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행 1:15-26
제목 : 주의 일 한다고 성도가 아니다
서론
가룟 유다는 주의 일을 죽을 때까지 결국은 제 갈 곳으로(지옥)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의 일만 한다고 해서 다 천국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악인도 악한 날에 쓰시기 때문입니다.
1. 가룟유다는 주님의 제자였습니다.
본문 17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하였습니다. 이는 가룟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도들과 함께 주의 일을 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결과적으로 볼 때에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 직분자들이라고 해서 성도요 천국간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히 쓰임을 받는다는 것 뿐입니다.
2. 예수를 팔았습니다.
본문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서 그 돈으로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기록하기를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마 26:14-16)하였습니다. 구약에 유다는 동생 요셉을 은 20냥에 애굽의 상인에게 팔았는데 신약의 가룟 유다는 스승을 은 30냥에 팔았습니다. 돈이 무엇이길래 형제도 스승도 팔아버립니까?
3.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본문 18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하였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여 스승을 팔아서 그 돈을 한 푼도 써 보지 못하고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돈으로 밭을 샀는데 그 밭을 피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만 내어 놓은 것이 아니고 그는 목을 매어 죽고 말았는데 그 영혼이 지옥 갔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행 1:25)하였습니다. 제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주의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성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군이 되어 주의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직분이나 맡았다고 다 된 줄로 알지는 않는지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구원과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다만 구원받은 사람이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여 주의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마 26:24, 잠 16:4, 요 6:70-71, 눅 22:36).
본문 : 행 2:42-47
제목 : 초대교회 성도들
서론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금의 성도들과는 신앙생활을 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즉 모범적으로 잘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교역자의 가르침대로 따랐습니다.
본문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도들의 교훈을 받아서 그대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사도들의 잘못이 없고 성도들도 순진한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주의 종들도 성도들에게 존경받을 행위를 못하고 성도들도 완악하여져서 초대교회 같지는 못합니다. 이런 점이 아쉬운 것입니다. 그래서지금도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 같은 주의 종들의 품위를 지녔으면 하고 당시의 성도들과 같이 순진한 면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입니다.
2. 공동체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본문 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하였습니다. 성도들이 형제애를 가지고서로 필요에 따라서 네것 내것을 따지지 않고 융통성 있게 사용하였습니다. "믿은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고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행 4:32-35)하였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공동체 의식이 강하여 서로 도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신본주의 신앙을 소유하였습니다.
본문 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교역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해서 기도하는 일을 전혀 힘쓰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데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신본주의 정신하에서 성도교제도 나누고 신앙생활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쁘심을 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성도들도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뭉쳐서 교역자들의 가르침을 받아 성도들의 교제가 뜨거워지고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기를 힘쓰며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면 믿는 자들이 불어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 : 행 3:1-16
제목 : 세 종류의 사람
서론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이 장에서는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세 가지 경우의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약한 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1-2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하였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도와서 메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지금은 불구자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는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 구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하였습니다. 생업에 종사할 수 없는 앉은뱅이라 구걸하는 것이 그의 생계를 위한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리하여 염치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구걸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비록 구걸을 하지만 사기를 치거나 빼앗아 먹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3.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4-8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하였습니다. 남을 해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와 같이 좋은 일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역사요(13)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역사이며(16, 약 5:15)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였습니다(6).그리하여 은혜 받은 앉은뱅이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지만 약한 사람을 돌아보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행위를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신 때문이기도 합니다.
본문 : 행 4:28-31
제목 : 전도하기 전에
서론
전도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성질이 것이 아니고 하지 아니하면 자신에게 화가 미치는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기 전에 먼저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본문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하였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전도를 통해서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주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통하여 믿는 자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롬 10:13-17). 그래서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일이 못되고 부득불할 일이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고전 9:16). 그러므로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전하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본문 29-30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기 전에 하난님의 도우심을 먼저 간구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먼저 기도가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호 물자를 주겠다고 오라고 하는 것과 다르고 잔치를 베풀고 음식을 먹으러 오라고 초청하는 것과도 달라서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3.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본문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 뿐만 아니고 무엇이든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도와주시기 때문에 기도도 할 수 있게 하시고 전도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을 전도자들이 먼저 알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결론
전도는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길이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지만 먼저 하나님이 뜻이라는 것을 알고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담대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행 5:1-11
제목 : 두려워할 일
서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일과 경제를 어렵게 하는 일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두려워해야 할 일은 차원을 달리한 것입니다.
1. 기본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본문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하였습니다. 작정한 것을 바치려고 판 줄 아는데 재산을 처분하고 나서는 그만 마음이 달라져서 그 값의 얼마를 떼어 놓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집안의 재산 전부를 바쳐야 되는 것이 아니고 헌금은 언제나 자유롭게 드릴 수 있는데 아나니아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처음에 작정할 때에 자기 재산 전부를 드린다고 서원을 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하는 말이 너는 나를 속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을 속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속이는 일입니다.
본문 2-6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하였습니다. 처음에 작정한 그대로 하지 아니하고 다르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속인 죄가 되어서 그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악인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7-11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편에 서서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악인의 꾀를 쫓은 것입니다. 그래서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죄 짓는 일에는 함께 해서는 안됩니다. 악인의 편이 되지 말고 의인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오늘의 성도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분적으로 주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는 하지 말고 악인의 편이 되지 말며 의인의 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이 망하여도 나와 가족은 망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본문 : 행 6:1-6
제목 : 교회 직분자를 택할 때는
서론
하나님의 교회가 성도들의 공동체인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봉사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직분자를 선출하는 것입니다. 직분자를 선출할 때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법을 동원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 필요성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2 "그 때엑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 두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하였습니다. 집사들이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사도들이 하다보니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직분자를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꾼이 필요하다고 인정이 될 때는 반드시 선출해야 합니다. 주의 일은 혼자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2. 자격 여부를 고려해야 합니다.
본문 3-4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하였습니다. 직분자는 물론 세상의 지식도 있고 재산도 있으면 좋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주를 위하여 기쁨으로 순교할 수 있고(행 7:55-60) 지혜가 있어야 깨끗하고 화평하여 선한 일을 하며 교회 분위기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약 3:17-18). 그리고 지혜로우면 솔로몬처럼 모든 일을 소리 없이 잘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직분자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자격이 있습니다.
3. 안수하여 책임을 맡겨야 합니다.
본문 5-6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하였습니다. 성직자(聖職者)에게 안수(按手)하는 법은 구약시대(舊約時代)부터 있는 것입니다(민 27:14-18). 이는 임직을 선언하는 예식이기에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안수하는 것은 직권을 맡김이요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이며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은혜를 받는 순서이기도 합니다.
결론
교회의 직분은 사회의 직책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입니다. 사회 지도자는 사람을 잘 다스리는 지도력이 중요하지만 하나님 교회의 직분은 덕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이 될 때에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택하여 안수하여 일을 맡겨서 죽도록 충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 : 행 7:55-60
제목 : 어떻게 죽을까?
서론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금수와 같이 살다가 금수와 같이 죽는 사람도 있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성자답게 살다가 성자 같이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할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매우 귀하게 살다가 값지게 죽었습니다.
1. 하늘의 것을 말하다가 죽어야 합니다.
본문 55-58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죽음 직전까지 하늘의 것을 말하다가 죽었습니다. 이는 그의 사명을 다하고 후회없는 죽음을 죽은 것입니다.
2.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죽어야 합니다.
본문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이 평소에도 하늘의 것을 말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지만 죽을 때는 더욱 아름답게 죽었습니다. 말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지만 죽을 때는 더욱 아름답게 죽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깨끗이 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이는 죽을 때에 자식들에게까지 생전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가는데 스데반은 원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갔으니 얼마나 멋진 삶의 마무리입니까. 우리들도 그렇게 죽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3. 영혼을 주께 부탁하고 죽어야 합니다.
