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학

[스크랩] 유대교인들의 음식법에 관한 고찰

수호천사1 2016. 1. 6. 15:35

 유대교인들의 음식법에 관한 고찰







A Study on Jewish Dietary Laws

조동호(한민대학교 신학과 교수)

들어가는 말
Ⅰ. 유대교인들의 식사전 손씻기법
Ⅱ. 유대교인들의 ‘카샤룻’ 음식법
Ⅲ. 유대교인들의 그릇 씻기법
나오는 말

들어가는 말
‘유대인들의 음식법에 관한 고찰’은 크게 세 가지 물음에 대해 해답을 얻으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들 물음들은 유대교인들의 ‘식사전 손씻기법,’ ‘카샤룻 음식법,’ 그리고 ‘그릇 씻기법’에 대한 것들이다.
첫째, 마가복음 7장 1-23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2절에 보면, 논쟁의 발단이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데 있다. 3절에 보면, 음식을 먹기 전에 손 씻는 행위를 ‘장로들의 유전’이라 부르고 있다. 이 ‘장로들의 유전’ 때문에 모든 유대인들이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유대교인들은 실제로 손을 어떻게 씻어야 했는가?
둘째,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식탁교제를 꺼려했다. 사도행전 10장 9-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보내고자 하실 때, 환상으로 네 발 달린 온갖 짐승들과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을 골고루 보여주시고, 잡아먹으라고 하셨다. 그때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한 번도 먹은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왜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는가? 또 사도행전 11장 2-3절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방문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갔을 때,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은 일에 대해서 크게 힐난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왜 유대인들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힐난하였는가? 또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을 보면, 베드로가 바울에게 책망당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을 보고 그들을 두려워하여 자리를 피했고, 남은 유대인들도 베드로를 따라 자리를 피했으며, 바나바까지도 자리를 피하는 외식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왜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먹다가 자리를 피해야 했는가? 또 마태복음 9장 9-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잡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보고 제자들에게 힐난하며 물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도대체 예수님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힐난하였는가?
셋째,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은 그릇을 신경 써서 씻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릇 씻는 문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제기했던 문제들 가운데 한 가지였다. 마가복음 7장 4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했다.”고 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라.”고 했다. 또 마태복음 23장 25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무엇 때문에 신경 써서 그릇들을 씻고 있었는가?

