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영성에 달렸다.
모든 것은 목회자에게 달렸다고 말한다. 이 만병통치약은 적어도 한국교회에선 매우 신통한 치료제임엔 틀림 없다. 목회자의 리더십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풍토가 한국교회에 그래도 편만하기 때문이다.
목회방향이 지나치게 무리수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 만병통치약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그건 모든 책임이 목회자에게 돌려진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그럴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요구하는 목회자상은 그래서 완벽한 원맨쇼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심하게 말하면 전능한 인간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걸 바란다. 목회자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는 기대감이다.
그렇다고 나무랄 수도 없다. 왜냐면 대개의 목회자들이 그런 기대를 조장해 온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모세 컴플렉스’라고 부른다. 모세의 리더십과 '모세 컴플렉스'는 구별해야 한다. 모세의 리더십을 소유하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자신을 모세와 동일시하는 ‘모세 컴플렉스’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 쉽다. 목회자들 역시 실수를 하고 연약한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닮으려는 열정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목회자가 지녀야 할 영성인 셈이다.
영성에 대한 개념은 한국교회에 무척 혼재되어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목회자의 영성이란 영적인 소명을 수행하는 목회자가 지녀야 할 모든 것을 함께 일컫는다.
목회자의 됨됨이, 단순히 인격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영적 리더십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것,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그것이 영성이다. 따라서 목회자의 영성은 목회의 처음이자 나중이다.
나우웬과 회퍼의 균형을 맛보라
우리가 접하는 목회자들을 연령별로 놓고 볼때 윗 세대와 아랫 세대 사이엔 묘한 갭이 존재한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반응이다. 윗 세대 목회자들의 경우 변화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지닌 듯 하다. 반대로 아랫 세대는 그야말로 “모든 걸 다 바꿔"라고 주장한다. 한쪽은 너무 무겁고 다른 쪽은 너무 경박할 정도다. 극단적인 이 둘은 모두 옳지 않다.
자기 것에 너무 집착하면 변화를 거절한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자기 것마저 지킬 수 없는 ‘보수주의'로 전락한다.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보수주의는 사실은 진리와 등진 보수에 다름 아니다. 이런 목회 스타일이 결국은 교회를 복음전도의 현장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대로 변화만을 추종하는 경박함 역시 정체성 상실의 우려가 없지 않다. 이렇게 민감한 변화지상주의는 대개 성장에 대한 갈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런 경박한 태도는 도리어 건강을 헤칠 우려가 있다. 성장 호르몬으로 키를 늘이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변화를 직시하는 목회자의 영성에 대해서 먼저 언급한 까닭은 이 극단의 태도로 인해 빚어진 한국교회의 위기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극단적 보수주의와 극단적 성장주의, 거기서 한국교회는 건강미를 잃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이 두 가지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은 궁극적으로 목회자의 건강한 영성에 달려 있다. 세상을 수용하더라도 세상에 함몰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강함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균형이란 문제를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이태웅 목사(GMTC원장)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제시한 공식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이 신비스런 균형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세상을 떠나 존재하는 영성도 아니며 그렇다고 세상에 함몰된 영성도 아닌, 그 예수님의 영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목사의 글에서 나타난 다음 구절은 그래서 기억할 만하다.
“21세기에는 그 머리는 하늘에, 그 발은 세상에 굳게 서서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삶이 목회자에게 더욱 더 필요하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헨리 나우웬과 같은 경건성을 가질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본 훼퍼와 같은 세속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전자는 신앙공동체에서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후자는 세상 속에서 신앙의 생활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이 두 세계를 통합하는 목회자가 필요하다."
목회자의 영성은 교회의 영성으로 확장된다는 사실도 놓쳐선 안된다.
교회에 확장된 목회자의 영성, 그 사례를 한국교회에 너무나 잘 알려진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 커뮤니티 처치(이하 새들백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새들백교회의 목회 노하우에 접근하면서 그 뿌리를 놓치는 우를 자주 범한다. 목회자의 영성과 그것의 구체적인 현장인 교회의 영성이 무엇이냐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릭 워렌 목사의 영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교회관 하나를 놓칠 수 없다.
“교회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건강하기만 하다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는 몸이지 사업체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체이지 조직이 아니다. 교회는 살아 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이 균형을 잃게 될 때 우리는 그 상태를 질병이라 부르며 질병은 몸이 불편함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균형을 잃게 되면 질병이 생긴다. 이러한 질병들 중 많은 것들이 계시록의 일곱 교회들에서 설명되고 밝혀지고 있다. 건강은 모든 것이 다시금 균형을 잡게 될 때 회복된다."
