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학

[스크랩]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십일조

수호천사1 2013. 4. 6. 20:53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십일조

 

 

약과 신약은 전체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한 말씀이며, 영원무궁토록 변함없는 하나님나라의 원리와 본질에 관한 진리의 말씀으로, 구별된 각각의 말씀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으신 진리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말씀도 그 내용과 기준에 있어서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는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과 신약은 점진적인 계시로 이루어져 있기에 부분적으로 보면 다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전체적인 조합으로 볼 때 완벽한 하나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그 본질과 원리에 있어서 영원무궁토록 동일한 것이며, 전체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계시이지 시대에 따라 그 기준과 내용 혹은 요구조건이 바꾸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매우 잘못된 편견들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 구약은 히브리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더 이상 신약의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들이다.

 

- 구약의 절기들은 이스라엘의 절기들이기에 신약의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 구약은 율법을 지킴으로 행위의 구원을 받았지만, 신약의 교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의 구원을 받는다.

 

- 구약은 흠 없는 짐승의 피를 힘입고(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지만, 신약의 교회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다만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 구약의 십일조는 신정국가체제의 이스라엘에게 적용되었던 율법의 강제규정이었지만, 신약의 교회에서는 더 이상 강제규정이 아니며 은혜 안에서 자율적으로 드리면 되는 것이다.

 

략 이상과 같은 매우 잘못된 주장들이 때때로 수많은 교회와 교인들에게 유포되어 있는 듯 하기에, 그러한 잘못들을 바로잡아 보고자 한다.

 

약은 단지 히브리인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백성공동체인 신약의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들이다.

 

(호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행 2:38-39)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

 

약의 절기들은 단지 이스라엘의 절기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여호와의 절기이기에, 하나님의 백성공동체인 신약의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들이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모든 절기들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절기들이 완성되어졌기에, 그 외형적인 형식은 생략되지만,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속에서 그 모든 절기들의 실제를 누리게 되었다(골2:16-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절기들의 실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전히 동일하게 유효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 12: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약은 율법을 지킴으로 행위의 구원을 받았지만, 신약의 교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약도 신약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구원의 방법들이 달라진다는 세대주의적 구원론과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의외로 그러한 잘못된 사상들이 수많은 교회와 사람들 속에 팽배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롬 4:1-3)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약은 흠 없는 짐승의 피를 힘입고(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지만, 신약의 교회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다만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교회도 흠 없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고(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구약에 하나님께 열납되려면 사람이고 물건이고 모두 다 피뿌림과 기름부음(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얻어야 했듯이, 신약에도 하나님께 열납되려면 피뿌림과 기름부음(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히 9:11-22)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10:19-22)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벧전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약의 십일조는 신정국가체제의 이스라엘에게 적용되었던 율법의 강제규정이었지만, 신약의 교회에서는 더 이상 강제규정이 아니며 은혜 안에서 자율적으로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도 신약시대도 하나님 백성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통적인 원리이기에 구약도 신약도 자율성과 강제성이 함께 적용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민 18:21-24)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23]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말 3:9-10)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고전 9:13-14)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후 9:6-11)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별히 이 십일조부분에서 수많은 혼란들이 현대교회에 팽배해 있음을 본다. 수많은 신학자와 설교자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주장들을 펼치며 교인들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음을 본다. 심지어 십일조는 신약의 성도들에게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매우 사탄적인 십일조 폐지론주의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세대가 되었다.

 

근에 J목사님께서 “십일조와 헌금원리”에 관한 말씀을 매우 차분하게 선포해 주셨는데,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여 십일조와 헌금생활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시키면서도 결국에는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자율적이기는 하지만 십일조와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매우 지혜로운(?) 설교를 해 주셨다. 하지만 그 지혜(?)가 결국에는 신약의 성도들은 십일조를 안 해도 무방한 것이라는 위험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그 결과 십일조생활에 있어서 어떤 방종의 빌미를 제공해 줄 수 있겠다는 심적 부담을 안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냥 나의 기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논지를 차분히 점검해 볼 필요는 있겠다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부족함이 너무 많은 사람이기에 실수가 있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이 글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발견된다면 넓은 사랑의 마음으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성경말씀으로 점검하여 잘못된 부분들은 계속하여 정정해 나가도록 하겠다.

