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유대인 학살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백 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 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 되었다.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20세기 최대의 대학살로 꼽히는 만큼 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 ․ 소설 ․ 다큐멘터리 등도 많이 등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을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광기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내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을 찾기 위해 16년에 걸친 추적 끝에 법정에 세우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크라임 스토리>>를 비롯해 홀로코스트 희생 유대인 휴면계좌 공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행사 등 홀로코스트에 관한 뉴스는 20세기가 지난 시점에도 인종 ․ 민족 ․ 국가 ․ 종교를 초월해 인권회복 차원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공중에서 촬영한 것이다
못 먹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
The children above were subject to medical experimentation
by the Auschwitz doctor, Horst Schumann.
The blackening of their bodies was probably the product of burns from exposure
to high dosage radiation,
but the specific experiments conducted upon these particular children is not known.
수용소의 비참한 생활
처형 직전의 유대인 노인들
처형 직전의 유대인 표정엔 두려움이 역력하다
아이를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정
수용소 트러거에 유대인을 꾸역꾸역 태우는 독일 SS요원들의 즐기는 표정
구덩이를 가득 매운 시체들
나치 독일의 집단 학살 수용소(vernichtungslager)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등에서
전기와 가스 등으로 유대인 및 피점령 국민들에게 행한 대량 학살.
전후 이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근대 문명에 배반하는 파시즘의 야만성이 강조되었다.
약 6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유태인이 학살을 당했고
소련군 포로, 반나치 운동가 레지스탕스, 국내 정치범 등이 살해당했다.
이와 같은 무저항의 국민을 학살함으로써 지배를 유지하는 것은
체제 여하를 막론하고 대립이 격화되는 경우나 전쟁시 때때로 되풀이 되었다.
근대 제국주의 전쟁에서는 민족주의 쇼비니즘을 이용해서
적대 국민을 열등, 극악시한 결과 자주 대량살육이 행해졌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일본이 자행한 대량학살과 생체 실험 등을 통하여
교육과 과학기술로 문명이 발전한다고 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야만적인 본능이 감소한다고 말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
하나의 국가 혹은 체제, 집단의 이익에 부합이 된다면
이른바 “최종 계획”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개인의 생각에 따라서
수백만의 생명이 사라진 것이 단지 통계상의 숫자로만 여겨지는
무감각한 세상이 앞으로도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도 종파 간, 종족 간의 살육과 학살이 지구 도처에서 빈발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개인과 소수의 편견 그리고 정권의 유지를 위해 일어난 비극일 뿐
어떠한 이론과 논리로도 설명될 수 없는 잔혹한 행동이다.
독일의 대학살은 종전이 임박해옴에 따라서
대부분의 증거를 없애버리거나 남아있더라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정확한 희생자의 숫자도
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살해 방법, 사후 처리 등도 완벽한 것이 아니며
대부분 증인에 의존한 자료인데
생존자가 극소수의 수용소인 경우 특히 자료가 빈약하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서막을 올린 2차 세계대전의 앙금이
아직 폴란드인들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을 터였다.
1970년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 정상화를 규정하는 이른바
바르샤바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는 12월 7일 아침 보슬보슬 비가 내린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2차 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 40만 명을 추모하는 기념비 앞에서
갑작스럽게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 이 광경을 너무나 뜻밖으로 접하게 됐던 폴란드인들 또한
역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 일로 빌리 브란트는 타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고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양심이 마비된 일본인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A young Jew walks along a railway during the annual March of the Living at the former Nazi
Death Camp Auschwitz-Birkenau, in Oswiecim, southern Poland, Tuesday, April 21, 2009,
to commemorate Holocaust victims. THE ASSOCIATED PRESS/Alik Keplicz
로마 카톨릭 교회의 아들 히틀러를 지원하려고 나치와 하나된 카톨릭 교회
- 바티칸 교황청은 유대인 대학살에 침묵하였다. 침묵하는 것은 동의하는 것이다 -
Hitler leaving Church
Hitler leaves the Marine Church in Wilhelmshaven.
A posed picture which Hitler himself used often
to show what a good "practicing Catholic" he was.
Hitler praying
Church & State
Hitler in front of "Church of our Lady" in Nuremberg, Sept. 1934.
Photographer, Heinrich Hoffmann.
Hitler greets Müller the "Bishop of the Reich" and Abbot Schachleitner
Catholic Bishops giving the Nazi salute in honor of Hitler
Hitler Greets a Catholic Cardinal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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