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학

[스크랩] [비기독인들의 공통적인 반응] "죽으면 그만이지, 천당이 어디 있느냐?외 8가지"|

수호천사1 2015. 2. 15. 22:16
 


1. 죽으면 그만이지, 천당이 어디 있느냐는 분들께!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진시왕도 죽기 싫어 선남 선녀를 시켜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한때 세상을 풍미하던 징기스칸도, 나폴레옹도, 알렉산더 대왕도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런데, 죽으면 그만이라는 분들이 있다.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은 연약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또 착하게 살아가라고 하는 이야기지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은 자의 영혼은 예수님과 더불어 낙원 (우리는 흔히 천당이라고 함)에서 안식한다. 불신자의 영혼은 음부(우리는 흔히 지옥이라고 함)라는 고통의 장소로 간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의 최종 상태가 아니다. 이것은 중간상태 즉, 사람이 죽을 때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마지막으로 부활할 때 사이에 있는 존재의 한 방식이라고도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바울이 가르친 바를 주의깊게 연구해 보면, 우리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자기와 더불어 안식하는 자(먼저 세상을 떠난 성도들)를 함께 데리고 올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이들의 옛 육신은 부활의 몸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고 또 그들의 영혼은 그 몸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바울은 예수께서 돌아오실 때에 살아 있는 자들은 죽지 않고 순식간에 그 몸이 영광스럽게 변하고, 또 이미 죽었던 자들은 부활의 몸과 똑같이 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재림하실 때 무덤속에 죽어 있던 자들 모두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심판이 이어 진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러면, 심판이란 무엇인가? 심판이란 의인과 악인을 갈라 놓는 것을 말한다. 그럼 누가 심판을 하시는가? 물론 심판의 주는 그리스도 이시다. 또 어떻게 심판받게 되는가? 이 땅에서 믿음대로,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심판의 결과는 무엇인가? 믿는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새하늘과 새땅”(천국)이 기다리고 있겠고, 믿지 않는 이에게는 불못(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어떤 곳인가? 두곳 모두 인간의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곳이라고 생각된다. 천국은 너무너무 아름답고 좋은 곳이다. 천국은 요한 계시록21장에 표현되어 있듯이 갖가지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했는데, 이는 그곳이 너무나 화려한 곳이고, 인간의 필설로 묘사할 수 없는 곳임을 뜻 한다.

 

 

저주도 없고, 수고함도 없고, 궁핍함도 없고, 질병도, 고통도, 죽음도, 없으며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르고, 강가에는 생명나무가 열두가지 과실을 맺는다고 했다. 반면에 지옥은 너무나도 무섭고 고통스런 곳임을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런 곳인지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깥 어두운 데 쫒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볼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천국과 지옥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착하게 살아가라고 엄포로 인간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곳 중의 하나이다. 천국은 부자나, 권력있는 자나, 학력이 높은 자라고 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선행을 쌓아서 가는 곳도 아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영접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자 만이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다.

 

 


 

 

2. 나중에 믿겠다는 분들께!

 

 



교회에 나가자고 하면 나중에 나가겠다고 뒤로 미루는 분들이 있다. 살다보면 기회를 놓칠 때가 더러 있다. 때로는 게을러서, 때로는 의심하다가 기회를 놓쳐 버린다. 혹은 몸을 사리며 머뭇거리다가 놓쳐 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다. 의심하다가, 머뭇 거리다가, 뒤로 미루다가 그냥 끝나 버리는 수가 많다. 예수 믿으라 하면 나중에 믿겠다고 하는 분들은, 자꾸만 미루다가 우리 인생에서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

 

 

 

살아 가면서 어떤 일은 기회를 놓쳐 버려도 다시 그 기회가 찾아오는 일이 있을지 모르나, 인생 만큼은 다시 찿아 오지 않고, 다시 살 수 없으며, 죽으면 그것으로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만다. 우리 인생이 한없이 긴 것이 아니다. 또 그 인생의 마지막이 언제 찾아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아는 사람이 예수를 그렇게 반대하며 믿지 않았었다. 하루는 퇴근전 까지 동료들과 바둑을 두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 갔는데, 다음날 간밤 자정 무렵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접해야 했다.


누군들, 퇴근 전에 그사람이 그날 자정쯤 죽으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본인 자신도 그것을 알기나 했겠는가? 알고 있었다면 태평하게 바둑이나 두고 있었겠는가? 또 어떤 한사람은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 가다가 차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 그 사람도 술을 마시면서 조금 후에 내가 차에 치어 죽는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떤이의 어머니는 오래 사실줄 알았는데 50세도 못 되어 돌아가셨다.

