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무임목사님께 드리는 글

수호천사1 2014. 3. 6. 00:57

예수가좋다오

무임목사님께 드리는 글 
글- 이상은 목사  

 

차례
1.  교회가 없는 목사님들

2.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

3.  신학생과 목회자, 그리고 다른 직업

4.  농어촌 선교 사역

5.  해외 선교 사역

6.  가정 목회 사역

7.  저술 목회 사역

8.  출판 목회 사역

9.  번역 목회 사역

10. 문화 목회 사역

11. 신문방송 목회 사역

12. 찬양 목회 사역

13. 영화 목회 사역

14. 테이프 목회 사역

15. 컴퓨터 목회 사역

16. 정치 목회 사역

17. 경제 목회 사역

18. 자선 목회 사역

19. 제자훈련 목회 사역

20. 전도훈련 목회 사역

21. 교도소 목회 사역

22. 성경원어 목회 사역

23. 이단연구 목회 사역

24. 웅변성악 목회 사역

25. 부흥 목회 사역

26. 교육 목회 사역  

27. 건강 목회 사역

28. 법조 목회 사역

글을 마치면서

 

    

  1. 교회가 없는 목사님들

   

 몇 년 전에 지하 개척교회에 시무 하시던 목회자의 사모님과 그 후임자로 부임하신 전도사님이 지하실 교회에 있는 사택에서 사시다가 피부암에 걸려 하늘나라에 가신 소식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척교회를 하다가 너무나 부흥이 안 되어 고민을 하던 전도사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과 교회당 건물을 지어 놓고 수억의 빚 문제 때문에 자살한 목사님의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쓰라리게 합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암담했으면 그런 최후의 결정까지 했겠습니까?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은 남편과 함께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 할 교회를 구했으나 초빙을 받지 못해 자신들의 목회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개척교회를 하자니 개척 자금도 없고 두렵기도 하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이제 신학을 전공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디 이 분 뿐이겠습니까?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 여러 가지 사유로 시무 할 교회가 없어 목회를 하지 않고 있는 무임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함께 모여 친목도 도모하고 목회 정보도 교환하자는 광고가 실린 것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는 무임 목회자를 위한 교회가 생겨서 주일 예배를 드릴 곳이 마땅치 않는 목회자들에게 영적으로 재충전 할 수 있도록 예배 장소와 목회 자료, 정보를 제공하며 상담도 한다고 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도 재미 한인 목회자 중에서 은퇴, 학업, 안식년 등으로 섬길 교회가 없는 무임 목회자와 그 분들의 가족을 위해 기독교 단체들이 힘을 모아 교회를 세웠습니다. 벌써 여러 해 전에 남부 캘리포니아에만도 한인 무임 목회자가 1,200명 정도 되며 무임 선교사와 전도사, 신학생까지 합하면 2,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기독교사회책임'에 의하면 우리나라 무임목회자가 무려 5만명에 이른다고 하며, 무임 목회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어느 목회자는 무임 목회자가 1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임 목회자들에게, 불굴의 개척 정신이나 뜨거운 영혼구원의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말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이나 존 웨슬레나 조용기 목사님 같은 탁월한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장래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신학도와 무임 목회자들이나 목회를 한지 오래되었지만 너무 열매가 없고 목회에 너무 고전하고 있는 목사님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연구해 보는 것도 한국 교회의 과제일 것입니다.

 

   참으로 이 시대에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가장 고귀한 사명이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는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 어느 정도 경제적 생활을 보장받을 평균 대학원 졸업 이상의 고학력 엘리트와 그 가족들이 장래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지 못할 고생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기며 하늘의 상 주심을 바라본 것처럼, 오늘날도 많은 개척교회와 농어촌과 낙도교회의 목회자나 해외 오지의 선교사의 길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한국 교회의 70-80% 이상이 교인 수 100명 이하의 교회라고 합니다. 더구나 한국 교회 중 3만 교회가 교인 30명 이하의 교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오래 되지 않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직자의 월 평균 소득은 140만원 정도입니다. 목회자에게 세금을 내게 하자는 여론이 있지만 목회자의 90%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적은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합니다. 성직자 안에는 천주교 신부나 불교 승려도 포함되겠지만, 신부나 불교 가운데 조계종 같은 종파의 독신 승려는 부양가족이 없어 적은 물질로도 혼자 생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기독교 목회자는 그 정도의 수입으로는 생활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목회자는 우리나라 전체 직업의 소득으로 볼 때 소득이 하층에 속합니다. 더구나 다른 고학력자들과 비교할 때 아주 소득이 낮은 편입니다. 대학원 졸업자의 평균 월 소득이 399만원 (2006년 3월 통계)이며 도시 근로자의 평균 월 소득 300만원 정도 되는데, 성직자의 수입은 그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연구 보고에 의하면, 한국의 개척 교회 평균 신자 수는 40명이 안 되며 기성교회가 날로 대형화하고 있는 데 반해, 개척교회는 낙후성을 면치 못하는 등, 개신교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체 개척교회의 52%가 월세나 전세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월 세액은 한 달 평균 37만 원, 전세 액은 평균 3천6백여 만원이었습니다. 개척교회 목회자의 월 사례비는 전체 평균액이 53만 원이었으며 목회자 중 20%는 아예 받지 않거나 30만원이하인 것으로 조사된 반면 1백만 원이 넘는 목회자는 2.3%에 불과했습니다. 캠퍼스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 선교단체 간사들도 목회자 만큼 물질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신학생들이 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이나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 같은 분을 염두에 두고 목회자가 되려고 하는데, 사명감이 부족하거나 물질의 어려움을 각오하지 않고 섣불리 목회 전선에 뛰어 들면 크게 낙심하고 실망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목회도 현실과 이상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오래 전 저의 아버님이 경북 청도 송금교회에서 목회 하시다가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 새로 목사님을 모시려고 기독신문에 광고를 내었더니 수십 통의 이력서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신학박사 학위를 가진 분도 이력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여러 모로 환경이 열악한 농촌인데도 말입니다. 더구나 서울이나 대도시의 큰 교회는 담임목사를 초빙한다는 신문광고가 나가면 수백 통의 이력서가 들어와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는데, 요즘은 시대가 시대인지라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심지어 대도시의 큰 교회는, 다른 큰 교회 부목사로 시무 했거나 박사 학위가 없으면 초빙 리스트에 올라가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신학박사(Th.D)나 혹은 목회학박사(D.Min)학위라도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로 인하여 국내외에서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넘치고 있는데 기독교계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외국에 유학 가서 오랜 세월 고생하며 신학을 공부하여 철학박사(Ph.D)나 신학박사를 받고서도 신학대학 교수 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강사로 전전하기도 하고 마땅한 목회지도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도 상당히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부터 수십 년 전에는, 오늘날 중국의 지하 교회처럼 목사님이 귀하고 드물어서 목사님 한 분이 주일이면 여러 교회에 다니면서 천사처럼 정중한 대접을 받으면서 순회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목사님이 하도 많아서 전에는 신학생 전도사님도 가기 싫어한 산골이나 낙도의 작은 교회까지도 대부분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제는‘목사님이 많은데 당신 아니면 목사님이 없나요’하면서 오히려 교인들이 배짱을 퉁기며 목회자에게 큰 소리 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천주교의 신부나 불교의 승려보다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도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천주교나 불교에서 신도들이 신부나 주지 승려를 함부로‘들어오라, 나가라’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교인들이 오라 가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한국 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보기 드문 성장을 했으며 한국 기독교계 전체적으로 280여 개의 신학교에서 해마다 무려 1만 명 가까이 되는 신학생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다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목회자 수도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만 해도 1990년도부터 불과 5년 사이에 목회자의 수가 무려 3천여 명이 늘어났습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어느 교수님의 조사에 의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교단에서만 해도 무임 목사님이 서울 시내에만 1998년도에만 이미 1,200명 정도나 되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많은 분들이 공부를 하고 있거나 여러 기독교 관련 기관에서 활동을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전체 교단에서 시무 할 교회를 찾지 못한 무임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의 숫자는 적지 않습니다.

 

   물론 전 세계를 볼 때 지구상에는 아직도 잃어버린 영혼이 수없이 많고 추수할 일꾼은 심히 적습니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65억 인구 중에서 순수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숫자는 3억 명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볼 때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수십 억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의 13억 명의 영혼과 인도의 10억 명이 넘는 인구, 중동과 동남아의 이슬람교 13억 명 영혼, 북한의 동포를 포함하여 세계 복음화를 위한 시각에서 보면 매년 배출되는 1만 명의 목회자 후보생의 배출도 결코 많은 수가 아닙니다. 북한에만 해도 앞으로 통일이 되면 당장 1만 5천 개의 교회와 4만 명의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국내의 목회 현실로 볼 때는 매년 신학생이 1만여 명 가까이 배출된다는 것은 많은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교회성장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매년 신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의 80% 이상은 기존의 교회에서 목회하지 못하고 교회 개척을 해야 할 실정입니다.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자체 조사에도 2002년도 졸업생 244명 중 졸업 때까지 일할 곳이 결정된 사람은 1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89 %는 교회 개척을 하든지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많은 신학생들이 기존 교회의 교역자로 가려니 경쟁이 치열하여 엄두도 나지 않고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 목회 할 교회가 드물고, 오래된 도시에서 개척하자니 이미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 개척교회를 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전망이 있는 도시의 새로운 아파트 단지나 신도시로 개척하기 위해 물밀듯이 몰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신도시 개발 계획에 대한 뉴스가 들리면 귀가 솔깃해지고 정신이 번쩍 드는 목회자와 신학도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해마다 졸업해 나오는 수많은 신학생과 목회자가 설자리는 어디입니까? 신학교를 나왔으나 목회 할 교회는 없고 개척을 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이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자니 왠지 주님께서 주신 목회 사명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생이 고민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

           

서울대 음대 나온 놈 나왓!

군부대에 신병이 배치되었다. 고참병이 신병들을 집합시켜 놓았다.

      

 -야! 너희 중에 음대 나온 놈 있나?

예, 저는 전라도에 있는 거시기 음대를 나왔당게라우!

-그래? 거시기 음대도 음대라고 명함을 내민다냐잉?

 

다른 놈은?

야, 지는 마, 갱상도에 있는 머시기 엄대를 나왔심더!   

-야 임마, 갱상도 놈, 엄대가 뭐꼬, 음대지! 그라고, 머시기

 

음대도 음대가? 다른 놈 없나!  

옛! 저는 국립 서울대 음대 나왔습니다.

-오, 그래? 국립이라, 또 다른 놈은?

      

옛 써얼~ 아임 줄리어드 뮤직 스쿨 유학 갔다 왔습네다~

-오우~버터 냄새, 그래? 쥬리아 뭐라고?

너 서울대 음대 나온 놈하고 거시기 쥬리아 화장품 나온 놈 나왓!!       

너희 두 놈, 명문 음대 나왔으니까 저기 있는 피아노 이쪽으로 옮겻!!

 

 -그 다음! 미술대 나온 놈 없나?

 예, 저는 충청도에 있는 조아유 대학 미술대를 다녔시유!  -조아유 대학도 학교유? 다른 놈!

예, 저는 홍익대학교 미대를 나왔고 빠리 유학갔다 왔습니당!

-오, 프랑스 빠리~ 그래, 너 미술 잘하겠구나,

너, 빨리 가서 저 벽에 있는 낙서들, 페인트로 다 지웟 !!


교회 안에서나 사회에서 자기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는 분들에게 귀한 교훈입니다. 인생의 보람은 자기가 잘하고, 즐기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에게 찾아옵니다. 아침에 직장에 갈 때 마지못해 신음하며 엉금엉금 기다시피 간다거나 교회에서 일할 때 하기 싫은 것 억지로 한다면 하나님 주신 재능과 은사가 아닐 것입니다.

 

   <위대한 나의 발견*강점 혁명>이라는 책을 보면 누구에게나 강점이 있는데 16세에 거의 다 결정이 된다고 합니다. 나의 약점을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내게 주신 강점을 갈고 닦을 때 인생에서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리가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훨훨 날고 싶어 하다가는 날개 죽지만 빠질지 모르므로 오리는 유유히 헤엄만 더 잘 치면 됩니다. 독수리가 오리를 부러워하여 물에서 헤엄을 잘 치려고 하다가는 물귀신 될지도 모르므로 독수리는 푸른 하늘 높이 더 잘 나는 훈련만 하면 됩니다.

 

   인생에서 남보다 낙오한 자나 노숙자 같은 이들도 무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의 강점, 자기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적은 자가 구역장이나 속장, 혹은 교사를 한다면 피차간에 고역이고, 콩나물 대가리만 봐도 골치 아픈 사람에게 성가대를 하거나 피아노를 억지로 배우라고 강요한다면 두통이나 소화불량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공무원이나 학자가 될 재능과 적성이 있는 사람이 사업을 하면 성공하기 힘들 것이고,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이 학자나 교사가 되려고 하다가는 뜻을 이루기 힘들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사람의 강점과 은사를 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기도하며 잘 발휘할 때 기쁨이 있고 은혜가 있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은사와 재능을 더욱 불 일듯 하게 하십니다.

 

   물론 성령님은 우리 힘으로 하기 힘든 일도 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저같이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라는 소리만 듣고 사춘기 시절 이후에 대중들 앞에 서기를 힘들어하는 무대 공포증이 있었던 사람도, 스무 살에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나중에 신학대학원 다닐 때 서울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길에 대중 전도를 몇 년 간 했습니다. 그때는 전철에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생겨 좀 더 큰 소리로 전도했지요. 전도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여름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도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종종 이름도 얼굴도 교회도 교단도 알지 못하는 분들이 음료수를 사서 마시거나 자장면이라도 사먹으라고 꼬깃꼬깃한 돈을 제 호주머니에 넣어주셨지요. 지하철에서는 장로교니 감리교니 성결교니 하는 교단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지하철 파출소에 끌려가서 벌금도 물었지요. 한번은 그 당시 교육 전도사 사례금 20여만 원 받아 2만원 벌금을 물었더니 선하신 하나님께서 며칠 내에 10배로 갚아 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 은혜 받고 성령님의 은사를 불일 듯 하여 요셉과 다윗처럼, 바울처럼, 마리아와 에스더처럼 더욱 귀하게 쓰임 받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잘 찾아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주님 앞에서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흔해 빠진 상품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을 들여 만드신 걸작 중에 걸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일터> 라는 책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스롤리 블로트닉 연구소에서 1,5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20년에 걸쳐 ‘부를 축적하는 법’을 연구했습니다. A그룹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나중으로 미루고,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로서 전체 조사 대상의 83%를 차지했습니다. 나머지 B그룹은 돈은 나중 문제이고, 먼저하고 싶은 일을 최우선적으로 삼은 경우로서 17%를 차지했습니다. 20년 후 마침내 발표된 조사 결과는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 ‘1,500명 중 101명만이 억만 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억만 장자 중 단 1명을 제외한 100명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B그룹에서 나왔다.’

 

   이 연구의 결과는‘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성공하고 훨씬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고 성공했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때 성취감을 느끼고 어느 정도 행복감도 느끼고 이른바 세상적으로 성공도 하여 사회에도 공헌을 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재능과 은사도 없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고통스럽거나 자신의 계획대로 안 될 가망성이 있습니다. 저술가 구본형 씨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연결한 생활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강조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신의 은사나 재능이 아니라는 이유를 달아 회피할 가능성도 있고, 주님께서 주신 전도나 선교의 사명이나 그밖에 수많은 힘들고 어려운 일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바에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한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보람차고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요 은사입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각자의 직업에 대한 적성을 염두에 두고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체적 조건이나 성격, 지능, 흥미 등 직업 적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이 할 일을 결정을 하게 됩니다. 자기의 성격, 재능, 흥미, 지능이나 학식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자칫 일생 동안 고생하고 자신의 아까운

 

오래 전 저의 아버님이 경북 청도 송금교회에서 목회 하시다가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 새로 목사님을 모시려고 기독신문에 광고를 내었더니 수십 통의 이력서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신학박사 학위를 가진 분도 이력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여러 모로 환경이 열악한 농촌인데도 말입니다. 더구나 서울이나 대도시의 큰 교회는 담임목사를 초빙한다는 신문광고가 나가면 수백 통의 이력서가 들어와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는데, 요즘은 시대가 시대인지라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심지어 대도시의 큰 교회는, 다른 큰 교회 부목사로 시무 했거나 박사 학위가 없으면 초빙 리스트에 올라가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신학박사(Th.D)나 혹은 목회학박사(D.Min)학위라도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로 인하여 국내외에서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넘치고 있는데 기독교계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외국에 유학 가서 오랜 세월 고생하며 신학을 공부하여 철학박사(Ph.D)나 신학박사를 받고서도 신학대학 교수 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강사로 전전하기도 하고 마땅한 목회지도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도 상당히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부터 수십 년 전에는, 오늘날 중국의 지하 교회처럼 목사님이 귀하고 드물어서 목사님 한 분이 주일이면 여러 교회에 다니면서 천사처럼 정중한 대접을 받으면서 순회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목사님이 하도 많아서 전에는 신학생 전도사님도 가기 싫어한 산골이나 낙도의 작은 교회까지도 대부분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제는‘목사님이 많은데 당신 아니면 목사님이 없나요’하면서 오히려 교인들이 배짱을 퉁기며 목회자에게 큰 소리 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천주교의 신부나 불교의 승려보다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도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천주교나 불교에서 신도들이 신부나 주지 승려를 함부로‘들어오라, 나가라’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교인들이 오라 가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한국 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보기 드문 성장을 했으며 한국 기독교계 전체적으로 280여 개의 신학교에서 해마다 무려 1만 명 가까이 되는 신학생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다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목회자 수도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만 해도 1990년도부터 불과 5년 사이에 목회자의 수가 무려 3천여 명이 늘어났습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어느 교수님의 조사에 의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교단에서만 해도 무임 목사님이 서울 시내에만 1998년도에만 이미 1,200명 정도나 되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많은 분들이 공부를 하고 있거나 여러 기독교 관련 기관에서 활동을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전체 교단에서 시무 할 교회를 찾지 못한 무임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의 숫자는 적지 않습니다.

 

   물론 전 세계를 볼 때 지구상에는 아직도 잃어버린 영혼이 수없이 많고 추수할 일꾼은 심히 적습니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65억 인구 중에서 순수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숫자는 3억 명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볼 때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수십 억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의 13억 명의 영혼과 인도의 10억 명이 넘는 인구, 중동과 동남아의 이슬람교 13억 명 영혼, 북한의 동포를 포함하여 세계 복음화를 위한 시각에서 보면 매년 배출되는 1만 명의 목회자 후보생의 배출도 결코 많은 수가 아닙니다. 북한에만 해도 앞으로 통일이 되면 당장 1만 5천 개의 교회와 4만 명의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국내의 목회 현실로 볼 때는 매년 신학생이 1만여 명 가까이 배출된다는 것은 많은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교회성장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매년 신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의 80% 이상은 기존의 교회에서 목회하지 못하고 교회 개척을 해야 할 실정입니다.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자체 조사에도 2002년도 졸업생 244명 중 졸업 때까지 일할 곳이 결정된 사람은 1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89 %는 교회 개척을 하든지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많은 신학생들이 기존 교회의 교역자로 가려니 경쟁이 치열하여 엄두도 나지 않고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 목회 할 교회가 드물고, 오래된 도시에서 개척하자니 이미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 개척교회를 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전망이 있는 도시의 새로운 아파트 단지나 신도시로 개척하기 위해 물밀듯이 몰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신도시 개발 계획에 대한 뉴스가 들리면 귀가 솔깃해지고 정신이 번쩍 드는 목회자와 신학도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해마다 졸업해 나오는 수많은 신학생과 목회자가 설자리는 어디입니까? 신학교를 나왔으나 목회 할 교회는 없고 개척을 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이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자니 왠지 주님께서 주신 목회 사명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생이 고민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

    
   교회 안에서나 사회에서 자기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는 분들에게 귀한 교훈입니다. 인생의 보람은 자기가 잘하고, 즐기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에게 찾아옵니다. 아침에 직장에 갈 때 마지못해 신음하며 엉금엉금 기다시피 간다거나 교회에서 일할 때 하기 싫은 것 억지로 한다면 하나님 주신 재능과 은사가 아닐 것입니다.

 

   <위대한 나의 발견*강점 혁명>이라는 책을 보면 누구에게나 강점이 있는데 16세에 거의 다 결정이 된다고 합니다. 나의 약점을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내게 주신 강점을 갈고 닦을 때 인생에서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리가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훨훨 날고 싶어 하다가는 날개 죽지만 빠질지 모르므로 오리는 유유히 헤엄만 더 잘 치면 됩니다. 독수리가 오리를 부러워하여 물에서 헤엄을 잘 치려고 하다가는 물귀신 될지도 모르므로 독수리는 푸른 하늘 높이 더 잘 나는 훈련만 하면 됩니다.

 

   인생에서 남보다 낙오한 자나 노숙자 같은 이들도 무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의 강점, 자기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적은 자가 구역장이나 속장, 혹은 교사를 한다면 피차간에 고역이고, 콩나물 대가리만 봐도 골치 아픈 사람에게 성가대를 하거나 피아노를 억지로 배우라고 강요한다면 두통이나 소화불량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공무원이나 학자가 될 재능과 적성이 있는 사람이 사업을 하면 성공하기 힘들 것이고,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이 학자나 교사가 되려고 하다가는 뜻을 이루기 힘들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사람의 강점과 은사를 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기도하며 잘 발휘할 때 기쁨이 있고 은혜가 있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은사와 재능을 더욱 불 일듯 하게 하십니다.

 

   물론 성령님은 우리 힘으로 하기 힘든 일도 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저같이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라는 소리만 듣고 사춘기 시절 이후에 대중들 앞에 서기를 힘들어하는 무대 공포증이 있었던 사람도, 스무 살에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나중에 신학대학원 다닐 때 서울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길에 대중 전도를 몇 년 간 했습니다. 그때는 전철에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생겨 좀 더 큰 소리로 전도했지요. 전도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여름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도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종종 이름도 얼굴도 교회도 교단도 알지 못하는 분들이 음료수를 사서 마시거나 자장면이라도 사먹으라고 꼬깃꼬깃한 돈을 제 호주머니에 넣어주셨지요. 지하철에서는 장로교니 감리교니 성결교니 하는 교단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지하철 파출소에 끌려가서 벌금도 물었지요. 한번은 그 당시 교육 전도사 사례금 20여만 원 받아 2만원 벌금을 물었더니 선하신 하나님께서 며칠 내에 10배로 갚아 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 은혜 받고 성령님의 은사를 불일 듯 하여 요셉과 다윗처럼, 바울처럼, 마리아와 에스더처럼 더욱 귀하게 쓰임 받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잘 찾아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주님 앞에서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흔해 빠진 상품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을 들여 만드신 걸작 중에 걸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일터> 라는 책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스롤리 블로트닉 연구소에서 1,5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20년에 걸쳐 ‘부를 축적하는 법’을 연구했습니다. A그룹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나중으로 미루고,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로서 전체 조사 대상의 83%를 차지했습니다. 나머지 B그룹은 돈은 나중 문제이고, 먼저하고 싶은 일을 최우선적으로 삼은 경우로서 17%를 차지했습니다. 20년 후 마침내 발표된 조사 결과는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 ‘1,500명 중 101명만이 억만 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억만 장자 중 단 1명을 제외한 100명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B그룹에서 나왔다.’

 

   이 연구의 결과는‘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성공하고 훨씬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고 성공했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때 성취감을 느끼고 어느 정도 행복감도 느끼고 이른바 세상적으로 성공도 하여 사회에도 공헌을 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재능과 은사도 없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고통스럽거나 자신의 계획대로 안 될 가망성이 있습니다. 저술가 구본형 씨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연결한 생활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강조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신의 은사나 재능이 아니라는 이유를 달아 회피할 가능성도 있고, 주님께서 주신 전도나 선교의 사명이나 그밖에 수많은 힘들고 어려운 일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바에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한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보람차고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요 은사입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각자의 직업에 대한 적성을 염두에 두고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체적 조건이나 성격, 지능, 흥미 등 직업 적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이 할 일을 결정을 하게 됩니다. 자기의 성격, 재능, 흥미, 지능이나 학식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자칫 일생 동안 고생하고 자신의 아까운

 

능력을 썩히고 맙니다. 그러므로 직업을 택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하고 할 수만 있으면 성격검사나 직업적성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격검사나 직업적성검사에 관한 책들을 구입하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사를 받아 볼 수도 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님에 의하면 미국 탈보트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 과정(M.Div) 3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인성검사와 은사 테스트를 통해 목회자로서 어떤 은사를 가졌는지 수백 개의 문항을 가지고 세밀하게 검증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테스트를 거쳐 교육목사, 상담목사, 선교목사, 행정목사, 담임목사 등을 놓고 어느 분야가 적격인지 가린다고 합니다. 당시 졸업생 가운데 담임목사의 은사를 받은 학생은 1/4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합니다. 저는 신학교를 여러 해 동안 다녔지만 이런 중요한 테스트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신학교에서 아직도 이런 테스트를 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나라의 신학교도 하루 속히 이런 테스트나 직업적성검사나 성격유형검사, 은사 테스트 등을 도입하여 신학생들의 재능과 은사를 검증해 주면 장래의 진로 결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교회성장학자가 하는 말이, 목사가 가는 교회마다 분열되고 어려움을 당하거나 있던 교인들이 다 나가버린다면 그 목회자는 담임목사의 은사가 없다고 합니다. 필자도 은사 검사를 위하여 인터넷으로 은사를 확인해 본 적이 있습니다.(www.mygift.pe.kr) 결과를 보니 영 분별과 예언과 지식의 은사에 높은 점수가 나왔으나 다스리는 은사와 사도의 은사와 대접하는 은사 그리고 구제 은사 등은 점수가 낮았습니다.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기 원하면 미국 윌로우 크릭교회의 은사별 사역 발견 프로그램을 번역한 <네트워크 은사발견사역>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회자나 신학생 가운데 목회의 은사가 부족한 분이 있다면 신속히 자기 적성과 은사를 발견하여, 귀중한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면에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영혼구원을 위해서 이바지해야 합니다.

          

  네 가지 기질

     

  팀 라헤이 목사는 그의 저서 <성령과 기질>에서 고대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발표한 네 가지의 기질, 즉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에 관하여 성경의 관점에서 각 기질의 장점과 단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혈질은 온화하고 세상을 밝게 보며 모든 일을 즐기는 타입입니다. 그는 유창한 화술로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혼자 있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즐겨하고 외향적이며 자신만만합니다.

 

   그러나 다혈질의 단점은 의지가 약하고 자기 훈련이 부족합니다. 준비성이 부족하고 끝마무리도 잘 못합니다. 자기의 약속과 결심과 의무를 곧잘 잊어버립니다. 발끈하는 급한 기질은 폭발하는 경우가 많으나 곧 그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이들은 보통 세일즈맨, 교사, 상담자, 영화배우, 연설가 등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담즙질은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는 편입니다. 그는 계획을 잘 세우고 한번 일을 시작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결단력과 집착력이 있고 조직적인 일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세부적인 일에는 싫증을 느낍니다. 그러나 대담한 정도로 일 처리를 하며, 강력한 의지는 집단을 이끌고 가기에 충분하고 지도자로서의 소질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담즙질의 단점은 거칠고 화를 잘 내며 성급하고 오만하여 타인에게 상처를 잘 줍니다. 동정심이 부족하고 한번 품으면 적의를 품으면 심한 복수심 때문에 자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끝까지 쫓아가 보복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잔인성이 있어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과 권리를 무시하고 짓밟는 경향이 있습니다. 강력한 지도자도 되지만 극악한 범죄자와 독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울질은 다른 어떤 기질보다 사려가 깊고 예민합니다. 예술에 뛰어나고 다른 기질보다 창조적이며 천재의 비율이 높습니다. 그는 완전주의자로서 내성적이며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우울질은 본래부터 신실한 사람이므로 일부러 신실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은 앞에 나서서 일하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울질의 단점은 염세적이며, 지나친 자기 성찰로 병적인 정신 상태가 될 때가 많으며 우울증 환자가 되기 쉽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그의 예민한 성격과 합쳐져서 쉽게 화를 내고 모멸감을 잘 느낍니다. 또 한가지 우울질의 특성은 남에게 당한 모욕감을 용서해 주기가 힘이 들고 증오심과 적의를 품고 있어 보복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모세나 예레미야 등 성경에 나타난 뛰어난 인물들 가운데 우울질이 많다고 합니다. 이 타입은 모든 일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능력 때문에 수학, 과학, 의학, 철학, 문학 등 주도면밀한 일에 적합합니다.

 

   점액질은 유머 감각이 있으며 곧잘 남을 웃깁니다. 느리고 태평스러우며 가능한 한 모든 일을 천천히 합니다. 명랑하고 훌륭한 성품과 책임감이 있으며 믿을 만한 타입입니다. 그는 신실한 친구가 될 수 있고 남의 고민을 사려 깊게 들어주며 상담가로서 적합합니다. 그는 상황 분석을 잘하고 어떤 압력 밑에서도 일을 잘 완수합니다. 완전주의자는 아니지만 꽤 높은 정도의 정확성과 정밀성이 있으며 정돈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액질의 단점은 느린 것과 게으름입니다. 그는 결단력이 약하고 고집이 강하며 몸을 사립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기질 가운데 단점이 작아지고 장점이 커지며, 은혜가 떠나면 장점이 사라지고 단점이 부각됩니다.


  성경인물 프로파일

   

   근래에는 성경 속의 인물을 대상으로 하나님께서 개개인에게 주신 독특한 행동 특성을 연구하고 개발한 ‘성경인물 프로파일 시스템’이 국내에 소개되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마스턴 박사가 기초를 마련한 뒤 계속 모델을 확장해온 이 프로파일은 세계적으로 3천만 명 이상이 사용해 왔으며 기독교인의 자기 개발을 위한 진단 도구로 보급되고 있습니다. 이 파일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 유형은 크게 주도형, 사교형, 안정형, 신중형으로 구분됩니다. 

   

   주도형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목표를 세워 빠르게 추진하는 경향이 있으며 독재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결단력과 의지가 강하며 변화를 원하고 독립심과 경쟁심이 강합니다. 목회자의 경우 성도들을 위한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를 원하며 개인적인 목표 달성을 못하면 화를 내기도 합니다.

   사교형은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감정적이며 열정적이고 낙관적입니다. 활동적이며 말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목회자는 신자들을 격려하며 열정을 이끌어내며 전도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습니다.

 

   안정형은 참여적인 관리 스타일로 의사 결정을 위임하거나 위험 부담이 있는 의사 결정을 늦게 합니다. 온화한 성격에 믿음직하고 조용하며 느긋하고 내성적입니다. 전통적인 목회 스타일을 선호하고 지역 사회 봉사를 강조합니다. 스트레스를 속으로 삭이며 논쟁이나 갈등을 회피하는 형입니다.

   신중형은 완벽주의에 예민하고 정확한 성격입니다. 진지하고 정보가 많이 필요하며, 질서를 좋아하고 조심스런 성격입니다. 원리 원칙을 강조하고 분석적입니다. 교회가 교리와 성경 말씀대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중 지능

   

   하버드 대학교의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 교수는 고정된 I.Q 신화를 깨드리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중지능(多重知能)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 다중지능은 일찍 자극을 받을수록 다양한 능력이 개발됩니다. 이러한 지능들 가운데 자신에게 좀 더 뛰어난 지능을 발견하여 잘 계발하면 그 방면에서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음악적 지능(musical intelligence)은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직관적 이해와 분석적이고 기능적인 능력입니다. 음악적 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소리, 리듬, 진동과 같은 음의 세계에 민감하고, 사람의 목소리와 같은 언어적인 형태의 소리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소리에도 예민합니다. 예를 들어,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누가 오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사람은 음악적 지능이 높다고 합니다. 악기 연주를 좋아하고 작곡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단순히 음악이나 리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소리의 전체를 다루기 때문에 청각-진동적인 지능(auditory/vibrational intelligenc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음악적 학습자는 노래를 좋아하며, 흥얼거리기를 잘하고, 음악 감상과 악기 연주를 좋아합니다. 한 번 노래를 들으면 쉽게 멜로디를 익히며, 음높이나 리듬 등을 쉽게 구별하고 잘 배웁니다.

   음악적 지능을 가진 사람은 음악비평가, 작곡가, 작사가, 연주가,  음악가, 악기 제조자, 피아노 조율사 등에 적합합니다.

   

   둘째로, 신체-운동적 지능(bodily-kinesthetic intelligence)은 신체의 운동을 손쉽게 조절하는 능력으로, 이 지능을 가진 사람은 신체적으로 발달되어 있고 순발력이 뛰어나며 반사 반응이 빠르고 육체적 운동을 좋아합니다. 직접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계에 대한 이해가 빠릅니다. 가수들이 노래할 때 병행하는 율동을 쉽게 따라하거나 레크리에이션 등에서 하는 무용, 연극 등을 잘합니다. 또, 손으로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 손재주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글이나 그림보다는 몸 동작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자동차 운전은 물론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다른 사람보다 쉽게 배워버린다든지 나무를 잘 타고 오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즉 몸의 균형 감각과 촉각이 다른 사람들에 배해 발달되어 있습니다.

 

   신체-운동학적 지능은 가드너의 지능들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는 것으로서 사람마다 자신의 운동, 균형, 민첩성, 태도 등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봅니다. 농구선수 허재, 야구선수 박찬호, 축구선수 황선홍 등과 같은 유명 운동선수들은 신체-운동적 지능에 강하고, 이러한 유명 운동선수들의 지능은 선수가 되기 이전부터 이미 나타났다고 가드너는 주장합니다. 유명 운동 선수들은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고 어떻게 반사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가졌다고 합니다.

   신체-운동적 학습자는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며, 만져보면서 이야기하고, 신체 언어를 많이 활용합니다. 이런 학습자들은 스포츠, 댄스. 연극, 그리고 손재주를 이용한 신체적 활동을 잘 합니다. 신체 감각을 통한 지식 탐구, 공간과의 교류, 만지기, 움직이기 등을 통해 잘 배웁니다.

 

 신체-운동적 지능에 뛰어난 사람은 무용가, 연기자, 운동 선수, 발명가,  기계 기술자, 무술가, 공예가, 조각가, 외과의사 등에 적합합니다.

   

   셋째로, 논리-수학적 지능(Logical-Mathematical Intelligence)은 숫자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으로 기존 지능의 핵심으로 간주되어왔고, 유럽 학자들은 인지적 능력으로서 가장 중요시하였습니다. 또, 다중지능 이론에서도 가장 중심에 위치합니다. 논리-수학적 지능은 논리적 문제나 방정식을 풀어 가는 정신적 과정에 관한 능력으로 때에 따라서는 언어사용이 요구되지 않는 지능입니다. 논리-수학적 지능이 높은 사람은 논리적 과정에 대한 문제들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추론을 잘 이끌어 내며, 문제파악을 주먹구구식이 아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숫자에 강하고, 차량번호나 전화번호 등도 남들에 비해 잘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논리적 수학적 지능의 특성은 정밀성과 계산을 좋아합니다. 조직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를 좋아하며 컴퓨터를 즐기고 문제 해결을 즐깁니다.

 

   논리-수학적 학습자는 실험하기를 좋아하고, 뭔가 항상 밝혀 내려는 노력이 보이며, 수와 관련된 내용에는 귀와 눈이 번뜩입니다. 질문을 많이 하며, 어떤 유형과 관계를 밝혀내는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수학에 흥미를 갖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근거와 원리를 찾아 해결하려 합니다. 분류를 한다든지, 그룹을 짓는다든지 추상적인 유형이나 관계를 통해 가장 많이 배웁니다.

   이 지능이 높은 사람에게 적합한 분야는 수학자, 과학자, 기술자, 통계전문가, 과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논리학자, 형사, 변호사, 회계사 등입니다.

   

   넷째로, 언어적 지능(Linguistic Intelligence)은 단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으로 단어의 소리, 리듬, 의미에 대한 감수성이나 언어의 다른 기능에 대한 민감성 등과 관련된 능력입니다. 언어적 지능의 특성은 형식에 민감하고 규칙적이며 추론 능력이 뛰어나며, 듣고, 읽고, 쓰기를 좋아합니다. 언어적 지능이 높은 사람은 토론 학습 시간에 두각을 나타내며, 유머나 말 잇기 게임, 낱말 맞추기 등을 잘합니다. 다양한 단어를 잘 활용하여 말을 잘하는 달변가가 많으며, 똑 같은 글을 써도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웃음을 자아내게도 합니다.

 

   언어적 학습자들은 읽기, 쓰기,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름이나 장소, 날짜, 기타 하찮은 것이라도 잘 기억합니다. 언어적 학습자는 말하기, 듣기, 그리고 단어를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적합한 분야는 소설가, 시인, 기자, 정치가, 편집자, 언론인, 연설가, 카피라이터 등입니다.

  

  다섯째로, 공간적 지능(Spatial Intelligence)은 시공간적 세계를 정확하게 아는 능력과 3차원의 세계를 잘 변형시키는 능력입니다. 공간적 지능이 높은 사람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잘 찾아내며, 처음 방문한 곳도 다시 찾아가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잘 찾아갑니다. 시공간적 아이디어들을 도표, 지도, 그림 등으로 잘 나타내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디자인, 그림 그리기, 만들기 등을 좋아합니다. 마음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하고 형태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며 그림과 조각 같은 예술을 좋아합니다. 

   공간적 학습자는 그림 그리기, 모형 만들기, 디자인, 뭔가 만드는 데는 남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한 번 보면 비슷하게 그려내거나, 한 번 본 물체도 쉽게 모형을 만들어 냅니다. 그림 감상, 영화 보기, 기계 다루기 등을 좋아합니다. 뭔가 상상해내기를 잘 하고, 변화를 쉽게 찾아내고, 미로 찾기와 낱말 맞추기, 지도나 도표 등을 잘 읽어 냅니다. 시각화(視覺化) 또는 상상을 통하여 잘 배우고, 색깔이나 그림을 활용했을 때 많이 배웁니다.

 

   적합한 분야는 사진작가, 안내자, 정찰병, 사냥꾼, 건축가, 실내 장식가, 발명가, 예술가, 건축가, 화가, 조각가, 항해사 등에 적합합니다.

   

   여섯째로, 대인관계 지능(Interpersonal Intelligence)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이해하며, 그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 감정, 의향, 동기 등을 인식하고 구분할 수 있는 능력과 얼굴 표정, 음성, 몸짓 등에 대한 감수성,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다양한 힌트, 신호, 단서, 암시 등을 구별하는 역량, 또 이들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입니다. 협상 능력이 뛰어나고 사교적이며 타인의 마음을 잘 읽어 냅니다. 의사 소통이 뛰어나고 사람들과 같이 있기를 좋아하며 친구가 많으며 그룹 활동을 좋아합니다. 분쟁 중재력이 있고 협조하는 것을 좋아하며 사회적 상황을 잘 파악합니다. 대인관계 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교우도(socio-gram)에서 중앙에 위치합니다.

   대인관계 학습자는 많은 친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말을 잘하고, 그룹 활동에 잘 참여합니다. 남을 잘 이해하고, 그들을 잘 이끌어 가며, 그룹을 조직하거나, 그룹간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중재, 조정 등을 잘 합니다. 다른 학습자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잘 배우고, 비교 또는 연계시키거나, 협동과 대화를 통해 잘 배웁니다. 유능한 정치인, 지도자 또는 성직자들 가운데 대인관계 지능이 우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적합한 분야는 각 방면 지도자, 정치인, 교사, 상담가, 심리치료사. 세일즈맨, 관리자, 홍보 관련 종사자로 적합합니다.

    

   일곱째로, 자기이해 지능(Intrapersonal Intelligence)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자신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그에 따른 자아 훈련, 자아이해, 자존감을 위한 능력입니다.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은 어떤 감정을 가졌는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등과 같은 자기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기이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삶의 가치에 민감하고 자기 인식을 중요시하며, 감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직관적 능력이 뛰어납니다. 삶의 목적에 대해 민감하고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며 혼자 있기를 즐깁니다.

 

   자기이해 학습자는 혼자서 조용히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관심사 추구를 즐깁니다.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자신의 감정이나 꿈에 초점을 맞추어 생활합니다. 본능적인 감각에 잘 따르고, 자신의 목표와 관심사를 끝까지 밀고 나가려 하며, 남을 모방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많이 따릅니다. 이런 학습자들은 혼자서 공부를 잘 하며, 개별화된 프로젝트나 자기 학습 속도에 맞는 수업, 그 학습자만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갖도록 했을 때 잘 배웁니다.

 

   자기이해지능이 높은 사람은 철학자, 신학자, 소설가, 심리학자, 종교 지도자,  상담가 등에 적합합니다.

   

   여덟째로, 자연탐구 지능(Naturalist Intelligence)은 다중지능 이론의 목록에서 가장 최근에 올라온 것으로서, 사물을 구별하고 분류하는 능력과 환경의 특징을 사용하는 능력, 자연 현상에 대한 유형을 규정하고 분류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어떤 식물이나 동물이 먹을 수 있는지를 그들의 자연탐구 지능에 의존하여 알아냈습니다. 자연탐구 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연 친화적이고, 동물이나 식물 채집을 좋아하며, 이를 구별하고 분류하는 능력이 높습니다. 산에 가더라도 나뭇잎의 모양이나, 크기, 지형 등에 관심이 많고, 이들을 종류대로 잘 분류하기도 합니다.

 

   자연탐구적 학습자는 지구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주어진 환경을 잘 변별하거나 특성을 분류 또는 활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관찰, 견학, 소풍, 여행, 하이킹, 자연보호, 모험심 기르기, 동물 기르기 등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자연탐구 지능이 높은 사람은 식물학자, 과학자, 정원사, 수의사, 해양학자, 공원관리자, 도보여행자, 지질학자, 동물원 관리자로 적합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존 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은 인간의 존재 이유, 생과 사의 문제, 희로애락, 인간의 본성, 가치 등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아직 널리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가드너는 위에서 제시한 여덟 가지와 실존적 지능 외에도 많은 지능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새롭게 제기될 수 있는 지능들을 살펴보면, 영성(靈性; spirituality), 도덕적 감수성(moral sensibility), 성적관심(sexuality),유머(humor),직관(intuition),창의성(creativity), 요리능력(culinary(cooking)ability), 후각 능력(olfactory perception (sense of smell)),타 지능을 종합하는 능력(an ability to synthesize the other intelligences) 등입니다.

 

    전에는 지능지수만 높으면 좋다고 했으나 이제는 위와 같은 다중지능 중에서 자기에게 어느 지능이 강한지 발견하면 진로나 직업 결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간단한 다중지능검사(MI)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외향성과 내향성

   

   폴 티거와 바바라 배런 티거가 지은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는 책> 이나 <성격 유형과 삶의 양식>등의 책을 보면, 스위스의 심리치료가인 카를 융(Carl Jung)이 개발해낸 성격유형 이론을 브릭스와 마이어즈 라는 두 모녀가 융의 이론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어서 사람들이 자기의 심리적인 유형을 판단할 수 있는 검사 도구를 개발해냈습니다. 여러 가지 심리 검사가 있는데 그 중에 MBTI라는 이 검사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심리 검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위의 책들에는 성격 유형에 대해서 수많은 경험들 속에서 발췌한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어 자신의 성격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정신적 혹은 심리적 선호 경향이 있다고 보는데 4가지의 기본적인 선호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다른 것은 제외하고 외향성과 내향성에 관한 것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인 특성으로, 외향성은 활동과 행동을 좋아하며, 내향성은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외향성은 크고 자유롭게 말하며, 내향성은 말하기 전에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진행합니다. 외향성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과 소음을 잘 견디어 내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많은 활동에 참가하며, 많은 일들이 생기는 대중적인 영역을 즐깁니다. 그러나 내향성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피하며 조용함을 추구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조심스럽게 진행시키며 선택적으로 활동에 참가하며, 혼자 있을 수 있는 개인적인 영역을 즐깁니다.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돌리고 친구 만나러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외향적이고, 전화가 와야 겨우 받고 동료들이 나오라고 해야 마지못해 외출하는 사람은 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향성은 편리한 방식으로 재빠르게 행동하며, 사람들이나 활동들에 관여하지 않으면 침착하게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향성은 신중한 방식으로 숙고해 보고 행동하며, 혼자 있거나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를 원합니다. 외향성은 많은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하고 파티에 가고  분주하지만, 내향성은 혼자 있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 없습니다. 외향성은 글로 의사를 전달하기보다는 얼굴을 맞대고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선호하며, 내향성은 말로 혹은 얼굴을 맞대고 의사소통을 하기보다는 글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외향성은 많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을 즐겨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쉽게 시작하며 조심성을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들과 만나서 관계를 맺는 과정이 쉽고 재미있습니다. 사교적인 행사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과 접촉하며 개인적인 공간을 쉽게 다른 사람과 나눕니다. 그러나 내향성은 적은 수의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할 때 조심성을 보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이 천성과는 맞지 않는 것 같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합니다. 사교적인 행사에서는 몇몇 사람들과만 접촉하고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브릭스와 마이어스는 이밖에도 사물을 보는 관점과 의사 결정의 근거, 그리고 생활양식에 대한 선호 경향을 통해서 16가지의 성격 유형 혹은 심리 유형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 MBTI에 관해서는 이백용, 송지혜 부부가 지은 <남편 성격만 알아도 행복해진다>라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결혼한 부부나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보기 바랍니다.) 신학도나 목회자라면 전문 심리상담실에서 MBTI 검사나 다른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가 지은 <성격대로 살아가기>라는 책에도 보면 심리학에서는 성격은 타고난 것으로 특히 내향적, 외향적인 성격의 근본은 고칠 수 없다고 합니다. 사람은 육체가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듯이 정신도 남자(외향성)와 여자(내향성)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정신의 남자(외향성)와 여자(내향성)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남자가 여자로 바뀌기 어렵듯이 정신의 남녀도 바뀌기 힘듭니다. 즉 타고난 성격의 근본 뿌리, 에너지의 방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김 박사도 외향성과 내향성을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은 그 사람이 친구를 찾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즐겨 찾고 연락을 많이 주고받는 사람은 외향적이고, 친구들이 연락하면 거절 못해서 만나기는 만나지만, 스스로 친구를 찾는 법이 별로 없는 사람은 내향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급하거나 힘들 때, 혹은 새로운 상황에서 반대의 성격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들이 지나고 나면 그 사람은 본래의 타고난 성격으로 돌아갑니다.

 

   남자든 여자든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면 내향적인 사람으로, 남성적인 분위기를 보이면 외향적인 사람으로 추측하면 됩니다. 대체로 여자 같다는 말을 많이 들은 남자는 내향적일 가능성이 크고, 남자 같다는 말을 들은 여자는 외향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최근에 연이은 부도 사태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들일 테고, 뻔뻔하게 잘 버티며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돌리는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김 박사는 지적합니다. 물론 내향적인 사람도 시련을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결국 외향적인 사람들은 밖으로 벌리는 활동적인 사업이 맞고, 내향적인 사람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안에서 하는 일이 맞을 것입니다.

 

   이런 큰 물줄기는 후천적인 여러 경험이나 교육과는 무관하게 우리의 일생을 지배합니다. 따라서 자기 성격이 어떤지 파악하고, 안 되는 것은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기의 장점을 살려 적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신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며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 주의력이 요구되고 꼼꼼하게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되면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내성적이고 세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이끌어 나가는 활동적인 일을 하게 되면 정신적 고생이 많고 성공하기 힘들지 모릅니다.

