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교[Roman Catholicism]
로마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그리스도교의 3대 주요교과 가운데 하나
[개요]
보편적 그리스도교의 출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출현
중세 초기 및 중기의 교회
중세 후기에서 종교개혁까지
17,18세기의 종교생활
근세기의 교회
[선교활동]
[교회 조직]
교황 집무실
교황직(라틴어로 'Papatia', 아버지란 뜻의 'Papa'에서 유래)이라는 말은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교황의 직위와 재치권(裁治權)을 가리키는 말로서 중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일차적인 의미는 교황(로마)의 집무실을 가리키며, 따라서 교황이 직접 관장하는 교회적·세속적인 정부를 나타낸다. 교황의 집무실이 특별한 이유는 로마의 주교가 수위제자인 성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때문이다. 베드로 집무실의 재임자로서 교황은 보편적인 교회의 최고 주교 또는 수좌(首座)로서 홀로 탁월한 지위를 가진다 (→ 교황의 수위권).
교황의 수위권 주장의 토대는 베드로 위임설인데, 이는 그리스도가 공생애 기간 중 베드로에게만 수위권을 약속했으며(요한 21:15~17), 그리스도가 부활한 후 실제로 베드로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는 주장이다.
교황직과 외부 세계의 역사적 관계
교황직과 외부 세계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그 시대에 확립되어 있던 정치적 관념을 반영해왔고, 그 관념과 긴장상태를 유지해왔다. 교황은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 교회의 지도적 성직자로 간주되기도 했고, 속사(俗事)에서도 최고의 직접적 권한을 가지는 위엄있는 군주로 간주되기도 했고, 세속 일에서는 단지 간접적인 중재의 힘만을 갖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인 지도자로 간주되기도 했다. 종교개혁 후 그리스도교의 분열, 세속주의 성장, 국경내의 사법적 전권을 주장하는 통일된 근대국가의 출현으로 세속적인 일에 대한 교황의 간접적인 권한 행사마저도 점차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교황은 국가 수뇌들간의 외교적 관례에 따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교황청의 위엄과 위광(威光)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권위의 힘은 한 인간으로서 교황이 갖는 도덕적 명망, 그 가르침의 설득력, 교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열의에 달려 있다.
교황청과 추기경단
교황은 교회의 수좌로서 일상적인 업무를 결정할 때, 교황청 내의 각 부서, 즉 성성(聖省)의 보필을 받는데, 성성이라는 명칭은 11세기 교황 보좌단 칭호에서 유래한다. 추기경단은 이 교황 보좌단에서 발전한 것이며, 1179년 이래로 교황을 선출하는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의 교황들은 전통적으로 70명 이내로 되어 있던 추기경단 수 제한을 폐지하고 추기경들의 국적의 폭도 넓혔으며, 각 추기경이 교회의 국제적인 성격을 대표하도록 하고 있다.
추기경은 교황이 직접 선발하나 교황은 추기경을 선발할 때 교황청의 추기경들과 협의하거나 추기경회의를 거친 후 결정한다. 추기경들은 자기 관구에서 주교로 재직하거나 바티칸에서 교황의 최고위 고문과 성성의 임원으로 재직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주교단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사도단의 계승이란 점을 강조해 오고 있다 (→ 사도권 계승).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주었지만 단독으로 교회를 사목하게 하지 않고 동료 사도들과 형제적·공동체적 일치 속에서 사목했다. 같은 이유에서 베드로의 계승자인 교황은 사도단의 계승자들인 동료 주교들과의 일치 속에서 교회를 다스린다. 주교들의 단체적 성격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때는 공의회를 소집하여 함께 모이는 경우이다. 가장 최근에 열린 공의회는 1962~65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다. 이 공의회 마지막 회기중에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6세는 교회에 주교들의 단체적 협력을 도입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곧 ' 주교 회의'이다. 주교 회의는 전세계 주교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교황이 소집하며, 교회가 당면한 문제와 사목문제를 협의한다. 이 협의를 통해서 주교들은 교황을 단체적으로 보좌하며, 전세계 주교 및 신자의 의사와 관심을 교황에게 제출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주교는 사도권을 계승한다고 믿는데, 이 사도권이란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집행을 통해 교회를 성화시키고, 교회를 통치하는 권한이다. 한 지역에 상주하는 주교는 그 관할지역에서 이 3가지 직분을 수행하며, 로마 교황을 제외한다면 최고의 상급자이다. 가톨릭 교회에는 많은 지역교회 또는 교구가 있다. 대주교는 수도교구, 즉 통상적으로 한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거나 오래된 교구로서 여러 교구를 포함하는 관구(管區)를 관장한다. 관구 대주교는 관구회의나 교회회의를 소집·주재하며, 사목 방문권을 갖고 있으나, 관구관할교구, 즉 예하 교구에 대한 관할권은 없다. 주교는 자기 교구만을 관할하는 권한이 있다. 교구를 맡고 있는 주교를 교구장이라고 하는데, 그 교구에서 행사하는 권한을 지적하는 칭호이다. 때로는 교구장에게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보좌주교 또는 부주교를 두어 신자들을 돌보는 일을 돕게 한다. 그러나 주교의 권한은 자기 교구에서조차도 절대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법은 주교가 일종의 자문기관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주교들은 사목자나 교사라기보다 해당 교구의 업무 관리자로서의 모습을 더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주교의 직책은 책임이 매우 중대하며 지도력뿐 아니라 유능한 참모에게 업무를 위임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주교는 교구를 다스리면서 교황의 참모진과 같은 성격의 교구성 참모진의 도움을 받는다. 참모진의 구성은 어느 정도까지는 교회법에 의해 규정된다. 그밖의 경우 주교는 자신의 재량으로 교구의 필요에 따라 참모를 임명할 수 있다.
예하 성직자에 대한 주교의 권한은 주교의 인간적인 온정을 제외하고는 효과적인 제지책이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제평의회가 구성되면서부터 점차 변화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구의 의결과정이 원칙적으로 주교의 재량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했으나 주교들에게 이 과정에 사제들을 참여시킬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교리와 규율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 주교회의는 2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세계 주교를 대표한 최초의 전체 공의회는 325년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개최되었다 (→ 니케아 공의회).
교회법은 공의회와 그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 교회법이 채택한 것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절차이다. 공의회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기준은 없으며, 단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에큐메니컬한 것으로 간주하는 교회회의를 공의회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의회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한다. 공의회와 교황은 2개의 최고 권위이다. 로마 교회는 교황과 함께 보조를 맞추는 공의회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논리적 딜레마를 조정한다. 오직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으며, 교황이나 교황의 사절만이 회의를 주재할 수 있다. 공의회의 권한에는 제한이 없으나 공의회에서 정한 교령(敎令)은 교황의 인준을 통해서만 효력을 발생한다.
제1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의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공의회는 매우 광범위한 합의에 의해 산출된 대중적·심리적 영향은 접어놓더라도 교황청에서 입수할 수 없는 전세계적인 경험과 지혜의 자원을 교회가 이용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공의회 회원이 통상적인 생각과 행동 수준보다 더 높은 정신 상태를 갖도록 한다.
사제직
〈신약성서〉는 사제라는 칭호를 어떤 교회 관리에게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분은 2세기에 나타나는데, 이는 절대적 권한을 갖는 주교직의 발달과 함께 나타났음이 분명하다. 주교가 가르치고, 성화(聖化)시키고, 다스리는 3중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사제는 주교의 보조자로서 권한을 행사했다 (→ 성직자).
본당 신부는 전형적인 사제이다. 규모가 큰 본당에서는 주로 행정가로서 역할을 수행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본당 신부를 통해 직접 교회 생활을 하게 된다. 가톨릭 신자들은 본당에서 강론을 듣고 미사를 드리며 성사(聖事)를 받고 신앙 상담과 지도를 받는다. 오락에서부터 교육과 사회사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활동이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이 모든 활동은 본당 신부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 가톨릭 교회의 힘은 교회의 사제들, 특히 본당 신부들에게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수도 단체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도 단체들은 공동생활을 하고, 청빈·정결·순명(복음적 권고에 따르는 것)의 3대 서약을 통해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며, 복음적 권고를 실천하고 증거하는 남성 또는 여성들의 집단으로 구성된다. 수도생활의 목적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성(신학적으로 완전한 사람으로 정의됨)에 도달하는 것이며, 따라서 수도생활은 단지 소수의 가톨릭 신자들만이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생활이다. 수도단체의 전통은 2,3세기의 은수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 후에 수도단체의 실제생활은 후대의 수도원 생활과 규율을 규정한 베네딕투스 수도회 회칙으로 공식화되었다(→ 베네딕투스 규율, 공주수도원제도).
하나의 계급으로서 평신도는 〈신약성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성직자가 생겨나면서 비로소 평신도라는 개념도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평신도들은 교회의 수동적 요소에 불과했다. 교회의 직분이 가르치고 성화시키고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된다면, 평신도의 기능은 주로 가르침을 받고 성화되고 다스림을 받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모든 권한이 그리스도로부터 오며(마태 28:18),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백성의 선악, 교회 및 신앙의 성장을 위해 제자들에게 다스릴 권한을 부여했다(마태 16:19)고 믿는다. 따라서 이렇게 위임받은 사목권에 의해 교황과 주교들은 법규를 내놓았다. 최초의 개별적인 교회법은 캐논(Canon:'규칙'·'자'·'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 'kanon'에서 유래)으로 불렸는데, 이 '캐논들'이 마침내 교회법(Canon Law)으로 불렸다. 교회법들은 교회의 권위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났으며, 〈신약성서〉의 일부 구절들은 초기의 규칙들을 반영한다. 교회법이 최초로 수집·종합된 것은 1142년이었다.