Ⅰ. 유대교인들의 식사전 손씻기법

A. 손씻기법
유대인들의 식사 전 손씻기법은 다음과 같이 20여 가지에 이른다.
1. 축복기도문 ‘하모찌’(Hamotzi)가 드려진 빵을 먹기 전에 반드시 먼저 손을 씻어야한다. 달걀크기와 그 보다 큰 빵이면 손을 씻기 위한 축복기도문이 반드시 낭송되어야한다. 달걀보다 작은 빵이면 축복기도문을 낭송할 필요가 없다.
2. 손을 씻기 위한 물은 구멍이 뚫리거나 금가지 않은 온전한 그릇에 담아 손에 부어져야한다. 또 움푹 들어간 부분이나 돌출된 부분이 없이 상단부가 고르게 높이를 유지해야한다. 주둥이가 있는 그릇일 경우, 주둥이로 물을 부어서는 안 된다. 주둥이는 액체를 담는 적절한 그릇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액체를 담는 그릇의 가장자리를 통해서 물을 부어야한다.
3. 처음부터 바닥에 세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릇이 그릇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 예를 들면, 뚜껑에 물을 담아서 씻어서는 안 된다. 이것에 관해서는 ‘슐한 아루흐’(Shulhan Aruh)에 많은 다른 의견들이 있다.
4. 손 씻기에 요구되는 정확한 물의 양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손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한다. 라비 히스다(Hisda)가 말하기를, “나는 두 손 가득한 물로 씻는다. 그리고 두 손 가득한 선함이 내게 주어진다”(Shabbat 62b). 유대인들은 오른손을 먼저 씻고 나서 왼손을 씻는다. 물이 손 전체, 곧 손목에까지 닿아야 한다. 물로 씻기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물이 손가락들의 구석구석 흘러갈 수 있도록 손가락들을 살짝 벌려야 하고, 약간 위쪽으로 쳐들어야한다. 또 물이 손톱들과 모든 손가락의 둘레까지 적시게 부어야한다. 손 전체가 한 번의 쏟아 붓는 물에 적셔야한다. 따라서 아귀가 좁아서 물이 한꺼번에 시원하게 쏟아질 수 없는 그릇으로 손을 씻어서는 안 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각각의 손에 물을 두 번 붓는 것이다.
5. 양손을 씻은 후에 양손을 비빈다. 그러고는 “너희의 손을 들라”는 시편 134편 2절의 말씀처럼 두 손을 뻔쩍 쳐든다. 그러고 나서 물기를 말리기 전에 다음과 같은 축복기도문을 낭송한다. “복 받으시옵소서. 오 주님, 우리의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 당신의 계명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손 씻는 것에 대해서 저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위의 제8장 8섹션에서 진술된 대로 축복기도문은 가르침을 이행하기 전에 모든 다른 경우에서도 낭송되어야 하지만, 손을 씻는 경우에 있어서는 사람의 손들이 때때로 불결하기 때문에 축복기도문이 씻은 후에 낭송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제정되었다. 게다가 손을 말리는 것 또한 가르침을 이행하는 일부분이다.) 각각의 손에 두 번 물을 붓는 것이 관행인 사람은 각각의 손에 한 번씩 먼저 물을 붓고, 손을 비비고, 축복기도문을 낭송하고,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물을 부어야한다. 양손을 철저하게 말리는 것에 조심해야한다. 입고 있는 셔츠에 손을 말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억에 유해하기 때문이다.
6. 만일에 한 손에 물을 부은 후에 다른 손이나 다른 사람의 손에 닿았다면, 손에 묻은 물은 접촉에 의해서 오염되어진 것이다. 따라서 손을 완전히 말린 후에 다시 씻어야한다. 그러나 접촉이 축복기도문을 낭송한 후에 일어났다면, 축복기도문을 다시 낭송할 필요는 없다.
7. 만일에 물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흐르는 물이나 여성침례의식용 물탱크나 우물 속에 두 손을 담가도 된다. 그 속에 40세아(seahs)의 물이 없더라도 두 손이 단번에 잠길 수 있는 충분한 물이 있다면, 축복기도문, ‘알 네티라트 야다윔’(Al Netilat Yadayim)을 낭송할 수 있다. 급한 상황에서는 여성침례의식용 탱크에 요구된 40세아(seahs)의 물을 만들 만한 양의 눈이 땅에 있다면, 두 손을 눈 속에 담가도 된다. 펌프 물로 손을 씻는다면, 한 손을 땅에 놓고, 다른 손으로 펌프질하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펌프질해야한다. 두 손이 다 땅보다 높은 곳에 있으면 펌프 물로 씻는 것은 무효가 된다.
8. 만약 장소 때문이거나 무언가가 그 속에 떨어져서 물색깔이 변색되었다면, 그 물은 손을 씻는 의식용 물로 적합지 않다. 그러나 만약 물색깔이 자연적인 이유로 물이 변색되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릇을 씻었거나 채소를 담갔거나 그 속에 마실 것들을 차게 하기 위해서 담은 용기를 놓았거나 양을 재기 위해서 놓았던 그릇을 놓았던 물, 곧 변색됐거나 다른 용도로 일단 한번 사용된 물은 그것이 무엇에 의한 것이든지 간에 손을 씻는 의식용 물로 적합지 않다. 어떤 권위자들은 역겹게 된 물, 예를 들면, 개나 돼지가 마셨던 물은 더러운 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우리는 것이 좋다.
9. 손을 씻기 전에 물을 만진다 해도 물은 더럽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장실을 나올 때, 세숫대야를 놓은 상태에서 그것으로 손을 씻기 위해서 통에서 물을 떠 담을 수 있다. 그리고 남은 물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손을 씻기 위해서 물속에 손을 담갔거나 심지어 작은 손가락 하나라도 그것을 씻기 위해서 물속에 담갔다면, 그 물은 손을 씻는 의식용 물로써 적합지 않게 된다. 이미 그 물로 무언가 일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10. 소금물, 오염된 물, 쓰거나 탁한 물, 개가 마시기에 적합지 않은 물은 식사 전 손을 씻는 의식용 물로 적합지 않다.
11. 손을 씻기 전에 손을 덮고 있는 것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손들을 살펴봐야 한다. 손과 물 사이에 장애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손톱이 자랐을 때는 손톱에 낀 때나 흙먼지를 제거하고 청결히 해야 한다. 또한 손을 씻기 전에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야한다.