 

일조와 헌금에 관한 그분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약의 십일조는 본래 23.3%인데, 성전사역자들인 레위인들과 제사장을 위한 10%(레27:30-33,민18:21-32), 가족들과 함께 먹고 즐기며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기 위한 10%(신12:17-28,14:22-27), 매 3년째마다 추가로 드려지는 객과 고아와 과부와 분깃 없는 레위인들을 위한 10%가 바로 그와 같은 것들이고(신14:28-29), 그 외에도 국가에 드리는 10%(삼상8:15-17)도 있었다.

 

상과 같은 구약성경의 십일조에 대한 J목사님의 정리는 매우 정확한 것이며, 지금 현재 우리 지구촌사랑교회만 해도 이상과 같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수입의 23.3%를 떼어 가족들을 돌보고 불우이웃을 돌보며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온전한 십일조의 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J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매우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갖게 한다.

 

약성경에 기록된 수입의 23.3%라고 하는 이상과 같은 십일조는 구약의 히브리인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지, 신약의 교회와는 더 이상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전이기에 구약에 해당되는 것이며 신약의 교회 성도들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신정국가체제 하에서 조세의 성격으로 신정국가의 국민이 바치던 그와 같은 의미의 구약적 십일조는 신약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신약성경 히브리서 7장에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부분도 역시 십일조를 하라는 언급은 아니라는 것이다.

 

(히 7:4-10)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브리서 기자의 이 기록도 십일조를 바치라는 내용이 아니라, 자신들이 구약의 레위지파 제사장체계에 속한 선민들이라 뽐내는 히브리인들에게 “레위사람의 제사장 체계보다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체계가 훨씬 중요한 것이고, 우리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그 제사장체계를 따라오신 그런 분이시다.”를 이야기하고자 함이기에 십일조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론적으로 신약성경전체를 봤을 때, “십일조를 드려야 된다.” 이런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십일조라고 하는 것이 구약시대 신정국가체제의 이스라엘에게 부과된 조세성격의 헌금이었고, 이제는 성소의 휘장이 갈라져서 하나님께로 직통으로 나아가는 신약시대가 되었기에, 신약성경에는 수입에 얼마를 떼라고는 안 나와 있고 자기 마음대로 정한 대로 기쁘게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십일조의 구약적인 강제규정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만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신정국가가 있었고 지금은 국가는 아니지만 교회라고 하는 그런 기관이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건물도 필요하고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물질도 필요하기에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하고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이 필요했던 것처럼,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재정이 필요하기에 그런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 그 자율적인 헌금에도 어떤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 보편적인 기준이 신약의 그림자인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강제규정으로 세금을 걷듯 걷는 것은 (신약시대) 헌금의 원리와 배치가 되기에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십일조니 주정헌금이니 그런 것 하지 말고 그냥 감사헌금으로 내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본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편에 따라 20%를 하든 5%를 하든 형편이 되는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고후 9:6-7, 킹흠정) 『[6] 오직 내가 말하려는 바는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후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후하게 거두리라 하는 것이라. [7] 저마다 자기 마음 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는 말씀에 따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요, 약속이기에 많이 거두고 싶으면 많이 심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십일조를 하면 자식이 잘 된다. 뭐가 잘 된다.”라는 말을 믿고 부자의 정신으로 십일조를 이야기하고, 헌금하는 것은 맹신(?)이기에 그런 사람에게는 “부자는 안 된다. 그건 아니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은 “십일조와 헌금원리”에 관한 J목사님의 설교핵심을 요약한 내용이다. 공감되는 부분들도 있고, 교인들이 상처를 받지 않게 하면서도 동시에 십일조 수준의 헌금을 하게 하려는 목회자 특유의 지혜(?)가 엿보이기도 한다. 십일조와 헌금원리에 관한 이만한 수준(?)의 설교를 만나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기에 이 설교를 더 많은 분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일일이 녹취하여 인터넷상에 올리는 분까지 생긴 것이리라.

 

지만 이상과 같은 그분의 설교를 듣다보니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짐을 느낀다. 비슷해 보일지라도 “아”와 “어”가 분명히 다른 것처럼, 성경의 진리와 매우 흡사해 보이지만, 성경의 본 진리와는 분명히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의구심이 솟구쳐 올라온다. 만일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이 부분을 점검하기 위하여 필자는 서두에서 다음과 같은 신학적 전제를 깔았다.