 

   많은 정신적인 고통, 심하면 나타나는 정신질환은 성격상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할 때 생깁니다. 이 성격을 거부하고 반대의 일을 감행했을 때는 대개 그 대가를 치르고 맙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을 하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뚜렷한 열매가 없고 하는 일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주신 적성이나 성격, 재능 등을 고려해 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김정일 박사는 융의 심리학을 인용하면서, 사회에서 자신을 구축해야하는 인생의 전반기(30대 후반기까지)에는 외향적인 사람이 유리하고, 사회로부터 자신을 거둬들여 죽음을 준비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야하는 인생의 후반기(30대 후반 이후)에는 내성적인 사람이 유리하다고 합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유영철 같은 사이코 패스처럼 특별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좋고 나쁜 성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기질과 성격에 장단점이 있을 뿐입니다. 특히 요즘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특히 B형에 대해서 좋지 않게 그린 영화나 노래까지 있는데 A형이든 B형이든 O형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지 B형이라고 단점이 있다는 것은 지나친 편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자기 성격대로 살고 직업을 갖는 것이 심적 고생도 덜하고 성공할 확률도 높습니다. 이런 심리 유형을 정확히 아는 것은, 자신의 삶의 목표를 결정하는 데나, 가장 흥미롭고 즐겁고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교육과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그리고 배우자, 가족, 고용인, 동료 등 자신의 삶에서 만나게 되는 중요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하는가 배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심리 유형에 대한 지식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지식이 됩니다. 이러한 지식이 부족할 때 인간관계나 직업 결정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거나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나 재능이 아닌 다른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시도할 때는 동그란 구멍에 네모난 못을 박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도력의 은사가 있는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발자취를 한번 돌아보아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 가운데서 만일 우리가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고자 할 때 아무도 우리를 따라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리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도력의 은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마도 조용히 혼자서 하는 일이나 소수의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에 재능과 은사를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신학생 시절에 작은 교회와 큰 교회의 어린이 부서와 학생회 교육전도사 등 부교역자로 10년 이상 있으면서 방학 때에 여름 성경학교나 중고등부 수련회가 다가오면 그 기간 동안 투명 인간이 되거나 어디에 숨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큰 교회에서는 교사들이 거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진행도 해서 오히려 부담이 적지만, 작은 교회는 북 치고 장구 치고 해야 하니 힘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주바라기 선교회 같은 곳에서 전국 학생 청년 연합수련회를 하니 학생들을 보내면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었는지 내가 몰랐는지, 프로그램을 짜고 진행하는 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이 되었습니다.(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 모든 여름 행사가 끝나야 겨우 안도의 숨을 돌렸습니다. 나중에 저 시골 교회에서 단독 목회를 해보니 그저 기도하고 설교 준비만 하고 심방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지요. 신학대학원시절에 차라리 시골목회 했으면 부교역자 12년 동안 마음 고생, 생활 고생 덜했을 것입니다. 누가 진작 말해주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자신의 성격과 재능을 잘 알아 그에 맞게 일을 하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보험 세일즈 여왕들이나 교회의 전도 왕들을 보면 대체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성품이 활달하고 말도 잘하는 외향적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주안장로교회의 전도왕 안강자 권사님이나 박희용전도사님 같은 분들은 수줍음을 타고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성령충만한 뜨거운 은혜를 체험했을 때 놀라운 전도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대우전자 판매여왕으로 2관왕을 차지한 바 있는 김명자씨 역시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자신의 성격에 맞게 DM(우편 광고)를 통해서 많은 고객을 확보하여 엄청난 판매 실적을 올리기도 합니다.

 

   목회자나 신학생도 외향적인 성격과 내성적인 성격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교회성장 학자들에 의하면 개척교회를 하기에 적합한 성격은, 지식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불도저처럼 저돌적이며 활달한 외향성의 성격, 이른바 무대포인 목회자가 교회를 크게 성장시킬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물론 전주 안디옥 교회의 이동휘 목사님 같은 분은 스스로 성격이 소극적이고 소심할 분 아니라 사람들이 무서워서 사람 사귈 줄 몰랐고, 말에 설득력도 없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아예 저능아라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분을 아는 사람들은 이 목사님이 큰 인물은 못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와 금식을 많이 하신 그분을 귀하게 들어 쓰셔서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의 횃불을 당길 수 있도록 하게 하셨고, 그분이 개척하신 안디옥 교회도 크게 부흥하여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수천 명의 성도를 모시고 목회를 하게 하십니다. 국제 대학생 선교회(CCC) 전 총재인 빌 브라이트 박사 같은 분도 그의 책 <담대히 전하라>를 보면 극히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의 성격과 기질을 잘 파악하고 적성과 재능을 잘 알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잃어버린 영혼 구원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이 주님의 일을 하는 데에도 시행착오를 덜 겪고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콕스의 보고에 의하면, 외향적이든 내성적이든 간에 인류 역사상 위인이라 일컫는 사람의 90%가 능력 있고 여러 가지 요건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라,‘엄청난 의욕’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동차 왕 포드나 발명왕 에디슨, 링컨 대통령, 앤드류 존슨 대통령이나 정주영 회장 같은 이들은 초등학교도 못나오거나 겨우 나온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비결은‘불타는 의욕(Burning Desire)’입니다. 적성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불타는 의욕과 적극적이고 끈기 있는 태도가 더욱 중요합니다.

 

   한때 어느 TV 방송에서 방영되었던 <성공시대>에 소개된 인물들의 특징은, 첫째는 무슨 일이든지 공짜는 없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알고, 둘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미쳐야 한다고 합니다. 펜티엄칩을 만든 인텔사의 앤디 그로브 회장은 회사의 구호를 “오직 편집광, 일에 미친 자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s survive)”로 정했습니다. 셋째는 모든 일에 남보다 한 발 빨라야 하나, 넷째는 너무 늦은 시작은 없다는 것입니다. 코리아나의 유상옥 사장은 55세의 나이로 창업을 결심하고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떼는 일부터 배웠습니다. 심지어 70세가 되어서 화장품 회사를 시작한 할머니도 있고, 정년이 없는 작은 교단에서 85세가 되어 개척교회를 시작한 목사님도 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릅니다. 다섯째는 성공한 사람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다보면 꼭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임스 베리도‘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든지 둘 중에 하나는 되어야 신나는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일을 성취하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을 믿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불타는 의욕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지 않겠습니까?

 

   사실 성공은 물질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나 권세가 커지는 것도 있지만,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낙도나 오지에서 목회하고 선교하거나 한센 병 마을이나 고아원 같은데서 일하는 분들처럼‘성(聖)스러운 일에 공헌(貢獻)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농어촌 오지에서 교인 5명을 모시고 목양을 하시는 목회자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이미‘성공(聖貢)’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대통령이나 하버드대학교 총장이나 빌 게이츠 같은 재벌보다 작은 개척교회나 시골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가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열 명의 성도를 모시고 있는 목회자가 비할  수 없이 고귀한 사명자요 성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켄트 휴즈 목사님과 바바라 휴즈 사모님이 지은 <성공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목회>를 보면 목회자의 진정한 성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그 어떠한 암울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상황에서   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다.’'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끔찍한 고난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주님은 모든 고난을 통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분임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극한 고통과 절망적인 상황과 형편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선하시고 의로우신 ' 분이심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신다. "하나님의 미소(기뻐하심)을 유발하는 것"은 성공이고 "하나님의 미소를 유발하지 않는 것"은 외형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코 성경적인 성공은 아니다.


    바바라와 나는 성경적인 성공에 대해서 연구한 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했기에 외형적인 ‘성공’은 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바바라와 나는 하나님의 미소에서 나오는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분의 평강을 맛보았노라고.’그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이끄시는 분이심을 믿는 목회자라면 당신은 참으로 중요한 성공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는 곳에 그분의 기쁨이 있고 그것이 곧 성공이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의 목회자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을 한없이 사랑하시고 당신을 인정하시고 선대하시는 좋으신 분임을 믿는가? 그러면 당신은 교회의 크기에 관계없이 이미 성공한 목회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외형적으로 성공한 큰 교회의 목회자라 할지라도 더 큰 교회의 목회자와 비교하여 항상 하나님에 대해서 불만스러워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자가 아닐 수도 있다.

  기도 없이 인간적인 리더십이나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성공한 목회자는 성공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자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거룩함을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요 구하시는 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성공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함을 이루어 드리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성공자가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자를 절대로 성공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이므로 당연히 실패자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큰 교회를 이루었다는 이유만으로 동료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성공한 목회자라고 인정받고 있는 목회자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비참한 실패자이다. 목회자가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고 외형적인 성공만 추구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운 죄악이며 저주스러운 사기 행각일 뿐이다.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성공의 추구이다.

   

   위의 책에서 휴즈 목사 부부가 이같이 말했듯이 우리가 환경이 남보다 못하다 하더라도, 묵묵히 기도하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맡은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자요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거할 때에 심히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고백한 (고전2:3) 연약한 사도 바울도 복음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열정과 사명감이 있었기에, 말할 수 없는 시련과 핍박과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널리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전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 오대양 육대주를 덮어가고 있습니다.

 

 3.신학생과 목회자, 그리고 다른 직업

  

   신학생과 목회자는 다른 직업을 가지면 안됩니까? 신학생도 지금부터 기도해야 할 문제이지만, 목회자가 목회 이외에 다른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곱지 않는 시각으로 볼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도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신학까지 공부 한 사람이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두말 할 필요가 없이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말씀을 준비하여 설교하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심방을 하는 일은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특권입니다. 목회는 다른 직업과는 달리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특별한 사명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부와 세리를 제자로 부르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각 교단 헌법에도 대체로 목사는‘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성례를 거행하며 교회를 다스리는 자로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직분이다.’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그래서 목사는 양 무리인 교인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설교하며, 찬송하는 일과 성례를 거행하고, 하나님을 대표하여 축복하고 어린이와 청년들을 교육하며, 성도를 심방하고 궁핍한 자와 병자와 환난 당한 자를 위로하고 장로와 협력하여 교회를 다스리는 직무를 수행합니다. 이와 같이 양들을 인도하는 부르심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는 그의 탁월한 저서 <목사와 설교>(Preaching and Preachers)에서 설교하는 일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일보다 높고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소명이며, 설교한다는 것은 사람이 종사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경이롭고 가슴 벅찬 행위라고 갈파했습니다. 설교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도 모르고 조용한 절망 가운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들에게 인생의 의미와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놀라운 사명이므로 그 이상 중요한 일은 지상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 대학 교수의 강의는‘지상에서 지상으로’떨어지는 것이지만, 설교는 그야말로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어 주는 가장 고귀한 사명입니다.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도 목회보다 귀한 사명이 있다면 그것을 택하겠다고 <새들백교회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역 교회 목사가 된다는 것은 위대한 특권이며 놀라운 책임이다. 내가 만일 이 세상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가진 사람이 목사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추호도 나의 삶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리스도를 좇는 회중에게 목양을 하는 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책임이며,, 가장 멋진 특권이요, 가장 큰 명예이다.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그리고 그의 교회 가족에게 인도하는 것, 그들을 성숙한 제자로 키우고 개인적인 사역을 위해서 힘을 키워 주고 준비시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삶의 사명을 이룩하도록 내 보내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목적이다. 나는 이것을 위해 죽을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부르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직업’을 영어나 독일어에서는 모두‘부르심’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어떤 의미로는 사회를 어지럽히고 인간을 타락시키는 일 외에는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서 주신 건전하고 신성한 소명입니다. 칼빈이나 루터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 말한 ‘직업 소명설’(職業 召命說)이란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직업을 부르심이라고 믿는 서구에서는 직업에 귀천을 별로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직업을 천직(天職)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복음을 전하면서 천막을 만드는 일도 계속했습니다.

   방선기 목사님이 미국에서 유학할 때에 커다란 빌딩에서 청소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힘들고 짜증이 나서 청소기를 집어던지고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목사가 성경공부나 설교를 주께 하듯 하는 것처럼 청소하는 일도 주님께 하듯 해야 한다는 골로새서의 말씀을 들려 주셔서 일하는 자세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서‘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은, 바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씀이며 성도가 직장에서 하는 그 일을 주께 하듯 하면 그것이 바로 주님의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전임 사역은 가장 고귀한 사명이지만, 직장 사역도 하나님의 일이며 지나치게 성과 속으로 차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그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유교 사회에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순서를 정해놓고 선비를 우대했지만 서구사회에서는 오랜 기독교의 영향으로 그런 구분이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는 굴뚝을 청소하는 직업을 몇 대 까지 계속하는 집안이 있는데 아들이 대학을 나와도 그 일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호주 같은 나라도 석탄을 캐는 광원 같은 힘든 직종을 가진 사람의 봉급도 많고 그 일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삼미그룹 부회장까지 지낸 서상록 씨가 그룹이 부도가 나고 직장을 잃게 되자, 롯데 호텔의 프랑스 식당에서 웨이터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청교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미국 생활을 오래하지 않았다면 과연 쉽게 웨이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인의 사고방식도 서구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어느 일본 사람이 호텔에 투숙해서 안마사를 불렀습니다. 얼마 후에 들어온 안마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들어온 안마사는 자기가 옛날에 다니던 항공학교 교장으로 당시 위풍당당하던 3성 장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장군님, 죄송합니다. 안마를 하고 다니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고 안마 받기를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장군은 거북해 할 것 없다면서 기왕이면 옛날 사랑했던 후배를 안마해 주면서 그 옛날의 추억담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동경대를 나와 힘든 사법시험을 합격하고도 대대로 이어온 만두집을 물려받아 일한다고 합니다.

 

   전에 있던 어느 교회에 육군 장교 출신의 건장한 30대의 남자가 있었는데 이른바 ‘백수’로서 몇 년 동안 직장도 구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으면서 형제들의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노인이나 장애자들도 불편한 몸을 끌고 다니면서 시장에서 물건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남의 신세만 지지 말고 직장을 구하든지 안정된 직장을 찾을 때까지라도 그 당시 서울대학교를 나온 사람도 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일즈를 하든지, 우선 건축 현장에 나가서 노동이라도 하면 일당은 벌 수 있지 않느냐, 그렇게 하다가 좋은 직장이 생기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대한민국 육군 장교’ 출신 체면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도리어 기분 나빠하더군요.

 

   전에 작은 트럭에 배추나 수박 등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잘 될 때에는 열심히 하면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버는데 여생에 어느 정도 지낼만한 재물을 모아놓았다고 합니다. 50대가 넘은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여름에는 부부가 한 달 간 주로 동해안으로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것보다는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에게는 남을 죄짓게 하고 타락시키는 직업 외에는 모든 직업이 귀천이 없는 건전한 직업이라는 바른 직업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학교를 나오면 무조건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까? 해마다 판, 검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법대에 다니고, 실제로 사법시험에 응시하지만 실제로 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는 숫자는 법대생 전체의 숫자에 비해 극소수입니다. 법대를 나왔으니 누가 뭐라 해도 기어코 판사나 검사가 되려고 9년, 10년씩 고시에 도전해서 성공하는 분도 간혹 있지만, 너무 오랜 세월 도전하는 것은 젊음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 천재적인 두뇌와 노력으로 5-6번 정도 도전해서 안되면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한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의 뛰어난 두뇌로 대기업이나 언론계, 교육계 등 다른 방면으로 진출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에서 자기 전공을 하고도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로 나가서 일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오히려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로 진출해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철수씨는 의학박사요 전문의이지만 의사로서의 적성과 흥미가 보다는 컴퓨터에 관심이 있어서 의사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지금은 적성에 맞고 흥미가 있는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와 경영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도 의사지만 미국 로스쿨에서 법을 전공하여 법조인이 되었습니다. <싫은 일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을 보면 일본의 산부인과 의사가 의사라는 좋은 직업을 버리고 바둑 기사로 변신한 사례가 나옵니다. 그것은 예외이지만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자기가 지금 하는 일과 다른 일을 시도하고자 하는 데는 많은 위험과 난관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 관해서는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책> 같은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날 신학생이 엄청나게 많은데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반드시 목회자가 되라는 법칙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목회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사명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신학생 중에는 성령님의 불같은 은혜를 체험하지도 않았거나 사명감도 별로 없이 신학교에 들어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신학교에 들어온 후 주님께 영적인 소명을 받았으면 다행이지만, 졸업할 때까지 전혀 영적인 사명감을 느끼지 못하고 목회적 재능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런 사람은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셨는지 다른 일로 부르셨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하고 기도해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체험이 있고 분명한 부르심을 받고도 힘든 일이 생기면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데 사명감도 없이 막연하게 목회를 한다면 더 힘듭니다. 물론 때로는 소명의식이 별로 없어도 목회를 하는 가운데 어떤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주님께서 소명을 주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명의식이 없다면 먼저 소명의식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체험과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더라도 기질과 성격상 목회와 설교가 너무 힘들고 어려우면, 교회 목회의 은사보다는 다른 방면에 은사가 있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신학생은 설교하기가 너무 힘들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언어에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경번역선교회에 들어가서 평생을 성경이 없는 부족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금식 철야 기도하며 목회의 사명을 확인해보라고 하는데, 시험도 쳐봐야 점수를 알 수 있듯이 누구나 교회 목회를 처음 시작 할 때는 기도도 많이 하고 목회를 의욕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개척교회를 하거나 목회를 하는 가운데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목회가 너무 힘들고 교인들은 다 날개 달고 훨훨 떠나버리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하여 탈진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기도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목회의 은사보다는 다른 은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목회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진정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목사와 설교>에서 로이드-존스 목사는, 진정한 영적 소명은 잃어버린 영혼들의 타락과 멸망을 뼈아프게 생각한 나머지, 그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여 영원한 구원의 길을 알려주어야겠다는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즉 잃어버린 영혼, 지옥 갈 영혼 한 영혼이라도 복음을 전하여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열망과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주의의 전통적인 신앙이요,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최근 이단이 아닌 정통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전통적인 지옥관은 많은 도전을 받고 있고, 견고하게 보이던 지옥문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클라크 피녹, 마이클 그린 같은 학자나 심지어 저명한 존 스토트 목사까지도 지옥 불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하며 영혼 멸절설(annihilationism)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이들 영혼 멸절론자들은 지옥에 관한 여러 가지 이미지 가운데,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옥 불'(마5:22; 18:9),'영원한 불'(마 18:8; 25:41),'불 못'(계20:14-15) 등의 표현에서 불이라는 이미지는 영원한 고통을 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다 태워서 없애버리고 소멸시킨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고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 영혼의 운명은 지옥에서의 영원한 고통이 아니라 태워져 없어지고 소멸되어 버린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복음주의 신학자들 가운데서는 지옥이 실제로 불이 타는 못이 아니라 지옥은 단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나타낸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영혼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인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고 했으면 그대로 믿고 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옥의 교리가 희미해지면 복음 전파의 시급성과 열정도 식어질 것은 자명합니다.

 

   오래 전에 신학대학에 다닐 때 경기고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나오신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님이 개강 수련회를 인도하셨는데, 정 목사님은“나의 평생 사명은 부산과 전국에 사는 수많은 지옥 갈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은근히 지옥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꺼려하는 시대에 특히 엘리트 목사님에게서 분명한 지옥에 대한 설교를 들은 것은 아마 신학교에 들어간 후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주안장로교회 나겸일목사님도 지옥불에 대한 강력한 설교를 하시는 분으로 유명합니다. 일부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 가운데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는 목사를 강하게 비판하는 시대에, 하나님께서 정필도 목사님이나 나겸일 목사님같이 영혼구원의 간절한 열망과 분명한 소명감을 가진 목회자를 통하여 구름같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에 들어 쓰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참된 영적 소명을 받은 사람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던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주시는 영원한 구원을 거부한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통곡하시며,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함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롬9:3), 동포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은혜에 빚 진자의 마음으로 온 세상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한 평생을 바쳤습니다. 소명자는 바울 사도처럼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은 교회와 성도의 가장  중요한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혹은 개혁주의적인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목회를 하든지 출판 선교를 하든지 고아원 같은 사회사업을 하든지 문화선교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저 사도 바울이나 허드슨 테일러 혹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선교사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영원한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잃어버린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영적인 아픔과 무거운 짐이 있다면, 그는 진정 영적인 부르심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이나 천국이나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이, 그저 목회자라는 신분이 의사나 판사, 검사만큼 혹독하고 힘든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대우를 받는 ‘사’자 돌림인 지위인 것 같아서 신분 상승을 위하여 직업적으로만 선택했다면 그런 사람은 진정한 소명의식이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도 들어 쓰시는 것은 그분의 주권이지만 말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은 성령님의 능력도 모르고 사명감이 없이도 큰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고 고백한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한 후 은혜를 받고 바울처럼 주님과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염려로 마음으로 목회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드문 일이겠지만 때로는 말 잘하고 실력 있는 입시 학원 강사가 많은 학생을 모으는 것처럼, 성령님의 능력도 별로 체험하지 않고 비성경적인 신학을 가지고도 인간적인 능력과 학식과 포용력과 지도력으로 큰 교회에 초빙 받아 목회를 잘 하는 분도 간혹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어디서 목회를 하고 있더라도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고 그저 직업적으로만 일하고 있다면 영적 사명감이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이는 숫자가 반드시 영적인 능력이나 소명감의 척도가 아닌 것은, 비성경적인 교회나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도 인간적인 방법과 열정과 술수로도 얼마든지 수 천, 수만 명의 군중을 모을 수 있고, 적은 수의 성도를 모시고 목회 하는 분 중에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을 위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고 소박한 목회 하는 분도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큰 교회도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책망만 받을 교회가 있고 작은 교회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칭찬 받은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사모님 수천 명이 모이는 수원 근교의 어떤 기도원 세미나 강사 목사님은 작은 교회 목사는 무조건 목회에 실패하고 무능한 목사인 것처럼 야단칩니다. 교회 개척 3년만에 교인이 30명이 안되면 목회를 때려치우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리고 그런 세미나와 훈련에 계속 참석하여 기도하여 능력을 받으면 큰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작은 교회에서 천 명 이상 된 교회의 목회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은 수천 명의 참가자에 비하면 넉넉잡아 5-10% 이하의 소수일 것이고 나머지 90% 이상은 5년 혹은 10년 간 그런 집회와 세미나에 매 주 마다 다니고 아무리 울고불고 밤새워 금식하며 기도해도 교인 수가 그대로이거나 약간 더 부흥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아는 분도 그런 집회에 몇년을 참석하고 매주마다 훈련을 받고 기도도 많이 하지만 교인 수는 열손가락 곱을 정도 입니다. 제 생각에 그런 집회에 참석하여 크게 부흥된 소수의 목회자는 큰 교회 목회를 할 만한 숨어있던 목회의 달란트와 지도력이 발휘된 것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아무리 기도하고 금식하며 몸부림쳐도 교회가 성장이 별로 안 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들이 다 무능하고 목회 실패자입니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달란트의 차이요 그릇의 크기 차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그런 집회에 가서 다 큰 남자와 여자들이, 여간해서 남의 설교에 은혜 받지 못하는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을 흘리며 비둘기같이 애통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집회에 자주 참석하여 큰 은혜와 도전을 받고 재충전하여 비록 달란트가 작아도 열심히 기도하고 성실하게 말씀대로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 큰 수확일 것입니다. 그리고 40일 금식기도를 몇 번해도 교회 성장 안 되고 평생 작은 교회를 하는 분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작은 교회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동네 구멍가게들이 없어진다면, 라면 하나, 계란 한판, 콩나물 한 줌 사러 차를 타고 이마트 같은 대형 할인 마트나 백화점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하니 얼마나 불편합니까? 작은 구멍가게도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게으름을 변명하면 안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작은 교회를 더 많이 만드신 것은 작은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흔히 큰 교회 목사만이 성령충만과 능력 받은 목사이고 시골교회나 개척교회 목사는 성령충만하지 못하고 능력 받지 못한 목회자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교회가 크고 교인이 많으면 오히려 낙심하지 않고 잘 되지만, 교인도 적고 힘들거나 시골이나 개척교회에서 평생 목회를 하는 것은 성령충만의 체험이나 소명감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돈 많이 버는 직업도 많고 얼마든지 더 좋은 공무원이나 다른 직장이나 사업의 기회가 많은데 소명감이 없다면 누가 고생을 사서합니까?

 

   어느 명문대를 나온 젊은 집사가 지방 대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에 다닐 때는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인도로 교인 3명인 개척 교회에 다니면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얼마나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그 집사의 글을 보니 어지간한 신학생들을 뺨칠 정도로 영적인 통찰력과 성경 지식이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나 아직도 교인이 1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지만 그 교회 목사님의 말씀은 대교회보다 훨씬 성경적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작은 교회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작은 교회는 다음과 같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혹은 사회 구원의 신학을 가진 목회자의 신학 때문에 작은 교회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목회자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죽어서는 천국 간다는 믿음이 없고, 지옥의 존재도 부인하는 목회자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오로지 세상을 개혁하든지 혁명을 일으켜서 세상을 지상낙원으로 만드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을 신봉하거나 종교다원주의를 신봉하는 목회자들 가운데 이런 목회자가 많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게 전도하여 천국가게 한다는 신앙과 신학이 거의 없으므로, 당연히 복음 전도가 아니라 사회나 정치 활동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신학을 가진 목회자들 가운데는 대형교회는 무조건 나쁘고 작은 교회만이 아름다운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목회자들 가운데는 구원의 확신이나 성령님의 뜨거운 체험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둘째로, 목회자가 복음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믿지 않으면 멸망 길로 간다는 신앙이 있지만, 소명 의식이나 뜨거운 성령 체험이 없고 말씀과 기도 생활과 전도나 독서나 여러 가지 면에서 게을러서 작은 교회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 직장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은 최소한 오전 9시경부터 오후 6시경까지 자기 생업에 충실합니다. 대개 큰 교회 부교역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심방하고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 목회자가 게으르기 시작하면 새벽기도 핑계로 오전에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어영부영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요즘은 새벽 기도회도 하지 않고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잠자는 목회자가 점점 늘어갑니다. 목회자가 세상 기준에 따르더라도 오전 9시부터 6시경까지는 하다못해 책이라도 읽고 성경연구를 해야 하는데, 새벽기도 10분 한 뒤 2시간 테니스 치고 피곤해서 오전 내내 늦잠을 자기도 하고,‘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가 아니라, 목사들끼리 모여 ‘오늘은 이 사우나, 내일은 저 보신탕 집 먹회를 잘 하리’하면서 여기저기 전전하기도 합니다.

 

   신학생 시절에 이른바 노가다라고 하는 건축 현장 일당 잡부 일을 조금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하루 일당을 받으려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경까지 기진맥진하도록 땀 흘려 일합니다. 한번은 2층에서 일을 하다가 너무 진이 빠지고 힘들어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고 아래로 떨어져 죽을까봐 걱정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일당 3만원 받았습니다.

 

   세상 직장, 특히 미국 등 외국 회사에 근무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엄정하면서도 예외가 없는 회사 규율과 높은 업무 강도에 대해 곧잘 이야기합니다. 근무 시간 중에는 신문을 본다거나, 개인적인 일 또는 사적인 목적의 전화사용 등이 금지됩니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점심시간에 일하는 경우도 잦고, 점심시간이 30분에 불과한 회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근무 시간에 사우나를 하거나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다니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 끝나면 하던 일을 그대로 멈추고 칼같이 퇴근합니다. 자연히 그들의 업무 강도는 높을 수밖에 없고, 집중해서 일을 하다 보니 단위 시간당 생산성도 매우 높습니다. 미국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중에는 오직 일본인만이 미국인보다 더 철저하게 근무 시간에 열심히 일을 합니다. 우리나라 노동  생산성이 미국에 비해 49% 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는 수년 째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일과 휴식을 철저히 구분하여 열심히 일하고 휴가도 잘 보냅니다.

 

  우리나라 일반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선진국 사람들만큼은 아니지만 근무 시간에는 성실하게 일한 결과 이만한 경제 대국을 이루었습니다. 북한에서 넘어온 탈북자가 하는 말이, 남한 사람들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새벽부터 밤중까지 엄청나게 일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그만큼 힘들게 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니 남한 사회가 이만큼 잘산다고 감탄했습니다. 지금도 밤 12시 넘어도 얼마나 많은 자동차가 다닙니까? 참으로 열심히 삽니다. 그렇게 주어진 하루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하루 삯을 받은 만큼 일한다고 해서 삯군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삯군은 삯을 받은 만큼은 일하는데,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TV 드라마에 통달하고 컴퓨터 게임 전문가가 되고 하고, 취미 정도가 아니라 밤낮 줄기차게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사람 낚는 어부하라고 불렀더니, 날마다 강이나 바다에서 사람 대신‘물고기만 낚으러 다니는’목회자는 삯군이 아니라 날도둑이요 날강도라고 야단치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 바둑에 심취한 어느 목사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다리!' 했다고 합니다. 김삼환 목사님도 시골 목회를 할 때 바둑에 심취하여 밤늦도록 바둑 뜨다가 새벽에 교회에 가서 교인들의 머리를 내려다보면 검은머리는 검은 바둑돌, 흰머리는 흰 바둑돌처럼 보여 설교하면서도 속으로‘아다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게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바둑판을 도끼로 찍어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물론 바둑이든 무엇이든 오락은 즐겨야 하겠지만 무엇이든지 도가 지나치면 목회에 방해되는 중독입니다. 건전한 오락이든 스포츠든 컴퓨터든 무엇이든지 중독이 되고 목회에 방해되면 단호히 근절방해야 합니다. 큰 교회 보조받으며 날마다 빈둥거리며 세월을 허송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돈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건설 현장에 가서 일당 잡부라도 해 보아야 합니다. 요즘 신학생 가운데 등록금이 없어서 공부를 그만두는 신학생들도 있는데, 방학 동안에 얼마든지 노가다를 하든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면 학비를 어느 정도는 충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일해 봐야 교인들이 헌금이 얼마나 피땀 어린 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월을 허송하는 목회자들에게 한 달란트를 묻어 둔 종에게 하시듯이“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책망하십니다. (저도 이 부류에 속하지 않았는지 늘 조심스럽습니다.)

 

   셋째로,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을 가진 목회자가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성실하게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독서를 하고, 전도와 심방을 하고 성도를 양육하지만 작은 교회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비록 눈에 띠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조금씩 성장시켜 주시기도 하고, 드문 경우지만 강해 설교로 유명한 정근두 목사님이나 김서택 목사님처럼 갑자기 수천 명 모이는 큰 교회에서 납치(?)해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이고 대부분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적으므로 믿음의 분량에 맞게 목회 합니다. 뜨거운 영적인 체험도 있고 구령의 열정은 있지만 자기의 그릇이 작은 것을 알고 과욕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목회 합니다. 자기는 황소나 코끼리가 아니라 사슴이나 토끼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욕심 많은 개구리처럼 황소 흉내를 내려고 억지로 배를 불리려고 하다가‘빵!’하고 터지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세계를 가슴에 품은‘월드 크리스천’으로서 세상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 위하여 늘 기도합니다. 그런 교회와 목회자를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한 교회로 기억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최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목회를 하기 원합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란 바로 이런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와 목회자가 한국 교회에는 무수히 많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7천명의 선지자를 남겨 놓으신 것처럼 오늘도 명예와 정치와 부귀에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시는 이런 귀한 목사님들 덕분에 우리나라 교회가 이만큼 성장했고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두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말씀하신 칭찬의 말씀을 하십니다. “잘 하였도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

 

   큰 교회도 잃어버린 영혼 구원보다는 기성 교인 쟁탈전을 벌여 '인정사정 볼 것 없다'면서 '총동원주일'이라는 미명하에 주변의 개척 교회 신자를 모조리 흡수하고, 그저 몸집 불리기에 급급하여 살쪄서 뒤뚱거리고 동맥 경화에 걸리거나 중풍에 걸려 몸이 마비되어 있는 사데 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책망 받는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제자입니까?>라는 책에서는 그런 교회를 성장했다고 하지 않고 비만증에 걸렸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미국 새들백 교회나 윌로우 크릭 교회나 부산 풍성한교회나 서울 동선교회처럼 진정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는 크게 칭찬 받습니다.

 

   우리가 소명감도 없고 영혼구원의 열망도 없고 게을러서 교인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작은 교회는 아름답다.’고 한다면 웃음거리 밖에 안될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아름답다면 극단적으로 말하면, 목회자 혼자 있거나 목회자도 교인도 없고 텅 빈 건물만 있는 교회가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교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구상에 66억 인류 대다수가 예수 그리스도 없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우리 남한에만 해도 4천 8백만 동포 중에서 기독교인이 860만이므로(2006년 인구조사결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3천 8백만 명이나 있는데, 게을러서 작은 교회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부터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목회자의 본업인‘말씀(설교와 전도)과 기도’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게을러 열심히 주님의 일을 못할 때가 많아 늘 주님 앞에 송구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소명감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날 성령님이 주시는 영적인 특별한 체험을 했든지 아니면 그런 체험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영광과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하여 특별히 부르셨다는 확신과 소명이 있다면, 우리가 목회 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 무슨 직업을 가지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신학도나 목회자는 모든 건전한 직업이 부르심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려고 오신 주님의 선교 명령을 순종하는 차원이 부르심이 되어야 합니다.

 

   창 2:28의‘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과 바울과 모든 사도가 일관되게 강조하고 몸소 행했던 마태복음 28:19-20의‘선교 명령’혹은‘전도 명령(Evagelical Mandate)’이 더욱 중요한 주님의 명령이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모든 성도가 행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결코 복음 전파와 세상 직업이 동일한 가치가 있는 거룩한 소명이라고도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복음 전파나 세상 직업이 동일한 소명이라고 한다면, 자기가 맡은 직장의 일과 사업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TV나 자동차 하나도 놀랄 정도로 ‘6 시그마 정신’으로 정성스럽고 철저하게 잘 만들며, 환경 의식이나 질서 의식 등 모든 분야에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고,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창작한 음악가나 고전적인 소설이나 시를 지은 문학가를 배출한 서부 유럽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 사람들이 소명을 더 잘 감당한다는 말이 됩니다. 문화명령의 관점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선교명령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원한 생명과 천국복음 전파에 관계가 적다면, 그들이 넓은 의미에서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우리 기독교인들과 동일한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문화 명령에만 순종하여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삼성 애니콜이나 소니 워크맨과 도요다 렉서스 자동차를 열심히 만드는 등 세상 일만 열심히 하는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직장 일이나 사업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돈 벌어 복음 사업을 위해 바치는 것도 선교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본인도 복음 증거를 통하여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힘을 써야 합니다. 목회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전파를 최우선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는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남가주 세리토스장로교회에서 목회하시는 김한요목사님의 간절한 절규처럼, 영혼을 얻는 일과 관계되지 않으면 우리의 직업은 결코 소명이 아닙니다. 영혼을 얻는 일과 관계되면 세탁소를 하든지 파출부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소명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특히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은 사람들 가운데 자기 직장에서 직장 복음화를 위한 전도와 재생산을 하지 않고, 오로지 직장 일에 충실한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영혼 구원을 하지 않는 직장 생활은 신약적 의미의 소명이라고 하기 힙듭니다. 모든 직장이나 사업은 오로지 복음 증거와 괸계될 때 예수님과 사도들이 말한 참된 소명입니다.

 

 

   순수한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문화 명령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개혁의 본거지였던 독일과 스위스나 개혁파 교회인 루터교 국가들인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서부 유럽이나 북 유럽 국가들에서 아름다운 고전 음악이나 미술과 문학작품이 많이 나오고, 민주주의와 사회복지 등에서 선진국이 되고, 존 웨슬레 부흥 운동 당시에 영국 사회의 많은 술집이 문 닫고 도덕적으로 정화된 것이나 미국의 무디의 대각성 운동 시대에 놀라운 발명품이 무수히 나오고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것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국주의로서 잘못된 일도 많이 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바울 사도 같은 신약의 사도들은 문화 명령보다는 무엇보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한평생 복음을 널리 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난 교회와 성도가 참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세상이 밝아지고 변화되는 문화명령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 신학도와 목회자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직업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는‘문화 명령’에 순종하여 이 땅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각자의 직업에 충실함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모든 직업과 소명을 통해서,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최후의 유언처럼 남겨주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하신‘선교 명령’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부름 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대부분 교단의 헌법에는 목사의 주된 사명은 ‘말씀 전파’라고 했는데 반드시 교회 안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만이 말씀 전파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여러 가지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구원의 말씀을 널리 전한다면 목회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복음을 널리 전하는 것도 말씀 전파입니다. 루터나 칼빈이 인쇄술과 책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의 말씀이 그렇게 널리 전해 종교개혁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이나 <예수> 영화처럼 말씀을 영상으로 만들어 전할 때 셀 수 없는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교회 강대상에서 전해지는 말씀만이 유일한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로 주신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말씀이 전파된다면 그것이 넓은 의미에서 목회요, 부름 받은 자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이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 ‘지상에서 영원으로’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요즘은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이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골라 가며’ 가오리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생들이 주로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선호하고 농어촌이나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는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들도 기회만 있으면 살기 좋은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에 가서 목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어디든지 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하는 고백은 소명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지리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만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서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라고 명령하시든지’ 순종하리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신학생이나 목회자 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수십 만 명의 성도를 모시고 목회 하면서 오대양 육대주를 안방 드나들 듯이 선교여행을 다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이나, 강남 일번지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과 풍요로운 환경을 가진 엘리트 성도들을 모시고 목회를 하시던 소망교회 곽선희 원로목사님, 희망찬 젊은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는 설교를 하며 알찬 제자훈련 목회를 하시던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님이나 후임자 오정현 목사님, 일대일 양육과 두란노서원 사역을 통해서 전국과 온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처럼 웅장한 교회에서 구름 같이 많은 성도를 모시고 신나게 한 번 목회를 해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님은 전도사 시절 종로를 지나다가 수많은 인파를 보고 자기 교회 교인처럼 생각되어 전봇대를 붙들고 울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른이 수백 명 모이고 대학부가 유명한 종로 내수동 교회 원로이신 박희천 목사님은 평생 가장 한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숨도 쉬지 않고 “숫자!!”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수백 명 모이는 교회 목사님도 교인 수에 신경 쓰고 있으니, 작은 교회 목사님들 가운데는 교인수가 적어 한이 맺혀 가슴이 시퍼렇다못해 시커멓게 피멍든 동역자들이 구름같이 많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수적 성장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숫자를 갈망하면 성경적이지만, 특히 교인이 많고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안정된 교회 목회자가 수평이동에 의한 숫자와 교세 확장만 신경 쓰면 그는‘양 도둑놈’에 불과합니다. 양도둑질을 너무 많이 하면 아마 천국에 가서, 가난한 집 양을 빼앗았다고 다윗을 책망했던 나단 선지자에게 귀싸대기를 맞을지 모릅니다. 일산 은혜교회 주보를 보니 다른 교회에서 수평이동하는 신자는 받지 않겠다고 명시했습니다. 구역을 통해서 전도한 새 신자만 받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입니가? 분당 지구촌교회도 앞으로 수평이동 성장을 중지하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너무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반면에 어떤 신학생들은 '나는 평생 교인 100명 정도 데리고 소박하게 목회 하는 게 꿈이다'라고 하는데, (조용기 목사님같이 위대한 목사님이 되고자 하는 꿈에 부푼 신학생들은 웃겠지만, 막상 목회를 해보면 100명도 많은 교인입니다.) 정말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면 지구상에 수십억의 인구가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데 교인 숫자를 제한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인 많으면 신경 쓸 일 많아서 귀찮으니까 먹고 살만큼 숫자를 자기가 제한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직업적인 생각입니다. 감당할 능력만 있다면 주님께서 영혼을 많이 주시면 주시는 대로 목회를 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교인이라도 기도와 말씀으로 잘 먹이는 것이 주님의 뜻이고, 그릇이 더욱 커져서 잃어버린 영혼 10만 명이라도 주시면, 부교역자를 그만큼 많이 두고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목사님, 사모님 우리끼리 솔직히 이야기 해 봅시다. 우리가 성령의 뜨거운 능력을 체험하고 은혜 받고 사명감이 있다 해도 퀴퀴한 곰팡이 냄새나고 생쥐와 바퀴벌레가 왔다 갔다 하고, 여름만 되면 바가지로 물을 퍼내야 하는 좁은 지하 개척교회에서 평생 고생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가며 목회하고 싶어서 목회자나 사모님이 되신 분은 한번 손 번쩍 들어보세요. 저기 두 분 빼놓고 아무도 손 안드시네요. 저 두 분도 졸다가 손을 잘못 드셨나 봅니다. 제발 졸지 마세요. 이 귀한 시간에 졸고 있으면 이 강사 억장이 무너집니다. 여러분 가운데 평생을 도시 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노래기와 지네가 기어 들어오고 이름 모를 벌레가 소리 없이 기어 들어오는 다 쓰러져 가는 농어촌이나 낙도의 교회에서 자원해서 평생 고생하려고 신학을 하신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세상의 욕심이 없고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희생하려는 바울 사도나 손양원 목사님이나 김요석 목사님, 그밖에 농어촌과 낙도 교회 목회자나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열악한 나라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 대학 캠퍼스에서 잃어버린 젊은 영혼들을 위하여 생계 유지가 곤란할 정도로 힘들게 사시며 사명감 하나로 복음을 전하시는 선교단체 간사님들, 그리고 장애인이나 출소자를 위해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목회를 하시는 고귀한 꿈을 가진 존경할 만한 분들 외에는, 수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 신바람 나는 목회를 하시는 김삼환 목사님 같은 분만큼은 못 되더라도, 적어도 수백 명 정도는 모이는 교회의 목회자나 사모님이 되시기를 원해서 이 길을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목회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교회 가운데 100명 이하의 교인을 가진 교회가 70%-80%라고 합니다. 그리고 개척교회 중 소수의 개척교회만 성장하고 나머지 90% 이상은 평생 다른 교회의 보조를 받고 운영해야 할 영구 미자립 교회로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교인 수 30명 이하의 교회가 무려 3만 교회라고 합니다.

 

   신학생 가운데 80% 이상은 도시에서 목회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일단 전세라도 건물을 얻어서 개척 교회라도 하여 자립하고 있는 분들은 그나마 다행인데, 수많은 목회자가 교인이 적어 자립을 하기 어렵고, 여러 가지 사정상 목회 할 교회가 없어 고민합니다. 그래서 사모님 가운데서는 학교 선생님이나 유치원을 운영하고, 피아노 학원을 하는 사모님들도 계시는데, 그런 분들은 그나마 경제적으로 좀 괜찮고, 내일의 기약도 없이 발이 부르트고 지치도록 땀을 흘리며 성경, 찬송 카세트 전집이나 화장품 혹은 보험 설계사, 식당 일이나 파출부를 하며 많은 고생을 하시는 사모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변호사나 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모님은 전문직이니 자격증 귀하고 아까워서 일해야 하고 그보다 더 어려운 개척교회 사모님은 나가서 부업으로 허드렛일이라도 큰 잘못입니까? 물론 어느 사모님처럼 몇 백 명을 전도한 분도 있지만 그런 분은 특별한 분이고 대다수는 그저 남편만 바라보는 보통 사모님들입니다.

 

   그러면 목회 할 임지가 없는 목회자는 목회 이외에 다른 일을 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까봐 목회 할 교회가 생길 때까지 할 일없이 무위도식하며 앉아 있어야 합니까?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주님의 특별한 계획과 부르신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격과 재능과 은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 명령과 선교 명령에 부합하면서 내가 잘 하는 일과 정말 밤을 세워서 해도 피곤을 느끼지 않고 내가 기쁨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나에게 주신 부르심에 열매가 많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달란트가 많고 적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우리는 그저 감사하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큰 그릇 이라도 시골 푸세식 화장실의 변기통으로 쓰이는 단지가 있고 작은 그릇이라도 보물단지나 간장종지가 있으며, 개도 도사견이나 셰퍼드처럼 크고 우락부락하며 집을 잘 지키거나 사냥을 잘하는 것도 있지만 손바닥만하고 귀여운 치와와처럼 주인 품에 안겨서 사랑을 받고 재롱도 부리며 주인을 즐겁게 하는 개가 있듯이,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많든지 적든지 그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사용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보다 최선을 원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사명감이 있다면 무엇을 하려고 하든지 말씀을 묵상하고 깊은 기도를 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신중하게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일을 오랫동안 하다가 하나님께 심한 매를 맞아 사업에 실패하고 죽을 병들어 이제 겨우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의 길로 들어섰는데 또 다시 다른 일을 하면 더 크게 징계를 받으라는 말이냐고 항변하실지 모릅니다. 그런 분은 목회의 사명감을 가지고 맡은 바 목회 일을 일평생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세상일에 얽매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 구원의 사명을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세상 물질에 대한 욕심과 세상일만 즐기며 호의호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더욱 살려서 일반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히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더 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목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기도하고 더 영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나 선교사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세상일을 하다가 본인이나 자녀가 죽는 등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는데, 또 무슨 큰일 날 말을 하려고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목회나 선교로 부르심을 외면하고 오로지 세상적인 욕심과 유혹에 도취하여 하나님의 일을 포기해버리고 세상으로 나간다면 하나님께 엄한 징계의 매를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부르심을 받았지만 목회에 은사가 부족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다른 방면으로 나가면 더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주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한다면 하나님은 분별없이 엄하게 징계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악인도 건강하게 장수하는 경우도 있고 의인도 일찍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수도 있습니다. 저명한 신학자 김명혁 목사님이나 제가 아는 교회의 목사님처럼 목회에 충성하고 계시는 목사님의 아들이나 선교사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신비하신 섭리 가운데 세상 고생 안하고 천국의 행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먼저 하늘나라로 불러 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의 작사자인 슈몰크 목사나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의 작사자인 스패포드 목사님 같은 분도 성실한 목회자들이었지만 여러 명의 자녀를 잃는 큰 슬픔을 당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충실히 하고 있는 목사나 선교사 자신도 젊은 나이에 병이나 교통사고로 선교지에서 소천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미국의 짐 엘리어트와 그의 동료 선교사들은 남미의 선교지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도 하나님의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세상으로 떠나 세속 가운데 빠진 사람의 경우 외에는, 목회든지 다른 일을 하든지 간에 본인이나 자녀의 죽음 문제나 질병이나 사업 실패 등의 문제로 함부로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사려가 깊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평가해 본 후 일생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적어보고, 기도하는 가운데 평가하고 시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위대한 성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나의 헌신적인 생애를 통해 어떠한 장소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최선의 사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분명할 때 우리는 방황치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릭 워렌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삶의 목적을 다섯 가지 말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섬김을 위해 지음을 받았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사역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이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교제를 통해 그분의 교회와 하나 되는 것이다.  다섯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지음 받았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제자도를 통해 성숙한 성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

   둘째,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최후의 명령인 잃어버린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셋째,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넷째,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나의 재능과 은사와 물질을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다섯째,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와 세상이 더 밝아지겠는가?

   여섯째,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내 가족과 나 자신에게도 행복과  보람이 있겠는가?

   일곱째,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한평생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가?  