12. 손에 물감으로 물들었고, 손에 물감찌꺼기가 남아있지 않다면, 장애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작은 양의 물감찌꺼기라도 손에 남아있다면 장애물로 간주된다. 페인트업자나 정육업자의 손에 피가 묻었거나 서기관의 손에 잉크가 묻었을 때, 그 같은 것이 일상적이고, 동일한 직종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면, 그것이 손의 큰 부분을 덮고 있지 않는 한 장애물로 간주되지 않는다. 손에 멍이 들었거나 깁스를 했을 경우, 그것을 제거하게 되면 고통이 따르는 경우에는 장애물로 간주되지 않는다.
13. 물은 손의 힘으로 붓는 것이라야지, 저절로 흘러나오는 물은 손을 씻는 의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물구멍이 있는 통의 물마개를 빼고 나서 첫 번에 쏟아지는 물은 손의 힘으로 붓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로부터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물은 저절로 흘러나오는 물로 간주되어 적합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물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로 손을 씻기를 원한다면, 첫 번에 쏟아지는 물에 손 전체를 적시도록 유의해야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같은 통의 물로 손을 씻기를 원한다면, 물구멍을 마개로 막았다가 열어서 첫 번에 쏟아지는 물에 손을 적셔야 한다. 만약 쏟아지는 물의 양을 판단할 수 없다면 이런 방법으로 손을 씻지 말아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물구멍이 작거나 쏟아지는 물의 양이 충분치 않아서 손 전체를 적실 수 없다면, 이 물통에서 나오는 물로는 손을 씻지 말아야 한다.
14. 먼저 손을 씻지 않고서는 먹는 것이 금지된다. 두 손을 천으로 감쌌다하더라도 안 된다. 만일 여행 중인 사람이 물을 갖지 않았으나 진행방향 6.5킬로미터, 지나온 방향 1.6킬로미터 이내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면, 먹기 전에 손을 씻기 위해서 그곳까지 가야한다. 그러나 만약 진행방향 6.5킬로미터, 지나온 방향 1.6킬로미터 이내에서 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단체여행중이어서 동행과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서 손을 씻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면, 천으로 손을 싸거나 장갑을 끼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15. 음식을 앞에 놓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은 손을 씻고 축복기도문, ‘아쉐르 야짜르’(Asher Yatzar)를 낭송해야 한다. 그리고 또 식사를 위해서 손을 씻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들이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해야 할 적절한 일은 식사 전 손 씻기에 미치지 못하는 방법으로 먼저 손을 씻는 것이다. 방법은 한 손바닥에 물을 조금 붓고 그것으로 양손을 비벼야 한다. 그러고 나서 양손을 잘 말린 후에 축복기도문, ‘아쉐르 야짜르’(Asher Yatzar)를 낭송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식사 전 씻기에 대해서 기술한 대로 손을 씻고, 축복기도문, ‘알 네티라트 야다윔’(Al Netilat Yadayim)을 낭송한다.
16. 만약 식사 중에 보통은 옷으로 가려져 있는 신체의 일부를 만졌거나 이마를 긁었거나 소변을 보았으면, 축복기도문 낭송 없이 반드시 다시 손을 씻어야 한다. 심지어 식사 중에 배변을 했을 때에도 축복기도문, ‘알 네티라트 야다윔’(Al Netilat Yadayim) 낭송 없이 손을 씻도록 되어 있다.
17. 만약 액체에 담갔던 음식을 먹거나 액체를 음식 위에 부었다면, 액체가 있는 음식부분을 만지지 않았더라도, 축복기도문, ‘알 네티라트 야다윔’(Al Netilat Yadayim) 낭송 없이 먼저 손을 씻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관대하게 처리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것을 엄격하게 한다.
18. 위의 법과 관련된 액체들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포도주식초를 포함해서 포도주, 벌꿀, 올리브오일, 유장(乳漿)을 포함해서 우유, 이슬, 의료목적으로 사용되는 소와 동물과 가금류의 피, 그리고 물이 그것들이다. 다른 과일 주스들, 심지어 과일을 짜서 음료수를 만드는 곳에서조차 언급된 일곱 가지처럼 액체로 간주되지 않는다.
19. 설탕은 액체가 아니기 때문에 설탕에 잰 과일들은 손 씻기 의식에 해당되지 않는다. 과일즙도 과일주스이기 때문에 액체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꿀에 잰 과일은, 꿀이 잘 응고되기 때문에 더 이상 액체로 간주되지 않고 단단한 음식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손 씻기가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꿀이 응고되지 않아 조금 돼지긴 했지만 여전히 액체인 경우에는 손 씻기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우유에 포함된 버터는 액체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일지라도 응고되었다가 녹으면 액체이다.
20. 일반적으로 스푼이나 포크 없이 먹게 되는 음식은 스푼이나 포크로 먹는다 해도 손 씻기가 요구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스푼이나 포크로 먹게 되는 음식은,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스푼이나 포크로만 먹게 되는 곳에서는 팬케이크나 꿀에 잰 과일 또한 손 씻기가 요구되지 않는다.
21. 물로 형성된 모든 물질은 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물은 굳어졌더라도 여전히 액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을 소금에 찍는다면, 손을 씻어야 한다. 옥수수나 과일로 만든 브랜디는 법에 따라 액체로 간주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옥수수나 과일의 증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량의 물을 포함하고 있고, 게다가 소량의 물이 혼합되어 있지만, 그 양이 극히 미미하고, 그것에 무엇인가를 찍어서 먹는다면, 손을 씻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포도의 알갱이와 껍질 혹은 술 찌꺼기로 만든 위스키는 명백하게 액체로 간주되어야 한다.

