화려한 조명을 이용한다. 비디오, 각종 최신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며 현대화된 환경을 만든다. 소그룹, 리더십, 주제설교 등을 한다. 성, 정체성 같은 특별한 주제를 교육한다. 교회 심벌들을 제거한다. 스테인 글라스를 제거한다. 교회 분위기가 나지 않도록 만들어 안티 교회 사람들이 편안할 수 있도록 한다. 참고,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윤인숙 옮김.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서울: 이레서원, 2003), p. 35.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주승중 옮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고귀한 예배(서울: 이레서원, 2004), pp. 60-61.
을 보면, 그 당시 교회를 거부하거나 부정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얼마나 배려했는지를 쉽게 알게 된다. 이런 노력으로 20세기 말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이 교회에 정착을 하여, 새로운 부흥의 시대가 도래 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나 목적과는 달리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다양한 비판을 받은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관을 가진 사람들로부터의 비판 뿐만 아니라, 다른 현대예배를 구사하는 사람들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것이다. 내외적인 비판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과 삶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회개와 헌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예배를 보지만(?) 그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 만남의 경험이나 그것을 통한 삶의 변화가 없든지, 있어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도자 민감형 교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교회 건물이나 교회 장식에서 기독교적 분위기를 내는 십자가, 종, 촛불, 각종 심벌, 스테인 글라스 등이 이머징 세대 이머징 세대란, 포스트모던 시대에 태어나서 자라는 젊은 사람들을 지칭한다. 참고,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76.
(Emerging-Generation)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구도자 민감형 세대와 빈티지 세대(Vintage-Generation) 사이의 세대원들 간의 문화적 차이이다. 세대가 지남에 따라 세대원들의 문화 속에서 안티적인 것이 우호적인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 같은 상황 가운데, 이머징 세대에 맞는, 또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예배로 기획된 것이 ‘이머징 예배’(emerging worship)이다. 이는 분명 안티 기독교인들을 향한 대안으로 시작된 구도자 민감형 교회가 이머징 세대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데 대한 대안으로 시작된 새로운 유형의 현대적 예배이다.
댄 킴볼(Dan Kimball)은 다음의 다섯 가지 관점에서 이머징 예배를 출발한다. 첫째, 떠오르는 신세대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보기 원한다. 둘째, 새로운 예배모임이 사명과 관련이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문화적, 세대적인 변화 둘 다에 역점을 두는 새 모델이 필요하다. 넷째,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교회재정과 건물의 훌륭한 청지기가 되기를 원한다. 다섯째, 죽어가는 교회를 유지 발전시키도록 세대간의 관계성을 허용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주승중 옮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고귀한 예배(서울: 이레서원, 2004), pp. 69-78.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 이머징 예배는 현재 영국 영국에서는 ‘이머징 예배’를 ‘post-evangelical worship’이라고 한다.
과 미국의 수 백 개의 교회에서 드려지고 있으며 여러 저자들의 저술을 통해서 한국에도 알려지고 있고, 대부분 ‘이 시대에 맞는 변혁의 예배’라는 긍정적인 평을 받는 듯하다. 이런 시점에서 이머징 예배의 본질과 실제를 잘 이해하고,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올바른 평가를 통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해 가야 한다.
이머징 교회와 이머징 예배에 관한 이론과 실제를 알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책을 참고해야 한다. 하나는 그 예배를 긍정하는 맥라렌 Brian McLaren, The Generous Orthodoxy(Grand Rapids: Zondervan, 2004).
(Brian McLaren), 영국의 목사인 스티브 찰크 Steve Chalke, The Lost Message of Jesus(Grand Rapids: Zondervan, 2003).
(Steve Chalke), 킴볼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윤인숙 옮 김.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서울: 이레서원, 2003).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주승중 옮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고귀한 예배(서울: 이레서원, 2004). They Like Jesus but not the Church(Grand Rapids: Zondervan, 2007).
(Dan Kimball), 콘더 Tim Conder, The Church in Transition(Grand Rapids: Zondervan, 2006).
(Tim Conder), 깁스와 볼저 Eddie Gibbs & Ryan K. Bolger, Emerging Churches. Creating Christian Community in Postmodern Cultures(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5).
(Eddie Gibbs & Ryan K. Bolger) 그리고 웨버 Robert Webber ed., Listening Beliefs of Emerging Churches(Grand Rapids: Zondervan, 2007). The Younger Evangelicals: Facing the Challenges of the New World(Grand Rapids: Baker, 2002). 참고로, 웨버는 이머징 교회의 리더는 아니나 일찌기 그들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예고했다.
(Robert Webber)의 글들이 있다. 이런 책들은 실제 이머징 예배의 사역론과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된 글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머징 예배를 신학적으로 분석하여 나름대로 비판하는 글들로, 트리니티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카슨 D. A. Carson, Becoming Conversant with the Emerging Church(Grand Rapids: Zondervan, 2005).
(D. A. Carson)과 탈봇신학교의 변증학 교수인 스미스 R. Scott Smith, Truth & the New Kind of Christian: The Emerging Effects of Postmodernism in the Church(Wheaton: Crossway Books, 2005).
(R. Scott Smith)가 있다. 이것은 앞의 책들과는 달리 이머징 예배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집필된 책들이다.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포스트모던 시대를 위한 예배 갱신으로 나온 이머징 예배를 이해하고 비판함으로 예배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 하고자 한다. 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다음의 과정대로 논문을 진행 할 것이다. 서론에 이어 2장에서는 이머징 예배의 객관적 이해, 3장은 비판의 내용을 다루고 마지막 장은 결론이다.
Ⅱ. 이머징 예배에 대한 객관적 이해
우선 연구의 기초가 되는 이머징 예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와 이 예배의 발생동기를 살펴본다. 그런 다음 이 예배의 신학적 특징과 실제를 순서대로 고찰 한다. 이 같은 연구과정을 통하여 이머징 예배에 관하여 객관적 사실을 알게 된다.
A. 이머징 예배란 무엇인가?
이머징 예배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예배에 관한 중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예배를 영어로 worship service라고 하는데, 예배가 과연 worship ‘service’인가 아니면 worship ‘gathering’인가가 그 첫 번째이다. 김덕수, “이머징 교회 흐름과 청년 사역의 방향”(미간행, 학원 복음화 협의회의 제4회 캠퍼스사역 컨퍼런스 강의안), p. 17.
지금까지의 전통적 예배나 구도자 예배에서는 예배를 worship service로 보았으나 이머징 예배에서는 예배 공동체의 ‘모임’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30.
이들이 예배의 개념을 service에서 gathering으로 전환을 한 것은, 기존의 예배개념은 중세의 사제의 집례에 대한 회중의 참관내지 구경으로 보는 것에서 초대교회의 예배모임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왔다. 킴볼과 같은 예배를 추구하는 사역자들도, 전통적 예배의 개념에 대한 회의를 품고 다시 성경의 예배의미를 면밀히 살펴봄으로 이 사실을 깨닫고 실행하게 되었다. 이 같은 개념전환은 예배 디자인 자체와 인도 방식을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또 다른 한 가지 질문은, 예배가 인식적인가 아니면 경험적 사건에 더 가까운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김덕수, op. cit.