본문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하였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면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그리고 자기의 영혼을 주께 부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이와 같은 죽음은 성도만이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그와 같은 죽음을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세상을 떠나실 때에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결론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어떻게 죽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느냐가 본인에게도 후대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되는데 스데반은 주께서 귀하게 보시는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시 116:15). 우리들도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 행 8:9-24
제목 : 하나님과 관계 없는 교인
서론
교회 출입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도라고 할 수 있는 신앙이 좋은 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나오는 교인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인과 성도의 구분은 교인은 교적부에 등록된 사람을 말하고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성도이고 교인인지는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다운 생활을 하도록 노력을 해서 점쟁이 시몬처럼 책망 받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1. 세례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시몬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전심(全心)으로 지도자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누가 보아도 진정한 착실한 성도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에게 너는 이도에는 관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는 명령의 필연성(必然性)이지 구원의 필연성(必然性)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은 망했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0:2-5). 그러므로 세례만 받았다고 완전한 성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헌금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8-23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하였습니다. 시몬은 돈이면 무엇보다 다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성령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돈으로 천국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와는 관계없이 비기독교인의 사고방식입니다.
3. 기도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하였습니다. 시몬은 베드로의 책망에 간담이 녹아나는 느낌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이 금방이라도 내려질 것 같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서 죄를 깨닫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아니하면서 우선 벌만 면할 생각으로 그것도 자기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베드로에게 기도를 대신하여 달라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이며 자기 중심의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실제적으로는 기독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알고 드려야 하는데(계 5:8) 자기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오늘의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를 하나님을 설득시켜서 자기 욕구를 총족시키려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결론
기독교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생활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세례만 주장하지 말고 돈만 주장하지 말며 기도만 주장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고 내세의 소망 속에서 구원의 즐거움을 맛보고(시 51:12)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생각을 가지고(시 116:12) 주를 영화롭게 하고 찬미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엡 1:6-14).
본문 : 행 9:1-22
제목 : 별 수 없는 인생
서론
하나님 앞에서는 인생은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그와 살기 동등한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별 수 없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입으로 주여 뉘시오니이까 하고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인생들이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1. 허세도 별 수가 없습니다.
본문 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동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검거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허세도 주님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의 허세는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고집도 별 수가 없습니다.
본문 3-9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느니라"하였습니다. 다메섹으로 가서 그가 원하는 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죽이고자 하는 고집이 다메섹 도상에서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고집은 소용없는 것입니다. 애굽왕 바로가 고집이 무척 세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별 수 없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고집은 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진리 앞에서는 별 수가 없습니다.
본문 20-22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느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이 믿기 전에는 예수를 저주 받은 자로 알고 그를 믿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죽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본 후에는 그와 같은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나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임을 목숨을 걸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앞에서는 비진리가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의 힘과 인간의 지식 그리고 고집 등등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 행 10:1-35
제목 : 사람 됨됨이
서론
고넬료의 사람 됨됨이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언제 예수를 믿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성도로서 갖출 예의는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군대의 장교이지만 특수한 군대 생활에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가정의 모든 가족들이 예수를 믿고 항상 기도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경건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 하나님 섬기는 태도가 되었습니다.
본문 1-4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하였습니다. 그는 군대의 장관이면서 경건하여 신앙생활을 잘하고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적인 그의 태도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2. 순종하는 태도가 되었습니다.
본문 5-8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천사의 말을 듣고 즉각 순종하였습니다.그리하여 자기 하인 중에도 경건한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데 이는 그 일이 얼마나 귀중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하되 성의를 다해서 순종하는 태도가 좋은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그와 같은 태도로 순종해야 합니다.
3. 주의 종을 대하는 태도가 되었습니다.
본문 24-33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 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응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주의 종을 대하는 테도가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셔서 자기들에게 들려 주실 줄로 믿는 태도였습니다.
결론
고넬료의 사람 됨됨은 타인이 본받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라든가 순종하는 태도라든가 주의 종을 대하는 태도가 타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본받을 만한 태도입니다.
본문 : 행 11:1-18
제목 : 모르면 바보
서론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은게 인간입니다. 그리하여 지난 후에는 후회하는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장래일을 알 수 없고(전 7:14) 내일 일도 모르고(잠 27:1)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게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마 6:33). 그래서 인간은 모르면 바보라는 것을 시인하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바보들입니다.
1. 주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몰랐습니다.
본문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하였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인데 저들은 이방인과 가까이 하는 것이 죄를 짓는 일인 줄 알고 있어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온 것부터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아니한 것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으니 가라고 하셔서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나 베드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모르고 하는 바보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여 짓는 죄가 적지 아니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청하신 것을 몰랐습니다.
본문 13-15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하였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오게된 것이 베드로 자연인의 의지에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통하여 청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집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엉뚱한 생각과 베드로가 죄나 짓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면 바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몰랐습니다.
본문 6-18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하였습니다.
결론
인간들은 깊고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해 주님을 섭섭하게 해 드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알지 못해서 바보 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모르면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몰라서 죄 짓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 행 12:20-25
제목 : 신(神)으로 취급받은 사람들
서론
바울과 실라는 사람이면서 신과 같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에게 신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취급할 때에 군림하지 않고 겸손히 그들을 만류하여 나도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밝히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소개하였습니다(행 14:8-18). 그런데 오늘의 사람들은 자기가 신으로 군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1. 백성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본문 20-22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曉喩 : 알아듣게 일러 줌, 깨닫도록 타이름)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하였습니다. 헤롯의 연설을 백성들은 아부하여 신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헤롯은 백성들에게 신과 같이 취급을 받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아첨하는 말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다 죽었습니다.
본문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은 천벌을 받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31).
3. 인간 신이 죽어야 말씀이 흥왕합니다.
본문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하였습니다. 신과 같이 취급을 받으면서 교회를 핍박하던 헤롯이 죽고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인기가 높아지고 명성이 높아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쇠퇴하여 지며 사람의 명성이 낮아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그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과 같이 군림하면서 성도들을 핍박하면 교회는 수난을 당하여 성도들의 괴로움을 당하지만 겸손하면 교회는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들마다 인간을 신과 같이 취급을 해서도 안되고 취급을 받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사람이지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만한 인간들은 자기들이 신이나 된 것처럼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자기들이 다 받아 챙기는 무엄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여 망하고 말 것입니다.
본문 : 행 13:42-52
제목 : 영생을 거절하는 자들
서론
바울이 전도하는데서 유대교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성도들이 바울을 따르면서 그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더 들으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영생을 거절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고전 1:!8).
1. 시기하고 비방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할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하였습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무조건 바울의 말에 진리 여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무조건 시기하고 비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리를 깨닫기도 전에 마음의 문을 닿아 놓고 있기 때문에 영생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영생을 거절하는 자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하였습니다. 복음이 마땅히 유대인들에게 전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게 먼저 전해지는 것은 이들이 복음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에 끝까지 복음을 거절한다면 영생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서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롬 1:16-17).
3. 불의를 선동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50-52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제일로 방해자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도 죽이더니 그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까지도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복음 전하는데 큰 지장을 초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 권세자들과 재력이 있는 유력자들을 동원하여 복음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이는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영생을 거절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세상에서 죄를 짓고 지옥 가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거절하여야 하지만 영생을 얻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예하여 영생을 취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딤전 6:12).
