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영성,기도

[스크랩] 교회에서의 성령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 연구

수호천사1 2016. 2. 11. 09:10

교회에서의 성령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 연구

 

 

지도 현요한 교수

 

 

 

이 논문을 석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1998년 12월 3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박 상 길

 

박상길의 석사 학위 논문을 인준함.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8년 12월 3일

 

 

 

 

 

 

 

                     차        례

 

 

 

Ⅰ. 서 론..........................................................................................................1

 

  1. 연구의 동기 및 문제제기........................................................................1

 

  2. 연구의 범위와 방법.................................................................................2

 

 

 

Ⅱ.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4

 

  1. 우월성.......................................................................................................4

 

  2. 열등감.......................................................................................................5   

 

  3. 분파성.......................................................................................................6

 

  4. 귀족성.......................................................................................................7

 

  5. 거룩성.......................................................................................................7

 

 

 

Ⅲ. 고린도 교회의 성령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한 갈등....................9

 

  1. 고린도 교회의 현황.................................................................................9

 

  2.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은사의 종류......................................................10

 

   (1) 지혜의 말씀........................................................................................11

 

   (2) 지식의 말씀........................................................................................11

 

   (3) 믿음.....................................................................................................12

 

   (4) 신유.....................................................................................................13    

 

   (5) 능력.....................................................................................................14

 

   (6) 예언.....................................................................................................14

 

   (7) 영분별.................................................................................................15

 

   (8) 방언.....................................................................................................15

 

   (9) 방언통역 ............................................................................................16

 

  3. 고린도 교회의 성령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17

 

   (1) 신령한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었다.........................................18

 

   (2) 방언이 가장 나은 은사로 여겼다......................................................18

 

 

 

Ⅳ.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20

 

  1.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다...........................................20

 

  2. 성령의 은사는 성령이 주관하신다........................................................20

 

  3. 성령의 은사는 각각 다르며 비중도 차이도 있다................................21

 

  4.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목적이 있으므로 주어진다..............................22

 

 

 

Ⅴ. 은사와 교회 공동체.................................................................................24

 

 1.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다......................................................25

 

  2. 교회는 코이노니아가 본질이다.............................................................26

 

  3.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26

 

  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28

 

 

 

Ⅵ. 성령의 은사를 통한 교회 사역...............................................................31

 

  1. 은사와 직임............................................................................................31

 

   (1) 사도.....................................................................................................31

 

   (2) 예언자.................................................................................................33

 

   (3) 복음전도자..........................................................................................34

 

   (4) 목사.....................................................................................................34

 

   (5) 교사.....................................................................................................35

 

   (6) 선교사.................................................................................................36

 

   (7) 장로(감독, 다스리는 은사).................................................................36

 

   (8) 집사.....................................................................................................37

 

  2. 은사와 교회 성장...................................................................................37

 

   (1) 교회성장의 정의.................................................................................38

 

   (2) 은사를 통한 교회성장........................................................................38

 

  3. 은사와 선교............................................................................................40

 

  4. 은사와 섬김............................................................................................41

 

   (1) 교회 안에서의 봉사............................................................................41

 

   (2) 교회 밖에서의 봉사............................................................................44

 

 

 

Ⅶ. 성령 은사의 계발.....................................................................................47

 

  1. 성령 은사 계발의 필요성......................................................................47

 

  2.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는 방법...............................................................49

 

   (1) 먼저 교회는 성령은사의 활용의 장으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49

 

   (2) 기도로써 시작해야 한다....................................................................50

 

   (3)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50

 

   (4) 발견한 자기의 은사를 고유한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51

 

   (5) 받은 성령의 은사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51

 

   (6) 사용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 알아본다..............................................52

 

   (7)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52

 

   (8) 성령의 은사를 얻기 위해서 안수를 받는다......................................52

 

  3. 공동체 구현을 위한 성령의 은사활용..................................................53

 

 

 

 Ⅷ. 결 론.......................................................................................................55

 

 

 

 참고문헌........................................................................................................58

 

 

 

 

 

 Ⅰ. 서론

 

 

 

  1. 연구 동기 및 문제 제기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로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시고, 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시고 계획하시고, 그 일을 성취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성취해 나가신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은사를 받은 교회 공동체의 일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의 목적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그 은사를 개인의 유익과 목적을 달성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 있는 공동체 일원간에 갈등과 분쟁을 가져오게 된다. 또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자신은 거룩하고 대단한 영적 소유자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런 자들로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들이 영적 비교와 경쟁에 사로잡혀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자신이 받은 성령의 은사는 깨닫지 못하고, 받은 그 은사를 사장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신 목적과 이유가 다 있다. 그것을 발견해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고 만드신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을 섬기고 봉사는 일을 해야 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통해서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인데, 이 성령의 은사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각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교회 공동체의 덕과 일원들의 유익을 위해서 서로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에서 성령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교회 공동체의 덕과 유익을 위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2. 연구 방법과 범위

 

 

 

필자는 교회에서의 성령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 연구를 주제로 삼았다. 이 논문에서는 교회 공동체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잘못된 성령 은사의 이해로 인해 생기는 것과 그것으로 교회 공동체에 갈등을 고린도 교회에서 살펴보고 난 후,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 은사가 교회 공동체에서 어떤 기능들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은사를 어떻게 계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제 1 장 서론에서는 논문을 쓰게 된 동기와 문제 제기와 논문 연구 방법과 범위를 다루고자 한다.

 

제 2 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 못된 이해로 인해 교회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성령의 은사에 대한 열등의식, 분파성, 귀족성, 거룩성에 대한 것을 다루고자 한다.

 

제 3 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서 교회 공동체의 갈등과 분쟁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예를 고린도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다루고자 한다.

 

제 4 장에서는 어떤 것이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인지를 다룬다. 이 장에서는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교회 공동체를 위해 교회 공동체 일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라는 것을 다루고자 한다.

 

제 5 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와 교회 공동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본다. 여기서는 은사와 직임, 공동체성, 교회의 성장, 선교, 섬김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다루고자 한다.

 

제 6 장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발견하고 계발해야 하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제 7 장 마지막 결론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교회에서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이해를 정리해 보면서 논의에서 얻어진 결과를 평가하고, 이러한 내용들이 오늘의 교회 공동체에 안에 있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은사 받은 자가 교회 공동체에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Ⅱ장.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

 

 

 

  1. 우월성

 

 

 

  성령의 은사는 한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다.1)라 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소유한 모든 자들은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질 수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다양한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기능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다. 방언의 은사나, 병 고치는 은사나, 섬기는 은사나, 기적의 은사 등과 같은 모든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기능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은사는 서로 비교되거나, 어느 하나의 특정 은사를 소유한 자가 다른 어떤 은사를 소유한 자보다 더 나은 영적 소유자다라고 말할 수 없다.

 

 성령의 은사는 결코 우월성을 나타낼 수 없고 용납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카리스마는 다양성과 일치성을 다 함께 지니고 있기 때이다. 또 카리스마는 하나님 앞에 "작은 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우월감보다는 겸손이, 열등감보다는 충성이 요청된다.2)

 

  모든 은사의 수여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선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는 은사로 말미암아 누구도 자랑할 수 없고, 누구도 열등의식에 고통받아서도 안 된다.3)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를 이용하여 자기를 과시하거나, 물질적인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의 은사는 신비스러움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공동체를 위한 겸손한 섬김에 그 의미가 있다. 타자를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축복의 도구다.4)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21절 이하에서 만일 눈이 손에 대한 우월감에서, 머리가 발에 대한 우월감에서 상대방을 무용지물로 낙인을 찍는다면 이것도 큰 오산이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족한 지체일수록 존귀하게 여겨 몸의 조화를 꾀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월감은 몸의 조화를 깨뜨리는 무서운 유혹이다. 한 몸에는 많은 지체가 각기 자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계급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차별 대우도 용납될 수 없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의 소유자가 지녀야 할 평등의 의무감의 의식인 것이다.5)

 

 

 

2. 열등감

 

 

 

  열등감도 우월감처럼 성령의 은사에 있어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카리스마는 다양성을 다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등감보다는 충성이 요청된다.6) 이 열등감도 은사에 대한 비교의식으로 인한 부정적 생각이다. 자기의 영적 은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이 지닌 은사에만 지나게 관심을 가져 자기의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열등감에 빠질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장 12절 이하에서, 이 두 점에 대하여 재치 있게 설명하고 있다. 만일 발이 손에 대한 열등감에서, 귀가 눈에 대한 열등감에서 자기를 몸에서 절단해 내려고 한다면 이는 곧 오판이 되고 만다. 왜냐 하면 다 같이 죽고 말기 때문이다. 몸은 하나이다. 결코 두 개나 세 개로 만들 수 없다. 모든 지체는 자기 위치에 대하여 보람과 만족을 느껴야 한다. 여기에 은사의 소유자가 지녀야 할 만족의 의무감이 있는 것이다.7)

 

 

 

3. 분파성

 

 

 