지금까지의 전통적 예배나 구도자 예배는 인지론적 신학체계와 거기서 유출되는 인지론적 전통 예배 환경 속에서 성장해 왔다. 그리하여 많은 신학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험 없이 영혼의 깊은 갈등에 부딪혀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한 공허감은 전통적 교회나 구도자에 민감한 교회나 다 겪는 갈등이고 아픔이다. 이 같은 시대적 갈등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 경험을 추구하는 쪽으로 예배의 방향을 잡은 것이다.
전통적 예배는 예배를 보러가는 입장이고, 구도자 예배는 소비자 중심의 성향을 보인 것이나 이머징 교회의 예배는 경험적이고 선교적 교회로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51.
이런 것들, 즉 상술한 두 가지 질문의 답을 명확히 함으로, 이머징 예배의 정의를 정확히 내릴 수 있다. 이구동성으로 이머징 예배에 대한 정의가 어렵다고 한다. 그 예배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정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도 명확한 정의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이머징 예배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자 애를 쓴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댄 킴볼이다. 그를 가리켜 이머징 예배의 ‘아이콘’이라고 부른다. 그는 그의 책에서 마르바 던(Marva Dawn)의 말을 인용하여,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무한한 광휘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예배의 본질이 변하여 오늘날에는 인간이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7.
그리하여 21세기는 포스트모던의 영향으로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하나님만 예배하려는 교회에 도전을 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에 들어와 이머징 교회가 출현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 교회들은 교회의 시각적, 상징적, 예전적 유산을 찾아내어 다시 그 의미를 되살리어 우리가 처해있는 21세기의 상황 속에서 재해석하여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Ibid., p. 9.
그리고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이머징 예배라고 부른다. 킴볼은 여기서 예배를 ‘고전적 가치를 지닌 믿음의 예배’라고 한다. Ibid., p. 10.
그는 그의 책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고귀한 예배”의 제1장에서 ‘이머징 예배가 무엇인가’를 다루면서 우선 부정적인 언어로 그것을 표현한다. ‘이머징 교회 예배는 단지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이머징 교회 예배는 예배의식이 아니다’, ‘이머징 교회 예배는 동네 자동차 서비스 센터가 아니다.’ Ibid., pp. 27-30.
이 같은 표현은 기존의 전통적 예배나, 구도자 예배의 단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머징 예배에 대한 이런 표현에 이어서 그는 몇 가지 언어로 그 예배의 정의를 말한다. ‘이머징 교회 예배는 생활양식이다.’ Ibid., pp. 30-31.
성도들이 일주일 내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생활양식이라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이 예배를 ‘하나의 통합적 형식이라’고 Ibid., pp. 32-33.
주장한다. 이것을 달리 말해 다감각 응용적인(multisensory-다감각 응용적이라는 말은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을 통하여 예배자들이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접근방법으로 예배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예배 안에 미술도 들어오고, 영상이 사용되고, 고대의 규율들이 실행되고, 관중들이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예배모임이 고안되는 것을 말한다. 그가 이런 주장을 펴면서도 예배의 정의를 분명히 내리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이유이다.
또 다른 한가지 이유는, 우선 이머징 예배를 시도하고 있는 ‘이머징 교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콘더(Tim Conder)는 이머징 교회의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이머징 교회들이 내포하고 있는 스타일, 조직, 신학, 목회 실천들이 다양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Tim Conder, op. cit., p. 23,
킴볼 또한 이머징 교회의 예배 모임 각각은 지역교회의 상황, 공동체, 사람들, 그리고 교회의 특별한 리더들에 따라 독특하기 때문에, 이머징 교회 예배에는 특정한 모델이 없다고 주장한다. Dan Kimball, op. cit., p. 106.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규모와 상황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가치와 주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머징 예배의 특징은 관객형(spectator type)예배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킴볼은 이상적인 예배를 “교회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예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고 왕께 경배하는 시간”으로 정의한다. 그 정의에 의하면, 마치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의 자세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며, 예배자는 관람객으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배에 동참해야 하며 존귀와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Ibid., p. 110.
둘째로, 이머징 예배는 일률적인 형식이나 순서가 없이, 예배자들이 유기적으로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예배이다. 이머징 예배에는 예배자들이 예배실 주변에서 기도를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기도문을 쓰기 위해 장소를 이동할 수도 있다. Ibid., p. 111.
특정한 한 장소를 고집하지 않고 장소에 대해 자유롭다.
셋째로, 이머징 예배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공간을 성스럽게 꾸미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머징 교회에서는 편의성 위주의 현대적 실내디자인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많은 현시대적인 예배의 자리에서 리더들이나 디자이너들이 선한 의도로 경외감, 경이로움, 초월적인 것들을 없애버린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Ibid., p. 112.
그 대신 영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켈트의(Celtic) 십자가나 동방교회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가를 사용하고,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예술적인 소품이나 상징들도 사용된다. 이머징 예배에서는 예술적인 표현에 신학을 가미한 창의성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배를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Ibid., p. 115.
댄 킴볼의 책을 번역한 주승중은 이머징 예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대의 예전과 여러 가지 영적인 훈련, 교회력과 유대전통의 회복 등이 예배의 현장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이머징 교회 예배’의 현장에서는 동방 정교회 예전이나 관상 기도(Lectio Divina)와 같은 영성훈련을 도입하고, 이미지를 강조하는 젊은 세대의 특징에 맞춰 시각적 예술물을 많이 사용하며, 교회력에 따라 예배를 드린다. 경건한 예배 분위기를 위해 조명을 낮추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예배에서 회중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장하고, 예배가 보다 유기적으로 구성되고 있다.” Ibid., pp. 9-10.
박종환은 예배의 전체적 요소가 하나의 몸처럼 각각의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존재를 보완하고 지지하는 것이 유기적 예배라고 할 때 이머징 워십은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로 본다. 박종환, “몸, 감성, 그리고 예배: 새로운 예배의 필요성에 대하여”, 목회와 신학(2008년 6월), p. 79.
달리말해 이머징 워십은 킴볼이 강조하는 유기적 예배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박종환이 말하는 이머징 워십의 정의는 수용될 수 있다. “오늘날 이머징 교회와 이머징 워십 운동은 80년대 이후의 대중적 기독교에 대한 반성이고 반작용이며 이는 보다 높은 초대교회의 영성과 예배의 신비로의 회귀라고 보아야 한다.” Ibid., p. 80.
그리고 “유기적 예배는 기존의 예배에서 강조된 음악만이 아닌 모든 종류의 예술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반응하는 예배로써 시각적 예술이 결합된 예배를 추구하는 가운데 출현한 것이 이머징 워십이다.” Ibid., p. 83.
이상과 같이 이머징 예배의 특징을 정리하자면, 이머징 예배는 예배자로 하여금 예배의 관람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신비에 동참토록 만드는 예배이다. 그것을 위해 고정된 순서와 장소의 틀에 구애 받지 않고 예배자가 자유롭게 공간을 이용하며 스스로의 영성을 적극적으로 고취할 수 있도록 즉흥성과 자율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예술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반응하도록 그림과 상징 등 시각물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이머징 예배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는 이유에 대해 킴볼은 대부분의 현대적인 교회들에서 예배에 관련된 교회의 역사적인 관행들을 무시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32.