B. 예수님의 반응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관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첫째,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위생의 문제이지 성결의 문제는 아니란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유대인들의 손 씻기는 손에 물을 부어서 흘러내리는 수준이었지 더러움을 씻는 데 있지 않았다. 따라서 종교의식으로써의 손 씻기는 위생의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를 못했다.
둘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육신의 문제이지, 영적인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유대인들의 손 씻기는 영적인 청결회복을 상징하는 것이었지, 실제로 영적인 청결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영적으로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수와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와 같은 것들이라고 하셨다. 또 유대인들의 형편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하신 말씀이 “회칠한 무덤”(마 23:27)이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시체 썩는 악취가 진동했던 것이다. 정작 씻어야 할 것은 마음이었지 손이 아니었던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사람의 유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다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막 7:13)고 하셨다. 그러므로 헛된 경배라고 하셨다(막 7:7).

C. 유대인들의 문제점
손을 씻고 나서 낭송하는 기도문들은 그 역사가 2천년이나 된다. 손을 씻는 것은 불결함과 더러움을 제거하고, 영적인 청결함을 회복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것은 2000년 전 제사장이 매일의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손을 씻도록 한 성전예배와 관련이 있다. 제사장이 손을 씻는 것은 성별의 행위였다. 유대인들은 제사장의 행위를 본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에서 손을 씻는다고 한다. 이토록 하나님께 깊은 존경심을 표하고, 손을 씻어 성별되기를 바라는 유대인들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가? 이렇게 엄격하게 율법적으로 사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 6절에서 “외식하는 자”라고 하셨고, 8절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킨다.”고 하셨으며, 13절에서는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기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엄청난 독설을 들어야했는가?
첫째,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본질문제에 접근하신 예수님은 외적인 허례허식에 매달리는 유대인들의 문제가 신앙심의 자만과 우월감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치부하여 일체의 접촉을 꺼렸고,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들을 죄인취급하고 멸시함으로써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실패하였다. 겉껍데기 사슬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눈이 있어도 직시하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으며, 머리가 있어도 깨닫지 못했고, 가슴이 있어도 느끼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지적하셨듯이 그들은 랍비들이 만든 율법에 매여서 의(justice)와 인(mercy)과 신(faithfulness)을 버렸던 것이다.
둘째,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이외에도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로써 주신 구전(口傳)율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유대교에서는 성경의 율법은 원리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세세하고 복잡한 현실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세한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바벨론 유배이후부터 유명한 유대 랍비들이 고대의 전승(傳承) 자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세세한 생활 규범들을 정비하여 집성(集成)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장로들의 유전(遺傳)이었다. 이 가운데 정결에 관한 법은 미쉬나의 6개 항목들 가운데 여섯 번째에 실린 ‘토호라’(Tohorah)인데, 의식적 정결과 부정함에 관한 내용으로써 모두 12개의 소단위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손 씻는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셋째, 장로들의 유전은 외형상으로 볼 때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명과 동일한 수준에 놓으려했다는 점과 율법의 목적과 정신은 외면한 채, 법규를 지나치게 상세히 규정해 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justice)와 인(mercy)과 신(faithfulness)은 버리고, 신앙심의 자만과 우월감만을 자극했다는 점에서 장로들의 유전에 문제가 있었다. 손을 씻는 것은 위생에는 더없이 좋은 것이지만, 손을 씻는다고 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며, 더더욱 영혼이 성결해지는 것도 아니다. 청결을 위해서 손도 열심히 씻어야 하지만, 더더욱 마음을 써야할 일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청결과 영혼의 성결이다.