  바울은 고린도 전서 1장 12, 13절에서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라고 경고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12장 13절과 27절에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한 부분이다."라고 말하면서 분화작용을 중지하라고 강력하게 권하였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는 독선에서 벗어나 분파작용의 과오를 범할 수 있다고 한다. 카리스마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사용은 분파작용을 일으킨다. 고린도 교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독선으로 흘렀기 때문에 교회를  사분오열 찢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모름지기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말씀 아래에 서서 겸손히 순종해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권면하였다.8)

 

 

 

4. 귀족성

 

 

 

  성령의 은사는 과대 망상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성령의 은사의 가장 큰 위험은 과대망상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카리스마를 절대시하는 유혹에 빠진다.9)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가장 신령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교회공동체에서 귀족에 속한 계층의 부류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신령한 은사를 소유한 자가 영적으로 상류계급에 속하여 공동체의 일원을 자기보다 하류계층으로 취급하거나,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하수인처럼 부리려는 무의식적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성령의 은사는 그 소유한 자가 공동체와 일원을 섬김으로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5. 거룩성

 

 

 

  많은 성도들은 병 고치는 은사나 능력 행사하는 은사와 같이 신령한 은사를 소유한 자가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신자의 거룩성이나 경건함은 은사의 소유에 있지 않고 공동체를 섬기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과부와 고아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10)

 

교회에서 한 개인이 받은 놀라운 성령의 은사는 귀한 것이지만 그와 동일한 은사나 혹은 어느 특정한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을 자기보다 신령한 은사라고 생각하거나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것은 본래 은사들을 나누어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은사는 자기의 신령함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기 위한 것이다.11)

 

 

 

 

 

 

 

Ⅲ장. 고린도 교회의 성령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한 분쟁

 

 

 

1. 고린도 교회의 현황

 

 

 

  고린도 교회의 설립은 사도행전(18:1-18)에 기록되어 있는데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덴을 거쳐서 다녔던 제 2차 전도여행길에서 그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고린도에 도착했다.12)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와서 얼마의 시일이 경과한 후인지 모르나 유대인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선교의 장이 열렸다. 고린도 선교는 처음부터 바울과 이 부부를 중심으로 가정 집회로 시작되었다.13) 이렇게 하여 고린도 교회는 점차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줄리어스 씨이저에 의해서 이주한 식민 이민단들의 후손, 고린도에 매혹되어 몰려든 헬라인들, 유대인들, 그리고 로마 제국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이방인들이 고린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의 대부분이 이방인이었고, 일부 부유층과 지식층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민층 부류였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 대부분은 유대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이다.14)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신앙에 의한 윤리적 자유주의였다. 이것이 크게 끼친 것은 그리스도인이 이방 사회와 접촉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열광주의적 황홀경, 육체성의 경멸, 성욕과 식욕과 같은 것이 거기에 속하고, 방언, 계시, 병 고치는 기적 등도 연관된다.15) 

 

  고린도 교인들은 본래 이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로 포세이돈 신전, 아폴로 신전, 아프로다이프 신전에 드나들면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마술적이면서 하늘에 있는 신들과 영들이 사용하는 신비적이고 독특한 음성을 방언과 혼돈하여 사용했다.16) 이렇게 하여 고린도 교회는 은사에 의해 내부적 갈등과 시험에 빠져 있었다.17) 고린도 교회는 자기가 받은 은사로 인해서 자기 교만에 빠져 있었고 자기 확신에 차 있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신앙적으로 높다고 생각했고, 이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은사들로 인해 내적인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18)

 

 

 

2.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은사의 종류

 

 

 

  이런 상황에 있는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은사 있었는데, 특히 방언과 예언의 은사가 성하였다(고린도 12:1-14:30).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방언과 예언의 은사들에 대해서 바른 가르침을 베풀어 외적으로 현란한 표를 내는 방언만을 추구하지 말며 자랑하지 말라. 사랑으로 모든 은사들을 중히 여기고 서로 유익을 보도록 절제하고 조화하며 평화하도록 하였다.19) 여기서는 고전12:8-10에 나타난 은사를 9가지로 구분해서 알아본다. 특히 예언과 방언과의 은사를 좀더 자세하게 살펴본다.

 

 

 

(1) 지혜의 말씀

 

 

 

  이 은사는 고전 1:17에 나오는 헬라인들이 제일로 간주하는 지혜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성령이 선물로 주시는 은사다. 즉 지혜의 말씀은 선천적인 지혜가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지체에게 주어지는 지혜의 말이다. 지혜는 많은 인간의 경험에서 온다. 그러나 성령의 나타남으로 오는 지혜의 은사를 받으면 진퇴양난의 어려운 상황을 은혜롭게 극복한다.

 

고린도 전서의 서두에서부터 바울은 자신을 아볼로나 게바와 같은 사도들이나 선생들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대변자로,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즉 감추었던 지혜"에 대해 가르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의미했다. 이것을 다른 세대에도 전해주기 위해서 말로 변경했다.20)

 

 

 

(2) 지식의 말씀

 

 

 

 언더우드의(Underwood)저서에서 도날드 기(Donald Gee)씨는 지식의 말씀이 기독교의 설교와 가르침에 각각 관련되고 주장한다.21) 그리고 이 지식의 말씀의 기능을 성령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특별한 기회에 신적인 지식이나 사실을 알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22) 와그너는 이 지식의 은사를 정의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성장과 번영에 관한 정보와 사상을 발견하고 쌓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한다.23)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사람들과 더불어서 보다는 학문과 더불어 더 많은 즐거움을 가진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에게는 잡담이나 험담이 하나의 유혹이 될 수 없다. 실상은 그런 잡담이나 험담은 이 은사를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몹시 싫증나는 일이다.24) 

 

 

 

(3) 믿 음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하나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분간한다.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일반적으로 미래의 일에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진다. 이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목표에 집중하고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 환경이나 고난이나 장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25) 그러나 이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비평으로 말미암아 크게 분격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기들을 비평한다 할지라도 그 이유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고 있다고 하는 철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들에 대한 비평을 하나님에 대한 비평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흔히 자기들과 동행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묵인하지 못하게 된다.26)

 

 

 

(4) 신 유

 

 

 

  신유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로서, 자연적인 인간의 방법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회복케 하시는 중개자로 봉사하는 역량이다.27) 이 은사는 고린도 전서 12장 27절의 말씀에서 "신유(healings)의 은사들(gifts)"라는 복수형의 말로 되어 있다. 이 복수형의 말은 각종 질병들에 대한 많은 종류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28) 신유의 은사는 어떤 사람에게 병을 물리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통로에 불과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고치시기를 원하실 때에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나타내시는 것이다.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어떤 병을 고치시기로 결정하지 않으시면 병을 고칠 수 없다.29) 이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조종할 수 없다.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통로에 불과하다.

 

  이 은사는 가장 남용하고, 가장 많이 요구되는 은사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병 고치는 은사를 다른 어떤 은사들보다도 더 많이 원하는 까닭은 이 은사가 그토록 구경거리가 될만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은사는 선동적이고 독선적인 치료가 될 위험성도 있다.30)

 

 

 

(5) 능 력

 

 

 

이 은사는 병 고치는 것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은사를 포함한다. 이 은사는 이적을 요구하는 온갖 상황에 두루 적용된다. 이 능력의 은사는 대체로 어떤 위험한 상황이 있고 나서 그 다음에 이적이 일어나며 그 결과 그 위험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위험이 보통 몸과 생명에 대해서 물리적이고 위험을 수반한다.31)

 

 

 

(6) 예 언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시지를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별된 말로 전달하는 역량이다.

 

예언을 가리키는 희랍어의 의미는 그 기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말을 토하여 내다"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거기에 대한 개인적인 영감을 받는다.

 

그러나 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들도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몸의 다른 지체들에 의한 시정(是正)을 받을 수도 있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7) 영분별

 

 

 

"영분별하는 일"은 또 하나의 특유한 은사이다. 이것은 사람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영들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 은사는 교회가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아넘어가는 것에 대비하여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려고 주시는 것이다.32)

 

영분별의 은사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영의 출처를 분별하는 것이다.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임하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 영의 출처를 아는 것이다.33)

 

 

 

(8) 방언

 

 

 

방언은 정상적인 발성기관이 사용되기는 하되 의식은 전혀 활동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에 이해 영감을 받은 언어이다. 피터 와그너는 이 방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배우지 않은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역량이고, 하나님의 즉각적인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시지를 받아서, 자신들이 배우지 않은 언어를 하나님의 성별된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량이다".34)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방언은 그것이 외적으로 잘 드러나므로 자기 과시를 위해 방언을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방언을 했고, 서로 방언을 하려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고린도 교회의 예배는 아수라장이 되어서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가 없었다.35)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에 대해 통역 없이는 방언이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은사가 공동체에 유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에 대해서 고전14:5에서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라고 하면서 방언의 은사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B.E 언더우드는 "바울은 통역이 없이 예언자적 직무를 침해하는 방언은 그 어느 것도 금했다. 비록 영적인 절차에는 맞는다 할지라도 설교 중간에 어떤 사람이 해석 없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36)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의 활용은 공동체의 유익을 가져올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9) 방언 통역

 

 

 

  이 방언 통역의 은사는 방언이 공동체에 활용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은사다. 방언은 통역의 은사가 있을 때에 공동체의 유익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방언통역의 은사는 반드시 방언의 은사와 결합된 은사로 나타난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방언보다는 방언통역이 더 나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방언통역을 받은 사람은 많지가 않았다.37) 고린도 교회에서는 방언통역이 더욱 필요로 했다. 특히 방언통역 없이는 방언을 할 수 없고, 권면과 예언의 말씀을 들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방언 통역은 방언의 가치를 드러내 준다.