결국 이머징 예배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상실했던 초대교회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온 전통적 예배의 회복이지 기존의 예배와는 또 다른 새로운 형식의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이머징 워십을 정의할 수 있겠다. “이머징 워십은 80년대 이후의 대중적 기독교에 대한 반성으로, 보다 높은 초대교회의 영성과 예배의 신비로의 회귀이며, 모든 종류의 예술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반응하는 것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하나의 대안적 예배이다.” 이것은 킴볼과 박종환의 주장을 나름대로 조합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머징 예배는, ‘초대교회의 상황과 현대사회를 접목시켜 구성한 예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의에 담긴 의미는 이머징 예배가 초대교회의 귀한 유산을 현대 교회에 접목시키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B. 이머징 예배의 발생동기
어떤 사상이나 사건에는 발생 동기가 있듯이 이머징 예배의 발생동기도 분명하다. 그것을 포스트모더니즘적 사회와 구도자 중심의 예배에서 찾을 수 있다.
1. 포스트모더니즘과 이머징 교회
이머징 교회는 포스트모던 이후 혹은 기독교 이후(post-Christian)의 환경에서, 기독교가 이머징 세대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출발한 교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하나의 실재로 자리 잡은 현실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해야 복음의 능력을 전할 수 있는 곳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머징 교회 운동이라는 움직임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머징 교회의 출발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교회가 큰 어려움에 봉착하였다는 위기감을 토대로 한다. 콘더에 의하면, 현존하는 교회의 정체성은 억측, 위협, 도전, 현대의 계몽된 문화의 기회에 의해 완전하게 형성되었으며, 많은 회중들이 오늘날 새롭게 출현하는 포스트모던 문화 가운데서 그들의 길을 찾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Tim Conder, op. cit., p. 13.
왜냐하면 현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사상이 아닌, 정치, 경제, 문화, 학문, 철학, 예술 등 사회 전 분야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개개인의 인성과 성향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든 현대인들의 특징을, 웰스(David Wells)는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진술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세계에서 성장했거나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흔적을 지닌다. 그들은 아무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속이 텅 비어있고... 실체보다 이미지에만 집착하고, 제약 없는 개인 취향의 매력적인 만병통치약에 따라 움직이고, 개인의 직감만을 따른다.” David Wells, God in the Wasteland, 윤석인 옮김, 거룩하신 하나님(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7), p. 329.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토대가 되는 다원주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창하는 상대성과 다원성의 원칙이 기독교의 절대성과 유일성의 원칙과 상충되기 때문에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기독교적 문화가 침식된 결과로, 혼합주의가 발생하였다. 킴볼은 형식과 용어는 기독교적이지만, 그 내용과 교훈은 전통적 교리에 어긋나는 것들이 문화 저변에 확산되어 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요즘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기도도 유행이다... 우리는 한 지방 대학교에서 4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었지만, 75%가 넘는 학생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다... 하나님도 영적 주제도 항상 인기이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시대인가! 이제 나쁜 소식 차례이다. 조명을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이 많아지는데, 이 시대의 선지자들이 가르치는 메시지가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종종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기 직전에, 바로 그 예술가들이 여성을 비하하거나 폭력을 조장하거나 성적 혼음을 미화시키는 노래를 불렀다. 유명 인사들이 성경이나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아무런 기초 지식 없이 기독교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이머징 세대는 이런 신학 용어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한 정의를 배우며,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받고 있다.”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p. 109-110.
이러한 혼합주의 영성에 물든 이머징 세대는 영적인 세계나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적 세계에 대한 태도가 개방적이다. 기독교 또한 그들이 포용할 수 있는 종교 중 하나로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절대성과 유일성을 강조하는 기독교 교리이다.
킴볼은 이머징 세대의 이러한 특성을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아는 부분은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리스도인에 대해 아는 부분은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로 표현한다. Ibid., p. 98.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만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그렇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사고체계를 장악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성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이긴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으며, 동양종교 등 다양한 영적 요소가 뒤섞인 혼합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는 세속 문화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진리임을 신봉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물들어 있는 비신자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설득력 있고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가, 이머징 교회이며 이머징 예배이다. 이머징 교회 운동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복음 전파에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이용하면 복음전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파악한다.
킴볼은 “이것(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예배를 기획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 왜 미학(aesthetics)과 ‘성스러운 장소’를 창안하는 것이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설교도 변해야 하고, 전도도 변해야 하고, 그리고 영적 발달 그 자체도 변해야 한다. 이런 문화적 변화 때문에 심지어 리더십 그 자체도 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76.
킴볼을 비롯한 이머징 교회 운동가들은 교회가 세상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사회 문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광범위하고 확고하게 자리 잡은 반면 기독교는 여전히 근대적 사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를 전통과 신비라는 영역 안에서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곧 이머징 예배 운동이다.
2. 구도자중심(seeker-sensitive) 예배와 이머징 예배
이머징 교회의 출현은 한편으로는 지금 수많은 교회 예배의 모델이 된 구도자중심 예배의 영향력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구도자 중심이라고 하는 것은 전도를 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교회의 모습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도자 중심 예배에서는 되도록 교회의 상징들을 내려놓았고, 교회의 고전적인 음악들을 뒤로 하였다. 분위기는 되도록 무거움을 벗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밝은 조명과 현대적 성구들을 사용하였다. 교회를 처음 오는 사람들이 교회라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한 것이다. 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교회는 지루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찬양은 그들의 음악을 좇아갔고 지루한 교리보다는 생활의 주제를 드라마로 풀어주었다. 조성돈, “이머징 교회의 아이콘, ‘전통 ․ 신비’”, 목회와 신학(2008년 6월), p. 55.
윌로우크릭 커뮤니티교회와 새들백교회가 주도한 구도자 중심 예배는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우리나라의 교회 문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린 예배’라는 형태의 찬양 중심 예배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으로 교회에 흥미를 잃고 등을 돌린 세대들에게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그들을 교회로 다시 불러들이는 데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의 젊은 세대, 즉 ‘이머징 세대’에는 이런 구도자 중심의 예배가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전 세대인 ‘베이비 부머’(baby-boomer)들은 기존의 교회가 주는 완고함, 딱딱함, 지루함의 이미지를 탈피한 구도자 중심 예배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구도자 중심 예배의 분위기에서 자라난 ‘이머징 세대’는 세속적인 쇼나 공연과 다를 바 없는 구도자 중심 예배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도 않고, 그들에게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킴볼은 “교회가 문화에 뒤처지고 젊은 세대와의 접촉점을 잃었을 때, 구도자 중심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머징 세대와 단절됨에 따라 시대에 뒤처지게 된 것이 바로 구도자 중심 운동이다.”라고 말한다.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28.
킴볼은 80년대 후반 구도자 중심 예배를 도입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이후 이머징 세대들이 구도자 중심 예배에 급격히 흥미를 잃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목격하고는 공포심을 느꼈다고 진술한다. Ibid., pp. 41-45.