신조
신앙
신앙의 개념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가 공유하는 신앙에 대한 관념은 〈신약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신앙 관념은 단순하지 않으며, 그 의미는 폭이 넓어 단일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조차도 다양하게 이해된다. 대부분의 현대 〈신약성서〉 해석가들은 〈신약성서〉에서의 신앙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신앙의 전(前)단계 및 동인
신앙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연구에는 소위 신앙의 전단계와 신앙의 동인에 대한 조사가 포함된다. 신앙의 전단계에는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결론에 신자들이 도달하게 되는 과정이 포함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한 예이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신앙의 동인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권위'라고 설명해오고 있다. 신앙의 전단계를 거친 사람은 이성적인 의심을 뛰어넘어 하느님이 존재하고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계시하는 하느님의 권위라는 관념은 동인이라기보다 신앙의 대상인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이 권위와 계시 사실의 결합은 역사적인 경험의 대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20세기 중반에 와서는 신앙이 계시된 진리를 따르는 것이라기보다 하느님께 자신을 인격적으로 위탁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견해에 동조하는 가톨릭 신학자들의 수효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단
이단은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계시된 진리를 부인하거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계시된 진리라고 인정한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단이 성립되려면 3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그가 세례받은 신자이어야 하고, 둘째, 계시된 진리, 즉 교리에 관한 오류나 의심이 있어야 하며, 셋째, 오류나 의심을 지속하려는 완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단에 대해 심각하게 대처했다는 것은 고대의 파문 형벌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이단의 개념이 달라졌다. 또한 이단과 이단자라는 말을 피하고, 대신 갈라진 비(非)가톨릭 그리스도교인 혹은 갈라진 형제라 부른다.
계시의 개념
다른 종교에도 계시의 관념이 있지만, 〈구약성서〉·〈신약성서〉와 그리스도교에서 발견되는 계시의 관념과 흡사한 관념을 지니고 있는 종교는 없다. 성서는 '거룩하신 야훼 하느님'이 계시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성서의 계시는 가장 거룩한 존재자인 인격적 신이 자유로이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은 광의의 계시와 엄밀한 공식적 의미의 계시를 구분하고 있는데, 전자는 자연과 인간으로부터 연역되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실제로는 철학)을 의미하며, 후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계시를 본래 한 인격에 관한 계시라기보다는 신조에 관한 계시로 간주해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따라서 예수까지도 자신의 존재와 행위를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는 하나의 실재(實在)로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대변자로 생각해왔다.
내용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계시의 고유한 내용이 신비라고 가르치는데, 이 주제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중시되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초자연적 계시가 그 본질상 하느님이 스스로 자신을 인류에게 열어 보일 때 성립된다고 천명함으로써 계시의 개념을 순수 지성적으로 추구하려는 경향을 배척했다 (→ 초자연주의). 초자연적 계시는 피조물의 자연적 인식 가능성을 뛰어넘는 하나의 신비라는 것이다. 통속적 언어로 표현하면 신비는 하느님이 말해 주지 않으면 인간은 하느님이 누구고 무엇을 하는지, 왜 그것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 이성은 혼자의 능력만으로는 하느님의 실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계시의 내용을 신비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신비는 계시가 이루어질 때에도 하느님의 실재와 그의 일들은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연철학). 이런 관점에서 신학자들은 신비에 대해 오랫동안 불가해하다는 말을 사용해왔다. 신비는 신적 실재와 신적인 세계의 운영 모두에 관련되어 있다. 신적인 세계의 운영은 그 결과를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운영 그 자체는 보이지 않으며 그 동인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현대의 계시신학자들은 계시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라는 원시적인 계시 관념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은 계시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방법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으나, 고루한 계시 관념을 타파한다고 해서 계시의 전체적인 관념이 파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계시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은 결코 신비를 꿰뚫어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이미 계시된 신비를 계속 탐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성서와 성전(전승)
로마 가톨릭은 성서와 함께 성전(聖傳) 또는 전승(傳承)을 받아들인다. 거룩한 전통을 뜻하는 ' 성전'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용례는 기록되지 않은 형태로 교회의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과 실천적 관행을 가리키며, 기록된 성서의 말씀과 형식상 구별된다.
로마 가톨릭 신학은 성전 또는 전승이 매개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내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매개로서 성전은 가톨릭 교회의 살아있는 교도권과 동일시된다. 성전의 내용은 신앙과 도덕에 관해 계시된 진리, 즉 '신앙의 저장물'이다. 로마 가톨릭 신앙에서 계시는 사도들의 죽음과 함께 끝나며, 그 저장물은 사도들을 계승하는 주교단에 전달되었다고 본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고, 성전은 교회의 말씀임을 인정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가 〈신약성서〉 이전에 존재했다는 논의를 진전시켰다. 사실상 교회는 〈신약성서〉를 생기게 하였으며, 그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임을 확증시켰다. 최소한 이런 믿음에 대해서 성전은 유일한 원천이다. 바로 이 관념은 진리의 본체가 주교단을 통해 교회에 전달되고, 구전(이 말은 성서에 기록되지 않았음을 의미)에 의해 보존되어왔다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장에 대해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규준으로 '성서와 함께 성전도 인정해야 한다'는 가톨릭의 입장은 '성서만' 인정하는 개신교의 입장과 사실상 맞서왔다. 개신교의 성서 유일주의에 대한 가톨릭의 주요반론은, 성서 자체가 모든 계시를 다 간직하고 있다거나 신앙의 유일한 규준이라고 주장한 구절이 성서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양식 비평(樣式批評)이 입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성서는 히브리 전통과 사도들의 전통이 낳은 문학적 산물이기에 그러한 전통이 없었다면 성서는 존재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성서를 성전이라는 본래의 배경에서 분리·독립시켜 버리면 성서가 가지는 본래의 가치와 생명력을 없애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교도권의 개념
로마 가톨릭 교회는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교도권을 주장한다.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이 교도권에 대한 반란이었으며,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이 로마 교회에서 거부한 교도권을 자기들의 교회에서 주장하지 않았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신약성서〉에 나와 있듯이("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곧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침의 권한을 위임한 것에서 교도권의 유래를 찾는다. 그리스도는 가르치는 직무를 사도단의 구성원인 사도들에게 주셨고(마태 28:18~20), 사도단의 단장이요 최고 목자인(요한 21:15~17) 시몬 베드로에게는 그 형제인 모든 사도들을 신앙 안에서 견고하게 하는 임무까지 맡겼다(루가 22:32). 따라서 교회 안에서 주교직을 계승하는 주교들과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단에게 주신 교도권을 이어받고 있다.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고, 그것을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진술하는 권한이다.
교도권의 행사기관
교도권은 성직자단의 교도권과 평신도단의 교도권으로 구분되고, 성직자단의 교도권은 다시 그 행사상 장엄교도권과 통상교도권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교황이 교좌에서 선언하거나, 주교단이 공의회에 모여 선언할 경우에 성립된다. 후자는 주교들이 권한을 갖고 발표하는 일반교시를 말하는데, 이는 회칙 형식이나 지역 주교단의 공동교서 형식으로 발표된다. 평신도단의 교도권은 평신도가 성직자단의 교도권을 통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를 세속문화에 적응시키고 깊이 이해함으로써 그 진리를 옹호하고 설명하는 데 공헌한다. 이 순종의 동기는 교황이나 주교들의 인간적 지식이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황과 주교들을 통해 교회를 지도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확신에 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성령이 주교들로 하여금 오류없이 가르치도록 도와주듯이, 평신도들이 오류를 믿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믿고 있다.
교도권은 전체 교회에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정의된 기관들에 부여된다. 이 기관들은 고위 성직자 계급인 교황과 주교들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회를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로 구분하고 있다. 고위 성직자 계급 이하의 성직자들은 '듣는 교회'에 포함된다.
로마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전체적인 교도권을 부여받고 있으며, 이 점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엄숙히 선언되었다. 이것은 교황이 전체 로마 교회의 유일한 대변자임을 의미한다. 교황은 본래의 사목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주교는 교구에서 활동하는 진정한 교사이다. 따라서 교회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르침에 대해서도 내재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주요 교의와 교리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세례 예식서를 통해 영세 후보자들이 믿어야 할 교리를 믿는다는 표시로 사도신경을 암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초기교회 교부들은 이 사도신경을 기초로 세례 준비자들에게 세례 강론(설교)을 했다. 이 강론은 현대 로마 가톨릭 교리들과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신조들보다 훨씬 풍부한 내용을 가졌다.
로마 가톨릭 신앙은 신앙의 구조 속에 〈구약성서〉를 통합시키고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서 원죄에 대한 신조를 끌어내고 있다. 원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의 뜻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마저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유전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적 결함으로 생각된다. 이 교리의 중요성은 인간의 상황이 하느님의 실수가 아닌(또는 현대 가톨릭 신학이 말하듯이 악마의 영향에 의해서도 아닌) 인간의 실수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설명하는 데 있다. 인간은 오직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의해서만 그러한 인간상황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이 구원행위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에 의해 성취되었다. 예수 안에서 하느님은 성자(聖子)에게 구원 사명을 주어 파견하는 성부(聖父)로서 계시되며, 성자를 통해 성령은 구원받은 인간들 가운데 임재한다. 위격(位格)의 삼위일체는 이렇게 계시되며, 인간의 운명은 3위격의 신적인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예수의 구원행위는 세상에 은총을 가져오는데, 이 은총은 여러 차례 격렬하게 논란된 신학적 관념이다. 로마 가톨릭 신앙에서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 사랑으로 인해 인간 안에서 생기는 결과도 의미한다. 은총의 현존에 대한 신앙인들의 응답은 믿음·희망·사랑의 3가지 신학적 덕목이다. 이 3가지 덕목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은 세례로 인해 은총을 받고 교회에 나오게 되는데, 회개와 믿음이 세례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은총의 삶은 성사(聖事)를 통해 교회 안에서 지속된다.