본문 : 행 14:8-28
제목 : 환영보다 핍박을
서론
사람이라면 누구든 핍박보다 환영과 대접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인데 바울사도는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핍박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아야 한다고 하고(딤후 3:12)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행 14:22)
1. 병든 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본문 8-10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불쌍한 앉은뱅이를 주의 이름으로 걸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칭찬보다는 핍박을 받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사람은 칭찬보다도 핍박을 받을 때에 더욱 믿음이 돈독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칭찬 속에서 교만해질 가능성이 있고 책망과 징계 속에 겸손하여지며 더욱 주님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적을 행하고도 환영보다 핍박을 바랐습니다.
2. 환영을 거절하였습니다.
본문 11-18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하였습니다. 무리들은 바울의 일행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신과 같이 취급을 하여 제사까지 지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와 같은 최대한의 환영도 거절하였습니다.
3. 핍박을 각오하였습니다.
본문 19-22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와서 무리를 초인(초인 : 사람을 부름)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떠한 박해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는 아예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행 20:24).
결론
바울사도는 주의 복을 전하는 주의 종으로서 환영보다는 핍박을 택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의 종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본문 : 행 15:1-11
제목 : 오직 구원은?
서론
삼대 원칙이 있다면 구원은 오직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만 받고 복은 오직 순종만 행함으로만 받는 것이며 상급은 오직 충성으로만 받는 것입니다. 특히 구원받는 방법은 믿음 외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율법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본문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5).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0)"하였습니다. 누구나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갈 3:10).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유대인도 불가능한데 이방인은 더욱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 8-9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끗함을 받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3.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는데 그의 피로 살리셨습니다(엡 2:1).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결론
오직 구원은 율법으로는 불가능하고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행 16:31) 그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알고 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주께 돌려보내야 합니다(시 116:12, 엡 1:6-14).
본문 : 행 16:16-34
제목 : 사람과 사람의 만남
서론
사람에게는 만남의 복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잘 만나면 이 또한 복이요 아내가 남편을 잘 만남도 복이며 친구를 잘 만남도 복입니다. 그리고 스승을 잘 만남은 더욱 복입니다. 앉은뱅이가 베드로를 만남이 복이 되었고 눈먼 사람이 예수를 만남이 복이 되었으며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이 큰 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보듯이 귀신들려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던 여인이 바울사도를 만난 것이 큰 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귀신들린 사람과 주인의 만남은...
본문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하였습니다. 귀신들린 여자가 사람을 잘못 만나서 그들의 돈벌어 주는 도구로 사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것도 원통하고 분한 일인데 거기다가 돈을 벌어서 자기를 이용하는 자들에게 모두 주고 있으니 이는 도저히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는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용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여자가 자기를 이용하여 돈버는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을 만난 것은 불행한 만남이었습니다. 오늘의 사회 속을 들여다 보면 사람을 이용하는 악인들이 얼마든지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
2. 귀신들린 사람과 바울의 만남은...
본문 18-26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벗어 가지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하였습니다. 바울은 귀신들린 사람을 주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내어 쫓아 버렸습니다. 즉 한 사람의 장래를 희망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울을 만남이 그 여자에게는 크나큰 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 만남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3. 바울과 간수의 만남은...
본문 28-34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다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어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노라"하였습니다. 간수와 바울사도를 만남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크게 유익하고 잘못 만나면 크게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여 대인관계에 손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 행 17:22-34
제목 : 신앙의 대상자
서론
인간이 가지는 종교심이 올바른 신앙의 대상자를 찾지 못해 잘못되는 수가 많은데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들에게 올바른 신앙의 대상자를 소개하였습니다.
1. 창조주를 섬겨야 합니다.
본문 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하였습니다. 이는 신앙의 대상자는 피조물이 될 수가 없고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피조물은 신앙의 대상자가 될 수 없고 오직 창조주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신앙고백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의 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하는 것입니다.
2. 인간을 창조하신 이를 섬겨야 합니다.
본문 26-27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하였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는 기록하기를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눅 3:38)하였습니다. 사람의 시조가 누구인가를 인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밝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육의 아버지라고 하고 구속자로서 영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까이 계시면서 도와 주시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3. 생사를 주장하시는 이를 섬겨야 합니다.
본문 28-29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기도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삼상 2:6-10)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결론
인도의 하늘 아래는 3억 3천만의 신이 있다고 하는데 그 어느 신을 신앙의 대상자로 정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시 42:8). 그렇게 될 때에 먹는 양식과 마시는 물에 복을 받고 병을 제하여 주시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출 23:25-26).
본문 : 행 18:24-28
제목 : 성경에 능한 아볼로
서론
알렉산드리아는 당시의 희랍문화 및 학문의 일대 중심지로서 아덴과 어깨를 겨누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문화의 도시에서 태어난 아볼로가 성경에 능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유대인이나 희랍사람들을 감동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 아는 데까지는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본문 24-25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하였습니다. 지식적인 믿음과 중생의 체험을 한 체험적인 믿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예수를 알고 전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아볼로는 예수를 아는 데까지는 자세하게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몰라서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하여 말해야 합니다.
2. 모르는 것은 더 배웠습니다.
본문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하였습니다. 나름대로 능하다고 하는 아볼로도 믿음에 대해서는 브리스길라나 아굴라에게 배워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에게 더 자세히 배웠습니다. 사람이 배우는데는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무조건 배우는 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아볼로는 무조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능한 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무조건 배워야 합니다(딤후 3:14, 빌 4:9).
3. 성경으로써 은혜를 끼쳤습니다.
본문 27-28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아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하였습니다. 성경에 능통한 결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는 일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많이 알므로 유익한 점도 있었지만 그 일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에 당파가 생기는 동기도 되었습니다(고전 1:12-15). 그래서 잘못하면 지식은 부덕을 끼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신하여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딤후 3:14).
결론
우리들도 아볼로처럼 성경을 많이 알아서 아는데까지 자세히 말해주고 모르는 것은 더 배워서 성경으로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본문 : 행 19:8-20
제목 : 바울의 목회
서론
바울사도는 유대교회에서 개종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어 평생토록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신앙으로서도 타의 모범이 되었고 목회자로서도 타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하였습니다.
1. 꾸준히 성경을 강론하였습니다.
본문 8-10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여 유대인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을 성경으로 바로 잡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생각하는데 바울사도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갈 수 있다고 하였고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국민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바울사도는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범위를 넓혔습니다. 여하간 성경을 꾸준히 강론하였습니다. 이것이 모범적인 목회자 상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흥왕하였습니다(20).
2.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본문 11-16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들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희한하게 마술이나 요술을 행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즉 자기가 노력하거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타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 것 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냈습니다.
3. 결과는 믿는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본문 17-19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온 오만이나 되더라"하였습니다. 예수의 힘을 남용한 사람들이 천벌을 받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은 에베소 사람들은 예수에 대하여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에 대하여 재인식을 믿으려는 마음으로 자기들이 지금까지는 숨겨두었던 죄를 자복하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알찬 목회의 결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회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죄를 자복하게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고 기쁜 마으믕로 주를 섬기도록 만드는데 있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사도의 목회 철학은 성경을 중심해서 가르치고(고전 4:6)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복음을 전하며(빌 4:13) 하나님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회개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 : 행 20:17-38
제목 : 바울의 목회
서론
바울은 주의 종이 된 후에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가 죽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주의 일을 많이 해 놓고도 환영과 대접보다는 매맞음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와 같은 고난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교회만을 염려하였습니다(고후 11:23-28). 그리하여 성도들만을 위하여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본문 17-21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르쳐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종으로 할 수 있는 일이요(마 28:19-20) 주의 성도들에게 유익하게 때문입니다(빌 4:9).
2.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본문 22-27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런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여 여기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을 말씀께 부탁하였습니다.
본문 29-32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도들을 자기에게로 가까이 이끌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목회자의 태도입니다.