결국 근대교회는 베이비 부머 이후 세대에게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가톨릭이 74.4%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개신교는 1.6%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은 구도자중심 예배가 보편화되었던 때인데, 오히려 교인 수는 줄어들게 된 것이다. 조성돈, op. cit., p. 60.
이는 곧 교인들이 교회답지 못한 교회의 모습과 세속적인 공연을 방불케 하는 구도자 중심 예배에 점점 흥미를 잃게 되었으며, 구도자들은 세속과 다를 바 없는 교회의 예배가 아닌 가톨릭 특유의 종교적인 분위기에 더 큰 매력를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킴볼은 이머징 교회의 목표에 대해, “구도자 중심 예배에서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간에, 목표는 이머징 문화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 교회 공동체를 창출하는 것이다”라고 밝힌다.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34.
그는 구도자 예배와 이머징 예배의 차이점을 간단한 도표로 설명한다. Ibid., p. 130.
구도자 예배
이머징 교회 예배
worship service: 설교, 음악 프로그램들이 참석자들에게 베풀어지는 것
예배모임: 설교와 음악 등이 포함 된
사용자 편리성과 현대성을 위한 설계
경험적이고 이성적-신비적
전형적인 교회의 틀을 깰 필요
전형적 기독교인의 틀을 깰 필요
스테인글라스 제거하고 스크린 설치
스테인글라스가 스크린 상으로 들어옴
종교적으로 보이는 십자가와 상징들을 제거
영적 존엄성을 위해 십자와 상징을 복귀
개인이 편하게 무대를 볼 수 있는 극장식 예배실 배치
공동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구조, 때로는 거실처럼 편한 형태
환하고 밝은 예배실을 선호
영성을 위해 어두운 부분도 가치 있게 여김
예배의 설교 중심
예배의 중심은 통합적 경험
설교자와 예배 인도자가 예배를 끌고 간다
설교와 예배 인도자는 회중에 참여함으로 인도한다
현대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현대기술 사용
고대의 것, 그리고 신비적이기까지 한 것을 경험하는 회중(그것을 위해 현대적 기술 사용)
교회의 대중에게 적응하기 위해 설계된 예배
대중 적응성과 함께 소그룹으로 모이는 모임을 위해 설계된 모임
이렇게 현 시대 교회 예배에 있어서 하나의 매뉴얼처럼 큰 파급효과를 끼치던 구도자 중심 예배가 이제는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까지 지목되는 상황이, 교회와 예배가 전통적인 모습과 의미를 회복하자는 이머징 예배가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C. 이머징 예배의 신학적 특징
이머징 예배의 발생동기가 되는 구도자중심의 예배에도 그 특징이 있듯이 이머징 예배에도 그 신학적 특징이 있다. 그것을 네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전통교리의 수호:
기본적으로 이머징 교회를 이끌고 있는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스스로에 대해 정통교리에 충실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머징 예배 운동의 리더들을 소개하는 책에서, 웨버(R. Webber)는 드리스콜(Mark Driscoll)과 킴볼의 신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웨버에 의하면, 드리스콜은 성서의 권위와 하나님의 삼위일체 속성과 대속에 대한 전통적인 종교개혁자들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성경에 의존한다. Robert Webber ed., op. cit., p. 16.
킴볼 또한 삼위일체, 성경의 권위, 속죄, 부활, 재림과 니케아 신조, 신앙고백 등 본질적인 기독교 신앙 안에 머물 것을 요구한다. Ibid., p. 17.
그러므로 이머징 예배 운동가들은 이머징 예배가 기존의 예배와 이질성을 띤다고 해서 이머징 예배의 신학이 전통적인 교리를 수정하거나 왜곡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2. ‘사명적 교회’로서의 교회론:
‘사명적’이라는 말에 대해, 킴볼은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복음대로 살며, 교회로써 복음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71.
킴볼은 신약성경에서 ‘교회’(ekklesia)라는 단어가 목적과 사명을 가진 초기 신자들의 회합을 일컬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이머징 교회의 모임은 다양한 형태가 되겠지만, 공히 주력해야 할 것은 선교적 사명이라는 것이다.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15.
그러므로 이머징 교회에서 ‘교회’는 예배당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선교의 사명을 띠고 존재하는 모든 곳을 의미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56.
이머징 교회에 있어서 이 정의가 중요한 이유는, 구도자 중심 예배가 가져온 교회론의 왜곡 때문이다. 구도자 중심이 예배자들의 취향과 필요에 의해 좌우되는 소비자 중심의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교의 사명을 포기해 버렸다는 것이다. 킴볼은 이머징 교회와 이머징 예배가 소비자형의 교회가 되기 위해 포기해 버린 선교의 사명을 회복하고, 다시금 사명적 교회로 거듭나게 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밝힌다.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18.
이머징 교회의 교회론은 그들이 가진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는 신학과 관련된다. 그들의 공동체 운동, 선교, 삶 등 그들의 모든 것 이면에 흐르는 개념이 하나님 나라이며,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영적 현실이나 미래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예수와 제자들이 걸었던 삶의 여정 자체를 반영한 현재적 개념이다. 김도훈, “포스트모던 시대 교회의 창조적 커뮤니케이션”, 목회와 신학(2008년 6월), p. 50.
즉 이머징 예배 운동가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학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측면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머징 예배에서 예배자를 단순한 예배의 참관자로 여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머징 예배는 예배자가 예배에 유기적이며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격려한다. 킴볼은 ‘예배의식’이라는 말 대신 ‘예배모임’이라는 말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신학적으로 이 말(예배모임)은 우리가 하고 있는 바를 훨씬 더 잘 전달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무엇인가를 받기 위해서 예배에 오는 개개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섬김과 헌신을 드리는 교회의 모임이 되기를 원한다. 예배를 위해서 함께 모일 때 우리가 하는 것을 바라보는 이 두 가지 방법에 있어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30.
그러므로 이머징 예배에 있어서의 예배란 일주일에 단 한 번 주일 아침에 행하는 의식이 아니다. 예배는 일주일 내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생활양식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먹는 것, 시간을 들이는 것 모두가 예배의 행위이다. Ibid., p. 31.
그들이 말하는 ‘예배모임’에서는 생활양식으로써의 예배를 돕기 위한 영성과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이 표현되고 구체화 된다.
박종환은 이머징 예배를 통해 신자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제 인간이 거룩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오신 것처럼, 감각과 육체에 대한 긍정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분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그분이 느끼는 것처럼 느끼고, 그분이 만지는 것처럼 만지고, 그분이 보는 것처럼 세상을 보고, 그분이 듣는 것처럼 사람들의 말과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을 통해, 다시 말해 그분을 닮는 가운데(Imitatio Christi) 인간의 성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 당위가 아니라 예배 가운데 실제로 일어나는 경험적 현상들이다.” 박종환, “몸, 감성, 그리고 예배: 새로운 예배의 필요성에 대하여”, 목회와 신학(2008년 6월), p. 82.