 

  피터 와그너는 이 방언통역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방언 통역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일상어로 알려주는 역량이다."38) 아놀드 비틀링거는 방언의 통역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방언의 통역의 은사는 예배를 드릴 때 방언기도를 할 수 있게 하고, 또한 그 기도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보충적인 은사다. 여기서 방언을 통역한다고 하는 것은 방언기도를 정확히 해석한다거나 거기에 주석을 붙인다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 내용을 모국어로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통역하는 사람은 그 해석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 통역의 은사가 실제적인 의미를 갖게 다는 것은 교회 내에서이다. 방언의 기도는 통역의 은사를 통해서만 교회 내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39)

 

 

 

3. 고린도 교회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고린도 교회에는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예배를 드리거나, 서로 다른 언어로 기도함으로 교회에 질서를 파괴하여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고, 이교도에 대한 마술적이고 열광적 신앙의 영향을 받아 교회내부에 영적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에 있어서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고린도 교회는 '육에 속한 자'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회에는 신령한 은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육에 속한 자라고 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와 공동체를 깨뜨리고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면서, 서로 아볼로 파, 바울 파하면서 싸웠다는 데 있다.40) 

 

 

 

(1) 신령한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었다.

 

 

 

  "신령한"(Spiritual)이란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신령한"이란 말의 의미는 세속적인 것과 정 반대되는 성스러운 것이나 교회적인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것보다는 그 단계가 높은 차원을 묘사해주는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그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고린도 시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 고린도 교인들은 삶의 신령한 면에는 무엇인가 사모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41)

 

 

 

(2) 방언이 가장 나은 은사로 여겼다.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은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은사들 중에 어떤 은사가 더 크고 중요한 은사인가 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은사들 중에 특히 방언의 은사가 가장 신령하고 좋은 은사로 생각했다. 이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이 방언을 구하려고 애를 썼고, 공식예배에서 자랑하는 마음으로 방언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 은사를 소유 여부에 따라 고린도 교회교인들은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에 빠지게 되었다. 

 

  로저 엘스워즈는 그의 고린도 전서 강해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신령한 은사들, 그리고 특별하게는 보다 놀라운 은사들에 몰두해 있었다. 그들은 영성을 은사의 관점에서 정의 내리고, 보다 놀라운 은사들을 지닌 사람들은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기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제쳐 버렸다."42) 이렇게 고린도 교회는 영적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그는 또 고린도 교회가 다른 은사에 비해서 방언의 은사를 더 중요히 여기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 다른 은사에 비해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고린도 교회가 방언을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43) 이런 내용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는 9가지 은사들 중에 방언의 은사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중요한 것처럼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Ⅳ장.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

 

 

 

1.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다.

 

 

 

  은사란 단어는 신약성경의 카리스마 ( )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원래 인간에게 어떠한 공적도 요구하지 않고 총애, 재질, 은사, 사명 등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모든 것을 말한다.44) 이 성령의 은사에 대한 어원적 의미에서 찾아보면,  '신령한 것'( )과  '은사들'( ) 이라고 부르고 있다. "카리스마타"( )라는 단어는 은사의 근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카리스"( )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45) 이 뜻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구속이나 구원을 의미하고 (롬5:16, 6:23), 또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교회에서 특별한 사역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은사를 의미한다. 카리스마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선물이다. 

 

  성령의 은사는 사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주시는 것이다. 로마서 12:3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은사를 주실 때 성령을 통해서 주심을 거듭 강조하였다.

 

 

 

2. 성령의 은사는 성령이 그 뜻대로 주관하신다.

 

 

 

  성령은 주권적으로 그의 은사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신다. 성경은 이것을 성령의 주권적 행사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은 바람이 원하는 곳에 가는 것처럼 성령도 자기가 원하는 때에 자기의 뜻대로 활동하시는 분이다. 성령은 자기가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각기 그 나름대로의 은사를 주어 각각 한 지체가 되어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이루신다.46)

 

  어떤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아 행할 때 자신의 뜻대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느니라"(고전12:11) 성령의 은사는 믿으며 받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또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주관 하에 있으며 전적으로 성령으로 주어진다.47)

 

  그러나 성령은 성령의 은사를 주관하여 행사하실 때 절대로 우리를 기계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성령은 우리 인간의 경험이나 선천적인 문학 소질, 역사적 상황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까지도 이용한다.

 

 

 

3. 성령의 은사는 각각 다르며 비중의 차이도 있다.

 

 

 

  성령의 은사가 각각 다른 것은 마치 선물과 같은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받는 그 대상이 개인이나 단체일 수도 있고, 주어지는 은사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는 은사를 받지 아니한 자의 신앙을 과소 평가하거나 교만할 수도 없다. 또는 다른 사람이 받은 것을 내가 받지 못했다고 실망하거나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성령은 이 성령의 은사에 대한 비중의 차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도 하나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 그가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4:6,11), "한 성령으로 각 다른 은사를 주셨음을 지적하고, 이는 마치 한 몸에 붙은 지혜로서 비교하고 있다." (고전12:27-30) 그러므로 은사들은 그 몸을 위하여 다 필수적인 것이다.

 

 

 

4.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목적이 있으므로 주어진다.

 

 

 

  고린도 전서는 은사의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48)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인 복음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주되심을 믿게 하고 이 일을 개인이나 교회를 통하여 계속 이루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떤 신령한 은사도 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주어진 것은 없다. 은사가 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받은 능력을 얼마나 잘못 사용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런 원리가 지배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몸은 공동의 유익이나 덕을 세우는 일을 실현할 수 없다.49)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은 그의 은사를 그냥 버려 두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은사들의 전시효과를 위한 것도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샌더슨도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사람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유익하게 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에베소서 4:12에서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그 주신 목적이 있다. 나 자신의 신앙과 교회에 유익은 물론, 나아가서 사회에 크게 공헌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야만 그 의미가 존속되고 그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해야 한다. 은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50)

 

 

 

 

 

 

 

Ⅴ장. 은사와 교회 공동체

 

 

 

  교회는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믿는 자들의 모임이다. 새 계약 공동체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따름으로써 행동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중심에는 인간의 구체적인 모임이 있다. 또 이런 모임 없이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내의 모든 것은 비록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만 인간들의 모임에 집중되어 있다.51)

 

  성령은 한 개인에게 임하여 그를 거듭나게 하고 성화의 삶을 살게 하며 때로는 놀라운 이적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 이상을 보지 못하고 개인주의적이고 심지어는 이기주의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52) 이것은 지나지게 성령의 역사의 개인에게만 맞추어 해석할 때 생기는 부정적인 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한 개인에게 임하지만 한 개인을 위해서만 역사하지 않는다.

 

  신비현상이나 기적을 체험해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성령을 간구 하거나 신령한 능력으로 타인들 위해 군림하기 위해서 또는 개인적인 성공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 성령을 간구 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에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그 본질적인 가치를 드러낸다

 

  성령은 한 개인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강림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그리하여 성령은 교회 안에서 임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일하시게 한다. 그리고 성령은 교회 안에서 유무 상통하게 하며 공동 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이들은 서로 돕고 사랑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룬다.53)

 

 

 

1.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의 용어는 헬라어 구약 성경에서 히브리어 '카알'(qahal)을 번역한 말로서, 모여 있는 무리를 묘사한다. '에클레이시아'와 '카할'은 모두 '회중'(congregation: '회집 되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보다는 실제로 모여 있는 무리를 표현한다. 바울은 이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모임을 묘사하는 데 이 용어를 사용했지만(고전14:19, 28, 34), 누가는 에베소의 관리가 이 말을 사용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실 때 구약적인 의미로 사용했다.54)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소유요, 아끼는 대상이다. 교회는 레위기 26장 12절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정의된다. "나는…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이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서 성경은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배우자요, 포도나무요, 양떼이다. 신약에서는 교회는 그의 양떼요, 참 포도나무의 가지요, 그의 신부요, 그의 몸이요, 그의 성전이요. 성령이 거하는 전이요. 하나님의 집이다.55)

 

  교회는 온 하나님의 백성이요. 온 에클레시아며, 온 신앙인 공동체다. 모두가 선택된 민족이요, 왕다운 사제단이며, 거룩한 백성이다. 이 하나님 백성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화되었으며 성령에 의하여 성화된 백성이다.56)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는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다. 이들은 교회에서 개인 혼자로서는 소속의미가 없다. 이들은 한 교회라는 공동체 내에서 함께 존재한다. 