Ⅱ. 유대교인들의 ‘카샤룻’ 음식법

A. 음식법
여기서는 유대인들의 음식법에 대해서 9가지로 살펴보려고 한다.
1. 유대인들에게는 보편적인 사고의식이 있다. 첫째, 유대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 곧 사람과 동식물, 사물 등이 세 가지 중에 하나에 속해 있다고 믿는다. 부정(不淨)한 것(unclean), 정(淨)한 것(clean), 거룩한 것(holy)이 그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야한다. 만일 무슨 이유로 해서 부정해졌다면 깨끗하게 씻어야한다. 그래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합당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사고의식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과 사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에는 정한 동물이 있는가하면, 부정한 동물이 있고, 그릇에는 정한 그릇이 있는가 하면 부정한 그릇이 있으며, 음식에도 정한 음식이 있고, 부정한 음식이 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은 정한 것만 먹고 정한 것만 사용해야한다.
2. 유대인들에게는 까다로운 음식법이 있다. 첫째, 유대인들은 이 음식법을 ‘카샤룻’(Kashrut)이라 부른다. ‘카샤룻’은 무슨 음식은 먹을 수 있고, 무슨 음식은 먹을 수 없는지, 그 같은 음식들을 어떻게 조리해서 먹어야 하는지를 다룬 유대인의 율법이다. 둘째, 이 ‘카샤룻’에 의해서 먹기에 합당한 음식과 의식과 의식용에 합당한 물건들을 ‘코숴’(kosher)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는 가공식품이 많기 때문에 음식에 무슨 성분이 들었는지, 어떻게 가공됐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랍비들이나 인증단체에서 철저히 조사해서 제품에 인증마크를 찍어준다. 코숴’ 소비자들은 인증마크를 보고 구입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셋째, 먹을 수 없는 음식이나 쓰기에 부적당한 것들을 ‘트레이프’(treyf)라 부른다. ‘트레이프’란 문자적으로 ‘찢긴’이란 뜻인데, 다른 동물들에 찢긴 동물들을 먹지 말라는 계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3. 왜 유대인은 까다로운 ‘카샤룻’ 음식법을 지키는가? 유대인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첫째, 하나님의 계명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유대인들은 이 ‘카샤룻’ 음식법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거룩함에로 부르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정결과 불결, 성결과 불경사이를 구별하는 능력은 유대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을 수 없는가에 대한 율법들을 부과한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본능까지도 조절하란 뜻이 있다는 것이다. 랍비 도닌은 ‘카샤룻’ 율법들이 음식을 먹는 단순 행위를 종교의식에로 승화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랍비 문학에서 유대인의 저녁 테이블은 때때로 성전 제단에 비교되어진다. 셋째, ‘코숴’ 음식은 매우 위생적이다.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으면 소화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있다. 낙타와 돼지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낙타가 식용보다는 짐을 나르는 데 더 유용하기 때문이고, 중동기후에서 돼지는 식용가치보다는 사료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넷째, ‘카샤룻’ 음식법에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외경사상이 들어있다는 주장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음식물은 채식뿐이었고, 실제로 채식만 했다는 것이다(창세기 1:29). 육식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허락되었고, 육식으로 인해서 생명파괴가 불가피해졌지만, 육식만을 위한 생명파괴가 금지되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하나님만이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유대인은 하나님께 드린 제물만을 육식으로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여 년 전 성전이 파괴된 이후 희생제사가 사라지고부터는 이 방법으로는 육식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절차 없이 마구 잡아먹을 수도 없었다. 비록 희생제사는 사라졌지만, 음식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생긴 종교의식적인 도살을 ‘쉐히타’(shechitah)라 부르게 되었고, 이 도살을 종교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쇼헽’(shochet)이라 부르게 되었다. ‘카샤룻’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쇼헽’에 의해서 ‘쉐히타’ 방법으로 도살되지 아니한 고기를 먹지 않는다. 먹을 수 있는 ‘코숴,’ 곧 합당한 고기가 아닐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도살된 생명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섯째, 일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카샤룻’ 음식법을 주신 것은 이교인과의 교제를 막으려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음식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일수록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꺼린다.
4. ‘카샤룻’ 음식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일부 동물들의 살코기, 기관(내장), 알, 젖 모두를 식용으로 쓸 수 없다. 둘째, 먹을 수 있는 새와 포유동물도 음식법에 따라 도살되어야한다. 셋째, 먹기 전에 고기에서 모든 피를 빼내거나 구어야 한다. 넷째, 허용된 동물들의 특정 부위들은 먹을 수 없다. 다섯째, 고기를 유제품과 함께 먹을 수 없다. 물고기, 알(달걀), 과일, 채소와 곡식은 고기든 유제품이든 함께 먹을 수 있다. 여섯째, 고기에 접촉된 그릇들은 유제품에 사용될 수 없다. 또 반대로 유제품에 접촉된 그릇들은 고기에 사용될 수 없다. ‘코숴’가 아닌 음식에 접촉된 그릇들은 ‘코숴’ 음식에 사용될 수 없다. 일곱째, 비유대인들이 만든 포도제품들을 먹을 수 없다.
5. 유대인들에게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 발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동물은 어떤 것이나 먹을 수 있다(레 11:3; 신 14:6). 양, 소, 염소, 사슴은 먹을 수 있지만, 낙타, 토끼, 오소리, 돼지는 먹을 수 없다. 둘째,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먹을 수 있다(레 11:9; 신 14:9). 따라서 오징어, 낙지, 꼴뚜기, 문어, 새우, 굴, 갯가재, 조개류, 게류와 같은 갑각류는 먹을 수 없다. 상어, 고래, 미꾸라지 등도 먹을 수 없다. 셋째, 포식성이나 썩은 고기를 먹어치우는 새들은 먹을 수 없다(레 11:13-19; 신 14:11-18). 독수리, 매, 타조, 부엉이, 펠리칸, 갈매기, 박쥐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닭, 거위, 오리,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는 먹을 수 있다. 넷째, 곤충은 먹지 못한다(레 11:22). 다섯째, 쥐, 다람쥐 같은 설치류, 파충류, 양서류는 먹는 것이 금지된다(레 11:29-30, 42-43).
6. 식용이 허용되는 동물일지라도 ‘카샤룻’ 음식법에 따라서 도살해야 먹을 수 있다(신 12:21). 질병이 없는 것이어야 하고(민 11:22), 스스로 죽은 것(신 14:21)이나 다른 동물에 살해된 것을 먹지 말아야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카샤룻’ 음식법 ‘쉐히타’(shechitah)에 따라서 ‘쇼헽’(shochet)이 도살하는데, 도살방법은 흠집이 없고 고르며 완벽하게 날이 선 칼날로 목구멍을 가로지르는 신속하고 깊은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고통이 없고, 2초 이내에 의식이 사라지게 하며, 가능한 범위에서 짐승을 가장 자비롭게 죽이는 도살로 알려져 있다. 이 ‘쉐히타’의 방식의 장점은 빠르게 완전하게 피를 빼낼 수 있다는 것이다. 피를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쇼헽’은 단순히 도살자가 아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어야 하며, 유대인의 율법, 특히 ‘카샤룻’ 음식법을 잘 훈련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랍비가 ‘쇼헽’의 일을 함께 보기도 한다.
7. ‘카샤룻’ 음식법에 따라서 도살된 고기라도 먹기 위해서는 피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첫째,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레 17:11)는 것과 피를 먹지 말라(레 7:26-27, 17:10-14)는 말씀 때문에 유대인은 피를 먹지 않는다.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먹기에 합당한 ‘코숴’ 고기는 피를 완전히 제거한 고기이다. 둘째, ‘쇼헽’의 신속한 도살로 대부분의 피는 빠지지만, 그래도 남은 피는 굽거나 담가서 소금을 뿌려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간은 굽는 방법으로만 ‘코숴,’ 곧 합당한 음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도살 후 72시간 이내에 고기가 얼거나 갈아서 잘게 부수기 전에 피 빼는 과정이 이뤄져야한다. 셋째, 피가 섞인 알(계란)은 먹지 않는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알이 발견되기 때문에 알을 먼저 깨서 그릇에 넣고, 요리하기 전에 피가 섞였는지 점검해야한다.
8. 비유대인이 만든 포도주와 포도제품들의 사용을 금하고 있다. 포도주는 모든 고대종교들의 의식들에서 흔하게 사용되었고, 그것이 제조되는 동안 이교적인 목적들을 위해서 흔하게 성별되었기 때문에 비유대인에 의해서 제조된 포도주와 다른 포도제품들의 사용을 금하고 있다. 우상숭배를 막자는데 그 뜻이 있다. 이 ‘카샤룻’ 음식법은 포도주와 포도주스에만 적용된다. 그러나 포도주스로 단맛을 낸 많은 과일음료나 과일 맛 음료에도 적용되며, 포도주 발효 때 통에 가라앉는 침전물로 제조된 베이킹파우더의 사용도 안 된다.
9. 모든 유대인들이 ‘코숴’를 지키는가?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약 25-30퍼센트가 대체로 ‘코숴’를 지킨다고 한다. 이스라엘거주 유대인들의 경우 대략 40퍼센트가 ‘코숴’를 지킨다고 본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정통주의 유대인들, 많은 수의 보수주의와 재건주의 유대인들, 그리고 일부 개혁주의 유대인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지키는 기준들은 실질적으로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1990년의 전국 유대인 인구조사에 따르면, 유대인 가정들의 약 17퍼센트만이 항상 ‘코숴,’ 곧 합당한 고기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보다 더 엄격하게 ‘카샤룻’ 음식법을 지키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일수록 정통주의 ‘코숴’인증 마크가 찍힌 음식만을 고집할 것이고, 정통주의 ‘코숴’인증이 없는 식당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세운 높은 기준에 따라 음식을 조리할 줄 모르는 사람의 식사 초청에도 당연히 응하지 않을 것이다.