   

   우리가 성경을 날마다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게리 프리슨 박사의 <나의 결정과 하나님의 뜻> 이나 제럴드 싯처 박사의 <하나님의 뜻>이나 그밖에 하나님의 뜻에 관한 여러 책을 읽는 것도 필요합니다. 직업과 적성 등에 관해서는 리처드 볼스가 지은 책으로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1995년도에 “사람들의 삶을 바꾼 25권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는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를 추천합니다. 그밖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기술 101가지>나 <위대한 나의 발견*강점 혁명>,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는 책>, <싫은 일은 절대로 하지 마라>,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책> 등 도움이 될 많은 책이 서점에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많이 기도하면서 주위의 신앙의 지도자와 진출하고자 하는 방면의 경험자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 일을 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욕심보다는 진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혼구원의 열망이 더 간절해지고 나에게 보람이 있다면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치열한 교인 쟁탈전

   

   밤에 남산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무수한 십자가 종탑으로 서울 도성이 은하수와 같습니다. 서울에만 해도 수많은 교회가 있고 기존의 지방의 도시에도 교회를 개척해도 더 이상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이 새로 개발되는 신도시에 자리잡기 위해 물밀듯이 몰려듭니다. 거기서 교회마다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눈물겨운 홍보작전을 통해 치열한‘교인 쟁탈전’을 합니다. 물론 거대한 교회당을 지어서 은행 대출 이자만 한달에 수천만원 나가서 피를 말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그런대로 헌금을 할 수 있는 기성 교인들 끌어들이려는 것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도 없는 안정된 큰 교회들에게 제발 부탁드리건대, 제발 이사 온 기존 신자를 끌어들이려고 가난한 미자립 개척 교회와 아옹다옹하며 유치하게 경쟁하지 마십시오. 사영리나 전도폭발, 다리 예화 전도지나 열린 모임이나 알파 코스 등으로 교인들을 훈련시켜 좀 큰 교회답고 어른스럽게 불신자만을 상대로 전도를 하는‘통 큰 목회’를 해야 합니다. 큰 건물이 있고 시설 좋은 교회는 가만히 있어도 건물을 보고라도 이사 온 기성 교인들이 저절로 몰려들기 때문에 굳이 무수한 전단을 뿌리며 ‘007 전격 홍보 작전’까지 펼칠 필요는 없습니다. 미자립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생활비가 부족하여 공과금도 제 때에 내지 못합니다. 어느 목사님은 국내 명문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명문 신학대학원을 두어 군데 나와서 귀국하여 개척교회를 하는데 아이들 학교 급식비도 내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통계상 전체 교인들의 10%만이 작은 개척 교회를 선호하고 90%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건물이 잘 지어진 큰 교회로 갑니다. 수원의 어느 교회 목사님은 오랫동안 교인이 너무 적고 부흥이 안 되어 자기는 50명 이상큰 목회 할 그릇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땅이 생겨 교회당 건물을 지었더니 불과 몇 년도 안 되어 2천 명이 몰려오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신도시 아파트 대단지 중심에 교회당 건물을 붉고 웅장하게 잘 지어도 교인이 오지 않아서 천주교에 팔아버린 희한한 교회도 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어느 정도 든든한 교회들은 이제는 새들백 교회나 윌로우 크릭 교회나 풍성한교회나 동선교회처럼 정말 주님을 모르는 사람을 전도하여 부흥을 시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수평이동만으로 교회가 성장한 교회 목사님들은 수평이동 성장의 잘못을 고백적으로 지적한 <양 도둑질>이란 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자리 잡은 한소망교회는 한국 교회에 도전을 줄 만한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바로 ‘교회와 성도들이 생명을 걸고 비신자들을 전도하며 그들을 제자로 삼아 세상으로 파송한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한소망교회는 수평이동 성장을 위한 의도적인 몸부림과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중단했습니다. 교회마다 수평이동 성장을 추구할 경우 모두가 망한다는 위기의식 속에 목회자와 성도들이 비신자를 전도해서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모델 교회가 된다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작은 교회들도 절망하지 않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한소망교회 역시 일산에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수평이동을 통하여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류영모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서 고민했습니다. 하나님이 수평이동 현상을 보고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생각했습니다. 수평이동으로 교회가 성장했다고 으스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양들의 이동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류 목사님은 1990년대 말 기도하는 가운데 수평이동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중단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믿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비신자 전도형 교회'로 거듭나기로 했습니다. 교회는 이를 위해 ‘알파 코스’와 ‘셀 목회’, 그리고 'G 12 사역'이라는 세 가지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알파 코스로 비신자를 전도하고, 전도된 초심자들을 셀을 통해 교회 가족으로 만들며, G 12를 통해 도시와 세계 열방을 섬긴다는 확고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한소망교회는 비신자 전도와 관련해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한다’는 것과 더불어 ‘한 번 교회에 들어온 영혼은 다시는 세상에 빼앗기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한소망교회 성도들은 3명의 전도 대상자들을 정하고 그들을 인생 최고의 고객(VIP)으로 삼습니다. 성도들은 기도할 때나, 밥 먹을 때, 시간이 날 때마다 이 VIP들을 생각하고 찾아갑니다. 이 VIP들을 '알파 코스'로 인도하고 이어 셀에 등록을 시킵니다. 10주간에 걸친 알파코스와 셀 교육이 끝나면 비신자들은 거부감 없이 교회에 정착합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부분의 교회 등록자들이 비신자로 채워졌습니다. 한 해는 한소망교회에 1,800여명이 새로 등록했는데 그 중 80%가 비신자들이었습니다. 비신자들의 교회 정착률이 92%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보였습니다. 한소망교회를 찾은 비신자들은 VIP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교회에 등록하고 이후 새로운 비신자들을 낚는 신실한 어부가 됩니다. 그 교회는 해마다 세 차례 알파코스를 갖습니다. 수많은 성도가 알파코스의 도우미가 되기 위해서 희생의 삶을 삽니다.

 

   한소망교회가 펼치는 셀 목회는 '토종 셀 목회'입니다. 한국 교회가 성장한 그릇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셀 목회를 위해 굳이 그 그릇을 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뒤엎고 셀이라는 새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그릇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셀 목회를 펼치고 있습니다. 한소망교회 성도들은 모두 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장년은 물론 청소년 셀까지 포함하면 교회에 400개의 셀이 있습니다. 셀이나 G 12 목회 역시 비신자 전도를 위해 기능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비신자를 전도해서 12제자를 만들고 그 12제자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제자를 만들수 있도록 합니다. 교회는 제자훈련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 삼는’ 성도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류 목사의 지론입니다.

비신자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갖고 성령을 사모하는 한소망교회는 2010년까지 3,000개의 '불신자 전도형 교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직접 개척하거나 세미나를 통해 기존 교회에 영향을 줘서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존재하는 수많은 교회를 만들겠다는 꿈입니다. 한소망교회의 목회 혁명은 간단합니다. ‘비신자를 전도해 제자 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수평이동성장을 위한 의도적인 몸부림을 중단한 것입니다. 류영모 목사님은 뜨레스 디아스 수련회에 무려 90회 이상 도우미로 참가하여 은혜를 체험하고, 교회 내에 ‘은혜의 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뜨레스 디아스’ 영성 수련회를 도입하여 많은 교인들에게 영적인 감동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소망교회가 오로지 잃어버린 영혼구원을 위하여 심기일전하여, 수평 흡수이동을 통하여 이룩한 교회성장을 대단한 자랑처럼 여기는 큰 교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한국교회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부산 풍성한 교회는 NCD(자연적 교회성장) 컨설팅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수인 107점을 기록하여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 교회가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한 <2007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 컨퍼런스>에는 무려 14,00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풍성한교회도 2000명의 교인 중 80%가 전도한 새신자요, 그들이 D-12 양육 시스템을 통하여 1년 4개월 만에 그리스도의 군사로 셀 리더로 충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풍성한 교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시 쓰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교회가 많아질수록 한국 교회는 큰 희망이 있습니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는 엄청난 돈을 들여 지은 웅장한 예배당을 가진 교회는 ‘폭발’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합니다. 어느 신도시에서는 교회당 건물이 지어놓으니 개척을 시작하는 주일에 2백 명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전에 일산 신도시의 어느 교회는 멋진 교회당 건물 지어놓으니 두어 해 동안 무려 3천명이나 신자가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입주하는 신도시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는 반듯한 교회당 건물만 있고, 목사의 설교나 목회 수준이 중간 정도만 되어도 교인이 저절로 몰려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일부 능력 있고 수준 높은 목사님도 계시지만, 오로지 목사 자신이 영적으로 굉장히 수준 높고 큰 능력 있어서 교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착각이요 교만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당 건물이 없는 상가임대교회는 목사가 특별한 능력과 열심히 있어야 겨우 부흥이 됩니다. 요즘 일부 대형 교회들이 새로 개발되는 신도시마다 거액을 들여 땅을 사서 교회당 건물을 지어주고 부목사나 다른 목사를 파송, 개척하여 불과 수년 만에 수백 명 내지는 1천명 이상으로 교회가 급성장하는데, 물론 그 의도는 좋고 그 교회를 맡게 된 목회자도 고생을 덜하겠지만 그 와중에 주위의 다른 많은 개척 교회들은 위화감이 심합니다. 큰 교회에서 지원하는 신도시 교회들이 다른 개척 교회들과 어느 정도라도 균형을 유지하고 공평한 경쟁을 하게 하려면, 부목사에게 땅을 사서 큰 교회당을 지어 주는 것보다는 넓은 빌딩 같은 장소에 전세를 얻어주든지 해서 개척 교회를 시작하면 좋을 것입니다. 부목사에게 넓고 깨끗한 장소에 전세를 얻어주고 몇 년 간 생활비만 보장해 주는 것도, 어렵사리 빚을 내어서 좁은 건물에서 나 홀로 개척하며 당장 생활 대책도 별로 없는 목회자보다는 훨씬 유리하므로, 일단 그렇게 얻어준 후에 어느 정도는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지하에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물 퍼내며 개척하는 교회의 목회자들의 가슴에 멍을 덜 들게 하고 공의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좋을 것입니다. 그 부목사에게 능력이 있다면 굳이 큰 건물을 지어주지 않아도 교회를 성장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신도시에 전세 얻어주고 남은 돈으로 낙도나 농어촌이나 해외 선교지에서 교회당이나 사택 건물이 낡거나 없어서 고생하는 교회들에게 얼마씩 나누어 드려서 여러 개의 교회와 사택을 지어 드리는 것이 주님께 더 칭찬을 받는 일일 것입니다. (하기야 임지도 없이 부교역자를 쉽게 내보내는 담임목사도 허다한 시대에, 부목사에게 많게는 5억, 10억 원 주어서 좋은 교회당을 지어 개척해 주는 서울 광성교회 김창인 원로목사님같은분은존경스럽지만말입다.)            

 

  4. 농어촌 선교 사역

                   

   이 책의 의도와는 방향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먼저 특수 목회로  농어촌 선교와 해외 선교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농어촌, 낙도 목회를 선교라고 한 이유는, 면 소재지에서 거리가 좀 떨어지고 가구 수가 적은 시골이나 낙도마을의 교회들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자립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문화와 언어만 같지 해외 선교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통 인구 1만 명 이상 되는 곳을 도시라고 하는 학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가구 수와 인구가 많은 읍이나 면소재지의 교회의 목회는 도시 목회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인구가 얼마 안 되고 가구 수가 적은 농어촌이나 섬 지역 목회는 그만큼 자립하기가 힘들어 선교지라고 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선뜻 농어촌이나 낙도에서는 목회하기를 주저합니다. 열악한 환경과 자녀 교육 문제, 낮은 문화 수준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도시의 개척교회 보다는 시골교회가 좋은 점도 있습니다. 대도시에서 개척하며 마음먹은 대로 전도는 되지 않고 매달마다 수십만 원 나가는 월세 때문에 피를 말리던 어느 목사님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농촌의 작은 교회로 부임했는데, 더 이상 교회 월세 걱정을 안 해도 되고 도시 교회들이 어느 정도 농어촌 선교헌금을 보내주니 마음이 너무나 평안하다고 하는 고백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농어촌 교회의 물질 문제에 대하여 좀 말씀을 드리자면, 물질 문제를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로만 구하는 조지 뮬러나 허드슨 테일러나 김용의 선교사님의 방법과, 물질 문제를 사람에게 요청하는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 가구 수가 아주 적은 농어촌은 자립할 가능성이 적어 얼굴이 비슷하고 말만 같은 한국말을 쓰지 선교지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골 교회가 농촌 선교비 후원 요청 편지를 도시 교회에 보냅니다. 예를 들면 도시 교회에 해마다 100 군데 정도 편지로 생활비를 요청하면, 대체로 그 중에 10분의 1 교회 정도가 후원을 해줍니다. 널리 알려진 교회나 대형교회보다는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중형교회가 더 잘 도와줍니다. 간혹 시골 교회 목회 하면서 많은 후원을 받는 분들도 있다고 하면서 시골 교회나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을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셔서 까마귀를 보내서 채워주시니까 선교비 요청 편지를 쓰지 말고 기도만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면서 편지를 보내는 목회자에게 책망하는 도시 교회 목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네 가구 수는 몇 십 가구 밖에 안 되고 교인도 노인 몇 명에, 당장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그런 처지가 되어 보지 않고 함부로 질책하는 말씀을 하시면 아니되옵니다. 그리고 대다수 시골 목회자들이 그저 생활할 만큼 양심껏 선교비를 받지 떼돈 받아 흥청망청 쓰는 목회자는 드뭅니다. 그리고 좀 많이 받는다해도 결국 다 복음과 주님의 나라를 위해 씁니다. 어떤 교회는 보조 조금 보내놓고 유치원 어린이에게 하듯이 꼬치꼬치 간섭하는데 정말 그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골 목회자들도 거의가 소명감이 있으며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인격자들이며, 그들이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어련히 아셔서 깨닫게 하시므로 지나친 간섭은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해외 선교사와 마찬가지로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도 선교사이므로 물질적으로 자립할 때까지는 선교비 요청 편지를 당당히 보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시골 교회는 영구적으로  자립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목회자에게 농어촌 운동과 영혼 구원에 대한 비전과 열정만 있으면 농어촌교회 목회자도 도시 교회에 못지 않게 넉넉한 마음으로 목회를 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끼칠 수 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과 두레마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중국 등지에 수백만 평 이상이나 되는 두레 마을을 건설하는 일은 압권입니다. 해마다 해외 유학생에게 엄청난 학비를 지원하여 인재를 키우는 일이나 두레자연고등학교 같은 대안학교를 세우는 일은 도시의 큰 교회도 하기 힘 드는 값진 일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 대해서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운동이 새마을 운동에 끼친 공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십만 명의 훈련생이 거쳐 나간 가나안 농군학교 운동은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 큰 획을 그은 농촌 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에 다니며 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훈련받은 장교 출신인 민정웅 목사님도 장로회신학대학원을 나왔는데 농업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마친 후 농촌에 내려가서 독바위 교회를 개척하고 아브라함 농장을 세워 주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가운데 성경을 통하여 복음적인 농민 운동을 주도하여 마을을 거의 복음화 하고 영육 간에 알찬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농촌교회의 새로운 목회 모델로 다가오는 경기도 이천 늘푸른교회와 김종순 목사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분 역시 농촌생활을 해보지도 않은 도시 사람입니다. 사업을 하다 뒤늦게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다녔는데,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주셔서 남은 생애를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에서 바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장 고신측 선교사로 있던 신내리 선교사 등이 조사한 전국 무교회 지역 조사 보고서를 보고, 86년도에 당시 사방 10리 인근에 교회가 없던 5백여 지역 중에서 장호원 읍에서 10여 리 떨어진 이곳에서 남은 인생을 봉사하리라 마음을 먹고 율면 북두리로 오셨다고 합니다. 전혀 연고가 없는 생소한 곳이어서 전도를 하다가 만취한 주민으로부터 멱살도 수십 번 잡히고 인사를 다녀도 마을 노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지 연로한 노인 집에 가서 밥도 지어주고 병든 주민에게 정성 어린 간호를 해주었습니다. 5일장만 서면 고물 차를 빌려 30리 밖에 있는 장터까지 마을 주민을 실어다 주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했습니다. 야간에 응급환자라도 발생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 주기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감명을 받은 마을사람들은 비로소 김 목사님을 자신들의 주민으로 받아들이고 하나 둘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인근 땅을 조금씩 사들여 3천 평이 되었고 그중 2천 평에 온갖 채소류 농사를 지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채소는 주로 논농사를 짓는 성도들의 가정으로 공급이 됩니다. 나머지 1천 평은 소망의 집(고아, 정신지체 장애인 거주)과 믿음의 집(양호한 노인 거주), 그리고 사랑의 집(질병을 앓는 노인 거주)을 짓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늘푸른 교회는 지역 주민 120세대 중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만 150명이라고 합니다. 한 세대를 3명으로 잡았을 때 전체 주민 중 50%가 교회 교인이라고 합니다.

 

  김 목사님은 새벽 4시에 기상하여 5시에 새벽기도를 하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않고  전도도 하고 농사도 짓고 가가호호 돌면서 노인들을 보살핀다고 합니다. 김 목사님은 ‘전원교회’의 꿈을 꾸고 전도 범위를 늘푸른 교회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읍내까지 넓힐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직 복음화 되지 않은 불신자의 복음화와 매일 돌봐야 할 양떼를 위하여 오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한국농어촌선교회의 도움으로 ‘농어촌 목회연수원’을 설립하여 농어촌교회 부흥전략 세미나도 개최한다고 합니다.

 

    전라북도 고창에 있는 삼광 침례교회 김범일 목사님도 서울 토박입니다. 부인이 몹시 아팠을 때 대기업의 부장직을 그만두고 83년도에 교회가 없는 오지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찾던 중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생산적인 목회를 펼치기로 하고 돈을 빌려 젖소 새끼 11마리를 구입해 작은 교회 목장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는 서른다섯 가정에 양계를 권유해 무공해 달걀을 생산하도록 했습니다. 목사님이 직접 봉고 차에 달걀을 싣고 전국 각지로 지칠 정도로 다니면서 팔았습니다. 나중에는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협동조합 자산이 늘게 되자 사회복지사업에 착수하여 <영생의 집>을 마련하고 정박아, 지체장애자와 같은 불우 청소년을 중심으로 고아원을 꾸며 생활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역 주민을 위해 공동 목욕탕도 만들고 장학사업을 하는 등 복지사업을 하는데, 오늘날에는 70여 두의 젖소를 기르고 3천 마리의 닭을 기르고 8천여 평의 대지 위에 유기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회원 8백여 명 규모의 신용협동조합을 일궈 내었습니다. 그리고 농촌 교회로서 적지 않는 70-80여 명의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주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이 밖에 농촌 문화주택도 지어주고 양로원도 하시며 목회 하시는 고덕중앙교회 임석영 목사님, 무공해 유기 농산물을 생산하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한울공동체의 한청제 목사님, 귀농학교를 통해 농촌 운동을 하고 있는 예산짚풀교회의 김용필 목사님과, 의성 안사공동체의 홍영식 목사님, 그밖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소외된 농어촌과 낙도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쓰시는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농어촌 낙도 목회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위에 소개한 교회들을 탐방하여 직접 보고 듣는 것이 귀중한 체험이 될 것입니다. 농어촌에 교회가 없는 곳이 아직도 많은데, 그런데 가면 빈집도 있으므로 그런 집을 빌려 가정집과 임시 예배 처소로 사용하면서, 처음에는 도시교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밭이나 논을 빌려 유기농법을 배워 농사도 짓고 닭이나 돼지, 염소 등도 기르며 비닐하우스로 농작물 등을 재배하면 자립도 할 수 있고, 자연농업 생활학교 같은 데나 농업전문학교 혹은 예장 통합교단처럼 일본의 농촌에 가서 최신 자연농법도 배워, 농민들에게 겸손히 먼저 배우고, 나중에는 가르칠 것은 가르치면서 함께 흙냄새 맡으면서 땀을 흘리며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훨씬 농촌 복음화의 길이 빨리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농어촌이나 낙도에서 목회 하는 일은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앞으로 FTA의 영향으로 농촌 정착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최근 농사가 어려워 자살하는 농민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농어촌 운동과 복음 전파를 동시에 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하고 농업이나 목축업 등에 관하여 많은 공부를 한 뒤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굳이 농사나 다른 일을 하며 농어촌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조용한 시골 교회에서 말씀의 대사로서 조용히 성경도 연구하고 기도하며 좋은 책도 읽고 묵묵히 충성하며 맡겨 주신 적은 수의 양들이지만 그들에게 좋은 꼴을 주는 것은 정말 순박하고 아름다운 목회입니다. 강원도 황지의 하사마리 산골에 믿음의 공동체「예수원」을 설립하였고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대천덕(토레이) 선교사님은 미국에서 공부를 많이 한 분입니다. 그러나 머나먼 이국의 산골짜기에 오셔서 검소한 삶과 노동과 말씀 연구를 통해 세상의 소금처럼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시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목회자들이 보통 설교 준비할 때 대도시 큰 교회의 바쁜 목사님들이 쓴 설교집을 많은 목회자가 선호하고 참고하는데, 사실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한 큰 교회 목사님들보다 시골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시간이 많으므로 오히려 성경 연구나 설교 연구를 깊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농어촌에서 목회 하시면서 성경 연구와 설교 준비를 깊이 있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성경 원어나 귀납적 성경연구를 통한 성경적인 강해 설교를 깊이 연구하여 탁월한 설교를 준비하면 비록 시골이나 작은 교회에 있을지라도 소문만 나면 강해 설교를 통하여, 인터넷을 통하여 말씀에 갈급한 수많은 심령들에게 널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더러, 하나님 뜻이면 어느 날 갑자기 도시의 큰 교회에서 오라고 체포(?)해 갈지도 모르므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강원도 단강교회 시무 하시다가 유럽으로 가신 한희철 목사님처럼 조용한 농촌에서 목회 하시며 서정적인 시나 감동적인 수필을 쓰시던 목사님도 계십니다. 전남 완도 한빛교회처럼 농어촌에서 목회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사이버 전도의 도구로 복음을 전하는 일도 매우 귀중한 목회요 선교입니다.(www. nurisarang. net)  지금도 많은 분들이 농어촌 목회를 하시면서 인터넷으로 귀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화려한 대형교회에서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구름같이 몰려오는 군중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며 설교하는 것은 누구나 기꺼이 할 수 있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농어촌의 작은 교회에서 연세 든 노인 성도들을 몇 명을 모시고 소박한 목회 하는 일은 주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인내심이 없이는 하지 못합니다. 대다수의 시골 교회의 목회자들이 도시 목회자보다 부족해서 시골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사명감을 가지고 농어촌이나 낙도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안정된 도시 교회들은 선교적 차원에서 도시교회의 모판인 농어촌교회에 겸손한 마음으로 선교헌금을 힘껏 지원해야 합니다.    

   대도시의 아파트 정원이나 공원 속에 피어있는 화려한 장미나 백합꽃도 아름답지만, 깊은 산 속 옹달샘 곁이나 섬 마을 논두렁에 남몰래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이 더 어여쁘고 청초할지도 모릅니다.

                        

                        

 5. 해외 선교 사역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하는 어느 선교사님은 오랜만에 한국에 오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고 아프리카가 고향 같고 깜둥이 꼬마들이 고향 아이들 같이 정겹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어느 선교사님은 월드컵 축구대회 때 눈이 면도칼처럼 찢어진 한국 축구대표선수들을 보고 자기가 선교하는 쌍꺼풀이 굵은 눈을 가진 새까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 잘생겼다고 생각이 들더라고 합니다. 과연 주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셔야 선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최후의 명령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신학교마다 학생이 넘치고 셀 수 없는 십자가 네온사인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주님을 모르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군대에서는 목봉 체조를 종종 합니다. 전봇대만큼 굵고 긴 목봉의 어느 한쪽에 몇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사람이 적은 다른 한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우리나라에는 신학생과 목회자가 풍년입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나라의 백성들은 목회자가 귀하여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라는 목봉 쪽에 수십 명이 들고 있다면 중국이나 인도, 일본 그리고 이슬람 국가에는 한두 명이 들고 낑낑거리고 있는 격입니다. 이 얼마나 극심한 불균형입니까?

 

   중국에 지하 교인이 많다고 해도 13억 명의 영혼 가운데 90% 이상이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며, 인도의 11억 인구도 대다수가 힌두교의 헛된 우상을 섬기고 있으며 최하층민인 달리트들은 멸시와 천대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권의 13억에 육박하는 백성들이 영적 어둠 속에서  있으면서도 전투적으로 온 세계를 향해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1억 2천만명의 인구 중에서 0.3 % 만이 기독교 신자인데 이나마 자유주의의 물결로 기독교 인구 400명당 1명만이 복음주의 신자일 뿐입니다. 이는 2,000명을 실은 지하철이 27번 지나가는 중에 진실한 신자는 한 명이 끼어 있는 셈입니다. 일본 전체 679개 시 중 10개 도시에 교회가 하나도 없으며 2007개의 마치 중 829개 마치가 교회가 없는 지역입니다. 이 얼마나 숨막히는 영적 흑암입니까?

 

   그 뿐만 아니라 아직도 성경이 번역되지 않은 언어도 무수히 많으며 11,000개의 미전도 종족이 있습니다. 온누리 교회에서 파송한 어느 선교사님은 온누리 교회 성도 전체를 이끌고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런 분처럼 참으로 사명감을 가진 선교사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라면 한국의 신학생 전체가 선교지로 나가든지, 나아가서 한국교회 1천만 성도가 다 선교지로 나가도 65억 인류의 복음화를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우리나라가 아닌 복음을 필요로 하는 해외로 가기를 원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선교사로 나가기 원하신다면 각 교단 총회에서 실시하는 선교 훈련을 받든지, 아니면 오랜 해외 선교역사와 경험을 가진 해외선교회(OMF)나 오엠선교회(OM), 인터콥, WEC선교회, 바울선교회나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 일본선교회 등 여러 선교회에 선교사 훈련받기를 지원하면 심사를 받은 후 선교 훈련과 파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 안에서 평소에  많은 기도와 말씀 공부, 말씀 묵상(Q.T.) 훈련도 하지 않고 전도와 양육의 열매가 별로 없는 사람이, 언어가 다르고 기후와 풍습이 생소한 다른 민족에게 가서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기는 좀 힘듭니다. 선교사로 나가기 원하는 분들은 국내에 있을 때 많은 기도와 묵상을 통한 경건의 연습과 언어와 전도훈련 등을 충분히 하고 선교사 전기나 선교에 관한 책을 부지런히 읽어 간접 경험도 해야 합니다.

 

   선교사 지망생이나 신학생들에게 잃어버린 인디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눈물과 기도의 삶을 살다가 간 브레이너드 선교사의 고백록인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같은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그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브레이너드 선교사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적 고뇌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불쌍한 인디언의 영혼을 사랑하는 그의 삶에 감동을 받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대각성운동을 일으켰고 윌리엄 케리가 인도를 향하여 배를 타고 갔습니다.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이 지은 <구령의 열정>이나 <선교사가 되려면>같은 책도 영혼을 구하려는 열망을 가진 신학도나 목회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밖에도 선교에 관한 좋은 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람이 이성을 사랑하면 앉으나 서나 자꾸 떠오르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교를위해서 기도하면 특정한 나라와 민족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잃어버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선교사 지망생은 기도나 묵상 훈련 등 경건의 훈련과 충분한 선교 대상국 언어를 국내에서 어느 정도 미리 익히고 전도훈련을 한 후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주님께서 보내시는 민족에게 간다면 그를 통하여 주님께서 아름다운 선교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때로는 언어도 모르고 후원자도 없고 선교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여러 가지 외적인 조건이 맞지 않아도,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고 주님의 사랑에 강권되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무조건 밀고 나가서 선교의 열매를 맺는 불도저 같은 선교사도 있으니 주님의 계획은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은 대만에 가서 본국에서 한푼의 선교비도 받지 않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 자비량 선교를 합니다. 인터콥의 최바울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환갑이 넘은 어느 연로한 장로님은 남은 생애를 주님께 바치고 싶어 논, 밭 있는 것 다 팔아 무조건 아프리카 노인을 공경하는 어느 이슬람권 나라로 건너가서 그 나라 언어를 전혀 모르지만 통역을 세워 무조건 전도하여 많은 불쌍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선교에 있어서도 사실입니다.    

 

   근래에 태권도나 특공 무술 혹은 합기도 등의 무술과 스포츠를 통하여 해외 선교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동양 무술을 신비의 눈으로 존경하므로 태권도의 종주국에서 온 무술의 스승으로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 애국도 하고 무술을 배우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지상의 조국 대한민국과 하늘의 조국을 동시에 전하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일부 신학교에서는 태권도 선교학과가 있어서 태권도 8, 9단의  무시무시한(?) 교수 목사님들이 무술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어느 선교사님은 신학을 공부할 때 설교하기가 너무 힘들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성경번역 선교사로 나가면 설교의 짐에서 해방된다는 말을 듣고 성경번역 선교사로 지망하여 성경이 없는 종족에게 가서 성경을 번역하는 귀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인도 선교사로 나가서 인도의 영혼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에 힘쓰다가 쇠약하여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에 가신 선교사님이나, 남아프리카 선교지에서 복음 전파를 위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젊은 부부 선교사님, 그리고 머나먼 선교지에서 자녀를 잃고도 영생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계속 선교사로 헌신하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숙연해집니다. 그 선교사님들이 비록 빌리 그레이엄이나 조용기 목사님처럼 구름 같은 군중들 앞에서 명성을 얻으며 웅변적인 설교는 하지 못했지만 그런 분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그 나라의 복음전파의 귀중한 토대가 될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오늘도 그분들처럼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들고 잃어버린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선교사님들을 생각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나는 늘 가던 바위 사이에 마련한 조용한 기도처로 갔다. 주님께  나에게 영혼을 달라고 간구 하면서 많이 울었다.   - 토마스 콜린스 -

      

   아침마다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아래층에 내려오는 그를 자주 보았다. 여러 시간씩 기도하며 울었던 것이다. “오, 주님, 제게 영혼을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기를 원합니다.”

                                     -존 스미드의 생애 중에서-

 


  나의 영혼은 온 인류를 극진히 사랑하였고,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그들도 누려야만 되겠다고 간절히 열망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중에서-

 

    6. 가정 목회 사역


   오늘날의 세상은 세기말적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술과 마약과 음란한 풍조, 총기 사고 등으로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어,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결혼한 두 쌍의 부부 중 한 가정이 이혼을 하고 이제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50%에 육박하고 잇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재미교포교회에 갔더니 담임목사님이 이혼에 대한 설교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하는데, 한국 교회에서도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미혼모가 낳은 아기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갑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서 입양 고아 수출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는 것은 수많은 미혼 부모 때문입니다. 21세기의 교회 사역 가운데 가정 사역이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이혼율이 급증하는 이 시대에 가정 사역은 성령운동과 제자훈련과 함께 ‘제 3의 사역’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결혼에 있어서 상담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결혼상담소가 많지만 결혼 전의 청춘남녀에게 정말로 중요한 가정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곳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결혼한 뒤에 깨어진 가정을 수습하기는 너무나 힘이 들므로 결혼 전의 청춘 남녀를 모아 상담도 하고 결혼에 관한 교육을 하는 신학도와 목회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가정 사역을 힘쓰는 개인과 연구소가 많아져야 하며, 결혼예비학교를 만들어 결혼 준비교육도 시키고 상담도 해주며 신자 간에 바른 중매를 해주는 일도 해야 합니다.

   요즘 결혼정보회사 같은 데서는 많은 남녀를 중매해 주는데,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을 이용하여 중매를 합니다. 기독교계에도 목회자의 추천을 받은 신실한 그리스도인 남녀를 서로 소개해 주고 신앙으로 살도록 성경적인 결혼관도 교육시켜주는 일을 하는 결혼정보회사도 있는데 이런 일은 좋은 일입니다. 또한 갈수록 재혼하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재출발 하고자 하는 가정을 위하여 재혼 교육과 중매를 하는 사역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예장 통합교단 사모님들이 힘을 모아 ‘맥 결혼상담소’를 운영하는데 각 교단과 목사님이나 사모님들이 이런 귀한 사역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 사역의 학문적 정립과 가정 문제의 치유와 회복, 가정 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목적으로 활동하며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 건설을 모토로 한 ‘하이 패밀리’의 송길원 목사님처럼 가정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목회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가정이 흔들릴 것이 예상이 되므로 가정 사역을 위하여 성경적으로 연구하고 헌신하는 신학도와 목회자가 더 많이 나와서 가정사역연구소를 세워 성경적인 가정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두란노 서원’에서도 아버지학교 등의 일을 훌륭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도 날로 심각해지는데 청소년을 이해하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청소년 사역에 헌신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외국인 노동자로 오거나 결혼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사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혼혈 아동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바른 길로 이끄는 분들이 많이 나오기 원합니다.

 

   김형모님은 ‘십대들의 쪽지’ 사역 등을 통해서 수많은 청소년들을 방황과 갈등의 늪에서 건져 주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바르게 이끌기 위해서 ‘십대 선교회’나 손종국 목사님이 설립한 ‘청소년 교육 선교회’ 그밖에 여러 청소년 선교단체에서 청소년을 위한 각종 교육과 연구 및 상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신학도나 목회자가 가정 사역과 청소년 사역을 깊이 연구하고 그 방면으로 진출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주님의 종들이 고통을 당하는 가정과 부모의 이혼 등의 이유로 아픔을 겪고 있는 한 부모 가정의 자녀들이나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가정과 청소년 사역을 깊이 연구하고 그 방면으로 진출하여 귀한 사명을 감당하여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주고 치유해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가정문제 치유전문가가 많지만 그중 하나의 부부 치료 과정을 소개합니다. 부부 문제를 35년 간 연구해온 세계 최고의 전문가 존 가트맨 박사는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의 차이를 밝혀 줍니다. ‘5 대 1의 황금 비’와 ‘긍정적 감정의 밀물 현상’이 그것입니다.

   5 대 1의 비율이란 부부가 잘못을 한 가지 했더라도 다섯 번 이상의 긍정적인 행동이나 말이나 마음씀이 있다면 안정적이고 행복한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비율을 알아냈을까요? 가트맨 박사는 원래 수학과 통계학을 공부했는데 미국의 이혼율이 급상승하던 1970년대 초에 다소 좀 엉뚱한 발상을 했다고 합니다. ‘결혼도 과학이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일상 먹는 음식도 과학적으로 성분 분석을 하고 칼로리를 재고 염분, 당분, 콜레스테롤 등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우리 몸에 일으키는 작용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현대인들이 의외로 결혼 생활에 해서는 너무 무지하다는 데 주목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아내이자 심리치료 전문가인 줄리 가트맨 박사와 함께 약 3천 쌍의 부부 대화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대화의 내용, 억양, 눈빛, 음량, 말하는 태도와 몸 동작, 표정 등을 미세 단위로 분석해 본 결과 이혼하는 부부와 행복한 부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규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별 효과가 없는 주먹구구식의 부부 상담에서 탈피하여 과학적으로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할 토대를 마련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명실공히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부부 치료학의 대가가 밝혀낸 부부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중 한 가지는 <5대 1의 비율을 지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남편이 고질적인 술버릇이 있다면 평소에 점수 딸 일을 적어도 매일 다섯 가지 이상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남편께서 평소에 집안 청소, 빨래, 쓰레기 분리수거 하거나 아기를 돌보아 주는 등 평소에 쌓아놓은 신뢰감, 친밀감, 동지애 등이 넉넉하면 술에 만취되어 와서 부인이 이혼 협박까지 했다가도 곧 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행한 부부들은 전부 나쁜 일만 할까요? 아닙니다. 어떤 부부도 다 결점과 장점이 있고, 잘 한 일과 못 한 일이 섞이게 마련입니다. 사는 것이 소설이나 영화처럼 늘 환상적인 것만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혼한 부부들을 보니까 잘 한 일과 못 한 일이 1대 1 정도 (더 정확하게는 1: 1.25입니다) 입니다. 잘 한 것이 있기는 있지만 다섯 배의 비율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왜 다섯 배가 중요할까요? 가트맨 박사는 이를 '긍정적 감정의 밀물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미운 생각, 섭섭한 마음, 원망과 분노가 일더라도 배우자가 평소 잘 해 준 일이 다섯 배 가량 많으면 감정이 쉽게 긍정적인 쪽으로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평소에 고마운 일을 많이 해준 남편이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 쓰러져 자는 모습을 보면서도 미운 마음보다는 측은한 마음이나 고마움, 소중함, 미안함, 애틋함, 그리움 등이 밀물처럼 밀려와서 밉고 화난 감정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가트맨 박사는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 보상을 해 준다고 몇 캐럿 짜리 다이아 반지를 사 준다던가, 고급 차를 사 주는 등 큰돈으로 단번에 환심 사려는 행동은 별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씨에 담긴 세심한 배려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지요. 평소에 하루 세 번씩 이 닦듯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을 자주 말하고, 하루에 최소한 3분씩이라도 서로 눈을 마주보거나 손을 잡고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을 서로 비판 없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도가 쑥쑥 올라간답니다. 없는 돈을 탓하지 말고 이미 가지고 있는 손과 눈과 귀만 잘 활용해도 결혼 생활의 질이 상당히 업그레이드된다고 합니다.

 

  가트맨 박사는 부부 치료를 하다보면 아내는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눈물로 하소연하는데 남편은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래?’ 하며 도무지 아내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모습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아내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면 ‘말을 꺼내도 대화가 안 된다. 부부 싸움을 하다 보면 도대체 뭐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 모를 때가 종종 있다. 하도 많이 양보하다 보니 하기 싫은 일도 너무 많이 해 온 게 억울하다. 매번 같은 문제로 싸우지만 화만 나고 문제는 항상 미해결 상태로 남아서 답답하다...’등등 입니다. 남편도 대화가 헛 바퀴를 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아내 탓을 합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 이만큼 해 주면 된 것 아니냐, 내가 큰소리라도 버럭 지르지 않으면 잔소리가 끝이 나지 않는다, 나도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하느라 고달픈데 집에 와서 맘놓고 스포츠 중계나 뉴스를 보는 것도 죄냐’ 등등입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 쪽이 진실인지 헛갈릴 정도입니다. 솔로몬의 판결처럼 누가 들어도 지혜로우면서도 양쪽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명쾌한 해결책은 없을까요?

 

   해답은 부부의 대화 방식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는 3000 쌍의 부부 싸움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분석해 본 존 가트맨 박사의 35년 연구 결과로 얻은 답입니다. 존 가트맨 박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부부 싸움의 내용 자체는 불행도나 이혼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부 싸움의 내용이 폭력, 외도, 돈 문제, 술 중독 등 아주 심각한 것이든 아니면 치약 짜는 방식의 차이나 양말 벗어 놓는 습관 따위의 아주 하찮고 사소한 내용이든 결혼의 불행을 좌우하는데는 별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행을 좌우할까요? 가트맨 박사는 대화의 ‘방식’이 문제라고 합니다.

 

   대화 중에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가 들어가면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이 네 요인이 이혼의 가장 큰 예측 인자라고 합니다.

   첫째로, 비난입니다. 비난이란 사사건건 트집잡고 상대를 비판하는 행동입니다. ‘당신, 또 약속 안 지켰잖아!, 만날 술만 마시고 아이들이랑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이런 것이 비난의 예입니다.

   둘째로, 경멸입니다. 경멸은 비난보다 한층 더 독소가 강합니다. ‘어쭈, 잘 해 보시지, 넌 그냥 그렇게 사세요, 꼴에 겉멋만 잔뜩 들어 가지고,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이런 말투에는 비아냥과 인격 비하의 독이 들어 있습니다. 설사 말하는 사람이 습관적으로 무심코 내뱉는다 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상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고 인격에 상처를 입는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셋째로, 방어입니다. 방어는 ‘내 잘못은 없다, 너도 그러면서 왜 나만 뭐라 하느냐, 너만 잘하면 문제는 안 생긴다’ 는 투의 말입니다. 아내가 “술 좀 그만 마시고, 일찍 좀 들어와!” 했을 경우 “먹고 싶어 먹냐! 그리고 나만 마셨어?”라고 방어할 경우 심각한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을 꺼내봤자 잘못의 책임이 모두 나한테 있다는 반격을 들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요. 따라서 네가 5톤 짜리 대포로 공격한다면 난 10톤 짜리로 되받아주마 하는 식으로 치고 받으면 부부 싸움은 권투나 레슬링처럼 치열해지고 살벌해지게 됩니다. 한쪽이 넉 다운되거나 양쪽 다 지쳐 떨어지게 되어야 끝이 나니까요.

 

   넷째로 담쌓기입니다. 이런 소모전이 되풀이되다 보면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담쌓기라는 냉전으로 들어갑니다. 주로 집밖으로 나가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상대방이 말해도 못들은 것처럼 자신의 일만 하는 경우입니다. 각방 쓰기, 집 나가기, 말 안 하기, 전화 안 받기, 텔레비전이나 신문만 들여다보기...등이 담쌓기의 예입니다.

   가트맨 박사는 이 네 가지 방법을 쓰는 부부는 이혼으로 끝날 확률이 92% 라고 합니다. 그만큼 불행감을 유발하는 악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당장 대화 속에 비난, 경멸, 방어와 담쌓기만 제거해도 결혼 생활이 한결 쉽고 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넷을 뺀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으면 행복감이 증폭될까요? 비난 대신에 원하는 것을 부탁하거나 요청해 보세요. 경멸 대신에 칭찬의 말과 감사의 말을 해 보면 상대도 나를 존중해주게 됩니다. 방어 대신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고충을 수용해보세요. ‘그럴 수도 있겠네, 당신 말도 일리가 있어, 한 번 생각해볼게...’등은 수용의 표현입니다. 끝으로 담쌓기 대신 그 날 싸움을 그 날로 끝내고 화해시도를 즉각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여 년 간 갈등에 빠진 수많은 부부들의 문제와 상처를 치료해 온 최성애 박사가, 위에서 소개한 세계 유일의 부부 치료 전문가 교육기관인‘가트맨 인스티튜트(Gottman Institute’)에서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존 가트맨과 줄리 가트맨 박사에게 직접 훈련받고, 지금까지 극소수만이 배출된 최고 과정을 이수한 부부문제 전문가이시기도 합니다. 최 박사가 전하는 위기의 대한민국 부부들에게 전하는 진단과 처방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문이 깨지거나 하수구가 막혔다고 집 전체를 부숴 버리지 않듯이 부부들도 성급히 이혼하거나 문제를 방치하는 대신, 평소에 잘 관리하고, 고칠 것은 고쳐 아끼며 살자는 '부부 리모델링'을 권유합니다. 최성애 박사는 이를 위해 심리학, 인류학, 생물학, 뇌 과학에 이르는 다양한 연구 결과와, 풍부한 치료 사례 및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터득한 생생한 지혜를 바탕으로 `라이프 통장`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선보이며 부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법을 소개합니다.

 

   최 박사는 결혼을 "아이의 보호와 성장을 위하여 존재하는 사회제도"로 정의하고 접근합니다. 이에 따라 부부문제도 이에 대한 문제를 가장 중요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혼을 밥먹듯이 생각하는 근래의 한국 부부들은 마치 '결혼은 남녀가 모여 함께 둘이서 살다가 아니면 헤어지면 그 뿐인 것'쯤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 점에서 크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이'라는 것입니다.

   최 박사는 부부싸움으로 인한 이혼의 원인은 싸움의 원인이 되는 "문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싸우는 방식"이 이혼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최 박사는 대부분의 이혼한 부부가 제시하는 이혼사유 1위 '성격 차이'는 사실 성격 차이가 아니라 "부부 관계"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최 박사는 부부 갈등의 원인을 단순히 고치기 힘든 성격 차이로 결론짓지 않고, 부부 갈등은 "부부관계 치료"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한 부부든지 아니면 불행한 부부든지 간에 부부는 누구나 부부 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건 "싸우는 방식"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로 결정된다(최 박사는 이것이 부부관계라고 합니다.)고 합니다. 최 박사는 <부부 사이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라는 책에서 ‘내훈’ 및 ‘가트맨 처방’등의 지침과 체크리스트 등을 풍부하게 수록하여 불화에 대한 실질적인 예방 및 해결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적인 부부 치료 상담 전문가이신 가트만 박사가 부부 3천 쌍을 집과 꼭 같이 꾸민 '러브랩(Love Lab)'에 모셔 놓고 실제 가정에서 생활하듯이 생활하게 하면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관찰 분석한 결과라고 합니다.

  결국 부부싸움의 방식이 다음 네 가지에 해당되면 부부는 이혼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첫째, 부부 싸움 시에 서로의 단점에 초점을 두고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단점이란 것은 상대방도 잘 알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에 해당하는데, 이를 공격하는 것은 선전포고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이혼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둘째, 갈등의 원인이 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끝까지 미뤄 두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혼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최 박사님은 집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매일매일 버리듯이 갈등의 문제도 그때그때 해결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셋째, 하고 싶은 말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혼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부부간에 말 한마디도 상당히 신중하게 생각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을 드라마 작가가 대본을 수십 번 고쳐 쓰듯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고 합니다.

   넷째,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치가 현저히 낮고, 문제가 있어도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도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혼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부부가 개선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최 박사는 위험 인자 예측요인으로 부부 싸움 시 부인의 목소리가 매우 높은 톤으로 포문을 열 경우 이혼할 정확도는 94%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부부싸움의 첫 3분 안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왜 남편의 목소리가 크면 괜찮고, 부인의 목소리가 크면 위험하다고 할까요? 최 박사에 따르면, 호르몬, 뇌 구조의 차이 등으로 인한 생리적, 육체적인 것과 관계된다고 합니다. 여성과는 달리 남성들은 극단적인 흥분을 하게 되면 혈압과 맥박이 급격히 증가하여 감정이 홍수를 이루게 되고, 이렇게 되면 남성의 뇌에서 사고력과 이성적 판단을 하는 기능은 정지하고, 오직 도망 아니면 싸움 이 두 가지 기능만 작동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의 경우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하다가도 여성은 친구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흥분 상태의 회복시간은 남성은 여성에 비해 두 배인 30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부부 싸움 중간 중간에 이를 식힐 시간을 갖는다면 좋은 가정생활,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감정의 홍수에 이른 남편 혹은 아내에겐 보수 작업(repair job, 혹은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심한 다툼 중에 부부 중 누군가가 “물 한잔 먹고 하자!”라든지, “밥 먹고 하자!”라든지 하는 브레이크를 걸라는 뜻입니다. 물론 감정의 홍수를 조절할 수 있는 시간까지 가지면 좋겠지요. 또 기업에서 "프로젝트"를 관리하듯이 부부관계도 그렇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날 다툰 남편이 이런 좋지 못한 상태를 더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뜻에서 다음날 아침 모조리 잊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행동해도 아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충분히 들어주고 힘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부간에는 나쁜 언행을 한가지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경우 잔잔한 것으로 다섯 번 갚아야 회복된다고 합니다. 즉, 1:5법칙이라 하는데,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부싸움을 통해 서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리 알 수는 없는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미리 알면 미연에 부부관계에서 나쁜 상태로 치닫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해 최 박사님은 ‘사랑의 지도 카드(love map card)’라는 것을 소개하면서 서로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등에 대해 평소에 많은 대화와 질문을 통해 파악해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러브 맵 카드도 상대방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분석 방법 중 하나라 합니다.

   요약하면, 이혼은 성격차이 탓이 아니라 부부관계의 문제이고, 성격은 양면성이 모두 존재하나,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어떤 면으로 작용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특히 많은 남편들은 부인의 요구를 귀담아 들어줄 줄 아는 융통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절대 무시당한다고 느끼게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행복한 부부는 상대방을 자극하게 할 문제에 대해 자신의 할 말을 잘 다듬고, 골라서 신중하게 하되,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표적은 상대가 아니라 "문제"임을 잘 명심해야 합니다.

   최 성애 박사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라이프 통장’을 제시 하였습니다 ‘라이프 통장’이란 무엇일까요?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 물, 공기, 영양분 등의 핵심 자원이 필요하듯, 하나의 살아 있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부부도 이를 지탱해 주는 자원이 필요하며 최소한 재정, 건강, 정서, 도우미 네 요소가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라이프 통장이 풍부할 때는 원만한 부부 관계를 이루지만, 라이프 통장이 고갈될 때 불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처럼 건강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모든 자원의 출납을 `라이프 통장`이라 이름 붙이고, 네 가지 라이프 통장으로써 분석,진단하여 치료하는 것은 최성애 박사 고유의 방식이라 합니다. 