 

 

 

2. 교회는 코이노니아가 본질이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언급할 때는 이 '성도의 교통'이란 용어를 쓴다. 이것은 초대 교회 교부들이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고백했던 용어이다. 종교 개혁가들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했을 때 그들도 역시 "교회란 성도의 교통이다"라고 고백했다. '성도의 교통'에서 '교통은 '공동체'를 의미하는데 그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란 뜻이다. '교통'이란 말인 'Communion'은 헬라어 'koinonia'에서 나온 것이며 'koinonia'는 '공동체 (community)'의 어원이다. 교회의 본질로서 성도의 교통은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수평적으로는 성도들이 서로 하나 되어 교제하는 모임을 말한다.57)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은사, 재물, 시간, 정성, 사랑 등을 함께 나누고, 삶의 슬픔과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삶이다.58)

 

 

 

3.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59)

 

 

 

  성령의 역사의 공동체적 차원을 잘 드러내 주면서도 많이 오해되어 온 성경 본문들 중의 하나는 고린도 전서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냐"이다 여기서 성전은 흔히 신자 개인의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교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문자의 앞뒤 문맥은 교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너희는 ...이다'는 ' '로 복수 표현인데 반하여 '성전'은 ' '로 (문자적으로는 '보좌') 단수표현이다. 즉, 공동체요, 교회인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은 "너희들은 성전이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개인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우리 각자에게 성령의 은사들이 주어진 것은 그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섬기라고 하는 것이다. (롬12:3-13, 고전12:4-31),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은사들의 목록은 우리가 다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들을 가지고 그 분수에 맞게 봉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고린도 전서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들의 목록(고전12:4-11)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몸과 각 지체들의 유기적 관계와 공동체적 통일성에 대해 강조해서 말해주고 있다. (고전12:12-31). 거기서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고전12:27). 이 몸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들과 직임을 가지고 다양한 성경의 지체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들이 그 다양성 속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돕고 섬김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어떤 직임이 주어진 것은 그것을 통해 다른 지체를 섬기고 그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은사는 신비스러움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공동체를 위한 겸손한 섬김에 그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이 받은 영적인 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타자를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축복의 도구이다. 한 개인의 구원은 그것 자체가 목적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 나라와 타자를 위한 도구요. 수단이기도 하다.

 

성령의 역사는 성령의 자신의 직접적 임재와 더불어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매개체, 즉 공동체 안의 다른 지체들과 그들에게 주어진 직책이나 은사들을 동반한다. 성령의 역사의 이러한 특징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존재를 요구한다.

 

  성령의 은사들이나 직임을 자기의 신령함을 과시하거나 물질적 이득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된 성령의 역사가 공동체적 섬김을 통해 나타나는 근본적인 사실을 모르거나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의 역사가 철저히 공동체적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 후서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에 나오는 '성령의 교통'이라는 말은 헬라어 ' '이다. 이 말은 공동체, 사귐, 교제, 참여, 나눔 등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령의 교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가 되게 하고, 또한 우리 서로 서로가 교제하여 하나가 되게 한다.

 

 

 

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60)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와의 공간성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개념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의 두 가지 의미로 파악된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한 것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중심의 본질성과 그리스도와 성도의 불가분의 연합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개념은 교회의 유기체적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 그리스도의 몸의 개념이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연합이다. 성도는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력 있는 연합을 이룬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로서 서로 유기체적인 관계와 연결을 갖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보이지 않는 신령한 몸이 늘 임재한다고 주장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인간의 집합으로 생긴 인간의 단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기 피로 값 주고 산 단체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몸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한 사역으로써의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자들의 관계성에서 비롯된다. 그 관계성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는 데살로니가 전서 1:1에 나타난다. '그리스도와 함께' 이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의 고난과 죽음, 부활과 삶에 관해 말하는 구절 속에서 흔히 언급된다.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몸에 붙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몸 안에서 신자는  "죄에 대하여 죽었고(6:2)",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았고(6:3),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6:4)"고 하였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그의 몸에 붙어 있게 되었다(고전6:15).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고전6:15).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상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관계보다 오히려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신자들 상호간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더욱 강조하고 있다. 고린도 전서 12:27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고 말함으로써 '너희' 즉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임을 말해 준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서로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신자 개개인의 상호 연결성과 신자들의 '상호 의존 관계'의 개념을 말해준다. 그는 "비록 몸의 지체는 많으나 한 몸"임을 강조한다. 모든 지체들은 다양한 은사를 부여받았는데, 은사는 개인의 만족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14:4-5. 12).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다 소유하지 않는다. 어떤 은사가 다른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며(12:14-25) 모두가 동일한 은사를 소유하지 않았다. 즉 각 지체는 다른 지체들을 필요로 하며 또한 각 지체는 다른 지체들의 필요가 된다.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의 가시적인 형태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 혹은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됨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몸은 실존적이며 가시적으로 현존한다. 즉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교회에서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지만 온전히 하나 된 그리스도인들의 몸을 통해서 그 몸이 나타나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Ⅵ. 성령의 은사를 통한 교회 사역

 

 

 

1. 은사와 직무

 

 

 

  고린도 전서 12장 5절은 성령의 은사를 "직임( )라고 부르고 있다. 이 뜻은 "남을 섬긴다"는 것인데, 집사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예수님은 이 봉사에 대한 말의 뜻을 마태복음 20:28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칼빈은 은사에 대한 해석을 성직, 다시 말하면 목사, 교사, 장로, 집사 등 성직과 관련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은사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동봉사"를 전제하고 있다.61) 

 

교회 공동체 안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들과 직임을 가진 다양한 성격의 지체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들이 그 다양성 속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돕고 섬김으로써 하나의 공동체, 곧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 그리스도의 모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전12:27) 교회의 공동체에 있는 자들에게 각각 은사와 함께 어떤 직임이 주어질 때 그것을 자랑하거나 개인의 유익을 사용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을 통해서 서로 다른 지체를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말할 때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유기적 교통을 설명한다.62)

 

  교회 공동체에는 많은 지체들 있다. 이 지체들이 서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간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은사를 받아 교회라는 공동체를 섬기고 성도를 유익하게 한다. 먼저 교회내 공동체에 있는 각 직무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아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1) 사도

 

 

 

  사도의 어원은 "아포스톨로스"( )이다. "아포스톨로스"란 동사에서 왔는데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이 사도에는 세 가지 근본적인 특성이 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예수님과 함께 일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도들이 말씀을 문서화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셋째는 그들에게는 교회를 설립하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도의 예수와의 동시성과 동역성을 생각한다면 사도의 은사에 대한 오늘 교회에서 지속성 문제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63) 사도적 은사는 사도들이 사라질 때 없어질 하나의 직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은사의 목록에서 사도적 은사를 제외시키고 있다. 유명한 성공회에 목사이고 성경 교사인 존 스토트 박사는 사도적 은사가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은사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은 사도적 은사는 없어지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교회에서 이 사도의 직분은 좁은 의미로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으나, 넓은 의미로는 아직 남아 있다. 이 사도적 은사는 오늘날에도 선교의 은사로서 유지되고 있다64)고 본다. 신종선은 사도의 은사에 대해서 바울을 언급하면서 사도의 업무에 대해서 원초적인 은사와 이차적인 은사로 구분한다. 이 이차적인 은사는 12사도와의 업무가 같은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남아 있다고 본다.65)

 

 

 

(2) 예언자

 

 

 

  예언자들은 예언의 은사를 받아 행하는 자들을 말한다. 예언자란 원어로 "프로페테스"( )라 하는데 이것은 구약의 예언자란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구약의 예언자란 "사람 앞에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구약학자 올브라이트는 "하나님에 의하여 부름을 받아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는 자"라고 정의하였다 라고 하였다.66) 그러나 신약에서는 구약과는 달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예언의 은사에 대하여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여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고린도 전서 14:3절에서 정의하였다. 예언의 은사는 고린도 전서 14장 4절에 의하면 분명히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덕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복음의 비밀을 밝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권면하고" 구원의 "안위"를 얻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언의 은사를 미래사를 점쟁이처럼 예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예언의 은사의 주된 활동은 아니었다. 예언자의 핵심 할동은 복음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말씀을 문서화하는 과업에 동참하였다.67)  

 

 

 

(3) 복음전도자

 

 

 

  복음전도자는 에베소서 4장 11절에 "혹은 복음전도하는 자"로 명시되어 있다. 그 원어는 "유앙겔리스타스"( )로서 "복음을 전한다"는 동사( )에서 명사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선포하는데 있어서 뛰어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은사는 말씀의 은사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복음전도의 중요성은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적 지상 명령이란 사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궁극적 소원은 인류의 구원이다. 복음전도는 사람의 재능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성령의 은사로 되는 것이다.68)

 

 

 

(4) 목사

 

 

 

 이 은사는 에베소서 4:11절에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언급되어 있다. 성서를 통하여 목사란 말은 에베소서에만 나온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집사, 장로, 감독 등의 성직은 제도화되어 있었으나 목사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과, 또 아무리 목사가 많아도 그 직책상 한 교회에 한 두 사람이상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목사란 원어는 "포이메나스"( )란 명사로서 "포이멘"( 보호한다) 이란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영어의 목사란 Posters(보호한다), Posture(기른다)에서 유래되었다. 목사란 말은 어원상으로 볼 때 양치는 일과 깊은 관계가 있다. 목사가 양떼를 잘 보호하고 좋은 꼴과 물로 잘 길러야 하는 것처럼 목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잘 보호하고 말씀으로 잘 길러야 하는 것이다. 신구약을 통해 성서에도 적어도 82회 이상 목자란 말이 쓰이고 있는데 이 중 일곱 번이 예수에 관하여 쓰여졌다. 성서는 예수를 "양의 목자",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라고 부르고 있다.69)

 

  성령은 교회가 조직화되고 제도를 갖춤에 따라서 그 은사를 제도와 결부시켜 나아갔다. 목사는 성령의 은사 중 조직 교회에서 가장 큰 하나의 은사이다. 그 자격에 있어서나, 하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부름을 받지 않고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성직이다. 