B. 제기된 문제의 답
들어가는 말에서 문제제기를 했었다. 왜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는지, 왜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힐난했는지, 왜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먹다가 유대인 성도들을 보고 자리를 피했는지, 왜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힐난했는지를 물었다. 이런 물음에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음식법에 대해서 일부이긴 하지만 장황하게 살펴보았다.
그 이유가 명백해졌다.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엄격하게 ‘카샤룻’ 음식법을 지킨다. 그래서 이 음식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집이나 음식점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또 그들의 음식법에 의해서 엄격하게 만들어진 식료품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이방인과의 식탁교제를 꺼린 이유였다.
그러면 왜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이 동족인 죄인과 세리들과의 식탁교제를 꺼렸는가? 그들이 율법대로 살지 않았거나 가난 때문에 ‘카샤룻’ 음식법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세리들의 경우 돈은 있지만, 로마정부를 위해서 일했던 자들이었던 만큼 율법을 충실하게 지킨 자들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죄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엄격한 율법을 따라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 특히 음식법과 정결법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힐난했던 것으로 보인다.

C. 예수님의 반응
언제나 본질에 접근하시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힐난에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반응하셨다.
첫째, 마태복음 9장 12-13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제사보다는 긍휼을 원하신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을 책망하셨다. 율법에 매여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렸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고 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검사의 눈으로 세리와 죄인들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의사의 눈으로 보셨다. 의사는 사람이 병들었다고 해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의사는 사람을 볼 때 병들어 쓸모없게 되었다고 소망을 끊지 않는다. 의사는 병자에 대해 병만 치료해 주면 건강하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의사의 사명은 병을 치료해 줌으로써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영적 의사로서 죄인을 치료해 주시고 살리기 위해서 오셨던 것이다. 살림의 일을 위해서 생명의 빛으로 오셨던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 15-16절에서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그들을 책망하셨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그 음식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성결하다 해도, 사람을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었다.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마음의 악을 제거하는 것이지, 특정 음식을 먹고 안 먹는 것에 있지 않다는 말씀이었다.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만과 우월감에 빠져 세리와 죄인들을 멸시하는 것은 마음의 악이 가득한 때문이요, 이것을 제거하지 않은 채, ‘코숴’ 음식만 먹는다고 해서 결코 성결해질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있지 않고, 그들의 외식에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고, 허례허식에 치우쳤던 것이다.