의식
성찬의 전례 또는 미사
〈겔라시아누스 전례서 Sacramentarium Gelasianum〉의 속표지(750경), 바티칸시티에 있는 바티칸 ... |
11세기에 전례는 고전적인 형식을 갖추게 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유지되었다. 완전한 전례는 매일 거행하는 장엄(엄숙) 대미사와 성가대가 바치는 성무일도의 낭송을 포함했다. 장엄 대미사는 최소한 3명의 성직자(주례자, 부제, 차부제)가 집전하였고, 이들은 많은 시제(侍祭)와 복사(服事)의 시중을 받았다. 대림절(待臨節)과 사순절의 참회시기 외에는 제단이 장식되었으며, 수많은 촛대(중세시대에는 장식용이라기보다는 어둠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되었음)와 향이 사용되었다. 노래와 성가는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불렀는데,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대주교가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제대로 갖추어 놓지 않고 미사곡을 작곡하도록 강요한다고 불평한 일도 있다.
성무일도(聖務日禱)
성무일도는 수도자로부터 성직자에게 전해진 유산이었다. 성무일도는 기본적으로 시편의 낭송(1주일 주기로 함), 기도문 암송, 성서봉독(후에 교부들의 저작에서 발췌한 것을 첨가)으로 구성된다. 미사와 함께 성무일도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기도가 되어왔다. 다른 모든 기도문 형식은 비록 수백 명이 함께 암송한다 해도 '비공식적인' 기도이다. 사제와 부제는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가 있으며, 수사들은 수도회의 규칙에 따라 성무일도를 바친다. 교회는 일반신자들도 바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전례의 주기와 언어
전례는 오래전부터 1년 주기로 배열되어 왔는데, 이 전례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영화(榮化)의 구원사건을 재연한 것이다. 이 구원사건은 구원 행위가 종말론적 완성에 도달할 것임을 보여주는 보증으로써 재연된다. 전례는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표현인 동시에 확증이라고 할 수 있다.
라틴어는 6세기 이전까지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 용어가 아니었다. 라틴어의 영향으로 전례는 성직자의 영역이 되었고, 평신도는 순전히 수동적인 입장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 라틴어 사용이 폐지되자 교회 내에서 심한 반대가 일어났다. 그것은 사람들이 라틴어 전례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는 영원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표상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 전례의 복원은 처음 수세기 동안에 전례가 지녔던 2가지 기능, 즉 개종자를 가르치고 신자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하는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사(聖事 Sacrament)
성사의 개관(槪觀)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한 것으로 내적 은총을 가져오는 외적인 표징이다. 전례는 가톨릭 교회가 성서와 성전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으로 개인의 신앙생활과 구별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를 통해 우리 속죄의 구원사업이 수행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된 교회의 본질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이고 명시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전례는 하느님과 구원될 인간의 결합이며, 끊임없는 만남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례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미사와 성사이다. 성사의 수는 7가지로서 7대성사라고 부른다(이 수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성사의 수를 줄인 종교개혁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규정한 것). 현대신학에서 성사는 흔히 '신비와의 만남'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이 신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구원행위이다.
성세 또는 세례는 신앙 안에서 다시 태어나 교회의 일원이 되는 성사이다. 유대인의 성인 개종자 할례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듯이 보이는 사도 바울로의 논지에 따르면, 세례는 과거의 삶을 마감하고 새 이름을 받는 예식에서 드러나듯 하나의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세례는 과거의 죄를 전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며, 전적으로 순결한 인간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그는 교회의 일원이 되며 그리스도의 몸과 합쳐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여받게 된다. 순수한 자연수 외에는 아무 것도 세례에 사용될 수 없으며, 세례는 반드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져야 한다. 세례는 통상적으로 사제들이 집행한다. 세례는 태어남의 성사이므로 반복될 수 없다.
성세성사를 받은 신자에게 성령과 그 선물을 주어 신앙을 성숙시키고 증거하게 하여 교회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게 하는 성사이다. 가톨릭 교회는 성서에서 견진성사를 집행한 사례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서(사도 8:14·17), 바울로가 직접 세례를 준 적이 없는(고린 1:17) 에페소에서(사도 19:1~6) 이미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신자에게 안수를 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게 함으로써 견진성사를 집전한 사실을 들고 있다. 견진성사는 11세기 이래로 주교가 기름을 바르고 안수해주는 방식으로 집행되어 왔는데, 한편 성사 집행자는 성령이 임하신다는 선언을 한다.
성찬식(주의 만찬, 성체배령)은 성세성사와 더불어 〈신약성서〉에서 가장 명확하게 발견되는 2가지 성사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 이 성사를 지키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성찬식을 희생제사( 미사)와 성사(영성체)로 구분하고 있다.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 형태 안에 실체로 현존하는 것을 말한다 (→ 화체설). 성체의 제전은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가톨릭 교회는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Ⅰ고린 11:24)는 말씀대로 매일 미사성체를 통해 이 성체제전을 거행한다고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법은 신자들에게 최소한 1년에 1번(사순절·부활절 기간에)은 영성체를 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4번째 성사의 이름인 고해는 교회 초기의 참회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은 공적인 참회기간을 통해 회개의 표시를 하기 전까지는 성체를 배령할 수 없었는데, 공적인 참회에는 금식, 대중 앞에서의 금욕적인 행위, 참회의 표시인 삼베옷 입기, 다른 금욕생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참회기간이 끝나면 그들은 공적으로 교회와 화해하게 되었다. 죄 중에는 대죄라고 하는 죄(살인·간음·배교)가 있었는데, 어떤 지역교회들은 한때 이 대죄에 대해서는 참회의식을 베풀지 않았다. 이것은 하느님이 이런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죄를 지은 사람은 교회에서 영원히 설 땅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고백성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화해성사로 수용되었다.
이 성사는 전례서에 규정된 기도문을 봉송하면서 성유(聖油)를 병자의 각 신체기관(눈·귀·콧구멍·입술·손, 전에는 발과 허리까지였음)에 도유(塗油)하는 것이다. 이 성사는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집행할 수 있다. 동일한 병으로 앓고 있는 동안에는 단지 1번만 이 성사를 받을 수 있으나, 회복 후 다시 앓게 될 경우에는 또 1번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 신앙적으로 보면 병자의 도유는 고백성사를 보완하고, 수령자가 무의식 상태일 경우 고백성사를 대체하는 매우 유익한 성사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혼인을 성사에 포함시킴으로써 국가와 사회에서 비(非)가톨릭 신자나 단체에게도 관심사가 되고 있는 제도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현대의 세속 국가 안에서 이 관할권을 주장하지 못하지만 가톨릭 교회 신자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전적인 관할권 행사를 주장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혼인성사는 혼인 당사자들의 혼인서약의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사제는 혼인예식에 반드시 참석하여 권한을 위임받은 공적인 증인이 된다. 교회는 사제 이외에 다른 2명의 증인들을 요구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혼인성사를 집전하기 전에 당사자들에게 결혼에 대해 매우 엄밀한 검토를 할 것을 요구하며,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충동에 의한 결혼이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혼인성사가 어떤 결함 때문에 나중에 무효로 선언되지 않도록 완벽을 기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혼을 반대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완고한 입장은 특히 교회 밖에서 중요한 비난의 표적이 되어 왔다. 혼인 계약의 조건들을 엄격히 규정함으로써 로마 가톨릭 교회는 민법에 규정되지 않은 혼인무효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 혼인의 무효).
이 성사는 성직 후보자들에게 성무에 관한 권한, 즉 성사를 집행할 수 있는 신권(神權)을 부여하는 것이다. 서품(사제직 수임)식은 주교만이 집행할 수 있으며, 서품식에는 안수와 도유, 성직의 상징적인 물건을 전달하는 예식이 포함된다. 서품식은 반복되거나 무효가 될 수 없다.
사제직의 권한 행사를 정지당한 신부나 환속한(영원히 평신도로 살도록 허락받은) 신부는 성직 권한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긴급시를 제외하고는 그 행사가 금지되어 있다.
전례에 준하는 봉헌의식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온전한 의미의 전례는 미사전례, 성직전례, 성사(聖事)들이지만, 전례에 준하는 예배 형태들도 발전되어 왔다. 전례에 준한다는 말은 이 예배 형태들이 전례에 속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전례와 배치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행위들은 봉헌이나 봉헌의식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성만찬 봉헌
성만찬 봉헌의식 중에는 축복받은 성사의 성체강복식과 '진열'이 있고, 찬송, 오르간 반주, 향, 행렬이 동반되는 성만찬 빵의 장엄한 공개가 있다.
그밖의 봉헌의식들은 성인숭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중재를 부정한다고 하여 성인숭배를 비난했다 (→ 경배) .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반대는 가톨릭 의식(儀式)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지만, 봉헌 의식들이 미신에 가까워진 경우도 흔히 있었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배와 마리아나 성인들에 대한 경모를 서로 구별한다. 개신교도들은 성인들을 참된 그리스도교 정신의 모범으로 보는 원리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성인들의 개입은 전적으로 불필요하고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못박는다. 성인들의 개입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이해는 성인들의 친교에 대한 신앙을 확대시킨 것이다. 성인들에 대한 경모심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중재자 이외에 여러 중재자들을 상정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소박하고 유쾌한 친밀감을 조성해온 것도 사실이다 (→ 전구).
