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의 견해들 | 종말론
1. 세대주의자들의 ‘천년왕국설’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
성경에 대한 지나친 문자적 해석들. 구약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문자적으로 나중에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가랴 14:16ff의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는 말씀을 인용해 나중에 온 세상 나라가 와서 실제적으로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데로 해석했는가가 중요하다. ‘비를 내리지 않으리라’ 만약 한국 사람이 이 때 이스라엘의 초막절을 지키려 가지 않으면 한국에 비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성경에는 천년왕국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말방울도 성결’ 초막절을 지키러 온 사람들이 제사지낼 제단이 모자라므로 예루살렘 성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이 됨.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않다’ (출애굽 때 전멸을 명하심) 사람의 손을 통한 벌을 내리심. 이스라엘이 성취하지 못한 일을 성취하고 모두 다 하나님 백성이 되고 모든 것이 다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이 왔을 때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시 제사가 회복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제사장이 중요하다. 이 일의 중심은 이스라엘인들이므로 천년왕국의 이스라엘 사람이 1차 시민들. 2차 시민들은 이방인(교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세대주의자들은 두 백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은밀하게 공중으로 재림하고 성도들이 휴거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세상에 남겨진다. 7년 대환난이 일어난다. 신실한 자들은 하늘에서 결혼잔치(그러나 성경은 신실한 성도들은 많은 환난을 받을 것을 말한다)를 한다고 한다. 물론 일부에도 7년 중간에 휴거설(중간 휴거설: 전 삼년 반, 후 삼년 반)도 있다. 한국교회가 세대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7년이 끝나면 예수님이 성도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공개적인 재림) 휴거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한다고 생각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과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은 어떻게 분별하는 것을 마 25:31ff 말씀으로 양과 염소의 말씀으로 판단한다. 진정한 성도들은 하늘로 올라가고 3년 반의 시기를 선포하고 다닌 유대인들에게 잘해준 사람들이 천년왕국에 참여한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사단이 잠깐 놓여서 반역한다. 반역이 끝나면 영원한 나라가 온다. 이것이 세대주의적 천년왕국이다. 세대주의 천년왕국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데 19세기부터 세계교회에 영향력을 준다(달라스신학교, 칼봇신학교, 무디바이블컬리지-3대 세대주의 학교). 좋은 복음주의자들로 형제로 여겨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의 입장에 충실하지 않다. 조지레드, 릴벳 교수님 같은 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세대주의 입장을 가지고 성장했지만 후에 세대주의에서 돌아섰다. 세대주의자이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맥아더 교수님)이다. 다른 것에서는 성경적(존경할 만-세대주의는 빼놓고) 입장을 가지고 있다.
2. 다음의 세 가지 입장은 모두 존중하면서 같이 있을 수 있다(분리되어 나가면 안 된다.
1) 역사적 전천년설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무천년 견해를 가진 사람들로 인해 나가서 훼이스 신학교를 만들어서 역사적전천년설을 가져야만 성경적이다고 함 -무서운 일.
박형룡, 박윤선 - 이렇게 말하지 않고 역사적 전천년설이 아마도 옳은 것 같다고 한 입장.
요한 계시록의 계시가 앞으로 되어 질 일을 사도 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9장의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승리의 상징이 나타난다(백마). 사람들이 19절에 사탄의 삼위일체가 심판받고 산 채로 지옥(유황불은 상징)에 던져진다. 지옥은 유황불이 아니고 우리는 지옥의 원천은 우리가 알 수 없고 다만 영원하다. 사단은 지옥에서 벌 받고 지옥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검으로 죽으매…’ 이 세상의 심판 20장에 연결되어 ‘용을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천년이 있는 동안 사단은 결박당한다. ‘무저갱에 던지고 인봉하여 천년이 차기까지 동봉’ 천년동안 무저갱에 갇힌다(무저갱을 끝이 없는 갱도).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다시 전쟁이 시작(계 20:4)
순교자들이 통치하는 권세를 받는다(계20:4: ‘…심판하는 권세’ . ‘살아서’ 중요한 말. 천년동안 왕 노릇한다. 천년왕국, 사단은 결박되고 순교자들로 대표되는 자들은 왕 노릇하는 것. ‘살아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므로 그때 1차 부활이 있고 이들이 온 세상을 천년동안 다스린다. 그러나 천년이 찬 다음에 부활하는 사람들과 1차 부활 때 부활하지 않은 사람들의 문제가 제일 큰 난점(교수님의 난점)이다. 첫째 부활한 사람들은 부활체로 살고 있음. 그런데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부활하지 않은 사람들은 중간에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입장을 믿는 이들은 성경이 그렇다고 하므로 믿는다. 이들의 어려움은 계 20:7을 보면 전부 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다가 천년이 차면 사탄이 풀려나서 미혹하므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통치에서 살다가 사탄의 편에 붙어서 나타난다. 이렇게 되는 일이 난점이다. 이들은 ‘이것이 죄인의 본질이다’고 말한다. 곡과 마곡의 전투 후에 정말 성도들에게 어려운 일이 나타난다. 계 20:9을 보면 진짜 성도들은 진짜 어려움을 당해서 서 있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다른 것들을 다 죽인다. 하나님이 친히 소멸시키신다. 이 때 무저갱에 있다가 풀려난 사탄은 지옥으로 간다.