결론
바울사도의 목회 철학은 성도가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가르쳤고 자기의 생명을 위해서는 생명도 버리려고 하였으며 성도들을 말씀께 부탁하여 하나님과 가까워 지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본문 : 행 21:1-14
제목 : 바울의 각오
서론
바울사도는 목회자로써 평생의 주를 위하고 성도들을 위하여 어떠한 일이라도 당할 각오를 하였습니다.
1. 앞길이 험악함을 각오하였습니다.
본문 10-12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4). 이는 바울의 앞날이 얼마나 험악한가를 암시하고 하는 말들입니다. 제자들이 스승을 위험함 곳에 가지 못하도록 만류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그와 같은 위험을 피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부닥칠 각오를 하였습니다.
2. 주를 위하여 결박을 각오하였습니다.
본문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으 죽음을 이미 각오하였기 때문에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제자들의 인정넘친 충고라고 할지라도 인정을 초월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사도는 주와 성도들을 위하여서는 어떤 고난도 각오하였습니다.
3. 죽음까지 각오하였습니다.
본문 13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평소에 한 말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하였습니다. 천하 보다도 귀한 것이 사람이 생명인데 주를 위하여서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초개 같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와 같은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
목회자는 모두가 바울사도처럼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일을 잘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 행 22:17-30
제목 : 폭행을 면한 바울
서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괴롭히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였을 때에 유대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폭행 당하지 않고 피하였습니다.
1. 미움받는 이유는...
본문 17-23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 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증거하는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는 것 때문에 미움을 받은 것입니다.
2. 포박하여 고문하는 이유는...
본문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냐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 대"하였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이 어떤 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를 신문하려고 포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고문을 해서라도 여죄를 추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문은 노예에게 사용하는 방법이지 일반 사람에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할 수 없는 금지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많은 고난도 받았습니다.
3. 폭행을 면할 방법은...
본문 25-29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하였습니다. 이는 바울사도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므로 폭행을 면하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법적으로 면할 수 있는 폭행을 일부러 받아들이려고 하지 아니하고 법의 보호를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데도 일부러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 가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
바울사도는 복음을 위하여 미움을 사고 체포되어 고문과 폭행을 당할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법의 보호를 받아 폭행을 면하였습니다.
본문 : 행 23:1-11
제목 : 공회 앞에 선 바울
서론
바울사도는 대제사장을 앞에서 자신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을 하니까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교만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바울사도를 얼마나 미워하였는지 그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하였습니다(12-14).
1. 양심적으로 하나님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실이었습니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매우 떳떳한 일입니다. 즉 누구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이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기도는 죽어도 하고, 해서 안될 우상 숭배는 죽어도 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사람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상관없이 신전의식 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와 같이 어디서나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 타락한 성직자들을 꾸짖었습니다.
본문 2-5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가로되 회 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하였습니다. 타락한 성직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하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성직자들을 꾸짖은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가 타락하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6-11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 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 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훤화가 일어날 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 부활을 증거하다가 공회 앞에 섰다고 하니까 바리새인들의 동정과 천부장의 도움으로 생명의 위협을 면하고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결론
바울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공회 앞에 서게 되었는데 그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하고 타락한 성직자들을 꾸짖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누구 앞에 선다고 해도 떳떳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행 24:1-9
제목 : 의인을 고소하는 악인
서론
악인이 도리어 의인을 고소하는 경우를 적반하장이라 합니다.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1. 궤변에 능한 자들입니다.
본문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원칙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실족할뻔 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시 73:1-17). 바울사도를 고소한 자들은 궤변에 능하고 모함에 이력이 난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흑을 백으로 만들고 백을 흑으로 만들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의 세상에도 그와 같은 일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2. 아첨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2-4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의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 하옵나이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상 여짭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하였습니다. 더둘로는 아첨하는 말로 벨렉스 총독에게 고합니다. 아첨은 간사한 자들만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3. 모함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5-9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가 염병을 전한다고 모함하고 성전을 더럽게 한다고 모함하며 나사렛 이단 괴수라고 모함하여 악 선전하였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고발하는 이와 같은 일들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 악인을 의롭다 하시지 아니하시고 의인을 악하다고 하시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의인들이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본문 : 행 25:1-12
제목 : 타락한 종교인
서론
역사 이래로 보면 종교인이라고 해서 다 선량한 것도 아니고 종교인이라는 명칭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타락한 종교인들은 더욱 무섭고 잔인한 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 의인을 죽이려고 합니다.
본문 1-3 "베드로가 도임한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드로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하였습니다. 타락한 종교인들은 사람을 암살까지 하려고 합니다. 불신자들도 하기를 꺼려하는 일을 서슴치 않고 한다는 것은 타락한 종교인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도 이방인들이 아니고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팔아넘긴 사람이 불싡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는 제자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단식 농성을 하는 악인들입니다(행 23:12-14).
2. 불신자보다 못합니다.
본문 4-5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하였습니다. 불신자는 바울의 죄목을 자세히 알아본 후에 송사라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데 유대인들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보다 더욱 못한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아니하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다루려거든 신중히 해야 합니다.
3. 무죄한 자를 죄인으로 만듭니다.
본문 8-12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불신자들보다도 더욱 악한 자들입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타락하면 더욱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믿는 사람들이 타락하면 불신자들로부터 욕을 먹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가 타락하면 더욱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본문 : 행 26:19-32
제목 : 전도자 바울의 마음
서론
바울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고 은혜받기를 원하였습니다.
1.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본문 19-20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한르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모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구원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이 전도자의 마음인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본문 21-25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복음만 전하였다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미쳤다고 취급을 받았습니다. 즉 복음만 전하다가 미친 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3. 모두 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본문 28-29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죄인의 몸이면서도 모두가 예수를 믿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바울사도는 진정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고 빈부귀천 차별없이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며 모두가 예수를 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이 진정한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본문 : 행 27:9-26
제목 : 하나님 사람의 말
서론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한 마디의 말이 무척 중요한 것이고 미치는 영향도 큰 것입니다.
1. 위험을 막는 말입니다.
본문 9-10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어떤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니라 하되"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여러 사람들의 생명의 위험을 알리어서 집단적으로 죽는 것을 막아보려고 핍박을 무릅쓰고 어려운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위험을 알고 염려하여 말해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와 같은 말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위험한 일을 막아야 합니다.
2. 깨닫게 하는 말입니다.
본문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백부장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11)하였습니다. 이는 이들이 당하는 어려움의 원인이 바울의 말을 듣지 아니한데 있다고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은 당장에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라도 옳은 말은 들을 수 있게 교육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잘못을 깨닫도록 말한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입니다.
3. 소망적인 말입니다.
본문 22-26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처음에 자기가 권면한 말을 듣지 아니하였지만 상관하지 않고 다시 그들에게 소망적인 말을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심하라고 말하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망적인 말을 해준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결론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고운 말을 해야 하지만 특히 믿는 성도들은 더욱 조심하여 말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하였습니다.
본문 : 행 28:1-15
제목 : 고난 뒤에 받은 위로
서론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고난을 받지만 고난을 받고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현재 고난은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8:18).
1. 토인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1-2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의 일행은 매우 고생을 하였지만 토인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2. 보블리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7-10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하였습니다. 멜리데섬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많은 대접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3. 로마의 형제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14-15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에 있는 신자들의 위로를 받고 큰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무척 고생을 했지만 그와 같은 위로들로 모든 고생을 다 잊어 버렸습니다. 인간들은 평생동안 고난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욥 5:7-8). 그러나 주님의 나라에 가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고생은 꿈에 본 듯이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사도는 항해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였으나 육지에 나와서는 토인들에게 위로를 받고 보블리오의 위로를 받았으며 로마 형제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벧전 4:12-19).