지나친 동정녀 마리아 숭배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고, 고통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미신의 경향을 띠거나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일이 종종 나타나기도 했다. 마리아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의 원리를 대표한다. 다른 종교에서도 이 원리가 여신으로 인격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마리아에게는 동정심과 부드러움 같은 여성의 특징이 부여되어 있다. 이 특징은 아버지나 왕의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신에게 부적합한 것은 아니다. 마리아가 여러 차례 출현한 것(예를 들면, 프랑스의 루즈, 포르투갈의 파티마)은 어떤 지역 혹은 국가에서 마리아 임재의 상징을 필요로 한 것에서 비롯된 현상이며, 그 지역 혹은 국가의 로마 가톨릭교도들은 그와 같은 임재를 마리아와 동일시했다. 역사적 인물로서 마리아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 교도들은 그들이 찾아야 할 이상적인 인물의 모든 특질을 마리아에게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언제나 봉헌의식들에 대한 공식적인 감독권을 주장해왔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인정한다고 해서 환상이나 출현의 역사적 실재성이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 가톨릭교도는 마리아가 루즈나 파티마의 누구에겐가 나타났다는 것을 믿어야 할 의무가 없으며, 로사리오(기도용 묵주)가 사적(私的)인 계시를 통해 전달되었다거나 예수가 성스러운 하트 모양으로 자신을 드러냈다고 믿어야 할 의무도 없다. 또한 가톨릭교도들은 이 봉헌의식 중 어느 하나를 의무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없다. 대체로 이 봉헌의식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행해지는 강론과 전례를 통해 그 뜻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몇 가지 요소를 강조하는 데 이바지한다.
사회적 역할
선교
그리스도교는 초기부터 대종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인종과 국가 또는 문화의 구별없이 만인을 향해 호소하는 진정한 세계 종교임을 자임해왔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선교 추진력을 어떤 비가톨릭 교회들보다 더 충실히 간직해왔다고 믿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식민주의적인 선교형태를 공식적으로 종식시켰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를 완전히 종식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선교지에서 배출된 인사들이 충분한 선교 지역에서는 교회의 운영을 토착적인 위계질서와 성직자들에게 일임해오고 있다.
교육
야만족의 침입부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발생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의 교육은 아랍족과 유대인들의 학문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실시되었다. 15세기의 문학과 예술은 교황권과 가톨릭 군주들 및 고위성직자들의 후원으로 꽃을 피웠다(→ 교육사, 종교학교).
현대 과학의 태동은 종교개혁 및 유럽의 팽창시기와 동시에 이루어졌다. 새로운 철학 체계를 동반한 새로운 과학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반응은 적대적인 것이었다. 1600년 이후 유럽의 학문세계는 오로지 신앙 수호를 위한 학문만을 보호하였던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유럽과 아메리카 지역의 여러 나라들, 특히 미국에서 교육을 위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노력은 하나의 방대한 사업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교육 경비의 급등과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신자 직원들의 감소로 인해 가톨릭 학교들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고, 여러 지역에서는 학교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현대의 학문세계가 소중히 여기는 지적인 자유에 역행한다는 기존의 평판에 대처해야 했다.
자선활동
가난한 사람, 병자, 고아, 다른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제도적인 자선활동은 그리스도 교회가 초기부터 행해온 특색이었다 (→ 빈곤). 교회는 이런 방식으로 예수의 치유 선교를 수행하고 있다. 비판받을 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자선활동은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여러 난관에 봉착했다. 자선활동 경비와 교육 경비가 급등하여 가톨릭 교회가 혼자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선 것이다. 또한 교회조직도 도시의 빈곤이나 국제적인 빈곤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효율적인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이론과 실천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으로 가장 중요한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 선언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현대의 세속적이고, 다원적인 국가를 하나의 정당한 정치사회로 인정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정치단체가 아니며, 교회의 목적을 위해 정치적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국가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중요한 태도 변화는 이 공의회가 종교의 자유에 관해 명시적으로 선언한 내용에 나타나 있다.
경제적인 견해와 그 실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실제적으로는 재산의 소유권과 생산적인 투자의 소유권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을 용인했다. 가톨릭 교회는 교회 재원에 대한 책임을 평신도에게 맡기지 않고 성직계급이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재산은 오랫동안 비밀로 되어 왔으며, 교권을 반대하는 탐욕스런 세속정부에게는 매력적인 탈취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속정부가 가톨릭의 재산을 공개하고 탈취했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재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이 과장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 내에는 재정보고를 공개하자는 강한 움직임이 있었다.
가정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은 보수적이어서 가정에 도덕적 중심성을 부여하고 있지만, 많은 현대 사상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가톨릭 교회는 낡은 권위주의적 구조를 가족에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가정에서 사랑과 책임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보존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난제 중 하나는 산아제한의 실천이었다. 산아제한을 반대하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도덕적 논거는 대체로 그 설득력을 잃어갔으며,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전통적인 산아제한 금지를 되풀이한 1968년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6세의 선언을 맹목적인 권위의 행사로 보기도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로마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가 겪어온 쇄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교회의 쇄신으로 유익한 점도 많았지만,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이래로 일찍이 교회가 겪지 못한 가장 심각한 내적 소요가 초래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내에는 중재할 여지가 없는 진보파와 보수파의 양극대립이 있어왔다. 이러한 불일치는 실제로 분열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몇몇 사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단적 이탈은 없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탈자의 수는 관심을 불러 일으킬 만큼 많아지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신이 '유일한 참된 교회'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고자 개신교와 에큐메니컬한 대화를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는 교리와 교회 규율에 대해 양보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표명했으나 어느 정도 양보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또한 가톨릭 교회 내에서는 진보적인 면보다는 문제점들이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 에큐메니즘). 오랫동안 잠재되어 왔던 고위성직제도와 일반 성직자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사제들은 그들의 생활과 사목에서 전통적으로 중시되어온 장상(長上)에 대한 '절대 순종'에 저항하고 있다. 이 갈등은 성직자의 독신제도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확실한 통계는 없지만, 가톨릭 성직자 중 최소한 반 정도는 독신제도를 임의의 선택으로 변경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성직자의 생활방식과 사목에 대한 불만은 사제직과 수도단체에 대한 지원자의 격감 등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되었으며, 어떤 수도회는 폐회될 위기를 맞고 있다.
로마 가톨릭의 전례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어떤 관측통들은 말하기를 새 전례의 효과는 새 세대가 자라나서 그 전례를 알게 될 때까지 평가할 수 없다고 한다. 교회의 의사결정에서 하급 성직자의 위치도 그렇지만 평신도의 위치는 더욱 모호하다. 주교와 하급 성직자, 평신도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교회 경험에서 지침을 구할 수 없는 교회 정치의 변화에 소극적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책임의 공유가 예외로 간주되지 않고 당연한 규칙이 되어야 할 교회의 정치와 사업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활용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고위 성직자들 역할을 심사하는 것은 그들의 신뢰성을 문제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의 전반적인 추세는 교회의 각 구성원들, 즉 고위 성직계층, 일반 성직계층, 평신도가 자기 나름대로 보다 큰 책임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李官春 옮김
한국 천주교
서학(西學)·서교(西敎)·천주학(天主學) 등으로 불리다가 천주교 또는 가톨릭으로 정착되었다.
창설배경
한국에 천주교가 창설된 배경으로 대외적인 것과 대내적인 것 2가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대외적으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결과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조선의 학자들이 천주교를 서학의 일부로서 접하게 되었다. 북경에 왕래하는 조선 사신들은 서양문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식을 얻는 한편,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조선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 芝峰類設〉에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天主實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631년 진주사(陳奏使)로 베이징[北京]에 갔던 정두원(鄭斗源)과 1644년 소현세자(昭縣世子) 일행은 귀국하면서 서양의 과학기구와 서적을 가져왔고, 이익(李瀷)과 그의 제자인 안정복(安鼎福) 등은 천주교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갖고 학문적 차원에서 연구를 했다. 이리하여 이미 17세기 초엽부터 조선의 지식인들 특히 남인(南人) 학자들을 중심으로 천주교를 지식의 차원에서 탐구하게 되었다. 둘째, 대내적으로 볼 때 조선 후기에 사회변동과 문화변동이 크게 일어남으로 인해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반발과 아울러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기근과 전염병 등 자연재해와 세도정치의 부패로 백성들의 생활이 극히 어려워졌다. 이에 기존의 성리학적 사상체계에 대한 반발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천주교 서적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져 실학운동에 자극을 주는 동시에 '서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을 낳게 되었다. 그결과 조선 후기 사회는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수용할 기반을 마련하였다.
천주교에 대한 관심은 서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나, 차차 지식의 차원을 넘어 실천의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서학을 신앙운동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권철신(權哲身)· 이벽(李檗)· 이승훈(李承薰)· 이가환(李家煥)· 정약전(丁若銓) 등으로 경기도 광주군 천진암(天眞庵) 주어사(走魚寺)에서 교리연구회를 갖는 등 천주교 교리를 연구·실천했다. 이벽은 북경에 가게 된 이승훈에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으라고 권고했고, 이에 이승훈은 1784년 봄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이벽· 권일신(權日身)· 김범우(金範禹) 등 자신의 동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들은 함께 명례방(明禮坊: 지금의 명동성당 부근)에서 종교집회를 열어 최초의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탄생했으며 이것이 한국 천주교 교회의 창설이다.
박해시대
김대건 동상 |
1794년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첫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1795년 체포령이 내린 주문모 신부를 보호하기 위해 윤유일·최인길·지황 등이 순교했다(乙卯迫害). 주 신부의 입국 당시 약 4,000명에 불과하던 입교자 수가 주 신부와 신자들의 노력으로 1800년에는 1만 명으로 늘었고, 정약종(丁若鍾)은 우리말로 된 교리서 〈주교요지〉를 펴내기도 했다.
조상제사를 거부하고 기존의 신분제에 도전을 가하는 천주교의 비약적 발전은 집권양반층을 자극하여 1801년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이 실시되고,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났다. 교회는 거의 폐허화되었고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 대부분이 순교하였다. 황사영의 백서(帛書)사건도 이때 일어난 일이다. 죽음을 면한 신자들은 북경 주교와 로마 교황에게 선교사의 지속적 파견을 호소하면서 교회 재건에 힘썼다. 그결과 1831년에는 조선교구가 설정되었고, 조선교구를 위임받은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1836년부터는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39년 다시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 당시 선교사인 모방·샤스땅·앵베르 모두 희생되었고 교회 지도자들도 상당수 순교했다. 1846년 병오박해(丙午迫害) 때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 신부와 신도 9명이 순교했다. 1860년에 일어난 경신박해(庚申迫害)에도 불구하고 다시 천주교가 성행하자 1866년 흥선 대원군은 대규모의 박해를 단행하였고, 이 병인박해(丙寅迫害)에서 선교사 9명을 비롯하여 모두 8,000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기에 이른다.