   최 박사의 저서는 부부 문제에 관한 전문가가 부족한 현실 속에 고민에 쌓인 부부들의 지친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하고 세심한 언어로, 직접 상담과 치료를 받는 듯한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부부들은 물론, 좀더 조화롭고 건강한 결혼 생활을 소망하는 이 땅의 모든 부부들에게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독서 치료, 시 치료, 부부 치료, 이야기 치료, 저널 치료 등을 연구하고 상담하고 교육하는 가정문제 치유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가정사역자 이백용, 송지혜 부부가 지은 <남편 성격만 알아도 행복해진다>라는 책과 세미나를 통하여 흔들리는 가정을 치유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성경적 관점에서 깊이 연구하여 흔들리고 깨어지는 수많은 가정들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7.  저술 목회 사역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동서양의 고전과 명저를 읽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상을 글로서 남기지 않는다면 모든 사상과 일생의 발자취는 인생의 종언과 함께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물론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존 번연의 <천로역정>, 존 칼빈의 명저 <칼빈 성경 주석>이나 <기독교 강요> 등을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읽을 수 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세익스피어의 명작 등을 대할 수 있는 것도 글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은 ‘글은 국가를 경륜하는 대사업이요, 영구히 남는 성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유구한 세월 동안 내려온 명작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물론 앞으로도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읽혀집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광수나 김동리의 소설, 김소월과 박목월, 정지용의 시, 이어령이나 안병욱의 수상록 등은 대를 이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집니다. 이 시대의 최고의 이야기꾼이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갖추었다는 이문열의 소설은 그가 편역한 <삼국지>를 제외하고도 1천만 권 이상 팔렸으며 소설<삼국지>만도 2007년 현재 물경 1,500만 권이 팔렸다고 합니다. 한 권을 두세 사람이 읽는다 해도 대부분의 국민이 한번쯤 이문열의 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작가의 작품 속에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주님의 복음을 은연중에 전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면 얼마나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큰 도움이 되고 주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기독교인으로서는 많은 소설가와 시인이 있지만 <땅 끝에서 오다>와 <땅 끝으로 가다>를 위시해 많은 소설과 수상집을 발표하고 있는 김성일 장로님이 활약을 하고 있으며 신학대학을 나온 소설가 이승우씨 등 여러 명이 소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전영택 목사님이 오래 전에 소설을 쓴 적이 있으며, 서울대 법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나온 소설가 조성기 목사님이 <야훼의 밤>을 위시해서 여러 작품을 내어놓았습니다. 용혜원 목사님 등 많은 분들이 시집이나 수필집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깊이 알고 신학을 전공한 전도사나 목사님 가운데 이미 등단한 분은 글을 통하여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문단에 등단하지 않은 목회자나 신학도 가운데 글을 쓰는데 재능이 있는 분 가운데, 사상가나 소설가나 수필가나 시인 혹은 극작가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구원의 소식을 널리 전하고자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은 깊은 기도와 성경 연구와 더불어 많은 동서고금의 명작을 독파하고 치열한 문장수업을 통하여 훌륭한 글을 써서 많은 영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면, 수천 명의 교인을 모시고 목회 하는 목회자에 못지않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불교계에서는 법정 승려가 불가의 교리와 삶을 그린 수상집 <무소유>를 비롯하여 최근에도 많은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내어놓아 은근히 불교를 포교하고 있습니다. 예일대를 나오고 자유주의 신학의 아성인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나온 파란 눈의 미국인이 한국에서 불교의 승려가 되기까지의 발자취를 담은 간증(?)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화제를 일으키면서 불교 포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무종교인 사람들에게 앞으로 종교를 택한다면 불교를 택하겠다는 사람이 제일 많다는 한미준과 갤럽의 조사가 있는데 법정 승려 같은 사람의 영향도 클 것입니다. 그런 이의 책을 많은 사람이 읽음으로서 불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교 교리에 심취하게 됩니다. 법정 승려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어느 여자 불교 신도는 요정을 경영하여 평생 모은 전 재산 물경 1천억 원을 내어놓아 ‘길상사’라는 절까지 지어 바쳤습니다. 그러나 어느 목사님의 수필집이나 설교집, 혹은 간증집이 일반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목회자로서는 시인 용해원 목사님 외에는 일반 사회인들에게 법정 승려만큼 널리 알려진 분은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시인인 김소엽 교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다가 깊은 신앙으로 들어 왔다고 하는데,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많이 연구한 그리스도인 작가도 그리스도인만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작품을 쓴다면  복음이 전파되며 어둠 속에 방황하는 영혼들이 새로운 삶을 찾게 됩니다. 그 작품이 영혼을 울리는 감동을 준다면 자손 대대로 읽혀져서 육신은 떠난다 해도 글은 살아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작가로서 독실한 신자인 나연숙씨 같은 분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썼는데 이런 드라마 한편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전에 <모래시계>인가 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 방영시간에는 서울 장안의 교통이 거의 끊기고 수돗물 사용량이 훨씬 줄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글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좋은 글, 잘된 문장은 이렇게 쓴다>에서 소설가 손영목은 “소설가와 시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 문학적 소양, 문학적 정서, 문학적 예지, 이런 것들이야말로 그를 소설가 혹은 시인이 되게 하는 요체인 것이다...후천적인 노력은 거기 비한다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그만한 소양과 정서와 예지를 갖추지도 못했으면서 맹목적인 열정만으로 문학에 매달려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았다.”고 함으로서 선천적인 문학적 재능이 문학가가 되는 데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안병욱은 같은 책에서 “인생의 모든 일에는 재질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다. 백련천마(百練千?)의 노력이 명문을 창조한다. 각고면려(刻苦勉勵)의 훈련에서 좋은 문장이 탄생한다. 갈고 다듬은 정성된 조탁의 작업이 없이는 훌륭한 글이 나올 수 없다.”고 선천적인 재능과 더불어 치열한 문장 훈련을 통하여 명 문장가가 나온다고 강조했습니다. 소설가 전상국은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에서 “뭔가 풀고 싶은 강렬한 욕구, 쓰는 일로 그것을 풀어낼 때 신명을 낼 수도 있다면 당신에겐 문학적 재능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착, 소설을 읽다가 문득 어느 낱말에, 혹은 좋은 문장에 매료되어 긴장하는 당신의 소설 문장에 대한 관심이 곧 문학적 재능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신학도나 목회자 가운데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은 그 재능을 갈고 닦아 글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바랍니다. 더구나 이미 문단에 등단한 분들은 더 열심히 사명감을 가지고 글쓰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많은 영혼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며 혼탁한 세상에서 맑은 샘물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당신의 소설이나 수필 한 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인생이 변화되는 이가 있으며, 당신의 시 한 편으로 인해서 주님을 만나 영생을 얻고 삶이 밝아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복음의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목회를 한다면 단지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좋은 글은 쓴다면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대중목회와 대중문서선교를 할 수 있으며, 참으로 가치 있는 글을 쓴다면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우리의 글을 통하여 후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주님 오실 때까지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8. 출판 목회 사역

  

   교보문고나 반디앤루니스 같은 서점에 가서 온종일 보고 싶은 책들을 읽고 나오면 다리는 아프고 머리는 띵해도 밤하늘의 별이 반겨 줍니다. 평생을 책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 신학도나 목회자에게는 읽고 싶어 하던 새 책을 사서 혼자 조용히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좋은 서점들이 있어 도회지가 좋고, 마음껏 책을 볼 수 없어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목회자에게 시골은 좀 불편합니다. 

 

   위대한 편집자 삭스 카민즈는“인쇄된 말은 생명 있는 성스런 존재”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서양 격언에 ‘수 백 년 동안 영향을 끼치는 책 한 권을 만드는 것이 대학교 하나를 설립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출판 사업의 영향력을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부흥과 개혁사의 백금산 목사님도 '출판사는 신학교이며, 출판사 대표는 신학교 총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좋은 출판사 하나를 세우는 것은 신학교 몇 개를 세우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배우는 양에 있어서 신학대학원 3년 간 교수님들의 강의를 다 듣는다 해도 결국 책 50권 정도의 분량을 배우는데, 출판사는 50권이 아니라 500권, 5,000권의 책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배우는 지식의 질을 비교해도 신학교는 살아있는 교수님의 강의만 들을 수 있지만, 출판사는 지난 수 천년 동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모셔올 수 있어 가장 위대한 드림 팀으로 구성된 교수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배우는 기간도 신학대학원은 3년 간 공부하지만, 출판사는 평생 공부할 수 있는 교육 기간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출판은 전 시대, 전 세계에 걸쳐 상상 할 수 없는 엄청난 미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루터의 책들이나 칼빈의 <기독교 강요>나 그의 성경 주석들과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청교도의 저작들은 기독교는 물론 세계의 역사의 판도를 변화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판 사역은 복음증거 사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탁월한 출판인과 편집자가 많이 있습니다. 일반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를 많이 만드는 사람 중에 김영사의 박은주 사장 같은 여성 출판인은 뛰어난 재능으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가 기획한 책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어 형편이 어려운 출판계에서 기적이라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적게 팔리지만 마음 밭을 기름지게 하는 각 분야의 전문적인 양질의 책을 내는 수많은 출판인과 편집인이 있습니다. 출판인은 베스트 셀러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읽혀지는 스테디셀러를 많이 출판하여 정신적 양식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심훈의 <상록수>와 이광수의 <무정>,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1960년대에는 이윤복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이어령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사회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 베스트셀러였고, 1980년대 들어서며 황석영의 <장길산>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박경리의 <토지>가 출간되었고, 김홍신의 <인간시장> 시리즈가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함으로써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소설 동의보감>과 <소설 토정비결>이 100만 부를 돌파했고,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400만 부를 판매했습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나 1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 행진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등장은 다양해진 독자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21세기에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외화위기 이후의 위기감을 느끼는 가장들의 관심을 끌었고, <해리 포터> 시리즈와 <다빈치 코드>가 독자들의 관심에 국경을 없애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다 좋은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마음을 끄는 힘이 있기에 많은 사람이 읽습니다.

 

   출판이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소산인 저작물을 주로 인쇄술을 통하여 출판물을 만들어 다수의 독자에게 배포하는 일입니다. 출판인은 출판업을 경영하는 대표자, 곧 출판물을 발행하여 그 책임을 지는 발행자입니다. 참된 출판인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고, 뜻이 남달라야 하며 출판이란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출판인은 경영에도 밝아야 합니다. 곧 기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정확한 판단과 리더로서 훌륭하고, 합리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능력과 사업상의 통찰력과 정열이 있어야 합니다. 편집인은 저작물을 출판물의 형태로 편집하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편집자가 많이 있을 때 출판의 질도 향상되고 출판계는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기독교 출판계는 문서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많은 분들이 수많은 책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문서선교의 사명을 가진 여러 장로님이나 집사님들이 기독교 문서 선교사역에 큰 공헌을 하고 계십니다. 그 중에 목사님이 출판인이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출판사들도 있습니다. 복음주의 계통의 출판사로서 생명의 말씀사는 김재권 목사님이 대표로 계시면서 주옥같은 복음주의적 책들을 끊임없이 펴내고 있습니다.‘믿음의 글들’시리즈로 유명한 홍성사는‘주님의 교회’를 개척하고 약속대로 10년 간 시무 하다가 깨끗하게 물러나 화제가 된 <회복의 목회>의 주인공 이재철 목사님이 발행인으로 있습니다. 나침반 출판사도 김용호 목사님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서, 이동원 목사님의 강해 설교 시리즈를 위시해서 아름다운 책들을 펴내고 있으며, 도서출판 두란노의 하용조 목사님은 탁월한 목회자인 동시에, 경영에도 두각을 나타내어 도서출판 두란노 등을 이끌어 가시면서 귀중한 신앙서적과 잡지를 통해 한국 교회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이레서원의 김완섭 목사님도 양질의 신학 도서를 발행하고 있으며, 부흥과 개혁사의 백금산 목사님은 청교도 전문 출판사로서 양질의 책을 발행하고 있으며, 도서출판 한세를 통해 크리스천의 세계관과 직업관에 관한 책들을 펴내고 있는 방선기 목사님과 원용일 목사님도 목회자로서 문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문서선교회의 박영호 목사님은 개혁주의적인 목회와 신학에 관한 책들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월간 목회>를 발간하는 박종구 목사님도 신망애사를 통하여 많은 서적을 펴내어 문서선교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의 박명곤 발행인도 신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한 엘리트 출판인입니다. 제자원에서는 총신대 신학대학원과 그 밖의 다른 신학대학원 출신의 뛰어난 원어실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주축이 되어 주석 등 정통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입각한 방대한 대전집물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신학을 전공한 여러 사람들이 출판 선교 사역에 수고하고 있습니다.

 

   신학도나 목회자 중에서 책의 편집, 출판 등에 관심과 소질이 있어서, 문서선교를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으 정복하고자 하는 분은 그 방면으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 목회를 하는 것 못지않게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엄청난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오스왈드 스미스는 <선교사가 되려면>에서 출판물의 위력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마가복음 13;10의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는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전파된다’는 말씀을 킹 제임스 역에서는 'be published'라고 번역했는데 이 말은 서적이 ‘출판된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로 출판되어 복음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때마침 인쇄술이 발명되어 그가 한 설교와 저술 100여 권이 서부 유럽 각처에 배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성공한 것도 존 칼빈의 설교와 저작물이 출판되어 각 나라 사람들에게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출판물의 위력은 나라와 대륙을 뒤흔들어 종교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을 만큼 막강합니다. 한때 민중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출판계로 들어가서 마르크스주의와 모택동주의 그리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담은 수많은 책을 출판하여 젊은 대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적이 있습니다. 성령충만하고 지성을 갖춘 젊은 그리스도인들도 도전을 받고 출판 사역에 헌신해야 합니다.

 

   문서 선교에 있어서 잡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교회설립 초창기부터 <신앙계>를 통하여 전도를 해오고 있으며, 도서출판 두란노에서는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성경묵상을 위해 <생명의 삶>과 <말씀묵상>등 여러 종류의 신앙잡지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잡지들은 한국 교계의 신앙을 이끌고 있습니다.

   출판물의 위력에 대하여 우리 정통 교회보다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이 훨씬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인쇄 공장들을 여호와의 증인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각지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거대한 자체 인쇄공장에서는 매 작업일 평균 2백만 부 이상의 <파수대>와 <깰 때이다> 지가 인쇄되어 발송됩니다.(94년 통계) <파수대>는 1993년 초까지 매호 발행 부수는 112개 언어로 1,600만 부이며, <깰 때이다> 역시 매호 1,300만 부가 인쇄됩니다. 1 년이면 물경 6억 부 이상의 잡지가 발행되어 전세계 모든 가정에 배포됩니다. 이는 단행본을 제외한 숫자인데, 단행본의 예를 들자면 여호와의 증인의 핵심 교리를 담아놓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라는 책은 <성경>과 <모택동 어록> 다음으로 많이 발행되었는데, 117개 언어로 물경 1억7백여 만 부가 발행되었습니다.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같은 책도 94년도에 벌써 116개 언어로 7천3백만 부가 인쇄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책들 가운데 1천만 부 이상 출판한 단행본은 부지기수입니다. 지금까지 여호와의 증인들이 발간한 책자의 총 발행 부수는 물경 100억 부가 넘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사실입니까?

   여호와의 증인들은 종교 건축물보다는 메시지의 위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는 대신에 ‘왕국회관’이라는 작은 건물에서 집회를 엽니다. 왕국회관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개인 주택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물론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본부나 각국의 자체 출판인쇄 공장은 거대한 빌딩을 지어 사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들은 집회를 위한 건물보다는 메시지에 자기들의 엄청난 돈을 투자합니다.

 

   중세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득세한 이후부터 교회가 저질러온 가장 큰 잘못은, 성도의 헌금을 출판과 말씀 전파에 투자하지 않고 건물을 짓거나 화려하게 꾸미는데 엄청나게 투자를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백 년 걸려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성당을 지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2백년을 예상하고 거대한 성당을 지으려고 하는 천주교 신부가 있다고 합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모를 때, 가치 없는 일에 모든 것을 낭비하는 모습을 보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교회당에 교인이 차고 넘치면 할 수 없지만, 무조건 빚을 내서라도 수백 억 원을 들여 궁전같이 어마어마하게 교회당을 짓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지요. 교회가 메시지보다 건물이나 다른 것에 치중할 때 백년 후에 우리 나라 교회도 하늘을 찌를 듯한 웅장한 유럽의 고딕 풍의 교회당처럼 안이 텅텅 비고 박물관이나 댄스홀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난 날 찰스 스펄전의 명 설교로 명성을 떨치던 웅장한 교회당은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또한 실비로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스포츠센터를 운영해서 전도의 접촉점을 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사회의 같은 업종인 영어학원이나 꽃꽂이학원이나 음악학원 등에서 자기들의 이권을 침해한다고 비난하여 그 부근에 소문을 나쁘게 내서 오히려 전도 길을 막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문화센터를 통해서라도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도 좋지만 신중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 세계에서 매월 수천만 부 펴내는 <파수대>같은 잡지나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같이 컬러로 잘 인쇄된 책들을 볼 때마다, 우리 정통 기독교에서도 모든 성도를 교육시킬 수 있는 그런 식의 컬러로 잘 인쇄된 체계적이고 반영구적인 성경공부 교재 시리즈를 출판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방식의 매력적인 교재를 만들어, 목회자나 구역장 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집에서도 각자 흥미 있게 공부하며 읽을 수 있도록 새 신자 교재나 구역 예배나 세례, 학습 교재, 공과 공부 교재, 제자훈련교재를 만들어 전국의 모든 성도에게 보급한다면 신앙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늘 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교회에서 제자훈련 교재로 사용하는 네비게이토 선교회나 대학생 선교회, 기독 학생회 등의 귀납법적 성경공부 교재처럼 일일이 성경을 찾아서 써넣는 교재도 유익하겠지만, 지식이 적은 사람들이나 노인들 그리고 초신자들에게는 부담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일일이 성경을 찾지 않고도 내용만 잘 읽으면 질문에 바로 대답 할 수 있는 ‘여호와의 증인’식 성경공부 교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런 식의 교리 교재 공부를 통해서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초신자도 철저히 전도훈련과 제자 훈련식 교육을 시킵니다. 그런 교재를 가지고 공부한 여호와의 증인들이, 산 넘고 물 건너다니며 전도하는 열성 신도가 됩니다. 뱀에게 지혜를 배우라는 말처럼, 이단에게라도 사탄적인 교재의 내용은 배격하되 교재를 만드는 법 같은 것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성경적이고 복음주의적이며 원대한 비전을 가진 출판사에서 하루속히 이런 교재를 만들어 널리 값싸게 보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한편, 기독교 출판사의 서적은 기독교인만 보게 됨으로 독자가 한계가 있으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가가지 못합니다. 불신자에게 전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리려면 일반 사회인도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책을 발간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변혁시키는 다양한 방면의 책자를 만든다면 복음 전파는 물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데 세계문학선집이나 한국문학선집, 아동문학선집이나 아동동화선집, 청소년문학선집, 혹은 사상집이나 수상록 같은 책을 발행할 때에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책이나 복음전파에 도움되는 책 가운데 문학성이 뛰어난 책들을 선별하여 선집을 발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근래에 어느 출판사에서 출판한 위인선집을 보니 대부분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백과사전이나 문학선집, 위인전 선집, 과학 전집 같은 책을 발간해야 합니다.

 

  기독교 전문 출판사의 사역도 매우 중요하지만, 기독교인이 대상이 아니라 일반사회인이나 학생을 대상으로 훌륭한 크리스천 학자가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집필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의 단행본을 번역하거나 집필케 하여 출판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을 널리 선포하는데 이바지 할 것입니다. 근래에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사에서 ‘현대지성사’라는 일반 출판사를 설립하고 도서출판 두란노에서 "비전과 리더십'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분명히 이 출판사는 전에 제가 보낸 원고를 읽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세운 것 같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일반서적을 출판하고 예영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기독교 출판과 분리하여 일반 서적을 펴내는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그 출판사의 발행인들이 앞서 가는 문서선교 정신을 가진 출판사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한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세상을 조명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월간 조선’ 같은 부류의 시사 월간지나 ‘뉴스위크’ 같은 시사 주간지, ‘여성 중앙’류의 여성 월간지, 2, 30년 전에 선풍을 일으킨 바 있던 ‘학원’ 류의 청소년 교양잡지,‘뿌리 깊은 나무’ 부류의 교양잡지, ‘샘터’나 ‘리더스 다이제스트’ 류의 잡지, ‘새벗’ 같은 어린이 잡지 등을 발간하여 불신 세상에도 접근하여 복음을 증언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의 진리를 깨달은 신학도나 목회자들 혹은 기독대학생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는 많은 물질이 필요하고 수고가 따르겠지만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서 선교가 잃어버린 영혼이 가득한 세상에 미칠 영향은 엄청나게 클 것입니다.

 

   요즘은 만화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소설가 정이현은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만화 <슬램덩크>에서 배웠다”고 할 정조로 만화는 위력과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만화 그리는 소질이 있는 데 소질이 있는 사람은 만화가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의 영혼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집 딸아이들이 어릴 때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조대현 화백이 그린 신앙만화 <울퉁불퉁 삼총사> 시리즈를 사주었더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요즘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까지 일본만화를 얼마나 읽는지 모릅니다. 필자가 어릴 때 읽고 또 읽었던 <도전자 허리케인>이나 <독고 탁> 만화시리즈처럼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의 만화로 남을 것입니다. 일본의 만화시장은 엄청납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만화 연구 모임이 생겼다는데, 한 학생은 2년째 학교수업이 끝나면 유명한 만화가의 화실로 가서 매일 4-5시간씩 만화를 그린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만화도 고전(古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포부로 만화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만화의 영향이 크므로 만화에 소질이 있는 분은 만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보람이 있을 것이며, 앞으로 만화가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문서 선교의 방편으로 큰 몫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만화가 이원복교수의 교양 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 12권은 무려 1,0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부흥과개혁사에서는 성경과 신학과 교회사를 만화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만화에 소질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교양 만화와 신앙 만화를 통하여 복음을 전한다면 효과가 아주 클 것입니다.

 

   또한 경제 한파의 위기 가운데서도 부모의 교육열은 식을 줄 몰라서  <눈높이>나 <재능교육> 같은 가정학습지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수백만 명이 될 만큼 점점 시장이 넓어져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어 교재나 테이프 내용을 들어보면 종종 외계인이 나오고 요정과 마녀가 나오고 마법과 팝송이 판을 칩니다. 그런 기괴한 내용을 몇 년씩 들으면 아이들의 뇌리에 무엇이 심겨지겠습니까? 예수님 대신에 공룡과 우주 소년이 전능한 주님으로 믿어지게 됩니다. 더구나 널리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 등 이단종파 신도들이 만드는 영어학습지가 시장을 점령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신학도나 목회자나 신학대학 교수 가운데 영어에 뛰어난 인재가 많은데 성경적 사상이 조용히 흐르고 주님의 사랑이 담겨진 어린이 영어교육 교재 같은 것을 잘 만들어 전국에 보급시킨다면 우선 1천만 기독교인은 물론 저질 문화로 인해 세속에 찌들어 가는 불신 아동에게도 간접적인 복음 증거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명문대 합격자의 수기를 모은 책을 보니 영어 공부를 할 때 벌써 2, 30년 전부터 학생들이 보던 <성문종합영어>를 가장 많이 보았다고 대부분의 합격생이 썼는데, 그런 수기를 읽은 수십만 명의 학생들은 분명히 <성문종합영어>를 가지고 공부할 것입니다. 또한 유학이나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대부분 토플이나 토익 책을 봅니다. 전에는 <아카데미 토플>과 <이재옥 토플>이 유명했는데 한물 가고 이제는 <해커스 토플> 과 <해커스 토익>이 가장 유명합니다. 서울대학교에서 텝스(TEPS)시험을 내어놓아 점차적으로 공인된 영어 시험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사법시험이나 기업 입사시험에도 준비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계에도 영어 실력이 아주 탁월한 신학도와 목사님이나 교수도 부지기수인데, 교회의 목회만이 주님의 일이 아니라 한국과 세계 복음화의 사명 하에 이런 종류의 책들을 정성껏 집필하되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구원과 복음의 내용을 은연중에 예문에 포함시킨다면 세속적인 가치관과 문화에 젖은 이 세대의 수많은 청소년들의 영혼에 얼마나 큰 구원의 닻줄이 되겠습니까?

   캔필드와 한센이 펴낸 <마음을 열어주는 101 가지 이야기> 같은 책을 기독교 출판사라고 해서 펴내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교회와 세상을 분리시키려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면 우리는 앞장서야 합니다. 기독교 출판사나 목회자라고 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게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넓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세상을 밝게 하는 책이라면 기독교 서적에 무관심한 평신도는 물론 믿지 않는 일반 사회인들도 많이 읽을 수 있는 좋은 책들도 동시에 많이 발행한다면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성큼 다가 올 것입니다.

 

  편집자로서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출판사 '마음산책' 대표 정은숙씨가 출판 편집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실무에서 알아야할 것들, 편집자의 자세 등을 정리하여 쓴 <편집자 분투기> 같은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실무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도 편집자이자 출판사의 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는 이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겪었던 경험을 통해 생생한 '편집자 인생'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겨레문화센터 등에서 편집 관련 강의를 제법 오래했는데, 그때 강의했던 내용을 토대로 책을 만든 것 같습니다. 출판 경영에 대해서 알기 원하면 김병준, 김병도 공저인 <출판 경영론>을 보면 좋고 그밖에도 그 방면에 관한 책들이 서점에 있습니다.

 

 9. 번역 목회 사역

 

  1970년대에 김광웅 목사님이 미국의 저명한 신학교에 유학 가서, 설교학에 대하여 연구하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그 많은 도서관 선반에 줄줄이 들어차 있던 설교학 분야의 책들을 보고 탄복을 했다고 합니다. 천정 밑에서부터 도서관 바닥까지 그 긴 진열대에 꽉꽉 들어찬 설교학 분야의 책들, 몇 줄을 지나고 또 지나도 계속되는 설교학 분야의 책들을 보고 입을 다물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정성구 교수님이나 장두만 교수님, 정장복 교수님 등 국내 학자가 쓴 설교학 책도 계속 나오고 좋은 번역서도 계속 나오고 있지만,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설교학 책은 겨우 곽안련 선교사가 쓴 <설교학>이라는 책 밖에는 다른 책은 거의 없을 때였다고 합니다. 지구촌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 것만을 고집하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맙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세계 도처에서 놀라운 진보와 발전이 있습니다. 동서양의 학문적 성과는 엄청납니다. 이 모든 학문을 습득하지 못하면 우리는 남의 꽁무니만 쫓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요즘은 각 신학교마다 외국의 유수한 신학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있어서 훌륭한 신학서적을 계속 집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목회에 필요한 서적도 계속 번역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조금만 깊이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려면 외국어로 된 책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힘들다고 합니다. 영어나 독일어 등으로 된 신학서적과 우리말로 나온 신학서적의 분량은 비교도 할 수조차 없습니다. 신학을 깊이 연구하려면 외국어를 모르고는 불가능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언어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동기생 가운데 한 신학생은 명문대 법대를 나오고 신학대학원에 들어와서 실력은 뛰어난데 목회의 은사가 없어서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육전도사로 나가지 못하고 고민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이런 신학생처럼 목회의 은사는 없어도 언어와 지식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도 지식과 언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다른 목회자와 신학도나 성도들을 위해서 성경 원어나 영어 등 외국어로 된 주석이나 기독교 서적들을 번역해서 모든 이들이 그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일도 목회에 못지않게 하나님 나라 확장에 큰 공헌을 하는 것입니다. 좋은 책 한 권을 잘 번역하면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생은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 기독교 출판사에서는 번역할 수 있는 인재를 개별적으로 모집하여 번역 실력을 테스트 한 후 번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서적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고는 번역하는데 애로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출판사에서는 대부분 어학을 전공했거나 전공이 아니더라도 어학 실력이 있는, 신학생이나 목사님들에게 번역을 의뢰합니다. 작은 교회에 시무 하면서 어학에 재능과 실력이 있는 목회자 가운데 시간이 있는 분들은, 번역을 통하여 앞서가는 기독교 학문을 소개하는 일을 하는 일도 귀중한 사역입니다. 아직도 번역이 안 된 훌륭한 기독교 고전이나 경건하고 탁월한 청교도의 저서들, 그리고 앞서 가는 훌륭한 신학자와 성경학자들의 책들을 부단히 번역하여 한국 기독교의 수준을 높이고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중차대한 사명이 외국어에 탁월한 신학도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일반 사회의 책들도 보면 서울대 같은 명문대학을 나오고 해외 유학을 갔다 온 이들 가운데도 전문 번역가로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서적을 주로 번역하는 분도 일반 사회의 책들도 번역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의 좋은 책 가운데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진 책들을 번역하여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지만 잘 된 번역은 학문의 발전과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줍니다. 외국어를 잘 번역하기 위해서는 우리말의 정확한 문법을 알아야하고, 문장이 잘 된 시나 수필이나 소설 같은 것을 평소에 많이 읽어서 어휘도 풍부하게 하고 매끄러운 문장을 쓰는 훈련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소설가는 우리말의 어휘를 풍부하게 늘리려고 국어사전에서 낱말을 5천 개를 뽑아서 밤낮 암기한다고 합니다. 번역을 하는 분들도 번역을 제 2의 창작이라고 생각하고 영어사전만이 아니라 우리말사전에 나오는 신선한 우리도 부지런히 외운다면 좋은 번역이 될 것입니다. 전문번역가인 이종인씨는 저서<전문번역가로 가는 길>에서 번역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외국어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국어 실력과 외국 문학에 대한 이해,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이라고 강조합니다. 한국 교계에도 탁월한 외국어 실력이 있는 분들이 무수한데 앞서가는 선진 기독교 국가의 앞서가는 탁월한 책들을 번역하는 사역에 많은 분들이 이바지 하기 원합니다.


10. 문화 목회 사역

 

  어느 십대 소녀는 상담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경을 읽으려고 펴들면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이 떠올라요. 눈으로는 말씀을 읽지만 머릿속은 전혀 아니에요.” 이것은 대중문화의 심각한 영향력과 폐해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현대는 문화 전쟁의 시대입니다. 기독교 방송에 의하면 크리스천의 여론조사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21세기 기독교 선교는 ‘문화 선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현대의 대중문화 속에서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대중문화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극적인 문화가 국민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중문화가 반기독교적으로 운동화 되고 있습니다. 뉴 에이지 운동, 즉 새 시대 운동은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교묘하게 포장해서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영혼(Ghost)'라는 영화도 대표적인 뉴 에이지 계열의 영화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중고생 관람가’였고 공식적으로 무려 450만 명이 관람했습니다. 폭력물이나 에로물과는 달리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두 가지 점에서 반기독교적 이라고 신상언 집사님은 평가합니다.

   첫째는 접신 행위를 아주 자연스럽게 소개하면서‘있을 법한 행위’, ‘한번쯤 해볼만한 행위’라고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 귀신놀이가 소리 없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영화를 통한 접신 행위의 암묵적인 관용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둘째는 기독교의 구원관을 정면으로 뒤흔들었다는 것입니다. 패트릭 스웨이즈가 연인인 데미 무어 곁을 떠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감동의 눈물을 흐렸는지 모릅니다. 이 장면은 ‘사랑은 구원이다’라는 뉴 에이지의 메시지를 영상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음을 가르칩니다. 뉴 에이지의 영상 메시지가 인간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반복하여,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세뇌한다면 교회의 가르침을 시대착오적인 전통 정도로 치부하게 됩니다. 뉴 에이지 운동뿐만 아니라 사탄숭배자들의 음악과 영화도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원래 '문화'라는 말은 '경작하다', '개간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은 땅을 가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 마음 또는 감정을 도야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지닙니다. 문화란 자연을 인간의 목적에 따라 변형시키는 정신과 손을 통한 모든 활동과 관계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문화활동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계발하여, 모든 문화영역이 기독교적 가치를 반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화에 대한 책임을 강조할 때, 기독교인 중에서는 사회의 구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문화 창조에서 활동적인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상과 분리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건주의적 경향이 있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전도하며 교회의 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거룩한'것이며 그 밖의 삶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악한 것은 아닐지라도 위험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문학, 예술, 철학, 사회학, 정치학 등 모든 학문은 악마의 영역이므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일부 선교단체 소속의 학생 중에서 대학에서 전공과목은 팽개쳐버리고 전도하고 제자훈련만을 하는 등 선교단체 활동만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고 학교 공부를 등한시하여 D학점이 수두룩한 학생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원론적 경향은 재세례파나 여호와의 증인 등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미쉬 등 일부 재세례파 교인들이 집단으로 사는 마을은 전기도 없고, 텔레비전이나 세탁기, 자동차 등 모든 문명의 이기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여 멀리하고, 지금도 등잔불을 켜고 마차를 타고 다니는 우스운 종파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세상은 다 멸망할 곳인데 에너지가 고갈되고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세상이 타락하고 불의와 기아가 만연되어도 나만 술, 담배 안하고 노름을 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고  열심히 교회에만 다니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통해서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창1:26-28)는 문화적 책임 즉 ‘문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문화명령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 명령’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온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통치자요 보존자이시며, 지구 전체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고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것들, 지극히 작은 것 참새와 벌레에 이르기까지 보존하시며 먹이시고 주관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개인의 경건 생활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국면에 미칩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현대문화를 분석한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을 받은 탁월한 책으로는 낸시 피어시 박사가 지은 <완전한 진리>라는 책이 있는데 옷을 팔아서라도 목회자나 신학생은 사서 읽기 바라고 프란시스 쉐퍼의 모든 책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의 첫머리에서도 필자가 강조했듯이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소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세상의 어떤 직업이나 일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세상의 삶의 구조와 문화를 변혁시키는 능력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와 그 부하들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로서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고 계시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 세상의 문화를 변혁시켜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문화의 방관자가 아니라 지도자가 되어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모든 문화의 주도자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이원론 사상을 가진 근본주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교회에서 기도하고 전도하며 성경 공부하는 것은 성스러운 일이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무조건 세속적이라고 생각하고 담을 쌓아 왔습니다. 이런 사상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의 왕이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이처럼 모든 문화영역에 대하여 눈을 감아왔기 때문에 그 동안 문화를 사탄이 침투하여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열린 어느 선교 대회에서 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영화나 팝송 등 대중문화계를 불신자들에게 맡기고 수수방관한 죄를 회개하자고 했다는데, 그리스도인들은 회개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모든 문화를 리드해야 합니다. 결코 기독교는 대중문화든 무엇이든 문화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죄악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화의 주인이시며 임금님이심을 세상에 선포하고 문화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변혁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잘못된 대중문화에 심취한 청소년들을 탓하기 전에 팝이나 록큰롤 음악에 사용된 사탄의 상징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뉴 에이지 운동이 왜 나쁜지 이유를 설명해 주고 그들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문화의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는 물이나 불과 같은 것이어서 쓰는 자에 따라서 유익하기도 하고 해롭기도 합니다. 교회는 문화를 선한 의미에서 빛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학과 문화를 접목할 수 있는 문화사역 전문사역자가 많이 나와서 기도와 연구를 통해서 이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일부 신학자들이 문화사역 방면에 활동하고 있지만 숫자가 적습니다. 문화 선교 사역자 중에 신상언 집사님은 일찍이 대중문화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고 타락한 대중문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널리 알렸습니다. 그는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대중문화 최후의 유혹> 등의 저서를 통해서 대중문화에 미치는 사탄의 영향을 분석하고 올바른 대중문화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상언 집사님은 울타리문화선교회를 통하여 크리스천 문화사역을 주도하고 있는데, 월간<낮은 울타리>를 발간하여 크리스천 대중문화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울타리 선교회는 연구모임을 갖고 영상, 음악, 출판, 미술, 연극, 놀이문화 등의 분과로 나누어서 각자 모니터한 자료와 의견을 교환하고, 같이 공부하며 수시로 발표의 기회를 갖습니다. 또한 울타리 문화 아카데미는 국내 최고의 전문 강사를 초청하여 3-4개월 과정의 집중적인 강의를 듣는 문화아카데미를 개원하여 전문 사역자를 키워낼 것이라고 합니다. 강의 내용은 복음과 문화, 세계관 연구, 뉴 에이지 이해, 영화. 광고의 이해, 대중음악, 포스트모더니즘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아카데미 수료생들은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되고, 대중문화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하여 깨닫게 될 것이며, 교회 내에서 이 방면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지도자로서 대중문화에 대해 계몽하고 상담하는 사역자로 일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울타리 다방을 만들어 크리스천들이 마음 놓고 쉴 휴식공간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향기로운 차한잔을 나누고, 때때로 작은 음악회도 열리고 전시회도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오갈 때 없는 영혼들이 잠시라도 휴식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울타리 다방의 체인점이 생겨 크리스천 여가 문화의 한 표본으로 만들고자 계획한다고 합니다. 또한 울타리 캠프를 만들어 매년 여름, 겨울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봄, 가을에는 단기 문화강좌를 만들어 주제별로 강사를 선정하여, 배움과 토론의 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울타리 문화 선교회에서는 대중문화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알찬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영화제작, TV 드라마 제작지원, 건전 비디오 추천, 연극 등 무대공연 제작, 광고문화개선, 어린이용 만화영화 제작, 올바른 TV 시청 교육, 레코드 및 테이프 제작, 크리스천 음악 심의기구 운영, 낮은 울타리 문학상 제정 등 많은 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근자에는 인터넷을 통하여 기독교 문화를 연구하고 배울 수 있는 ‘CUE 사이버 아카데미’를 설립하였습니다.

 

   ‘문화사역공동체(Christian Culture Fellowship)는 신학이 있는 문화 사역자들이 해마다 청소년 캠프를 열어 영상, 문화를 보급하고 복음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세속의 문화보다 더 좋은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이 땅에 건전한 문화의 토양이 형성되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님이 운영하는 두란노 서원에서도 여러 곳에 문화센터를 열고 저명한 강사를 초빙하여 기독교 문화학교, 시와 문학의 교실, 출판 잡지대학, 기독교 영상 문화반, 편집디자인 대학, 연극 아카데미 등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 기독교 문화를 보급하는데 앞장선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한 두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신학을 전공한 분 가운데 대중 문화에 관해 연구하고 좋은 문화를 보급하는 신학도나 목회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신학교에도 문화선교학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귀는 최첨단 과학의 성과인 영화, 음악, 컴퓨터, 비디오 등을 장악하여 수많은 영혼을 죄악의 노예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도 목회자 가운데 대중문화 사역을 하고 여러 명  있는 줄 아는데 고무적인 일입니다. 신학을 전공한 더 많은 신학도나 목회자가 대중문화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기도하여, 기독교 문화운동이 활화산처럼 타올라서 대중문화를 조종하는 사탄의 세력을 추방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대중문화를 정복하여 주님께 왕관을 드려야 합니다. 문화사역은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신신당부하신 세계 복음화의 엄청난 도구입니다. 이 중요한 일에 헌신하는 신학도나 목회자가 벌떼처럼 나와야 할 것입니다. 

 

 11. 신문방송 목회 사역

 

  한국기독공보사의 사장을 지내신 고무송 목사님은 목사를 그만둔다면 전직이었던 방송국 PD가 가장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방송국 PD나 신문사 편집인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그래서 언론인을 ‘무관의 제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송과 언론에 종사하려면 대부분 주일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신실한 기독교인은 이런 일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국민일보나 기독교방송, 기독교 텔레비전 방송이 생겨 복음 전파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지 모릅니다. C3TV, 아세아 방송이나 극동방송 등은 복음 전파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은 그 위력은 대단합니다. 문선명 교주나 크리스천 사이언스 같은 이단도 언론의 위력을 깨닫고 일찌감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나 세계일보, 워싱턴 타임즈 같은 일간지나 잡지 등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신문의 기사나 사설은 순식간에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쳐 여론을 형성하게 하고, 텔레비전 방송은 보는 이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오늘날 여러 텔레비전 방송에서 미신과 무속신앙을 조장하고 귀신이야기나 환생 이야기 등을 지나치게 방영하여 국민들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낚시나 바둑만을 하루 종일 내보내는 등 온갖 종류의 위성방송이나 케이블 방송을 볼 때마다 엄청난 시간과 전력이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복음이 돈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전파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밤낮 세속적인 방송을 하는 자들만큼 물질이 있다면 복음 전파를 위하여 보람 있게 사용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실로 방송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중국 본토에 여러 편 수출되어 많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데, ‘사랑이 뭐 길래’ 나 같은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요청에 따라 재방영되어 하루 1억 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시청했습니다. 중국이나 대만 홍콩의 ‘대장금’ 열풍이나 일본의 욘사마 배용준의 ‘겨울연가’ 등의 한류 열풍은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랍권이나 미국과 남미에까지 한국 드라마가 진출하고 있습니다. 미국 한 메이저유통업체는 2006년도에 한국 드라마 시리즈 22편을 DVD 등으로 제작하여 전 미국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미 미국에서 ‘대장금’과 ‘천국의 계단’ 시리즈를 출시해 톡톡한 재미를 본 YS의 유통담당 톰 라슨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조그만 나라가 드라마는 정말 잘 만든다“면서 ”한국의 드라마 제작자들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미국에서는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 중 93%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불신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거기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 나오겠습니까? 미국 어느 주부는 ’미국 TV가 낮 시간에 방영하는 지저분한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한국 드라마는 존경받을 만큼 깨끗하고 건전한  오락물‘이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한국 드라마는 미국 TV에 비해 사랑을 훨씬 로맨틱하고 예술적으로 묘사한다."고 토로합니다. 물론 한국 드라마도 삼각관계, 금지된 사랑, 악질 계모, 사기꾼 사업 파트너 등을 다루고 있지만 접근 방식이 노골적인 미국과 다르다는 뜻일 것입니다. 일본에 이어 '겨울연가' 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한국 드라마 팬클럽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드라마에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만들어 성경적인 정신이 은연중에 스며들어 있다면 하나님 나라와 복음 전파에 얼마나 유익하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분의 선교헌금으로 전파되는 극동방송과 아세아 방송 등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까? 공산화 이전에 불과 70만 명밖에 안되던 중국의 기독교인이 모택동 치하의 문화혁명 등 극심한 박해 속에서 무려 7천만 명 내지 1억 명이나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은 세계 기독교 방송과 극동방송이나 아세아 방송 등의 영향도 매우 컸을 것입니다.

 

   언론 선교에 관심이 있는 신학도나 목회자는 기독교 계통의 방송국이나 신문사 뿐 만이 아니라 모든 일반 언론사에 들어가서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이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기자나 방송 제작자나 프로듀서, 편집인이나 논설위원, 신문사나 방송사 사주 등으로 언론계에 헌신하는 것도 교회와 국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명령과 선교명령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정화시키고 변혁시키며 영혼구원을 통한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언론에 종사하는 일은 놀라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굳이 기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앞으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조명하여 기사를 보내고 방송을 제작하는 일간지, 잡지, 방송 등을 세우는 일도 소금처럼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국민일보는 기독인을 대상으로 만든 신문으로서 독자의 범위가 한정되는 수가 있는데, 그런 신문도 있어야 하지만 일반 신문처럼 만들되 성경적인 세계관이 소금처럼 스며들어 있는 신문도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언론을 통하여 온 세상을 복음화해야 합니다.

 

   요즘 일반 방송사나 신문사에 들어가면 분위기상 주일 성수가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믿음 있는 신앙인이 주일성수 때문에 언론계를 회피하고, 불신자가 언론계를 주관한다면 영원히 언론을 통한 복음전파와 하나님나라 확장은 힘들 것입니다. 사실 일주일이 모두 주님의 날이므로,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처음에는 주일 성수를 좀 못하더라도 일단 일반 언론사에 들어간 후, 지도자가 되어서 우리 나라 언론사도 주일성수를 할 수 있도록 적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주일 예배 시간대에 황금 시간이라고 해서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예배참석을 방해하는 일 같은 것도 막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율법적인 주일 성수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주일 성수와 관계되는 이야기 이야기인데, 기독교와는 경우가 좀 다르지만, 유대교를 신봉하여 안식일 하루는 모든 교통수단까지도 운행을 중지하고 쉬는 이스라엘이나 기타 선진국 중에서 주일성수를 잘 하는 나라의 사례를 잘 연구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적용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 중 크리스천이 40% 나 되고 정부나 각계 고위층에 기독교인이 대거 포진해 있는데, 어느 종교인을 막론하고 마땅히 쉴 권리가 있는 법정 공휴일인 주일에 아직도 각종 시험을 치고 행사에 동원하는 잘못된 관행은 속히 고쳐야 합니다.

                       

12. 찬양 목회 사역

  

   미카엘 니에미의 성장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스웨덴의 삭막하고 외딴 동네 아이가 어느 날 미국의 쌍동이 사촌들에게서 받은 비틀스의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린 순간, '화약통이 폭발해서 방을 날려'버리고, 집 전체가 무서운 속도로 빙글빙글 돌'았다고 표현할 만큼, 아이들은 음악의 마법에 걸립니다. 음악을 발견한 기쁨은 실어증에 걸렸던 아이가 록스타말고는 세상 최고의 꿈은 없다고 여깁니다. 삭막하고 불행한 아이들의 삶에 음악이 '천둥 소리'처럼 찾아든 것입니다.음악의 힘은 이처럼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한 때 청아한 목소리로 수많은 여대생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포크송 가수이자 복음성가 가수이신 윤형주 장로님의 간증 시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재미교포가 인생살이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갔습니다. 이제 속도를 최고로 높여 달리다가 낭떠러지 같은 데로 떨어져 죽으려고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얼마 전에 친구가 주면서 한번 들으라고 한 테이프가 눈에 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게 무슨 테이프인지 모르지만 한번 듣고 죽자고 생각하고 그 테이프를 틀었습니다. 거기서는 찬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곡을 듣는 가운데 그 테이프의 맨 끝에 있던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라는 찬송을 들을 때에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홍수처럼 흘러 내렸습니다. 차를 한쪽에 세워놓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삶을 찾았습니다.

 

   어느 학교 선생님은 주님을 알지 못하는 분이었는데 어느 기독교 교사 수련회에 우연히 갔다가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는 복음 성가를 들으면서 마음이 뭉클해지고 펑펑 울면서 눈물 콧물로 얼굴을 적시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학교에 돌아가서 주님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열심히 증언하고 교회까지 세우는 능력 있는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도 6.25 상이군인 출신인데 지치고 상한 영혼과 육신을 이끌고 교회 부흥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설교 시간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코를 드르렁 골며 잠만 잤습니다. 그런데 설교 후 어느 분이 앞에 나와 찬송을 부르는데 그 찬송에 감동을 받아 회개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찬양에는 이와 같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음악은 시대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가 작사한 찬송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은 1천 6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클레르보의 버나드가 가사를 지은 ‘날 구원하신 예수를’ 이란 찬송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천년 지난 오늘날까지 불려지고 있습니다. 감리교 운동은 능력 있는 존 웨슬레의  설교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레의 영감 어린 찬송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찰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감리교의 신앙운동은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찰스 웨슬레는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밭에서나, 또는 말을 타거나 거리를 걸으면서도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신앙 경험을 시로 쏟아놓을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가까운 집에 들어가 펜과 종이를 빌려 찬송시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등 수많은 찬송시를 지어 2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감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맹인 찬송시인 패니 크로스비 여사는 앞을 못 보았지만 무려 9,000여 편의 찬송시를 발표했습니다. 그가 지은 ‘인애하신 구세주여’등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찬송가입니다. 무디의 강력한 부흥 운동 뒤에는 생키라는 성가가수가 있어 감화를 끼쳤고, 빌리 그래함 옆에는 복음성가 가수 조지 베블리 쉐어가 있어서 말씀에 은혜를 더했습니다. 2백년이 지난 오늘날 대설교가 존 웨슬레의 설교는 듣기가 힘들지만 찬송시인 찰스 웨슬레가 지은 찬송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 성도들의 심금을 울리며 회개운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는 베에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편곡한 찬송도 있고 하이든의 교향곡을 편곡한 찬송곡도 있으며,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와 오페라에서 발췌한 편곡한 곡도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박재훈, 이동훈, 이유선, 김보훈씨 등의 곡에 김활란, 임옥인, 주요한, 전영택씨 등이 가사를 붙인 좋은 찬송도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육신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그들의 찬송은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서 가슴을 적셔줍니다.

