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학

[스크랩] 기도, 문제 있다

수호천사1 2013. 4. 6. 09:02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사귐이며 대화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드리고 있는 기도를 점검해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사귐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화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심각하다.

 

대화는 상대를 배려하고, 서로 인격과 의사를 존중한 바탕 위에서 대화를 해야 건전하고 활발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로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고, 수수(授受)하는 관계 조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형태는 어떤가 생각해 보자.

하나님에게는 거의 말하실 기회를 주지 않고 일방 통행식이다.

아예 하나님의 발언권은 무시해도 되는 것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주이시므로 우리와 도저히 마주 앉아 대화할 상대가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겸비하고 낮아지셔서 우리의 생각을 들으시고 형편을 살피시려고 우리 곁으로 다가 오신 분이시다.

 

높은 곳, 거룩한 곳에서 오신 하나님을 우리는 너무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옆 집 아저씨만도 못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조차 없는 존재들이다.

 

그 고귀한 분을 뵙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몸가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몸 둘 바를 몰라서 쩔쩔 매며, 감히 그 분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기분과 눈치를 살피면서 우리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개진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드리는 자세와 태도를 보면 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너무 당당하고 일면 뻔뻔스런 고자세로 하나님의 입장은 고려하지도 않고 우리의 의견을 기탄없이 토설한다.

 

세상적인 기준에서도 자기를 낳아서 양육해 주신 부모님께 말씀드리거나, 큰 은혜와 시혜를 베풀어 준 귀한 어른들을 어떻게 뵙는지를 생각해 보면 금방 비교가 되리라.

기도는 응당 우리의 생각만을 직선적으로 하나님께 토로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어리석음의 결과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당돌하게 내 의견만을 말씀드린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내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란 내가 하는 얘기에 상대방의 입장과 대답을 들어야 하고, 상대방이 제시한 요청사항도 듣고 참고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즉 원활한 소통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 무례한 대화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아예 하나님이 말씀 하실 기회조차 주지 않고 봉쇄해 버린다.

행여나 하나님이 말씀하실까봐 일부러 내 얘기만을 일사천리로 전달해 버리는 모양새다.

그래 놓고는 믿음대로 될지어다하고 스스로 만족해하고 자위해 버린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에는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곧, 하나님을 마치 자신의 하수인이나 심부름꾼 정도로 하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통보한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교만과 만용으로 인한 태도라는 것이다.

내가 지시한대로 하나님을 압박하고 부담을 지워드린다는 무책임하고 한심한 막무가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라고 배워 알고 있다.

지정의(知情義)를 갖고 계신 분이시므로, 우리와 똑 같이 알고, 느끼고, 결정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대화의 테이블을 마련했다면 상대방에게도 말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자세를 보이는 예절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세상적인 수준에서의 상식이며, 예법이다.

 

그러나, 기도는 최소한의 이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례를 날마다 범하면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얻겠다는 것인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만약 내가 하나님이라면, 대화는 고사하고 그 불편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릴 것만 같다. 하나님이 인내심을 갖고 우리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귀를 기울이시고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는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고도 고리타분한 넋두리를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과 관련하여서 우리의 공손하고 예의 바른 처신은 기도의 응답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탐욕의 마음과 염치없이 내미는 손, 정결치 못한 입술 밖에 없다.

하나님은 자복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기뻐 받으신다고 하심이 이해가 된다.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어 코가 땅에 닿도록 겸손한 자세로 주님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아뢰는 기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속사포처럼 자기감정과 생각에 몰입하여 드리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입장과 처지를 살피고, 기도자의 평소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담아 드리는 진지한 기도야말로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기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다.

내 기도의 응답을 기대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요청사항을 먼저 듣는 것이 순서인 것이다.

이순서만 잘 지키면 우리가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훤히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그리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기도는 자동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다.

 

효과적인 상담을 위해 우호적인 관계 형성인 라포(rappo)가 필요하듯이 효과적인 기도를 위해서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령은 우리의 간구를 위해 항상 빌어 주시며, 우리의 기도가 유효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으로써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내리시는 한없는 위대한 뜻을 발견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하신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믿음과 확신을 갖고 기도하게 한다.

언제, 어느 때나 시간과 공간에 구애됨이 없이 전천후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우리는 그 특혜에 걸 맞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본다.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박종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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