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예수님만을 말씀하는 책인가?
어떤 분이 성경의 원어인 구약의 히브리어와 신약의 헬라어를 인용하면서 모든 성경은 예수님만을 말하는 책이기에, 성경은 그 표피로만 보지 말고 그 진의를 깨달아야 하는데,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설교자들이 성경을 예수님과 상관없는 윤리도덕차원의 책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심지어 그분은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도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창조기사가 아니라, 예수님에 관한 비유적인 기사로 풀이하고 있음을 본다. 그분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한 단어 단어, 한 철자 철자에 지나치리만큼 주관적인 의미를 집어 넣어 성경을 지나치게 상징적(우화적)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일예로 창세기의 "태초에"는 순수하게 시간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히브리어의 "뻬레에쉬이트"라는 말인데 이는 "성전 안에서(뻬) 시작하시는(레) 하나님이(에) 구별하여(쉬) 넘겨주어서(이) 완성시킨다(트)."라는 의미를 가진 말로서 성경전체의 주제가 다 들어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성경전체를 거의 다 그런 식으로 해석해 나가고 있음을 본다.
그분의 주장에 의하면 마5:40절의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는 이 구절에서, “속옷”은 “율법”을 나타내고, 속옷을 가지고자 자는 “율법사”를 나타내며 “겉옷”은 “진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진리를 모르고 율법을 요구하는 자들에게 진리를 증거해 주라는 뜻이지, 자구적인 의미로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을 주라는 식의 윤리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마5:41절의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라는 구절도 역시 율법을 요구하는 자에게 진리를 증거해 주라는 말씀이지, 진짜로 오 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십 리를 동행해 주라는 윤리적인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성경을 이상과 같은 논리로 풀어가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그분의 설교와 책에 너무도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의 교회에 초청하여 말씀사경회를 진행하는 목사님이 계신가 하면, 또 그분의 그러한 설교를 온라인에 올려서 여기저기 유포시키려는 열정에 사로잡힌 분들도 꽤 여럿이 있음을 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분의 설교를 들으신 분들의 신앙이 대부분 매우 염세적이고 영지주의적인 성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고, 기존의 교회들을 허무는 여우와 같은 역할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설교자가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하였고, 그 설교자를 따르거나 동조하는 세력들은 자살한다고 지옥가고 그런 것은 없다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설교자가 자살을 했다는 흔적을 가능한 한 다 지워버리고, 젊은 나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은 것으로 오도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설교자가 자살을 하였다는 흔적들을 완벽하게 다 지우지는 못했음을 본다!!!
얼마 전에 어느 분으로부터 그 설교자의 설교를 듣게 된 교인들이 한 순간에 염세적이고 영지주의적 성향으로 흘러가면서 교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고민 상담을 받았기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그분의 설교들을 쭉 들어보았고 그 결과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분의 설교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대략으로 올려보며, 그 분의 설교들이 왜 문제인가를 점검해 보기 원한다. 그분의 모든 설교는 거의 모두가 다 같은 결론으로 이끌어지고 있기에 이 설교 한편의 문제점만을 파악해도 나머지 설교들의 문제점들도 대부분 파악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분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이 글이 그분을 개인적으로 공격할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며, 또 하나 이 글을 통해 또 다른 분이 혹여라도 호기심에 그분의 설교를 듣게 되는 악영향을 피해가기 위함임을 밝힌다. 나 개인적으로 그분의 설교는 아편과 같은 좋지 않은 중독성과 영향력을 나타낸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분은, 마5:41절의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라는 말씀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여기의 “오 리”로 번역된 “밀리온 헤이스”가 사실은 “첫 번째 천”이라는 의미로 “천”이란 옛 성전의 크기인 “천 규빗”을 나타내는 말로서 율법의 옛 성전을 나타내는 “천”이기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곧 진리가 아닌 “율법”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구약의 율법을 담고 있는 성전의 숫자가 천(밀리온)이기에(?), 여기의 “밀리온(천)”이 옛 성전을 나타내는 것이고 옛 성전은 진리가 아닌 율법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결국 여기의 “밀리온(천)”은 진리가 아닌 “율법”을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마5:41절을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개역개정)라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한 성경말씀을 윤리적 차원의 교훈을 주는 책 정도로 오해하게 하는 매우 잘못된 착각이라는 것이다.