제목 : 주의 일 한다고 성도가 아니다
서론
가룟 유다는 주의 일을 죽을 때까지 결국은 제 갈 곳으로(지옥)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의 일만 한다고 해서 다 천국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악인도 악한 날에 쓰시기 때문입니다.
1. 가룟유다는 주님의 제자였습니다.
본문 17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하였습니다. 이는 가룟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도들과 함께 주의 일을 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결과적으로 볼 때에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 직분자들이라고 해서 성도요 천국간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히 쓰임을 받는다는 것 뿐입니다.
2. 예수를 팔았습니다.
본문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서 그 돈으로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기록하기를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마 26:14-16)하였습니다. 구약에 유다는 동생 요셉을 은 20냥에 애굽의 상인에게 팔았는데 신약의 가룟 유다는 스승을 은 30냥에 팔았습니다. 돈이 무엇이길래 형제도 스승도 팔아버립니까?
3.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본문 18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하였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여 스승을 팔아서 그 돈을 한 푼도 써 보지 못하고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돈으로 밭을 샀는데 그 밭을 피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만 내어 놓은 것이 아니고 그는 목을 매어 죽고 말았는데 그 영혼이 지옥 갔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행 1:25)하였습니다. 제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주의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성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군이 되어 주의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직분이나 맡았다고 다 된 줄로 알지는 않는지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구원과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다만 구원받은 사람이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여 주의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마 26:24, 잠 16:4, 요 6:70-71, 눅 22:36).
본문 : 행 2:42-47
제목 : 초대교회 성도들
서론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금의 성도들과는 신앙생활을 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즉 모범적으로 잘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교역자의 가르침대로 따랐습니다.
본문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도들의 교훈을 받아서 그대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사도들의 잘못이 없고 성도들도 순진한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주의 종들도 성도들에게 존경받을 행위를 못하고 성도들도 완악하여져서 초대교회 같지는 못합니다. 이런 점이 아쉬운 것입니다. 그래서지금도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 같은 주의 종들의 품위를 지녔으면 하고 당시의 성도들과 같이 순진한 면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입니다.
2. 공동체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본문 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하였습니다. 성도들이 형제애를 가지고서로 필요에 따라서 네것 내것을 따지지 않고 융통성 있게 사용하였습니다. "믿은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고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행 4:32-35)하였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공동체 의식이 강하여 서로 도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신본주의 신앙을 소유하였습니다.
본문 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교역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해서 기도하는 일을 전혀 힘쓰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데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신본주의 정신하에서 성도교제도 나누고 신앙생활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쁘심을 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성도들도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뭉쳐서 교역자들의 가르침을 받아 성도들의 교제가 뜨거워지고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기를 힘쓰며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면 믿는 자들이 불어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 : 행 3:1-16
제목 : 세 종류의 사람
서론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이 장에서는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세 가지 경우의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약한 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1-2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하였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도와서 메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지금은 불구자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는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 구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하였습니다. 생업에 종사할 수 없는 앉은뱅이라 구걸하는 것이 그의 생계를 위한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리하여 염치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구걸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비록 구걸을 하지만 사기를 치거나 빼앗아 먹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3.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4-8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하였습니다. 남을 해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와 같이 좋은 일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역사요(13)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역사이며(16, 약 5:15)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였습니다(6).그리하여 은혜 받은 앉은뱅이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지만 약한 사람을 돌아보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행위를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신 때문이기도 합니다.
본문 : 행 4:28-31
제목 : 전도하기 전에
서론
전도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성질이 것이 아니고 하지 아니하면 자신에게 화가 미치는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기 전에 먼저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본문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하였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전도를 통해서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주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통하여 믿는 자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롬 10:13-17). 그래서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일이 못되고 부득불할 일이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고전 9:16). 그러므로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전하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본문 29-30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기 전에 하난님의 도우심을 먼저 간구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먼저 기도가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호 물자를 주겠다고 오라고 하는 것과 다르고 잔치를 베풀고 음식을 먹으러 오라고 초청하는 것과도 달라서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3.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본문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 뿐만 아니고 무엇이든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도와주시기 때문에 기도도 할 수 있게 하시고 전도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을 전도자들이 먼저 알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결론
전도는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길이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지만 먼저 하나님이 뜻이라는 것을 알고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담대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행 5:1-11
제목 : 두려워할 일
서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일과 경제를 어렵게 하는 일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두려워해야 할 일은 차원을 달리한 것입니다.
1. 기본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본문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하였습니다. 작정한 것을 바치려고 판 줄 아는데 재산을 처분하고 나서는 그만 마음이 달라져서 그 값의 얼마를 떼어 놓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집안의 재산 전부를 바쳐야 되는 것이 아니고 헌금은 언제나 자유롭게 드릴 수 있는데 아나니아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처음에 작정할 때에 자기 재산 전부를 드린다고 서원을 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하는 말이 너는 나를 속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을 속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속이는 일입니다.
본문 2-6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하였습니다. 처음에 작정한 그대로 하지 아니하고 다르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속인 죄가 되어서 그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악인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7-11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편에 서서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악인의 꾀를 쫓은 것입니다. 그래서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죄 짓는 일에는 함께 해서는 안됩니다. 악인의 편이 되지 말고 의인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오늘의 성도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분적으로 주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는 하지 말고 악인의 편이 되지 말며 의인의 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이 망하여도 나와 가족은 망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본문 : 행 6:1-6
제목 : 교회 직분자를 택할 때는
서론
하나님의 교회가 성도들의 공동체인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봉사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직분자를 선출하는 것입니다. 직분자를 선출할 때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법을 동원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 필요성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2 "그 때엑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 두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하였습니다. 집사들이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사도들이 하다보니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직분자를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꾼이 필요하다고 인정이 될 때는 반드시 선출해야 합니다. 주의 일은 혼자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2. 자격 여부를 고려해야 합니다.
본문 3-4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하였습니다. 직분자는 물론 세상의 지식도 있고 재산도 있으면 좋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주를 위하여 기쁨으로 순교할 수 있고(행 7:55-60) 지혜가 있어야 깨끗하고 화평하여 선한 일을 하며 교회 분위기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약 3:17-18). 그리고 지혜로우면 솔로몬처럼 모든 일을 소리 없이 잘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직분자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자격이 있습니다.
3. 안수하여 책임을 맡겨야 합니다.
본문 5-6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하였습니다. 성직자(聖職者)에게 안수(按手)하는 법은 구약시대(舊約時代)부터 있는 것입니다(민 27:14-18). 이는 임직을 선언하는 예식이기에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안수하는 것은 직권을 맡김이요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이며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은혜를 받는 순서이기도 합니다.
결론
교회의 직분은 사회의 직책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입니다. 사회 지도자는 사람을 잘 다스리는 지도력이 중요하지만 하나님 교회의 직분은 덕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이 될 때에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택하여 안수하여 일을 맡겨서 죽도록 충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 : 행 7:55-60
제목 : 어떻게 죽을까?
서론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금수와 같이 살다가 금수와 같이 죽는 사람도 있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성자답게 살다가 성자 같이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할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매우 귀하게 살다가 값지게 죽었습니다.
1. 하늘의 것을 말하다가 죽어야 합니다.
본문 55-58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죽음 직전까지 하늘의 것을 말하다가 죽었습니다. 이는 그의 사명을 다하고 후회없는 죽음을 죽은 것입니다.
2.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죽어야 합니다.
본문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이 평소에도 하늘의 것을 말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지만 죽을 때는 더욱 아름답게 죽었습니다. 말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지만 죽을 때는 더욱 아름답게 죽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깨끗이 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이는 죽을 때에 자식들에게까지 생전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가는데 스데반은 원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갔으니 얼마나 멋진 삶의 마무리입니까. 우리들도 그렇게 죽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3. 영혼을 주께 부탁하고 죽어야 합니다.