 

   바하나 헨델의 명곡이나 많은 클래식 음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미국의 부흥운동 이후에 생긴 복음성가도 복음 증거에 공을 세웠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지난 날 성결교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이 많은 복음성가를 보급했으며, 오늘날 한국에서 온누리교회 의 ‘경배와 찬양’ 사역이나 예수전도단의 찬양 사역 등은 찬양의 큰 물결을 전국적으로 보급했습니다. ‘찬미예수’와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란 복음성가로 알려진 최용덕 선교사님, 그리고 소리엘, 다윗과 요나단, 송정미, 박종호, 이정림, 최미 님, 예수전도단, 옹기장이 그밖에 수많은 찬양 사역자들의 찬양 사역은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 같이 우리의 심령을 적시고 있습니다. 변규정 목사님 같은 분의 여름성경학교 찬양율동사역도 기쁨을 줍니다. 이와 같은 찬양사역은 수많은 성도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새문안교회에서는 언더우드 기념 한국교회 음악교육원을 세워 훌륭한 교수진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의 음악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음악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더 좋고 아름다운 찬양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많은 음악가와 찬양 사역자, 목회자, 신학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찬송시를 많이 지어 부흥운동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 찰스 웨슬레처럼, 신학을 알고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한 사람 중에서 시적인 감각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 있으면, 성경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어긋나지 않으며 지나치게 세속적이지 않는 곡을 가진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지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복음 전파 운동을 일으키는 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합창단이나 중창단을 조직하거나 자신이 직접 찬양을 부르며 순회 공연도 하고 음반도 만들어 보급하여, 저질의 세상 노래를 정복하고 온 누리를 찬양으로 덮는 일도 훌륭한 찬양 목회 사역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즘 노래방이 성행하고 있는데, 마음이 답답할 때 찬송가나 복음성가나 가곡, 동요 등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기독교 노래방도 많이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클래식이나 대중음악 등 찬양 사역에 뜻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에서 부를만한 성가나 찬송가, 복음성가를 작사, 작곡을 하거나 성가나 복음성가 가수가 되어 찬양을 부르고 좋은 음반도 내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일반 사회의 대중 가요계로 진출하는 크로스 오버 가수나 작곡가, 작사가가 되어 성경적인 시각의 건전한 노래를 만들어 사회를 정화시키고 건전한 사회 풍토를 만드는데 앞장을 서야 합니다. 은혜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노래는 무조건 적대시하고 마귀적이라고 단정하여,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성가보다 대중가요를 더 많이 듣는다는 80 %의 기독교인과 불신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려면 대중 음악계에도 진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밝고 건전한 대중가요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학창 시절에 소풍가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를 힘차게 불렀다고 하는 고지식한 분도 있고, 다른 목회자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불렀다고 하는데 건전한 대중가요까지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날 대중가요 가수들도 예수님을 믿고 소위 은혜를 받았다 하면 세상 노래는 청산하고 복음성가만 부르거나 신학교에 들어가는데, 이것도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는 기독교인들도 듣고 부를 만한 아름답고 건전한 노래를 많이 만들어 사회를 정화시키며 은연중에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 아름다운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왜 엄청난 숫자의 기독교인들도 수신료와 비싼 광고료를 내면서 아까운 방송시간에 저속한 내용의 가사나 귀청이 터지는 헤비메탈이나 핌프록 혹은 하드코어 음악을 부르는 가수들과 노래만 판치도록 수수방관해야 합니까?

   잘 믿는다는 찬양 사역자들이 우물안 개구리처럼 대중적인 노래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 가요계에 거의가 우울하거나 염세적이고 파괴적이며 비정상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어둠의 세력이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 문화계에서도 마귀의 세력을 단호히 몰아내고 주님께서 왕으로서 권좌에 앉게 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크리스천 작곡가와 작사가가 되어 ‘하나님’이나 ‘예수님’, ‘천국’이라는 용어가 들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세상을 감동시킬만한 성경적인 정신이 담긴 건전하고 아름다운 대중가요를 많이 만들어서 널리 보급시킬 수 있습니다. 방송이나 음반, 뮤직 비디오 등 모든 방면에서 음악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고 정복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고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망과 잃어버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빙자하여 세상 사람의  갈채를 얻고자 하는 자나, 구원의 확신이나 성령 체험도 없고 영혼구원에 대한 마음이 없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런 길로 나가기를 꿈꾸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는 십상팔구 사탄의 밥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어느 TV 방송에서 기자가 취재한 바와 같이 여성 연예인은 도덕적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아직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일이 없어지려면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계 지도자가 되어 대중문화계를 리드하여 잘못된 도덕적 풍토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정화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교회 안에 모여 앉아서 ‘할렐루야, 아멘’ 하는 사이에 온 세상이 사탄의 험악한 파도에 마구 휩쓸려 갑니다. 성경공부하고 두 손 불끈 쥐고 방송국과 신문사로 뛰어 들어 가야 합니다. 수련회에서 은혜 받고 눈물을 흘리며 대중 가요계에 헌신해야 합니다. 채플 시간에 사명 받아 힘차게 영화계로 투신해야 합니다. 기도원에서 목이 쉬도록 기도하고 경제계로,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 받고 정치계로 당당하게 들어가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13.  영화 목회 사역

               

   트래비스는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영화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로버트 존스톤이 말한 것처럼 영화는 많은 면에서 세계 공용어입니다. 어떤 영화들은 단순히 오락거리나 기분 전환용에 불과하지만, 많은 영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는 삶의 경험을 넓혀주며 삶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들을 제시합니다. 영화는 경험을 재창조하며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영화는 관객을 위해 삶의 초점을 맞추며, 영화 밖에서는 얻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신학과 문학‘ 교수인 로버트 존스톤이 지은 영화에 관한 훌륭한 책 <영화와 영성>을 보면 계관 시인 칼 샌드버그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할리우드가 만들어 낸 상품인 활동사진은 단순히 오락에 불과하며 교육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따금 만난다. 이것은 최근의 가장 잘못된 생각 가운데 하나다... 그것이 무엇이든 드라마를 통해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좋건 나쁘건 간에 모든 영화는 교육적이며, 할리우드는 세상에서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그렇다면 할리우드가 하버드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할리우드는 하버드만큼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교육적이다.

 


   닐 게이블러는  미국 문화 자체가 영화의 특성을 띠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저항하기 힘든 힘, 너무나 강해서 마침내 삶으로 전이되는 힘은 아마 틀림없이’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연예(엔터테인먼트) 라고 주장합니다. 명감독 엘리야 카잔이 말했듯이 영화는 이제 ‘인류의 언어’입니다. 로버트 존스톤은, 영화는 금세기 스토리 텔링의 주된 양식이 되었으며, 아직까지는 그 무엇도, 비디오게임이나 인터넷까지도 영화를 밀어낼 것 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다른 예술 양식처럼, 영화가 영화라는 매체의 특별한 예술적 능력으로 하나님에 관해 아는데 뿐 아니라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존스톤 자신은 대학교 1학년 때 피터 오툴이 주연한 영화 '베켓(Becket)'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기독교 사역자로 부르고 계시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목사가 되라는 소명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목사는 먼저 거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하나님이 그분의 성령님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네가 거룩할 필요는 없다. 토마스(주인공)도 거룩하지 않았다. 넌 다만 내 부름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하여 목회에 대한 소명의 확신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존스톤은 ‘여기서 영화의 힘이 발휘되었다. 영화는 계시하며 구속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관객에게 말씀하시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일에 관여하시며, 믿지 않는 자들의 지혜와 통찰력도 사용하셔서 믿는 자들에게 그분의 진리를 전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화 산업을 포함해서, 좀더 넓은 우리 문화의 작품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주시려 하실 수 있습니다.

 

   ‘쥬라기 공원’ 과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을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는 한 시대의 한 명 날까말까한 천재적인 영화감독입니다. 전 세계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심지어 일본 같은 우상 숭배 국가도 즐기는 성탄절에 일찌감치 전깃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가야 했던 어린 아이 스필버그,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이심을 부인하는 유대교 신자인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를 보기 위해 전 지구상에서 국경과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영화관으로 모여들고 있습니까? 그런 탁월한 영화계의 거성이 주님의 제자라면 스크린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얼마나 큰일을 할까 하는 생각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어떤 크리스천 영화감독은 스필버그가 헌신된 기독교인이었다면 세계 복음화를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한 바도 있습니다. 그 만큼 세계적으로 영화나 홈 비디오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오늘날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은 전세계의 영화관의 스크린과 홈 비디오와 TV 방송을 통하여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안방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흥미진진한 오락 영상물들은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전세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스크린 쿼터제 폐지 이전에 1년에 300편씩 제작되던 브라질 영화가 쿼터제 폐지 이후 1년에 불과 3편 정도만 제작되고 대부분 스크린은 할리우드 영화가 장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산업은 오늘날 전 세계의 문화, 사회, 정치, 경제에 지속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꿈 위에 세워진 환상적인 산업 일 뿐 아니라 최선의 경우에 사람들에게 회상과 여운을 남기는 등의 오락을 제공합니다. 영화 산업은 미국에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영향력 있는 자원이자 수출품입니다. 할리우드의 영화 중 일부는 단 한 편의 영화로 우리나라의 최고의 우량 대기업의 1년 순수익을 훨씬 능가하는 수익을 올린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영화의 1990년도 1년  미국 내 흥행 수입은 세계 시장을 제외하고도 5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영화관 입장객 수는 미국 내에서만 오랫동안 1년에 10억 명이라는 천문학적인 수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60억 명이라고 합니다. 영화 ‘타이타닉’ 한편 만으로 할리우드는 우리 돈으로 물경 2조원을 벌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영화관 상영이 끝나는 영화는 곧바로 홈 비디오로 제작되어 VCR을 가진 전 세계 가정마다 보급이 되어 매년 2억 여 개의 비디오 테이프가 판매되고 있으며 거기에다가 공중파 TV와 유선 TV방송이나 케이블 TV, 그리고 디지털 위성방송을 통해 전 지구에 구석구석까지 방영되고 있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 중 93%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있으며, 할리우드의 45세 이하의 감독, 배우, 극작가 중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미국이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나라이며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이지만 세계 영화계를 지배하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작품이 대부분이 기독교적인 색채가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할리우드의 영화 가운데는 ‘벤허’나 ‘십계’같은 기독교적인 명화도 있고 ‘불의 전차’나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영화는 종교적인 인물과 관심과 배경을 잘 그려준 수작들이었으며 상업적으로나 영화 비평적인 입장에서 상당히 성공했다는 평을 얻었고, 오스카 작품상과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고 관객들도 신앙에 영화에 나타난 신앙에 대한 존경과 확신에 아주 좋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영화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영화 중 아주 극소수입니다.

 

   ‘벤허’나 전도영화 ‘예수’나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를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을 구주로 모셨습니까?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잃어버린 스크린을 주님의 능력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없는 허무한 세상에 주님 안의 영원한 소망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성경과 신학을 잘 모르는 교인들보다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을 깊이 알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헌신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스필버그와 같은 탁월한 영화제작자나 영화감독이나 스타도 나와야 합니다.

 

   근래에는 애니메이션이 전세계의 어린이들과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 사이에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는 흔히 만화영화라고 하는 ‘셀 애니매이션’과 인형과 배경 등을 여러 가지 소재로 만들어 촬영하는 ‘인형 애니메이션’과 ‘종이 애니메이션’ 그리고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대부분 근본 바탕이 일본 고유의 사상인 신도이즘이 뿌리 깊게 담겨 있는 일본 작품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명탐정 코난’ 등의 만화 영화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디즈니와 일본은 탁월한 솜씨로 애니메이션을 아주 재미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탁월한 스토리 메이킹과 캐릭터 창조력으로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령 공주'는 일본에서 'E.T'를 제치고 일본 관객 1,250만 명을 동원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원령 공주'를 능가한 애니메이션이 '신세기 에반겔리온'인데 TV 방영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으나 방영이 끝난 후 비디오를 통해서 인기가 높아졌고, 전 매스컴이 놀란 것은 최대 400억엔(4,000억 원)에 이르는 관련 상품의 시장 규모였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비디오 시장은 2조원 상당이라고 합니다. 월트 디즈니사가 5,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만든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은 극장에서 7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이어서 나온 비디오테이프만도 미국에서 3천만 개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애니메이션의 멋진 캐릭터는 곧 상품이 되어 자동차 1,000만대 수출보다 더 큰 수익을 만들어 냅니다.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을 깨달은 우리나라도 이제 그 방면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경기도 하남시에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가 생겨서 성적이 아주 우수하고 재능이 있는 학생을 뽑아 애니메이션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일본의 신도사상이나 혹은 불교사상이 담긴 애니메이션을 자주 접한 경우 신도적 다신론 세계관이나 불교적 윤회사상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다신론과 범신론 등 종교다원주의적 사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디에도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사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독교적 세계관이 담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 이야기만이 아니라 성경적인 세계관이 담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불신자들을 위하여 '나니아 연대기-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처럼 재미있고도 확실한 기독교적 세계관이 담긴 애니메이션이 많이 만들어져서 혼탁한 세상을 맑게 하고 모든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기독교적 정신을 담은 훌륭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나 감독도 나와야 합니다.

 

   한국 영화도 '서편제'나 '쉬리' 혹은 ‘공동경비구역 JSA'나 근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그리고 ‘왕의 남자’등을 보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집으로’ 처럼 한국 영화도 얼마든지 잘 만들거나 성공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홍콩과 대만 등에서는 필자의 청소년 시절 영웅이었던 쿵후 스타 이소룡 이래 성룡과 주윤발 같은 홍콩의 영화배우 그리고 오우삼, 리안 감독 같은 이들은 할리우드로 진출하여 활약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비해 영화 역사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중국은 첸 카이커나 장이모 같은 뛰어난 감독들이 등장해서 중국 영화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미국 루터교회의 월간지 <루터란>이 가장 영적인 영화 5편 중 하나로 선정하고 미국 가톨릭협의회가 올해의 최고의 영화로 선정한  2001년도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주윤발 주연의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을 연출한 리 안(李安)감독 등 영화사 백년에 걸쳐 뚜렷한 자취를 새기고 있는 감독들이 존재합니다. 결국 리안 감독은 2006년도에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오즈 야스시로, 구로자와 아키라, 대만의 후 샤오시엔 감독 등이 유명하고, 우리나라에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칸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탁월한 재능과 철학을 가진 감독들과 감독 후보생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근래에 어느 목사님이 학생 시절부터 꿈꿔오던 영화계에 진출하셔서 영화 제작과 감독을 하여 영화를 만드셨습니다. 물론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영혼을 사랑하는 헌신된 사람들 가운데 한국 영화계는 물론 세계 영화계에 우리 영화의 우수성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엄청난 위력을 가진 영화 산업을 통하여, 구름같이 몰려오는 영혼들을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원대한 사명이 우리의 어깨 에 달려 있습니다.

 

   한 마리 한 마리의 물고기를 낚시로 낚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그물로 냇가에서 물고기를 신나게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산더미 같은 원양어선에서 거대한 그물로 한꺼번에 많이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 전도를 낚시나 소총에 비유하고 대중 전도를 작은 그물로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나 작은 대포에 비유한다면 영화나 홈 비디오 산업을 거대한 원양어선이나 원자폭탄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원대한 일을 성령충만하고 사명감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해야 합니다.

 

   일부 근본주의 교단의 목회자들이나 대학생선교단체에서는 영화는 마귀적이니 무조건 보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우리가 영화나 비디오를 보지 않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오히려 스크린을 주도하여 감동과 복음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신학을 잘 모르는 평신도도 좋지만 성경을 깊이 알며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신앙이 깊은 분들 가운데서 스티븐 스필버그를 능가하는 영화제작자나 영화감독 그리고 영화 배우가 나와야 합니다.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 프란시스 쉐퍼 목사의 아들 프랭키 쉐퍼가 영화감독으로 헐리우드에 도전하는 영화감독이 되어 25편 이상 되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만들어서 아버지가 평생동안 만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영화를 통해 만나고 있습니다. 케노시스 영상문화 연구소의 정혁현 목사님부부는 영화 평론 등 기독교 영화 운동을 하면서 좋은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조코재미 프로덕션에서도 크리스천 청소년들이 볼만한 좋은 비디오를 제작하고 있는데 앞으로 영화 산업으로 해외 진출까지 계획하는 비전이 있다고 합니다. 광주중앙교회의 변한규 목사님의 아들로서 고려대를 나와 영화진흥공사의 영화아카데미를 마치고 프랑스에 가서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페미스(FEMIS) 영화학교와 파리 8대학 영화과 석사 과정을 졸업한 젊은 영화감독 변 혁씨는 절대로 주일에는 영화를 찍지 않는 정직하고 성실한 크리스천 영화감독이라고 합니다.

   성령충만을 체험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파워 크리스천 가운데 영화 부문에 재능이 있고 영화 제작과 감독 분야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분이 있어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런 일을 능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원이나 대학에서 영화수업을 받는 길도 많으며, 뜻이 있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에 가서 본격적인 연구를 하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방대한 영화 산업이나 홈 비디오 산업을 <파워 크리스천>인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정복하여 주님의 왕 되심을 선포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구름 같은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스필버그처럼 영화를 잘 만들어 전 세계 영화계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정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영화 감독이나 제작자 중에는 독실한 기독 신자가 여러 명 있다고 하는데, 크리스천 영화 제작자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등이 더욱 많아져서 대중 문화계를 선도하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명심할 것은 영화감독이나 제작진 가운데 대다수는 수입이 불안정하고 한번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하면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선다고 합니다. 잘못하면 오랜 세월 빚 갚다가 인생 다 보냅니다. 일부 특별한 영화감독들 외에는 감독들이 고정 수입이 없어서 경제적인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어 대다수의 감독 부인들이 옷가게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척교회 목회자의 사모님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경제적인 윤택함을 바라보고 영화계에 뛰어든다면 실망합니다. 개척교회 목회자 이상의 사명감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하고자 하면 물질적인 고난을 비롯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개척 선교사적인 강한 사명감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직업이 소명임을 안다면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얼마든지 대중 문화의 제작자나 감독이나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 여자 연예인의 잘못된 비디오나 마약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여자들은 이 방면으로 진출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곳곳에 도사리고있는 마수에 걸리면 몸도 망치고 인생도 파멸합니다. 전에는 나라의 권력자들이 TV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 가수나 탤런트가 있으면 눈짓만 하면 부하들이 달려가서 납치(?)해 와서 즐긴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일부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 사회에 항상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일찍이 대중 문화계로 진출하여 연륜을 쌓은 신실한 선배 기독 여성들의 신중한 조언을 받은 후 진출해야 할 것입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영화 산업에 진출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시키고 더 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화 예술인들은 오로지 박수갈채와 돈 욕심 때문에 그런 직업을 선택합니다. 그러다가 인기의 허무를 느끼고 극단적인 경우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에이즈 같은 불치의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습니다. 저 유명한 할리우드의 마릴린 몬로나 제임스 딘 그리고 장국영 그리고 이은주와 유니 그리고 정다빈 같은 스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 때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여러 명의 가수가 스스로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여 목숨을 끊자 그 뒤를 이어 그들을 흠모하던 여학생들이 뒤따라 자살하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도 있습니다. 참 신앙 없는 박수갈채의 종말은 허무와 절망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스타가 된 사람이나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연예인을 비방하는 악플을 많이 다는 안티 네티즌의 글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비판을 듣고 고칠 점은 고쳐야 하겠지만, 고칠 수 없는 것은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속담을 믿고 자기를 좋아하는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서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악플러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걸 가지고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싹 지워버리고, 나와서 호수공원 한 바퀴 돌거나 가까운 산에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큰소리로 찬양을 부르든지,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속상하면 오산리기도원 기도굴에 들어가서 주님 앞에 몇 시간이고 실컷 울기 바랍니다. 기도굴에서 실컷 울고 나올 나오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니 몸과 영혼이 새처럼 가벼워 질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100% 나를 좋아할 수 없습니다. 절반의 인기만 얻어도 많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욕을 얻어먹는 분이 대통령입니다. 심지어는 대통령에게 '두꺼비'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 안스러워 보입니다. 원래 높은 산 일수록 바람이 셉니다. 인기를 얻으려면 그만큼 거센 역풍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형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성형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눈이 나빠 안경을 끼는 것이나 암에 걸려 수술하는 것이나 이가 빠져 이를 새로 해 넣는 것이나 남자가 수염이 날마다 자라서 날마다 깍는 것이나 여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과, 코가 낮아 좀 세우는 것이나 쌍거풀이 없어 쌍거풀 만드는 것이나 네모진 턱을 조금 깍고 앞으로 좀 나온 입을 수술하여 약간 들어가게 하는 것이 다를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형수술 할 때는 정말 수술 경험이 많고 유능한 전문의에게 가기 바랍니다. 2007년 3월 13일 20대 젊은 여성이 쌍꺼풀 수술을 받은 직후 숨진 사실도 있습니다. 수면 마취주사를 맞고 쌍꺼풀 수술을 받은 후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환자에게 진통제와 항생제 주사를 놓자 환자가 새파랗게 질리면서 의식을 잃고 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수면마취가 너무 깊게 된 경우에도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형수술을 너무 자주하는 경우나 다이어트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 '셀프 이미지'의 왜곡이라는 정신과 의사들의 설명도 있습니다. 자신이 모든 면에서 정상인데도 자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경우에 과도하게 성형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미지가 심하게 왜곡되면 불안 장애 등 정신 이상에 시달리거나 몸에도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해도 만족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런 정도가 되면 용기를 내어 신경과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귀하게 창조하신 걸작 중에 걸작이라는 셀프 이미지를 갖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기도하면서 신중하게 성형에 임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스크린을 통하여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잃어버린 영혼, 상하고 지친 절망적인 영혼들에게 영화나 애니메이션, 홈 비디오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성령 충만한 사람이 영화감독이나 제작자가 된다면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웰컴투 동막골’ 그리고 ‘왕의 남자’ 등의 영화가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민중 운동권 출신이 많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 제자훈련에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군대의 특공대로서,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하지 않는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용사로서 벌떼처럼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위대한 대중 문화 도구를 가지고 온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 거대한 영화나 홈 비디오 산업을 통하여 지구상의 잃어버린 수십 억 명의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구름 같이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큰 월드 비전이 있는 목회자나 신학도는 이런 일에 눈을 뜨고 헌신해야 합니다.이 놀랍고 엄청난 사역에 생명 바쳐 헌신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구름처럼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14. 테이프 목회 사역

   

   미국에서 가장 성경적인 설교가 중 한 분인 존 맥아더 목사님이 시무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는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감명을 받아, 오직 좋은 교회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는 목적 하나로, 동쪽 끝인 플로리다에서 서쪽 끝인 캘리포니아로 직장도 옮기고 이사를 하는 가정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설교 테이프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오직 설교 테이프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교회를 결정한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나 하용조 목사님 등의 설교 테이프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교포사회에 까지 무수하게 배포되어 그분들의 설교나 세미나 테이프가 없는 가정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은 목사님의 주일 설교 테이프를 구입하여 매일 밤마다 자기 전에 잠자리에서 들으면서 주무신다고 합니다. 요즘은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가 시골 구석구석은 물론 선교사를 통해 오대양 육대주에 전해집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가 어느 성도 가정의 카세트에서 돌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맹인들을 위해서는 녹음테이프 사역이 필수적입니다. 한국 교회의 설교 테이프가 지구촌 방방곡곡에 퍼져나갑니다.

 

   목회를 하지 않는 무임 목회자라도 자신이 집에서 녹음하여 음반사에 가서 테이프를 대량으로 복사하든지, 테이프 복사기를 구입하여 집에서 녹음해서 복사하여 전도용으로 배부한다면 그것이 바로 전도 목회요, 영혼 구원을 위한 훌륭한 전도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집사님은 자발적으로 녹음기기를 사놓고 자기가 섬기는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매주 녹음하여 보급하는데, 녹음하면서 계속 설교를 들으면서 너무나 은혜를 받아 그 사역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봐 걱정까지 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유명한 황수관 박사나 원종수 박사, 박효진 장로님이나 이름 모를 중국의 오지에 있는 한센 촌에서 선교하시는 김요석 목사님, 주안교회의 전도왕 김종렬 권사님이나 과천교회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집사님 등의 간증 오디오 비디오테이프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고 있으며, 코미디계의 대부 김경태 장로님의 간증은 그분이 천국에 가셨는데도 음성은 살아서 계속 전도하고 있어 화제입니다. 전도지도 유용한 전도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전도지는 수명이 짧습니다. 카세트테이프는 전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오랫동안 전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요즘은 CD로도 녹음 및 영상녹화를 할 수 있어 참으로 좋아졌습니다.

 

   선교에 있어서도 음반 선교는 필수적입니다. 전 세계 24억 명에 달하는 미전도 종족의 90% 이상이 글을 모르는 문맹자라는 점을 감안하여 현지어로 녹음된 복음을 전하는 ‘복음 음반 선교회’의 사역은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 번역 선교회’가 문맹인들을 위해 성경을 번역하는 문서선교 사역을 한다면 ‘복음 음반 선교회’는 귀로 듣게 하는 음반 선교 사역을 하는 셈입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개국 이상에 지부를 두고 있는 ‘복음 음반 선교회’는 지난 50년간 전 세계 8천 개 종족 언어 중 약 5천 개 언어에 복음을 담아 녹음했습니다.‘한국 복음 음반 선교회’는 최근 전기나 건전지가 없어도 소리가 나는 음성 재생기 ‘조이토크’를 개발해 선교사가 들어 갈 수 없는 접근제한지역에서 부족민이 자생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 실은 음반을 보급할 계획입니다. AD농어촌방송선교회 같은 데서도 국내 농어촌교회에 무료로 강의나 간증테이프 등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모든 문명의 이기는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온갖 저속한 영화나 비다오 비디오가 하나님께서 주신 첨단 기술의 산물을 통하여 사람들을 타락시키는데, 그 흙탕물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비디오나 CD나 DVD를 통하여 설교를 녹화하여 전도용으로 배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늘날 이단과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까지 이 사실을 깨닫고, 많은 돈을 투자해서 자신들의 집회 광경을 녹화하여 전국의 가정마다 대량으로 살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1978년 이래로 카세트 녹음테이프를 무려 6,500만개 이상을 배포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최근 2년 안에 100만 개가 넘는 비디오테이프를 발행하여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이며 복음적인 교회의 목회자들도 첨단 기술의 도구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용 비디오 설교 테이프를 만들어 여러분이 사는 도시의 집집마다 배포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이 큰 교회에 있든지 작은 교회에 있든지, 도시에 있든지 시골에 있든지, 설교를 유창하게 하든지 좀 구변이 없든지 상관치 말고, 중요한 것은 말씀의 내용이므로, 물질이 조금이라도 허락 되는대로 여러분의 설교를 조금씩이라도 정성껏 녹화하여, 여러분이 거주하는 도시나 마을 전체의 불신자의 가정을 대상으로 계속적으로 배부하는 것은 전도에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의 가정마다 세속적인 오디오나 비디오테이프를 압도하는 여러 목사님의 CD와 DVD와 비디오들이 들어가서, 그들이 계속 말씀을 보고 듣는다면 그 도시는 복음의 물결로 덮이게 되고 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온 도시가 주님의 말씀의 소나기에 젖게 해야 합니다. 불신자를 교회로 억지로 오라고 하기는 힘들어도 예배 실황이나 설교를 담은 오디오나 비디오테이프를 선물로 주면 한번쯤은 들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테이프가 점점 많아질수록 세속적인 오디오나 비디오테이프는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혹시 사정상 목회를 하지 않고 계시는 목사님이라도 경제가 허락되면 오디오 테이프 녹음 복사기나 캠코더를 구입하여 집에서라도 작은 설교단을 구입해서, 설교를 잘 준비해서 녹화하여 여러분이 사시는 마을이나 도시 전체에 널리 배포한다면 시무 하는 교회가 없더라도 그 설교를 보고 듣는 불신자를 위한 ‘대중 목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오디오나 비디오가 흘러 흘러가서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 동포를 통해서 온 세계에 전달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가 될지 누가 압니까?                

                  

15.  컴퓨터 목회 사역

 

   컴퓨터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것 중 최첨단의 문명의 산물일 것입니다. 컴퓨터는 과학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인류의 일상생활을 한없이 편리하게 합니다. 이제 인류는 컴퓨터의 도움이 없이는 불편해서 살지 못할 정도입니다. 전 세계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인 인터넷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는 거의 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있어서 정보화 사회에서는 아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중문화매체와 마찬가지로 사탄은 이렇게 범세계적인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정복하여 전 인류의 영혼을 죄악과 파멸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는 무수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전 세계에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음란의 물결을 막기에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합니다. 미국 국립조사위원회(NRC)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 포르노 산업 규모가 오는 2007년까지 50억-7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워싱턴주(州) 시애틀 소재 웹 필터링 업체인 N2H2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 지난 6년간 포르노 웹 페이지 수가 급증해 현재 130여만 사이트가 운영중이며 성적 컨텐츠를 담은 웹 페이지는 2억 6천여 만 페이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만든 귀한 도구인 컴퓨터를 사탄이 점령하려고 하는데 기독교인이 수수방관만 하고 있어야 합니까?  미국의 컴퓨터 회사인 애플사의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멀티 미디어라는 거대한 싸움 속에서 구경꾼은 살아남을 수 없다. 문화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는 자들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문화 전쟁’이라는 의미는 세속적인 의미이겠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문화전쟁은 ‘영적인 문화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영적인 문화 전쟁 속에서 팔짱만 끼고 있다가는 수많은 영혼을 원수인 사탄에게 다 빼앗겨버립니다. 영적 지도자인 신학도와 목회자들이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문화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고 멀티미디어를 정복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이런 일을 자행하는 마귀의 군사들과 싸워서 승전가를 불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인터넷, 컴퓨터 게임 등 모든 컴퓨터 분야를, 주님과 영혼을 사랑하는 영적 군사들이 마귀의 요새를 분쇄하고 장악해야 합니다.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컴퓨터 자체를 마귀의 도구로 666이라고 주장하고 뒤에서 비난만 하고 컴퓨터를 멀리하라고 주장하는데, 그 사이에 마귀는 인류를 파멸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북한의 군사력이 우리보다 몇 배가 강하고 고성능의 미사일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나라 내부의 무서운 적인 도덕적인 타락과 부패입니다. 거대한 로마 제국이 멸망한 원인도 다른 민족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로마제국은 음란하고 퇴폐적인 생활로 정신이 해이해졌기 때문에 밖에서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국민의 정신 상태는 어떠합니까? 수많은 불건전한 술집과 성인 오락실 등 유흥업소 업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밤새도록 게임하고 저속한 사이트에 이리 저리 방황하고 있는 순간에, 저 북한의 젊은이들은 남한을 무력으로 해방시킨다고 이를 악물고 무시무시한 특수 군사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젊은이들로부터 악한 세력을 차단시켜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하여 저질 문화를 내보내는 인터넷의 사이트를, 국내에서라도 원천봉쇄 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 크리스천 컴퓨터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아랍권 이슬람교도들은 대통령이 성경에 손 얹고 선서하는 나라인 미국과 기독교를 동일시하고, 미국 등 서구에서 전 세계로 홍수처럼 내보내는 퇴폐 문화로 인하여 기독교와 기독교 국가를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매도합니다. 퇴폐적인 문화가 대부분이 미국이나 서부 유럽 등 과거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세워진 서방 제국에서 흘러나가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이를 이유로 기독교 전체를 타락한 종교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일부 아시아 정부들은 이런 음란물의 자국 유입을 막기 위해 반 음란물법 제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보수적인 회교국가들은 인터넷 접속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심지어 관대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역시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다보면 바레인 같은 이슬람 국가의 국제공항에서는 절대로 저속한 잡지 등을 자기 나라로 반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저속한 사이트를 막는다고 합니다. 그런 것은 우리도 배워야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1천만 명이 넘는다는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저속한 문화가 넘쳐흐르고 있으니 기독교인의 수가 무색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손자병법의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만 ‘할렐루야 아멘’ 하고 팔짱을 끼고 있을 때, 흉악한 마귀의 세력들은 인류를 죄악으로 끌고 가려고 눈이 충혈 되도록 컴퓨터를 연구해서 장악하고 있습니다. 한국컴퓨터선교회나 세계인터넷선교회 같은 데서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인터넷 선교사 교육 등 멀티미디어 선교에 큰 공헌을 하고 있으며, 규장에서는 크리스천을 위한 사이버공간인 갓피플닷컴 (Godpeople. com)을 통하여 종합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국내 여러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인터넷 방송국이나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컴퓨터를 통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 단체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통하여 선교에 앞장서리라고 믿습니다. 비단 이런 단체나 교회 분 아니라 목회자 자신들이 컴퓨터 선교를 위해서 인터넷에 좋은 홈페이지를 많이 개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 자체가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가만히 앉아서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복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님을 알기 원하며 예수님의 사랑의 소식을 듣기를 원하지만, 인터넷을 통하여 대할 수 있는 홈페이지가 없거나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면 그만큼 많은 영혼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 전도를 위하여 정성 들여 준비한 복음의 메시지를 인터넷상에 올린다면 전도의 좋은 도구가 될 것입니다.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자신이나 다른 분들의 감동적인 설교나 칼럼, 상담, 수필, 간증, 시 등과 아름다운 영상을 올린다면 전세계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조용한 시골교회 목회자 가운데서도 컴퓨터에 능숙한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농어촌 목회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컴퓨터를 부지런히 익혀서, 인터넷으로 선교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그의 교회는 시골에 있으나 컴퓨터를 통해서 그가 전하는 구원의 소식이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전달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는 시골의 적은 수가 아니라, 많은 영혼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목회자요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1997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신도 39명의 동반자살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미국의 이단인 ‘천국의 문’의 교주 애플화이트와 그 집단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일찍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교리를 전파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모 이단종파에서는 인터넷 홈페이지와 카페나 블로그를 통하여 엄청난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통 교회의 신학도와 목회자들은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그들보다 더 부지런히 컴퓨터 선교를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세계 선교를 하는 교회가 많은데, 온누리교회와 사랑의교회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 등이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세계 선교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오락시장 규모가 37조원을 넘어서는 엄청난 시장인데 그 가운데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은 7000억 엔(7조원)이고 미국도 70억 달러(8조 4천억 원)에 이릅니다. 이는 영화 시장의 10배에 이르는 것입니다. 전 세계 전자오락 소프트웨어의 90%가 일본제입니다. 폭력과 살인과 엽기가 난무하는 컴퓨터 게임 세계에,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창의력을 가진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전자 게임 산업도 진출해야 합니다. 험한 세상에서 폭력과 음란으로 상하고 지친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밝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을 제공하여 바르게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음란물의 해악에 관해서 라이언 호슬리와 스티브 워터스가 쓴 <웹 포르노, 과연 뒤탈도 없고 만족스러운 것인가?>라는 기사를 <목회와 신학>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온라인 음란물은 용이한 접근성, 익명성, 구입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 문에, 성인 용품 매장에 들어가는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전해 보이고,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온라인상으로  성(性)을 훔쳐보는 것이 정말 아무런 위험도 없고 실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

  온라인에서 성을 찾아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역시 덜미를 붙잡히고, 남에게 사기 대상이 되고, 또 거기 중독 되어 피해를 보거나 법망에 걸릴 수도 있다. 설사 이 모든 함정들을 피해 간다고 해도, 정작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글의 독자들이, 온라인에서 성을 훔쳐보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과 함께,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얻지 못하고 실망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 덜미를 잡힐 수도 있다 ]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보는 것보다 더 은밀한 일이 어디 있을까? 직접 걸어서 우중충한 골목 한 구석에 있는 매춘가를 찾는 것에 비교하면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기술이 정반대로 그 족적을 남기게 만든다.

   웹상에서 여기 저기 정보를 찾아다니는 것을 소위 웹 바다에서 파도 타기(surfing the Web)라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비유를 찾자면, 웹 바닷가에서 거닐기(walking on the beach)일 것이다. 넷스케이프, 익스플로러, AOL(America on Line) 등 모든 웹 브라우저들에는 캐쉬(cache)라는 것이 있어서 인터넷상에서 접속한 모든 문서나 화면, 혹은 파일까지도 그 사본을 남겨둔다. 다음 접속 시에 화면을 빨리 띄우게 하기 위한 장치다. 설사 이런 캐쉬 파일을 지운다 해도, 복구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 족적을 추적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인터넷 서버(Internet Service Provider)를 통한 것이다. 어떤 문서나 그림을 보았는지는 전부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인터넷 서버들 중 대략 2/3이상이 캐쉬 파일과 동일한 내용을 보관해둔다. 때로는 이런 파일들이 이혼 소송의 증빙 자료로 제출되기도 한다.

  포르노 회사들의 행태는 마치 맹독을 품은 남아메리카 열대 산 독거미와 같다. 인터넷 공간에 거미줄(Web)을 둥둥 띄워놓고 세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다린다. 그러다가 누구라도 거미줄을 건드리기만 하면 번개같이 달려가서 접속자의 컴퓨터에 쿠키(cookie)를 심어놓고 또 사용자의 행방을 추적한다. 더 심한 것은 패스워드를 받아주는 대신 이름과 이 메일 주소를 달라고 하는 수법이다. 일단 이름과 이 메일 주소를 받아내고 나면, 접속자의 신상을 낱낱이 파악하게 되고, 그 후에는 달갑지 않은 메시지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 사용자가 완전히 떨쳐내든지, 아니면 그 독에 쓰러지든지 둘 중에 하나다. (이런 걸 다 알고 났으니, 이제 완전범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며 낭패를 볼 것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 보라) 


  [ 돈을 뜯기기도 한다 ]

 

  남에게 돈을 뜯길 수도 있다. 최근에 한 온라인 포르노 회사는 사기와 타인 신용 남용 혐의로 뉴스를 탔다. 그 때 한 포르노 사이트의 운영자는 솔직히 이런 고백을 했다.

  '포르노는 이런 식이죠. 우리 여자들이 남자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착취하는 겁니다. 신용카드를 내미는 건 당신네 남자들이잖아요. 여자인 저는 절대 피해자가 아닙니다. 남자들을 착취하고 있는 거죠.'

   <남성 건강>(Men's Health)이라는 잡지에서 글을 쓰고 있는 그렉 (Greg Gutfeld)은, 부당한 카드 사용 대금 요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피를 무릅쓰고) 따지려 들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나와 얘기를 나눴던 한 남자는 무료로 1주짜리 맛보기 이용권에 사인을 했고,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줬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들이 제게 접속 코드를 보내줬는데, 다섯 글자 짜리더  라구요. 일곱 자리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래서 여러 번 이메일을 보내서 취소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답신을 안 주더군요. 그리고는 한꺼번에 3달치 회원권을 끊은 것으로 해서 카드회사에 대금을 청구했더라고요. 이런 일로 신용카드 회사에 전화를 한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어쩔 수 없이 부끄럼을 무릅쓰고 전화를 했지요. 이런 사기를 당하는 피해자들 상당수가 따지기보다는 그냥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지불하고 만다.

 

   성인용 웹사이트는 신용카드 사기는 물론, 보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접속자의 돈을 뜯어간다. 최근에 AT&T 회사는 소비자들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이유인즉 일부 소비자들이 멋도 모르고 아무 사이트에나 접속했다가는 국제 장거리 전화 요금을 물게 된다는 것이다.워싱턴포스트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들이 멋모르고 무료라는 말만 믿고 X등급의 웹사이트에 접속하거나, 스팸 메일에 있는 따끈따끈한 주소를 클릭 했다가는 법망을 피한 고지서를 받기 십상이다.아주 작게 써있는 단서 조항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가까운 지역에 있는 인터넷 서버로 연결되었던 접속이 끊어지고, 순식간에 국제 장거리 전화를 통해 다른 나라에 있는 인터넷 서버로 연결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글은 잠이 확 깨는 충고를 한다.

   'AT&T 회사의 권고를 따르자면, 절대로 성인 웹사이트에 접속하지     않는 방법 외에는, 다른 안전장치란 절대 없다.'

   

   [ 잘 피해봐야 중독! ]

   

   실수로 덜미가 잡히는 일도 없고, 심지어는 억울하게 돈을 뜯기지도 않고 성공적(?)으로 서핑을 즐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중독의 지름길이다. 그렉의 말에 따르면, 기혼 전문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온라인 포르노에 유혹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전에 한번도 포르노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없던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성적인 충동의 노예라고 느끼지도 않지요. 아직까지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호기심이 지나쳐서 강박증으로 갑니다. 실제로 사이버섹스를 그렇게 좋아할 의도가 없는데도, 자신들도 모르게 그만 좋아지고 마는 겁니다. 갈수록 그 요구가 늘고, 갈수록 시시해지고, 그렇게 되면 더욱 더 심한 것을 찾게 됩니다.

   인터넷 포르노는 사람들을 성중독에 빠뜨리는 데 있어서 히로뽕 같은 존재로 벌써 그 악명을 인정받은 상태다. 얼마나 빨리 약효가 먹혀들고 그 강도가 즉각적인지 모릅니다. LA의 성 회복 연구소(Sexual Recovery Institute)에 있는 로버트 박사(Dr. Robert Weiss)의 말이다. 내담자들이 모두 한결 같이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가도, 딱 한번 맛보고는 그만 걸려든 경우입니다. 이처럼 오랜만에 느낀 성 자극 효과는 재차 포르노를 볼 때 다시 촉진되고 강화된다. 그리고 접속자는 ??중증?? 환자처럼 또 다른 충동을 찾아 몸이 닳는다. 그 결과 중독과 강화의 패턴이 형성된다. 란제리나 비키니 차림 정도의 야한 사진은 이내 신물이 나고, 곧 완전한 나체 사진을 찾는다. 그것도 하다 지치면 더 심한 장면을 찾게 된다. 유타 대학의 빅터 박사(Dr. Victor Cline)는 이런 강화 과정을 연구한 뒤 다음과 같은 네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1) 중독(Addiction) : 계속해서 포르노를 찾는다. 그게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고, 완전히 걸려들어서 벗어나지 못한다.

   (2) 강화(Escalation) : 좀더 진한 포르노를 찾기 시작한다. 전에 는 역겹기만 했던 장면들이 이제는 너무나 좋게 보인다.

   (3) 마비(Desensitization) : 점차로 보는 것에 무감각해지기 시 작한다. 가장 진한 걸 봐도 시큰둥해진다. 다시 한번 그 짜릿한 느낌을 맛보려고 하지만, 그런 걸 찾을 수가 없게 된다.

   (4) 실행(Acting out sexually) : 돌아올 수 없는 다리는 넘고 만다. 전에 보았던 장면, 그리고 상상 속에서 연습했던 장면들을 실행으로 옮긴다.

   스탠포드나 듀퀀스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20만 명의 미국     인들이 가망 없는 인터넷 포르노 중독자들이라고 한다.

 


   [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만다 ]

   

   존스톤이란 사람은 애당초 포르노에 관심이 없었지만, 우연히 AOL  대화방에서 성행위 포즈를 취한 아이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이 우연한 발견 때문에, 두 아이들의 아버지인 35살 난 이 남자는 그만 은밀한 습관에 빠져들고, 결국 감옥에 가게 되었다.

   존스톤은 아동 포르노를 소지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1996년에 미국에서는 새로운 법이 제정되어, 아동 포르노나 추잡한 사진을 게시하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 동시에 아동과 성행위를 하려는 목적으로 그런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 역시 불법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법 제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존스톤은, 1997년 초에 열린 법정에서 말하기를 대중 매체를 통해 인터넷 포르노에 관한 법률을 되도록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달라고 했다.

   웹 포르노를 찾다가 법정에 선 게 찰스 존스톤만이 아니다. 사업가, 교사, 코치, 사회 지도자들까지 인터넷에서 아동 포르노를 내려 받거나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를 기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 결과는 실망이다! ]


   온라인에서 섹스를 찾는 사람들 중 다수가 덜미를 잡히거나, 중독   

이 되고, 남에게 뜯기기도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새로이 제정된 법망에 걸려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위험한 짓을 끊으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위험한 결과들을 피하려고만 애쓴다. 그러나 결코 피할 수 없는 결과는 실망이다. 헌신된 결혼 생활의 범위 밖에서 성적인 충족을 얻으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망뿐인 것이다.

 


   포커스 온 더 패밀리와 조그비 국제 연구소(Zogby  International sruvey)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1/5이 성적으로 노골적인 웹사이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그 중에 2/3가 그런 행위를 통해서 성적인 만족을 찾기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결국 인터넷은 성적인 갈구만 불러일으킬 뿐, 성적인 친밀감은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포르노를 통해 만족을 얻으려고 해봐야 번번이 실패할 뿐이다. 탐색을 시도한 사람들은 교묘하게 그 영향을 받는다.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브룩스 박사(Dr. Gary Brooks)는 이런 경향을 「자기 중심 병」(Centerfold Syndrome)이라는 책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여성들의 진정한 가치를 외면하고, 오로지 성욕 해소의 상대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영향은 결혼 생활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렉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한 몇 주정도 인터넷 포르노를 접하고 나면,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해도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이건 상식이에요.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감정적인 자극이 뇌에서 에피네프린 분비를 촉진시키고, 에피네프린은 화학적인 작용을 통해 그 그림들을 기억 속에 영구적으로 새겨 넣습니다. 웹 포르노에 나오는 사진들은, 그야말로 디지털 기술로 잘 꾸미고 다듬어서 내놓은 것들입니다. 그런 여인들의 사진들을 한 번 보고 나면, 성인 시절 내내 그 기억이 따라 다니고, 하필이면 꼭 그런 순간마다 그 그림들이 툭툭 튀어 나오는 겁니다.

   최근 뉴욕 타임즈에는 서른 넷 된 여인의 이야기가 실렸다. 남편이 온라인 포르노에 빠졌던 것이다. "제가 어떻게 그 잘 빠진 여자들하고 경쟁이 되겠어요? 우리 잠자리에, 남편 머리 속에 그런 여자들이 수백 명도 더 되게 우글거리고 있는데요. 전에는 우리 단 둘뿐이었는데, 이젠 셀 수도 없는, 얼굴도 모르는 여자들이 북적거려요."

   단지 그런 이미지들만 부부 관계를 위협하는 게 아니다. 결국에는 온라인에서 보았던 실험들이 실재 정사(情事)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댄(Dan Garrett)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사설 탐정 일을 하고 있는데, 그에게 들어오는 사건들이 계속 온라인 정사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대부분 결혼한 지 15년 혹은 그 이상 되는 부부들이  많았다. 댄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결혼 생활에 싫증이 나고 관심도 없어집니다. 컴퓨터를 사죠. 그리고 처음에는 혼자 즐기는 게임이나 하다가, 나중에는 대화방으로 갑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도 아시죠. 근사한 여관에서 엉뚱한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멋진 연인감이 될 수 있다. 화면에 비치는 사람은 오로지 좋은 면만 지닌 것처럼 보인다. 마치 가면무도회에서 얼굴을 가린 것처럼, 인터넷은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을 변장시켜준다. 호기심과 환상을 불러일으켜서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현실 세상 속의 관계를 뒤하고 어디론가 떠나게 만든다.

 

[배우자뿐 아니라 자녀까지,가족 전체가 피해를 본다 ]


   포르노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고백하는 바에 의하면, 어렸을 때 자기 아버지나 혹은 친구가 몰래 감춰놓고 보던 잡지들을 찾아내서 본 것이 맨 처음 포르노에 접하게 된 동기라고 한다. 이렇게 일찌감치 포르노를 접한 남성들은 성 중독의 지름길에 오른 셈이다. 더욱이 아이들은 매우 민감하다. 남자아이들의 제일 가는 역할 모델은 아버지다. 아버지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게 마련이고, 아버지가 보는 방식대로 여자들을 보게 된다. 반대로 여자아이들은 자존감 혹은 자신의 가치를 아버지의 사랑에서 찾는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렇고 그런 사람이면, 딸들은 자신의 가치를 아버지의 사랑에서 찾는 게 아니라 육체적인 것에서 자기 가치를 찾게 되는 것이다.

   <성중독과 충동>(Sexual Addiction and Compulsivity)이라는 잡     지의 부편집장인 슈나이더 박사(Dr. Jennifer Schneider)에 의하 면, 자녀들도 종종 인터넷 포르노의 피해자가 된다고 한다. 부모가 보던 컴퓨터에 남아 있는 포르노에 오염된다.

   한 남자는 자신의 포르노 중독 때문에 아내와 자기 딸의 삶을 거의 망쳐놓았다고 고백했다. 두 여성 모두 식욕 장애로 애를 먹었고, 자살 충동 경향까지 보였다. 모두가 그 남자가 참된 관계를 거부한 까닭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혹시나 아내가 자기 자신을 쓸모 없는 인간이라 생각한 나머지 칼로 팔목을 긋고 마루바닥에  쓰러져 있지나 않을까 두려워해야 했다. 몇 해가 지나서 상담을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딸아이가 그 동안의 고통을 토로했다. 그야말로 눈물범벅이 되어서 자신이 얼마나 열등감에 시달렸는가를 말했다. 자기 아빠가 얼마나 엄마를 거부했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정말 아름다운 여자였는데도 말이다. 그 딸은 또 두려 웠다. 자기를 아름답게 여기고 받아주는,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 남자가 자신의 성욕을 만족시키려고 아내와 딸을 거부했던 결과, 사랑했던 두 여인은 엄청난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 또 인터넷 포르노로 인해서 부모들이 다투고 심지어는 이혼까지 가는 경우, 아이들이 입는 상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가까스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더라도, 부모가 한쪽은 컴퓨터 섹스에 사로잡혀 있고 다른 쪽은 사이버 섹스 중독을 원망하고 있는 경우라면, 아이들은 부모들의 관심과 사랑 부족을 겪게 됩니다."