정말로 그런 것일까?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너무도 심각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통기독교와 대부분의 교회들이 그런 식으로 이해해 왔고, 또 여전히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분의 주장이 다 진실이라면 대부분의 모든 교회와, 대부분의 모든 설교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을 내려놓고 즉시 돌이켜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지면을 빌어서 그분의 주장들이 모두 진실인지 진지하게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분이 이상과 같이 주장하는 근거로 민35:1-5에 옛 성전의 크기를 나타내는 “엘레프”를 인용했는데, 그분의 주장은 번역성경들이 그 구절을 “이천”이라고 하였지만, 히브리어 “엘레프”가 사실은 “천”이기에 성전을 의미하는 숫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본문을 펴놓고 그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기 바란다. 사실 민수기의 그 본문은 성전이 아니라 레위사람들에게 준 삶의 터전인 성읍을 의미하는 것일뿐더러, 설혹 그것이 그 분의 말대로 성전의 크기를 나타낸다고 백보를 양보한다 하더라도, 그렇기에 마5:41절의 “천”이라고 번역된 “밀리온”은 옛 성전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 무근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 리”로 번역된 말, “밀리온 헤이스” 정확하게는 대격인 “밀리온 헨”이 “일 천”을 의미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그 당시의 일천보를 의미하는 말로 거리상 “오 리”정도로 보는 것이 합당한 것이지, “일 천”이라 하였기에 “첫 번째 천” 즉 “옛 성전”의 크기를 나타내는 말이기에 “옛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비약된 우화적 해석으로조차도 봐줄 수 없는, 참으로 해게망측한 주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어서 “십 리”로 번역된 단어도 사실은 “둘”이라는 수사 “듀오”인데 그것은 “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에 나오는 첫 번째 천(밀리온 에이스, 즉 율법)의 짝을 나타내는 말이고, 결국 율법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그 짝인 진리를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분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모든 성경은 예수님만을 말하고 있는 책”이라는 그 분의 전제를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마5:41절의 의미가 정말로 그런 것일까?
전혀 사실 무근한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헬라어의 수사 “듀오”는 둘(two)을 의미하는 말이지 “짝”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둘씩 내보내어 짝을 이루게 했다는 식으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그 말 자체가 “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짝지어준다”는 말은 수사 “듀오”가 아니라, “쉬쥬그뉘미”라는 단어와 “엥크리노”라는 단어가 있는데, “쉬쥬그뉘미”는 “함께 멍에를 메다, 함께 결합하다.”라는 의미(겔1:11,23;마19:6,막10:9)를 갖고 쓰이며, “엥크리노”는 “어떤 부류에 넣다, ~에 포함시키다, ~셈에 넣다”라는 의미(고후10:12)로 쓰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마 5:41절은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라는 개역개정의 번역이나, “누가 네게 억지로 1밀리온을 가자고 하거든 2밀리온을 같이 가 주어라.”는 식의 우리말성경 번역 등 대부분의 번역성경들이 그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잘 전달해 주는 번역이지 결코 잘못된 번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의 해석은 성경의 진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무책임한 우화적 해석의 한 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의 설교 외에는 다 잘못된 설교들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 안타까운 마음을 그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든 성경은 예수님만을 말하고 있는 책”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모든 성경구절들을 영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혹은 우화적으로 접근하여, 신구약의 모든 성경구절을 “옛 성전(=율법) 대(對) 예수님 성전(=진리)”이라는 식의 억지공식에 꿰어 맞추려는 시도는 매우 어리석은 차원을 뛰어넘어,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말을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상기한 바 대로, 신구약의 모든 성경구절을 “옛 성전(=율법) 대(對) 예수님 성전(=진리)”이라는 식의 억지공식에 꿰어 맞추려다보니, 요8:36의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는 말씀까지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들로 너희가 자유케 되면...” 즉 “아들이 되면 자유하다.”라는 식의 전혀 엉뚱한 확대해석을 하고 있었다! 요8:36절을 헬라어원전으로 보면 개역개정의 올바른 번역과 같이 “호 휘오스”즉 “그 아들이”라는 주격이지 “엔 휘오” 즉 “아들로”라는 여격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가 아들로 자유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진리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런 식으로 근거 없는 확대해석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분의 설교들을 쭉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객관성 상실이라는 너무도 큰 위험의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분은 왜 이상과 같은 이상한 논리로 성경본문을 해석해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분의 설교들은 항상 “모든 성경은 예수님만 말하고 있는 책”이라는 정해진 결론을 향하여만 정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주장은 사람이 좋은 글이나 영화만 봐도 인격이 바뀌는데, 성경이 사람의 인격이나 바꾸고자 하는 그런 의도로 쓰여진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을 말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성경이 예수님을 말하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상에 인용된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경은 신, 구약 모두가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신, 구약의 모든 성경이 다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말과 “신, 구약의 모든 성경이 다 예수님만을 말씀”하고 있다는 말은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성경전체의 흐름 속에서 구약은 장차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고, 신약은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으며, 또 장차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성경구절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히브리어, 헬라어의 철자 하나하나에 숨겨진 뜻이 있는 무슨 신비의 암호책과 같은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일예로 예수님의 조상이었던 다윗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실제적인 다윗일 뿐 다윗이 곧 예수님은 아닌 것이다. 다윗과 예수님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성경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고 해서, 성경전체를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촛점을 맞추어 해석하고 적용하려한다면 매우 위험한 극단의 잘못으로 치우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전체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맞지만, 성경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한다는 말은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과 모든 인물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맞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련 속에서 그 사건과 인물만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교훈과 진리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지, 성경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책이라는 전제하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것들을 다 묵살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살리기 위하여 다른 것들을 무시하거나 축소시킨다면 그것은 또 다른 극단의 잘못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단 _영지주의, 신적운명론, 자살
'영적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천년왕국의 세계 _카이로스 (0) | 2014.03.09 |
---|---|
[스크랩] 이단 _영지주의, 신적운명론, 자살 (0) | 2014.03.09 |
[스크랩] `영적 전쟁의 성서적 원리 (0) | 2014.03.06 |
[스크랩] 영적전쟁*박효진 장로 (0) | 2014.03.06 |
[스크랩] 뉴에이지 운동의 실체 (0) | 2014.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