이머징 예배 운동가들은, 이머징 예배 중에 예배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통해 그리스도의 삶이 성도의 몸과 삶 가운데 실현된다는 것이다. 즉 예배와 성찬 중에 그리스도의 연합이 신비가운데 실현되며, 그러한 체험과 감정이 세상 속에서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3. 신비주의적 영성의 강조:
이머징 예배에서는 교회 역사에서 실행되었던 고대의 예전이나 관상기도와 같은 관행들을 다시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교회력에 초점을 두어 예배를 기획하며, 유월절과 같은 유대의 절기를 교회력에 포함시켜 축제를 치르기도 한다. 이렇게 예전과 절기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킴볼은 예배자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Dan Kimball, op. cit., p. 132.
이머징 예배에서 예전의 중요성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신비주의적 영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이머징 교회의 신학과 관련이 깊다. 그들은 고대의 영성을 회복하여 오늘의 맥락에서 현대의 영성과의 융합을 시도하며, 그것을 위해 고대 수도원에서 사용했던 영성 훈련 방법을 빌려 오기도 한다. 김도훈, op. cit., p. 51.
예배자의 영성을 고취하기 위해 시각, 청각, 촉각, 미각 뿐만 아니라 후각을 자극하는 것을, 그들을 ‘다감각적 예배’라고 부른다. 그들은 예배공간을 보다 종교적인 분위기로 조성하기 위해 십자가와 성화로 인테리어하며, 촛불과 향을 동원한다. 킴볼은 어떤 이머징 예배에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갈급함이라는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예배실 안에서 빵을 구워 예배자들에게 공복감을 불러일으켰던 사례를 제시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23.
특히 예배의 중심이라 할만한 성찬식은 묵상으로 사람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죄의 고백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다. 이 같은 다감각적 성찬식을 통해 예배자가 그리스도께서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을 보시고 느끼셨던 것을 경험하게 된다. 신과 인간의 신비적인 합일을 추구한다.
4. 선포가 아닌 초청으로써의 설교:
이머징 예배에서의 설교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선포되는 설교와 큰 차이가 있다. 킴볼은 이머징 예배에서의 설교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경우 이머징 교회 예배 모임에서 설교는 여러 부분으로 나뉜다. 한 편의 긴 설교 대신에 찬양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나 설교 중간에 공동의 기도를 낭송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몇몇 이머징 교회 예배모임들은 설교시간에 사람들이 일어나서 미술처소로 옮겨서 색칠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찰흙으로 조각 작품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기도 한다.” Dan Kimball, op. cit., p. 127.
이머징 예배의 설교자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설교의 적용 포인트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 이야기로 초청하는 것이다. 즉 설교가 말씀의 선포로써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메시지 안으로 청중들을 초청해 들이는 매개로서 역할을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질문이나 토론, 설교 중간에 그림이나 상징물과 같은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교리적 지식의 전달은 이머징 예배에서의 설교의 목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실제 삶에서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단편적인 개념전달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예배자의 감성에 호소하여 다짐과 결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설교의 주제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머징 예배의 설교는 구원에 대해 설명하기보다, 구원 이후 이 땅에서의 삶을 강조한다. 그리고 진리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보다는, 진리가 되신 그분을 이야기하며 그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이머징 예배의 목적이다. 조성돈, op. cit., p. 59.
이머징 예배의 설교 방식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는 신학과 관련이 깊다. 지식전달에 머무르는 설교나 성경공부는 의미가 없고, 성도를 말씀이 요구하는 삶으로 인도하여 체험하게 하며, 결단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D. 이머징 예배의 실제
여기서는 이머징 예배가 실제로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1. 예배의 분위기 조성
이머징 예배는 틀에 박힌 형식을 거부하고, 유기적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찬양, 성경봉독, 간증, 침묵의 시간, 찬양, 설교, 영상, 침묵과 묵상의 시간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킴볼은 자신이 목회하는 빈티지 믿음교회(Vintage Faith Church)의 찬양집회 순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예배 전 화면에 스테인드글라스 로고 (7:30)
- CD음악-묵상시간 (7:45)
- 찬양단의 찬양(5-6곡) (8:00)
- 침례/간증 (8:20)
- 환영/공지 (8:25)
- 멕시코 선교팀 환송 및 기도 (8:28)
- 헌금 기도 (8:25)
- 찬양과 간증 (8:33)
- 성찬 설교 (8:38)
설교 중 미술 작품 그리기 / 성경 읽기
- 묵상 및 기도 (9:11)
- 성찬 중 찬양단 찬양 : 뒤쪽 강단에서 (9:14)
- 찬송 시간 (9:30)
- 성경 합독 (9:35)
- 워십 댄스 (9:36)
- 찬양단 찬양 (9:39)
- 폐회 기도 (9:45)
- 종주(終奏) 참고,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297.
각각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킴볼은 유기적이라고 하여 무질서하거나 혼란스러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신중하게 계획되고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Ibid., p. 111.
예배시간에 자리를 이동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몇몇 교회들은 심지어 설교시간 동안에 사람들로 하여금 주위로 옮겨 다니면서 예배실에서 다른 것을 경험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이머징 워십에서는 고전적인 가치를 들어 예배의 분위기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적인 빌딩에서 모임을 갖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을 가지기를 원한다. 중세나 고대 교회의 역사적 유물들을 상징화 시킨 것을 구입하여 고대의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배치한다.
또 미적 감각을 최대로 살린다. 지금까지는 주로 청각에 의존하였으나 이제는 청각은 물론 다른 미적 감각의 사용 제한이 없음을 알고 이것을 더욱더 살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강화한다.
그리고 실내의 조명을 밝게 하거나, 각종 조명기구를 동원하여 무대와 설교자를 비추었으나 이머징 워십의 예배구성에서는 어두움이 오히려 영성을 드러낸다고 보아 전체적인 조명을 어둡게 한다.
설교자가 설 강단이나 찬양 인도자들이 회중들 위에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강단을 회중들과 같은 위치에 두거나 회중들 가운데 둔다. 그렇다고 해서 회중을 인도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제사장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현대교회가 예배당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십자가나 기타 종교적인 상징들을 없애버렸으나 이 예배의 구성을 위해서는 이것들을 필수적으로 둔다.
빈티지 예배의 신성한 공간 만들기를 위해 이처럼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은 단순한 만남의 장소를 고대의 신성한 믿음의 장소로 바꾸어 놓고자 함이다. 그래서 이러한 분위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2. 찬송
킴볼의 빈티지 믿음교회에서는 찬양단을 예배실 뒤쪽에 위치시키고, 예배가 시작될 때는 앞에서 시작하지만 곡이 바뀌면 뒤쪽에서 인도한다. 그 이유에 대해 킴볼은 찬양단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으며, 모든 회중이 동등하게 하나의 공동체로 찬양한다는 기분이 들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Ibid,, p. 166.
