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말씀의 은사에 대한 사단의 모조품
/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투시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언제 사용하는 것인지 모를 때에 우리들은 사단이 슬며시 내어놓는 투시의 은사라(사단의 것을 은사라고 말할 수 없는데 편의상 그렇게 지칭합니다)는 모조품에 속아서 현혹되게 됩니다. 자주 쓰는 말 가운데 “그 사람은 투시의 은사”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어디에 보아도 투시의 은사라는 말은 없습니다. 투시하는 것을 은사로 보지도 않습니다. 부흥회를 통하여 잘못 전하여 진 것이 투시의 은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투시의 은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잘못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옆에 이상한 투시의 은사라는 모조품을 놓아서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진정한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교회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도 사단의 전략입니다. "예수무당"되려고 하느냐? 라고 제가 처음에도 예언의 말씀을 전할 때 주위에서 저를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도 사단의 방해입니다. 마치 아기동자가 점을 치러 갔을 때애 쪽집게처럼 아는 것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같은 것처럼 혼돈하게 만드는 것도 사단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사의 본질과 하나님이 이 은사를 주시는 목적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면 은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개념을 갖고 있는 교회와 지도자들에 의하여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사용하지 못하고 묻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투시의 은사가 없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투시의 은사를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1) 우리의 생각과 마음, 중심을 다 아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 계시지 않습니다. 사단도 사실은 투시의 은사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단은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을 들여다 볼 수가 없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생각을 심어주거나 운명을 심어주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신접한 영이 갓과 므니(사 65:11)라는 신과 접하여서 그 신이 만들어준 운명을 읽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속을 깊이 들여다보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신접한 영에 사로잡힌 자일 것입니다. 신접한 영에 의하여 속을 다 들여다보는 것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다른 사람에 대하여 여러 형편과 사정, 앞 날에 대한 사역등 하나님이 알게 하시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신접한 영이나 갓과 므니라고 하는 귀신에 대하여 우리가 더 깊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갓과 므니라고 하는 귀신은 애굽에서 운명(fortune)을 만들어주는 귀신입니다. 곧 행운의 귀신...우리가 쉽게 표현할 때 운세가 어떻다드니, 팔자가 어떻다느니 라고 말할 때에 그 팔자를 지배하는 귀신입니다 이러한 귀신이 손금을 보는 자(fortune teller), 점성술을 통해 운명을 해설하는 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끔 "you are so lucky"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에 사용하는 luck을 제공하는 귀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이 말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예요. 하나님의 축복이 예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점치는 귀신에 대하여 이해하면 더 쉬어집니다...(영적무장 게시판에서 점치는 귀신에 대하여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척 개인적이고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십니다. 서로에 대하여 속속히 아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의 속을 마음대로 들여다보게 될 때에 인간관계는 쉽게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투시의 은사대신에 믿음의 은사를 허락해 주셔서 인간관계에서도 믿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남편과 아내의 속을 깊이 들여다본다고 한다면 하루도 사랑하며 살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기도를 부탁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신지 여쭈어 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 저는 그 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본인이 직접 기도하라고 해라”고 하시면서 그 분의 비밀과 사생활에 대한 것을 알려 주시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이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지 않았어도 저에게 말씀을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에는 “그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내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못하고 있다. 네가 가서 이 말을 전해 주고 그를 위로하라”고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저도 기도하지 않고 본인도 구하지 않았지만 절망과 아픔가운데 있는 성도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강권적으로 알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는 주님께서는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기도를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대언기도를 받으러 오는 분들 가운데에는 걱정을 많이 하면서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샅샅이 다 알게 하시면 어떻게 하나 염려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을 가리우시고 어떤 것은 드러내어서 알게 하시는데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사생활을 고발하는 것이 대언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게하시는 부분만 알게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며 우리의 사생활을 존중해주십니다..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남에게 숨기고 싶은 많은 비밀들이 있으며 감정의 은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에 대하여 속속히 안다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격이 그러한 비밀들을 다룰 수 있는 인격이 되지 못함을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존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사생활을 알게 될 때에 우리들은 이것을 수다 거리로 삼아서 남에게 전하기 십상이고 오히려 서로에게 성처만 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것도 어떻게 인격적으로 소화하고 다루어갈지에 대하여 우리는 훈련이 필요하며 겸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것도 훈련시켜주셔서 어떻게 다루어나갈지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르도록 주신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1) 그것은 서로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하신 것이며 (2) 미래를 알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 믿음이라는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부족한 우리들을 깊이 생각하시어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가끔 부흥회를 할 때에 어떤 부흥사가 헌금봉투를 읽으면서 그 가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고 공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그것은 투시의 은사가 아니고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투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식으로 그 가정의 사정을 아는 것입니다. 그 봉투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보고 알게 하시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을 공개하는 것은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경우에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주셔서 지혜롭게 그 본인이 알게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렇게 헌금 봉투를 읽어줌으로 더 많은 헌금을 내도록 유도한다는 것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사용하는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식의 말씀을 주실 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주실 때에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필요할 때에 주십니다. 하루 종일 남의 사정을 족집게처럼 알아내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고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적인 동기로 이 은사를 사용하여서는 안됩니다. 실리적인 동기로 이 은사를 사용하면 더욱 안 됩니다.
저는 미국 텍사스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어떤 젊은 여성과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 분은 이상한 습관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 또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매일 전화를 하는 것처럼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실제 인물인지도 모르면서 매일 대화를 합니다. 대화를 하다가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면 “곧 제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손님이 오셨어요”하고 전화 끊듯이 대화를 끊었다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속이 다 들여다보여서 괴롭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뼈만 있는 해골처럼 속속들이 다 보이는데 그 사람이 얼마나 더럽고 추하고 음란한 사람인지 다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여성은 이러한 일로 인하여 걱정이 되는 것은 이것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가 자신을 낳았을 때 하늘이 까맣게 되는 꿈을 꾸게 되었고 깨어보니 어떤 스님이 그 집에 와서 말하기를 “네가 딸을 낳을텐데 이름을 ○○이라고 짓도록 해라”하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그 스님이 말한 대로 이름을 ○○이라고 지었고 그 이후로 그 사건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나오게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이름을 지어준 스님과 이 증상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신접한 영, 곧 갓과 므니라는 영과 관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단정하는 것은 은사라는 것은 세우는 것이요, 강건하게 하는 것이지 두렵게 한다든지 현실을 떠난 일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이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이름에 얽혀 있는 신접한 영의 역사를 떠나도록 기도하라고 조언하였습니다.
이렇게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잘 사용하지 않을 때에 사단은 투시의 은사라는 모조품을 내어놓아 교인들이 다른 지혜를 따라가도록 유도합니다. 투시의 은사가 좋은 것처럼 미혹 당하는 것도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하여 안다는 것이 신기해 보이고 신령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이 어떤 것인지 바로 알지 못할 때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오해되고 사단에 의하여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점을 치러 가서 탄복을 한 적은 없으셨는지요? 쪽집게라고....성령의 은사와 기름 부으심 영성훈련은 신령한 것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성령의 은사, 기름 부으심, 천상의 체험 등을 배우시게 되는데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체험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이라 흥미롭고 쉽게 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깊이 알고 싶은 분들에게 권합니다.
출처: 주예수영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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