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란 무엇인가?
1.
머리말
2. 십일조의 역사
1) 십일조의 기원
2) 십일조의 제도화 과정
3) 십일조의 실현의 실례
3. 십일조의 용도와 목적
1) 십일조의 용도
2) 십일조의 목적
4. 십일조의 의미와
신학
1) 십일조의
의미
2) 십일조의 신학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찌니라. (마23:23)
1. 머리말
신약교회에 있어서 십일조에 대한 논란은 일찍이 초대교회 시대로부터 있어 왔던 문제 중의 하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논란은 교회 안에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모두가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한다는 긍정론과 십일조는 율법이기 때문에 신약교회가 규범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부정론과 십일조가 교회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다는 사실을 들어 실리론까지 내세우는가 하면, 십일조를 해야 복을 받아 잘 먹고 잘 수 있다는 미신적인 기복주의까지 등장해서 신앙생활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논란이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원인은 십일조에 관한 성경내용의 주석상 견해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이 말하는 십일조에 대한 역사, 용도와 목적, 그리고 의미와 신학은 무엇인가?
2. 십일조의 역사
1) 십일조의 기원
소득중의 일부를 징수하는 일은 일반 종교나 문화에서도 고대 관습으로 행해졌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창 47: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 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그러나 십일조에 대한 성경에서의 최초 기록은 창세기 14장
17절 이하에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메소포타미아 왕들의
연합군에게 포로가 되었을 때이다.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인을 거느리고 가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을 쳐서 멸했다.아브라함이
빼앗긴 모든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가지고 돌아오는 도중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고 전쟁에서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성경 기록에 나타나는 십일조의 기원이다
2) 십일조의 제도화 과정
야곱이 형인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다가 루스(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때,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했다.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 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 (창 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자손을 애굽에서 번창시키시고 악속의 땅을 주시려고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해방시켜서 홍해를 건너 광야 시내산에 머무르게 하셨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계명을 가르치실 때에 땅의 소산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거룩한 성물이라고
명하셨다.
(레 27:30-33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레위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어서 그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회막에 가까이 못하게 하여 대대로 영원한 규례로 삼게 된 것이다. (민 18:21-24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얼마 후, 모세는 백성들이 요단 동편 땅에 이르렀을 때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먹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울 뿐만 아니라 (신 14:22-23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매 삼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일조를 다 내어 성읍에 저축하여 백성 중에 분깃이나 산업이 없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로 먹어 배부르게 하라고 가르쳤다. (신 14:28-29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3) 십일조 실현의 실례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왕국을 세운 후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 종교적인 대
개혁을 단행하므로 백성들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쌓았다는 실례가 있다. (역하 31:5-21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 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삼월에 쌓기를 시작하여 칠월에 마친지라 히스기야의 방백들이 와서 더미를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그리고 포로시대인 파사왕 아닥사스다 왕때에 느헤미야가 유다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하나님의 전에 레위인들을 세웠을 때에 백성들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드리기도 했다. (느 13:11-12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그러나 그 후 말라기 선지자가 나타나 과거에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아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제사장들이 임무를 소홀히 하고 규례를 어겼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드려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했던 것이다.
(말 3:7-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3. 십일조의 용도와 목적
1) 십일조의 용도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는 레위지파의 분깃으로도 주어졌고, (민 18:21-24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객이나 고아와 과부들을 배부르게 하는데도 사용 되었다. (신 14:28-29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모두 유업을 받았으나 그중 레위지파만은 유업을 받지 못했고 하나님이 그들의 유업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를 레위지파의 유업으로 주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나 또는 성전 수리비와 레위지파들의 생활비로 사용하게 하신 것이다. 객이나 고아와 과부들도 모두 유업이 없는 자들이다. 객은 정착지 즉 유업이 없이 떠돌아 다니는 자들을 말하며, 고아 여기 유업을 물려줄 부모가 없는 자들이고, 과부들 역시 유업을 이을 남편이 없는 자들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로서 이들을 배부르게 먹이는데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신 14: 28-29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는 유업이 없는 레위지파를 비롯해서 객과 고아와 과부들의 유업으로 사용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2) 십일조의 목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게 하여 유업이 없는 레위지파와 객과 고아와 과부들의 유업으로 사용하신 목적은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결과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신 14:22-23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를 레위지파의 기업으로 주어질 때 레위지파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레위지파들은 기업으로 받은 십일조로서 하나님께 제사도 드리고 성전도 수리하고 생활비로도 사용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전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사장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모든 백성들을 대신하여 거룩히 구별 받아 수행하는 임무인 것이다. (민 18:21-24 내가 이스라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즉,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 행위는 곧 백성들의 행위나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로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배부르게 하는 목적 역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결과가 되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가르쳐 주셨다. 즉 그것이 율법이었다. 이 모든 율법의 기본법이 곧 십계명이요, 이것의 대강령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이니라 (마 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제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느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다 요구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십일조를 잘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백성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에는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중단이 되고 백성 중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 굶주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4. 십일조의 의미와 신학
1) 십일조의 의미
구약의 십일조는 부정한 것으로부터 성별한다는 의미와 장차 구속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십일조는 성별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땅에서 난 모든 소득 중 십분의 일을 거룩히 구별하게 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나 거룩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양식이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일단 십일조로 구별된 것은 거룩해졌으므로 바꾸거나 취소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레 27:30-33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 분일을 더할 것이요,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
만일 바꾸는 경우에는 둘 다 거룩하게 됨으로 속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땅에서 난 것은 모두 부정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십분의 일을 성별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물론 모든 제물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모든 짐승이 다 부정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 열에 하나를 구별함으로 정결한 것이 되어 흠 없고 점 없는 것으로 성별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룩한 제물로 받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것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이다.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는 거룩히 성별된 것이라는 의미와 통하는 것이다.