천주교의 성장
개항 이후 조선은 구미 열강들과의 조약을 체결하면서 격동기를 맞이한다. 천주교는 이러한 격동기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는다. 첫 단계는 신앙의 자유가 묵인된 단계로서 대략 1882년부터로 추정된다. 1882년 서울에 한한(漢韓)학교를 세운데 이어 1885년에는 지방에도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양로원·시약소(施藥所) 등 사회복지시설도 설치하였다. 또한 이때를 전후하여 서울의 종현(지금의 명동) 본당을 비롯해서 여러 지역에 본당이 건설되었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을 통해서 선교사들의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기에 이르렀다. 두번째 단계는 신앙의 자유가 공인된 단계로서 1895년부터로 추정할 수 있다. 1895년 고종은 조선 교구장 뮈텔(한국 이름은 閔德孝, 1854~1933) 주교에게 병인박해 이래 많은 천주교인들이 희생된 일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앞으로 교회와 국가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을 제의했다. 같은 해 대규모의 사면령을 통해 1866년에 순교한 양반들의 복권도 이루어졌다. 그후 1899년 뮈텔 주교와 내부(內部) 지방국 사이에 체결한 교민조약(敎民條約)은 한국인의 신앙의 자유를 법률적으로 보장했으며, 1904년 프랑스 공사와 외부대신 사이에 체결한 선교조약은 교민조약의 내용을 더욱 보강했다.
개화기의 천주교는 교육과 언론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운동의 일환으로 1906년 경향신문의 발간을 들 수 있다. 교육운동에 있어서는 초기에 초등교육 분야에 치중하다가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중등교육기관도 운영했다 (→ 일제강점기). 일제의 침략에 반대하며 독립운동에도 참여했으나 선교사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범교회적이지는 못했다. 일제의 종교 탄압은 갈수록 심해져서 경향신문이 폐간되고 사범교육기관인 숭신(崇信)학교도 폐교되었다. 그후 소위 '포교규칙'은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의 종교교육까지 금지시켰고, 1920년대에 와서는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러한 일제의 탄압 아래서도 교회는 발전을 계속하여 교구의 수가 9개로 증가했고 새로운 선교단체가 들어오기도 했다. 1942년에는 노기남(盧基南) 주교가 서울 교구장을 맡게 되어(1902~84) 한국인으로는 첫 교구장이 되었다.
해방 후의 천주교
8·15해방은 천주교의 발전에도 밝은 전망을 가져다 주었으나, 남북 분단은 북한 교회의 전멸을 초래했다. 남한에서는 일제시대에 폐간되었던 〈경향신문〉·〈가톨릭청년〉·〈경향잡지〉 등이 속간되고, 여러 천주교 교육기관이 개편되고 활성화되었다. 분단 이후 남한의 천주교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신자 수가 1962년에는 약 53만 명으로 증가했다. 1962년 한국 천주교는 교계제도 면에서 선교지역의 교구였던 것이 독립된 정식교구로 승격되었고, 1968년에 서울 대교구의 김수환(金壽煥) 대주교가 추기경으로 서임됨으로써(1922~) 한국 천주교는 제도적인 발전을 해나갔다. 추기경의 서임으로 한국 천주교는 전세계 천주교의 주요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그 참여의 폭이 넓어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 이후 한국 천주교는 고조된 사회참여 의식 속에서 교회 쇄신운동에 힘써 1970년대에 시작된 정의구현운동이 일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한국 천주교의 쇄신과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으며, 1984년 5월에는 한국의 순교자 103인이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에 오르게 되고, 1988년에는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91년 12월 31일 현재 한국 천주교는 292만 명의 신도가 있고, 교구 수는 15개이며, 이중 서울·대구·광주는 대교구로 설정되어 있다.
로마 카톨릭의 비밀들
(Roman Catholics of The Mysteries)
많은 크리스천들이 로마 카톨릭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개신교의 한 종파나 구교의 한 교파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바벨론의 한 종교일 뿐 결코 성경과는 무관하다. 우리의 적인 사탄의 술책을 무시해버리기보다는 잘 알아두어 대처하여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다라서 이 카톨릭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의 질문들, 답변들, 설명들을 종합하여 보았다. 이 글은 음녀와 누룩이라는 바벨론의 신비 종교를 다룬 책에서 발췌하여 나온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들 로마 카톨릭의 미스테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파벳 순서로 질문들과 답변들을 열거해 놓았다.
1. 질문: 아그누스 데이(Agnus Dei)란 무엇인가?
답변: 이 말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열렬한 로마 카톨릭교도에게 있어서 부활절에 밀랍으로 만든 양초로 어린양을 상징하는 표시를 새겨 목에 두르고 다닌 것은 오랜 관습이 되어왔다. 이것은 원래는 이교도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카톨릭 종교 안으로 스며들어 “행운을 주는 부적”과 비슷한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착용자를 보호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아그누스 데이”인데 성경에 없는 우상 숭배의 이교도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2. 질문: 안젤루스란 무엇인가?
답변: 로마 카톨릭의 한 예배형식이다. 충실한 신자들은 아침 6시, 정오 12시, 오후 6시에 성당 종소리가 울리면 모인다. 그것은 강생(降生-신성이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으로 나타나심-the Incarnation)과 하루에 세 번하는 아베 마리아의 기도를 반복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날마다 안젤루스를 방송으로 내보내는데 이것은 로마 카톨릭 종교가 이 나라의 전역에 뿌리박혀 토착신앙과 비슷함 것임을 시사해준다. 성경의 예배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3. 질문: 재의 수요일(성회일-聖灰日-Ash Wednesday)란 무엇인가?
답변: 재의 수요일이란 사순절의 첫째 날이다. 이 기간동안 종교성 깊은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고해와 성직 박탈의 일을 실행한다. 재의 수요일 아침 미사 전반부에 그들은 이른바 기름과 재가 섞인 “축복받은 재”라 불리는 것으로 십자가의 표시로 표를 한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적 회개의식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의식은 아니다.
4. 질문: 성모몽소승천(聖母蒙召昇天-the Assumption)이란 무엇인가?
답변: 로마 카톨릭 종교의 근래의 교리 가운데 가장 잘못된 것 중의 그 하나이다. 교황체제 하에서 수세기 동안 논쟁을 거듭한 끝에 고(故) 피우스 7세 교황이 1950년 11월 1일에 모든 로마 카톨릭교도의 믿음에 관한 조항으로 정설이라는 선언을 했다. 성녀 마리아가 육신과 영혼이 어떤 더럽혀짐도 없이 천국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왕관을 쓰고 하늘의 여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 여왕 사상은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로부터 시작된 우상 숭배일 뿐이다.
5. 질문: 성무일과서(聖務日課書-Breviary)란 무엇인가?
답변: 모든 로마 카톨릭 신부가 사용하고 있는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을 보고서 신부들은 죄의 무거움을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날마다 그 책을 암송해야 한다. 성무일과서는 시편, 찬송가, 사도신경, 로마 성자들의 짧은 일대기들을 선택하여 수록하였고 교황들의 저서들에서 발췌한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주님은 평안을 주시는 분일 뿐 두려움을 주시는 분은 아니다.
6. 질문: 시성(諡聖)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한 의식이다. 이 의식에서 로마의 교황은 카톨릭 종교에 두드러진 공헌을 한 죽은 카톨릭 신자를 천국에 거하는 성자(성인식)라고 포고한다. 그리하여 그는 기도를 드리면 응답을 주고 로마 카톨릭교도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중재해 줄 수 있는 중보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포고는 먼저 두 단계를 거친 후 이루어진다.
① 누군가가 거룩한 자라고 공표한다.
② 시복식(諡福式-죽은 자가 천복을 받은 복자로서 숭앙 받을 만하다고 교황이 선언하는 것, 그 의식).
이 두 단계를 거치는 동안 죽은 자의 삶과 행위가 밝혀지고 기적들로 모아진 그 증거는 그들의 중보기도로 이어진다. 이것은 성경에 없는 사악한 교리이다.
7. 질문: 추기경이란 무엇인가?
답변: 추기경은 로마 카톨릭 성직단에서 교황 다음으로 높은 지위이다. 추기경은 로마 카톨릭 종교의 왕자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붉은 제의와 모자를 입고 있고 교황을 선출한다. 추기경이란 지위는 성경 어디에도 그에 대해 언급되어진 것이 없다. 이것은 모두가 정치제도화 된 바벨론 종교계급과 그 의식 중의 일부분이다.
8. 질문: 독신주의(Celibacy)란 무엇인가?
답변: 독신주의란 로마 카톨릭 종교의 규율과 같은 것이다. 로마 카톨릭 성직자들은 이를 맹세하여 결혼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신부가 독신주의를 따르도록 점차적으로 종용ㅎ 왔었지만 12세기까지는 결혼할 수 있었다. A.D. 1123년에 교황 칼릭스투스는 모든 신부들의 결혼을 무효화 하였다. 교황 이노센트 2세 역시 그와 같은 선언을 하였다. 이 사악하고 부도덕한 법은 교황 제도 안에서 많은 비탄과 비윤리적인 죄악의 근원이 되었다. 최근에는 이 강요된 독신주의로 인해 많은 신부들이 카톨릭 종교를 떠났다. 성경에서 말씀하길 “결혼을 금하는 것”은 “사탄의 교리”라고 했다(딤전 4:1-3).
9. 질문: 정교조약(政敎條約-Concordat)이란 무엇인가?