이머징 예배는 대중적인 기독교 음악 뿐만 아니라 고대 음악과 세계 각국의 민속 음악을 도입하거나, 결합한 형태의 음악을 사용한다. 그리고 묵상을 위해 순환되는 음악이 여러 번 연주되며, 각 교회의 특성에 맞도록 자신들이 직접 작곡한 곡들이 많이 사용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p. 119-120.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닛사의 그레고리에피스코플교회’에서는 유대교의 전통을 연상시키는 쉐마와 성공회의 전통적 찬송과 현대의 가스펠송을 혼합하여 찬양하며, 예배 중 사용되는 찬양은 말씀의 주제나 절기와 일치하는 것을 선정한다. 박종환, “이머징교회 탐방기”, 목회와 신학(2008년 6월), p. 93.
결국 이머징 예배의 찬양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하여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음악을 사용하며, 회중 전체가 찬양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 찬양대나 찬양단의 위치가 조정된다는 특징이 있다.
3. 기도
이머징 예배에서 기도는 특정한 시간에 정해진 시간동안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배 중 임의적으로 빈번하게 기도를 위해 잠깐 멈추는 시간을 갖게 된다.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기도할 수 있으며, 특별한 순서에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전반에 걸쳐 기도가 이루어진다. 기도 처소는 주로 예배실 가장 자리에 있는 테이블이 마련된 곳인데, 예배실 주변을 거닐면서 그곳에서 기도로 서로 교제를 나눈다.
기도에 있어서도 다감각적 예배의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하나님을 향한 메마르고 갈급한 상태를 느끼게 하기 위해 모래를 담은 그릇을 준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그것을 휘저으면서 말씀을 상기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닛사의 그레고리에피스코플교회’에서는 설교 전후로 침묵의 시간이 주어지며, 설교 후 침묵의 시간 뒤에는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자신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광고 후 주기도를 드린 뒤에는 그 자리에서 요청받은 중보기도의 제목에 따라 함께 기도한다. Ibid., p. 95.
4. 설교
이머징 교회마다 설교가 행해지는 형태는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형태의 설교는 이머징 예배 안에서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머징 예배에는 아예 설교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 대신 반복 재생되는 음악을 배경으로, 각자 창의적인 처소로 가서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머징 예배에는 적게는 15분에서 많게는 50분 이상 설교하는 설교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머징 예배의 설교자는 강단에 올라 말씀을 선포하는 선포자가 아니다. 강단에 오르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설교를 한다. 설교 중 예술작품, 소품, 상징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사용되기도 하며, 예배 모임에서 한 사람에 의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설교를 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하기도 한다. 예배의 중심이 설교자나 사람이 아닌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이다.
이머징 예배의 설교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은데, 한편의 긴 설교가 아니라 설교 중간에 기도문을 낭독하기도 하며, 설교 시간에 사람들이 미술실로 옮겨가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 작품을 만드는 것이 허용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머징 예배의 설교는 “강연식 설교가 아닌 상징과 경험, 이미지가 어우러진 유기체적 설교” 김선일, “이머징교회 비판, 과연 온당한가: 카슨의 이머징 교회 비판을 중심으로”, 목회와 신학(2008년 6월), p. 64.
라고 말한 김선일의 주장은 옳다.
전통적인 설교의 형태를 파괴하는 것이 성경의 권위에 대한 불신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킴볼은 “그것이 우리가 성경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르침과 설교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의 다른 형태들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성경은 전혀 무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Ibid., p. 127.
지금은 과거 빌리 그레함(Billy Graham) 목사가 ‘성경은 말씀하십니다’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할 때와는 다르다. 당시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상당수가 성경을 여러 책 중의 하나로 취급한다. 이런 입장에서 동일한 언어와 방법으로 다른 회중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설교와 그것의 전달 과정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킴볼은 근대교회와 다가오는 교회 사이에서 설교의 가치기준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210.
이것은 대상을 고려하여 설교의 접근법을 달리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근대교회
다가오는 교회
설교가 예배의 초점
설교는 예배의 경험의 한 부분
설교자는 성경적 진리의 분배자
설교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가르친다.
진리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을 강조
진리가 누구인지 설명하고 경험을 강조
시작점은 유대교 기독교적 관점
에덴동산, 창조 이야기, 인간의 원죄
용어가 명확할 필요가 없다.
용어의 재정립, 재정의
성경의 메시지는 주로 단어로 전달된다.
단어, 비쥬얼, 아트, 침묵, 증언, 이야기
예배에서 설교는 한주 동안 성경을 배우는 최고의 방법
용기를 주는 동기 부여자
설교는 예배 시간동안 교회당 안에서 행해진다.
설교가 교회 밖에서 일어난다.
그는 바울의 예를 들면서 그가 고린도에 갔을 때에는 우상숭배에 대하여 말하지만, 아덴에 갔을 때에는 그들의 문화나 철학을 근거로 천지의 창조주와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레데 출신의 시인의 말을 언급하여 복음에 접근한다. 바울은 다른 두 청중에게 성경의 세계관과 지식에 기초한 다른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접근하였다. Ibid., p. 212.
이 같은 주장 외에도, 그들은 설교자가 청중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나, Ibid.
다가오는 세대는 신학에 깊은 목마름을 가지고 있음으로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계시해야 한다는 것과 Ibid., p. 214.
데오타픽컬(Theotopical) 설교를 하라는 권면이 있다. 여기의 데오타픽컬 설교란 주해설교와 주제설교를 혼합한 형태로 ‘하나님 중심제목의 설교’를 말한다. Ibid., p. 217.
성경에 근거한 메시지를 얻기 위해 주해적인 작업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성경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분명한 적용점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의 큰 그림을 가지고 세계를 보게 한다. 이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관점을 형성해주는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자는 것이다.
이들이 자주하는 메시지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천국의 삶’,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 ‘성의 문제’, ‘결혼과 가족관계’, ‘지옥’, ‘성경의 신뢰성’ 그리고 ‘영성’에 관한 것이다. Ibid., pp. 218-221.
5. 성찬
닛사의 그레고리에피크소플교회에서는 성만찬이 예배 말미에 행해진다. 성만찬 테이블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이 춤을 추며 회전한다. 인도자가 성만찬 감사의 기도(Anaphora)를 드리는 동안 회중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고대의 노래를 부른다. 성만찬에서 빵을 자르고 나누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서로 나누는 것을 상징하며, 성만찬 예식이 끝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만찬으로 이어진다. 이 만찬이 끝난 후에야 주일 예배의 대단원이 내려진다. 성만찬이 교회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중심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박종환, op. cit., p. 93.
킴볼은 종교개혁 이전에 성찬식이 예배의 중심이었음을 언급하며, 오늘날 많은 현대교회에서 성찬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이로움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념하는 것을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비판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35.
이머징 예배에 있어서 성찬식의 비중은 대단히 높다. 기존의 예배가 설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이머징 예배의 중심은 성찬식이다. 대부분의 이머징 교회는 성찬식을 매주 거행한다.
박종환은 이머징 예배의 성찬식을 통해 예배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될 뿐 아니라 성찬을 통해 온 인류를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동참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다감각적 예배의 절정이 성찬식임을 지적하며, 성찬에서 보고, 듣고, 마시고, 맛보고, 향기를 맡고, 입으로 씹는 육체적인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보시고 느끼셨던 것을 예배자가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박종환, “몸, 감성, 그리고 예배: 새로운 예배의 필요성에 대하여”, op. cit., p. 85.