 


성경은 이에 대한 언급이 많다. (눅 12:19-20, 약 4:14, 살전 5:2, 잠언 27:1, 왕상 18:21, 마24:44, 마 25:13)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차례가 있으나, 죽는 것은 차례가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어찌 죽기 전에 때를 맞춰 놓을 수가 있겠는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더 미루지 말자. 나중에 믿겠다고 미루지 말고 늘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요 12:35) 어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를 준비해야 한다. 일찍 예수님을 믿고 아름다운 행위를 쌓으면 그만큼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크다. 죽은 다음에는 후회할 수도 없고 다시 믿으려해도 그때는 이미 때를 놓쳐버려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 그래도 다음에 믿겠다고 미룰 수가 있겠는가?

 

 


 

 

3. 너무 바빠서 교회에 못 나간다는 분들께!

 

 


교회에 나가자고 하면, 너무 바빠서 못 나간다는 분들이 있다. 사실 바쁘기 그지없는 것이 인생살이가 아닌가 생각 된다. 이런 저런 일로 정말 눈, 코 뜰새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면 어느새 한해가 다 지나가고 또 한 살을 먹게 된다. 잠시도 쉴새가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생각 된다. 그러나 이렇게 바쁘게 일을 하여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돈을 벌어 저축해 놓고 그러다가 어느덧 늙었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에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남은 것은 죽음 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동안 바쁘게 일하며 모아 놓은 재산을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가? 따지고 보면 참으로 헛되고 헛된 것이 인생이 아닌가?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뼈 빠지게 모아놓으니까 죽을 때 빈손으로 가게 되니 말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죽도록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혹은 자녀들을 위해 고생한 것이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바쁜것은 좋지만 이렇게 헛되고 헛된 일에 바빠서는 안된다. 실속 있는 일로 바빠야 한다.

 

 

예수 믿고 영생 얻는 일 만큼 실속 있는 일이 없다. 예수께서는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라고 말씀하셨다. 이세상의 어떤 최고의 권력 보다도, 최고의 부유함보다도, 아니 온 천하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바로 자신의 생명이다. 교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똑같이 바쁜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그 일을 다해 낸다. “정말로 바쁘시더라도 주일에 한시간만 시간을 내십시오. 설마 주일 까지 일한다고는 안하시겠지요”.

 

 

4. 교회 안 나가도 착하게 살면 된다는 분들께!

 

 


교회에 안나가도 착하게만 살면 되지 않느냐는 분들이 있다. 물론, 착한 일들을 해야 한다. 그러나 착한 일들이 무엇인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면 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착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또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남에게 못된 짓 한번 한적 없고, 선하게 살았으니 교회 안나가도 천당이 있다면 그곳에 갈 것”으로 아는 분들도 있다. 이는 스스로가 의롭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음탕한 생각을 갖거나, 거짓되고, 탐욕스런 마음을 가져 눈에 보이지 않게 짓는 죄도 하늘나라에서는 큰 죄가 된다. 혹은, 남을 도우면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남을 미워하지도 않고 정말 의인처럼 착하게 살았다고 치자. 그러나 인간은 그 착한 행위만 가지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그 착한 일은 인격수양이나 도를 닦는 데 도움은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우리를 자녀로 삼고 구원해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분께서 어찌 우리를 자녀로 인정해 주시겠는가? 착한 일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롬3:27,28, 롬 3:20, 엡 2:8,9)


 

 

 

 

5.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위선적’ 이라는 분들께!

 

 


사실, 교인들 가운데는 언행이 바르지 못하고 위선적인 분들이 많이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잘못을 저지를 때가 많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위선적이고,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모든 인간은 심지어 성인군자 일지라도 단점도 있고, 잘못도 있고, 흠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아무리 잘 믿어도 얼마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위선적인 집사*장로*목사 꼴보기 싫어 교회 안 나간다는 분들도 솔직히 말해서 그 자신도 위선적이고 행실이 바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들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죄인이라고 하나님께 고백한다. (시 51:5, 창 6:5, 롬 3:10) 성경말씀은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이며, 죄를 좋아하며, 죄 가운데 산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 모두는 죄를 지으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해서 거짓말 한번 안해본 사람이 어디 있으며, 탐욕스런 마음을 한번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을 미워해 보지 않은 사람이 또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그나마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만은 사실인데 그것은 하나님 께서 죄를 가장 싫어 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인들이 더 위선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위선적이면 안될 사람이 위선적인 행동이 노출되면 그 행동이 더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검은 바탕에 검은 것이 떨어지면 잘 나타나지 않으나 흰바탕에 거무스름한 것만 떨어져도 금방 표가 나는 이치와 같다. 또 하나는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인지 모른다. 중요한 일은 믿는다는 것은 사람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어떤 교인이 위선적이든 아니든 상관할 바 없이, 내가 믿고 구원 받는 것이 중요하다.