답변: 정교조약은 한 나라의 정부와 바티칸이 맺는 조약이다. 이 조약에서 그 정부는 로마 카톨릭의 권리(어떤 이는 종파라고도 한다)를 그 영역에서 보증하는 것이다. 그 보증과 특권의 대가로 바티칸은 그 정부에 대해 지원을 약속한다. 2차 대전 전후 바티칸은 이탈리아 파시즘 정부의 무솔리니와 정교조약을 맺었었고 스페인의 프랑코와 독일 나치주의 히틀러와도 맺었었다. 지금도 세계 지역 지역에서 각 정부와 정교조약을 체결하려는 노력을 계속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세계정부를 세우려는 음모의 일환이다.
10. 질문: 그리스도 성체절, 또는 화체설(the Feast of Corpus Christi)이란 무엇인가?
답변: “Corpus Christi”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두 라틴어이다. 매년 6월에 로마 카톨릭 종교에는 성변화(聖變化) 또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기념하는 축제가 있다. 이 축제의 미사에서 그들은 빵과 포도주가 주 예수님의 진짜 피와 몸으로 변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이교도의 신비 종교에서 시작된 것이다. 성체절날 로마 카톨릭 종교에서 거리로 나가는 행렬이 있는데 이 행렬로 이른바 그리스도의 육체가 옮겨 높이 들어 올려진다. 충성스럽지만 어리석은 로마 카톨릭 교인들은 그것에 무릎을 꿇고 숭배한다.
11. 질문: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상(Crucifix)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로마 카톨릭주의의 가장 혐오스러운 우상 중의 하나이다.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인이나 라틴 크로스에 결박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것만으로도 이교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가정에 이 상을 진열하도록 권고 받는다. 또 이것은 장식용의 목걸이로 이용되기도 하고, 로사리오 묵주에 부착되기도 한다. 로마 카톨릭의 성당에서는 제단위에 놓여진다. 의심할 여지없이 미신적 예배나 숭상의 대상물이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이 만들어놓은 다른 그리스도의 형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약하고 무력한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죽은 그리스도의 모습만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으셨을 뿐 아니라 지금 살아계신다.
12. 질문: 로마 종교에서 둘리아(Dulia)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답변: 로마 카톨릭에는 성경에 나타나있지 않은 세 종류의 예배가 있다.
A. 라트리아- 하나님과 성수(聖水)에 바쳐지는 예배
B. 하이퍼 둘리아- 성녀 마리아에게 드리는 특별한 예배
C. 둘리아- 이것은 성자들, 천사들과 상(像)에게 드려지는 예배이다.
예배 단계에 대한 전문적 견지에서 본 차이는 평범한 로마 카톨릭교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들은 기도할 때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13. 질문: 교황 회칙(Papal Encyclial)이란 무엇인가?
답변: 회칙 또는 대칙서(大勅書)는 교황이 세계 모든 로마 카톨릭 주교 신부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여기에는 충성스런 로마 카톨릭교도들이 지킬 명령들이나 가르침들이 적혀 있다. 최근 교황들의 출생, 화해, 평화 그리고 비무장과 같은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보다 더 권위 있게 존중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전 4:6).
14. 질문: 파티마(Fatima)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답변: 세 명의 소작농 아이들이 1917년 5월에서 10월 사이에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연속해서 보았다고 주장했던 포르투칼의 작은 마을이다. 하늘에서 태양이 흔들린다거나 지그재그로 움직인다는 놀라운 현상들도 보았다고 주장한다. 성녀가 무시무시한 세계의 혼란과 공산주의의 출현을 예언했다고도 주장한다. 그 성녀는 그녀의 거룩한 마음에 대한 숭배를 시작할 것을 명령했고, 러시아는 그러한 숭배로 개종되어 공산주의가 막을 내릴 것을 약속했다. 또한 그 아이들에게는 세 가지 비밀을 밝혔다. 1930년 교황은 그 계시가 옳은 것임을 선포했고 파티마를 숭배할 것을 공인했다. 이 기도 모임은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었고, 파티마의 청군(Blue Army)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그 의식을 유지시켜 가기 위한 것이다. 1942년 교황 피우스 7세는 러시아와 세계를 마리아의 원죄 없는 마음(the Immaculate Heart of Mary)에 바쳤다. 파티마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유혹하는 거대한 유적지가 되어 있다. 그리고 치료의 기적은 성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주장한다. 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암살자의 저격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파티마에 영예를 돌렸다. 파티마는 마호메트의 딸 이름으로 로마 카톨릭이 모슬렘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15. 질문: 아베 마리아란 무엇인가?
답변: 로마 카톨릭 종교에서 가장 널리 잘 알려진 기도문 중의 하나이다. 이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은혜로 충만한 아베 마리아
주님은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여인들 중에서 축복받은 당신은
아베 마리아, 하나님의 어머니.
이제 우리 죄인을 위하여
죽음의 시간에 기도하소서. 아멘”
이 기도는 로마 카톨릭교도들에 의해서 암송되어진다. 앵무새가 하는 것과 같은 암송으로 헛되며, 우리 주님을 모독하는 기도문이다. 로사리오를 돌리면서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주님의 기도를 전체적으로 한번 반복하고 이 아베 마리아는 열 번 암송한다.
16. 질문: 교황의 성좌(교황청)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로마 카톨릭 종교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행정상의 지위에 있는 교황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교황제도는 로마 황제와 이교도 사제직의 혼합체인 것이다.
17. 질문: 성수(聖水)는 무엇인가?
답변: 성수는 사제가 귀신을 쫓을 때 뿌리는데 물과 소금을 섞은 것이다. 모든 주요한 로마 카톨릭 종교의 예배와 의식에서 사용되어진다. 카톨릭 종교에서는 A.D. 400년에 쓰여지기 시작했다. 다른 로마 카톨릭에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칼덴 신비교(Chldean Mystery Cult)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을 알 수 있다. 많은 로마 카톨릭인의 가정에서는 성수를 담는 용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성수를 찍어 십자가에 뿌린다. 그리고 다음 구절을 암송함으로써 연옥에서의 미래의 죄에 대한 3백일의 면죄부를 얻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것들은 성경에 없는 이교도의 의식일 뿐이다.
18. 질문: 성체란 무엇인가?
답변: 미사에서 쓰이는 둥근 와이퍼(누룩을 쓰지 않는 빵)를 말한다. 신부는 이것이 주 예수님의 실제의 피와 살로 변했음을 선포한다. 성체와 와이퍼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로마 최고의 예배 형식인, 라트리아에서 쓰여진다. 성체는 많은 로마 카톨릭의 불경스런 예배의 핵심이기도 하다. 성경의 만찬은 오직 ‘기념’만을 의미할 뿐 결코 빵이 예수님의 육체가 될 수는 없다.
19. 질문: I.H.S 글자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답변: 이 글자들은 로마 카톨릭 종교에서 신앙의 대상을 나타낸다. 가끔은 성체에 찍히기도 한다. 교황은 이 글자들이 예수님, 사람의 구원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Iesus, Hominum, Salvator의 첫 글자를 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글자들은 더 이전의 고대시대의 것으로 확인될 수 있는데, 이집트의 태양신 삼위일체 신(神)인 이시스, 호러스, 셉(Isis, Horus, Seb)의 첫 글자이다.
20. 질문: 원죄 없는 탄생(Immaculate Conception)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로마 카톨릭 종교의 또 다른 혁신적인 교리이다. 수세기에 걸쳐 이 교리는 천국의 여왕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 되었다. 이 교리는 하나님께서 성녀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완전히 깨끗한 수태를 중재하셨다고 하는 것이다. 약 1350년부터 한 축제날이 성녀의 수태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되었고 로마 카톨릭 성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장 유력한 적들 중 하나라는 독단설을 둘러싸고 로마 카톨릭 내부에서 수세기를 거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1854년 교황 피우스 4세는 공식적으로 원죄 없는 잉태의 독단설을 의무적으로 지켜야하는 성스러운 날로써 축제의 날로 지정함을 선언했다. 4년후, 로르드에 사는 베네트라는 소작농의 딸은 자신에게 “나는 원죄 없는 잉태를 하였다”라 말하는 성녀의 형상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경은 마리아도 우리와 같은 죄성을 가진 죄인이었기에 자신을 위해 번제나 속죄제를 드렸다(레 12:1-8, 눅 2:24).
21. 질문: 성무 금지(Interdict)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답변: 이 말은 한 개인에 대한 파문선고(Excommunication)와 같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한 지역, 마을, 도시, 나라의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교회의 책망이다. 그들이 로마 카톨릭 종교의 법에 순종할 때까지 성찬(Sacraments)을 금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세시대에 불복종하는 군주를 굴복시키기 위해 교황청이 자주 쓰던 방법이었다. 영국은 존왕 시대에 그가 카톨릭에 복종할 때까지 성무금지를 당했다.
22. 질문; 마지막 의식들(Last Rites)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병자성사(Extreme Unction)으로 알려져 있는 이른바 일곱 가지 견진성사(聖事)들 중 마지막의 것이다. 이 목적은 로마 카톨릭교도가이 죽음을 준비할 때 최후의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성찬을 수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바티칸 의회는 이 성사라 하는 것의 명칭을 ‘병자의 기름부음’(The Anointing of the Sick)이라 바꿨다. 그 의미는 같고 마지막 의식들(Last Rites)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의식들이 결코 죄인을 지옥에서 나오게 할 수는 없다.
23. 질문: 마리아의 레지온(Legion of Mary)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평신도 남녀로 구성된 카톨릭 활동 조직인데 매우 호전적이다. 1921년 아일랜드 공화국의 수도 더블린에서 시작되었다.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신부들의 ‘영혼 구원’임무를 돕고 로마 카톨릭교도들 가운데 성녀 마리아에 대한 신앙을 돕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탈한 로마 카톨릭교도들에게서 활동하고, 이름뿐인 개신교들에서는 개종시키는데 힘쓰고,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노방전도와 복음증거를 방해하는데 주력한다. 일종의 마리아 군대이다.
24. 질문: 림보(Limbo)란 무엇인가?