 

 

 

(5) 교사

 

 

 

  교사의 은사는 독자적인 은사보다 관련 은사, 보충 은사로 보는 성서학자들이 많다. 사도행전 13장 1절은 선지자와 교사를, 에베소서 4장 11절은 목사와 교사를, 디모데 후서 1장 11절은 사도와 교사를 묶어서 말하고 있다. 이런 본문에서 볼 때 교사의 은사는 독자적인 것보다 선지자와 목사와 사도의 직분을 보조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브리지 (D. Bridge)와 파이퍼 (D. Phyper)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신약 성서학자들은 대부분 이 직무를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바울이 이 두 직임을 하나로 고정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둘째로는 이 두 직임 사이를 구분하려고 모든 시도가 실제로 불가능함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70)

 

교사의 어원은 "디다스칼로스"( )다. 이는 "가르치는 자"란 뜻이다. 이는 성령이 주시는 귀한 말씀의 은사이다. 이들은 초대교회에서 주로 기독교 기본 진리를 가르쳐 주는 일을 담당했다. 이들은 구원의 진리를 사람들 가슴속에 새겨주는 기술자들이다. 이런 임무가 교사들의 주요 임무다. 초대교회에서 이런 교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71)

 

 

 

(6) 선교사

 

 

 

  이 선교사의 은사는 직접 은사로서 언급되어 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교사"란 말은 성서가 직접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만들어서 쓰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란 말은 그 어원에서 볼 때 복음전도를 위하여 외지로 보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선교사란 말은 사도, 즉 아포슬(apostle)이란 말과 동의어가 된다. 선교사는 교회를 통하여 복음전도를 위하여 해외로 파송 받은 사람을 말한다. 이런 점을 볼 때 선교사의 은사는 이미 중지된 사도의 은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선교사의 은사는 세 종류로 분류되었다. 첫째는 본토 안에서 유대인에게 선교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외에 나가 있는 유대인 동포, 즉 디아스포라에 선교하는 것이다. 셋째는 외국 이방인에게 선교하는 것이다.72)

 

 

 

(7) 장로(감독, 다스리는 은사)73)

 

 

 

  신약에서 연령과  신앙의 경력이 노숙한 분을 장로로 추대하게 되었다.(딤1:5-6)이 직은 예루살렘에서 갈라디아, 에베소, 그레데 등 각지로 파급된다. 그들은 교회를 다스리는 것과 감독의 일을 하며, 장로회의도 하였다. 또 이 직분은 목사직과 동일시되는 때도 많았다. 다스림의 은사는 미래의 목표를 설정하고 사람들의 동기를 촉진시키고 계획을 달성하고 최종적으로 재검토 하는 것을 포함한다. 항상 이 직분은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요,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보살펴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도력 없이 교회 존재할 수 없다. 로마서 12:8에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이 은사를 사용하라고 권고한다. 디모데 전서 5:17에 다스리는 자들은 "배나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8) 집 사74)

 

 

 

  보통 집사란 어원 "디아코노스"( )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의 뜻은 "하인(요2:5), 사환(마22:13), 섬기는 자, 혹은 섬기기로 작정된 자로(마23:11, 고전16:16)" 번역된다. 고린도 후서 9:1에 바울은 흉년을 만나 예루살렘 교회 성도를 섬기는 일에 수고를 했다는 일을 했을 때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

 

  집사는 하나님의 일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충족시키도록 힘쓰는 자이다. 종이나 일꾼으로 집맡은 청지기로서 봉사하는 자이다. (고후6:4, 고전4:1, 벧전4:10) 교회에서 집사 직을 맡은 자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누구든지 주의 일꾼이 되어 겸손히 봉사하는 실천하는 은사를 말한다.75) 

 

 

 

2. 은사와 교회 성장

 

 

 

(1) 교회성장의 정의

 

 

 

  '교회성장'하면 대개 교회신도 수와 교회건물 건축, 그리고 예산증액을 생각하기 쉽다. 비 성장에 대한 낡은 합리화의 영향 때문에 교회성장을 수적인 확장, 양적인 물량주의 사도와 동일시하는 오해도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이란 단지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헌금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성장'에는 확고한 신학적 기초가 있어야 한다. 한스 큉은 교회성장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장해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자라야 한다고 하였다.76) 그는 또한 교회가 "내적으로 성장해야 하는데 그것은 신앙과 인식과 사랑의 성장이요, 수적으로도 자라야 하는데 그것은 복음의 설교를 기초로 해서 새로운 지체들이 탄생함으로써 성취된다."77)고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성장의 근원이며, 목표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함으로써만 그 성장이 가능하다78)고 말한다. 또한 맥가브란은 '교회성장은 하나님께 대한 성실성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열망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2) 은사를 통한 교회성장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개발되어 활용되느냐에 따라 교회의 성장을 가져 올 수 있다. 피터 와그너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무지는 교회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중대한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실망, 불안, 좌절과 죄악의 원인도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위한 모든 유효성을 삭감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79)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활용을 해야 함을 알게 한다.

 

  먼저 교회는 성도들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교회차원에서 그 은사를 활용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피터 와그너는 성령의 은사를 활용함으로 현재의 크케 눌려 있는 놀라운 성장의 위력이 풀려나  오게 될 것이다80)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교회의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과 그 사람의 성령의 은사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에 대한 특별한 이해와 관심과 견해가 교회성장을 위한 틀림없는 처방은 아니지만,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활용 또 그 교회로 하여금 각 지체들이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은, 마치 예방 접종이 천연두를 예방하는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그 교회로 하여금 침체에서 벗어나서 성장을 하도록 도와준다.81) 

 

  목회자는 교회성장을 위해서 그 은사를 발굴하는 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마인드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성령의 은사가 교회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목회자의 성령의 은사의 소유여부에도 교회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피터 와그너는 그의 저서에서 "연합 장로교회는 목회자의 강한 능력이 그 교회의 생기와 부흥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회자의 지도력은 그 교회의 교회활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생기를 불어넣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또한 교인수의 증가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성장하는 교회의 목회자들은 교회 일에 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일치감을 증진시키며 분쟁 문제를 잘 다루어 교회성장에 대한 보다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82) 목회자의 복합 은사83)가 교회성장을 위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적합한 혼합 은사를 가진 적합한 사람이 있을 때 그 교회는 성장을 위한 큰 가능성을 가진다84)라고 한다. 목회자의 성령의 은사는 교회성장을 위해서 발견되어야 하고, 또 몸에 의해서 확증을 받을 필요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그 은사를 발전시키고 사용할 필요가 있다.85)

 

 

 

3. 은사와 선교

 

 

 

  성경은 은사와 선교에 대한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오직 성령의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6) 성령의 권능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된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다. 교회로서 복음으로 세계를 섬겨야 한다. 교회가 특히 선교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발견해야 하고, 그 사람을 복음전하는 선교사로 세계를 향해 보내야 한다. 선교의 사명을 성령의 힘과 성령의 은사로 감당해야 한다. 그럴 때 복음은 쉬지 않고 전파되어질 것이다. 아무리 거대한 교회라도 복음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없다면 그 교회는 곧 문을 닫게 될 것이다.87) 교회의 사명을 위해서 전도자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필요하다. 복음 전도는 불타는 마음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고 듣는 것들을 제자로 삼는 뚜렷한 목적으로서 가르치고 전파한다.         

 

 

 

4. 은사와 섬김

 

 

 

(1) 교회 안에서의 봉사

 

 '카리스마'는 '교회를 봉사하기 위해 주어지는 특별한 성령의 선물들'을 지칭한다(엡4:7,12). 바울은 고전12:8-10에서, 그리고 롬12:6-8에서 은사들의 긴 목록을 제시한다. 이 은사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구조 안에서 봉사하도록 부여받은, 성령에 의해 주어진 특별한 능력 내지는 재능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 그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주신 영적 능력들이며, 성도의 봉사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연모로써 성령에 의해 신자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은사들이다.88) 클레멘스(Clemens)는 이 은사에 대해 "봉사의 특별한 영역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라고 말했다.89)

 

  성경은 은사와 섬김에 대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 당이라"90)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섬김은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의 봉사를 자신의 노력과 지혜와 능력으로 하여 지속성이 없고 쉽게 지쳐 버리는 것을 본다.