교인들의 위선이 보기 싫어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만다면 결국 누가 손해를 보게 되는가? 우리가 위선적인 교인을 보고 그것이 싫어 하나님을 멀리 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요 11:25, 요 14:6)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도 위선적인 사람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라고 느껴진다면 위선적인 교인을 나무라고 못마땅히 여기기 전에, 어서 교회로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복이 내리기 시작한다.


 

 

 

 

6. “하나님 보여줘, 그러면 믿을게!” 하는 분들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의 오감(청각,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으로 인식 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이시지만,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말씀으로만 나타내셨다가(음성, 환경, 꿈, 환상 등)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이 땅에 직접 보내셔서(갈4:4)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깨닫고, 믿도록 나타내셨다.

 

 

 

또한, 부활 후 40일 동안 이땅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여덟번이나 나타내 보이셨다. 지금 우리는 구약, 신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으로,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영혼)에 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다. (마 5:8)


즉, ‘하나님을 내안에서 체험한다’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내안에서 느낀다’는 뜻이다.

곁들어 설명하면, 지금 우리로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자체’와 ‘나 자체’ 만을 가지고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우주자체는 신비롭고도 경이롭게 일정한 법칙과 원리, 에너지에 의해 광대무변하게 움직인다. 해와 달과의 거리, 각도가 조금만 틀어지고, 온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공전, 자전하던 지구와 함께 인류는 종말을 맞게 된다.

 

 

 

또한 우주에 비해, 먼지 보다도 작음에도 불구하고 5대양 6대주를 가진 지구는 영구적으로 일정한 작용을 하고 있고, 이 지구에 5장 6부를 가지고 바이러스 처럼 미세하게 붙어 사는 인간은 나노물질(1nm는 1m의 10억분의1) 보다도 훨씬 작지만, 서양의 백인종*황인종* 흑인종을 막론하고 신기막측하게도 의학적*과학적*생리적*철학적*심리적으로 천편 일률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우주 전체와 인간을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놀라움 그 자체이. 이 사실을 웬만한 지각기능과 감각기능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영국의 과학자 ‘프레드 호일’ 이라는 사람은 “우주속에 생명이 우연히 생겨날 확률은 수많은 부속품이 쌓인 고물상에 회오리 바람이 불어와 모든 부속품이 하늘로 날아올라 갔는데, 이 부속품들이 떨어지면서 우연히 보잉 747 점보 여객기가 조립될 확률보다 훨씬 적다”고 했다.

 

 



 

 

7. 천주교 다닌다. 다같이 하나님 믿지 않느냐? 하는 분들께!

 

 

 

 


천주교는 보편성(‘카돌릭’의 뜻)추구와 중세시대를 연상케하는 경건한 예배의식은 휼륭해 보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첫째, 십계명중 제2계명(우상숭배)을 임의로 삭제했고, 제10계명을 둘로 쪼개서 10개로 계명을 채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일이다.

 

 

둘째, 오직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마리아 숭배, 성자숭배, 교황숭배 등 인간의 계율로 변질 시켰다.

 

 

셋째, 신령한 주님의 몸으로 표현된 우리 육신에 술과 담배를 취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넷째, 복음을 변질시켜 성경자체를 교황의 교서 보다도 권위를 인정치 않고 있다.

 

 

다섯째, 사제에게 고백하는 것 등 성경과 다른 것을 주장한다.

 

 

여섯째, 성찬례를 바르지 않게 해석하고, 주님이 제정하지 않은 여러 인간적 규범을 요구한다.

또한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일, 감사, 찬양 보다는 구약의 속죄제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성례(중세의 고정된 예배의식)치중하고 있다. 천주교의 참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다소 차이가 있고, 초대교회와도 차이가 나고 있다. 그 본 모습은 로마 국교로 된 초대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정권과 야합하며, 이방 종교와 혼합 된데서 기인한다. 성 베드로 서원의 오벨리스크(태양신 숭배), 성모 마리아 경배, 피에타 조각의 예수 그리스도(실은 람무스) 등과 베드로 동상에 입 맞추고, 경배하며, 제사 지내는 것 등은 실로 그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들로 그것은 주님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이다.


천주교는 실로 그 역사가 증명하듯 그 교리 자체에 인간들의 생각이 가미되어 혼합종교 형태를 뛰고 있어 아쉽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 16:25) 절대 진리는 성경말씀이며, 그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진리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고 바르게 ‘종교 시스템’을 초월하여 믿는 자들도 간혹 있다. 이를테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던 마더 테레사 같은 분의 경우가 그럴 것이다.

 

 

 

 

 



8. 불교 믿는 분들께!

 

 


시부모님들이 불교이니까 구태여 시부모님 생존시에 예수를 믿어 가정분란을 일으키기 싫다. 그렇다면...

