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론,7년 대환란, 144,000
1)휴거론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예수 지상재림 7년 전에 공중재림을 하신다고 한다. 이것은 비밀재림이라고도 하는 데 이것은 성도들의 휴거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휴거라는 말은 세대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용어이다. 이것이 비밀재림인 이유는 예수가 공중에 재림을 했으나 지상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모른 채 일상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이며, 일부 성도들만 주의 재림을 아는 것이다. 즉 일부 성도가 휴거를 한다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가쓴 책에 의하면 절반정도 휴거할 것이라고 말한다. 휴거 후에 지상에는 7년간의 대 환란이 시작된다. 앞의 3년 반을 전환란 시대, 뒤의 환란을 후환란시대라고 한다. 전반기에는 복음의 전파 가능성의 마지막 기회이다. 그리고 후환란시대에는 전무후무한 환란이 일어나며, 휴거하지 못한 성도는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휴거하게 되면 7년간의 어린양의 찬치에 참여하게 된다.
7년 환란 후에 예수의 지상 재림이 있고 이어서 1000년 왕국이 계속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곡과 마곡이 있고, 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고, 이어서 신천신지가 계속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세대주의 종말론이다. 이 종말론은 주로 부흥운동 속에서 발전했다. 교파적으로는 오순절파에 영향을 주었고, 상당수의 오순절파는 이것을 교리로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침례교와 성결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 한국에서는 범교파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이와 같이 세대주의 종말론은 현실적으로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종말론이다. 시중의 종말론 서적 가운데 열중 아홉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92년 이장림은 철저히 이 종말론을 신봉하고 있었다. 그는 92년 10월 28일날 종말을 하면서 93년, 94년 만기의 통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휴거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 속할 것라고 생각했다. 휴거에 대한 직통계시를 받지 못했고, 남아서 복음을 전파하는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환란시에 복음 전파에 쓰려고 준비했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통상적 이단이 가진 비도덕성과는 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철저히 신학적인 이단이다. 그가 그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책은 설득력이 있다. 논리적인 힘이 강하고 탁월하다. 결국 그는 잘 못된 신학수업으로 인해서 재능을 올바르게 실현하지 못했다. 따라서 바른 신학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세대주의 개념의 대표적 개념이 휴거론이다. 이것은 틀렸는데,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휴거를 뒷받침 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두 여자가 멧돌을 가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남았다는 구절을 휴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데려가신 것일 뿐이다.
그럴 법한 성경 구절이 살전 4:16-17에 있다.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이 본문을 휴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10분이 중요하다. 이 십분 동안 딴생각을 하면 평생 휴거가 있을 거라고 고집할 지도 모른다.) 핵심적 논점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심이다. 먼저 개혁교회의 정통 종말론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재림▶ 새하늘 새땅▶ 지상재림▷
역사적으로 재림이 한 번 있고, 지상재림이 있으며, 이어서 새하늘과 새 땅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즉 주가 오시면 그것으로 끝이고 완전히 새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 종말론은 개혁교회 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가르치는 종말론이기도 한다.
정통종말론과 세대주의의 차이; 세대주의 종말론은 주님의 재림이 두 번(공중과 지상) 있게 된다. 그래서 이 것을 예수의 이중적 재림을 특징으로 하는 종말론이라고 한다. 살전 4:16-17로 돌아와서 정통 종말론에 의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즉 최후로 재림하실 때의 묘사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에 세대주의는 예수의 지상 재림 7년 전에 일어나는 공중 재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은가?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등의 표현이 공중에 살짝왔다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등의 표현은 고전 15장과 연결시켜 볼 때, 마지막 날을 표현하는 바울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이 표현들은 역사의 마지막 날이 왔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여기서는 죽은 자의 부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들이 일어나고, 살아 남은 자들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실 것인데, 공중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접과 관련이 있는 단어이다.
예) 중요한 분이 공항에 오시면 공항에 나가서 영접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디에서 주를 영접하는가? 공중에서 영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중에서 7년간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가 건설하시는 신천신지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휴거가 어디에 있는가? 혹자는 “공중에 올라가는 것이 있으니 휴거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세대주의 종말론의 표현이라는 면에서 거부된다. 왜냐하면 이미 휴거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세대주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공중이 아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중요한 것이다. 공중은 단순히 주님을 만나는 장소일 뿐이다. 구조적으로 7년간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공중에서 한다면, 아래에서는 다른 성도가 도륙을 당하는데 거기에서 기분이 나겠는가 생각해 볼 것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에 그 근거가 없기 때문에 쓰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대주의 종말론의 중요한 개념이 7년 대환란이다. 7년 대환란도 성경에 없다. 왜냐하면 없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그러면 그들이 있다고 하는 본문은 어디인가? 계 11:2-3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저희가 마흔 두달(3년 반) 동안 짖밟으리라·········1260일(3년 반)············”. 계 12장 13-14절 “용이 ·············여자를 핍박하는 지라············광야에서 ·········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양육을 받으며(1년, 2년 반년)···········”. 여기서 전자의 3년 반과 후자의 3년 반을 합쳐서 7년간의 대환란이라고 주장한다.(지금부터의 10분간이 또 중요하다. 또 딴 생각을 하면 평생토록 7년 대환란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 7년 대환란이 없는가? 계 11장의 42달, 12장의 한 때, 두 때, 반 때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것을 엮어서 7년 대환란을 만든 사람은 요한이 아닌 세대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한은 그냥 나열해 둔 것 뿐이다. 요한이 엮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엮어서는 않되는 것이며, 절대로 엮을 수 없는 것이다.