답변: 신부들과 신도들을 포함한 많은 카톨릭교도들이 두 번째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림보에 관한 언급을 그만두었지만 아직도 많은 카톨릭교도들은 이곳이 침례받지 않은 아기들이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믿고 있다. 성경은 오직 천국과 지옥 뿐임을 가르치고 아기들은 누구든 천국에 갈 수 있음을 가르친다.
25. 질문: 루르드(Lourdes)란 무엇이며 어떤 곳인가?
답변: 이곳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1858년 이곳에서 베네데트 서브리스(지금은 R.C. 성자)라는 소작농의 딸이 성녀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었다. 그 성녀는 그 아이에게 “나는 원죄없는 잉태를 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많은 치료의 기적이 성녀가 나타났던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되고 루르드는 이제 육체의 치료를 갈망하는 로마 카톨릭교도들의 주요 순례지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성경에 없는 사탄의 장난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26. 질문: 로마 카톨릭 종교에서 “심중 유보”란 무엇인가?
답변: 로마 카톨릭 종교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진리를 감추기 위해 이중 부언을 하거나 얼버무림 할 수 있도록 이 방법을 쓴다. 로마 카톨릭교도는 로마 카톨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킬 의향도 없으면서 ‘심중 유보’로 충성의 맹서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 카톨릭교도들의 진술이나 특히 정치가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그것은 액면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언제든지 심중유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 질문: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란 무엇인가?
답변: 원형의 둥근 용기이며 이동시킬 수 있다. 태양의 방사선의 모양이 장식되어 있는 귀금속으로 대개는 금으로 만들어진다. 성수나 성찬을 담아 충성스런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보고 경배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한 성현체 시대는 그리스도의 성체절날의 행진에서 사용된다. 이 행렬과 함께 그것이 지나갈 때 충실한 로마 카톨릭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린다. 이것은 완전 우상 숭배이며 태양신 의식의 일종이다.
28. 질문: 9일 기도란 무엇인가?
답변: 9일 기도는 로마 카톨릭의 철야 기도인데, 9일 동안 또는 9주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9일 동안 실행되는 것이다. 대개 어떤 특별한 공적 또는 사적인 소망을 갖고 임한다. 이 로마 카톨릭의 관습은 아마도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의 임재 하시기까지의 9일 동안 기도했던 것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29. 질문: 주기도문(Pater Moster)이란 무엇인가?
답변: Pater Noster란 ‘우리의 아버지’라는 말을 의미하는 두 라틴 단어이다. 이 명칭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주님의 기도라고 주어졌다. 그들은 핵심적인 끝부분의 문구를 생략하고 삭제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당신께 있습니다.” 또한 주기도문 암송 유래도 로마 카톨릭에서 유전된 것이다.
30. 질문: 로마 카톨릭의 “그리스도의 실조”(The Real Presence)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답변: 미사에서 신부가 와이퍼(Host Wafer)를 가리켜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하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와 신경, 근육 조직, 그리고 그분의 신성(神性)으로 변화했음을 공표하면 우리 주님께서 실제로 그 성체 안에 존재하신다는 것을 이것으로 의미한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의 가장 사악한 교리중의 하나이다.
31. 질문: 추도 미사(Requiem Mass)란 무엇인가?
답변: 이는 장례식과 같은 곳에서 죽은 사람을 위하여 드리는 특별한 미사이다. 이들은 이 추도 미사가 로마 카톨릭이 만들어놓은 가상의 연옥에서 죽은 자를 해방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물론 그러한 추도 미사는 비용이 든다. 아일랜드 카톨릭교도들에게는 이에 관한 속담이 있다. 즉,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최대의 비용- 최고의 미사
최소의 비용- 최저의 미사
무(無)비용- 무(無) 미사
32. 질문: ‘로사리오’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로마 카톨릭 종교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기도문구이다. 이것은 열 번의 아베 마리아와 한번의 주기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른바 다섯 로사리오 미사에서 다섯 번 반복된다. 이 미사들은 마리아와 예수님의 삶에서 있었던 기쁘고 슬프고 영광스러운 사건들을 말한다. 신자들이 로사리오를 암송하는 것을 돕기 위해 로마 카톨릭은 삽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형상을 단 로사리오 묵주를 만들었다. 기도에 맞춰 묵주를 돌린다. 전체적 의의는 불교와 다른 동양의 신비적 종교에 해당되며 이교도인 바벨론에서 시작되었다. 십자군 전쟁시 유럽으로 흘러들어와 이단 심문소(종교재판소)를 만든 성 도미니크가 신앙의 행위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성녀 마리아가 나타났을 때 로사리오를 잘 애용하는 것이 충실한 카톨릭교도라 권고 받았다 해서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되어졌었다.
33. 질문: 거룩한 마음(Sacred Heart)이란 무엇이고 예배에서 어떤 관련이 있는가?
답변: 이것은 로마 카톨릭에서 실행되고 있는 가장 망칙한 예배형태 중의 하나이다. 예배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과 마리아의 원죄 없는 마음에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성스러운 그림들’은 이러한 예배에서 그들의 마음이 작은 불꽃들이나 불의 혀로 드러나고 둘러싸여져 있도록 하여 우리 주님과 그의 모친을 기리는 예배에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배의 두 형식들 모두 17세기경에 발전한 것이다. 원죄 없는 마음의 마리아에 대한 예배는 성 요한 에듀에 의해 소개되었고 나중에 파티마 의식의 일부로 활성화 되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에 대한 예배는 프랑스인 수녀 마가렛 마리아 알라코크가 시작했는데 그녀는 1671년과 1690년 사이에 성스러운 마음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시작한 이 예배는 결국 교황이 1794년에 승인했고 그녀는 1920년에 성자가 되었다. 그리고 1928년 성스러운 마음의 축제날이 공식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성스러운 마음에 헌신하는 자는 열두 번의 특별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과 고뇌에서의 평안, 가정에서의 축복, 위험에서의 안전 등이 그것들이다.
34. 질문: 수도자의 노동복(Scapular)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13세기 케르멜회의 수도자 시몬 스톡이라는 사람(지금은 로마 카톨릭의 성자가 되었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성녀 마리아가 옷 한 벌을 자신에게 주었다고 주장했다. 그 옷을 모방한 것들이 만들어졌고 ‘행운의 부적’과 같이 이 옷을 입는 충실한 카톨릭교도는 성녀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 갈색의 옷이나 케르멜회의 스캐퓰러(Scapular)를 입고 죽는 사람은 성녀가 연옥으로 찾아와서 죽은 날짜 그 다음의 토요일에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안식일의 특권(Sabbatine Privilege)이라고 알려져 있다. 로마 카톨릭은 이렇게 성경과는 무관한 의식, 형식들을 많이 창출했다.
35. 질문: 십자가(크로스) 표시는 무엇이고 왜 로마 카톨릭은 스스로 십자가를 그리는가?
답변: 라틴 크로스는 로마 카톨릭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다. 이 사인은 오른손으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 어깨로 그어져 만들어진다. 사제가 이러한 행위를 할 때는 축복을 내리는 것이다. 성수를 이용할 수도 있다. 세례 의식과 마지막 의식들(Last Rites)의 한 부분이다. 십자가 표시는 사실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 또는 생명의 표시(Sign of Life)로서 시작되었고 니므롯의 아들 탐무즈 우상 숭배에서 쓰던 T자 숭배에 대한 이교도의 예배의 일부였다. 로마 카톨릭은 이 십자가의 표시를 행운의 부적과 같이 여기고 스스로 그린다. 그들을 사탄과 고통과 위험에서 보호한다는 숭배물인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것이 아니라 나무 기둥에서 못박히셨다.
36. 질문: ‘십자가의 길’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들은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과 그 죽음 사이에 예수님께 일어났던 사건들을 보여주는 열네 장의 ‘성스러운 그림들’이다. 충실한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각 그림(성경에 나타난 상황을 그린 것은 단지 아홉 장 뿐)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이 그림이 연옥에서의 면죄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고 믿어져 또 다른 숭배물이 되고 있다. ‘축복받은 알바레즈’라고 하는 스페인 사람이 그린 이 그림은 로마 카톨릭 수도사 계급인 스란체스코스도사들에 의해 유명해졌는데 이들은 또한 크리스마스 구유(Christmas Crib)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37. 질문: 성흔(聖痕)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로마 카톨릭에 있는 또 다른 이교도 신비주의적 현상 중의 하나이다. 열렬한 로마 카톨릭교도들의 대개는 수도사나 수녀들인데 이들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나 얼룩이 예수님의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38. 질문: 교황은 왜 3중관을 쓰는가?
답변: 로마 카톨릭은 그것이 천국, 지상, 저승(죽은 자의 나라)에 대한 교황의 최고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또는 교황의 3중의 직책, 스승으로서, 재판자로서, 법을 주는 자로서의 직책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9세기 이전에는 교황은 단지 미트라(주교관)을 썼을 뿐이다. 지금의 삼중관은 1365년에 정식으로 쓰여지기까지 세 개의 관이 수세기가 거치면서 더해진 것이다. 이것은 여러 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관을 쓰신 우리 예수님을 모방한 가짜 그리스도의 거짓된 면이다. 기이하게도 교황 요한 바오르 1세는 그의 대관식에서 3중관을 쓰기를 거절하고 30여일이 채 못 되어 1978년, 의문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다.
39. 질문: ‘바티칸’(Vatican)이란 무엇인가?
답변: 이것은 교황의 집이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의 정치적이자 종교적인 중심 요지이다. 1929년의 라테란 성당 조약으로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는 교회, 궁전, 박물관, 사무실 등이 있는 로마 카톨릭의 심장부인 이곳의 자치권을 인정했고 교황은 그 임시적 수장 혹은 군주가 되었다. 바티칸 도시 국가에는 자치적 우표, 화폐, 신문, 라디오 방송국, 은행 등이 있다. 그리고 자치적 행정관, 외교 단체와 사병(私兵), 스위스인 용병들도 가지고 있다. ‘바티카누스’는 본래 악령의 처소(계 18:2)라는 뜻이다.