   [ 겉잡을 수 없는 은밀한 행위 ]


   해양탐사 전문가인 칼(Carl)은 「남성 건강」(Men's Health)이라 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자극적인 장면들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마치 전쟁이라도 하듯, 진정한 성행위와 그를 통한 만족을 얻으려면 친밀감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날마다 저 자신을 일깨워야 했습니다."

   미국의 자녀와 가족 보호를 위한 국민 연대(The National  Coalition for the Protection of Children and Families)는 " 포르노의 교묘한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우자와 함께 지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상대를 화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물며 날마다 신나고 서로 적극적인 성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일 것입니다. 성은 신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바로 그 때 포르노가 좋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포르노가 아무리 그럴 듯하게 우릴 꾀여 들이려고 해도, 실제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대용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실제 인격체와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거기에서 달아나는, 도피행각일 뿐입니다.”

   친밀감보다는 성적인 자극을 만족시키는데 집착하는 인터넷 포르노 사용은 결국 실망에 이르고 만다. 그 동안 수많은 남녀들이 인터넷  섹스의 홀리는 소리를 쫓아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섹스의 홍수 속에 지낼 수 있었지만, 그러나 실상 그들이 가장 원했던 친밀감은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 <목회와 신학>에 나온 글을 인용했지만 이와 같이 컴퓨터는 잘 사용하면 세계선교의 놀라운 도구가 되자만 잘못 사용하면 가정과 사회가 큰 해를 입게 됩니다. 검게 썩은 물로 가득 찬 호수에도 맑은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면 언젠가는 맑아지듯이,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는 신학도와 목회자들이 사이버 세계를 정복하여 끊임없이 맑은 복음의 강물을 흘려 보내어 바다를 맑게 하여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많은 진실하고 열심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나 블로그와 카페를 통하여 신앙 간증이나 찬양을 비롯한 방대한 기독교 자료를 수집하여 올려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방문자가 수백만 명이 되는 블로그나 카페도 있습니다. 신앙이 깊고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 이런 일을 하여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밝게 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복음화의 원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16. 정치 목회 사역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 때에 한사랑 선교회의 김한식 목사님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때 기독교계의 반응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목사는 목회만 해야지 쓸데없이 정치한다고 설치나’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장로 대통령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해서였는지 아니면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당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김한식 목사님을 외면하고 로마 가톨릭 신자들인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주일 성수를 위해 주일 아침 방송 선거유세도 거절한 김한식 목사님은 극소수의 표를 얻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국회의원 선거에 조용기 목사님과 김준곤 목사님 등이 앞장서서 기독당을 만들어 한국 교회의 지지를 호소하고, 신앙심 깊고 유능한 국회의원 후보를 내세우고 많은 표를 기대했지만 1천만 기독교인이 무색하게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1천만 명이라는 한국 교회 교인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무너져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인이 많다고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지역감정이나 개인의 사상과 이념에 따라 당과 후보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민노당도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여러 번 도전하여 결국 국회의원을 여러 명 당선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정당도 한 번 실패했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고 더 많은 기도와 홍보를 통하여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여 신실한 그리스도인 정치가를 배출해야 합니다. 지난 선거에서는 홍보도 제대로 못하고 인식 부족으로 기독교  정당이 있는지 조차 모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참된 신앙과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앞장을 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목회자도 정치를 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 특별한 사례이지만, 칼빈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대교회의 목회자요,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자요, 정치가 중에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님의 사례를 말씀을 드립니다.

 

   그는 일찍이 라이덴 대학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했으나 목회 초년에 경건한 발투스라는 시골 부인의 간곡한 기도와 권고에 감화되어 놀라운 생의 변화를 일으켜 성경으로 돌아와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카이퍼는 확신에 넘치는 개혁주의 목사가 되어 유트레히트 대교회에서 12년 간 목회를 하고 그 후에 암스테르담 왕궁 옆의 큰 교회에서 설교가로서 성실히 목회 하던  존경받는 목회자였습니다. 어느 날 40년간의 정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한 흐룬 봔 프린스터를 만났는데 교회 개혁의 필요성과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회의 어두운 부분까지 비추어야할 필요성에 대하여 논의했습니다.

   카이퍼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부와 권세의 머리(골2:10)이시므로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어야 함을 외쳤습니다. 개혁이 전 교회는 물론 전 국가적으로 확장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는 교육계,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 등 사회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파고 들어가 그리스도의 주권을 확립하고 그분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목사인 카이퍼 자신이 개혁주의 이념으로 창설한 정당에 들어가 당수와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마침내 수상이 되어 네덜란드의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훌륭한 목회자였고 위대한 신학자였으며 동시에 정치가로서 한 평생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Soli Deo Gloria)을 신조로 삼았던 위대한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신문에 나온 어느 칼럼에 보니 오늘날 한국 정치권을 진흙탕에서 개가 뒹굴고 싸우는 꼴이라고 비판합니다. 국민들이야 어찌 되건 말건 관심도 없이 오로지 개인의 야망과 정당의 집단적 이기주의에 끌려 다니며 끝도 시작도 없는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학생 때에는 이른바 민주화 운동에 생명까지 바칠 것 같고 정치를 하면 아주 탁월하게 할 것 같았던 명문대 출신의 똑똑하고 패기만만하던 386세대 젊은이들도 일단 정치계에만 들어가면 당권에 휩싸여 바른 소리 제대로 한 번 못하는 ‘정치꾼’이 되는 것이 현실 정치입니다. 몇 년 전에 어느 노동자가 얼마나 정치에 환멸을 느꼈으면 대낮에 ‘정치 불신’을 외치며 땀흘려 노동하며 번 돈 3백70만원을 시청 앞 광장에 뿌리는 일까지 했겠습니까?

   새 천년시대에는 우리나라에도 정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며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민족의 부정과 부패를 정화시키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링컨 대통령 같은 훌륭한 정치 지도자와 공무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상적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개혁주의 입장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분입니다. 먼저 성경을 그대로 믿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분으로서, 날마다 말씀 묵상과 많은 기도로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경건한 마음과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심정을 가진 분입니다. 그는 말씀에 흠뻑 젖어 있으면서도 성령님의 뜨거운 능력까지 체험하여 성령님과 복음의 능력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진 분입니다. 그 지도자는 정직하며, 원만하고 바른 인격을 갖추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다방면의 풍부한 독서와 경험을 통해 성경은 물론 신학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모든 방면에 지식과 통찰력이 있고 포용력과 결단력, 실천력, 의지력과 지도력을 갖추었으며, 탁월한 대화와 협상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또 정직하고 우수한 인재를 모을 줄 알고 시시한 정쟁을 초월하는 대범함을 가졌으며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도 포용할 줄 알고 오히려 자기를 비판하는 자들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친구임을 알고 그들의 견해를 겸손히 받아들이며,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큰 정치가입니다.

 

  지난 날 이승만 정권 때에 일부 목사님들이 정치계로 영입되어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지냈으나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영광이나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한 분명한 신앙이나 영혼구원에 대한 열망과 백성을 사랑하는 뚜렷한 정치 철학이 없이 일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정치가와 별로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나라에 별다른 공헌도 하지 못하고 정권의 하수인이 되고 만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정계에 뛰어들어 오랫동안 국회의원으로 지내다가, 말년에 저명한 목사님을 만나 “내 영혼이 정치에 뛰어들어 피곤해 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진 것 같다”고 고백하며 통곡한 후 얼마 안되어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이런 분은 하나님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명예욕과 권력욕으로 정치계에 뛰어든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 공무원과 정치인이 많지만 비그리스도인 정치인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날 지구상에는 ‘메가케로스’라는 거대한 뿔을 가진 사슴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슴은 웅장하고 화려한 뿔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사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뿔의 무게에 눌려 번식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자랑과 자부심으로 여겼던 커다란 뿔이 비극의 원인이었습니다. 뿔은 곧 명예와 감투와 권력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정치계나 기독교계 안에서 참된 지도자의 자격도 전혀 갖추지 못했으면서 뿔 자랑을 하려고 온갖 추태를 벌이고 분열과 혼란을 가져오는 정치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종말은 오로지 비극적인 공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는 화려한 뿔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민하며 기도하는 성숙하고 겸손한 인격자입니다.

 

  물론 신학도나 목회자가 정치가가 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지만, 참으로 지도력과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님처럼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든지 장관이든지 군수나 도지사가 되어 정치에 입문하여 애국할 뜻이 있다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특출한 인물 외에는, 어느 날 갑자기 나선다고 하루아침에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분은 먼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나 분야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덕을 세워 지도력을 인정을 받은 후 유력한 정당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나 다른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더 큰 책임을 지는 일을 하기 원한다면 진심으로 지역 주민을 돌아보고 소외된 자에게 사랑을 베풀며, 국회에서 국정에 임할 때에도 맡은 바 일을 최선을 다하여 완수하고, 원만한 대인 관계로 주위의 동료 국회의원들 사이에 포용력과 지도력과 권위를 인정받으면 마침내 주위의 추천으로 대선 주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나라를 이끌어 갈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 후에도 인간의 얄팍한 지식이나 경험과 수단과 잔꾀를 버리고 날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윗과 다니엘 그리고 링컨처럼 날마다 무릎 꿇어 기도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면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은혜로 인도하셔서 국가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시간만 있으면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영적인 소원이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훌륭한 정치를 통하여 부정부패를 척결하여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참된 복음만이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확신이 있으며, 복음 전파를 통하여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요 사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정치가가 되는 즉시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 구원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정치도 제대로 못하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권력 유지와 감투에만 신경 쓴다면 그런 자는 정치가가 될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백 번 실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정치가 지망생은 수없이 많으나 성공하는 정치가는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고 합니다. 철저한 각오 없이 섣불리 정치계에 뛰어 들었다가는, 잘못하면 정치 자금 마련한다고 동분서주 하다가 엄청난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패가망신하고 부인과 자녀를 죽도록 고생하게 합니다. 정계로 뛰어들었다가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부인과 이혼하여 고통을 당한 사람들의 경우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뚜렷한 목표와 감동이 없이 인간적인 명예욕과 야망만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처럼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물이라면 큰 물질이나 배경이 없이도 반드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에 황성수 목사님이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는데, 카이퍼 목사님처럼 목회자와 정치가로서 뛰어난 은사를 받은 분 가운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정치에 있다고 생각되며 참으로 사명과 지도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은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능력으로 어떤 어려움과 난관도 극복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정계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헌신된 기독교인들 가운데 각종 공무원 시험을 통하여 국가의 행정기관에 들어가서 공무원으로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나라가 밝아지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정부가 운영하는 기업에서도 부정부패가 만연하는데, 국민의 혈세 몇 억 원을 접대비 명목으로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같은 유흥가에 퍼 넣고 있는 일부 공기업을 볼 때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루속히 국가 기관에 대거 진출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기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개혁주의적 신앙의 입장에서 정리한 이은선 교수님의 박사 학위 논문을 인용합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회와 국가를 연합된 통일체로 파악하였고 교회가 세상 나라 권력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루터는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구별하여 하나님의 왕국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고, 세상 권력은 외적인 평화를 가져오며 악행을 막기 위하여 존속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루터는 여기서 명백하게 교회를 세속 권력에서 구별되는 공동체로 인정하여 세속 권력이 간섭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재세례파는 국가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어 강제력을 가지고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복음의 지배를 받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국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정부 관리에 의해 통치 받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재세례파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섬기는 종의 위치에 있어야지 지배하는 관리가 될 수 없으며, 정부 관리는 육에 따른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관직은 영에 따른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 정부 관리로 봉사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단정했습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종파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합니다. 이와 같은 재세례파의 주장은 구약성경을 무시하는 ‘신약성경 일원론(monism)’과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 사이의 날카로운 분리를 주장하는 ‘이원론(dualism)’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칼빈은 국가가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것이라는 재세례파의 주장을 반대하고 국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므로 절대 필요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세상의 권위는 하나님의 소명이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정당할 뿐 아니라 인생들의 모든 소명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지극히 존귀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칼빈은 관리들을 거룩한 ‘사역자(minister)’라고 불렀으며 그들이 하는 일을 ‘사역(ministry)’이라고 칭했는데, 사역자라는 용어는 목사(minister)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관리들의 직책을 거룩한 소명으로까지 높였습니다. 칼빈이 목사와 관리를 같은 용어로 사용한 이유는 관직도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소명을 준 사람들이 차지하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4에도 다스리는 자를 '하나님의 사역자(the minister of God)' 혹은 '하나님의 종(God's servant)'이라고 말씀합니다. 칼빈에 의하면 양자가 모두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으면서 그분의 거룩한 뜻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는 교회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정에서의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우주적 규모의 새로운 질서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넘어서 세상 전체를 포함한다는 입장입니다. 국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며  관리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가장 신성한 소명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국가도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제시했습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빵과 물과 태양이 꼭 필요하듯이 세상 정치도 인간의 삶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주권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동일한 주권이 행사되는 방식이 교회와 국가의 두 통치로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통치하시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천지에 대한 주권을 받았으며, 심판 날에 다시 오실 때까지 우주를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뿐 아니라 국가의 주권도 가지고 계시므로 국가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성경은 국가 발전의 근본 원리이며, 하나님은 만유의 주권자이심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신봉한 칼빈이 설교가, 주석가, 신학자로서는 물론 법률가, 정치가로서 그의 천재적인 조직력과 의지력으로 감행한 제네바의 개혁의 위대한 영향력은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 계속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의나 김일성주체사상에 심취한 운동권들도 세상을 자기들 식으로 변화시키고자 정치에 대거 입문하여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한 신실하고 사명감 있는 신학도나 기독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대거 분발하여 일어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정치계를 힘차게 이끌어 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사랑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나라와 민족의 모든 부정부패를 근절시키려는 마음이 있으며 나라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르게 이끌어 나갈 사람들이 새 천년 시대의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탄과 인간과 세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와야 합니다.

  어느 글을 보니 보스와 리더를 간략하게 비교해 놓았습니다.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지만 보스는 이익을 제시한다.

    리더는 지식과 지혜로 추종자를 이끌어 나가지만

    보스는 돈과 권력과 이해관계로 이끌어 간다.

    리더에게 추종자는 팀원이지만

    보스에게는 부하와의  관계가 주종관계일 뿐이다. 

    리더는 추종자에게나 적에게나 같은 기준(법)을 가지고 대하지만

    보스는 부하에게는 온정으로, 적에게는 법과 권력으로 대한다.

    리더는 국민을 섬김의 대상으로,

    자신을 희생의 대상으로 이해하지만,

    보스는 국민을 이익의 대상으로 본다.

  

   그렇습니다. 리더는 정치가요 보스는 정치꾼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분은 국민들이 생각지도 못한 원대한 비전과 지도력을 가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정치가입니다.

                            

17. 경제 목회 사역

            

   한 때 기독교계 신문 하단에 나오는 광고에 비누와 화장품사업을 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사업 광고가 종종 나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목사님이 목회나 하시지 무슨 사업을 하시는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직업이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신학도나 목회자도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신학도나 목회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올바른 목표가 있고 영혼구원의 열정이 있고 사업의 능력이 있으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영 훈련원’ 책임자인 마이런 러쉬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면서 훌륭한 사업가가 되는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그리스도인의 사업관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사업을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와 목적은 그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사업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업의 목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황금을 지나치게 탐했던 마이다스 왕의 비극을 아실 것입니다. 만지는 것마다 모든 것을 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망이 이루어진 후 그는 진정 행복해졌습니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음식물조차 금으로 변해 굶어 죽게 된 마이다스 왕은 자신의 탐욕을 뉘우치고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 기원하지 않았습니까?

 

   자칫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전파와는 전혀 상관없이, 재물을 많이 모아 크고 넓은 풀장이 있는 넓은 저택에서 벤츠나 렉서스를 타고 남들 보다 부유하고 안락하게 살고자 하는 데 사업과 인생의 목표를 둔다면 그런 분은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엄하게 징계하실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불경기에 사업체는 수없이 무너지고 실직자가 많은 시대에, 사업을 하다가 크게 실패하여 빚더미 위에 올라서서 목숨을 끊는 이도 많습니다. 사업이 커질수록 주님 앞에 영적으로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면서 우선 순위를 지키지 않으면, 여가 시간도 없이 바빠지고 자칫하면 영적으로 고갈되어 비참한 삶이 되고 맙니다.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사람들이 삶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귀한 책을 썼습니다. 찰스 험멜도 <긴급한 일의 횡포> 혹은 <늘 급한 일로 쫒기는 삶>이라는 소책자를 보면 그리스도인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경건의 시간의 중요성과 계획표를 세우는 일에 대해서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전통이 오랜 선교 단체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삶의 우선 순위에 대해서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인 능력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하고자 할 때에 더 많은 묵상과 기도, 성경 읽기 등을 통해서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등 영적인 면을 더욱 철저히 관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전파를 사업의 목표로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업의 목표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물질을 지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6:32,33)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는 “될 수 있으면 많이 벌고, 많이 저축하라. 그리고 많이 나누어 주라”는 말을 했습니다. 단지 물질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함께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복음 없이 물질만 나누어준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학도나 목회자가 사업을 한다면 날마다 사업을 통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실 목회를 하면 불신자보다 오히려 신자들과 만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사업을 하면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불신자를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전도의 좋은 기회요 황금 어장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 가야하고  불신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려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사업을 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그들과 접촉하여 교제하게 되고 친밀하게 되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당이나 성전에만 계시지 않고, 세리와 죄인들과 만나기 위하여 시장으로 가셔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넓은 저택에 안락한 환경을 꾸며 놓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 가운데 남모르는 불행과 고통과 처참한 상처를 가지고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없이 사는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과 부활의 소망을 증언하는데는 그리스도인 사업가, 특별히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 사업가 이상 훌륭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는 날마다 사업관계로 불신자와 대화를 하고 점심을 같이 먹으며 여러 모임에 같이 참석하며 거래를 합니다. 그는 불신자인 사업가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데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좋은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업이며 성경적인 경영 방침으로 널리 알려진 이랜드 그룹은 하나님 중심, 믿음 중심, 말씀 중심을 기업 정신으로 삼고 성경 말씀 위에 회사를 경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작은 점포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단기간에 대기업으로 성장한 이랜드의 사업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므로, 보통 기업의 최고 목적이 이윤 축적인데 반하여, 이랜드는 건전하고 정직한 기업 정신을 일구어 나가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구제와 선교에도 많은 물질을 바칩니다. 이랜드가 기업의 이윤을 남기는 목적은 먼저 선교를 위해서이고 그 다음은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고 세금을 많이 내어 사회를 부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박성수 회장 자신은 회사의 규모에 비해 청빈한 생활을 합니다.

   이랜드는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회사입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에도 신자와 불신자를 반반씩 채용하여 불신 직원들에게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성경묵상 시간이 있고 회장 박성수 장로님 자신도 날마다 새벽기도와 암송과 묵상과 성경공부를 통해 주님의 제자로서의 확고한 삶을 살고 있으며 기업 이윤 가운데 십일조는 선교 사업에 바칩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업체 상근 사목제도를 시행하여 사목들이 목회실에 상주하면서 전도와 영성훈련, 집회인도 등 사역을 합니다. 박성수 회장님 자신도 그 바쁜 중에도 매일 새벽에 출근하여 기도실에서 기도한 후 계속적으로 제자 삼는 사역을 통하여 제자를 양육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랜드 그룹 계열의 뉴코아와 홈에버가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 문제로 노사가 대립을 하고 있는데,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기업으로서 하루 속히 비정규직 해고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랜드 사태의 근원은 근자에 시행된 비정규직법 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지 한 영혼도 이런 일 때문에 실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필자도 일찍이 IMF 이전 이른바 퇴출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갑작스럽고 별다른 이유없는 퇴출을 당하여 뼈아픈 눈물을 흘려 본 되출계의 대선배(?)로서 기독인의 기업이나 교회들이 힘없는 약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헤아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세상 법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원칙으로 약자를 품어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하는 기업으로서 정직하고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정부패가 관습화된 사회풍토에 대항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성경적인 원리를 이기적으로 사용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사업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불신자들과는 달리 일의 과정을 중요시하여 정직하게 사업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 사업가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온다해도 성경적인 원리에 어긋나면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어느 회사 사장은 공장을 신축하는데 1억 3천만 원 짜리 공사에 뇌물이 3천만 원 들어갔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뇌물은 주지도 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우선 입니다.

  선교와 기업 운영의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인 이스라엘의 갤트로닉사는 선교사 후보생이었던 켄 크로웰이 설립한 안테나 생산업체입니다. 크로닉은 미국 남침례회 소속으로 40세에 이스라엘 선교사로 파송해 주기를 희망했으나 나이, 언어능력, 가족 수 등을 들어 파송을 거부당했습니다. 크로웰은 결국 혼자 선교지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고 거기서 소규모 회사를 세웠습니다. 12년 간 별다른 선교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정통 유대인과 노조의 운영 중지 압박을 거세게 받았지만 자신만의 기술을 꾸준히 저축한 결과 매년 6,5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대규모 회사로 발돋음 할 수 있었습니다. 설립 당시 6명이었던 직원은 약 1천 여명으로 늘어났으며 이스라엘 본사를 비롯 3개국에 4개의 회사를 설립하여 현재 안테나 생산업체로서는 세계 3위 권에 듭니다. 2년 전에는 이스라엘에서 우수 기업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를 통하여 전도하기 힘든 유대인들에 대한 전도가 이루어졌고 전도된 이들이 300명 수준의 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회사 간부 중 한 사람은 유대교에서 회심해 이 교회 목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갤트로닉 회사는 선교가 심히 어려운 회교권을 대상으로 방송선교에도 나서 1만여 권 이상의 성경을 보내 달라는 청취자들의 요청을 받아놓기도 했습니다. 이 회사는 유대교의 견제로 이스라엘에서 30년 이상 사역한 선교사도 거두기 어려운 선교의  열매를 거두었으며 기업과 제자양육에 성공한 경우에 속합니다. 이 회사가 성공한 비결은 말씀에 입각한 의로운 경영은 성공한다는 믿음과 전문 기술과 경영 마인드 구비, 끈기 있는 도전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국내는 물론 전통적인 선교가 힘든 해외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접근이 용이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고 기업내의 기숙사 같은데서 24시간 공동생활을 하며 삶으로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기업 선교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전도 및 선교 방법입니다. 선교 기업이 성공하려면 전문 경영 기술과 더불어 일반 선교와 동일한 정도의 수준 높은 영성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소망화장품의 강석찬 사장은 해마다 기업 매출액의 2%를 월드 비전과 기아대책기구, 그리고 실로암 안과병원 등에 헌납한다고 합니다. 2002년도에는 기부금 액수가 약 17억원이었다고 합니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대신기업도 이윤의 일부를 에바다선교회를 통해서 전국의 많은 농어촌 미자립교회에 선교헌금으로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일반적인 목회는 아니지만 복음전파에 크게 이바지하는 일입니다. 해조산업의 유창렬 회장은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종업원의 1/4 이상을 신원조회도 안하고 전과자를 채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 사업체도 이런 회사처럼 직원이나 종업원을 불신자로 채용하며 전과자와 같이 사회의 냉대 받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복음도 전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작은 모텔에서 시작하여 창업 40년 만에 전 세계에 2천여 개의 호텔 체인망과 15만 명의 직원을 둔 세계적인 호텔 체인으로 널리 알려진 ‘홀리데이 인’의 공동 창업자인 윌리엄 월튼은 그의 책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에서 홀리데이 인의 강령을 “우리는 모든 사람이 존엄하다는 인식, 기독교적 원리, 특히 이웃 사랑의 정신에 입각하여 기업을 세우고 사업을 해 나가려 한다.”고 썼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사업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또 “사람들이 새록새록 힘과 용기를 얻어 마음껏 자기를 실현하도록 훌륭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탁월한 경영자가 사업의 세계에서 걸머져야 할 명령이요 사명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의 기업이 어떤 기업이 되어야 합니까?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이상원 교수가 프랑스의 경제학자 미셸  알버트의 이론을 소개한 것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알버트에 의하면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세계 경제는 두 흐름으로 나누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미국과 영국을 축으로 하는 신 미국주의이고 하나는 독일, 스위스, 베네룩스 3국, 일본을 축으로 하는 라인란트 모델입니다.

   신미국주의의 특징은 경제활동의 목적을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는데 둡니다. 예를 들어서 기업은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공동체로서 소유주, 주주, 경영진이 서로 만나 상업적으로 거래하는 거래처로 인식됩니다. 따라서 이윤추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연봉 수백 억 원을 지불하면서도 외부에서 경영자를 영입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회사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겠다 싶으면 언제든지 사원을 해고시켜 버립니다. 해고는 하루나 이틀 전에 통보됩니다. 따라서 어제만 해도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집 없는 거지(homeless people)’ 신세가 됩니다. 기업은 살벌한 경쟁터일 뿐입니다. 능력이 있는 최고경영자(CEO)나 사원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반면에 능력이 없는 사원은 박봉에 시달리며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생활합니다. 기업의 자금은 주로 주식시장에서 조달하는데, 주주들은 다만 회사의 단기 이익을 가져가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따라서 회사의 임원들은 주주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회보장제도는 인간을 게으른 무임 승차자들로 만들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하는 것으로 봅니다.

    반면에 라인란트 모델에서는 가난은 죄라기보다는 경쟁적인 경제 활동에 뒤따르는 희생물이라는 인식 하에서 사회의 최저계층-비자발적인 실업자들, 고아들, 과부들, 장애자들, 노인들-의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둡니다. 경제활동을 이윤추구보다는 좀더 인간다운 삶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봅니다. 따라서 기업의 설립 목적도 이윤추구보다는 삶의 공동체의 형성으로 인식되며, 기업은 주주와 경영진과 노동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상호 협력하는 공동체로 인식됩니다. 사원이 기술이 부족할 때는 재교육울 실시하여 기술을 익히게 한 다음 계속하여 일할 뿐 아니라 승진의 기회도 제공합니다. 임금수준도 최고경영자와 평사원의 격차가 크지 않으며 가족의 생계를 중시하여 일정한 하한선 안에서 결정됩니다. 기업의 자금은 주식시장보다는 은행에서 조달하며 은행은 기업이 부도위기에 몰렸을 때 기업을 버리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때까지 자금을 지원합니다.    

   그런데 알버트에 의햐면 오늘날 경제적 이익만을 악착같이 추구해온 미국이나 우리나라같이 신미국주의 모델에 속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무역적자국들이며, 반면에 라인란트 모델에 속한 나라들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무역 흑자국들이며 내부경제구조가 탄탄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해 줍니까? 오직 돈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매달리며 사람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대하는 경제체제와 경제활동은 단기적으로 볼 때는 나은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돈을 잃고 말며, 좀 더 높은 가치를 위하여 돈 버는 일을 수단으로 인식한 경제체제와 경제활동은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델타 항공사는 회사의 경쟁력강화를 위하여 구조조정을 했는데 전체인원의 6분의1인 1만 2천명을 감원했습니다. 그런데 원가절감을 위하여 많은 직원을 해고한 결과 ‘기업 치매증’이 생겼습니다. 기업 치매증은 해고자가 가지고 있던 기술, 지식, 경험, 정보 등이 그 사원들이 해고됨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사원이 떠나고 유능한 사원이 오면 더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해고된 사원이 그 회사에 있으면서 성공한 경험과 실패한 경험 등 시행착오를 통하여 이루어온 모든 노하우와 인간관계 등 유익한 것들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한 이착륙시간과 뛰어난 서비스를 강점으로 가지고 있던 델타항공이, 대량해고와 함께 일시적으로 기업의 원가절감을 했지만 결국 기업 치매증에 걸려 큰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미국 ‘포천’ 지가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선정했는데,‘ 일하기 좋은 직장’의 상위 랭킹을 차지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바로 ‘사람 중심’의 경영철학을 가진 기업입니다. 즉 ‘해고가 거의 없는 기업’들 입니다. 1위를 차지한 증권회사 ‘에드워드 존스’는 2001년 증권업체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단 1명의 직원도 자르지 않았습니다. 은행 및 신용카드업체인 시너버스사도 설립 후 114년 동안 단 한 명의 해고자도 없는 회사로 유명합니다. 일하기 좋은 기업 100개중 80개 기업은 경제가 어려운 2001년도에도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거나 오히려 직원을 늘렸습니다. 그래도 오히려 동종 업계의 경쟁사들 보다 경영 실적(수익성)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낮은 이직률 덕분에 인사 관련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신바람 나는 직장 분위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포천지는 분석했습니다. 일본의 렉서스로 유명한 도요다 자동차나 캐논, 샤프 같은 세계적인 우량 대기업도 해고 없는 일본형 경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형 경영의 대표 기업인 도요다는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시장의 왕좌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일본형 경영의 핵심은 ‘관계적 고용 계약’에 있습니다. 이런 경영 시스템은 종업원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 훈련 투자와 해고 없는 인간 경영입니다. 지나친 실적주의와 경쟁원리 도입은 상호신뢰, 헌신과 귀속의식, 협동, 화합 등의 조직적 가치를 훼손시켜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데 역작용을 할 위험이 있음도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조직 사회에 개인적인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쟁 원리가 노골적으로 지배하게 되면 조직적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며, 조직적 가치는 한 번 훼손되면 복구하기 힘든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쟁원리와 조직적 가치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인적자원관리제도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대성그룹도 ‘한번 입사하면 정년을 채울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회사입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단 한 명도 인위적으로 해고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직장 개념으로 해고 없는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기업들이 경영 효율화, 매출 증대 등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지만 대성그룹은 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인재’와 더불어 ‘화목’을 강조합니다. 일본 경영인 단체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일본 최고 경영자 세미나에서 “불황을 핑계로 간단히 종업원을 해고하는 기업은 장래성이 없다.”면서 “정말 과잉 고용이 문제라면 우선은 남는 인력을 새로운 사업에 활용하려고 애쓰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다. 그런 정도의 기업가 정신도 없는 경영자라면 가장 먼저 퇴진해야한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홀리데이 인>의 창업자 월튼은 “사람들을 비인간적이고 살벌한 경쟁으로 내모는 업무 평가제도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기도 싫다. 이러니 일터에서 유혈을 부른 항의와 파업이 속출한 것은 당연하다.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가치를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전제적인 기업가들에 맞서서 노동조합을 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라고 피력했습니다. 그는 또 “경영자가 한 배를 탄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자기 목적만 이루려는 이기심을 드러낼 때보다 사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는 적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랫사람을 마음대로 해고하고 희생시키면서까지 목적 달성을 하고자 하는 기업인은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비인간적인 기업인입니다. 아랫사람이 좀 실수를 해도 먼저 윗사람이 사원들을 살피고 돌아보는 따뜻한 심정이 될 때 아랫사람들은 회사의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투구로 보답 할 것입니다.

   여기서 또 잔소리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는 ‘교회 성장’이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미명하에 담임목사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정한 잣대도 없이 하루아침에 부교역자를 해고합니다. 대부분의 교단 헌법에 부교역자의 임기가 1년이라 할 말은 없지만 간혹 지나친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도 사회 조직체라면 비인간적인 1년이라는 임기도 고쳐야 합니다. 대구 어느 교회 전도사님은 교회에 들어간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예고도 없이 나가라고 해서 임지도 없이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가족도 있는데 말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얼마나 몰상식한 담임목사입니까?

   반면에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인 해먼드제일교회의 잭 하일즈 목사님이나 현재 남서울 은혜교회에서 시무 하시는 홍정길 목사님 같은 분은 목회를 하면서 부교역자가 스스로 임지를 정하여 나가기 전에는 평생 한번도 부교역자를 해고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님도 부교역자 중에 답답하여 갈아치우고(?) 싶은 사람도 있었으나 5년 이상 참고 견디어 주니까 유능한 인물로 변하더라고 합니다. 더구나 남서울교회나 사랑의교회는 부교역자가 원하면 엄청난 경비를 들여 해외 유학까지 보내줍니다.

   한번 부교역자를 뽑았으면 무슨 큰 죄가 있거나, 그 교회나 담임목사와 신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거나 이단 사상을 가지지 않는 한, 인천의 어느 교회처럼 최소한 5년 정도라도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관공서나 훌륭한 기업의 먼 발치에서라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대이지만 교회는 이윤을 추구하는 세상 기업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몸인 영적인 공동체이므로, 수많은 종업원을 인정 사정없이 해고하여 중성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은 비정한 잭 웰치의 GE 같은 기업보다는, 100년 이상 해고가 없는 ‘시너버스 사’같은 교회라야 합니다. 해먼드 제일교회의 잭 하일즈 목사님의 말씀처럼, 한번 이사하고 아이들 전학하고 새로운 친구 사귀고 교회를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아주 특별한 잘못도 없고 바른 잣대도 없이 담임목사의 마음대로 내보내는 것은 목회자답지 못한 일입니다. 기업이든 교회든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곳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목회자나 신학도가 사업에 대한 비전이 있다면, 먼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많은 기도로 준비하면서 자신의 적성과 흥미와 능력에 맞는 사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나 경영 등 사업에 관해 많은 독서도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경영학 교과서로 삼고 있는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성경 외에도 사업이나 경영 관련 서적 등 무려 3천여 권의 책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사업을 하려면 성경을 기본으로, 국내에서나 작은 점포를 시작하는 법으로부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의 성공 스토리나 기업가의 자서전은 물론 경제학, 경영학, 마케팅 이론, 리더십 등 사업에 관계된 많은 책을 부지런히 읽되, 정직하고 윤리적이면서 성공한 기업인의 경영 철학이 담긴 책을 집중 연구하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나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같은 책은 탁월한 책입니다. 기독교 경영연구원 같은 곳에서는 경영 교실을 개설하여 저명한 학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경영, 기독교와 경제, 마케팅, 국제 경영, 기독교와 경영, 재무관리, 중소 기업론 및 창업 등에 대하여 강의한다고 합니다.

   만일 주님께서 당신에게 사업을 하게 하신다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꿈은 원대하게 가지되, 이랜드처럼 작은 사업부터 시작하여 점차 견실한 사업체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농어촌 교회당도 지어주고 선교사에게 선교비도 많이 보내며, 영혼을 구원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공헌해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리하게 빚을 내서 큰 사업을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며 자칫 빚더미에 올라앉아 평생을 고생하게 됩니다.

   요즘 일부 개척 교회 목사님들 중에는 평일에는 운전기사로 바울처럼 자비량 목회를 하는 분이 있다는데, 인천에서만 택시 운전을 하는 목회자가 100여 명 된다고 합니다. 재일동포 유봉식 회장이 경영하는 일본 최고의 택시회사인 MK 택시회사에는 명문대졸 운전기사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산뜻한 유니폼에 대우도 좋아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고 합니다. 똑같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비행기 조종사는 일류 대우를 받는데 운전기사도 같은 대우를 해야 한다는 유봉식 회장의 사람 대우 정신이 최고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는 크리스천 택시 운전기사들이 승객들에게 그리스도와 성경에 관하여 말을 걸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까지 시킨다고 합니다. 그들은 함께 새벽기도 모임을 가지며 정오에 기도회를 가지고 성경 읽기 등을 통해서 영적 무장을 하며,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술주정뱅이와 도박꾼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후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성령충만한 크리스천 기사들이 선교회를 만들어 전도를 한다고 합니다. 손님을 태우고 가는 도중에 극동방송이나 조용한 찬송가 경음악을 틀어놓는다면 혹시 믿다가 낙심한 사람이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할지도 모릅니다. 차안에 ‘사영리’나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같은 전도지를 몇 박스 집에 사놓고 날마다 한 묶음씩 차안에 갖다놓고 손님이 내리면서 요금을 줄 때에 하나씩 나누어주면 좋은 전도가 될 것입니다. 금란교회의 ‘불기둥’지 같은 모양으로 자신의 전도 설교지를 인쇄해서 나누어주는 것도 좋은 전도입니다.

   그러나 어느 감리교 목사님은 택시 기사를 하다가 큰 교통사고가 나서 중상을 입은 경우도 있고, 어느 목사님은 생활이 어려워 목회를 그만두고 택시 기사를 하시다가 택시 강도에게 귀한 생명을 잃었다는 슬픈 소식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크신 뜻이 계셔서 먼저 천국에 가셨겠지만 유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섣불리 하지 말고 이런 경우까지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수입 중 일부를 전도비로 투자하여 자신의 전도 설교를 직접 집에서 녹음하여 다량 복사한 후, 손님에게 하나씩 나누어준다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반드시 저명한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만 녹음하여 배포하라는 법칙은 없습니다. 우리가 유창하게 설교를 못한다해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영생의 기쁜 소식을 전할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그 말씀을 통하여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전도를 목적으로 보험설계사를 한다는데, 신학도나 목회자도 무슨 일을 하든지 손님마다 전도지나 테이프를 나누어주면서 얼마든지 영혼구원과 생활비를 목적으로 할 수도 직장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직업을 찾을 때 창업적성검사를 받고 자신의 성격 및 적성을 알아본 후에 자신에게 알맞은 사업의 분야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직업이 1만 3천 가지이며 미국은 8만개라고 합니다. 죄가 아닌 직업은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항상 주의 할 것은 ‘일’이나 ‘돈’, ‘성공’이 우상이 될 수도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일 중독자’가 되거나 ‘성공 중독자’ 혹은 ‘황금 중독자’가 되면 주님께서 외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으로는 신학도나 목회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목표는 말씀의 대사로서 목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므로, 정치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간접적으로 선교비도 보내고 전도를 한다 해도, 어느 정도 사업의 기반이 잡히고 물질의 여유가 생기고 다시금 교회 목회를 할 마음이 생긴다면, 그 사업체는 신앙심이 깊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농촌이나 도회지에 아담한 교회당을 지어 직접 목회를 하든지 해외에 나가서 선교하면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목양을 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신학도나 목회자로 부름 받은 자의 가장 큰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18. 자선 목회 사역


   5만 번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는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는 평생을 고아원을 세워서 수많은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양육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쌍하고 소외된 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영혼을 불쌍히 여겨 복음을 증언하며 정직하고 진실하게 인도할 사명이 있습니다. 고아원을 세워 어린 새싹들을 어릴 때부터 말씀과 기도로 잘 양육하여 풍파 많은 세상에 내어보내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며 주님의 제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일을 사명감 있는 신학도나 목회자가 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어느 양로원에서는 교회당을 지어주는 조건하에서 양로원 안에서 목회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노인들은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매우 시급한 일입니다. 양로원을 세우고 그 안에 교회당을 세워 복음을 전한다면 참으로 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불쌍히 여겨 구원하신 것 같이, 사창가의 윤락녀들을 타락한 인간으로 멸시하지 않고, 구원받아야 할 잃어버린 어린 양으로 여기고 주님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다일 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님 같은 분은 이 시대의 신실한 주님의 종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여러 해 전에 젊은 미혼 남녀들이 가장 결혼 주례를 받고 싶어하는 목회자 중 최일도 목사님이 1위로 뽑혔고, 2위도 역시 청계천 빈민들을 이끌고 남양만에서 두레마을을 세운 김진홍 목사님이라는 사실을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형 교회의 목회자보다는 주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섬기는 목회자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어디 이 분들 뿐이겠습니까?

 

   독일에서 10년 이상 공부하고 지도 교수가 후임 교수로 초빙했으나 한센 병 환우 마을에 들어가서 목회를 하시다가 지금은 중국의 티베트의 이름 모를 오지에서 한센병 형제자매를 돌보는 김요석 목사님 같은 분이나 소록도나 전국의 여러 곳에서 병든 자와 장애자들을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모든 분들은 진정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진정한 주님의 종들입니다. 이런 일을 일부 목회자들이 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해야 할 것입니다. 신학도나 목회자들도 앞장서서 고아나 노인들, 미혼모나 윤락녀 그리고 가출 소년, 소녀를 모아서 직업 교육도 시키고 주님의 은혜를 전하여 그들을 새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정신 지체아나 장애자 교육 시설을 만들어 선교를 위해 힘쓰는 한국 밀알 선교단이나 뇌성마비와 자폐아 치료를 위해 일하는 김일권 목사님 같은 분도 많이 나와야 합니다.

 

   지구촌의 굶주린 이웃에게 긴급 식량원조, 농업개발, 의료활동, 교육사업, 수자원개발사업, 등을 통해 육적인 굶주림과 성경교육을 통해 영적인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일하는 ‘국제기아대책본부’의 활동은 불신자들에게까지 주님의 사랑의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기아대책본부의 국내 사업을 담당하고자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인 ‘섬기는 사람들’은 무료 급식, 영세 복지시설 지원,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 지역 사회 복지 사업, 긴급 구호 등과 아동상담소를 개설하여 섬김의 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월드 비전’은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기독교 정신으로 창설되어 전 세계 90여 개 국에서 인종과 국가, 종교를 초월하여 도움이 필요한 5천여 만 명의 수혜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월드 비전은 저소득 가정과 결식아동, 진폐환자가정, 장애인과 고아원과 도시빈민사업, 해외 지원 등을 통해 선교사업을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목사님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신학도와 목회자들이 이런 복음과 빵의 사역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19. 제자훈련 목회 사역 

 

   제자훈련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는 목회자와 부정적으로 보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부정적으로 보는 목회자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대학생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대학생이나 신학생 가운데 기존 교회의 목회자나 교회의 신앙을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만이 철저하고 바른 신앙을 가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일부 청년, 대학생들에게 목회자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교단체에서 기성교회의 목사나 장로제도 같은 여러 가지 직분이나 부흥회, 새벽기도회, 기성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 사역을 과소평가하는 등 전통적인 제도를 부정하거나 낮게 평가한 것이 제자훈련사역을 부정적으로 보는 원인이 됩니다. 전에 총신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정성구 목사님의 강의안을 보면, 어느 교회 목사님이 심지어 IVF를 이단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 교회 전도사가 그 선교단체 출신이어서 선교단체와 비교하여 담임목사님의 설교나 목회를 얼마나 비판했으면 목사님이 속이 상하여 건전한 선교단체를 이단이라고까지 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IVF는 결코 이단이 아니라 성경에 충실한 건전한 대학생 선교 단체입니다.

 

  태권도나 합기도 같은 무술을 조금 배운 사람이 어깨를 펴고 으스대며 절권도의 창시자 이소룡이나 아이기도의 대가 스티븐 시걸이 된 것처럼 착각하며, 걸핏하면 남에게 시비를 걸다가 죽도록 얻어맞지만, 합기도나 아이기도 혹은 태극권의 명인들은 오히려 부드럽고 겸손해져서 어지간해서는 싸우지 않고 부드럽고도 강한(?) 눈빛 하나로도 상대방을 제압한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자훈련 받고 있는 일부 대학생들이 시건방진 것도 제자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기보다,‘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말처럼 제자훈련은 좀 받았으나 신앙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의 독선이나 교만 때문에 생긴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방언을 한지 오래 되지만, 우리나라 방언 운동 초창기에 이런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같은 성숙하지 못한 교인들이 방언 좀 한다고 교만하여,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진실하고 경건한 신앙을 가진 목사님들을 신앙이 미지근한 자로 매도하여 가슴을 아프게 한 것과 같은 현상일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받은 자들 가운데 참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분이 있다면, 오히려 유구한 세월을 통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해 오셨고 영광을 받으신 전통적인 교회를 통한 주님의 사역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기성 교회의 부족한 점이 있으면 기도하면서 도와주고, 배울 점이 있으면 겸손히 배울 자세를 가질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목회자 가운데서는, 제자훈련을 하지 않는 기성 교회에는 복음이 희박하고 심지어 구원받은 신자가 아주 적다는 식으로 매도하는데 그것은 기성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가 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늘 말 한마디도 신중해야 합니다. 만약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전혀 배울 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선교단체나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아직도 영적인 독선과 교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교만과 독선은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바리새적인 죄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 교회는 <평신도를 깨운다> 라는 저서를 지은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교회에 제자훈련을 성공적으로 접목하면서, 제자훈련 세미나를 통하여 우리 나라는 물론, 일본 교회와 대만 교회 목회자 등 수많은 목회자를 대상으로 제자훈련 세미나를 개최한 결과, 제자훈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CCC 출신인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님, 남서울은혜교회의 홍정길 목사님, 안산동산교회의 김인중 목사님이나 IVF 출신의 홍성교회의 이근수 목사님, 네비게이토 선교회 출신의 인천주안장로교회 나겸일 목사님과 목동제자교회의 정삼지 목사님, 죠이선교회 출신의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님, IVF 총무를 지내고 아나톨레를 만들어 신학생을 지도하고 성경적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주은혜교회 박영덕 목사님이나 수서은혜교회 김인희목사님, 네비게이토 선교회 지도자 출신으로 다운교회를 세운 이경준 목사님 등 선교단체 출신의 목사님들이 기성 교회의 많은 문제점을 극복하고 모범적인 교회를 이룬 일은 제자훈련 목회를 많은 교회에서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잠자는 교회를 깨운다>라는 저서를 통하여 널리 소개된 바 있는 부산호산나교회의 최홍준 목사님이, 분쟁이 있고 침체된 전통적 교회에 부임하여 제자훈련으로 교회의 체질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킨 아름다운 사례가 전국적으로 귀감이 되면서, 다시 한 번 제자훈련의 열기가 전국 교회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목사의 아들인 필자는 미지근하게 믿다가 윤재수목사님의 부흥회에서 성령의 불을 체험을 한 성령운동으로 시작한 신앙입니다. 제가 가장 아쉬운 것은 신학대학에 다니면서 제자훈련의 중요성을 몰라서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나중에 신학대학원 다니면서 네비게이토 선교회 본부 간사님에게 1년 정도 네비게이토 2,7시리즈로 제자훈련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 여동생 둘은 경북대학교 시절에 IVF에서 활동을 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보는 대학생마다 네비게이토나 IVF나 CCC나 ESF 같은 선교단체에 드러가면 4년의 훈련이 40년의 인생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 전도사님에게도 계속 권유해서 결국 IVF에 들어가서 좋은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설교자를 꿈꾸는 신학생이라면 IVF같이 성경을 많이 연구하는 선교단체가 좋고 직장에서 재생산하는 제자가 되려면 네비게이토선교회 같은 단체가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쓰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의 저자로 한국 교회에 영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부산 풍성한 교회 김성곤 목사님도, 사업을 하다가 오산리 금식기도원에서 뜨거운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난 후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고 신학교에 다니면서 ‘제자선교회’라는 선교단체를 만나 제자훈련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 선교회에서 하루 3시간의 기도, 잡념 없이 하루 35장씩 성경 읽기, 경건 서적 읽기, 수레바퀴의 삶, 제자도 등 전통적인  교회 안에서는 한번도 배우지도 듣지도 못했던 영적인 체험을 하고, 영적인 성장에도 지름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님을 믿은 33년이란 세월보다 선교단체에서 집중적인 양육과 훈련을 받은 3년이 훨씬 더 그 목사님에게 강력하고 빠른 변화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렇게도 영적으로 갈급했는데, 제자선교회에서 그 갈증을 시원하게 적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뱃속에서 날마다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음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 선교회를 섬기고 있던 다수의 평신도 사역자들이 가진 주님의 심령과 경건의 능력, 섬김과 사랑의 모습을 보며 황홀함을 느꼈고 그들의 영적 지도력이 그 목사님을 압도했습니다. 그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섬김의 삶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오직 가서 제자를 삼아 세계 비전을 이루는 것만이 그들의 소망이었고, 이 비전을 위해 그들은 마치 생명을 던진 사람과 같았다고 합니다. 거기서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도전을 받아 제자훈련 사역으로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그 결과 그가 설립하고 목회 하는 부산 풍성한 교회는 자연적 교회성장(NCD) 컨설팅에서, 65점 이상이 되면 건강한 교회로 평가받는 교회건강지수를 무려 107점을 받아 세계 신기록을 세워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 중 하나로 입증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두 날개 선교센터’를 통하여 전국 목회자를 대상으로 목회자 컨퍼런스와 ‘D12 다이아몬드 양육시스템’에 관한 6단계 집중훈련 세미나를 통하여 전국의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때 기성교회와 거리감을 두던 <네비게이토 선교회>나 <한국 대학생 선교회> 등의 선교단체들도 근자에 겸손한 모습으로 전통 교회의 장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기성 교회의 목회자를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과 관련하여 60년 이상의 경험을 축적해 왔으며, 제자훈련에 관계된 많은 책자들을 발행하여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어온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는,‘교회제자 훈련원’을 두어 단기적인 세미나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목회자들을 돕는 과정을 통해, 제자훈련 목회를 조용히 확산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실습을 통해 교회에서의 제자훈련목회에 부합되는 좋은 교재들을 개발해 오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하나의 지나가는 사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성령운동과 더불어, 제자훈련은 로버트 콜맨 박사가 <주님의 제자훈련 계획>에서 말한 바대로 신약성경 전체에 흐르는, 효과적인 세계 복음화를 위한 우리 주님의 계획과 방법입니다. 아마도 근자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셀(Cell)교회 운동’이나‘G-12 운동’등도 제자훈련과 전혀 다른 운동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제자훈련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 콜맨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가장 중요한 명령으로 “제자로 삼는 사역”을 부탁을 하셨기 때문에, 제자 삼는 사역이야말로 모든 교회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해야 할 최우선의 사명이라고 강조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리라.”(마28:19-20)고 분부하셨는데, 여기서 “가서”,“세례를 주고”, “가르치는” 유일한 목적은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훈련에 대해서 이처럼 최우선 순위를 두셔서, 주님을 따르는 자는 그분의 방법대로 행할 것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하신 사역의 방법대로 행할 때에 성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비록 더디고 큰 희생이 없이는 성취될 수 없는 일이지만, 주님께서는 주님의 방법인 제자훈련을 통해서 지상명령이 성취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 삼는 사역을 통하여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월터 헨릭슨은 <훈련으로 되는 제자>에서 제자들을 배가시켜서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주님의 비전은 성경의 매 페이지마다 고동치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역설합니다. 디모데후서 2:2에서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또한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자 배가의 과정입니다. 충성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양육하는 동안 디모데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충성된 사람들을 훈련시키게 됩니다. 제자를 배가시키는 이 비전의 수행 없이는 주님의 지상명령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나 형태의 사역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 어느 것으로도 이 비전을 대신하여 주님의 사역을 대신하여 주님의 명령을 성취시키기는 힘이 듭니다.