본문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하였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면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그리고 자기의 영혼을 주께 부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이와 같은 죽음은 성도만이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그와 같은 죽음을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세상을 떠나실 때에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결론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어떻게 죽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느냐가 본인에게도 후대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되는데 스데반은 주께서 귀하게 보시는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시 116:15). 우리들도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 행 8:9-24
제목 : 하나님과 관계 없는 교인
서론
교회 출입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도라고 할 수 있는 신앙이 좋은 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나오는 교인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인과 성도의 구분은 교인은 교적부에 등록된 사람을 말하고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성도이고 교인인지는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다운 생활을 하도록 노력을 해서 점쟁이 시몬처럼 책망 받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1. 세례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시몬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전심(全心)으로 지도자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누가 보아도 진정한 착실한 성도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에게 너는 이도에는 관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는 명령의 필연성(必然性)이지 구원의 필연성(必然性)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은 망했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0:2-5). 그러므로 세례만 받았다고 완전한 성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헌금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8-23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하였습니다. 시몬은 돈이면 무엇보다 다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성령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돈으로 천국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와는 관계없이 비기독교인의 사고방식입니다.
3. 기도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하였습니다. 시몬은 베드로의 책망에 간담이 녹아나는 느낌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이 금방이라도 내려질 것 같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서 죄를 깨닫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아니하면서 우선 벌만 면할 생각으로 그것도 자기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베드로에게 기도를 대신하여 달라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이며 자기 중심의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실제적으로는 기독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알고 드려야 하는데(계 5:8) 자기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오늘의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를 하나님을 설득시켜서 자기 욕구를 총족시키려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결론
기독교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생활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세례만 주장하지 말고 돈만 주장하지 말며 기도만 주장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고 내세의 소망 속에서 구원의 즐거움을 맛보고(시 51:12)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생각을 가지고(시 116:12) 주를 영화롭게 하고 찬미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엡 1:6-14).
본문 : 행 9:1-22
제목 : 별 수 없는 인생
서론
하나님 앞에서는 인생은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그와 살기 동등한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별 수 없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입으로 주여 뉘시오니이까 하고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인생들이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1. 허세도 별 수가 없습니다.
본문 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동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검거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허세도 주님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의 허세는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고집도 별 수가 없습니다.
본문 3-9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느니라"하였습니다. 다메섹으로 가서 그가 원하는 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죽이고자 하는 고집이 다메섹 도상에서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고집은 소용없는 것입니다. 애굽왕 바로가 고집이 무척 세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별 수 없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고집은 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진리 앞에서는 별 수가 없습니다.
본문 20-22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느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이 믿기 전에는 예수를 저주 받은 자로 알고 그를 믿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죽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본 후에는 그와 같은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나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임을 목숨을 걸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앞에서는 비진리가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의 힘과 인간의 지식 그리고 고집 등등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 행 10:1-35
제목 : 사람 됨됨이
서론
고넬료의 사람 됨됨이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언제 예수를 믿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성도로서 갖출 예의는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군대의 장교이지만 특수한 군대 생활에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가정의 모든 가족들이 예수를 믿고 항상 기도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경건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 하나님 섬기는 태도가 되었습니다.
본문 1-4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하였습니다. 그는 군대의 장관이면서 경건하여 신앙생활을 잘하고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적인 그의 태도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2. 순종하는 태도가 되었습니다.
본문 5-8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천사의 말을 듣고 즉각 순종하였습니다.그리하여 자기 하인 중에도 경건한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데 이는 그 일이 얼마나 귀중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하되 성의를 다해서 순종하는 태도가 좋은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그와 같은 태도로 순종해야 합니다.
3. 주의 종을 대하는 태도가 되었습니다.
본문 24-33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 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응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주의 종을 대하는 테도가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셔서 자기들에게 들려 주실 줄로 믿는 태도였습니다.
결론
고넬료의 사람 됨됨은 타인이 본받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라든가 순종하는 태도라든가 주의 종을 대하는 태도가 타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본받을 만한 태도입니다.
본문 : 행 11:1-18
제목 : 모르면 바보
서론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은게 인간입니다. 그리하여 지난 후에는 후회하는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장래일을 알 수 없고(전 7:14) 내일 일도 모르고(잠 27:1)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게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마 6:33). 그래서 인간은 모르면 바보라는 것을 시인하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바보들입니다.
1. 주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몰랐습니다.
본문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하였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인데 저들은 이방인과 가까이 하는 것이 죄를 짓는 일인 줄 알고 있어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온 것부터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아니한 것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으니 가라고 하셔서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나 베드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모르고 하는 바보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여 짓는 죄가 적지 아니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청하신 것을 몰랐습니다.
본문 13-15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하였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오게된 것이 베드로 자연인의 의지에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통하여 청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집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엉뚱한 생각과 베드로가 죄나 짓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면 바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몰랐습니다.
본문 6-18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하였습니다.
결론
인간들은 깊고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해 주님을 섭섭하게 해 드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알지 못해서 바보 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모르면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몰라서 죄 짓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 행 12:20-25
제목 : 신(神)으로 취급받은 사람들
서론
바울과 실라는 사람이면서 신과 같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에게 신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취급할 때에 군림하지 않고 겸손히 그들을 만류하여 나도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밝히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소개하였습니다(행 14:8-18). 그런데 오늘의 사람들은 자기가 신으로 군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1. 백성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본문 20-22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曉喩 : 알아듣게 일러 줌, 깨닫도록 타이름)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하였습니다. 헤롯의 연설을 백성들은 아부하여 신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헤롯은 백성들에게 신과 같이 취급을 받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아첨하는 말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다 죽었습니다.
본문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은 천벌을 받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31).
3. 인간 신이 죽어야 말씀이 흥왕합니다.
본문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하였습니다. 신과 같이 취급을 받으면서 교회를 핍박하던 헤롯이 죽고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인기가 높아지고 명성이 높아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쇠퇴하여 지며 사람의 명성이 낮아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그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과 같이 군림하면서 성도들을 핍박하면 교회는 수난을 당하여 성도들의 괴로움을 당하지만 겸손하면 교회는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들마다 인간을 신과 같이 취급을 해서도 안되고 취급을 받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사람이지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만한 인간들은 자기들이 신이나 된 것처럼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자기들이 다 받아 챙기는 무엄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여 망하고 말 것입니다.
본문 : 행 13:42-52
제목 : 영생을 거절하는 자들
서론
바울이 전도하는데서 유대교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성도들이 바울을 따르면서 그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더 들으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영생을 거절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고전 1:!8).
1. 시기하고 비방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할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하였습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무조건 바울의 말에 진리 여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무조건 시기하고 비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리를 깨닫기도 전에 마음의 문을 닿아 놓고 있기 때문에 영생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영생을 거절하는 자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하였습니다. 복음이 마땅히 유대인들에게 전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게 먼저 전해지는 것은 이들이 복음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에 끝까지 복음을 거절한다면 영생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서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롬 1:16-17).
3. 불의를 선동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50-52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제일로 방해자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도 죽이더니 그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까지도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복음 전하는데 큰 지장을 초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 권세자들과 재력이 있는 유력자들을 동원하여 복음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이는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영생을 거절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세상에서 죄를 짓고 지옥 가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거절하여야 하지만 영생을 얻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예하여 영생을 취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딤전 6:12).