 

 

 

첫째 : 먼저 본인이 신앙고백을 하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기 때문에 먼저 본인 부터 구원 받고, 식구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

 

 

 

둘째 : 그리고 나서 적당한 시기에 교회에 출석하고 믿음을 키우고, 참구원의 진리가 무엇인지 확신을 얻으라.

 

 

셋째 : 성령체험 까지 하고나면 권능을 얻게 되므로 진리 가운데 거하며, 생명을 구하는 효부가 될 것이다.

 

 

예수를 믿고 싶으나, 대대로 믿던 종교이기 때문에 한 집에서 분파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첫째 : 그렇다면 죽는데도 함께 가겠다는 말인가?

 


우리의 영혼문제는 그 누구도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다.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 가운데에서 영원한 세계를 결정짓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영원한 세계에 보낼 것인가, 말것인가?’ 부터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 ‘부모님의 생명을 천국에 보낼 것인가, 지옥에 보낼 것인가?’ 부터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

 

 


둘째 : 불교는 훌륭하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 훌륭한 것이고, ‘영원한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불교는 그 교리상 내세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이 세상 사는 동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도의 수행인 것이다.

 

 



荷 蒔 爺 蘇 來(하시야소래)

언젠가 예수 오시면

 

 

吾 道 之(오도지)

나의 깨달은 도는

 

 

油 無 燈 也(유무등야)

기름 없는 등과 같다

(팔만 대장경 다라니경 38:8, 석가모니 가라사대...)

 

 



 

 


9. 어느 종교나 다 똑같은 것이 아니냐?는 분들께!

 

 


교회에 나가자고 하면“ 어느 종교나 다 똑같은 것이 아니냐? 그런데, 왜 유독 기독교만 이렇게 야단들이냐?”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세상에는 기독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도 있고, 이슬람교도 있고, 힌두교도 있다.우리나라만 해도 십여종의 종교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종교들은 하나같이 착하게 살라고 권면하고 있다. 나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종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착한 이 윤리적인 권면 때문에 어느 종교나 따지고 보면 다같지 않느냐? 기독교만 종교냐?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것은 참 진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종교라고 해서 모두 똑같지는 않다. 모든 종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구원이 있는 종교가 있는가 하면, 없는 종교도 있다.혹세무민하는 종교가 있는가 하면, 단순히 윤리도덕 만을 강조하는 종교도 있다. 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소란을 피우는 사이비 종교도 있다. 그럼 어떤 종교가 참 종교일까?


첫째, 모든 종교가 다르다는 것과 참 종교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종교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 생명의 구원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남들이 놀고, 먹고, 즐길 때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고, 매달려 왔는데 자기가 믿는 종교가 구원의 문제와 무관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둘째, 참 종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다.

 

 

참 종교는 글짜 그대로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잡신을 믿어서는 안된다. 하나님 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 기독교는 잡신을 믿지 않는다. 기독교는 최고 유일신인 하나님과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신 그 외아들 예수를 믿는 종교이다. 하나님은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출 20:3)고 말씀 하신다.

 

 

셋째, 참 종교는 훌륭한 가치를 지닌 종교여야 한다.

 

 

도덕적으로 훌륭하며, 인류를 위해 사랑을 베푸는 종교여야 한다. 그리고, 신적 권능이 나타나는 종교여야 한다. 기독교는 바로 이런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참 종교이다. 기독교의 최고 본질은 사랑이다. 기독교는 인류를 위해 사랑을 베푸는 종교이다. 그래서 이웃과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 나눈다. 예수께서네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5:28)고 말씀하신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인간의 힘으로는 풀 길이 없는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권능이 기독교에는 자주 나타나고 있다.

 

 

넷째, 기독교는 구원관이 확실한 종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구원을 약속해 주셨다. 죽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영생을 얻게 되고, 믿지 않은 사람은 멸망의 길로 가게 되어 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

 

 

거리에서 지하철 안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미친 듯이 외쳐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 확실하다는 이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인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은 이 기쁜 소식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종교는 다 똑같다, 기독교만이 종교냐 왜 저렇게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느냐”하고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나면 옛날에 가졌던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훌륭한 대통령도 있고, 과학자*정치가*교육자*학자*의사들도 있다. 이들이 모두 어리석어 남들이 편히 쉬고 있는 주일날,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리고 하루종일 봉사하고 오겠는가? 아니다. 기독교에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율곡 선생의 시조 고산 구곡가에 나오는 것처럼 “눈속에 묻힌 기암괴석을 발견하지 못하고 볼 것 없다”고 하듯 기독교에 대하여 확실히 알아 보지도 않고, 막연한 생각만으로 자기주장을 합리화시켜 종교는 다 똑같은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과연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아 내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가야 한다.교회에 나가다 보면 차츰 기독교가 무엇인지 깨닫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모셔온글)

 

출처 : 나는 주님이 좋아요
글쓴이 : 낮고 낮은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