이상에서 본대로, 과거와 미래의 교량적 역할로서의 이머징 예배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와 구도자 중심 예배의 한계적 상황에서 이머징 세대에 대한 대안적 예배형태로 출발한다. 이 예배가 갖는 신학적 특징은 고대 및 중세교회의 문화와 교리를 수용하며 교회를 역동적이고 사명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다감감적 현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체험과 신비주의적 영성을 강조하고 아울러 설교를 선포가 아닌 초청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예배의 요소 중 회중찬송은 고대음악이나 민속음악을 유입했으며 때로는 유대교와 성공회의 음악과 가스펠을 혼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찬양대는 회중의 시선이 집중되지 않도록 조치한다. 또한 기도는 특정한 시간의 고정된 기도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유동적 기도를 드리며 고대와 현대를 골고루 융합한다. 설교는 상징과 경험, 이미지가 어우러진 유기체적 설교와 데오타픽컬 설교를 주장한다. 춤과 고대의 노래로 시작되는 성찬은 이머징 예배의 중심이다. 이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일치된다는 것이다.
Ⅲ. 이머징 예배에 대한 비판
킴볼의 이머징 예배에 대한 체계적이며 본격적인 비판은 카슨에 의해 이루어졌다. 카슨은 몇 가지 사항을 들어 킴볼과 그의 동료들의 예배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모더니즘을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하여 이머징 교회의 포스트모더니즘 프렌드리라는 기치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모호한 개념아래 모든 사회, 문화적 변동을 도매급으로 묶어서 진단하려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카슨이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해석이 올바른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는 멕라렌(B. McLaren)과 찰크(S. Chalke)의 두 저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면밀하게 비판한다. 그들의 성경해석이 자유주의적 해석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의 핵심으로부터 표류하고 있다고 한다.’ D. A. Carson, op. cit., pp. 80-187.
본인은 카슨과 다른 신학자들의 비판을 통합하여 아래의 네 가지로 종합 비판한다.
A. 다원주의와의 융합
이머징 교회는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 이 세대는 모더니즘의 시대를 지나 포스트모더니즘을 살고 있는데, 교회는 모더니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이머징 교회를 출현하게 했다.
이러한 반발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머징 예배에서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행위들은, 다원주의 사고방식에 물든 현대인들이 거부감 없이 신앙행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고안된 것들이다. 그래서 권위나 형식을 거부하는 이머징 세대의 특성을 고려하여 특정한 순서나 인도자, 심지어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고 예배자의 영성을 고취시킬 수 있는 최선의 예배행위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이머징 예배의 주된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는 예배에는 예배 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의 목적보다는, 개개인의 취향과 종교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다원주의에 입각한 이머징 예배는 예배행위의 목적과 초점이 예배모임에 참여하는 예배자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전통적인 예배나 구도자 중심 예배가 설교자나 찬양인도자 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비판하고, 이머징 예배의 중심은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19.
그러나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이머징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예배를 드리는 각 사람의 영성에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적인 설교를 거부하고, 예배 중에 자유스럽게 각자의 영성발전에 최선의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이머징 교회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모더니즘에서 탈피하지 못한 교회의 모습을 벗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든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구도자 중심 예배 못지않게 예배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킴볼이 말한 대로 예배의 초점이 설교자에게 맞춰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예배의 초점이 예배에 참여하는 개개인에게 맞춰지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예배의 중심은 오직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께 있어야 하며, 예배에 참여하는 예배자의 목적 또한 자기 자신의 종교성 향상이 아닌, 엄위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경배에 있어야 한다. 이머징 예배모임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겸손한 성도의 모습보다는, 신비에 파묻혀 스스로 초월적인 존재가 되고자 명상하는 이도교의 모습이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카슨(D. A. Carson)은 우리가 이머징 교회 운동에 대해 평가할 때에, 이머징 교회 운동이 희망 없는 절충의 위험을 야기하는 문화(포스트모더니즘)에 잠식될 위험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D. A. Carson, op. cit., p. 44.
물론 이머징 예배 운동가들이나,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머징 예배는 종교다원주의가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을 예배에 차용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다원주의에 이머징 예배가 잠식될 위험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웰스(David Wells)의 주장과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나님의 진리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에 불과하며, 그러한 착각이 결국 기독교가 세속주의에 물들게 된 원인이 되지는 않았는지 냉정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David Wells, op. cit., p. 329.
이머징 예배가 비록 전통교리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에 있어서 전통적인 예배나 구도자 예배보다는 개인의 주관과 감정, 자아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웰스는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객관으로부터 주관으로의 이런 이행이, 자아에 대한 새로운 집착과 매료가 성경적이며 역사적인 신앙에 대해 항상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지적한다. Ibid., p. 215.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현대성이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재 진행형인 사상이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가 양립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웰스의 결론이 옳은지, 아니면 절충을 시도한 이머징 예배 운동가들의 견해가 옳은지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객관적인 태도로의 접근이, 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B. 심화되는 소비자 지향성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전인격을 통해 역사하시며, 그 전인격에는 경험과 감각을 통한 영적각성이 포함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논할 때 다른 종교와 뚜렷이 구분되는 요소는, 기독교는 성경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근본적인 토대로 한다는 점이다. 신자의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오직 성경이며, 경험과 감성은 성경의 검증을 거친 후에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자의적인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머징 예배는 모더니즘의 틀에 갇힌 교회가 개인의 경험과 감성을 한편으로 치워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현대의 교회 안에 사라진 다양한 상징이나 예술작품을 동원하고, 기도를 돕도록 향이나 모래와 같은,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물질들을 사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머징 예배가 개인의 경험과 감성을 촉진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이러한 여러 도구들이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말씀에 의존하지 않고 감각에 의존하는 신앙은, 더 깊은 신앙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더 자극적인 도구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영성 고취를 위해, 그것에 도움이 될 만한 더 나은 상징물, 더 수준 높은 예술 작품, 더 아늑한 분위기와 더 좋은 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머징 예배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견대로 이머징 예배가 현 시대를 감당할 예배의 대안이 되어 많은 교회에서 이머징 예배를 시도하게 된다면, 예배자들은 각기 다른 다양한 종류의 이머징 예배 가운데 자신의 욕구와 기대를 채워 줄 예배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비난하였던, 구도자 중심 예배가 사명적 교회가 아닌 소비자 지향적 교회가 되었다는 그 비난을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다. 오히려 구도자 중심 예배는 예배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토대가 마련된 반면에, 이머징 예배에서는 예배자 개개인의 영성과 취향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화된 소비자지향적인 예배가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머징 예배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유기성에 대한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킴볼은 이머징 예배가 철저한 계획과 준비 가운데 유기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111.
그러나 형식이나 장소의 제한 없이 진행되는 이머징 예배가 유기적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인정하듯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치밀한 계산과 많은 재정을 동원하게 기획하여야 할 것이다. 종교성을 고취하기 위한 인테리어를 비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다양한 예배 행위들이 자유롭지만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그들이 비판한 구도자 중심 예배보다 더 많은 전문적인 인력과 시간과 재력을 쏟아 부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야 그들이 주장하는 유기적인 예배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이 그토록 비난하는 구도자 중심 예배의 인위성의 문제가 그들에게서도 똑같이 도출될 것이다.
