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4장12절)
인류의 최대의 적은 핵이 아니라 사망입니다. 이것 때문에 죽기가 무서워 마귀의 공갈협박에 벌벌 떨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고도 세상의 지시와 교육에 고분고분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은 지구인의 스타일이 아닙니다. 스케일이 다르고 클래스가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구에서 외계인입니다. 화성이나 금성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이 된 하늘나라 시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으로 남을 구원 시킬 뿐 아니라 그 스피치가 힐링이 됩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의 생명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가 좋다 나쁘다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한 생기 넘치는 목소립니다. 졸깃졸깃하면서 맛이 있지요.
사실 설교는 구원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구원에 포함이 된 힐링이 되어야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로 10년을 제 설교를 이해하지 못한 채 교회 출석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간혹 가다 ‘아니 말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뭘 하러 교회는 와요?’ 하면 그냥 말씀을 들으면 머리가 시원해서 온 대요. 나 참 기가 막혀서...그 분 끝내 요한복음을 이해하고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10년 만에...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좇아 살면 그 생각에 생명과 평강을 주십니다(롬8:6) 몸이 빵빵해 지고 대단한 값어치를 느낍니다. 어떤 질병이든 죽음이든 덤비려면 덤벼라 하는 뱃심이 생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좇으려면 십자가의 도를 따라 세례의 기억을 항상 가슴에 품어야 하기에 예수 죽음에 자신을 넘겨주게 되어 예수의 생명 또한 몸과 육체에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고후4:10-11)
이건 주여 주시옵소서 믿습니다 하고 부탁드릴 일이 아닙니다. 간구도 필요치 않습니다. 성경과 성령의 코치를 따라 진리의 말씀에 자신을 대입하면 그대로 생명의 답이 나옵니다. 그 공식대로 하면 절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거절하지 못하십니다. 아니 쌍수를 들고 기다리십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힐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목사들은 목에 힘을 잔뜩 주어 위엄 있게 말하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율법 조문의 직분들입니다. 겁을 줘서 일을 시키거나 물질을 빼 먹는 정죄의 직분입니다(고후3:7,9) 힐링은 커녕 부담만 잔뜩, 왕 짜증입니다. 그게 바로 사망입니다. 그러나 영의 직분(고후3:8)은 목소리가 좀 헐렁하고 가벼운 듯합니다. 자유 분망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삶의 궤적이 분명합니다. 힐링이 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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