본문 : 행 14:8-28
제목 : 환영보다 핍박을
서론
사람이라면 누구든 핍박보다 환영과 대접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인데 바울사도는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핍박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아야 한다고 하고(딤후 3:12)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행 14:22)
1. 병든 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본문 8-10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불쌍한 앉은뱅이를 주의 이름으로 걸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칭찬보다는 핍박을 받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사람은 칭찬보다도 핍박을 받을 때에 더욱 믿음이 돈독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칭찬 속에서 교만해질 가능성이 있고 책망과 징계 속에 겸손하여지며 더욱 주님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적을 행하고도 환영보다 핍박을 바랐습니다.
2. 환영을 거절하였습니다.
본문 11-18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하였습니다. 무리들은 바울의 일행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신과 같이 취급을 하여 제사까지 지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와 같은 최대한의 환영도 거절하였습니다.
3. 핍박을 각오하였습니다.
본문 19-22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와서 무리를 초인(초인 : 사람을 부름)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떠한 박해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는 아예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행 20:24).
결론
바울사도는 주의 복을 전하는 주의 종으로서 환영보다는 핍박을 택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의 종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본문 : 행 15:1-11
제목 : 오직 구원은?
서론
삼대 원칙이 있다면 구원은 오직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만 받고 복은 오직 순종만 행함으로만 받는 것이며 상급은 오직 충성으로만 받는 것입니다. 특히 구원받는 방법은 믿음 외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율법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본문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5).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0)"하였습니다. 누구나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갈 3:10).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유대인도 불가능한데 이방인은 더욱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 8-9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끗함을 받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3.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는데 그의 피로 살리셨습니다(엡 2:1).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결론
오직 구원은 율법으로는 불가능하고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행 16:31) 그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알고 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주께 돌려보내야 합니다(시 116:12, 엡 1:6-14).
본문 : 행 16:16-34
제목 : 사람과 사람의 만남
서론
사람에게는 만남의 복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잘 만나면 이 또한 복이요 아내가 남편을 잘 만남도 복이며 친구를 잘 만남도 복입니다. 그리고 스승을 잘 만남은 더욱 복입니다. 앉은뱅이가 베드로를 만남이 복이 되었고 눈먼 사람이 예수를 만남이 복이 되었으며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이 큰 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보듯이 귀신들려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던 여인이 바울사도를 만난 것이 큰 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귀신들린 사람과 주인의 만남은...
본문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하였습니다. 귀신들린 여자가 사람을 잘못 만나서 그들의 돈벌어 주는 도구로 사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것도 원통하고 분한 일인데 거기다가 돈을 벌어서 자기를 이용하는 자들에게 모두 주고 있으니 이는 도저히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는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용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여자가 자기를 이용하여 돈버는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을 만난 것은 불행한 만남이었습니다. 오늘의 사회 속을 들여다 보면 사람을 이용하는 악인들이 얼마든지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
2. 귀신들린 사람과 바울의 만남은...
본문 18-26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벗어 가지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하였습니다. 바울은 귀신들린 사람을 주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내어 쫓아 버렸습니다. 즉 한 사람의 장래를 희망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울을 만남이 그 여자에게는 크나큰 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 만남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3. 바울과 간수의 만남은...
본문 28-34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다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어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노라"하였습니다. 간수와 바울사도를 만남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크게 유익하고 잘못 만나면 크게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여 대인관계에 손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 행 17:22-34
제목 : 신앙의 대상자
서론
인간이 가지는 종교심이 올바른 신앙의 대상자를 찾지 못해 잘못되는 수가 많은데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들에게 올바른 신앙의 대상자를 소개하였습니다.
1. 창조주를 섬겨야 합니다.
본문 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하였습니다. 이는 신앙의 대상자는 피조물이 될 수가 없고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피조물은 신앙의 대상자가 될 수 없고 오직 창조주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신앙고백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의 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하는 것입니다.
2. 인간을 창조하신 이를 섬겨야 합니다.
본문 26-27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하였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는 기록하기를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눅 3:38)하였습니다. 사람의 시조가 누구인가를 인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밝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육의 아버지라고 하고 구속자로서 영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까이 계시면서 도와 주시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3. 생사를 주장하시는 이를 섬겨야 합니다.
본문 28-29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기도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삼상 2:6-10)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결론
인도의 하늘 아래는 3억 3천만의 신이 있다고 하는데 그 어느 신을 신앙의 대상자로 정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시 42:8). 그렇게 될 때에 먹는 양식과 마시는 물에 복을 받고 병을 제하여 주시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출 23:25-26).
본문 : 행 18:24-28
제목 : 성경에 능한 아볼로
서론
알렉산드리아는 당시의 희랍문화 및 학문의 일대 중심지로서 아덴과 어깨를 겨누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문화의 도시에서 태어난 아볼로가 성경에 능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유대인이나 희랍사람들을 감동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 아는 데까지는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본문 24-25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하였습니다. 지식적인 믿음과 중생의 체험을 한 체험적인 믿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예수를 알고 전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아볼로는 예수를 아는 데까지는 자세하게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몰라서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하여 말해야 합니다.
2. 모르는 것은 더 배웠습니다.
본문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하였습니다. 나름대로 능하다고 하는 아볼로도 믿음에 대해서는 브리스길라나 아굴라에게 배워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에게 더 자세히 배웠습니다. 사람이 배우는데는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무조건 배우는 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아볼로는 무조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능한 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무조건 배워야 합니다(딤후 3:14, 빌 4:9).
3. 성경으로써 은혜를 끼쳤습니다.
본문 27-28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아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하였습니다. 성경에 능통한 결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는 일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많이 알므로 유익한 점도 있었지만 그 일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에 당파가 생기는 동기도 되었습니다(고전 1:12-15). 그래서 잘못하면 지식은 부덕을 끼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신하여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딤후 3:14).
결론
우리들도 아볼로처럼 성경을 많이 알아서 아는데까지 자세히 말해주고 모르는 것은 더 배워서 성경으로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본문 : 행 19:8-20
제목 : 바울의 목회
서론
바울사도는 유대교회에서 개종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어 평생토록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신앙으로서도 타의 모범이 되었고 목회자로서도 타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하였습니다.
1. 꾸준히 성경을 강론하였습니다.
본문 8-10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여 유대인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을 성경으로 바로 잡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생각하는데 바울사도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갈 수 있다고 하였고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국민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바울사도는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범위를 넓혔습니다. 여하간 성경을 꾸준히 강론하였습니다. 이것이 모범적인 목회자 상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흥왕하였습니다(20).
2.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본문 11-16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들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희한하게 마술이나 요술을 행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즉 자기가 노력하거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타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 것 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냈습니다.
3. 결과는 믿는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본문 17-19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온 오만이나 되더라"하였습니다. 예수의 힘을 남용한 사람들이 천벌을 받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은 에베소 사람들은 예수에 대하여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에 대하여 재인식을 믿으려는 마음으로 자기들이 지금까지는 숨겨두었던 죄를 자복하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알찬 목회의 결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회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죄를 자복하게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고 기쁜 마으믕로 주를 섬기도록 만드는데 있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사도의 목회 철학은 성경을 중심해서 가르치고(고전 4:6)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복음을 전하며(빌 4:13) 하나님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회개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 : 행 20:17-38
제목 : 바울의 목회
서론
바울은 주의 종이 된 후에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가 죽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주의 일을 많이 해 놓고도 환영과 대접보다는 매맞음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와 같은 고난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교회만을 염려하였습니다(고후 11:23-28). 그리하여 성도들만을 위하여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본문 17-21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르쳐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종으로 할 수 있는 일이요(마 28:19-20) 주의 성도들에게 유익하게 때문입니다(빌 4:9).
2.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본문 22-27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런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여 여기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을 말씀께 부탁하였습니다.
본문 29-32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도들을 자기에게로 가까이 이끌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목회자의 태도입니다.