   제자 삼는 사역은 시간을 요합니다. 요즘  2박 3일 ‘중고등부 제자훈련 캠프’도 있는데 제자훈련은 몇 일간의 강의나 세미나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도시에서 ‘몇 년 만에 수천 명 모았다’는 오늘날의 교회 성장 정신은 제자 삼는 사역과는 다릅니다. <제자입니까?>라는 책의 말을 빌리자면 ‘성장’이 아니라 ‘비만’입니다. 제자 삼는 사역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불과 열 두 명의 제자를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시간과 삶을 투자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소수였지만 그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그들에게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소수 집중의 제자훈련이 결국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폭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배가사역(승법번식)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기 쉬운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장기판의 첫째 칸에 1개의 밀알을 놓고, 둘째 칸에는 2개의 밀알을 놓았으며, 셋째 칸에는 4 개, 그리고는, 8, 16, 32, 64, 128 개 등으로 밀알을  늘어놓는다면 장기판의 64번째 칸까지를 다 메운다면 밀알이 얼마나 많아질까요? 놀랍게도 밀알의 양은 전 인도 대륙을 약 15m 높이로 덮을 수 있을 만큼이나 된다고 합니다.

   당신이 만일 1년에 1명을 전도하여 제자훈련을 철저하게 시킨다면, 2년 후에는 당신과 훈련받은 그 제자가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 제자훈련을 하면 4명이 되고, 3년 후에는 16명이 됩니다. 이처럼 속도가 느립니다. 그러나 20년 후에는 1백만 명이 되며, 30년 후에는 물경 10억 명이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물론 단 한 명의 낙오자가 없다는 전제하에 이러한 통계가 나올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목회자가 매일 1명 씩 전도한다 해도 30년 후에는 겨우 10,950명만 인도할 뿐입니다. 부가(더하기)와 배가(곱하기)는 1만 명과 10억 명-무려 10만 배의 차이가 납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결국 제자 배가의 방법은 세계 복음화를 위한 가장 성경적이며 효과적이고 놀라운 폭발력을 가진 방법입니다.

 

   이처럼 배가는 초기 단계에서는 부가보다 속도가 느리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이 방법이야말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주님은 단지 12명만을 제자훈련 시켰고, 그 중에서도 실제로는 3명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셨습니다. 제자훈련사역은 어떤 특정한 은사를 가진 자나 선교단체만 해야 되는 사역이 아닙니다.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든지 장로교회든지 모든 세대의 모든 교회가 다 해야하는 필수과목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이신 예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가졌던 관계는 제자훈련의 관계가 아니라 목양의 관계였다는 말씀을 하는 분도 있는데, 목양과 제자훈련은 분리된 사역이 아니라 동일한 사역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시몬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요21:15)고 목양을 여러 번 부탁하셨지만, 승천하시기 전에 열 한 제자에게는 최후의 명령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고 강력하게 제자 삼는 사역을 명령하셨으므로, 목양과 제자훈련을 굳이 분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양 사역이 곧 제자 삼는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셀교회 지침서>라는 획기적인 책으로 전 세계 교회에 선풍을 일으키는 랄프 네이버 박사의 <셀교회 운동>은 종교개혁 이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져오는 <제2의 종교개혁 운동>이라고 까지 하는데, 셀 교회 역시 넓은 의미에서 제자훈련 사역의 범주에 속합니다. 셀 교회 운동보다 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G-12 운동은 남미 콜롬비아 보고타의 ICM 교회의 카스텔라노스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이 운동은 산불이 순식간에 퍼지듯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ICM교회는 1990년 당시 70개 였던 셀 그룹이 4년 후인 1994년에는 1,200개로 성장했고 1998년에는 2만3천 개의 셀 그룹으로, 2006년 현재 4만여 셀 그룹과 50만 성도로 부흥했습니다. 실질적인 교인 출석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합니다. 이 운동은 네비게이토선교회 같은 제자 일대일 배가 전략이 아니라 12배의 제자 번식 운동입니다. G-12이 운동 역시 예수님과 제자들이 했던 성경적인 제자훈련 사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 삼는 사역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말씀대로 모든 믿는 자가 반드시 해야 할 주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입니다. 이 성경구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은사나 소명을 주셨든지 상관이 없이 우리가 제자 삼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자훈련은 특정 선교단체나 특정한 교회만의 사역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최후의 중요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합니다. 제자훈련은 교회가 반드시 해야 될 일인데, 기독교가 로마 가톨릭 교황주의 등을 거치면서 제도화되고 타락한 이래 사라졌던 원리를, 지금부터 약 60년 전에 네비게이토 선교회를 시작한 도슨 트로트맨 등이 성경을 깊이 묵상하다가 다시 발견한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다른 지나가는 사조처럼 일시적인 풍조가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지속되어야 할 지상 모든 교회와 성도의 사명입니다.

 

   일부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조금 하다가 한 두 해만에 교인 수가 많이 늘어나지 않자 제자 훈련을 효력에 의심을 품고 낙심하는 것은 올바른 제자훈련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제자 삼는 사역은 큰 무리를 모아놓고 강단에 서서 흥분된 목소리로 어조를 높여 설교하는 그런 인기를 누리는 사역이 아닙니다. 제자 삼는 사역은 주님처럼 적은 사람에게 힘을 다 쏟아 부어 그로 하여금 제자가 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온갖 장애물들을 극복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며,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힘든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제자 훈련은 2-3 년 안에 교인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교회 성장의 마법이 아니라, 처음 몇 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소수 정예를 철저히 훈련시킬 때 나중에는 다른 방법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놀라울 정도로 제자의 수가 늘어나는 배가 사역입니다. 선교단체에서는 최소한 2년에서 7년 정도 인내하며 철저하게 제자 삼는 사역을 해보지 않고서는 제자훈련의 효과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않는 것이 겸허한 자세라고 말합니다. 근자에 단 몇 번의 능력 있는 설교 사역으로도 몇 년 동안 제자훈련 받은 것보다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그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설교 사역만을 절대시하고 제자 삼는 사역을 과소평가 하는 것은 제자훈련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대부분 선교 단체에서는 설교 사역을 과소평가 합니다. 그러나 성경역사나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면, 성경적인 설교 사역이 왕성할 때에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설교 한 번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온 오순절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사역은 물론,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나 칼빈의 충실한 설교사역, 미국이나 영국의 존 웨슬레나 죠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무디 그리고 우리나라의 길선주, 이성봉 목사님 등을 통한  민족적인 대부흥 운동은 성경적인 설교 사역 위에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강력한 능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김서택목사님, 박영덕목사님, 김남준목사님, 전병욱목사님, 정근두목사님 등의 설교 사역은 수많은 영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우리는 설교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IVF 총무와 학원복음화협의회 간사로 봉직한 바 있는 고직한 선교사님도 예배와 설교를 통한 탁월한 제자훈련의 효과에 대해서 선교단체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과소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한번의 설교로 수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 온 것이 설교의 능력에 대한 가장 성경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어느 분은 서울 시내 50개 교회의 설교를 들어보니 그중 복음적인 설교를 하는 교회는 두 교회 정도 밖에 없다고 했는데, 반드시 설교자가 매 주일 십자가와 부활만을 설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설교를 하다보면 종종 성경의 도덕적인 교훈도 전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교훈을 전한다면 성경적인 설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 설교만이 아니라 교훈적 설교를 듣고도 회심하는 사람도 있다고 저명한 어느 설교가는 말 한 바 있습니다. 물론 성경과는 동떨어진 수필이나 시사만평을 하는 설교자는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강해설교만 성경적인 설교라고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 설교 사역을 평가한 어느 신학자에 의하면, 큰 교회 목회자의 설교가 본문 중심의 강해 설교가 아닌 주제설교라고 할지라도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극히 성경적인 설교라고 하는 평가를 합니다.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이나 김홍도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김삼환 목사님 같은 분의 설교가 강해 설교학적으로는 부족함이 있다해도 그들이 미친 영향력은 무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부 젊은 목회자나 선교단체에서는 기도원 사역이나 부흥사들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매도하는데, 부흥사들이 기복 신앙에 치우치는 면도 있고 잘못된 점도 있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분들이고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다보면 실수할 경우도 있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말씀만 전한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도 일종의 교만입니다. 기도원 사역도 아주 귀한 사역입니다. 제가 서울 근교로 이사온 후 가장 기쁜 일 중의 하나가‘오산리 기도원’이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고난을 당할 때마다 벧엘을 찾은 것처럼, 저의 형은 오산리 기도원이 ‘나의 벧엘’이라고 고백합니다. 저의 벧엘과 겟세미네 동산은 오산리 금식기도원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때나 마음이 답답할 때에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굴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소리 높여 찬양하고 기도하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육군 보병으로 군대 생활을 하면서 32개월 동안 단 2번 휴가를 나왔는데, 첫 휴가의 절반을 집에 가지 않고 오산리 기도원에서 금식한 경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도원과 부흥회 사역을 통해서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절망 가운데 생의 의미와 사명감을 찾았습니까!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목사님이나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회이래 피종진 목사님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간 부흥회와 기도원 사역을 통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상하고 찢긴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셨는데, ‘부흥사는 무조건 다 죽일 놈이다’ 하고 심하게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칫하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독하는 죄가 됩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로 자랐으나 청소년기에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20세 되던 해에 부흥사 윤재수 목사님의 부흥회에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성령님의 뜨거운 불을 체험하며 눈물 콧물 다 쏟고 애통한 그 시간에, 신앙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 이전에 나는 영적 소경이었으나 그 순간 영혼의 눈이 활짝 열렸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의 인격이 천사처럼 변화된 것은 아니고 아직도 죄성으로 인해 날마다 탄식하지만, 그 체험 후 주님의 살아 계심을 확실히 믿게 되었고 능력이 부족하고 열매가 적으나마 작은 교회에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부흥사 목사님을 통하여 오늘날도 놀라운 역사를 하고 계시며 주님 오실 그날까지 그분들을 들어 쓰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들어 쓰시는 부흥사의 역할을 결단코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부흥사들도 복음의 동역자인데 잘못된 점이 있으면 겸손하고 정중하게 조언을 하면 그분들도 경청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선교단체 출신들은 늘 겸허해야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섰다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부 선교단체에서 주장하듯이 설교 사역이 과소평가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설교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변화된 사람들이 제자훈련의 기본 요건인 말씀 묵상(Q.T)과 성구암송, 성경공부, 기도훈련, 전도훈련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영적 성장은 매우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과 설교사역은 상반되는 사역이 아니라 기차의 두 레일처럼 상호보완 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사역입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님이나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같은 분들은 제자훈련 사역과 설교 사역을 잘 조화시켜 교회를 잘 성장시키고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설교의 능력을 소홀히 하는 제자훈련 사역도 온전하지 못하고, 제자훈련 사역을 등한시하는 설교사역도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일찍이 전도자 빌리 그래함은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설교 사역을 통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구름 떼 같이 많지만 그 가운데 생애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자는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자훈련을 철저히 하는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론 쎄니 등에게, 주님께 돌아온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서 훈련시켜 견고한 믿음 위에 서게 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경건주의적인 면도 있지만, 영혼에 대한 열정과 말씀에 대한 훌륭한 지식이 있는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는 빌리 그래함 전도단을 도와 양육하는 일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성경에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오순절 날에 수천 명이 일시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후, 그들은 각 가정에 소수가 모여 주님께 배운 대로 말씀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재미교포 교회에서 목회 하시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이 높은 목사님이 쓴 책을 보니, 그분이 이동원 목사님에게 목회 사역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더니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네비게이토선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아보라고 조언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어쨌든 제자 훈련 사역이 이 시대를 초월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행해야할 성경의 명령이라는 저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신학생들이나 일반대학에 다니면서 장차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는 대학생들에게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선교단체 동아리에 들어가 제자훈련 받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미 일반대학에 다니는 동안 학업도 열심히 하고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몇 년간 훈련받은 신학생들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신학생이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 제자교회의 정삼지 목사님처럼 선교 제자훈련을 3년이나 7년 정도 제자 훈련을 받는다면 얼마나 목회사역에 큰 도움이 될까하는 마음이 늘 듭니다. 강해 설교로 널리 알려진, 달라스 신학대학원 출신의 어느 신학 교수님도 미국에서 8년을 공부한 신학박사였지만 우리 나라에 와서 개척교회를 하면서 부족함을 느끼고, 동생 뻘 되는 젊은 대학생들의 제자훈련모임에 참석해서 제자훈련을 받으신 후, 지금은 신학생들과 성도들에게 제자 삼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강의시간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시대에 제자훈련은 목회자와 신학도의 영적 성장의 필수 요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실시하는 목회자 제자훈련 세미나에 치열한 경쟁가운데 서로 등록하려고 진을 치고 있는 이유는 많은 목회자가 제자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선교단체도 인간이 모인지라 문제점도 있지만 대체로 이런 영적 훈련이 부족해서 오늘날 교회들이 시끄럽습니다. 요즘은 신학대학에도 일부 선교단체가 들어왔지만 그래도 선교단체가 신학대학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신학의 문을 두드리는 열성적인 신학도를 위하여 신학교 안에도 선교단체가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체계가 무너진 이후에는 좀 약해졌는지 모르지만, 80년대에는 복음주의 선교단체가 신학생들에게 무관심할 동안, 민중 운동을 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신학대학 안에 운동권 동아리를 만들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신학생들을 훈련시켜 복음주의적인 신학교까지 장악하려고 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수련회 같은데서 은혜를 받고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의 종이 되고자 신학대학에 들어온 신학생을 대상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구원과 영원한 천국을 부인하고, 사회주의적 혁명을 통해 사회와 국가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자유주의 신학 사상인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등은 물론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세뇌시켜 운동권이 되게 하는 가슴 아픈 일이 자유주의적인 신학대학은 물론이고 고신대학교나 총신대학교 같은 보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신학대학에서도 비일비재하여 가슴을 치며 통탄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심지어 운동권이 된 신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수련회에서 은혜 받은 후 차라리 일반대학에 가서 성경적인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았다면 성경적인 신앙은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성경’도 배우지만 ‘성경에 관하여’ 더 많이 배웁니다. 신학을 공부하면 든든한 신학적 기초는 세울 수 있지만 깊은 성경묵상 훈련이나 체계적인 소그룹 성경공부나 성구 암송 훈련, 소모임 인도법, 전도 및 양육 훈련은 별로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실상 체계적이고 알찬 교회의 대학부나 청년부 교역자는 대부분 CCC나 ESF나 IVF 등 선교단체 출신이고, 제자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감당하기가 좀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내수동교회나 사랑의교회 등의 견실한 대학부나 청년부는 선교단체와 거의 동일한 방식의 제자훈련과정을 통해서 많은 젊은이들을 훈련시켜오고 있습니다. 오래 전 한국 교회의 청년, 대학부가 거의 소멸 직전에 있을 때 옥한흠 목사님이 이끈 성도교회 대학부 같은 곳에서 일찍이 선교단체의 성경교재와 기타 제자훈련방법을 도입하여 대학부 운동의 불길이 타오른 적이 있습니다. 성도교회 대학부는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이나 방선기 목사님 같은 탁월한 지도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이처럼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교회들은 복음주의 선교단체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아왔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청년, 대학부는 물론 심지어 여러 교회의 구역 성경 교재도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연구(SCL)>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DFD)>시리즈, IVF의 주옥 같은 성경공부 교재들, CCC의 <10단계 성경교재>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외에도 각 교회나 개인이 나름대로 성경공부교재를 개발해 왔으나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아 온 이런 선교 단체의 교재가 체계적이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일부 신앙심이 깊은 젊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좋은 성경공부교재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신학계에도 김세윤 박사나 홍인규 박사 등 등 세계의 신학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성경신학자가 많은데 이런 학자들이 신학계를 위하여 논문이나 책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교회를 위하여 체계적이고 훌륭한 성경공부교재를 만들어 전국 교회에 보급하는 것도 교회를 위하여 큰 공헌하는 일일 것입니다. 

   현대 신학교의 병폐는 지나치게 신학적 지식 추구에만 치중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을 무시하고 사회복음(Social Gospel)에 치중하는 자유주의적인 신학교와는 달리, 성경을 그대로 믿는 복음주의 신학교의 목표는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므로, 당장 신학생이 신학교를 졸업하여 나가서 목회를 할 때, 설교와 더불어 제일 먼저 해야 할 중대한 일이 개인 전도와 제자 양육인데, 이런 중요한 일을 너무나 등한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결과 신학교와 신학생 수는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지만 한국 교회 전체 성도 수는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단체에서는 예외 없이 잃어버린 영혼구원을 위하여 끊임없는 제자훈련, 전도훈련과 양육훈련을 시킵니다.<나는 행복한 전도자>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진 안산동산교회의 김인중 목사님 같은 분은 개인 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과 제자훈련을 교회 부흥의 원리로 삼고 있는데, 그런 분은 신학교에서보다는‘한국대학생선교회’같은 선교단체에서 <사영리> 전도훈련 등 철저한 제자훈련을 받은 분입니다. 어떤 교수는 신학교를 사영리나 전하는 선교단체 수준으로 격하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물론 신학교에서 폭넓은 신학적 사고와 지식을 배운다고 해도, 제가 보기에 신학교에서 선교단체 간사들만큼 만이라도 전도나 양육훈련을 받아도 한국 교회가 이만큼 침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IVF 같은 단체의 개인성경연구(PBS)수준은 어지간한 신학생들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성경 자체를 귀납법적으로 깊이 연구합니다.

   그러므로 신학교에도 성경적인 선교단체 동아리가 많이 들어가서 신학생들을 소수 정예로 제자훈련을 시켜 배출하고, 선교단체 출신의 대학생이나 간사들도 신학교에 들어가 폭넓은 신학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 교회의 체질은 상당히 변화되고 해묵은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부산 호산나교회의 최홍준 목사님은, 사랑의 교회에서 부목사로 오랫동안 시무하다가 전형적인 기성교회에 부임했습니다. 원래 그 교회는 오랜 역사와 분열의 상처가 있으며 목사와 장로 사이에 갈등이 심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장로님부터 담임목사에게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제자훈련목회를 통하여 당회와 교회의 영적 체질이 많이 개선되고, 아름다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양적으로도 크게 부흥되어 성경적인 교회다운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고려대 IVF 출신의 서울 홍성교회 이근수 목사님도 부흥사가 세운 전통적인 교회에 부임하였으나, 장로들로부터 시작하여 안수집사, 권사팀이 모두 제자훈련을 마쳤고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제자훈련을 실시한 결과 아주 모범적인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한때 교회에 분쟁이 생겨 10년간이나 추악한 법정 공방을 하며 싸우던 충정교회에, 사랑의교회 출신인 옥성석 목사님이 부임하여 제자훈련을 하면서 본질에 충실한 목회를 한 결과 교회가 평안해지고 든든해져서 성장하던 중 일산신도시로 옮겨 일산 성시화를 꿈꾸며 질적, 양적으로 아름답고 모범적인 교회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 간에 주도권 쟁탈전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고 피차에 상처를 받습니까? 이런 교회들은 ‘제자훈련 사역’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래 다녀도 신앙이 거의 성장하지 않거나 하루아침에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는 교인들을 볼 때 21세기의 교회에는 체계적인 제자훈련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제자훈련과 더불어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성령님의 능력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자교회의 정삼지 목사님은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 9년이나 제자훈련을 기초부터 끝까지 받고 성경구절을 900개나 암송했지만, 많은 기도를 통한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첫 개척 목회지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목회지에서는 교회성장학도 연구하면서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보따리 싸서 사모님과 몇 년을 추우나 더우나 강단에서 철야기도 하여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철저한 제자훈련과 동시에 치유를 비롯한 능력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김인중 목사님도 <나는 행복한 전도자>를 보면 단지 제자훈련 목회만 한 것이 아니라 교회개척 초창기에 40일 작정 철야기도를 하다가 성령님의 강한 능력과 방언을 체험한 이후에 더욱 담대하고 확신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랑의교회의 오정현 목사님이나 부산 풍성한교회 김성곤 목사님 등도 제자훈련과 성령운동을 훌륭하게 조화시킨 목회로 전국 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흔히들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는 분들이 기도생활과 전도에 약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제자훈련을 하는 자는 예수님처럼 금식기도도 하고 간혹 철야기도도 하고 지치지 않는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님의 능력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 전도의 능력은 말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제자 훈련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도슨 트로트맨은 한번 엎드리면 세 시간, 네 시간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제자 삼는 사역의 기술>과 함께 제자훈련 사역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훈련으로 되는 제자>의 저자 월터 헨릭슨 같은 분도 대학시절에 기도의 부족을 느낄 때면 친구와 함께 빈 기숙사 방에 들어가 매주 하루 씩 정하여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기도하곤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사역은 초창기 일꾼들의 많은 기도 생활을 통해서 전 세계에 힘차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CCC의 빌 브라이트도 대학교마다 전도하기 전에 기도로 캠퍼스를 흠뻑 적신 기도의 용장입니다. 그분은 40일 금식기도를 몇 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단체의 간사들은 장기 금식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제자훈련을 하는 분들이 기도 사역에 약하다면 균형 잡힌 제자사역은 아닙니다. 또한 일반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분들이 전도에 약하다면 균형 잡힌 제자훈련이 아닐 것입니다. 올바른 제자훈련 사역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태신자 운동을 하는 어느 교회에서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제자훈련을 많이 해도 전체 교회가 정체 상태라고 하면서 제자훈련을 평가절하 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제자훈련에 있다기보다는 아직도 엄밀한 의미에서 철저한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는 드물고 대체로 성경교재 한 번 공부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은 이제 몇몇 교회 외에는 겨우 도입 단계에 있으므로 제자훈련사역의 결과가 뚜렷이 나타나기는 이른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오랜 전통을 가진 선교단체와 제자훈련사역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랑의교회나 제자교회 그리고 풍성한교회 등의 양육과 제자훈련 사역을 겸손하게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시대의 필요한 사람은 훈련된 제자입니다. 훈련된 제자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도와 양육 그리고 목회자와 일치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며 교회의 여러 분야에서 봉사하는 일에 드려집니다. 제자훈련목회가 궤도에 오르면 지속적으로 훈련된 제자들이 배출되고, 그들은 교회의 요소 요소에서 봉사하게 됩니다. 오늘날 재미교포 2, 3세 가운데도 불과 극소수만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다닌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랍니다. 다음 세기에 한국 교회가 영국이나 기타 유럽의 많은 교회처럼 노인들만 몇 명 모이는 텅텅 빈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들에게까지 배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가르침만이 세대를 잇는 믿음과 헌신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주님의 말씀과 기도로 양육,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자훈련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세계선교를 위해서도 제자훈련은 필수적입니다. 선교는 곧 외국에서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근래의 한국교회의 전도의 열정은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부 교회 외에는 진정한 전도의 열정과 열매에 대한 간증은 그리 많지 못합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 윤용섭 회장이 언급한대로 오늘날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나가고 있지만 동일한 언어와 문화권에 살고있는 자기 이웃에게 전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말과 풍습이 다른 민족에게 가서 전도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근거가 분명치 못합니다. 해외교포 선교를 원주민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진정한 선교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에게 가서 선교하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오늘날 선교가 힘들고 어려운 이슬람권이나 공산권 등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 가운데 대부분은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분들이라고 합니다. 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UBF)에서는 철저한 제자훈련을 받은 선교사들을 세계 각 나라의 대학과 사회에 파송하였는데, 선교단체 중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인터콥 같은 선교단체에서 파견된 선교사들 가운데는 명문대를 나온 유능한 석, 박사들이 많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다른 분야에 진출한다면 출세 가도를 달릴 만한 엘리트들이지만, 복음을 위하여 바울처럼 모든 곳을 배설물로 여기고, 생명의 위험이 있는 회교권에서 주로 선교합니다. 그들은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서 몇 년을 깊이 교제한 후 형제처럼 되어 비밀을 누설하지 않을 정도가 되면 복음을 전하여 제자로 삼습니다. 그를 양육하여 그로 하여금 다시 다른 친구를 제자 삼게 한다고 합니다.

   한국 초창기에 마포삼열(사무엘 마펫) 선교사 같은 분이 평양신학교를 세워 신학생을 배출하여 선교에 큰 공헌을 한 것처럼, 신학교를 마음대로 세울 수 있는 나라는 현지인을 위한 신학교를 세워 선교하고 제자훈련도 할 수 있지만, 선교의 자유가 없는 회교권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제자훈련 사역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제자훈련 선교사역은 교회 성장학의 측면에서 우선 볼 때에는 매우 느려 보이지만, 이런 사역이 몇 십 년 후에는 일반 선교사역보다 수천 배 혹은 수만 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제자 삼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훈련받기를 원하고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원하는 준비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을 제자훈련목회를 통하여 더욱 헌신되고 역량 있는 일꾼으로 세워주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먼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근자에 미국의 앞서가는 복음주의 신학교에서는 제자훈련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교과 과목에 넣는다고 합니다. 한국의 복음주의적인 신학교에서도 신학생들이 다른 여러 신학 과목을 공부하면서, 4년 혹은 3년간 철저한 제자 훈련과 전도 훈련과 기도 훈련을 통하여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서, 졸업 한 후에도 능히 제자로서의 전도와 제자양육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신학생을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도 선교 단체에서 훈련받고 신학자나 목회자가 된 분도 많으므로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로버트 콜맨 박사는 지금도 이른 아침에 소수의 제자 신학도를 대상으로 제자 삼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도 선교단체 출신의 신학이나 대학 교수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그냥 자신의 전공 과목을 가르치기에 몰두하고 제자 삼는 사역은 별로 안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직장 일도 충실히 하면서 지속적인 직장전도와 제자 삼는 사역을 강조하는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선교사역은 본받을 만합니다. 차세대를 위한 복음화 전략에 있어서 성령운동과 더불어 제자훈련은 필수적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교회제자 훈련원에서는 목회자를 위한 제자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는 <새생명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기독학생회(IVF)의 박영덕 목사님과 그 동기들이 총신대 신학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아나톨레>가 여러 신학대학원의 신학생과 졸업한 목회자를 위하여 귀납법적 성경연구 등을 하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을 받고 싶어도 기회가 부족합니다. 사랑의 교회의 목회자 제자훈련 세미나는 제자훈련에 대한 동기부여도 하고 지금까지 많은 사역을 했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하려면 최소한 2-3 년간은 소수가 매주 모여 제자훈련을 받아야 성도들을 도와 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선교단체 출신의 목회자로서,‘목회자를 위한 제자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분도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각 도시마다 이런 분이 있어서 그 도시의 목회자 가운데 제자훈련목회에 관심이 있는 10명 정도의 목회자를 모집하여 일주일에 하루 정도 함께 모여서 2-3 년 정도 성경공부와 전도훈련, 묵상훈련, 암송훈련 등 제자훈련을 하는 것은 목회자 자신과 교회를 위하여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몇 팀의 목회자에게 제자 삼는 훈련을 하면서 동시에 훈련받는 목회자들이 개 교회에 가서 자신이 목회 하는 교회의 충성된 일꾼들을 계속 제자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어느 신실한 장로님은 자녀를 위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성경 과외선생으로 모시고 성경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귀한 분입니까?

   선교 단체 출신의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가 자기 교회 교인만 훈련시키지 말고 같은 고생길을 가는 목회자들을 위하여 주중에 이런 목회자 제자 훈련 팀을 만들어 계속 훈련을 한다면 도시마다 교회에 제자훈련 목회가 서서히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역이 서서히 전국 방방곡곡과 세계에 나가 있는 한인 선교사들로 인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통 교회의 고질적인 많은 문제들이 사라지고 정화될 것이며, 영국이나 독일의 교회처럼 우리 후손 대에 한국 교회가 텅텅 비는 불행이 사라지고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가 훨씬 앞당겨 질 것입니다.

 최소한 몇 달 동안 신참 외판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직접 판매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훌륭한 세일즈맨 밑에서 훈련받은 세일즈맨은 역시 잘 팝니다. 요즘은 미국 같은 선진국의 대기업에서는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보다도 일선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뛰면서 자기 회사의 물건을 많이 판매한 경험이 있는 세일즈맨 가운데 가장 실적이 좋은 사람들이 대개 기업의 이사나 사장으로 많이 선출된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원으로 하여금 세일즈 체험을 먼저 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 같은 분도 경영학박사 출신이 아니라 유능한 세일즈맨 출신입니다.

 

   선교단체에서는 교회나 신학교와는 달리 전도에 능숙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전도의 시범을 보여주면서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는 혼자서도 전도를 잘하게 됩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대부분은 신학교에서 이런 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개인 전도를 자신 있게 못하는 신학도와 목회자를 대량 배출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전도 못하면서 전도하라고 설교를 한다 해도 교인들에게 먹혀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나는 바담 풍해도 너희는 바람 풍하라”는 서당 선생의 말이나 “나는 옆으로 기어도 너희는 똑바로 기어라”고 호령하는 어미 게의 모순된 행동과 같습니다.

 

   요즘 기도학을 신학교의 필수과목으로 정하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고 주님의 최후의 전도 명령을 받아들이는 복음주의 신학교라면, ‘전도학’을 필수과목으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학 교수님은 이론만 아는 학자보다는 선교단체 같은데서 전도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직접 전도하여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한 풍부한 경험이 있는 분이 해야 합니다. 론 쎄니나 리로이 아임스, 폴 리틀 혹은 빌 브라이트 같은 분이 쓴 전도에 관한 책이나 글이 더 감동적인 것은, 의자에 앉아서 쓴 이론서가 아니라 영적인 전투인 전도의 현장에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한 실전 경험에서 나온 전도 체험기이기 때문입니다. 최자실 목사님이나 김인중 목사님이나 근자에 발간된 <주안교회전도이야기>의 전도왕들이 쓴 전도 책이 감동을 주는 것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산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교인 700명이 될 때까지 개인 전도를 하신 우리 시대의 불타는 전도자 김인중 목사님이 신학생들에게 전도를 가르친다는 소식은 고무적입니다. 목사는 목자 혹은 양치기가 아니라 목장 경영주가 되어야 하지만 목장 경영주도 처음에는 양치는 목동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며 총사령관이라고 전도하지 않고 보좌에 앉아 계셨습니까?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열심히, 피곤에 지칠 정도로 전도하신 분이 우주의 왕이시며 천국 군대의 총사령관이신 주님이십니다.

 

   마귀는 신학교에서 더 이상 전도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교수와 학생들 모두 지나치게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영혼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도록 흉계를 꾸미었는데, 이것이 전 세계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크게 성공하여 특별히 서구의 신학생과 목사들이 대부분이 영적 전쟁에서 전의를 상실하고 전도에 무기력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마귀는 전도하지 않는 신학교의 지붕에 드러누워 코를 드르렁 골며 잠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중 몇몇 신학교에서는 전체 학생이 시간을 정해놓고 전도에 힘쓰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귀한 신학교입니다. 신학교가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기도하고 전도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전병욱 목사님의 지적대로 신학교 도서관에 가면 신학생들이 너도나도 토플 책 펴들고 유학 가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대학 교수 자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제 정말 탁월한 실력이 있고 학자적 자질이 있는 신학대학원 학생 중 소수의 신학생만 유학해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소견은 일반 목회자가 되려면 대학과정을 나오고 신학대학원 3년 과정을 나온다면 목회 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고 봅니다. 목회 하면서 평생을 혼자서 책을 많이 읽고 연구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물론 더 많이 배워 박사 학위가 있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말입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이나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님 같은 분들은 박사 학위가 없어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니까 목회를 크게 하십니다. 세계적인 윌로우 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도 대학 과정만 마쳤고, 제가 알기에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나 최근에 <새 바람 강한 불길>이라는 책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짐 심발라 목사님은 신학교 문턱에도 못간 분입니다. 근자에 한국의 목회자 가운데 탁월한 강해 설교가로서 한국 교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대구동부교회의 김서택 목사님이나, <파워 있는> 저서들을 통하여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삼일교회의 전병욱 목사님 같은 젊은 목회자들도 유학을 갈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이 있지만 목회자와 설교가로서 굳이 박사 학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국내에서 기본적인 신학 공부만 하고  많은 독서를 통하여 혼자 연구에 전념하여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목회자들입니다. 목회자에게는 학위도 필요하지만 학위보다는 실력이, 실력보다는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영원한 구원을 믿는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더 이상 전도와 양육에 무능한 목회자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신학교 교수님들부터 기도를 많이 하고 전도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학대학의 교수님은 일반 대학교 교수와 다른 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학대학 교수님에게 성경과 신학 연구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모든 연구와 가르침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최후의 명령인 전도를 위해서 일진데, 신학생들에게 전도훈련도 시키고 그들과 함께 전도도 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신학대학 교수님 중에는 학문과 영력을 겸비하여, 진정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기도도 많이 하며 실력도 뛰어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덕분에 한국 교회가 이만큼 부흥되어 왔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어느 글을 보니 신학교 교수님 가운데는 새벽기도는 고사하고 수요일 밤과 주일 밤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는 분이 있다고 우려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 교수님은 일반대학 교수와는 달리 신학적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학교가 목사 자격증 주는 학원밖에 안됩니다. 신학교 교수님은 목회자보다 사명이 훨씬 더 막중합니다. 수업 시간에 말씀 한 마디 잘못하면 수많은 교회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하나님의 종 박윤선 목사님처럼 오히려 목회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더 많은 눈물로 진리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박사 학위 받은 뒤 이제부터 진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지만, 연구 시간을 조금 줄이고 기도와 전도 생활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신학자의 사명이 진리를 밝히는 것이며 신학 공부하다가 죽으면 순교라는 박윤선 목사님은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그래도 누구나 전도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롬은‘성경은 처음 믿는 사람이라도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드러운 음식이며, 신학자라도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한없이 깊이 연구할 수 있는 깊은 진리가 담긴 음료’라고 말했듯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성경은 계속 연구되어 왔고, 아직도 성경에는 발견되어져야 할 무궁무진한 진리의 광맥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학자나 신학자는 그 진리를 찾기 위해 성령님의 지혜를 힘입어 깊이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기독교의 진리는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지극히 단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셨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타락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며,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신다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한마디로 최권능 목사님 말씀처럼 ‘예수 천당!’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신학자라 해도 그 단순하고 분명한 구원의 진리를 직접 개인에게 전하지 않아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각자의 은사가 다르고 맡은 직책이 다르기 때문에,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거나 책을 쓰는 일도 복음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연구를 하여 강의를 하고 자신의 학문 분야를 연구하여 논문이나 책을 발표하는 일도 복음 증거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것처럼, 신학교 교수님들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에게 가서 단순하나 심오한 복음을 직접 전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주님을 영접하게 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복음주의 계통의 신학자들의 모임인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같은 실력 있는 신학자들의 모임에서 신학 세미나와 수준이 높은 논문 발표가 끝난 후 한시간 정도라도 버스 터미널이나 공원 같은데서 사영리나 브리지나 성경을 들고 개인 전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얼마나 흐뭇하겠습니까?

   주님이나 바울처럼 사람을 낚기 위해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 전도하는 사명에서 제외된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연구와 강의를 통하여 학문을 전하는 신학자라고 해도 전혀 개인 전도를 못할 정도로 바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지나치게 학문적 성과만 추구하던 유럽의 대부분의 신학교나 기독교 계통의 대학교들, 그리고 미국의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등 기독교 정신으로 출발한 명문대의 신학대학원은 대부분 자유주의 신학의 점령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신학 공부를 많이 한다고 자유주의가 된다는 말도 아니고 요즘은 오히려 복음주의계통의 신학자들이 더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복음주의 신학교 교수님이라면, 복음주의적 목회자를 양성하는 영적 지도자답게 영적인 능력을 얻기 위해 기도도 더 많이 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시간을 내어서라도 전도도 가르쳐야 한다고 믿기에 이런 충언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평신도보다는 목회자를, 목회자보다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 교수를 가장 악랄하게 공격할 것은 자명합니다. 신학교 교수 한 분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 영적으로 타락하거나 진리에서 이탈하면 마귀는 큰 잔치를 베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태산이 무너지는 것보다도 큽니다. 신학자 한사람이 칠계를 범하였다면 도덕적인 비난만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탁월한 신학자 한 사람이 잘못된 신학 사상을 가르치면 한 교단이나 나아가 한 나라 전체의 교회가 잘못되고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교회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신학생 한 명이 장차 얼마나 많은 양떼를 목양 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학생들 가운데 김삼환 목사님이나 이동원 목사님 같은 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강의실에 지금 신학생들이 앉아 있다면 그 강의실에는 장차 그들이 목양 할 수백 명, 수천 명이 앉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회자 후보생을 가르치는 놀라운 사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가르치고, 제자들을 위한 기도도 없이 가르치고,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도해 본 일도 없이 가르치고, 단지 지식만을 가르친다면, 일반 대학 교수와 별로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영적으로 악영향을 기칠 것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신학생에게 종종 “기도 없이 공부만 하면 인본주의자, 자유주의자 돼, 기도 많이 해야 돼!”라고 충고 하셨다고 합니다. 신학자든 목회자든 루이스 벌코프나 벤자민 워필드 박사 같은 분도 닮아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주님을 닮고 바울을 닮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바울 사도가 구약 성경 신학을 연구하고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한다고 밤낮 책상 앞에만 앉아 있거나 상아탑 안에서만 성경과 신학 지식만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도 성경을 깊이 연구했으나 바깥 세상으로 나가서 목자 없는 양 같은 많은 회중들 앞에서나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처럼 잃어버린 영혼에게 직접 전도하는 일을 지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주님의 보혈을 통한 구원과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고 있는 신학교 교수님이라면 강의실에서 신학생들에게 성경과 신학을 철저히 가르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학생들과 함께 일주일에 단 한 시간 정도라도 학교 밖으로 나가서 전도를 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CCC나 ESF나 IVF나 네비게이토선교회 같은 선교 단체 출신의 교수님이나 혹은 선교단체 간사 출신의 신학생이 개인 전도의 경험이 없는 교수님과 신학생들에게 사영리나 브리지 같은 것으로 전도법을 가르친 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정기적으로 나가서 함께 전도도 한다면 신학교의 영적 부흥과 장차 목회현장에 나가서 개척교회하고 개인 전도해야 할 신학도들에게 얼마나 실제적인 도움이 되겠습니까? 일주일에 하루 오후 시간에 모든 교수님과 신학생들이 함께 모여 기도한 후, 다른 대학 캠퍼스나 공원이나 가가호호 다니면서 둘씩 짝지어 흩어져 개인 전도도 하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대중 전도도 한 후 전도 간증을 한다면, 신학교가 영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되고, 신학교가 살면 한국 교회가 살고, 나아가 그들이 선교사로 나가면 세계가 사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전에 들으니 장로회 신학대학교의 어느 교수님이 신학생 전도 팀과 함께 전철에서 대중전도를 하신다는 소식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대중전도는 현대인에게 맞지 않으므로 개인적으로만 조용히 신사적으로 전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0장 20절을 보면-이것을 'twenty twenty vision' 이라고 하는데-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라고 했듯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 개인전도도 해야하고 공중전도도 해야합니다.

 

  빌리 그래함이 여의도 광장에 백 만 명을 앉혀놓고 전도 설교하는 것이나 전철에서 승객들 앞에서 전도 설교하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빌리 그래함 집회 같은 데서는 자발적으로 참석한 군중들인지라 조용히 듣고 있는 반면 버스나 전철 같은데서 전도 설교를 하면 듣기 싫어 인상이 우거지상이 되거나 간혹 깡패 같은 사람이 위협을 하고 삿대질한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전철에서 전도하거나 물건을 팔면 경범죄로 벌금을 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모인 데서만 전도한다면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조용한 전철에서 그만큼 물건이 잘 팔리기 때문에 판매원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가며 물건을 팝니다. 그들 열성 때문에 그 회사와 가정이 도움을 받습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세상 법을 다 지키고 전도한다면 전도가 불법인 이슬람 국가나 공산권 나라에는 선교사가 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사도도 산헤드린 공회나 로마 정부의 법을 어기고 전도하셨습니다. CCC 의 어느 간사님은 아침에 버스 토큰을 한 움큼 산 후 온종일 버스마다 다니면서 사영리를 외치며 전도하다가 과로하여 젊은 나이에 주님 품에 안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옛날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할 때도 듣고 싶어 모인 사람에게만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는 가련한 영혼에게 주님이 더 필요합니다. 밤늦게 화장을 진하게 하고 술집으로 나가기 위해 상하고 지친 몸과 영혼으로 전철에 실려 가는 불쌍한 여인들에게도, 인생 말년에 아무런 내세의 소망 없이 초점 잃은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며 의자에 쓰러져 있는 초라한 노인들에게도 영생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용한 전철에서 갑자기 “예수천당, 불신지옥!”하고 외치고 지나가는 전도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승객들이 깜짝 놀라서 전도의 효과가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본적인 예의가 필요하고 성경의 권유처럼‘온유와 두려움으로’(벧전3:15)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영리나 다리 예화나 전도폭발, 혹은 민남기 목사님의 한국식 전도법 등의 내용을 잘 암기했다가 시간이 없으면 간략하게 줄이든지 그대로 하든지 차분히 전한다면 그 가운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멋진 양장을 한 여전도사님이 사영리 같은 시청각 전도지를 크게 만들어 한 장씩 넘기면서 차분하게 전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보기에 좋고 거부감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저명한 목사님은 하루에 성경을 네 시간 읽어 500독을 하셨다는데, 목회자들에게 하루에 성경을 4시간 이상 읽으라고 권하기도 하고, 또 어느 목사님은 목회자들에게 하루에 8시간 이상 기도하라고 주장하시며, 강남의 대형 교회의 어떤 목사님은 목사가 심방도 하지말고 설교만 잘 준비하여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 모든 분들에게 배울 점도 많고 일리도 있지만 그것은 그분들 나름의 경험적인 주장이고, 우리는 그분들보다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과 바울의 생애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은 성경도 깊이 공부하셨고 설교와 기도도 많이 하셨지만 무엇보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전도에 더 많은 시간을 바쳤습니다. 특히 목회자의 사표인 바울 사도는 가는 곳마다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기도와 설교 그리고 전도의 일에 균형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한가지만 강조하는 것은 균형을 잃기 쉬우나, 예수님께서 유언처럼 남기신 가장 중요한 최후의 명령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전도 명령’(Evangelical Mandate)이라고 믿습니다.

   다음은 김상복 목사님의 <목회자의 리더십>에 나오는 비유를 약간 고친 것입니다.

   어느 어촌에 어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바다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 주, 매 달, 매 해 마다 어부라는 사람들이 고기는 안 잡고 회의실에 모여서 어업에 관한 토론만 합니다. 더 새롭고 나은 고기잡이 방법을 새로 연구하고 고기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고 논쟁도 합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지역적인 혹은 전국적인 대회를 개최하고 간혹 세계적인 대회까지 개최해서 어업을 북돋우기 위해 어업에 대한 온갖 방법, 즉 고기를 잡는 데 필요한 새로운 장비, 고기를 모으는 법, 새로운 먹이의 발명 등에 관한 회의를 하고 강연도 듣습니다. 이것은 노회, 연회, 혹은 총회나 신학학회입니다. 이 어부들은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놓고 ‘고기잡이 총본부’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총회회관 이나 선교센터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모든 사람이 다 어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부들은 고기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어부들이 아무도 고기잡이하러 나가지 않습니다. 어부들의 일치된 의견은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일에 충성을 다하도록 강렬하게 권고하기 위하여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위원회를 구성해서 위대한 비전과 용기를 가진 어부가 고기잡이에 관해 연설도 하고 고기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 정의도 내려보고, 먼바다에 가서 원양어업을 하여 많은 물고기를 잡는 안건도 내어놓고 열심히 토론합니다. 이것은 해외 선교입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넓은 땅에 어부 훈련소, 수산 대학과 해양대학 등을 지어놓고 -신학교입니다- 거기서 신참 어부들에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어업학을 가르치는 분들은 다 박사학위를 가진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교수들은 한 명도 직접 고기를 잡아본 적이 없고 지금도 잡지 않습니다. 그저 어업학을 가르칠 뿐입니다. 어떤 분들은 어업학 연구도 많이 하고 여행도 많이 해서 어업 역사를 연구하기도하고, 수세기 전에 조상들이 얼마나 위대한 어장을 경영했는지를 보기 위해 멀리 외국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오래 전 어업을 유산으로 남겨준 충성스런 어부들을 칭송하는 연설도 했습니다. 오래된 어업학 교본을 원어로 깊이 연구도 합니다. -성경 원어 연구입니다. 그러나 교수들은 한번도 직접 배를 타고 고기 잡으러 나가보지 않습니다. 그들도 고기 잡는데는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졸업한 신참 어부들도 고기 잡으러 가기가 힘드니까, 바닷가에 작은 배를 한 척 사놓고-개척 교회입니다-고기 잡는 법에 대한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배에 잡아놓은 고기를 기웃기웃하다가 기회가 있으면 가져옵니다. 교인의 수평 이동입니다. 심지어는 다른 여러 작은 배의 고기를 자기의 큰배로 잔뜩 옮겨 놓은 후, 다른 작은 배들의 고기를 빠른 시일에 자기 배로 많이 옮기는 신바람 나는 마켓팅 작전의 비결에 대한 세미나도 개최합니다. 바다에서 폭풍우와 파도를 헤치며 직접 고기를 잡는 것보다는 이미 잡은 다른 배의 고기를 옮겨 싣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10년이 가도 어부들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지 않습니다. 다른 배가 잡아 놓은 고기 쟁탈전을 벌입니다. 이른바 신도시 목회 전략을 밤낮 연구합니다. 예수님께서 고기를 잡지 않는 사람은 참된 어부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 그들의 마음은 몹시 섭섭했습니다.