40. 질문: 램프와 촛불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
답변: 이것들은 성상이나 우상적 유물 앞에 놓여지는 램프 또는 촛불이다. 램프나 초가 타고 있는 한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지고 있다고 믿는다. 자연적으로 로마 카톨릭의 그 모든 요소들과 함께 램프와 초들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외의 모든 사탄숭배 의식에서는 타는 촛불이 필수적이다.
성당에서 촛불을 밝혀두는 이유
바빌론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밀랍 양초
로마 카톨릭의 의식에서 나타나는 특성 중 하나는 램프와 양초의 사용이다. 카톨릭 교회는 마돈나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상 앞에 반드시 촛불을 켜 둔다. “대 행렬”(grand procession)이 있을 때에도 반드시 촛불이 있어야만 그 신성한 의식이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이같이 램프와 양초를 사용하는 것 역시 로마 카톨릭의 다른 모든 미신적 요소들과 동일한 기원을 갖는다.
태앙신숭배에 사용되는 촛불
육화한 아들을 숭배하는 의식에 램프와 촛불을 사용하는 것은 그 아들을 상징하는 “심장”을 불타는 심장으로 묘사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도 태양신이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숭배되었다. 이집트에서도 어느 정해진 날 밤에 각자 집 앞에 등불을 켜 둠으로써 육화한 태양신을 숭배하였다.
바빌론에서 이러한 관행은 특히 성행하였으며, 이것은 외경인 바룩서(The Book of Bar- uch)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들(바빌론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 켜 두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등불을 그들의 신들에게 켜 두는구나. 그러나 그 신들은 등불 하나도 보지 못하며 신전의 기둥과 같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의 의식에서 환한 대낮에 램프와 양초를 켜는 전통은 완전히 이교에서 유래한 것이었기 때문에 4세기 락탄티우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관행의 불합리성을 폭로하고, 카톨릭 교도들이 “하나님께서 어둠 속에서 존재하시기라도 하는 듯 그 분께 촛불을 밝혀드리는 것”을 비웃었다. 4세기 초에는 교회 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관행이 점차 유입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자칭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주인”이라고 하는 카톨릭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밀랍으로 만든 양초
로마 카톨릭은 의식 때마다 램프와 밀초를 사용하지만, 그들은 사실상 그 어떤 빛보다 후자의 빛을 더욱 우월하게 여기고 있다. 트렌트 종교회의 때까지 로마 카톨릭에서는 부활절 전야에 부활절 양초의 축복을 바라며 이렇게 기도했었다. “이 거룩한 부활절 전야에 우리는 존귀하신 주께 겸손히 이 불을 제물로 바치나니, 이 불은 육신의 기름으로나 불경건한 기름으로나 속된 불로 더럽혀지지 않았나이다. 우리의 순종과 온전한 헌신의 뜻으로 밀랍과 심지로 이루어진 이 초에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타고 있는 이 불을 드리나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신비(my- stery)와 거룩한 부활절 전야의 신성한 불은 마땅히 숭앙되고 찬양받아야 할지라.”
지리적으로 전혀 근접해 있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신성한 의식을 거행할 때 하나같이 밀초가 사용된다는 사실은, 필자가 주장하는 대로, 우상 숭배의 근원이 되었던 제도 안에서 “밀초”를 태우는 데는 어떤 마술적인 “신비”가 있었으며, 바로 여기서 카톨릭이 그 의식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뒷받침해 준다.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부근에 사는 퉁구스 족은 그 나라의 신인 부르칸들(Burchans)의 우상 앞에 밀초들을 세워 둔다. 몰루카 군도에서도 섬 주민들의 신인 악마 니토를 숭배하는 의식에 밀초가 사용된다.
허드(Hur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삼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신성한 작은 북을 치면서 니토를 부르면 그들 중 두 세 사람이 밀초를 켜고 악마를 불러내는 것으로 믿어지는 몇 마디 주문을 외운다.” 이처럼 널리 성행된 관행은 고대의 어떤 것에서 유래했음이 틀림없고, 최초에는 어떤 신비적인 이유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밀초는 “위대한 중재자”로서의 태양신을 상징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밀초는 사실상 바빌론 신의 핵심적 성격 중 하나인 “위대한 중재자”를 나타내기 위한 상형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고전 독자들은 고대 원시종교의 신 우라노스(Ouranos), 즉 “계시자”(The Enlighter)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니므롯은 그가 신격화되었을 때 바로 그러한 성격의 인물로서 숭배되었다. 태양신으로서 그는 세상을 밝혀주는 이 뿐만 아니라 인간의 혼에 빛을 주는 자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그가 “선과 진리”를 밝혀 주는 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약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계시해 주시는 분으로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께만 해당되는 이름이다. 그런데 태양신을 하나님의 계시자로서의 위치에 놓기 위해 미트라(Mithra)라는 이름 아래 그는 입에 벌을 한 마리 물고 있는 사자로 묘사되었다(삽화1). 태양신이 물고 있는 벌은 그가 “말씀”(The Word)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갈대아어로 “벌”을 뜻하는 다바르(Dabar)는 동시에 “말씀”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벌을 “입”에 위치하게 함으로써 전달하려 했던 개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우라노스, 즉 “계시자”라는 호칭을 가진 미트라(플루타크에 의하면 메시테, 즉 “중재자”로 숭앙됐던)가 사도 요한이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한 그 영광스러운 분이라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계시하신 분이며 또 그렇게 알려지셔야 한다. 이는 요한이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뿐이라.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구세주께서 오시기 전에 고대의 유대인들은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을 이야기할 때 통상적으로 그를 다바르, 즉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무엘상 3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절을 보면 『이미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주를 섬기더니, 그 당시에는 주의 말씀이 희귀하여 환상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엘리의 죄로 인해 주께서 오랜 기간 동안 전에 선지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스스로를 그에게 계시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주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환상”(vision)이 회복되었다. 이것은 21절에 『주께서 실로에서 다시 타나나셨으니, 이는 주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음이더라』고 나와있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단순한 말씀 이상의 것을 암시한다. 『주께서 나타나셨으니』. 즉 사무엘의 눈에 “보였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주께서 자신을 계시하셨을 때, 다시 말하면 사무엘의 눈 앞에 나타나셨을 때, 성경은 『주의 말씀(다바르)으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주의 말씀”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즉 예수 그리스도이다. 고대에 그 분은 분명히 이 이름으로 알려지셨다. 따라서 플라톤이 만들어낸 ‘삼위일체’(Trinity) 중 제 2위를 “로고스”라는 이름으로 언급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로고스는 “다바르” 즉 “말씀”의 번역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배교자들은 “참 빛”으로부터 돌이켜서 그림자로 그 분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인간에게 빛을 주는 “말씀”인 새턴을 상징하는 “벌”
이것이 명확한 사실임은 새턴(Saturn)에 관한 크랩(Cra- bb)의 다음과 같은 말로 알 수 있다. “새턴”(Saturn)의 제단 위에는 밀초들이 놓여 있는데, 그것은 새턴(Saturn)으로 인해 인간들이 오류의 암흑에서 벗어나서 진리의 빛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그리스에서 이 바빌론의 신은 분명히 빛을 주는 “말씀”으로 여겨졌는데, 그곳에서 “벌”이 위대한 계시자의 상징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설명해 준다.
뮬러(Muler)는 에베소의 다이아나 여신 숭배와 관련된 상징들에 관해 “여신의 주 상징물은 벌이었는데, 이 벌은 상징물 외에 다른 이유로는 그녀와 연관되어 사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사제 자신도 에센(Essen) 즉 왕벌이라 불렸다.”고 한다. 대사제의 성격은 그가 섬기는 신의 성격을 설명해 준다. 다이아나는 바빌론 여신과 동일한 존재이며, 그와 같은 사제의 호칭은 그녀의 메달에 새겨진 “벌”이 “여인의 씨”인 그녀의 아이를 인간의 혼에 빛을 비춰 준 “말씀” 다바르로 거짓되이 나타내기 위한 또 하나의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제단 위에서 타고 있는 밀초의 이면에 숨겨진 “신비”이며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우리는 그들의 전례서로부터 얻어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밀초의 신비를 언급하는 동시에 밀랍을 생산해 내는 벌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밀초가 처음에 어떻게 사용되기 시작했는가를 대단히 궁금하게 여기는 우리는 벌들의 역사를 격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은 자기들의 발로 꽃들을 모으지만 꽃들은 결코 벌들로 인해 해를 입지 않는 것이다. 그것들은 ‘입’으로 새끼를 낳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의 ‘입’에서 생겨나신 것과 같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급되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으며, “다바르”가 “벌”과 “말씀”을 동시에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다면 위의 인용에서 벌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발상은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말씀”과 “벌”을 동일시하는 것은 바빌론에서 유래한 것
카톨릭 저서인 “판카르피움 마리아눔”에서 필자는 주 예수께서 분명하게 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았다. 마리아를 “환희의 낙원”이라 칭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낙원에서 천상의 벌, 즉 성육신하신 지혜가 꿀을 얻었다. 이 벌은 그곳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벌집을 찾아내었고, 이것이 타락한 세상의 모든 쓰디쓴 것들을 감미로운 것으로 바꾸어 준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부여받으셨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언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저자가 “성육신한 지혜”를 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배운 바로 그 출처에서 나온 것이다. 주 예수께 붙여진 이름(다바르)의 이중적 의미(말씀과 벌)는 바빌론의 언어에서만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앞에서 언급한 저서의 저자가 그의 신학을 어디서 형성했는지를 말해주며, 또 밀초의 축복에 관한 기도문이 바빌론의 기도 책에서 그대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로마 카톨릭에 대해 하나씩 살펴볼 때마다 성령님께서 일곱 산 위의 여자에게 붙이신 이름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계17:5).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1월 (통권 12 호) page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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