결론
바울사도의 목회 철학은 성도가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가르쳤고 자기의 생명을 위해서는 생명도 버리려고 하였으며 성도들을 말씀께 부탁하여 하나님과 가까워 지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본문 : 행 21:1-14
제목 : 바울의 각오
서론
바울사도는 목회자로써 평생의 주를 위하고 성도들을 위하여 어떠한 일이라도 당할 각오를 하였습니다.
1. 앞길이 험악함을 각오하였습니다.
본문 10-12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4). 이는 바울의 앞날이 얼마나 험악한가를 암시하고 하는 말들입니다. 제자들이 스승을 위험함 곳에 가지 못하도록 만류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그와 같은 위험을 피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부닥칠 각오를 하였습니다.
2. 주를 위하여 결박을 각오하였습니다.
본문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으 죽음을 이미 각오하였기 때문에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제자들의 인정넘친 충고라고 할지라도 인정을 초월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사도는 주와 성도들을 위하여서는 어떤 고난도 각오하였습니다.
3. 죽음까지 각오하였습니다.
본문 13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평소에 한 말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하였습니다. 천하 보다도 귀한 것이 사람이 생명인데 주를 위하여서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초개 같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와 같은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
목회자는 모두가 바울사도처럼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일을 잘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 행 22:17-30
제목 : 폭행을 면한 바울
서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괴롭히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였을 때에 유대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폭행 당하지 않고 피하였습니다.
1. 미움받는 이유는...
본문 17-23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 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증거하는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는 것 때문에 미움을 받은 것입니다.
2. 포박하여 고문하는 이유는...
본문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냐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 대"하였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이 어떤 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를 신문하려고 포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고문을 해서라도 여죄를 추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문은 노예에게 사용하는 방법이지 일반 사람에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할 수 없는 금지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많은 고난도 받았습니다.
3. 폭행을 면할 방법은...
본문 25-29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하였습니다. 이는 바울사도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므로 폭행을 면하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법적으로 면할 수 있는 폭행을 일부러 받아들이려고 하지 아니하고 법의 보호를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데도 일부러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 가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
바울사도는 복음을 위하여 미움을 사고 체포되어 고문과 폭행을 당할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법의 보호를 받아 폭행을 면하였습니다.
본문 : 행 23:1-11
제목 : 공회 앞에 선 바울
서론
바울사도는 대제사장을 앞에서 자신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을 하니까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교만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바울사도를 얼마나 미워하였는지 그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하였습니다(12-14).
1. 양심적으로 하나님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실이었습니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매우 떳떳한 일입니다. 즉 누구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이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기도는 죽어도 하고, 해서 안될 우상 숭배는 죽어도 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사람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상관없이 신전의식 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와 같이 어디서나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 타락한 성직자들을 꾸짖었습니다.
본문 2-5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가로되 회 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하였습니다. 타락한 성직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하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성직자들을 꾸짖은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가 타락하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6-11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 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 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훤화가 일어날 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 부활을 증거하다가 공회 앞에 섰다고 하니까 바리새인들의 동정과 천부장의 도움으로 생명의 위협을 면하고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결론
바울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공회 앞에 서게 되었는데 그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하고 타락한 성직자들을 꾸짖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누구 앞에 선다고 해도 떳떳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행 24:1-9
제목 : 의인을 고소하는 악인
서론
악인이 도리어 의인을 고소하는 경우를 적반하장이라 합니다.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1. 궤변에 능한 자들입니다.
본문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원칙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실족할뻔 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시 73:1-17). 바울사도를 고소한 자들은 궤변에 능하고 모함에 이력이 난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흑을 백으로 만들고 백을 흑으로 만들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의 세상에도 그와 같은 일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2. 아첨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2-4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의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 하옵나이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상 여짭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하였습니다. 더둘로는 아첨하는 말로 벨렉스 총독에게 고합니다. 아첨은 간사한 자들만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3. 모함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5-9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가 염병을 전한다고 모함하고 성전을 더럽게 한다고 모함하며 나사렛 이단 괴수라고 모함하여 악 선전하였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고발하는 이와 같은 일들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 악인을 의롭다 하시지 아니하시고 의인을 악하다고 하시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의인들이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본문 : 행 25:1-12
제목 : 타락한 종교인
서론
역사 이래로 보면 종교인이라고 해서 다 선량한 것도 아니고 종교인이라는 명칭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타락한 종교인들은 더욱 무섭고 잔인한 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 의인을 죽이려고 합니다.
본문 1-3 "베드로가 도임한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드로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하였습니다. 타락한 종교인들은 사람을 암살까지 하려고 합니다. 불신자들도 하기를 꺼려하는 일을 서슴치 않고 한다는 것은 타락한 종교인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도 이방인들이 아니고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팔아넘긴 사람이 불싡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는 제자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단식 농성을 하는 악인들입니다(행 23:12-14).
2. 불신자보다 못합니다.
본문 4-5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하였습니다. 불신자는 바울의 죄목을 자세히 알아본 후에 송사라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데 유대인들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보다 더욱 못한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아니하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다루려거든 신중히 해야 합니다.
3. 무죄한 자를 죄인으로 만듭니다.
본문 8-12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불신자들보다도 더욱 악한 자들입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타락하면 더욱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믿는 사람들이 타락하면 불신자들로부터 욕을 먹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가 타락하면 더욱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본문 : 행 26:19-32
제목 : 전도자 바울의 마음
서론
바울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고 은혜받기를 원하였습니다.
1.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본문 19-20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한르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모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구원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이 전도자의 마음인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본문 21-25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복음만 전하였다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미쳤다고 취급을 받았습니다. 즉 복음만 전하다가 미친 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3. 모두 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본문 28-29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죄인의 몸이면서도 모두가 예수를 믿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바울사도는 진정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고 빈부귀천 차별없이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며 모두가 예수를 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이 진정한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본문 : 행 27:9-26
제목 : 하나님 사람의 말
서론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한 마디의 말이 무척 중요한 것이고 미치는 영향도 큰 것입니다.
1. 위험을 막는 말입니다.
본문 9-10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어떤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니라 하되"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여러 사람들의 생명의 위험을 알리어서 집단적으로 죽는 것을 막아보려고 핍박을 무릅쓰고 어려운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위험을 알고 염려하여 말해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와 같은 말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위험한 일을 막아야 합니다.
2. 깨닫게 하는 말입니다.
본문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백부장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11)하였습니다. 이는 이들이 당하는 어려움의 원인이 바울의 말을 듣지 아니한데 있다고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은 당장에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라도 옳은 말은 들을 수 있게 교육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잘못을 깨닫도록 말한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입니다.
3. 소망적인 말입니다.
본문 22-26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처음에 자기가 권면한 말을 듣지 아니하였지만 상관하지 않고 다시 그들에게 소망적인 말을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심하라고 말하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망적인 말을 해준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결론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고운 말을 해야 하지만 특히 믿는 성도들은 더욱 조심하여 말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하였습니다.
본문 : 행 28:1-15
제목 : 고난 뒤에 받은 위로
서론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고난을 받지만 고난을 받고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현재 고난은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8:18).
1. 토인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1-2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의 일행은 매우 고생을 하였지만 토인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2. 보블리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7-10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하였습니다. 멜리데섬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많은 대접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3. 로마의 형제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14-15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에 있는 신자들의 위로를 받고 큰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무척 고생을 했지만 그와 같은 위로들로 모든 고생을 다 잊어 버렸습니다. 인간들은 평생동안 고난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욥 5:7-8). 그러나 주님의 나라에 가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고생은 꿈에 본 듯이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사도는 항해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였으나 육지에 나와서는 토인들에게 위로를 받고 보블리오의 위로를 받았으며 로마 형제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벧전 4:12-19).
출처 : 행복충전소 † 대명교회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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