그냥 3년 반이다. 여기서 3년 반이라는 숫자를 주의 해야 한다. 이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데, 마귀의 통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이다. 6이 마귀의 숫자가 아니고 3년 반이라는 숫자자 마귀와 관련되어 있는 숫자이다. 이 숫자는 유대 묵시 문학의 원조인 구약의 다니엘서에 등장한다. 단 7:25-27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여기에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즉 3년 반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다니엘서는 아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박해와 관련이 있는 책으로서 정확히 그 4세와 관련이 있다. 그는 유대의 종교를 뿌리채 뽑으려고 했고, 희랍 정신을 유대에 심으려고 했던 사람이다. 유대인의 골수에 밖힌 원수가 둘 있는데, 히틀러와 안티오커스 에비파네스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 읽는 것을 금지했다. 읽다가 들키면 죽여버렸다.
유대인은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하는데, 그러면 그 아이와 제사장과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죽이고, 어머니는 죽은 아이의 시체를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유대인의 중심은 성전이었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돼지이다. 그런데 그는 성전으로 돼지를 몰고가게 했고, 제단 앞에서 돼지를 죽여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도록 했다. 유대 역사에서 이렇게 성전이 모욕을 받은 적이 없다.
이 때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 갔다.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은 혀를 뽑고 산채로 끓는 가마솟에 넣었다. 이렇게 온갖 박해가 가해 졌다. 그런데 이 박해가 약 3년 반 지속되었다. 그리고는 유다의 영웅 마카비의 저항에서 승리하고 성전이 정화되고 재건된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12월에 하누카 절기가 있는데 이 절기는 마카비의 승리를 축하하는 절기이다. 3년 반이란 숫자는 여기에서부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즉 마귀의 통치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가 되었다. 짧지는 않으나 길지도 않은 기간이다. 이 상징적인 숫자가 유대 묵시 문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요한 계시록에도 연결되어 나타나 반복되고 있다.
계시록에서 3년 반은 전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3년반---1000년: 대비적 숫자; 마귀의 통치는 3년 반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1000년(말할 수 없이 긴 시간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동안 지속된다.
잠시---영원: 잠시와 영원의 대비로서 잠시를 반복하면서 환란을 이기도록 격려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 속에 요한의 역사관이 다 들어 있다. 도미시안의 박해 상황에서 마귀가 득세하는 시기를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는는 것이다. 그러나 그 통치는 3년 반이라는 것이다. 때가되면 마침내 마귀는 결박을 당하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의 바다에 빠지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000년 그것도 모자라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을 이기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환란의 난동은 마귀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허용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미지근한 교회를 정화하기 위해서 잠시 허락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 환란은 믿음의 시련이라는 것이다. 그 믿음을 시험하는 시련의 기간이며, 그리 길게 허락하지 않으시고 3년 반으로 끈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3년 반은 두 개를 합쳐서 7년을 만드는 성격을 갖을 수 없는 것이다.
144,000이라는 숫자는 무엇인가?
이 숫자는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된다. 마지막의 구원받는 사람의 총수가 144000이라는 것이다. 이 말의 배후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한다. 문자적으로 십사만 사천 명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가 얼마며, 예수 당시의 그리스도인은 얼마며, 순교자들은 얼마인가? 그들을 제외하면 지금 남아있는 여유는 얼마나 될까? 현재 여호와 증인이나 천부교에 다니는 사람만 해도 144000이 넘는다.
이것은 종교적 에고이즘의 본질적 요소이다. 위대한 종교일수록 보편적이다. 성질이 사납고 고약할수록, 자기만, 자기 종파만 구원받기를 원한다. 따라서 그 배후의 의미는 지극히 적은 소수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의 의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계 7:4에 보면,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을 하면 나오는 숫자인데, 완전수 12을 곱하고 거기에 어마어마한 숫자 1000을 곱한 것으로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를 의미하는 인상을 받는다. 이 인상이 옳은가? 요한은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라고 표현한다. 즉 요한 자신이 이 숫자를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를 상징하는 말로 쓰고 있는 것이다.
계 14:4에 보면 이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이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자········”. 여기서 여자가 무엇인가? 여기서 여자는 큰 음녀 바벨론 즉 로마 제국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는 우상숭배를 하지 아니한 자를 말한다. 즉 이들은 믿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계7: 14에 보면 이들을 설명하기를 환란에서 나오며, 환란을 이긴 자들이 144000이나 된다는 것이다. 당시에 전 그리스도인은 다 해도 144000이 않되는데도 불구하고 요한은 이미 그 많은 숫자를 보았다고 하는 것이다. 환란으로 인한 좌절을 격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요한은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144000이나 될만큼 많으므로, 하나님은 택한 백성과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144000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숫자는 유대인만을 의미하는가? 14:9을 보면 각 나라, 각 족속, 백성과 방언 즉 전 지역에 흩어져 있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동행하시므로 승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광의 찬송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성도들은 말세론이 어떠한가? 주를향한 믿음있나 아니면 세상이 두려운가? 이문제는 중요하다.성경은 앞뒤문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한절만 빼면 주님께서도 그속에 역사하실까 깊이 묵상해야한다.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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