Ⅲ. 유대인들의 그릇 씻기법

A. 그릇 씻기법
여기서는 유대인들의 그릇 씻기법에 대해서 9가지로 살펴보려고 한다.
1.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에서 그릇 씻기법에 대한 당위성을 찾고 있다. 유대인들이 그릇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출애굽기 23장 19절의 계명, “너는 염소새끼를 어미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에 두고 있다. 이밖에도 출애굽기 34장 26절과 신명기 14장 21절에 근거하고 있다.
2. 유대인들은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함께 먹지 않는다. 구전율법에서는 “염소 새끼를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는 계명을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함께 먹지 말라는 계명이라고 설명한다. 랍비들은 이것을 확대시켜 우유와 가금류고기를 함께 먹는 것까지 금지시켰다. 그러나 물고기와 우유제품을 함께 먹는 것은 허용되며, 보편화되어있다. 우유제품과 알(계란)을 함께 먹는 것도 허용된다.
3. 유대인들은 우유제품과 고기제품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어떤 경우에도 섞이지 않게 한다. 생명을 주는 요소인 젖과 생명이 없는 죽은 고기를 함께 섞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탈무드에서는 고기와 물고기를 함께 조리하는 것과 동일한 접시에 담는 것까지 금하고 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우유제품의 음식과 고기제품의 음식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섞이지 않도록 힘쓴다. 이 관행 역시 ‘카샤룻’ 음식법에 속하는 것이다. 이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두 벌의 그릇들, 곧 두 벌의 냄비, 두 벌의 조리 팬, 두 벌의 접시, 두 벌의 용기, 두벌의 포크와 나이프까지 구비하고 있다. 그릇의 경우 한 벌은 우유제품에만 사용하고, 또 한 벌은 고기제품에만 각각 사용한다. 우유제품이 담겼던 그릇에 고기제품을 넣게 되면 젖과 고기를 섞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유제품에 사용했던 나이프나 포크는 고기제품을 먹을 때는 사용하지 않는다. 설거지 할 때도 섞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각각 다른 걸이를 사용해서 각각 세척한다. 고기제품용 식기와 우유제품용 식기를 같은 싱크에서 동시에 닦는 일은 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두 조의 싱크대를 설치하여 하나는 우유제품 그릇 설거지용으로, 다른 하나는 고기제품 그릇 설거지용으로 사용한다. 설거지용이 하나뿐일 경우에는 그릇을 싱크에 담가놓고 설거지하면 안 된다. 물을 틀어놓은 상태에서 그릇을 손에 들고 씻거나 개수통을 각각 준비해야한다. 설거지를 마친 그릇을 말리는 수건도 각각 구비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4.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먹을 때는 충분한 시간 간격을 둔다. 고기를 먹은 후 바로 우유제품을 먹거나 반대로 우유제품을 먹은 후 바로 고기제품을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뱃속에 들어가 섞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이 ‘카샤룻’ 음식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렇다면 고기음식을 먹은 후 얼마를 기다려야 우유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혹은 우유음식을 먹은 후에 얼마를 기다려야 고기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전통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소 세 시간에서 여섯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보통 독일계 유대인들은 고기를 먹은 후 최소 세 시간은 기다린 후 우유나 우유 섞인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동부 유럽의 유대인들은 여섯 시간, 네덜란드계의 유대인들은 최소 한 시간을 기다린다고 한다. 지방이나 고기 찌꺼기들이 이빨사이에 끼어 남기 때문이다.
5. 유대인들은 음식과 그릇들을 세 가지 범주로 구별한다. 유대인들은 이디시 언어인 ‘플레이쉬크’(fleishik), ‘밀히크’(milchik), ‘파레베’(pareve)가 음식과 그릇들을 세 가지 범주로 구별하는 데 흔히 사용된다. ‘플레이쉬크’는 고기란 뜻이고, ‘밀히크’는 우유, ‘파레베’는 그 밖의 음식을 뜻한다. 어떤 식품에 아주 소량의 우유나 고기가 함유되었다고 하자. 그래도 ‘카샤룻’ 음식법에서는 그 식품 전체를 우유제품이나 고기제품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마가린 제품들은 우유제품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우유제품의 맛을 내기 위해서 소량의 유장(乳漿), 곧 치즈를 제조한 후 분리되는 수용액이나 다른 우유제품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 지방은 ‘카샤룻’ 음식법에서 고기제품으로 간주된다.
6. 유대인들은 그릇이든 음식이든 ‘코숴,’ 곧 먹고 쓰기에 합당한 것들만 사용한다. 유대인들은 부정(不淨)한 것을 먹거나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정하게 된 것은 반드시 정(淨)하게 된 후에 먹거나 사용한다. 이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도리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거룩한 백성의 지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7. 유대인들의 그릇들은 반드시 ‘코숴,’ 곧 정(淨)한 것이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음식에 쓰는 모든 용기들은 고기제품용, 우유제품용, 그 밖의 제품용으로써 지위가 주어지고, 그 지위를 그대로 유지시켜줘야 정한 그릇으로 남는다. 만일에 고기를 조리했거나 고기를 담아 먹었던 그릇에다 우유제품을 조리하거나 우유제품을 담아 먹으면, 그 그릇은 고기제품용 지위에서 우유제품용 지위로 바뀌게 되고, 그 이유로 인해서 부정한 그릇이 되고 만다. 부정한 그릇은 법도에 따라 정하게 한 후에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만일 소스팬에서 닭스프를 조리했다면, 그 팬은 고기가 된다. 그러고 나서 만일 동일한 소스팬에다 우유를 데운다면, 그 팬의 고기제품용 지위가 우유에로 옮겨지고, 또 우유의 우유제품용 지위가 그 팬에 옮겨진다. 그렇게 돼서 그 팬과 그 우유 모두를 금지된 혼합이 되게 만든다. 음식이나 그릇의 지위는 음식에서 그릇에로 혹은 그릇에서 음식에로, 곧 열을 받은 음식에로 옮겨질 수 있다. 그래서 만일 ‘코숴’시설, 곧 합당한 시설이 아닌 곳에서 찬 음식을 먹고 있다면, 접시의 상태는 이슈가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같은 나이프를 사용해서 찬 고기와 치즈를 잘게 자를 수 있다. 다만 한쪽을 자르고 난 다음에는 나이프를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 스토브 표면이나 싱크 속은 흔하게 ‘코숴,’ 곧 쓰기에 부적합한 기구들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흔하게 고기와 열을 가한 유제품 모두에 접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접시를 씻을 때에 그것들을 직접적으로 싱크에 담그지 말고 각각의 개수통을 따로 사용하거나, 스토브 위에 무엇을 놓을 때는 바닥에 닿지 않도록 스푼 받침대와 거치대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접시세척기들은 ‘카샤룻’ 문제를 갖고 있다. ‘코숴’ 가정에서 접시세척기를 사용하려고 한다면, 고기제품과 우유제품 그릇들을 위한 각각의 접시 걸이 대를 갖거나 따로 따로 세척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에 따라서 각각의 타월들과 냄비 집게들을 준비해서 사용해야한다. 평소에 ‘코숴’ 품목들을 세척할 때에도 고기와 우유제품을 구별해서 세척해야한다.
8. 부정한 것을 정하게 하는 데도 법도가 있다. 더러워진 싱크는 끓는 물로 깨끗이 닦는다. 싱크 전체를 한 군데도 빠짐없이 끓는 물을 부어 닦아낸다. 물은 붓는 순간 계속 끓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전기 주전자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한다. 물이 끓는 상태에서 전기 플러그를 빼지 않으면 물이 끓는 상태를 쉽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븐이 더러워졌으면 불로 지진다. 용접용 토치를 사용하여 오븐의 내부를 한 군데도 빠짐없이 불로 지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 가정들에는 휴대용 프로판가스 토치가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어떤 유대인들은 오븐을 최고 온도로 반시간 이상 틀어 놓아 정하게 한다고 한다. 냄비나 주전자 등은 끓는 물에 삶아서 깨끗하게 한다. 그러나 기름을 사용한 경우에는 오븐과 마찬가지로 불로 지져서 깨끗하게 한다. 나이프나 포크처럼 전체가 쇠로 만들어진 것이면 끓는 물에 삶아 깨끗하게 한다. 그러나 쇠와 다른 재질이 혼합된 제품이면 먼저 하루 동안 격리시켜 놓는다. 하루가 지난 후 깨끗이 닦아 끓는 물에 넣어 삶는다. 물에 넣을 때는 백 퍼센트 완전히 끓는 물속에 넣어야 하며, 어느 한 부분이라도 끓는 물에 접촉이 되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 따라서 다른 그릇들과 겹쳐서 물에 닿지 않는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물은 계속하여 팔팔 끓는 상태여야 한다. 이때 고기제품에 사용한 것과 우유제품에 사용한 그릇들은 각각 다른 용기에 넣고 삶아야한다.
9. 유대인의 식탁은 거룩함을 훈련하는 장소이다. 유대인은 가장 기본적인 먹는 행위에서 거룩함을 연습한다. 그것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주 철저하게 연습한다. 유대인의 식탁은 신성한 식탁이다. 특히 안식일의 식탁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식탁이다. 유대인의 음식법은 유대인의 성결(聖潔)한 삶을 위한 절실하고도 진지한 노력 그 자체이다.