교회성장이 아니라 교회의 건강이란 얘기다. 릭 워렌 목사의 이 같은 교회관 곧 교회에 대한 그의 영성에서 출발한 새들백교회의 영성이 지금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 한 새들백교회 흉내내기는 사실 별 의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흉내내기에만 매달린다. 경박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이처럼 목회자의 영성은 곧 교회의 영성으로 표현된다. 싱가포르에서 셀목회로 잘 알려진 페이스 커뮤니티 처치(FCBC) 또한 적절한 사례로 보여진다. FCBC의 담임목사인 로렌스 콩 목사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FCBC의 목회현장은 마치 벼룩시장 같다.
거기엔 다양한 색깔의 온갖 목회 프로그램들이 정교한 모자이크와 같이 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돼 있다. 적재 적소에 적용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사실 우리 나라에서도 여기 저기 어디서나 굴러다니는 세미나 쪽지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서로 이질적일 수도 있는 프로그램들이 거대한 용광로 속에 들어와선 교회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이라는 하나의 방향을 지향한다. 엄청난 수용력인 셈이다.
이것은 로렌스 콩 목사를 비롯해 이 교회가 갖는 전체적인 영성의 위력으로 보여진다. 복음에 기초한 정체성, 그리고 지역 사회의 잃어버린 영혼을 생각하는 열린 교회의식, 이것이 잘 조화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콩 목사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 균형이다.
성령의 인도에 자유로이 순종하면서 동시에 지성의 영역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균형. 이 때문에 FCBC 안에는 첨단과학은 물론 진보경영학까지 침투해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교회란 거룩함의 정체성을 변질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목회자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영성을 깊이 살펴야 한다. 노동에 대하여, 가정에 대하여, 성 문제에 대하여, 대인 관계에 대하여, 침묵함의 가치에 대하여, 교리의 반성경적인 태도에 대해서, 국가와 사회제도의 반성경적 입장에 대해서, 대중문화의 세속적 흐름에 대하여. 목회자의 의식은 이런 영성들의 결합체이며, 이것이 목회자의 목회양식을 결정하고, 나아가 교회의 영성을 만들어낸다.
이런 분야에 있어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곧 주님의 입장을 견지하지 않고 전통이 어떻다든지, 사람들의 편견이 어떻다든지, 내 주장이 이렇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며 설득력도 갖지 않는다. 철저히 성경에서 그 답을 구했을 때 목회자의 영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지를 얻는다. 하나님의 지지선언이야말로 목회자의 존재 이유가 된다.
목회자의 영성을 생각하는 몇가지 경우들
“지금 한국교회의 최대 문제는 30명에서 300명 교회가 93%란 점이다. 이런 교회의 목회자들이 성공주의에 짓눌려 실패자란 자괴감 때문에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고 자기 교회 영혼들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목사는 큰 교회일수록 원하지 않아도 수퍼스타가 되기 때문에 큰 교회일수록 목사가 섬길 수가 없다. 섬긴다는 개념은 없어지고 제왕에 가깝게 된다."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
“참 목회자라면 목회를 자아 실현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의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마음을 제거할 것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 생활과 영적 형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총체적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데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양낙흥 고신대 교수)
“요나가 겪은 체험은 마지못해 일한 한 선지자의 주전 750년의 당대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각 선교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에 대해서도 선교사(목회자)의 영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섬김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긍휼, 영혼에 댜한 하나님의 시각 등을 지니는 것이다.”
(폴 스티븐슨 캐나다 뱅쿠버 리젠트신대원 교수)
“영성의 삶은 신비적인 삶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과 친밀함과 연합을 통해 내적인 신비성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이 형성되고 승화되어 최고 절정을 이룰 때 우리는 광야와 사막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길과 강을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왕쓰웨 중국복음선교회 선교사훈련원 교무처장)
“어떤 새로운 정보나 통찰력을 당신의 교회에 적용하고자 할 때 성령이 이 과정 속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당신이 배운 것과 당신의 개성을 함께 섞어 놓으실 수 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패를 모방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이끄는 사람들의 방향을 오리무중 가운데 빠지게 만들뿐이다."
(덕 머렌 워싱턴 이스트사이드 처치 목사)
-크리스챤뉴스위크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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