 

  봉사의 은사는 다른 은사에 비해 많은 사람에게 주어진다. 이 은사는 본질적으로 희생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수고와 비난은 자기가 차지하고 영광과 찬양은 남에게 돌린다. 기초는 자기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성령은 많은 사람에게 봉사의 은사로 주신다. 왜냐하면 이 은사가 다른 은사를 받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교회에 있어서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50%이상이 되어야 그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갖게 되는 것이다.91)

 

  피터 와그너는 교회에서의 섬김에 대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몸의 다른 지체들의 활동에 투여함으로써 그 다른 지체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의 효율을 증대시키도록 돕는 역량이다."92)라고 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섬기는 은사 소유자들의 봉사로 기초가 든든하게 세워졌다. 예수의 선교 공동체를 비롯하여 원시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의 현대 교회에서부터 오늘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이러한 은사소유가 없다면 기초를 세워나갈 수 없을 것이다. 교회 내에서 물질과 정신 그리고 몸으로 섬겨야 한다.93)

 

  교회 내에서 섬김은 구제를 통해서도 교회의 공동체를 섬길 수 있다. 구제는 무엇보다도 남의 필요를 물질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제는 헌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제 받은 사람은 구제 헌금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구제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러나 성도들 중에 의무 이상으로 이 일을 잘 감당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섬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   

 

섬김은 또한 사람을 긍휼히 여김으로 섬길 수 있다. 로마서12장 8절에 "긍휼을 베푸시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마음으로 돕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긍휼은 정신적으로 남을 섬기는 은사와 유사하다. 긍휼의 은사의 소유자들은 자기의 명예와 이익은 뒤로 미루고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여 남을 용서하고 세워줌으로써 공동체를 든든히 하는 사람들이다. 이 긍휼의 은사는 가장 두드러진 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애의 정신을 나타내주는 것이다.94) 

 

  남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해야 한다. 로마서12:8은 즐거움은 겸손의 산물이다. 이 규범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우월감에서 긍휼을 베푼다면 그것은 참된 긍휼이 아니다. 역경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순박한 웃음이다. 이 웃음은 겸허한 심령을 가진 사람의 깊은 영혼에서 솟아오른다. 아무리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월감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으면 이러한 웃음은 만들어내지 못한다.95)

 

  그리고 교회에서의 섬김은 손 대접을 통해서 할 수 있다. 로마서12장13절에 "각 손 대접하기를 힘 쓰라" 히브리서13장 2절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명기되어 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교회를 찾아오는 나그네를 자기 집에 영접하는 것은 최상의 대접이 되었다. 성령은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긍휼의 은사를 주어 교회의 덕을 세운다.96)

 

 

 

(2) 교회 밖에서의 봉사

 

 

 

  교회는 세상 내에 있지만 이 세계에 동화되지 않는다. 교회는 이 세상이 없으면 존재의미가 없다. 교회는 세상이 있으므로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교회는 세상을 적대시하고 이 세상에서 구별되어 세상을 도피하여 존재할 수 없다. 교회는 세상과 결합되어 있음으로써 세계를 위하여 존재한다. 세계가 교회에 대해 무엇을 인식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 교회라면 그런 교회가 세계와 유리된다는 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97)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구원의 공동체로서 세상에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구원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사람들을 부르기 위하여 세상에 파견되어 있다. 세계의 구원이 다가오는 행방의 기쁜 소식을, 이미 시작했고 곧 완성될 하나님 통치의 복음을, 교회는 세계에 전해야 한다.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야 한다.98)

 

  교회는 사회에 대한 봉사를 해야 한다.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한다. 한스 큉은 "교회는 이 현실의 세계는 바로 교회가 사명을 수행해야 할 장소요 시간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 세계의 새로운 시간과 장소에서 이론상이나 실천상으로나 현실적응을 회피할 수 없다."99)고 한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 대한 최대봉사를 복음전파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봉사를 복음전파로 보지 않고 사회에 대한 섬김으로 접근하려 한다.

 

  교회의 봉사는 예수 믿는 자들끼리만 아름다움의 나눔의 삶을 갖는 집단 이기주의적인 교제가 아니다. 온전한 봉사는 기독교인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 사회 속에 있는 고통 당하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삶을 같이하는 영역을 포함한다. 사도행전 2:47은 "초대 교회의 공동체의 성도들이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바울은 디모데 전서 6:18에서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말한다. 따라서 봉사하고자 하는 것은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하기를 부자들에게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며 선행과 나눠주기와 봉사를 좋아하도록 가르치라고 하였다 (딤전6:17-18). 이 나눠줌은 교회내의 지체에게만 아니라 교회 밖 지역 사회의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실시하라는 것이다.100)

 

  예수님은 누가복음 4:18-19에서 새로운 희년을 선포하셨는데 그것은 성령을 받은 결과 봉사의 역사를 통한 교회의 공동체의 자원적인 나눔과 섬김으로 지역사회 내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들을 다 담당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새로운 자원의 희년인 '자원의 희년'이다. 구약의 희년은 신약에서 봉사로 대체된다. 즉 교회라는 공동체는 구약의 희년의 의미를 성령의 봉사를 통하여 지역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기관이다. 교회는 교회 주위의 필요를 채우면서 고통 당하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101) 교회는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손과 발의 역할을 하는 종이다. 이 봉사의 기능에 있어서 타인을 위한 섬김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정신적. 육체적 불구자. 노동자. 실업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억눌린 자 등 모든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여 스스로 말씀에 의지하여 설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돕는 일이다. 하나님이 주신 각종 은사와 물질을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필요한 지체들과 나눈다는 것이다.102) 봉사로서의 교회는 세상의 위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봉사로서의 교회는 세상의 고통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 고통에의 참여란 가난한자와 도움을 필요로한 자, 또 한계 상황에 있는 자들을 변화하고 돕는 것이며, 인류의 심령에 산 희망을 유지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세상을 위한 섬김과 나눔의 실천은 봉사로서의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교회가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103)

 

  교회는 가난한 자에 대한 책임이 있다. 성서가 말하는 이웃사랑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는데서 출발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사랑이 참으로 실현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다. 잘살고 아름다운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자기들끼리 사랑하고 문안하는 이방인들의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고 이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104)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위해서 봉사 관을 설치하여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교회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을 살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또한 교회 밖에서 존재하는 하나님의 활동에도 유념해야 하고 교회밖에 존재하는 많은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확장 건설을 위해 매우 유익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105)  

 

 

 

 

 

 Ⅶ장. 성령 은사의 계발

 

 

 

1. 성령 은사 계발의 필요성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성령의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106)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은사가 주어 졌다고 믿어야 하고 그 은사를 계발해야 한다. 이에 바울은 그 주어진 은사를 발전시킨다고 말한다.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107), 성경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를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터 와그너는 그의 저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을 원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잃어버린 양을 찾고 그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108) 성령의 은사는 발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령의 은사는 은혜로 인해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으로서 직임, 역사, 혹은 자연적 은사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 주신 목적은 교회라는 공동체의 유익과 강화를 위함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기능을 몸 안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그리스도인들이 발휘해야 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괴로워 하겠는가하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한다. 만약 우리들 모두가 우리들의 은사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일을 열심히 할 것을 하나님께 약속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는 전반적으로 큰 부흥을 할 것이고109), 이 성령의 은사계발 여부에 따라 교회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계발되어야 한다.

 

  은사의 발견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여러 가지 많은 유익을 제공한다. 그 첫째는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그것을 인식하여 발견한 사람에게 주체성을 확립시켜 준다. 사람은 때때로 자기를 무능력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간주할 때가 많다. 그리하여 때때로 사람들은 실의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의기소침해 버리는 때가 적지 않다. 이러한 때 으례히 열등감이 엄습하여 그의 인격을 파기시켜 버리고 만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의 은사를 발견하게 되면 곧 절망과 열등감에서 해방 받게 될 것이다. 또 자기 은사의 발견은 열등감을 예방해 준다. 절망과 열등감은 사탄이 늘 애용하는 유혹의 무기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 앞에서 이러한 사탄의 무기는 아주 무기력하게 되고 만다. 성령의 은사는 그 소유자로 하여금 모든 지체  속에서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될 지체임을 알게 한다. 이 성령의 은사는 절망과 열등감을 가시게 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꾼으로 주체성을 갖게 한다. 둘째는 나그네로서  자기 여정에 이정표를 찾되 여러 갈래 중에 자기가 택해야 할 길을 분명히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영원을 향해 기나긴 순례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의 은사는 길목 길목마다 이정표를 세워줌으로써 그의 나그네 길을 인도해 준다. 셋째는 삶에 있어서 우선 문제를 정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러한 때 자기의 은사가 무엇이란 것을 파악함으로써 자기의 삶의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110) 이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계발되어야 한다.

 

 

 

2.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는 방법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신 것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111)  

 

 

 

(1) 먼저 교회는 성령 은사의 활용의 장으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를 마음껏 발휘할 할 수 있도록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에 대해 피터 와그너는 "교회성장을 위한 효과적인 은사활용에 대해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설교를 계속함으로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 해주고 은사들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계속 공부시키며, 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도와야 한다. 또한 은사에 관한 자주적인 연구활동을 가지게 하고, 은사를 발견하기 위한 책임감을 위하여 목표를 정하고, 그리고 성령의 은사의 체험을 항상 지속시켜야 한다.112) 고 말한다.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마음놓고 은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두어 사장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에도 맞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성도들의 각각의 은사가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하여 성도들이 그들의 은사를 최대한으로 잘 활용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 공동체에 덕을 세우고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기도로써 시작해야 한다.