2) 무천년설 (요한 계시록을 독특한 구조로 봄 - 점진적 병행법)
요한 계시록 1-3장은 서론(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4장-7장이 한라운드로 앞으로 나올 무 천년설의 구조를 말함(6:15~ 마치 심판이 임하는 것처럼 말함). 8장부터는 다시 처음부터 돌아가서 11:18에 ‘죽은 자들을 심판’ 최후의 심판이 나옴. 19장에서만 최후의 심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라운드 별로 나온다. 12~14장까지 초림 때부터 재림까지의 상황을 다시 말한다. 14:14~15 ‘이한 낫’ 최후의 심판을 하심. ‘낫을 휘둘러서 거두(라X)소서’ 다시 15장~16까지 반복. 17장부터 다시 시작해서 재림을 언급. 20장은 다시 처음으로 감. 21~22장이 주어짐. 이러한 요한 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어떤 천년설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다.
무천년설은 점진적 20장부터 초림이 다시 시작하므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사단을 잡는 일. 하나님 나라가 오므로 사탄의 세력이 온 세상에 출몰하지 못하도록 함. 그렇다고 해서 전혀 활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님. 칼빈은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이후에는 무저갱으로부터 긴 쇠사슬을 늘어뜨리고 다니고 있다. 천로역정에서 사자가 묶여있는 것을 말한다. 천로역정은 알레고리의 전형. 교회에서는 천로역정 강해가 아닌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단을 결박되어 있다. 사단의 활동이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천년은 초림부터 교회시대가 천년왕국이다. 그러므로 꼭 천년이 문자적인 것이 아니고 상징적으로 보아야 한다. 교회가 시작된 지 2천년이 지나도 아직 예수님이 안 오셨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설이 달라진다.
요한계시록을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일로 보는 입장은 역사적 전천년설로 천년동안 사단의 활동이 전혀 없다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입장.
3) 후천년설
성경의 천년이라는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무천년설의 입장을 취하면서 (그리스도 통치의 전기간이 천년왕국) 이 세상이 거의 기독교적 원리에서 차게 될 때, 온 세상이 거의 기독교화된 세상이 천년왕국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을 기다린다. 이 세상은 점점 좋아질 것이고, 청교도들이 가진 입장이다. 천년왕국의 때가 차면(기독교화 된 세상이 되면) 그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대 환난은 사단이 잠깐 놓일 때 있다. 그러나 후천년주의자 중에 일부 자유주의자 견해가 나오는데, 천년왕국의 대망으로 이 세상이 낙관적으로 진보될 것이라는 것이다(받아들일 수 없다).
좋은 후천년주의자로 로레인 베트너(칼빈주의 예정론)은 1)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2) 교회를 해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마 28:18-20)은 우리 가운데 효과를 발휘해서 이 세상을 기독교화 할 것을 믿는다. 누룩 비유를 강조한다.
세대주의와 후천년 자유주의만 배제하고 나머지 세 가지 의견은 어느 것이 옳은지 주님이 오셔야 안다. 세 가지 의견 중 하나를 가질 수 있다. 재미있게 토론을 할 수 있다.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은 ‘살아서(계 20:4)’가 중생 시의 영적인 부활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천년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이미 영적으로 살아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왕 노릇(왕 같은 제사장)하는 자로 잘 살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죽었을 때 하늘에서 주님과 왕 노릇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하므로 두 가지 입장이 나타난다.
이승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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