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학. 4복음서

[스크랩] 말씀과 기도 / 박영돈 교수

수호천사1 2014. 3. 12. 11:38

말씀과 기도



누가 성령으로 충만한 설교자가 될 수 있는가. 그는 먼저 이 설교의 막중한 사명 앞에 절망한 사람이다. 자신의 무능을 절감하고 자신에 대해 처절히 절망한 사람만이 성령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성령에 사로잡힌 설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절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절망은 성령에 대한 전적의존으로 이어지는 참된 희망의 서곡이다. 설교자를 무릎 꿇게 하여 하늘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게 하는 열렬한 기도의 견인차이다. 설교자가 참으로 자신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만 매달리는 기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경륜과 은사와 지식으로 인해 은근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한, 그는 결코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을 것이다. 설교자의 절망이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기도의 자리로 내려가 그의 무능이 성령의 능력을 초청하며 그의 텅 빈(empty) 영혼이 성령의 충만함(fullness)을 불러들인다.

 

설교사역에서 기도와 성령 충만은 한 짝을 이룬다. 기도가 성령으로 충만하는 방편인 동시에 성령 충만의 증거이기도 하다. 성령으로 충만한 설교자는 기도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초대교회에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할 긴급하고 분주한 상황에서도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도들이 최우선 순위를 둔 것이 바로 기도였다. 말씀 사역마저 기도 없이는 효력이 없음을 그들은 절감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고 했던 것이다(행 6:4).

 

변화산 밑에서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기도가 귀신의 세력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체득하게 되었다. 실패한 그들을 향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막 9:29)에서 오직 기도로만 귀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중대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기도가 이 땅의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 땅위에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원하신다.

 

기도와 말씀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복음사역의 두 축이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미미해 보이는 말과 기도라는 방편을 통해 당신의 뜻과 통치를 이 땅위에 펼쳐나가심으로 모든 능력과 영광이 하나님께만 돌아가게 하신다. 그러기에 복음사역은 자신의 힘과 지혜로 업적을 쌓아 자기를 과시하려는 성취지향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는 무척 힘들고 고역스러운 일이다. 인간적인 지혜와 잔꾀를 다 비워 세상 사람들에게는 약간 바보스럽게 보이는 이들, 육신의 혈기와 힘을 다 뺀 약골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도를 하기에는 아직 육신이 너무 지혜롭고 강한 이들이 많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용하시는 설교자를 기도 외에는 소망이 없는 상황 속에 갇혀 있게 하신다. 그러나 설교의 능력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능력 있는 말씀의 선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설교자 자신뿐 아니라 모든 교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설교는 결코 목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동참해야 할 사역이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기 위해 교회에 기도의 향이 가득해야 한다. 새로운 성전으로서의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며 기도의 향이 끊임없이 올라갈 때 하나님의 말씀과 그 영광이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기도의 향이 올라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오지 않고 은혜가 임하지 않는다.

 

기도가 없으면 말씀이 효력이 없고 열매도 나타나지 않는다. 목사의 은사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교인들의 기도의 지원 없이 그의 설교에 성령의 큰 권능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스펄전은 자신의 교회에 방문해서 탁월한 설교의 비밀을 알기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보여주며 자기 설교의 능력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고 했다. 하나님이 교인들의 기도를 통해 목사의 설교를 축복하시는 것은 목사를 겸손히 교인들의 기도를 의존하게 하며 교인들도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음사역에 동참하게 하심이다.

 

목사의 설교사역에 기도로 참여하는 교우들은 대개 설교에 더 큰 유익과 은혜를 누리게 된다.

한국교회 강단에 능력 있는 말씀이 회복되려면 겸손히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한다. 바울 사도 같은 이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복음사역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지 않는 설교자는 얼마든지 자신의 실력으로 설교사역을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교만한 사람이다. 아니면 교인들이 기도하면 설교를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만 커진다고 생각하거나, 교인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자신은 설교를 적당히 때우는 식으로 하거나 못하기로 작정했기에 기도를 부탁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설교사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오랫동안 말씀을 열심히 전해도 그 열매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을 때 설교자는 지치며 에너지와 시간을 무한히 소모하는 것이 아니가하는 회의마저 들게 된다. 목사들 중에는 설교의 열매가 속히 나타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해하는 영적인 조급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복음의 정로를 벗어난 은사운동이나 성령운동의 편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끌고 제압하려는 유혹에 굴복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복음사역자들은 비록 복음의 열매가 빨리 나타나지 않고 교인들의 변화와 교회성장이 지체될지라도, 말씀과 성령의 원칙을 따라 주의 일을 해야 한다. 성령을 따라 설교사역을 하는 것은 바울처럼 모든 겸손과 눈물과 오래 참음으로 일하는 것이다(행 20:19,31). 


어떻게 보면 설교자는 하나님의 소모품 같은 존재이다. 설교사역이 온통 자신을 낭비하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이렇게 무의미하고 소모하는 것 같은 설교사역이 당신의 은혜를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무한히 낭비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오래 인내하고 기다리는 설교사역을 통해 목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은혜를 한없이 탕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결국 탕자들을 설복하듯이, 자신의 청춘을 낭비하는 것 같은 설교자의 사역이 마침내 죄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이키게 할 것이다.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새언약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