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자백' 용어 혼용의 배경
"회개"와 "자백"이 구별되지 못하고 쓰여진 것은 중세의 타락한 기독교의 전통과 육신적 타락 행위에 대한 "방향전환"으로서의 "회개"를 의미하는 일반 용법이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이 일반 용법으로서의 "회개( )"를 전용하여 왔으나 그 결과로 회개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 교인들이 처음 회개를 통해 받은 영적 사죄에 의한 구원의 감격을 잊어버리고 구원에 대한 확신마저 잃게 되어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죄 자백을 통한 성화구원을 영의 구원과 구별하지 못하는 혼선으로 육의 죄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기독교 복음침례회(소위 구원파), 권신찬이나 유병언, 박옥수등과 같은 이단자들의 주장 즉 "회개와 자백이 동의어"라고 하며 "롬 4:25; 히 10:12,14,17; 요 5:24 등의 증거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온전케 하였으므로 죄 지어도 구원과 관계없는 의인"이라고 하여 "죄를 지어도 구원과는 관계없다"고 하고, "믿음뿐임으로 행함을 주장한 야고보서는 잘못"이라고 "구원되고 한 번 깨달으면 다시 범죄도 없고 죄지어도 죄짓지 않고 생활속에서 짓는 죄는 죄가 되지 않는다." "고전 5:1,5와 같이 죄지어도 상관없이 구원되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구원받았다"고 구원을 가장 많이 주장 강조하면서도 구원받기는커녕 구원의 의미조차 모르는 그들의 잘 못된 구원관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하거나 성화되지 못하게 하는 이단자들에게 많은 신자들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이제 "자백(호모로게오 )"이라는 구별된 용어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결코 하찮은 일이거나 시시콜콜 까다롭게 따지려는 의도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 중세 기독교의 타락
A.D 445년 로마의 주교 Leo가 자칭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언하고 "천국 열쇠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인 교황"이라고 선언한 이후 "회개"를 "고해성사" 즉 "직고(메타노에오 -자백)"의 개념에 동화시켰다.
그들의 고해성사는
1) 개인적인 과실을 슬퍼하는 죄(sins)에 대한 비애로 통회와
2) 신부(神父)에게 고백하는 방법으로 고해를 받는 자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용서를 선언하므로 죄(sins)가 청산된다는 명고와
3) 죄인이 행동의 회개로 고통스럽고 불쾌한 일에 대한 명령을 인내로 행하여 용서받는 보속이 있는데 이것은 혹 육의 죄에 대한 억제는 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이것이 "회개"도 아닐 뿐만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자백"도 아니기 때문에 영의 죄는 물론 육의 죄 또한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죄(sin)에 대해 바로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죄(sins)를 사함 받는 방법(요일 1:9)조차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위요 변질된 이단적인 방법일 뿐이다.
로마 카톨릭의 죄관은 원죄와 본죄로 나누고 본죄는 대죄와 소죄로 나누는데 모든 사람이 다 모태에서부터 원죄가 있으나 성모 마리아만 원죄가 없다고 하며, 대죄는 계명이 중한 줄 밝히 알고도 온전한 자유로 범하는 죄이며 그 결과 은총과 모든 공로를 다 잃고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며, 소죄는 계명을 중대치 않은 줄로 알고 자유로 범하는 죄로 현세의 고통과 후세의 연옥의 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로마 카톨릭의 모든 죄악의 근원을 일곱 가지 즉 교만, 인색, 미색, 분노, 탐욕, 질투, 게으름으로 나누고"...성인 성녀께 고백하오니 과연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나이다. 내 탓이요(가슴을 친다), 내 탓이요(가슴을 친다), 내 큰 탓이로소이다(가슴을 친다)"라고 하며 고백성사 때의 기도는 "죄인에게 강복하소서. 나의 범한 모든 죄를 전능하신 천주와 신부께 고백합니다..."
로마 카톨릭의 죄는 성경이 말하는 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행위의 죄(sins)가 연옥이나 지옥에 보내지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를 믿어도 대죄를 짓거나 소죄를 지으면 지옥과 연옥에 언제나 가게 되어 있어 예수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구원을 위해서 예수를 믿을 필요조차 없다.
모든 사람이 다 원죄가 있으나 성모 마리아만이 원죄가 없으며 본죄는 대죄와 소죄로 나누고 대죄란 계명이 중한 줄 밝히 알고도 온전한 자유로 범하는 죄로 그 결과 은총과 모든 공로를 다 잃어버리고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며 소죄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이나 험담, 약간 술에 취하거나 과식, 값싼 물건 등을 훔치는 것 등으로 천주를 사랑하는 열정이 점점 줄어들고 차차 대죄에까지 빠지게 되기 쉽고 또한 현세의 고통과 후세의 연옥의 벌을 받게 된다는 것 이와 같이 카톨릭 신자들이 행위로 받는 구원에 메어 달려 불안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다.
실재로 이런 사상 때문에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사회 봉사단체에서 개신교인에 비해 훨씬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자원하여 기쁨으로 봉사한다기보다 선행이 구원받는 조건이라는 행위 구원에 메어 달려 봉사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중세의 타락한 로마 카톨릭의 주장이 온전히 개혁되지 못한 채 아직도 개혁 교회의 교의와 신앙의 내면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죄를 자백하는 것(사 32:5; 51:3,4; 눅 15:21; 18:13; 요일 1:9)과 사람에게 저지른 과오에 대한 보상(눅 19:8)등은 회개의 열매들이지 그것들이 회개 자체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회개하기 위하여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회개한다면 구원을 받는다(we are not saved for repenting but if we repent). 회개란 하나님께 돌린 하나의 만족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구원받기 이전에 취해야 할 우리의 마음 상태이다.
회개는 이행해야 할 하나의 "행위"로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아담의 죄(단수)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단수)아래 모든 사람이 갇히게 되었는데(롬 5:12; 갈 3:22) 그 죄는 죄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의 교훈에 의하면 "믿지 않는 죄(단수)" 즉 "불 신앙의 죄"로 이는 믿음으로 해결되는 "영의 죄"이다. 그 이유는 믿음은 영의 일이며 믿음으로 영이 거듭나기 때문이다(요 16:9).
그러나 죄란 "불 신앙의 죄"인 영의 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죄와 상관된 용어만 해도 1,100종류나 되는데 이 죄들은 육신의 죄들(갈 5:19-21; 행 2:38)이며 이 죄들은 하나님께 자백해야 하는데 중간에 어떤 사람도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고 자백해야 합니다. 로마 카톨릭의 고해성사는 사람에게 직고하므로 잘 못 되었다. 직고는 하나님께만 해야 한다(롬 14:12; 요일 1:9).
2. 방향 전환으로서의 회개의 일반 용법
회개(悔改)가 한자대로 뉘우칠 회(悔), 고칠 개(改)이니 죄를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 회개라고 하여, 방향 전환(方向轉換)이라는 용어에 대한 일반 용법을 육신적인 범죄 타락 행위에서 "뉘우치고 고치라"는 의미의 한자 개념(漢字槪念)이 한문 권 속에 길들여진 우리네 언어 정서가 아무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다보니 회개를 자백과 비슷한 의미로 착각하여 혼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성경이 한자 개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또한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회개는 삼위 하나님과 관계된 불 신앙적인 죄, 생명과 관계된 죄, 죄의 상징인 부채등의 청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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