B. 제기된 문제의 답
들어가는 말에서 왜 유대인들은 신경 써서 그릇들을 씻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했었다. 유대인들이 그릇 씻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염소새끼를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 때문이란 점을 장황하게 살펴보았다. 구전율법에서는 이 계명을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함께 먹지 말라는 뜻으로 가르쳐왔다.
이런 가르침을 토대로 랍비들은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함께 먹지 못하도록 하는 복잡한 ‘카샤룻’ 음식법을 발전시켜 왔다. 유대인들은 우유제품과 고기제품을 철저하게 분리시켜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충분한 시간 간격을 두고 따로 먹었고,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에 사용하는 그릇들을 철저하게 분리시켰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두 벌의 조리 용기, 두 벌의 접시, 두벌의 포크와 나이프까지 구비해 놓고 썼으며, 한 벌은 우유제품에 또 다른 한 벌은 고기제품에 따로 따로 사용했다. 설거지할 때 고기제품용 식기와 우유제품용 식기를 같은 싱크에 담그지 않을 뿐 아니라, 개수통을 각각 사용하거나 두 조의 싱크대를 설치하여 하나는 우유제품용 그릇, 또 다른 하나는 고기제품용 그릇 설거지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설거지를 마친 그릇의 물기를 닦는 수건도 각각의 것을 사용했다.
음식을 조리하는 중에 알게 모르게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이 섞임으로써 부정해졌을 조리 기구들과 그릇들은 지속적으로 끓는 물을 부어 닦아내며, 용접용 토치를 사용하여 불로 지지기도 하고, 끓는 물에 푹 담가 삶는다. 물은 지속적으로 끓는 상태여야한다. 삶을 때에는 고기제품용과 우유제품용을 각각 따로 삶아야한다.
“염소새끼를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는 한 마디 하나님의 계명을 이토록 어렵고 힘겹게 지키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다. 그 어느 민족, 어느 누구도 이토록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지 못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의도는 하나님의 계명을 추호도 어길 수 없도록 두꺼운 울타리를 겹겹이 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점점 더 본질에서 멀어졌고, 심지어 하나님의 계명까지 어기는 불행한 일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C. 예수님의 반응
언제나 본질에 접근하시는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난맥상을 간파하셨고, 지적하셨으며, 결국 유대인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릇 씻는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25-28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유대인들을 힐난하셨다.

[25]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 겉도 중요하지만, 속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겉이 깨끗한 것도 중요하지만, 속이 깨끗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속이 깨끗하고, 의(義)와 인(仁)과 신(信)으로 속이 꽉 차야 하나님의 계명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지, 속이 무덤 속처럼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겉만 페인트칠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명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나오는 말
‘유대인들의 음식법에 관한 고찰’은 크게 세 가지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얻어 보려는 데서 출발됐다. 이들 물음들은 유대교인들의 ‘식사전 손씻기법,’ ‘카샤룻 음식법,’ 그리고 ‘그릇 씻기법’에 대한 것들이다. 이들 세 가지 율법들은 모두가 예수님과의 논쟁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래서 이들 세 가지 율법들이 어떤 것들인가를 살펴보았고, 제기된 문제의 답을 제시하였으며, 유대인들의 문제점과 예수님의 반응을 짚어 보았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위생의 문제이지 성결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입을 통해서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육신의 문제이지, 영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사람의 유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성결하다 해도, 사람을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히셨다.
유대인들은 엄격하게 ‘카샤룻’ 음식법을 지킨다. 그래서 이 음식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집이나 음식점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또 그들의 음식법에 의해서 엄격하게 만들어진 식료품이 아니면 사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염소새끼를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엄격하고 힘겹게 지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추호도 어길 수 없도록 계명에 두꺼운 울타리를 겹겹이 친다. 그러다보니까 점점 본질에서 멀어졌고, 심지어 하나님의 계명까지 어기는 불행한 일들이 발생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본질문제에 접근하신 예수님은 외적인 허례허식에 매달리는 유대인들의 문제가 신앙심의 자만과 우월감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이외에도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로써 주신 구전(口傳)율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명과 동일한 수준에 놓으려했다는 점과 율법의 목적과 정신은 외면한 채, 법규를 지나치게 상세히 규정해 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버리고, 신앙심의 자만과 우월감만을 자극했다. 손을 씻는 것은 위생에는 더없이 좋은 것이지만, 손을 씻는다고 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며, 더더욱 영혼이 성결해지는 것도 아니다. 청결을 위해서 손도 열심히 씻어야 하지만, 더더욱 마음을 써야할 일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청결과 영혼의 성결이다.

참고자료
“Washing the Hands Before Meals.”
http://www.ok.org/Content.asp?ID=126.
“Jewish Dietary Laws.” http://www.jewfaq.org/kashrut.htm.
조동호 역. “유대교인들의 식사전 손씻기법.”
http://kccs.pe.kr →성경연구→신약성경관련.
조동호 역. “카샤룻: 유대인의 음식법.”
http://kccs.pe.kr →성경연구→신약성경관련.
최명덕. “유대인의 식탁법(Kosher).”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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