 

약과 신약은 전체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한 말씀이며, 영원무궁토록 변함없는 하나님나라의 원리와 본질에 관한 진리의 말씀으로 구별된 각각의 말씀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으신 진리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말씀도 그 내용과 기준에 있어서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는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과 신약은 점진적인 계시로 이루어져 있기에 부분적으로 보면 다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전체적인 조합으로 볼 때 완벽한 하나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그 본질과 원리에 있어서 영원무궁토록 동일한 것이며, 전체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계시이지 시대에 따라 그 기준과 내용 혹은 요구조건이 바꾸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약과 신약의 말씀들은 히브리인들을 포함한 모든 시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지, 구약은 히브리인들에게만 주어진 별개의 말씀이 아니다.

 

약의 절기들은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절기들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인류의 주가 되시는 여호와하나님의 절기이기에 구약과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유효하게 적용되는 것들이다. 물론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구약절기들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절기들이 완성되어졌기에, 구약과 같은 절기의 외적인 형식들에 얽매이지는 않지만,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속에서 그 모든 절기들의 실제들을 누리게 되었다(골2:16-17). 절기들의 실제가 완성되었기에 그 외적절차들은 폐지되었지만 절기들의 실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전히 동일하게 유효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약은 율법을 지킴으로 행위의 구원을 받았지만, 신약의 교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약도 신약도 모두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약은 흠 없는 짐승의 피를 힘입고(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지만, 신약의 교회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다만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교회도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고(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되는 것이다.

 

상과 같은 전제와 원리는 “십일조와 헌금원리”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약의 십일조는 신정국가체제의 이스라엘에게 적용되었던 율법의 강제규정이었지만, 신약의 교회에서는 더 이상 강제규정이 아니며 은혜 안에서 자율적으로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약에도 십일조와 헌금은 자율성과 강제성이 함께 있었으며 신약에도 그 부분은 여전히 동일한 것이다.

 

(마 5:17-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상과 같은 주님의 말씀처럼, 구약과 신약은 모든 면에 있어서 그 원리와 본질이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는 동일한 하나님의 기준이요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J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바, “십일조에 있어서 신약에 구약적 강제성은 없어졌지만 다만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신정국가가 있었고 지금은 국가는 아니지만 교회라고 하는 그런 기관이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건물도 필요하고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물질도 필요하기에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하고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이 필요했던 것처럼,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재정이 필요하기에 그런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헌금을 해야 하는 것이고, 다만 그 자율적인 헌금에도 어떤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 보편적인 기준이 신약의 그림자인 구약성경의 가르침이지만 강제규정으로 세금을 걷듯 걷는 것은 (신약시대) 헌금의 원리와 배치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본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편에 따라 20%를 하든 5%를 하든 형편이 되는 대로 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게 하면서도 동시에 십일조와 헌금을 하도록 유도하는 매우 지혜로운 말 같지만, 사실은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하여 약간의 독극물을 첨가하는 것과 같은 식의 매우 위험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한 소량의 독극물일지라도 그런 것에 한 두 번 노출되다보면 어느 한 순간 건강에 치명상을 입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 5:17-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약의 모든 진리들이 신약으로 오기까지 점진적인 계시로 인하여 점점 더 확고해지고 완벽하게 드러나는 것이지, 변화되거나 폐하여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십일조와 헌금도 그 원리와 본질에 있어서 늘 한결 같은 것이며 예수님의 구속 안에서 더 확고해지고 완벽해진 것이지 변화되거나 약화되거나 혹은 폐하여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태복음 21장에 예수님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사라지고 장사치들만이 우글거리는 성전을 청결케 하신 후,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 참된 믿음과 응답받는 기도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서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하는가 물었을 때,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더불어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에 있음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에 입으로는 순종하나 행동으로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지 못하는 악한 자들은 결국 진멸당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 말씀해 주셨다.

 

약이건 신약이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가 다 동일한 무게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세대주의적 성경관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구약이건 신약이건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것을 철저히 구별하여 드리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세대주의적 설교자들이 성경을 인용하여 감미롭게 뿜어내는 독소들을 잘 발견하고 퇴치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말 3:7-12)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6:21,24)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마 5:17-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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