 

 은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자기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하지 않고서는 그 은사를 발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의 백성들에게 맡기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그냥 맡기신 것이 아니라 무기를 주셨다. 그 무기가 바로 은사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은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3)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먼저 성경에 나와 있는 은사에 대한 항목의 내용들을 파악하고 그 내용을 묵상함으로 자기의 은사가 무엇인지 끄집어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성경에 대한 연구 없이 파악될 수 없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주시지 않으신다. 반드시 그 목적과 대상에 맞게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는 사람의 영혼 속 깊이 파 묻혀 있다. 이 깊이 묻혀있는 은사를 찾아내어 활용할 때 빛나는 보배가 될 것이다.

 

  이 성경의 상고를 통해서 은사가 무엇이며, 또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에 어떻게 조화되고, 은사가 각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하여 잘 알도록 도와준다.113)

 

 

 

(4) 발견한 자기의 은사를 고유한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발전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면 녹슬고 만다. 성령의 은사를 가장 욕되게 하는 것은 녹슬게 만드는 것이다. 은사를 발전시켜 나갈 때 자기가 받은 은사가 특별히 자기에게만 주신 고유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열등의식과 부각하여 교만에 빠지지 않아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고 바르게 섬길 것이다.

 

 

 

(5) 받은 성령의 은사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성경은 성령의 은사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은 그 은사를 받았다 라고 인정을 할 때 비로소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아직 마음속에만 있고 외부로 나타나지 아니한 은사는 잠재적 은사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자기의 은사를 잘 개발하여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한 공동체의 지체로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6) 사용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 알아본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받은 은사대로 헌신 봉사할 때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 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용기와 지혜로 용감하게 자기의 은사를 발휘하고, 지혜 있게 다른 은사와 협력할 때 반드시 희열과 보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는 이 성령은사의 발견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14)

 

 

 

(7)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성경 성령의 은사를 사모할 것을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115)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116) 성령의 은사를 사모할 때 성령의 은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8) 성령의 은사를 얻기 위해서 안수를 받는다.

 

 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안수 받을 때 얻었다 라고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을 때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117).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118) 이 성경구절을 통해 바울의 안수와 장로의 안수에 의해서 디모데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수를 통해서 받은 성령의 은사는 고린도 전서12장 11절에서 "성령님의 뜻대로" 은사를 나눠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 공동체 구현을 위한 성령의 은사 활용

 

 

 

  성령운동과 교회성장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점이 개인주의적이고 지 교회 중심적인 신앙생활과 선교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개인과 개인, 교회와 교회의 갈등과 대립이 생겨 공동체적인 신앙생활과 성령의 하나됨을 파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성경적인 모습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강조함으로써 공동체 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성경은 은사의 공동체성에 대한 활용을 고린도 전서 12장 성례문제를 강조함으로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령의 운동과 은사를 강조하면 할수록, 공동체성은 더욱 강조되고 더욱 깊어져야 한다. 만약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일 때 그것은 성령의 성격이 아니므로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그리스도인들은 개인들이 영적 은사들을 기초로 해서 교회의 모든 사역에 온 회중 들이 서로 종이 되어 전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모든 교인들이 교회사역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정당한 이유없이 장애물이 되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무서운 책임이 따른다. 하나됨과 은사를 기반으로 하는 사역 사이의 견고한 관계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 로마서 12:6-8에서 신자들이 그들의 영적 은사를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그리고 로마서 16:1-16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여자들과 남자들이었는데 그들 모두 서로 차별하지 않고 기쁘게 함께 사역하며 참된 하나 됨을 강조하고 있다. 로마서의 강조점은 영적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은사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에서도 하나됨의 공동체와 영적 은사의 긍정적 상관관계가 동일하게 나타나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의 영적 은사들을 활성화시키시며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은 각 신자들이 그들이 그들의 은사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충분히 사용할 때,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난다고 바울은 주장한다. 각 개인들이 영적 은사를 발휘함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은 그들의 은사를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 인종, 계급, 성별과 같은 외적 조건을 내세워 교회의 사역에서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참여를 제한 시켜서는 안된다.119)

 

성령의 역사는 종교적인 것과 교회라는 공동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전 세계, 삶의 모든 영역에 역사 하신다. 이런 면에서 성령의 사역의 공동체 관련성은, 공동체의 범위가 기독교내 공동체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와 온 피조물 세계까지 확장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120)

 

 

 

 

 

 Ⅶ. 결론

 

 

 

지금까지 교회에서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 공동체 유익과 덕을 위한 것이며, 서로를 섬기기 위한 도구며, 하나님의 선물이라 볼 수 있다.

 

먼저 2장에서, 교회에서의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으로 우월감과 열등감이 생긴다는 것과 교만으로 인해 분파성과 귀족성 그리고 영적인 거룩성을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성령은사에 대한 이해로 생긴 갈등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현황과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은사의 종류를 고린도 전서12장에 나타난 9가지 은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또 고린도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이해에서는, 신령한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방언이 가장 은사로 여긴 것을 살펴 보았다.

 

4장에서는 그러면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았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공동체의 유익과 덕을 위해 목적을 두시고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신 것이다라는 것이다.

 

5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와 교회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여기서는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고 교회는 코이노이아가 본질이고 성령의 전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6장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통한 교회에서의 사역은 어떠한가를 알아 보았는데 먼저 은사와 직임, 은사와 교회성장, 은사와 선교, 은사와 섬김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7장에서는 성령의 은사 계발에 대해서 알아 보았는데 그 계발의 필요성과 그 성령의 은사의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성령의 역사로 교회라는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길 원하신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교회 공동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다. 그러나 이들은 성령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 공동체의 유익과 덕을 가져오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은사에만 관심 있어 우월감을 갖거나 열등감, 또는 은사의 귀족성과 자기가 가장 거룩한 사람처럼 생각하여, 교회 공동체에서 귀족적인 생각을 가지거나 행동하고, 파당을 지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잘못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이해는 자신과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거나 자기의 공로를 과시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서 보면 이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서로 갈등하고 분쟁한 것을 볼 수 있다. 성령의 은사는 어느 것이 더 낫고 거룩한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은사의 가치와 평가의 기준은 공동체의 유익과 남을 얼마나 온전히 섬기느냐에 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산을 옮기는 기적을 행할지라도, 사람을 살릴만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은사가 공동체의 유익을 가져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또는 교회 공동체에 피해를 가져온다거나, 자기 자랑과 과시를 나타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어졌고, 그 은사로 교회 공동체와 세계의 모든 피조물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다. 이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 합력하고 도와주어야 하며, 한 백성과 한 형제 자매로서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또한 교회에서는 직임을 가진 자들이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공동체를 섬길 때는 섬김과 겸손의 자세로 해야 하며 자기가 어떤 직임을 가지고 있다고 명령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된다. 교회 공동체에서의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만약, 이 은사를 묻어두지 않고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계발하여 사용한다면, 교회 공동체는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 될 것이다.    

 

성령의 은사란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겸손과 섬김과 봉사 그리고 사랑의 모습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실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사회와 민족 그리고 세계선교를 위한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참 고 문 헌

 

1. 동 서

 

고영민 편저 『헬라어 사전』 서울: 기독교 문화사, 1993.

 

김동수. 『성령운동의 제3물결』 서울: 예찬사, 1991.

 

김명용. 『바른신학 바른 교회론』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

 

김용옥. 『고린도 전서』 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1996.

 

김정옥. 『청년대학부 20.20 비젼으로 재건하라』 서울: 기독신문사, 1997.

 

김지철. 『성령과 교회』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8.

 

김현진. 『공동체 신학』 서울: 예영 커뮤니케이션, 1998.

 

박근원. 『교회와 선교』 서울: 종로서적, 1998.

 

박영선. 『고린도 교회와 성도』 서울: 엠마오, 1993.

 

서철원. 『성령신학』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6.

 

성백송. 『큰 은사를 사모하라』 안양: 도서출판 잠언 1996.

 

신동혁. 『성령론』 서울: 대한 예수교 장로회 출판부, 1990.

 

신종선. 『성령의 은사』 서울: 나눔사, 1991.

 

전경연. 『고린도 전서의 신학논제』 서울: 대한 기독교 출판부, 1989

 

현요한. 『성령, 그 다양한 얼굴』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8.

 

______. 『생명의 영으로 충만한 삶』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8.

 

______. "성령의 사역 공동체성". 『목회와 신학』 제2집(1994).

 

 

 

2. 번 역 서

 

Underwoods, B.E. The Gifts of the spirt. 정동섭 역.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고린도 전서 12장 연구)』. 서울: 보이스사, 1992.    

 

Wagner, C. Peter. Your spiritual gifts can help your Church Grow. 권             달천 역.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6.

 

Clowney, Edmund P. The Church, 황영철 역 『교회』. 서울: 한국기독교              학생회 출판부, 1998.