둘째로, 메시야 예언적 의미가 있다.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나머지 아홉을 대표한다. 즉 열개 중 하나가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짐으로 나머지 아홉도 거룩한 것이 되어 거룩한 백성의 양식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우리 모두가 땅에 속한 부정한 인간들이지만
예수그리스도 한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거룩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심으로 우리 택한 백성이 모두가 다 거룩한 백성이 되어지는 진리를 나타내
주고 있다. (롬 5:15-19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따라서 구약의 십일조는 우리의 대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메시야에 대한 예표의 진리이다. 예를 들면, 첫 새끼, 첫 열매, 장자(맏아들) 등이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표적 계시인 것같이 십일조 역시 여호와의 것이라는 데서 그 의미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2) 십일조의 신학
구약에서 가르치고 있는 십일조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침묵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도 언급하셨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도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예수님의 십일조에 대한 신학이다.
마태복음 23장 23절 (눅 11장 42절) 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 적이고 불완전한
행위를 책망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장차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실 일에 대한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 이 한 구절의 성경을 바르게 주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말라기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구약의 율법적인 십일조를 번역함 없이 그대로 주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잡다한 논란마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도 율법에서 가르치는 대로 물질의 십일조와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라고 명령을 했으니 성도들은
율법대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는 말씀은 그렇게
행하라는 명령형 문장이 아니라 직설형 미완료 동사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렇게 행했어야 했다는 당위성만을 말하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율법을 지킨다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참으로 율법을 지키려면 물질의 십일조만 드릴 것이 나니라 율법에서 더욱 중요한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고 다 지켜 행했어야 했다는 당위성을 말씀하신 것뿐이지 그렇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어디까지나 예수께서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낮아지지 아니하고 도리어 율법을 다 지키는 의인처럼 군림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거짓과 외식을 책망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눅 18:12 나는 이레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율법의 십일조나 의와 인과 신은 예수님만이 완전하게 이루실 수 있으신 것인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겨우 박하와 유향과 채소와 같은 물질의 십일조만을 드리고서 율법을 다 지키는 의인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율법 아래서 의인이 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비롯한 모든 율법은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것으로 이루실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요 19:28-30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둘째로, 히브리서에 나타난 십일조 신학이다.
히브리서 7장 1절로 25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준 십일조 사건을 들어 그리스도의 제사직이 레위계통의 제사직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7장 1절로 3절에서는 멜기세덱의 신분을 밝혀주고 7장 4절로 10절에서는 멜기세덱이 레위보다 높으심을 증거하고 7장 11절로 25절에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직을 폐하고 멜기세덱 계통의 영원한 그리스도의 제사직을 구약의 예언대로 세워 주셨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구약시대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나 또는 여러 가지 제물로서 레위지파 제사장이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린 제사는 절대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그렇기 때문에 제사직분도 번역하고 율법도 번역이 되어 (히 7:22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시고 (히 7: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참 성전이 되시며 (요 2:19-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영원한 제물이 되어 (요 1:29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영원한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히 9: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된 십일조 예물이 되셔서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리신바 되신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그들의 모든 것, 즉 생명이나 재산, 건강, 명예, 실력등이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십일조란 하나님을 섬기는 방편이며 메시야 예언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성취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모든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자신의 정욕대로 사용하거나 허비한다면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율법에 얽매여 억지로 하지 아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고후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 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소득중에 십분의 일이든지 십분의 구든지 얼마든지 연보해서 복음을 위해 일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모두도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 일을 위해서 거룩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사나 죽으나 먹으나 굶으나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은 신약교회 성도들의 당연한 신앙생활의 태도라 하겠다.
ㅡ 펌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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