 

   오래 전에 서울역 출구에 겨우 거동하시는 연세가 팔십 혹은 구십 세가 넘어 보이는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이 인쇄한 전도지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전도지의 내용은 자신이 유언처럼 남기는 중요한 글이니 꼭 읽어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얼마 후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분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토록 애타게 전하시던 사랑하는 주님의 품에 안기신 것 같습니다. 참으로 귀한 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제 생각에는 목회자나 신학자가 인생 말년에 걸어다닐 정도만 되면 저 산속 별장 같은데서 고독하게 지내지 말고, 역 대합실이나 터미널, 전철 같은데 다니면서 그 ‘서울역 전도 할아버지’처럼 유언을 남기는 마음으로 전도지를 돌리면서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주님처럼 몸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전도지에 “저는 어떤 교회에 시무 했던 아무개 목사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제가 한평생 섬겨왔고 전해왔던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과 천국의 소망에 관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이런 식의 전도지를 만들어 전도하면서 다닌다면 전도에도 더 권위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자신이 친히 전도를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듯이, 전도보다 고귀한 일은 지상에는 없다고 믿습니다.  

 

   선교단체 같은 곳에서 제자훈련을 받으며 사영리나 다리예화 전도지 같은 것으로 전도를 많이 하고, 주님을 영접시킨 전도의 경험이 많은 신학도나 목사님 가운데 뜻이 있는 분은 ‘목회자 전도 훈련원’ 같은 것을 세워 전국의 신학도나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전도 훈련을 끊임없이 시키기를 원합니다. 철저히 체계적인 전도 훈련을 받은 분이 목회자 전도 훈련원을 세워 다른 성도보다는 먼저 담임목사와 단 둘이서 3-4일 정도 함께 가가호호 다니면서 개인전도하는 훈련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지금도 그런 식으로 전도훈련을 하러 다니는 목사님들이 더러 있는데, 체계적으로 잘 하는 분도 있으나, 이왕이면 UBF나 ESF, IVF나 네비게이토 선교회나 CCC 같은 선교단체 출신의 신학도나 목회자 가운데 목회자에게 전도 훈련을 시키는 전도훈련전문가가 나와서 교회에서 시무 하시든지 아니면 전국의 주요도시에  전도훈련센터를 세워 전국 모든 교회에 전도의 불을 붙이는 일도 막중한 사명일 것입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전도하라고 재촉하여 전도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님처럼 담임 목회자가 전도에 열정이 생기고 전도를 많이 해 본 후 목회자가 직접 교인들에게 전도훈련을 시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 나는 ‘바담 풍해도 너희는 바담 풍해라’는 우를 목회자가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 신학교에서는 전도훈련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전도훈련을 체계적으로 시키지 못한 결과로 목회자들이 전도훈련을 받지 못했으므로, 신학교에서 전도훈련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시급하고, 아울러 전도의 경험이 풍부한 선교단체 출신의 신학도나 목회자 중에서 영혼구원의 열정과 전도 경험이 풍성한 사람이 신학도나 목회자를 위한 전도훈련을 반드시 해야 할 것입니다.        

                   
21. 교도소 목회 사역      

 

   박효진 장로님은 지난 날 청송 감호소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수인들에게 전도하시고 전국적으로 간증집회도 다니시는데  간증을 들어보니 감동적이었습니다. 박 장로님이 지은 책 <하나님이 못 고칠 사람은 없다>을 보면, 부인 집사님의 기도를 통하여 교회에 다녔지만 미지근한 잡사(?)였는데 중학교 교사로 계시던 이덕진 집사님(현재 서울명문교회 목사님)과 신앙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눈물로 회개한 후 성령충만하여 청송감호소의 죄수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그분에 의하면 교도관 가운데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어 교도관의 신분으로 교도소의 일도 하고 성경공부도 가르치는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자신도 전과경력이 있는 담안 선교회의 임석근 목사님은 출소한 전과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되는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청송감호소 같은데서 나온 전과자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을 합니다. 때로는 변호사들에게 부탁해 전과자들의 무료변론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출소자나 재소자 가족을 위해 쉼터도 마련해 주고 여러모로 돕고 있는 기독교 세진회나 기타 여러 교도소 선교단체에서 세상 사람이 아무도 몰라주지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하는데 이런 분들이 있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차가운 바람으로 외투를 벗기지 못하지만 따스한 햇볕으로 벗길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엄한 채찍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죄수들을 감화시켜 변화시키는 일은 주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한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 교도소 설립 허가를 받았는데, 그 동안 교도소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인식되어 왔으며 정상적인 교정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습니다. 재범률이 60%를 웃도는 현재의 교도행정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8백여 명에 이르는 기독 교도관과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모으면 모범적인 사립교도소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텍사스의 주립교도소는 30명의 수형자를 대상으로 18개월의 교도소내 교육과 6개월의 출소 후 교육을 실시한 결과 획기적인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8개월의 프로그램에는 신앙에 기초한 생활 훈련, 경건회, 교도 작업, 생활기술, 제자훈련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70%에 이르던 재범률이 4%미만으로 낮아졌다고 합니다. 브라질의 휴마이타 교도소 역시 교도를 위한 프로그램 중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성경공부입니다. 신앙으로 인도하는 이 프로그램을 거친 5백 20명의 재소자중 교도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은 20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여러 목회자들이 교도소 전도와 출소자를 위한 목회를 하거나 복지시설을 운영하는데, 교도소 전도나 출소자를 위한 이런 소중한 일을 교회와 사명감이 있는 신학도와 목회자가 앞장서서 해야 할 것입니다.

                  

22. 성경원어 목회 사역


   분당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님에 의하면 서울에서 목회 하실 때, 여름 휴가철에 젊은 성도 부부들 몇 명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번 휴가 때에는 그들이 조용한 기도원에 가서 자기들끼리 야고보서를 헬라어로 공부하러 가는데 기도해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성경 연구 세미나에 참석한 한 목사님은, 세미나에 참석한 평신도 가운데 헬라어 성경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헬라어의 문법을 묻는데 대답을 못해 낯이 뜨거워 졌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공부한 후 손을 놓았는데 목회자는 누구나 원어성경을 잘 할 줄 알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도시의 지식층이 많이 다니는 교회는, 원어로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들이 늘어간다고 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어느 나라에 살든지 모두 두 개의 국어를 안다고 합니다. 그들의 모국어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열심 있는 회교도들은 아랍어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자손들에게 아랍어를 가르칩니다. 꾸란을 외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신학생은 자기 동네에만 꾸란을 구두점까지 정확하게 외워서 쓸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 신학생 자신도 꾸란 전체의 약 삼분의 이 가량을 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일본 만화가 물밀 듯이 밀려와 국내 만화 시장를 거의 잠식했는데, 그중 일본 만화광들은 일본어 만화책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여학생은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만화는 오역이나 왜곡이 많고,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성적인 묘사나 폭력장면을 삭제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생한 맛을 보려고 일본어를 배운다고 합니다. 일본 원어 만화를 보아야 만화의 참 맛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질 음란 폭력 문화를 맛보기 위해서도 원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기 전, 민중 운동이 극에 달했을 때 마르크스주의자 중에서는 마르크스나 레닌, 막심 고리끼나 프레하노프의 원전을 읽고 공산주의를 더 정확하고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러시아어를 배우려는 열풍이 대학가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 퍼진 적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성경 원어를 등한시하는 우리는 무엇인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개역 개정판 성경전서가 15 년간의 개정 및 감수작업을 거쳐 국내의 저명한 신학자와 목회자 2,000명의 감수와 의견 수렴을 거쳐 발간된 완벽하다시피 한 개정번역이라고 하며, 요즘에는  쉬운 성경, 표준새번역성경, 킹제임스 성경 등 많은 성경이 계속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완전한 번역도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어 성경에 비하면 무언가 부족할 것입니다. 

   김지찬 박사의<언어의 직공이 되라>를 보면 원어연구의 중요성을 어거스틴의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어거스틴은 창세기 10장19절의“니므롯이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할 때 ‘여호와 앞에서’란 표현을 가지고 고민을 했습니다. 헬라어로는 ‘엔안티온 퀴리우 투 데우’인데 ‘앞에서’란 의미의 전치사 ‘엔안티온’이 때로는‘대항하는’이란 의미로도 쓰입니다. 이 때문에 어거스틴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 이라고 번역해야 하는지, 아니면“여호와에게 대항하는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번역해야 하는지에 대해 길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논의는 히브리 원문을 보면 전혀 쓸데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엔안티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전치사 ‘리프네’는 ‘대항하는’이라는 의미가 없이 항상 ‘앞에서’라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거스틴이 히브리어로 이 본문을 읽었다면 이런 식의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원어로 읽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공로이며, 루터와 칼빈은 하나님을 위한 열정과 교회개혁의 정열을 가지고 있었기에 “원천으로”(ad fontes) 돌아가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원전으로 연구하자는 말씀입니다. 루터는 학식이 풍부하며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하여 여러 가지 성경 해석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장로교 등 개혁주의 교회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한 칼빈도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에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쳤는데 유명한 칼빈 주석은 그의 탁월한 강해 설교를 집대성한 것입니다. 미국 뉴잉글랜드의 위대한 신앙부흥을 위해 쓰임 받은 조나단 에드워즈 역시 예일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벌써 히브리어와 헬라어, 라틴어를 완전히 섭렵했습니다. 이들은 성경 말씀을 사모하고 깊은 뜻을 알기 위해 기꺼이 원어를 공부하는데 시간과 정열을 투자한 결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마실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물이 있을지라도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 나오는 맑은 물이 가장 깨끗하고 순수하듯이 계시의 가장 올바른 의미도 원어 성경을 읽을 때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근래에 원어성경을 해설한 방대한 책들이 줄줄이 나오는 데 매우 바람직한 경향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신이 스스로 원어 성경을 읽을 줄 안다면 더 분명하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강해 설교에 있어서 원어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구약 성경이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므로, 목회자가 성경을 깊이 연구하려면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 연구는 필요합니다.

   더구나 간혹 어떤 목사님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 가운데 다른 집회에 가서 바르지 못한 성경 해석을 듣고 와서는 목회자 앞에서 우겨될 때에는 참으로 속이 상한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는 그들에게 목회자를 무시한다고 괘씸하게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내어 원어 성경을 공부를 해서, 히브리어나 헬라어 성경을 척 펴들고 원어로 뜻을 말해준다면 훨씬 목회자로서의 권위가 설 것입니다. 신학박사인 권성수 목사님은 변호사인 신자가 은근히 성경에 대해서 묻기에 원어로 시원스럽게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원어로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들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지식층 장로님이나 집사님 가운데는 영어나 독어 성경 등 여러 번역판을 펴놓고 성경을 창세기부터 전체를 연구하는 분이 많이 있으므로 원어 성경을 연구하지 않으면 그들보다 떨어질 수 있으므로 우리가 할 수 있으면 조금씩 시간을 내어서 원어를 계속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꼭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원어 성경은 맑고 깨끗한 샘물과 같으므로 원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더 순수하게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꾸준히 하루에 3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2-3 년만 원어를 공부한다면, 한 평생 성경연구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언어인 헬라어와 가장 정서적인 히브리어를 통하여 성경을 연구하는데 이바지 하고자, 김선기 목사님 같은 분은 페트라 성경원어연구원을 세워 책도 펴내고 강좌도 개최하는 등 성경 원어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 분에게 원어를 배워서 원어 성경을 연구를 통하여 강해 설교 준비에 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중요한 교육문화시설이 그러하듯, 몇몇 성경원어연구원들도 대부분 서울에 있어서 지방에 사는 목회자들에게는 거리나 시간상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목사님들 가운데 원어에 탁월한 실력이 있어서 원어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목회를 하면서 평일에 각 지방의 중소도시에도 성경원어연구원을 세워 목회자나 신학생들을 계속 가르친다면 성경 연구에 많은 유익이 될 것입니다.   

 

23. 이단연구 목회 사역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탁명환 교수는 헌신적인 신흥 종교 연구가였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이해 관계에 얽힌 교회와 개인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우리나라의 이단과 사이비 종교의 실상을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파헤쳐 이단의 발호를 막는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수많은 이단의 실상을 우리가 그토록 소상히 알고 대비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떤 신학자나 목회자도 하지 못한 일을 책을 통해서, 그리고 직접 사진기를 들고 현장을 뛰면서 폭력과 테러의 위험을 무릅쓰고 면모를 밝혀 내었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책들은 이단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오로지 이단 연구에만 한 몸을 불사르다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이단 종파 연구 분야에서 30년 간 교수로 계셨고 여러 권의 이단종파 비판에 관한 책을 저술하신 박영관 박사님은 ‘한국 기독교 이단 종파 연구소’와 ‘이단 피해 상담소’를 세워 이단 종파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최삼경 목사님, 진용식 목사님 등 몇몇 목사님들이 이단과 사이비종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등에서 이단 연구를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런 어렵고 힘든 일을 한국 교회는 힘을 합치지 않고 주로 개개인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운 것은 한국 교회의 과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에는 이단에 대해서 그 동안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탁명환 교수님 같은 분들의 뒤만 따라 다니면서 뒷북만 쳐 왔습니다. 그리고 교단 총회에서도 깊은 신학적 연구 없이 감정적으로 다른 교단을 함부로 이단으로 판결을 내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습니까? 어느 큰 교단에서 조용기 목사님에게 이단 판결을 내려서 몇 년 동안 심각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한 바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이단과 이단이 될 위험성을 가진 이설에 대해서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몇 가지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심을 부인하면 이단입니다.

   둘째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신성)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심(인성)을 부인하면 이단입니다. 성자께서 신성만 가졌다고 주장하거나 인성만을 가졌다고 주장하면 이단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구원 사역과 영원한 천국을 부인하면 이단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노력으로 낙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등의 자유주의 신학도 이런 의미에서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도 이단이라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영재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말했습니다.

   넷째로, 성령님께서 인격적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고 바람이나 전기와 같은 물질이나 활동력이라고 주장하면 이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등의 이단 뿐 아니라 그레스햄 메이첸 박사의 말처럼 예수님의 신성이나 성령님의 인격성을 부인하는 현대 자유주의도 진정한 기독교가 아닌 자연주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로, 구, 신약 성경 66권을 더하거나 빼면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이설입니다. 성경 외에 몰몬경, 원리강론 등 자기들의 교리서를 성경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권위를 가진 것으로 주장하면 이단입니다.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주신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섯째로, 성경에서 모든 이적과 기사를 부인하는 자유주의나 성경보다 신비로운 체험을 높게 평가하는 신비주의도 이단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곱째로, 인간 교주를 신격화하면 이단입니다. 오늘날 자칭 예수나 재림 주라고 하는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이나 예수님 혹은 성령님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은 무서운 이단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여호와의 증인 본부의 ‘통치체’에 권위를 부여하여 신격화합니다.

   여덟째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성경적인 거룩한 삶을 정면 도전하면 이단입니다. 진실한 교회의 성도도 때로 실수하여 범죄하는 수가 있고, 이단 중에서도 때로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가장하는 집단도 있으나, 깊이 파헤쳐 보면 이단에 속한 자들은 대부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종교개혁 이후에 그들의 이단성 있는 몇몇 교리는 더욱 강화되었고 오직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선행을 믿음과 함께 구원받는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효력은 반감되며‘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고 맙니다.

 

   불교와 같이 자기 공로와 선행과 노력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모든 종교는 마치 부산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태평양을 자기 힘으로 수영을 해서 가려는 시도와 같이 불가능합니다. 천주교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행위를 동시에 구원의 조건으로 간주하는 것은, 마치 태평양을 건너가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와이까지 밖에 구원의 다리가 놓여져 있지 않으므로 하와이부터 미국 본토까지는 자기 힘으로 헤엄쳐 가려는 시도와 같이 무모합니다. 구원의 다리는 부산에서 미국 서부 해안까지 놓인, 이 땅에서 천국까지 놓인 든든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리밖에는 없습니다. 더구나 로마 가톨릭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만 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내포주의나 종교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도올 김용옥 교수의 TV 강연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착하게만 살면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자유주의 기독교 혹은 반기독교적인 도올 선생조차 놀라면서도 좋아하더군요. 이런 의미에서 근자에 한국 기독교계에 유행하는 헨리 나우엔의 책에 대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책 내용이 좋다 해도 나우엔이 로마 가톨릭 공식 교리를 추종하고 로마 교황을 가장 존경한다고 하는데, 그가 말하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과연 우리가 믿는 유일한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가 바울이 전한 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믿는다면,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교리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우엔은 로마 가톨릭과 교황의 충실한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책을 읽을 때에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인도의 테레사 수녀도 밑에서 일하는 수녀들에게 힌두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힌두교인들은 그들의 종교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앙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요? 로마 가톨릭이 기독교가 아닌 것은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신앙을 옮기거나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갈 때 ‘개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와 기독교는 ‘형님 아우’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특별히 이단에 관해서 연구할 경우에 성경을 기준으로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이단 판결 하나를 내려도 심사숙고하여 함부로 이단으로 매도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 앞에 늘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이나 종교다원주의까지 용납하는 일부 교단들이, 이유빈 장로의 ‘예수전도협회’나 이와 비슷한 교단과 단체를 이단에 준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기성교회를 심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기성교단 역시 함부로 그들에게 이단 판결을 내리는 것은 큰형답지 못한 처사입니다. 물론 자기 종파 교주가 그리스도나 성령이라고 하는 분명한 이단은 반드시 이단 판결을 내려야 하지만, 구원에 관계되는 근본적인 문제 외에 지엽적인 문제로 함부로 이단 판결을 내리는 것은 성령훼방죄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뜨레스 디아스 운동도 로마 가톨릭적 요소가 있다고 무조건 이단시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 운동의 형식은 로마 가톨릭에서 왔지만 내용은 거의 기독교적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현하 한국 교회를 알파 코스와 셀 목회 등으로 리드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인 한소망교회는 뜨레스 디아스를 ‘은혜의 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하여 큰 은혜를 끼치고 교인들의 신앙성장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도 ‘샤이닝 글로리’란 이름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여의도 침례교회와 분당 아름다운교회 등에서는 이 운동을 직접 교회에 도입하여 영성 훈련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훈련하고 있으며, 예장 통합측과 감리교의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이 운동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다 불건전한 교단과 교회입니까? 어떤 운동이 일부에서 잘못이 있다고 하여 전체를 매도한다면‘장 무서워 구더기 못담는 격’(?)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행함에 있어서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단 판정도 오랫동안 연구하고 기도한 후에 발표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이단으로 낙인을 찍었다가는 자칫하면 성령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도나 목회자 가운데 이단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용기 있는 분이 나타나야할 것입니다. 정말 이 일은 순교의 각오로 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한국교회는 힘을 모아 이런 분들이 물질적으로나 다른 면에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오직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기도와 물질로 지원해야 합니다. 특별히 그들의 신상 경호 문제에 대해서도 각별한 신경을 써 주는 등 배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단들이 함부로 접근하거나 위협하지 못하도록, 개별적인 연구소보다는 전문적인 교단 연합 이단 연구소를 세워 신학을 전공한 석사나 박사급 연구원을 많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판단이나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깊이 연구하여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훌륭한 책자를 출판하여 전국 교인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연구개발비에 엄청난 투자를 합니다. 삼성전자 같은 곳에서는 박사급 유수한 연구 인력이 수천 명이 연구합니다. 이단 문제도 성경학자나 신학자도 아닌 몇몇 개인이나 연구소가 산발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전국 교회가 힘을 뭉쳐 전문적인 정통 신학을 깊이 연구한 사람들이 이런 사역을 해야 합니다. 전국 교회가 힘을 뭉쳐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교단 중진들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단에 빠지는 사람은 기성교회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소외되고 불만이 많은 사람들인데, 한때 어느 성령 운동을 하는 대형교회에서는 구역장들이 강원도의 어느 이단에 여러 명 빠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교회나 풍성한교회처럼 제자훈련이 잘된 교회에서 양육과 훈련을 잘 받은 교인 가운데는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이 이단에 빠질 때는 교인만 욕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24. 웅변 성악 목회 사역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만 복음이 증언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능력을 충분히 의지하면서도 당대의 웅변가 스펄전 목사님처럼 인간이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나치게 웅변이나 수사학에만 신경을 쓰는 것도 잘못이지만 복음을 분명한 음성으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유명한 부흥사이신 오관석 목사님이나 윤재수 목사님 같은 분들은 웅변가 출신이며, 수원중앙교회 김장환 목사님은 미국 밥 존스 대학교에 다닐 때 전 미국 대학생 웅변대회에 출전하여 미국인들을 물리치고 대통령상을 받은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일산신도시에서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하는 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님도 어릴 때부터 수십 차례나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으며, 새안산교회의 김학중 목사님도 일찍이 웅변을 배워 웅변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의 속사포 같은 말솜씨는 가히 세계적인 웅변입니다. 그분이 영어로 설교할 때는 서양인들이 자기들보다 더 유창하게 한다고들 합니다.

 

   신학교 교육 가운데 평생을 설교해야할 신학도들에게 웅변이나 수사학의 기초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조용기 목사님이나 한국교회에서 가장 언변이 좋다는 이동원, 곽선희 목사님 같은 분들의 설교 테이프를 사놓고 들으면서 배우는 신학생과 목회자가 많습니다. 웅변의 기초도 습득하지 못한 설교자 덕분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불분명한 음성으로 설교하는 말씀을 인내하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고 있는지 모릅니다. 대부분 신학교는 발성이나 웅변술에 관련된 선택과목이라도 없습니다. 대부분 웅변 학원에도 대부분 어린 꼬마들이고 어른들은 별로 없습니다. 목회자는 평생 마이크 대고 찬송을 인도해야 하는데, 찬송을 불러도 금방 목이 아파서 고민인데 신학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신학도와 목회자에게는 웅변과 성악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악이나 웅변을 하는 분들은 목소리 하나만 들어도 그 사람의 인격을 안다고도 하고, 정신과 의사들도 설교하는 말소리를 듣고도 정신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기도가 부족하고 깊은 말씀 묵상이 없으면 아무리 청산유수 같은 웅변을 한다해도 마른 막대기와 같이 능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할 도리는 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맑고 깨끗한 음성으로 사명을 다하는 방송국 아나운서들도 입사 후 6개월 정도는 철저한 표준어 발음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일류 아나운서 가운데는 30년 간 아나운서 생활을 한 지금도 하루 3시간씩 신문 읽는 연습을 합니다.

  아나운서 출신 전아 목사님처럼 목회자 가운데 웅변이나 성악에 능한 분이 있다면, 신학생과 목회자를 위한 화술연구소나 성악 학원 같은 곳을 세워 말씀을 정확히 전달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문에 보니 전국 웅변대회에서 각종 상을 받은 바 있는 이왕성 목사님이 '21세기 설교강술 연수원'을 설립하였고, 박공희 목사님도 ‘톱 클래스 커뮤니케이션’에서 설교웅변 세미나를 통해 목회자를 대상으로 설교 스피치 훈련을 하고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여러 목회자들이 사투리를 많이 쓰고 속어와 비어를 남발하며, 찬송가 곡조나 박자를 엉터리로 불러, 식견이 있는 성도들에게 은근히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는데 목회자들에게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발음법, 발성법, 호흡법, 연설 태도, 회의 진행법, 찬송 부르는 법 등을 정확히 가르쳐 주는 목회자 전문웅변학원이나 성악 연구소가 많이 필요합니다.


25. 부흥 목회 사역     

 

   빌리 그래함 목사님 같은 분은 팔십 평생을 과오 없이 전도 부흥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은퇴 한 후 이제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전도 부흥사로서 아버지의 자리를 훌륭히 잇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수많은 부흥사가 있는데 오랜 세월동안 꾸준하고 성실하게 부흥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이나 김익두 목사님, 그리고 이성봉 목사님이나 오늘날의 피종진 목사님 같은 분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흥사로서 교회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흥사가 많아지고 진정한 은혜 체험도 없이 명예와 물질을 추구하려고 부흥사가 된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부흥사로서의 기본 요건인 경건한 인격과 깊은 기도생활은 하지 않고 그저 웅변 좀 배우고 선배 부흥사 제스추어나 듣기 괴로운 돼지 목따는 이상한 음성만 배워서 부흥사가 되려는 이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조용기 목사님의 목소리가 얼마나 청아합니까? 굳이 이상한 쇳소리 안 내어도 될 것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부흥회 기간에 하루라도 금식을 하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그만큼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요즘은 부흥사 연수원도 생겨서 부흥사가 되고자 하는 목회자들이 강의를 통해서 선배 부흥사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강의와 신학적 재교육을 통하여 많이 정화되고 있다고 하니 고무적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전도 전문 부흥사도 필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무디나 빌리 그래함처럼 들어 쓰시는 인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동원 목사님 같은 분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고 하는데 목회자 중에서 개 교회 목회보다는 전도 설교에 능하고 많은 불신자를 영접시키는 분들은 전도 전문 부흥사가 되는 일도 바람직할 것입니다. 전도 전문 부흥사로서 루이스 팔라우나 빌리 그래함이나 근래에 주님께서 놀랍게 쓰시는 아르헨티나의 전도자 아나콘디아처럼 전도협회 같은 것을 만들어 불신자를 대상으로 집회하는 분도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원 같은 데 부흥회를 인도할 때 사람이 적게 모이거나 헌금이 적게 나오면 다음 해부터 초청을 안 할까봐 억지로 라도 헌금을 하라는 설교를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흥사는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면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였건 적게 모였건 모인 회중이 은혜를 받게 하면 되고 헌금은 자발적으로 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헌금을 지나치게 강요하면 요즘 배운 교인들은 이미 다 알고 그런 강사 오면 오히려 안 모입니다. 신학교 졸업반 때  목회를 하시던 저의 아버님이 소천하셔서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서울 근교의 어느 기도원에 갔습니다. 웅변으로 유명한 어느 부흥사가 설교하는데 그날 따라 작년에 하던 설교를 그대로 재탕하는데 헌금 짜는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가난한 신학생 전도사가 헌금할 돈도 별로 없고 위로 받으려고 왔다가 상처만 받았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봐도 거의가 서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헌금 얼마 이상 하라는데 속으로 비판이 나왔습니다. 적든 많든 정성이 깃든 헌금을 주님께서 원하시는데, 액수를 말하며 그 이상해야 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유창한 설교를 했지만 성도도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평생 다시는 그 부흥사의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다음 주간에 다른 목사님이 그 기도원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는데 마칠 때까지 돈 이야기 거의 안 했습니다. 그 주간에는 사람이 차고 넘쳤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헌금도 더 많이 나왔을 것입니다. 물론 헌금에 대한 설교도 어느 정도는 해야하고 인간에게 헌금 바치기 싫어하는 인색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말씀을 통해 큰 은혜만 받으면 차비를 제외하고는 다 바칩니다. 부흥사는 늘 자신을 돌아보고 많은 기도와 말씀 연구로 바른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하며, 헌금 액수나 사람 숫자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부흥사로서 더 오래 더 귀하게 들어 쓰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쉬는 날 없이 부흥회만 다니지 마시고 한 달에 한 두 번 나가든지 해서, 한 주간은 서재에서 성경 연구도 많이 하고 좋은 책을 많이 읽어 마음에 양식을 채우고 가까운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많이 하여 능력을 더 받은 후,  전도 부흥회나 전도 집회에 나가신다면 평생 지치지 않고 전도 집회나 부흥 집회를 능력 있는 말씀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믿습니다’ 하면서 52 주간 쉬지 않고 홍길동처럼 동에 펄렁, 서에 펄렁하면 존 웨슬리 같은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나중에는 머리가 텅 비고 영혼과 육신이 탈진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어느 유명한 부흥사가 일주일에 두 번씩 부흥회 다니시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일중독인지 정말 주님을 위해서 하는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분을 위하여 <지나치게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라는 책을 권합니다.

   헌신적인 신학도나 목회자들 가운데 선배 부흥사들의 좋은 점을 본받고 좋은 않은 점을 거울로 삼아 한국 교회를 위해서 훌륭하게 쓰임 받는 장경동 목사님이나 김문훈 목사님 같은 부흥사도 많이 나와야 합니다. 물론 날마다 밖으로 다니면서 자기 교회 성도는 언제 제자로 알차게 양육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다릅니다. 그런 부흥사들은 부목사를 제자훈련 잘하는 사람을 두고 그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꼭 담임목사가 교인들에게 제자훈련을 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부흥사인 담임목사도 귀납적 성경연구를 통하여 강해설교를 잘해야지 안 그러면 제자 훈련받고 수준 높아진 교인들에게 배척당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전통적인 목회나 성령 운동 목회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주님의 종 가운데는 무디나 조지 휫필드 처럼 부흥사로 평생을 온 세상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있고, 도슨 트로트맨이나 옥한흠 목사님처럼 오직 제자훈련과 설교에 전심전력을 기울인 분도 있습니다. 서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은사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만 잘 감당하면 됩니다.

                         

26. 교육 목회 사역    


   우리나라에 온 초기의 선교사들은 곳곳마다 교회와 함께 많은 학교를 세워 전도와 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연희전문학교, 이화학당, 숭실전문학교, 배재학당 등 많은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여 민족의 지도자로 양성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한국 교회 초기의 지도자는 곧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학교는 일석이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어느 정도 기독교에 대하여 마음이 열려 있으므로 그들에게 채플시간이나 성경공부시간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여 주님을 영접시킬 수 있으며, 아니면 최소한 기독교에 대하여 수용할 준비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회자라면 기독교 교육에 관심을 합니다. 이미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교회 밖에 있는 잃어버린 어린양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 유치원이나 어린이 선교원을 세우고 어린 영혼들을 올바르게 교육하면 그들을 평생 바른 길로 인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유치원이나 선교원에 어린 자녀를 보내는 부모님들은 기독교에 관심이 있거나 믿다가 낙심하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해도 반대할 부모는 드물 것입니다. 한국 어린이 선교신학교를 세워 전국적으로 어린이 선교원을 세워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리강무 목사님 같은 분은 어린이 선교에 대하여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그들을 훈련시키고 제자훈련도 하는 등 신앙으로  지도하면 일반 학문과 말씀을 조화롭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사춘기를 맞이해서 자칫하면 방황하기 쉬운 청소년들을 말씀으로 제자 양육하면 일생을 통해 신앙으로 살 수 있을 것이며 사회를 이끌어 나갈 훌륭한 인물로 양육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있는 기독교 학교의 대부분은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이며 이 학교들 가운데  예장 통합측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교단에서도 총회적으로 협력하여 총회 교육 사업으로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설립하는 일도 좋은 일입니다.

    영락교회가 설립 초기부터 학교를 세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왔고 안산동산교회나 광성교회, 명성교회 등이 고등학교를 세우거나 인수하여 경영하는데 교단적으로도 이런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안산동산교회가 세운 안산동산고등학교는 이사장인 김인중 목사님이 모든 교사를 제자 훈련시키고 학생들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제자로 삼는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설립한 지 불과 10년만에 전국적인 명문고등학교로 떠올랐습니다. 이 학교는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위한 전인 교육과 기독교 교육의 모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전도의 터전으로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말씀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100명 정도의 작은 규모의 중고등학교도 설립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어준다고 합니다. 목회자 가운데 학교 교육과 신앙 교육을 함께 할 꿈이 있는 분들은, 이런 귀한 일이 다음 세기에 기독교가 계속 부흥하는 비결이라는 사실임을 명심하고 기도하면서 추진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제도 교육의 모순을 반성하고 더 나은 교육을 하려는 목적으로 영국의 섬머힐 스쿨같은 대안학교가 생기고 있는데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채규철 교장의 두밀리 자연학교나 김진홍 목사님이 세운 두레마을의 대안학교가 있으며, 김경남 목사님이 교장으로 있는 푸른 꿈 고등학교는 입학 학생 25명과 14명의 선생님들이 자기들의 적은 재산을 팔기도 하고 전세금을 빼기도 하고 결혼 자금으로 넣은 적금도 깨서 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자연학교, 대안학교가 생기고 있는데 몇몇 교회가 힘을 모아 대안학교를 세우고 있다 하니 반가운 일입니다. 교육에 비전이 있는 목회자 가운데 작은 대안 학교를 세우면 성경말씀으로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목회에 비전이 있는 분들은 모든 학생들을 제자 삼을 수 있는 작은 대안학교를 세워 철저히 말씀으로 양육시킨다면 대를 잇는 제자를 양육시키고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로 키울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경제적인 실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지 못한 한국 교회와 목회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링컨 같은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기독교 대학으로 설립했지만 지금은 거의 복음전파를 위한 설립 초기의 목적이 퇴색한 대학교가 많은데, 목회자 가운데 대학을 설립하여 인재를 배출 할 뜻이 있고 비전이 있는 분들은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지혜와 물질을 주실 것입니다. 기독교 대학교(Christian University) 설립 동역회가 창립되어 오래 전부터 계속 설립을 위해 기도해 오고 있는데, 제 생각에는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려면 물질도 많이 들고 힘이 드는데 요즘 세워지는 일부 신설 대학처럼 100명 정도의 학생이라도 모집하여 철저히 교육시키고 점점 확장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연세대나 숭실대, 이화여대 그리고 미국의 하버드대나 예일대, 듀크 대학교 등이 기독교적인 이념으로 세워졌지만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이미지가 거의 사라졌고 더구나 하버드대학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유니테리안이나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결국 모든 인류는 구원받는다는 유니버설리즘(보편구원론)의 본산이라고 하며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은 모든 종교인과 이단까지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물론 그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다  자유주의가 아니고 그 중에는 복음주의 신학자나 목회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기독교 대학을 설립하고자 하면 세속화된 대학교들보다는 런던 바이블 칼리지나 세계 선교사가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배출해온 무디 성경 대학(Moody Bible Institute)이나 개혁주의신학과 신앙으로 무장시키는 칼빈대학, 많은 기독교 지도자를 배출한 휘튼대학이나, 국가의 공인된 학교인가는 스스로 거부하고 있지만 많은 대학이나 신학교의 저명한 교수를 배출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김장환 목사님이나 김효성 박사님 등을 배출한 밥 존스대학교, 시카고 근교의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나 그밖에 같은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좋은 대학교를 집중 연구한 후 설립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효과적일 것입니다. 한때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포항에 한동대학교가 세워져 기독교적 정신을 가진 대학으로서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단체 출신으로 이런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는 신학도나 목회자가 있다면 학생 전원을 제자화 하는 비전을 가진 제자훈련을 의무적으로 하는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그리고 신학교를 설립하여 세계 선교를 위해서나 국가를 위하여 성경적인 지도자를 배출하는 일은 어떤 일보다 더 귀한 일입니다. 제자훈련과 성령운동이 잘 조화된 기독교 학교를 세우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 학교는 교사나 교수가 수백 명의 학생을 강의실에 모아놓고 마이크로 크게 강의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학교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각 학년에 몇십 명 정도의 소수의 헌신된 학생을 모아서 성경과 신학을 가르치고 선교단체 출신인 교수들이 시간을 투자하여 제자 삼는 학교를 만들면 좋을 것입니다. 효도대학원을 세워 효도하는 일꾼을 배출하고자 하는 교회도 있지만, 제자훈련을 통해 양육하는 학교를 세워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한 분 가운데 교회와 나라의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장로님은 자녀들에게 학교 과외를 시키는 대신에 일주일에 한번씩 신학생을 과외교사로 모셔서 성경을 자녀에게 가르치게 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생 시절에 학교 공부에 억눌리지 않기 위해서 제자 훈련을 받게 하는 운동도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기독교 대안학교나 대학교나 신학교를 위해서 준비된 신학도와 목회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와야 합니다. 그들이 한국 교회와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들고 나아간다면 오대양 육대주를 복음과 영광의 물결로 덮게 될 것입니다. 

                      

 27. 건강 목회 사역

  

   현대인의 최대의 관심은 돈과 명예보다 건강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40대 사망자 수는 세계에서도 가장 높을 정도입니다. 해외의 우수한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한창 일을 하던 고급 인력들이 40대가 조금 넘자마자 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쓰러지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30-40대 사망자수는 남자가 여자보다 3배나 높다고 하니 주의해야 합니다. 더구나 한국 목회자의 평균 수명이 일반인보다 8년이나 짧고, 목회자 사모님은 무려 12년이나 짧다는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헌신된 그리스도인 의사들이 목회자와 사모님을 위한 육신의 질병과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유명한 황수관 박사도 신바람 건강법으로 강의와 책을 통하여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안식교 교인인 이상구 박사도 미국에 위마 연구소를 세워 안식교 교리에 맞는 뉴스타트 건강법으로 당뇨병과 고혈압 등 현대 병을 고친 사례를 매스컴을 통해 소개하여 한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엔돌핀과 T임파구 등의 용어를 유행시켰습니다. 의학을 전공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감리교회의 고달삼 목사님은 자신의 여러 가지 지병을 고친 비결을 가지고 건강에 관하여 책도 쓰기도 하고 건강 강의도 하십니다. 근자에 황성주 생식열풍을 일으킨 저명한 황성주 박사도 건강생식 보급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에도 힘쓰고 계십니다.

   목회자 가운데서도 약학이나 의학, 한의학 등을 전공하신 분이 있다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처럼 의사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설교 사역만 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의학을 공부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계시므로 <기독교 의학 연구소>같은 것도 세워 성경과 의학을 접목시키는 연구를 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고 봅니다.

   영혼과 육신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동일하게 귀한 것이며 우리의 몸은 ‘성령님의 전’이므로 몸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잘 돌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정신 건강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 신학생과 목회자가 많은 관계로 고급 인력이 목회자가 되면 목회지가 없어서 고생하고, 개척한다고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목회지가 있어도 여러 가지 스트레스 때문에 목사님과 사모님이 건강을 일찍 상하게 됩니다. 육신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정신과 의사들로 구성된 ‘기독 상담 정신의학 연구회’ 같은 단체에서는 신앙적인 입장에서 정신치료에 접근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나 신학도 가운데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관심이 있거나 전공한 사람은 이런 방면으로 연구를 하여 교회와 사회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도 귀한 사역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인 김진 박사님도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의술과 저서를 통하여 정신의학과 신앙을 접목하여 환자를 치유하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성형외과 전문의이자 목사인 정일봉 목사님은 작은 교회를 살리는 의사와 목사 연합단체인 ‘아바연합’을 만들어 목회자가 생전에는 진료비 부담없이 치료를 받고, 임종시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의사의 도움을 받아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돕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바’의 비전은 크게 의료관련 사업과 건강한 교회 세우기 사업, 건강한 사회 세우기 사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의료관련 사업에는, 전국의 목회자와 그 가족들에게 아바 지정 병원을 연결해 줌으로써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목회자 주치의  정착사업’을 선두로, ‘목회자 임종  지킴의’, ‘아바 회원 병원 지원사업’, ‘국내와 의료선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건강한 교회 세우기 사업’은 ‘목회자 영성 치유 아카데미’ 및 ‘사모 치유 아카데미’를 통해 목회자 가정의 영성  치유와 더불어  경제적 자립을 위한 교육도 병행합니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사회 세우기 사업’에서는 ‘이웃사랑 실천본부’를 운영하여 의료봉사, 불우이웃 돕기 등 각종 사회봉사로 좋은 나라, 좋은 사회 만들기 운동을 전개합니다. 현재 전국의 많은 병원이 계속적으로 목회자 주치의 병원으로 가입하고 있습니다.(www.abba.co.kr)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뜨거운 은혜를 체험하신 정일봉 목사님은 성형외과의원을 하시면서 이런 아름다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학을 전공한 의학자가 최신 의학을 집중 연구하여 성경과 건강을 잘 접목시켜 책이나 테이프, 비디오나 강연, TV 방송 등을 통해서 국민을 계몽한다면,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고치신 예수님처럼, 목회자로서 성경의 복음과 함께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학을 전공하신 분으로서 신학을 하신 분이라면 목회도 하면서 의술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알렌같은 선교사들이나 장기려 박사 같은 분은 의술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도 주고 복음도 전했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에 복음과 함께 병자를 치유하신 주님의 사랑을 본받는 것입니다. 의학을 전공한 신학도나 목회자는 아까운 의술을 묻어두지 말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영혼과 육신을 함께 고쳐 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28. 법조 목회 사역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에 합격한 사람들의 수기인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같은 책은 비단 고시 준비생이 아니더라도 어떤 일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은 한번쯤 읽어볼 만한 감동적인 고시 합격기입니다. 어떤 이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 책을 보고 큰 도전을 받고 고시준비를 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는 수기도 읽어보았습니다. 각종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나 기업체 입사 준비생은 물론 요즘은 신학대학원 시험도 대학 과정을 나온 이들이 재수, 삼수를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특별히 신학도들도 이런 책을 읽고 도전도 받아야 합니다. 해마다 고시촌에서는 고시준비를 하다가 과로하여 사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하다가 너무 과로하여 세상을 떠난 여성도 있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세상일을 위해서 공부하는 법학도나 의학도들도 저토록 사생결단의 각오로 공부하는데,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공부하는 우리가 은혜를 핑계삼아 공부에 게으르다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변호사가 쓴 <신앙이 좋아야 공부도 잘한다>라는 제목의 책도 있고, 서울대 전체 수석 졸업을 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마친 목회자가 쓴 <다니엘 학습법>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물론 신앙이 좋은 사람이 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성실히 공부하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학업의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고시 합격생들은 머리도 좀 뛰어나겠지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노력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입니다.

   부산 부전교회에 시무 하셨던 한병기 목사님은 고등고시 출신이고, 법조인 가운데 국회부의장도 지내고 변호사로 활동하신 황성수 목사님과 주명수 변호사 등의 목사님도 있습니다. 주명수 목사님은 현직 변호사로서 목사이기도 합니다. 성직자와 법조인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두 길을 잘 조화시켜 가며 살고 있습니다. 변호사 업무가 목회에 도움이 되고, 목회가 변호사 업무에 힘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신앙과 일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법학과 신학은 사랑과 정의를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교회와 관련된 소송문제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습니다. 원래 그분은 외롭고 힘든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전도를 받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검사로 일하다가 변호사 사무실을 열 무렵 성경을 더 깊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했습니다. 목사와 변호사라는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는 주 목사님은 오늘도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도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법학을 공부한 후 신학을 전공한 분이 법조인이 된다면 신학의 토대 위에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법을 연구하고 적용도 하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권세와 물질보다는 인권을 위하여 일하는 판사나 검사가 이 시대에 필요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분들을 위하여 주님의 마음으로 무료로 변론도 해주는 등 여러 가지 선행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변호사가 되어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간접적으로 전도를 한다면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도 권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판결하는 판사와 최고의 권력자도 가차없이 법정에 세우는 검사도 있으며, 신앙이 없이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무료 변론을 하는 변호사도 있는데, 법조인이 되어 물질과 권력을 초월하여 그런 선한 일을 하면 그런 달란트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글을 마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신학생과 목회자가 배출되고 있지만, 수용할 교회가 적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교계와 목회지가 없어서 방황하는 분들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무언가 대안을 제시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두서없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물론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씀처럼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별로 없고 대부분 이미 목회자들 가운데 각 방면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가능한 사역을 열거해 보았습니다.

 

  문장력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글이 두서가 없고 논리적이지 못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이나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지만 여러 가지 사정과 주위의 환경 때문에 목회를 머뭇거리고 있는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이 책에서 이왕 목회 길로 들어선 것 목회를 더 열심히 잘 하라고 격려하는 내용을 먼저 받아들이시고 나서 혹시 아무래도 목회보다는 더 나은 달란트가 있다면 그것도 깊이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로 글을 쓴 것입니다. 목회가 어려워도 다른 일이라고 더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혹시 목회의 어려움 때문에 다른 길로 나갔다가 시행착오를 겪는 분이 계실 까봐 우려도 됩니다. 목회가 아닌 다른 길로 가시고자 할 경우에도 정말 심사숙고 하셔서 깊이 성경 묵상도 하시고 기도원에 가셔서 작정기도도 하시고 목회자들에게 강한 도전을 주는 수천 명 모이는 기도원 집회에도 가보시고, 국제제자훈련원 ‘목회자 제자훈련 세미나’나 ‘셀 교회 세미나’, ‘G-12 세미나’ 혹은 성경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아나톨레 수련회’, 특히 조용필처럼 부산에서 시작하여 전국과 세계에 선풍을 일으키는 부산 풍성한 교회의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 국제컨퍼런스>와 그에 대한 후속 세미나인 <D 12-6단계 집중 훈련>에는 반드시 가보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시도해 본 뒤에, 최후의 방법으로 목회 이외의 방면에 강력한 달란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그 방면을 나가셔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인생의 모든 일에 시행착오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심사숙고하지 않고 함부로 시도했다가는 세월만 허송하게 됩니다.

 

  목회 이외의 다른 사역을 찾고 시도해보는 과정을 기간을 허송세월이라기보다는 시행착오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것보다 한번쯤 시도해 보는 편이 훨씬 많은 경험과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왕 신학도나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한번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금식 기도도 하고 철야 기도도 하여 결단을 내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학생 시절부터 일주일 정도의 단기 금식은 여러 번 했고 전도사 시절에는 토요일마다 아침 점심 금식을 여러 해 했지만 40일 금식 기도는 아직 해 보지 않았습니다. 금식한 전체 날짜로 따지면 40일 금식을 여러 번 한 격입니다만 40일 동안 연속금식은 못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 하나님의 특별하신 권고가 없는 한 장기 금식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장기 금식하다가 후유증으로 한창 일할 나이에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으로 반신불수가 되거나 일찍 소천하신 분들을 여러분 보았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조용기 목사님이나 곽선희 목사님 같은 분도 40일 금식기도는 안 하셨다고 합니다. 40일 금식기도가 귀하고 목숨을 건 기도이며 기도원에서 장기 금식기도를 하고 있는 분들의 깨끗한 인상과 맑은 눈은 잊을 수 없지만, 의사들은 장기금식이 몸이 약한 분들에게는 특히 위험하다고 합니다. 장기금식을 하기 전에 의사의 진단을 반드시 받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 성장을 위해 장기 금식을 하는 분도 많은데, 나겸일 목사님처럼 장기 금식으로 교회가 성장한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 많으므로, 40일 금식이 반드시 교회 성장에 이바지를 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봅니다. 제 주위에도 40일을 몇 번씩하고도 목회에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 목회를 포기하거나 목숨을 읽은 분도 여러 명 보았습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부친은 40일 금식을 하시다가 소천하셨고, 저의 부친 이연우 목사님도 추운 겨울에 열흘 금식하신 후 뇌졸증이 와서 6년 후에 65세의 연세로 천국 가셨습니다. 특히 겨울 금식은 고혈압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위험합니다.

 

   물론 교회성장 차원을 떠나서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잃어버린 많은 영혼구원을 위하여 주님께서 강권적으로 시키신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장기 금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교회의 외형적 성장 자체만을 목표로 금식한다면 한 번 더 깊이 생각을 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금식 기도하고 철야 기도를 해봐도 나의 적성과 은사가 일반적인 교회의 목회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면 그 분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뜻일지도 모릅니다.

   바울 사도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십자가의 은혜를 갚으려는 사명감이 있는 분들이라면 목회를 작게 하든 크게 하든 인간적인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만족한 목회, 행복한 목회를 하게 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일념만 있다면 문서 선교든 문화 선교든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긍휼과 열정만 있다면 주님께서 얼마든지 지혜를 주셔서 가장 합당하고 좋은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과 지옥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모진 고통을 당하시며 돌아가신 주님께 진 은혜의 빚, 복음의 빚을 갚으려는 마음으로 하는 모든 일은 소명이요 성직이 입니다. 우리가 바리새인들처럼 아무리 종교인의 탈을 쓰고 있어도 하나님 사랑과 영혼 사랑이 없다면 삯군에 불과 할 것입니다.

   이 글에 적힌 내용을 통해 앞날의 삶의 목표를 정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날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많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에 대한 좋은 책도 읽어보시고 직업에 관한 책도 탐독하시고, 이미 자신이 원하는 길에서 들어서서 어느 정도 경험과 식견이 있으며, 깊은 신앙 가운데 보람차게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선배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면서 결정하시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글이 갈등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주님께 더없이 감사하고, 혹시 글 가운데 잘못 알고 쓴 내용이나 실수한 것이 있거나 읽은 소감이 있으면 이메일  cselee59 @naver.com으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울러 이 글은 모든 부분을 망라한 내용이 아니고 제가 관심을 많이 가진 부분은 길게 이야기하고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은 소개가 적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내용에 관해서 더 많은 연구와 소개를 하는 분들이 나와서 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신학도와 목회자들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미비한 글이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구원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당신의 진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온 세계 위에 높이 들어 쓰시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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