C. 상실된 성경의 권위
이머징 예배를 지지하는 박종환 교수는 “설교를 강조하는 개혁교회 전통은 예배를 통해서 설교자가 우상화 되거나 개인의 사상이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명분으로 선포되는 위험성을 잉태하였다.” 라고 말한다. 박종환, op. cit., p. 86.
이것은 이머징 예배에서 설교의 비중이 축소된 이유를 말하기 위함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설교방식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것이다.
킴볼은 이머징 예배에서 설교가 파격적인 방식으로 행해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근대의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영향을 받았다. ‘사실이 신념에 영향을 미치고 신념이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머징 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변화되었다. ‘경험이 신념에 영향을 미치고 신념이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Dan Kimball, The Emerging Church: Vintage Christianity for New Generations, op. cit., p. 225.
현 시대가 객관적으로 제시된 명제보다 개인의 경험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대로 선포적인 설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를 동원하여 ‘경험할 수 있는’ 말씀으로 청중을 초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킴볼은 “우리는 진리의 명제와 진리의 경험에 있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Ibid., p. 226.
그러나 교회 설교에 있어서 객관적 명제의 선포와 경험의 균형이, 경험 쪽으로 치우친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웰스는 현대의 복음주의자들이 신앙의 확신을 성경 가르침의 객관적 진실성이라는 맥락에서가 아니라 주관적 체험의 효과라는 맥락에서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객관적 진리의 가치는 희생되었음을 지적한다. David Wells, op. cit., p. 259.
설교의 형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는 모르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신학과 교리는 상실되고 인본주의적이고 실용적인 ‘경험’들로 이미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이머징 예배에서의 설교가 명제와 경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들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고는 하지만, 신학과 교리를 한편으로 밀어놓고 삶으로의 적용을 위주로 하는 성경해석은 경험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카슨은 이머징 교회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멕라렌(Brian McLaren)과 스티브 찰크(Steve Chalk)의 저서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성경 해석이 현실에서의 삶에 지나친 강조점을 둔 나머지, 성경이 정확히 말하고자 하는 바를 포기한 채 복음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음을 지적한다. D. A. Carson, op. cit., p. 187.
킴볼 스스로 밝히고 있는 대로 설교가 아예 사라져버린 이머징 예배가 있듯이, 비록 지금은 설교를 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머징 예배 안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설교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계시된 말씀보다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영상매체의 발달로 텍스트보다 이미지에 익숙한 이머징 세대는, 개인의 경험과 감정의 의존성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객관적 진리인 성경을 외면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드라마와 영상물이 전통적 설교를 대신한 구도자 중심 예배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 문제점이었다.
종교개혁 시대에 개혁자들이 가톨릭의 다양한 예전과 성상을 제거한 이유도 이와 같다. 킴볼은 자신들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며, 절대적 진리인 성경의 메시지를 다양한 매체를 동원하여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험과 감정을 중시하는 이머징 예배의 특성상 교회 역사를 통해 지켜온 기독교 교리의 영향력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인간의 경험과 영성의 고양을 위한 다양한 물건들로 채워질 위험성은 대단히 높다.
또한 예전과 사물을 통해 이머징 예배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신비와 영성이 아무리 고차원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결코 기록된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과 비견될 수는 없다. 웰스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어떤 지식, 어떤 앎이라 하더라도, 기록된 성경 말씀의 내용을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에 근거를 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대한 체험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David Wells, op. cit., p. 259.
카슨의 말대로 이머징 예배를 주장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된 예배를 드린다는 입장은 매우 칭찬할 만 하다. 그러나 상술한대로, 다원주의와의 연합, 소비자 지향성이 강한 예배를 구사했다는 점과 상실된 성경의 권위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Ⅳ. 결론적 제언
웰스는 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려는 다양한 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최근에 제시된 교회 개혁 방안들은 거의 기분전환에 불과하다. 사실 그런 방안들은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맞서야 하는 과제에서 교회의 관심을 빼앗는 경향이 있다. 그런 방안들은 교회의 약점이 너무 상투적인 예배 유형, 너무 지루한 음악, 너무 미비한 프로그램, 너무 부족한 주차 공간, 너무 훈계적인 설교 등에 있다고 충고한다.” Ibid., p. 332.
이머징 예배 운동이 지금 교회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현 세대를 장악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면밀한 연구에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가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예배 순서나 형식, 공간의 변화에 있지 않다는 것이 웰스의 주장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이 개개인의 영성이나 신비로운 분위기가 아니라, 인본주의를 거부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웰스는 신학 없이는 신앙도, 믿음도, 기독교적 소망도 없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교회가 신학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상실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약해졌으며, 부주의하게도 현대 문화의 감성과 그리스도의 진리를 맞바꾸어 버린 현 시대의 교회 문화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D. Wells, No Place for Truth, 김재영 옮김, 신학실종(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6), pp. 320-321.
그리고 교회가 자신의 실험을 거부하지 못하고 실행한 일을 회개하지 못하면, 결국 복음주의 영성이 뉴에이지 영성과 구별될 수 없을 때가 곧 닥쳐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D. Wells, God in the Wasteland, op. cit., p. 328.
웰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은, 이머징 교회 운동과 같은 신비와 영성의 회복 운동이 교회역사에서 생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 독일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경건주의 운동에서 이머징 운동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경건주의가 반발한 정통주의는 이 객관적 진리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것을 개인의 경험과 분리시키는 경향이었다. 정통주의는 순수한 교리와 성경의 영감성을 강조하였으며, 교육적이며 지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 이에 반하여 경건주의는 루터가 말하는 개인적인 신앙 경험을 다시금 앞세우며 감정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경건주의 운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경건주의가 신학적 토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며, 왜곡된 교회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재, 기독교교회사(서울: 이레서원, 2001), p. 559.
만약 이머징 교회 운동이 객관적 진리에 근거한 신학 위에 견고히 서지 못하고 개인의 경험 위주의 예배관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구도자 중심 예배가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그 한계에 도달한 것처럼 이머징 교회 운동 또한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설교를 어떻게 행하고 예배 순서가 어떻게 진행되며, 예배장소의 분위기가 어떻게 조성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 중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예배자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기를 얼마나 사모하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에 대한 하나님 중심적인 사상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어떠한 예배 개혁 운동도 그 영향력을 지속할 수 없으며,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침식될 위험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배의 전쟁’ 시대에서 무분별한 예배 구상이나 성경과 전통, 정통을 무시한 예배 기획은 그 시대의 기호에 맞는 하나의 형태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성경적 예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대적 상황을 들어, 성경을 그것에 대입하여 합리화시키기 보다는, 현대적 문화를 성경에 대입하여 검증하고, 그것에 맞추어 나가려고 해야 한다. 이머징 예배가 시대적 조류에 따라 한때 유행하는 현대예배의 한 형태로 끝나고 말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해 나갈지는 두고 봐야 할 사실이나, 염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음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카슨과 웰스의 신학적 비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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