 

Thomas, Robert. Understanding Spiritual Gifts. 김지찬 역. 『성령의 은             사들』.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3.

 

Hans Kung, Was ist Kirche?, 이홍근 역, 『교회란 무엇인가』, 왜관: 분         도출판사, 1997.

 

Gilbert bilezikian, Community 101, 두란노 출판부 역, 『공동체 101』, 서           울: 두란도, 1998.

 

 

 

3. 양 서

 

Rittlinger, Arnold. 『Gifts and Graces』, Grand Rapids: Ermand, 1979.

 

Gerhard kittlel, 『The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ment』, Grand             Rapid: WRN.B. Eerdans Publing Company, 1964. 

 

John L. Mikenzie, S.J., 『Dictionary of the Bible』, (Macmillan Publing            Co.), 1979

 

Ronld E. Baxter, 『Gift of the Spirit』 (Grand Rapid.s: Kregel), 1983.      

 


--------------------------------------------------------------------------------

 

 

 

1) 신종선, 『성령의 은사』(서울: 나눔사, 1991), 41쪽.

 

2) 위의 책, 44쪽.

 

3) 김지철, 『성령과 교회』(서울: 장로회 신학대학 출판부, 1998), 93쪽.

 

4) 현요한, 『성령, 그 다양한 얼굴』(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8), 352 쪽.

 

5) 신종선, 45쪽.

 

6) 위의 책.

 

7) 위의 책.

 

8) 위의 책, 48쪽.

 

9) 위의 책, 47쪽.

 

10) 레19:2, 약1:27.

 

11) 현요한, 『성령, 그 다양한 얼굴』, 352쪽.

 

12) 전경연, 『고린도전서의 신학논제』(서울: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9), 34쪽.

 

13) 위의 책.

 

14) 김용옥, 『고린도전서』(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1966), 6쪽.

 

15) 위의 책, 37-38쪽.

 

16) Gerhard Kittel, The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ans, geoffrey W. Bromiley (Grand Rapids : Wm. B. Eerd,ans Publing Company, 1964), p., 723.

 

17) 박영선, 『고린도 교회와 성도』(서울: 엠마오, 1993), 71쪽.

 

18) Robert L. Thomas, Understanding Spiritual Gifts, 김지찬 역, 『성령의 은사들』(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3), 37쪽.

 

19) 서철원, 『성령신학』(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6), 198쪽.

 

20) 로버트 토마스, 42쪽.

 

21) B.E. Underwoods, The Gifts of the Spirit, 정용섭 역,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고린도 전서 12장 연구)』 (서울: 보이스사, 1992), 47쪽.

 

22) 위의 책, 49쪽.

 

23) C. Peter Wagner, Your spiritual gifts can help your Church Grow, 권달천 역,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6), 236쪽.

 

24) 위의 책, 237쪽.

 

25) 위의 책, 170쪽.

 

26) 위의 책.

 

27) 위의 책, 258쪽.

 

28) 위의 책.

 

29) 위의 책.

 

30) B.E Underwood. The Gifts of the Spirit, 정용섭 역,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서울: 보이스사, 1992), 53쪽.

 

31) Arnold Bittlinger, Gifts and Graces(Grand Rapids:Eermand, 1979), 39-41쪽.

 

32) B.E 언더우드, 63쪽.

 

33) 김동수, 『성령운동의 제 3물결』(서울: 예찬사, 1991), 75쪽.

 

34) 피더 와그너,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252쪽.

 

35) 서철원, 202쪽.

 

36) B.E 언더우드, 64쪽.

 

37) 서철원, 203쪽.

 

38) 피터 와그너, 254쪽.

 

39) 아놀드 비틀링거, 50-51쪽.

 

40) 현요한, 352쪽.

 

41) 로버트 토마스, 17-18쪽.

 

42) 로저 엘스, / 번역실, 『웰린 강해 신서 고린도 전서 하』(서울: 목회자사, 1996), 312쪽.

 

43) 위의 책, 313쪽.

 

44) 성서백과 대사전 편찬 위원회, 『성서백과 대사전』(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84), 832쪽.

 

45) 성백송, 『큰 은사를 사모하라』(안양: 도서출판 잠언, 1966), 23쪽.

 

46) 신종선, 41쪽.

 

47) 신동혁, 「성령론」(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출판국, 1990), 134쪽.

 

48) 고전12:7.

 

49) 로버트 토마스, 39쪽.

 

50) 김정옥, 『청년대학부 20.20 비전으로 재건하라』(서울: 기독신문사, 1997), 189쪽.

 

51) 박근원, 『교회와 선교』(서울: 종로서적, 1988), 128쪽.

 

52) 현요한, "성령의 사역 공동체성" 『목회와 신학』 제26집(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4): 348쪽.

 

53) 현요한, 『성령, 그 다양한 얼굴』, 347-348쪽.

 

54) Edmund P. Cliwney, The Church, 황영철 역, 『교회』(서울: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1998), 30-31쪽.

 

55) 위의 책, 30쪽.

 

56) Hans Kung, Was ist Kirche?, 이홍근 옮김, 『교회란 무엇인가?』(왜관: 분도출판사, 1997), 85-86쪽.

 

57) 김현진, 『공동체  신학』(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1998), 56쪽.

 

58) 현요한, 『생명의 영으로 충만한 삶』, 65쪽.

 

59) 현요한, 『성령, 그 다양한 얼굴』, 350-356쪽.

 

60) 김현진, 33-37쪽.

 

61) 신종선, 28쪽.

 

62) 현요한, 『성령, 그 다양한 얼굴』, 351-352쪽.

 

63) 신종선, 98-101쪽.

 

64) Leslie B. Flynn, / 이창우 역, 『열 아홉가지 은사들』(서울: 기독교 문화협의회, 1986), 54쪽.

 

65) 신종선, 101쪽.

 

66) John L.Mckenzie, S.J., Dictionary of the Bible, (Macmillan Publishing Co., 1979), p. 698.

 

67) 신종선, 103-105쪽.

 

68) 위의 책, 107쪽.

 

69) 위의 책, 107-108쪽.

 

70) 위의 책, 109쪽.

 

71) 위의 책, 110-111쪽.

 

72) 위의 책, 111-113쪽.

 

73) 딤전3:1-8; 딛1:5-9.

 

74) 딤전3:8.

 

75) 고영민 편저, 『헬라어 사전』(서울: 기독교문사, 1973), 342쪽.

 

76) 한스 큉, 152쪽.

 

77) 위의 책, 153쪽.

 

78) 위의 책, 154쪽.

 

80) C. Peter Wagner, Your Spiritual gifts can help Your Church Grow, 권달천 역, 『성령의 은사와 교회의 성장』(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6), 30쪽.

 

80) 위의 책, 40쪽.

 

81) 위의 책, 48쪽.

 

82) 위의 책, 149쪽.

 

83) 피터 와그너는 목회자가 2가지 이상의 은사를 가진 것을 혼합은사로 보고 있다.

 

84) 위의 책, 151쪽.

 

85) 위의 책, 157쪽.

 

86) 행1:8.

 

87) 신종선, 107쪽.

 

88) 이영철, 『성령의 이적은사가 선교사역에 나타날 가능성』(석사학위논문, 총신대학교 대학원,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5), 5쪽.

 

89) Ronald E. Baxter, Gifts of the Spirit(Gramd Rapids: Kregel, 1983), 27쪽.

 

90) 빌3:3.

 

91) 신종선, 51-52쪽.

 

92) 위의 책, 52쪽.

 

93) 위의 책, 54쪽.

 

95) 위의 책, 58쪽.

 

95) F.F.부르스, / 김재영, 장동민 옮김, 『사도행전(하)』(서울: 아가페출판사, 1985), 160쪽.

 

96) 신성종, 60-61쪽.

 

97) 한스 큉, 201쪽.

 

98) 위의 책, 196쪽.

 

99) 위의 책, 199쪽.

 

100) 김현진, 68쪽.

 

101) 위의 책, 75쪽.

 

102) 위의 책, 334쪽.

 

103) 위의 책, 364쪽.

 

104) 김명용, 『바른신학 바른 교회론』(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 116쪽.

 

105) 위의 책, 125쪽.

 

106) 엡4:7.

 

107) 딤후1:6.

 

108) 피터 와그너,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60쪽.

 

109) 피터 와그너, / 권달천 역, 『효과적인 교회성장』(서울: 샘명의 말씀사, 1993), 159쪽.

 

110) 신종선, 155-156쪽.

 

111) 신종선, 159-161쪽.

 

112) 피터 와그너, 『성령의 은사와 교회 성장』, 273-277쪽.

 

113) 위의 책, 274쪽.

 

114) 피터 와그너,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48-49쪽.

 

115) 고전12:31.

 

116) 고전14:1.

 

117) 딤전4:14.

 

118) 딤후1:6.

 

119) Gilbert Bilezikian, Community 101, 두란도 출판부 역, 『공동체』(서울:두란노, 1998), 116-125쪽.

 

120) 현요한, 『생명의 영으로 충만한 삶』, 65쪽.

 

 

 

<출처: 총회신학교>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