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이를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지만, 실제로 고대에 점술은 당시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배경으로 추구된 것이며, 따라서 고대인에게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고대 근동 아시아인들이 미래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했던 점 기술은 대단하다.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점술은 동물의 내장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고대 점술가들이 어떻게 동물의 내장의 모양을 통해 미래를 알아보낼 수 있었는가? 점술가들은 미래에 대해 던지고 싶은 질문을 동물의 귀속에 속삭인 후에, 그 동물을 살해하고, 동물의 내장, 특별히 간의 형태를 살펴서 미래의 운명을 알아내는 일을 한 것이다.
바벨론인들은 양의 간의 해부도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그 안에서 소인간(micro-anthropos)입과 손가락 등을 가진과 소우주(microcosm)병거와 왕궁 등의를 발견하였다. 오랜 점술의 역사를 통해 바벨론인들은 다음과 같은 징조 교과서를 만들어냈다.
만일 간의 오른쪽에 길이 있고, 왼쪽에 직선의 균열이 생기고, 길의 구멍이 위쪽으로 열려 있으면, 이는 너의 신의 도움으로 적들이 포로가 되고, 적들이 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B. Meissner, Babylonien und Assyrien II, (Heidelberg, 1925), 297.
바벨론인들에게는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것도 간점 못지않게 중요하였다. 특별히 해와 달의 일식이라든지, 별들의 눈에 띄는 모양이라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벨론인들은 신들이 양의 내장에 “설형 문자”(cuneiform script of a lamb's entrail) 를 기록하듯이 하늘에 별들의 설형 문자(cuneiform script of the stars)로 다가올 운명을 써넣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Koch, The Prophets, vol.1 The Assyrian Period, 9.
이를 근거로 왕이나 전쟁터의 장군들에게 미래를 알려주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벨론인들이 사용한 점술에는 기름을 물에 부었을 때 생기는 모양이나 형태로 점을 치는 물점이 있었는가 하면, 화살을 쏘는 화살점도 있었다. 신접자가 죽은 영혼을 불러내는 초혼점도 있었다. 동물들, 예를 들면 새의 행동을 관찰한다든지, 하늘의 징조를 관찰함으로 미래를 예언하였다.
우리는 성경에서 바벨론 왕이 이런 종류의 점을 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치되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으므로 공성퇴를 베풀며 입을 벌리고 살륙하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성문을 향하여 공성퇴를 베풀고 토성을 쌓고 운제를 세우게 되었나니, 전에 그들에게 맹약한 자들은 그것을 헛점으로 여길 것이나 바벨론 왕은 그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으리라 (겔 21:21-23)
느부갓네살은 두 갈래 길에서 랍바(암몬 족속의 수도)를 먼저 공격할 것인지,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인지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를 결정하기 위하여 느부갓네살이 제비뽑기를 포함하여 다양한 복술을 사용하였다. 먼저 여러 개의 화살이 들어 있는 화살통을 흔들어 그 중에 하나를 뽑는 화살점(belomancy)을 사용하였다.
그리고는 군대와 함께 가져온 신들(드라빔으로서 신상 보다는 조상들의 형상인 것 같음)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복술을 맡은 제사자들에게 희생양의 간을 살피도록 하였다(간점). 이러한 관습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진흙으로 만든 간의 모형을 가지고 견습 제사장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썼다고 한다. 존 월튼, 빅터 매튜스, 마크 샤발리스,『 IVP 성경 배경 주석: 구약』(서울: IVP Press, 20001), 1025.
고대 근동 아시아에는 이런 귀납법적 점술들 외에도 직관적인 점술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신비하게 다가오는 내적인 음성이나, 외부의 음성을 듣고 신의 계시라고 주장하였다. 공간이나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일들에 대해 꿈을 꾸거나 투시하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주변에서는 직관적 점은 귀납적인 징조 점술보다는 비교적 희귀하였다.
이방 점술의 목적
이방의 점술가들에 의해 주어지는 예언, 또는 신탁의 목적은 전적으로 미래의 일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화를 면하고 복을 얻으려는 이기적 기복 신앙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결국 인간들은 자신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 을 자신의 손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대 근동 아시아의 점들은 조작적이다.
물론 점술을 통해 알아낸 헤어나올 수 없는 작정된 운명의 우리 안에 인간들을 가두어두지 않기 위해, 바벨론의 점술가 “바루”는 종종 이런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예방 의식(a possible prophylactic ritual)을 첨가하기도 하였다. 주술적 의식을 통해서 악한 운명을 피하거나, 다른 대상이나 다른 사람에게 악한 운명을 전가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점술가들이 인간에게 도덕적 행동을 요구한 경우는 거의 없다. Koch, The Prophets, vol.1 The Assyrian Period, 9.
마술과 복술을 금지한 이유
실제로 고대 이스라엘의 인근 이방인들은 미래를 알아내기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이들은 미래를 알아내어, 악을 방지하려고 하였다. 소위 액땜을 하길 원한 것이다. 고대 마술사들은 “역사적 운명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들의 미래를 조작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자기들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길 원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복술과 초혼과 마술 같은 풍습을 금하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자신이 주인노릇을 하려는 것이 바로 인간 최초의 원죄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한 발자욱 한 발자욱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를 알아내어 자기 운명을 통제하고 액땜하려는 식의 사고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오늘 우리의 예언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미래를 알 길이 없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미래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닥쳐올 일에 대하여 선포하셨다.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 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대언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대언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신 18:14,15,18).
하나님께서 미래를 예고하기 위해 택한 구약의 예언자는 징조적 점술나 직관적 점술을 통해 미래를 알아 맞추는 복술가들과는 달리 여호와의 말씀을 맡은 자이다. 선지자들은 미래를 알아내는 특별한 기술을 지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만이 그들은 예언하였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한 미래는 인간들이 현재의 도덕적 행동과 상관없이 영원 전에 확정된 미래가 아니다. 선지자들은 현재에 기초하여 임박한 미래를 말하고, 사람들의 도덕적 행동으로부터 결론을 낸다는 점에서 단순한 점술가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나단 선지자가 다윗이 범한 현재적 범죄에 기초하여 다윗의 미래를 선언하는 예언 가운데 이를 분명히 볼 수가 있다.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 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삼하 12:9-11).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예언은 인간의 현재와 과거의 행동과는 관계없이 미리 결정된 미래사를 알아맞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선지자들은 미래에 관하여 말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서가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가져오고, 반역에도 불구하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권을 행사하는 무대로 미래에 관해 말한 것이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길흉을 말하는 점쟁이들이 아니라,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선지자들의 예언은 인간의 도덕적 행동에 근거하여 예고하시고 이를 성취하시는 하늘 대왕의 말씀이기에 능력이 있었다. 이 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선지자들의 말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으려고 한 것이다. 이 선지자들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죄하면서도 위로하고, 끝내 옳은 길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된 것이다.
만일 우리가 구약에 기록된 선지자들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엘리야, 아모스, 이사야와 그 외 선지자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금도 말씀하시고 있음을 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은 과거에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예언의 말씀이었을 뿐 아니라, 오늘도 그리스도의 신임장을 들고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 우리의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살아 있는 말씀인 것이다. 결국 미래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점술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일에 동참함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수가좋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